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열왕기상

[스크랩] 열왕기상 (3 : 1~28)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5:11

열왕기상 3장

1 솔로몬이 애굽 왕 바로로 더불어 인연을 맺어 그 딸을 취하고 데려다가 다윗성에
두고 자기의 궁과 여호와의 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이 필역되기를 기다리니라

ㅇ솔로몬이 애굽 왕 바로로 더불어 인연을 맺어 - 여기서 '인연을 맺어'에 해당하는
기본 동사 '하탄'은 '결혼으로 인척 관계를 형성하다'란 뜻으로서, 보다 구체
적으로는 장인과 사위 관계를 강조하는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솔로몬과 바로의 딸과
의 결혼이 국가적인 정략 결혼임을 강조하는 말이다(Patterson). 이처럼 솔로몬은
내부의 적들을 제거한 뒤(2장) 외국과의 동맹을 통해 왕국을 강화하려 했다. 그래서
왕국 강화의 일환으로서 솔로몬은 정략(政略) 결혼을 통해 애굽과 동맹 관계를 맺은
것이다. 그런데 당시의 바로 왕은 애굽 21대 왕조(Tanitic)의 마지막 왕으로서 35년간
애굽을 통치한 프수센네스 왕으로 추정된다(Ewald, Winter), 왜냐하면 다음에 이어지
는 22대 왕조(Bubastic)의 초대 왕 쉐숑크(Sheshonk)는 르호보암 5년에 예루살렘을 침
략했던(14:25) 시삭(Shishak)이 틀림없기 때문이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Vol. , p. 38; B hr). 그러므로 적대적 관계인 22대 왕조 이전
에 상호 동맹이 있었으리라고 보는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당시 애굽이 왜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으려 했는지 분명치 않으나, 당시 다윗과 솔로몬 치하의 이스라엘이 매우 강
력했던 사실이 그 주요 이유일 수 있다(L.Wood).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대국의 왕인 애
굽왕들이 다른 국가에게 딸을 주는 일은 이례적이기 때문이다(Patterson).
ㅇ그 딸을 취하고 - 솔로몬이 애굽 이방 여인과 결혼한 것 자체가 율법에 위배된다고
는 볼 수 없다(B hr, Keil등). 즉 일찍이 요셉과 모세에게서도 그러한 전례(前例)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창 41:45;민 12:1), 모세 율법에 명시된 바 가나안족과의 혼인 금
지 조항에 저촉되지도 않기 때문이다(출 34:16;신 7:3). 오히려 율법은 전쟁시에 취한
이방 여인과 결혼도 허용했다(신 21:13). 그러므로 우리가 여기서 솔로몬의 결혼을 타
락행위로 확대 해석하는 것은 부자연스럽다. 이는 후일에 솔로몬에게 우상 숭배의 악
영향을 끼친 왕비들 중(11:1-7) 바로의 딸이 제외되어 있다는 사실을 통해 보다 분명
해진다(Edersheim, Keil). 그런고로 본절은 다만 솔로몬의 위세가 바로의 딸을 취할
수 있었으리만치 강력했다는 점과 함께 이후 게속되는 이방 여인들과 결혼이 시작되었
음을 소개하는 구절 정도로 해석하는 것이 무난하다.
ㅇ다윗 성에 두고 - 여기서 바로의 딸이 자신을 위한 궁(宮)이 지어지기까지 임시적
으로 거주한 '다윗 성'(이르 다윗)은 일찍이 요새화된 고대 예루살렘성을
가리킨다(Keil, B hr, Patterson). 이는 여호와의 궤가 위치한 영역으로 보이는 '다
윗 궁'(베트 다윗)과는 구별되는데, 이러한 사실은 대하 8:11의 언급을 통
해 알 수 있다. 즉 역대하 8:11에 따르면, 바로의 딸은 다윗 궁에 거할 수 없었다. 왜
냐하면 여호와의 궤(법궤)가 안치된 장막이 다윗 궁 안에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고로 다윗 궁은 특별히 거룩한 곳으로 선포되었고, 따라서 솔로몬은 이방 여인인
바로의 딸이 그것에 거주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바로의 딸은 다윗 성
으로 불리우딘 예루살렘성에 거주하기는 했지만, 다윗 궁 안에 거주한 것은 아니었다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그러던 중 궁전 공사가 필역된 후, 솔로몬은 바
로의 딸을 위해 지은 궁으로 그녀를 인도했던 것이다(9:24).
ㅇ자기의 궁과 여호와의 전...필역(畢役)되기를 기다리니라 - 솔로몬은 즉위 4년 즉
B.C. 966년 경에 성전 건축을 시작하여 즉위 11년 B.C. 959년 경에 완공하였다( 6:1,
38). 이처럼 7년에 걸쳐 성전 건축을 필역한 다음 솔로몬은 바로 궁전 건축에 착수하
였다. 즉 솔로몬은 즉위 11년 즉 B.C.959년에 궁전 건축을 시작하여 즉위 11년 즉 B.
C. 946년에 궁전 건축을 완공하였다. 따라서 궁전 건축에는 13년이 걸렸다(7:1). 결국
솔로몬의 주요 건축 공사는 도합 20년의 세월에 걸쳐 완공되었다.

2 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ㅇ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 혹자는 본절의
산당(山堂) 제사를 백성들의 종교적 결함으로 해석한다(Rowlinson). 그런데 원문을
순서대로 번역하면 '다만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전이 아직 건
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란 의미이다. 그러므로 본절의 의미는 아직 유일한 제사 성소
인 성전이 없었으므로 백성들이 불가피하게 산당 제사를 했던 당시 형편을 알리는 것
으로 보는 게 자연스럽다(Hammond). 이런 점에서 여기 '산당'(바마)은 우상 숭
배 장소인 가나안 족속들의 산당과는 구별되는 곳으로, 단순히 제사와 기도의 장소일
뿐이었다(Keil). 드보(De Vaux)는 당시 산당의 형태는 흙무덤 같은 작은 언덕이었다고
전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하나의 '제단'(미즈베아흐)으로 구성되었지만, 때
로는 제단 곁에 여러 개의 부속 시설을 갖추는 등 꽤 정교하게 구성된 산당도 있었다
고 전한다. 한편, 이처럼 솔로몬 시대에 산당 제사가 보편적이었던 이유 중 하나는 엘
리 시대에 블레셋 족속들에게 법궤를 탈취당한 이후(삼상 4:11), 그 법궤가 실로 놉
(삼상 21:1-9) 기브온(대상 16:37-40) 예루살렘(삼하 6:16) 등으로 옮겨다닌 결과
백성들은 제사의 구심 장소를 상실하고 각자 나름대로 산당을 만들어 제사드렸기 때문
일 것이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3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 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ㅇ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 율법의 첫째가는 계명은 여호와를 사랑하는 일이다
(신 6:5;30:16;마 22:37;눅 10:27). 솔로몬의 번영과 업적은 이처럼 여호와를 사랑하
느 마음으로 율법에 순종했기 때문에 가능했다(2:3).
ㅇ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되 - 다윗은 선민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도록 특별히
하나님께 택함을 받은 자이다(8:16). 그리하여 다윗은 그 자신의 시대를 넘어 이스라
엘 역사 내내 그의 가치를 인정받아, 향후 이스라엘 모든 왕들이 따라야 할 의(義)의
척도로 등장한다. 그런고로 백성들은 하나님을 다윗의 하나님으로 알았고, 이후 이스
라엘 왕들은 축복을 받으리면 다윗의 행함을 본받지 않으면 안되었다(PEB;9:5;왕하 20
:5;대하 21:12). 결국 본절은 솔로몬 치세의 번영은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되었음
을 암시한다.
ㅇ오히려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 - 대부분이 주석가들이 본질을 부정적의미로
해석한다(Hammond 등).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정복 당시 여호와께로부터
가나안 족속의 '산당'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받았고(민 33:52), 이후 열왕기에서 '
산당'은 우상 숭배와 밀접히 관련된 부정적 의미로 나타남을 기억할 때 그것은 타당하
다. 게다가 이스라엘 역사의 황금기를 회상하며 기록했을 열왕기 사가는 여기 본절에
서 솔로몬 왕국의 번영 이유와 타락 이유를 나란히 기록했음직도 하다. 그러나 당시
여호와의 성전이 지어지기 전이고(2절), 다음 장면에서 산당은 솔로몬이 여호와께 지
혜를 받는 긍정적 장소로 나타나는 점을 고려할 때(4-15절), 아직 지나치게 부정적 의
미를 부여하지는 말아야 한다(Keil, B hr). 다만 위험한 가능성을 가질 뿐이다. 그 위
험의 가능성은 다음 두 가지이다. 즉 여호와의 유일 중앙 성소 명령(신 12:5-14,18
,21,26)을 소홀히 할 위험성과 산당을 중심으로 드려지는(신 12:2,3) 가나안 족속
의 우상 숭배 행위를 본받을 위험성이다(Patterson). 그런고로 여호와의 성전이 완공
된 이후, 이러한 산당은 전혀 불필요했고 또한 결코 합법적이 될 수 없었다. 다만 철
저한 파괴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과 통치자들은 너무나 오래
도록 산당 제사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선왕(善王)들 조차도 산당을
훼파하는 데 소홀히 했으며, 이로 인해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당으로 말미암아 우
상 숭배 행위에 빠져들고 말았다(Patterson, Keil).

4 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ㅇ기브온...산당이 큼이라 - '기브온'(Gubeon)은 예루살렘 북서쪽 약 10km지점에 위
치한 해발 722m 가량의 이스라엘 중부의 주요 성읍이다(수 9:3;10:2;18:25;21:17;삼하
21:1). 가나안 정복 후 처음 이곳은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수 18:25), 후에
레위 지파의 성읍으로 구별되었다(수 21:17). 이곳 기브온의 산당이 특별히 유명하게
된 것은 사울의 놉(Nob) 제사장 학살 사건(삼상 22:11-19)이후 놉에 있던 여호와의 장
막이 기브온으로 옮겨지고 나서 부터였다(대상 16:39;대하 1:3). 즉 그 때 이후로 여
호와의 장막(모세의 장막)이 있는 기브온과 여호와의 법궤(언약궤)가 있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2대 제사 중심기가 되었딘 것이다. 한편, 즉위 후 솔로몬은 '일천 번제'라
는 대제사을 드리기 위해서는 '놋단'이 있는 기브온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하고, 신하
들과 백성의 대표들을 이끌고 기브온으로 올라갔던 것 같다(대하 1:2-6).
ㅇ그 단에 - 기브온 산당의 모세 성막(출 27:1-2;38:1,2) 안에 있던 놋 제단을 가리
킨다(대하 1:3-6).
ㅇ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 일천의 숫자가 횟수인지 양(量)인지 분명치는 않으나 어느
쪽이든 엄청난 규모임엔 틀림없다. 솔로몬은 백성들에 대한 통치를 시작하기 전 무엇
보다 하나님과 바른관계를 정립하기 원했다. 따라서 솔로몬은 신하들과 백성들의 지도
자들을 모두 이끌고 기브온 산당으로 올라가 자신과 백성들을 하나님께 전적 헌신하는
하나의 신상 고백으로서 '일친 번제'를 드린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과 이스라엘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간구한 것이다. 한편, '번제(올라)는 희생제물을 통
째로 제단 위에서 불사르는 제사로서,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 정립을 원할 때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기를 원할 때 누구든지 자발적으로 드릴 수 있는 자원
제이다(레 1:3). 그러므로 솔로몬도 이러한 목적으로 그의 통치 초기에 왕 개인과 이
스라엘 공동체의 헌신을 위하여 이처럼 기브온 산당에서 이 '올라'를 드렸던 것이다
(Tosef). 그런데 여기서 특기할만한 사실은 무엇보다도 그 규모면에서 '일천 번제'
(엘레프 올로트)라는 전무후무성인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전적헌
신의 징표일 뿐 아니라, 즉위 초 솔로몬의 강렬한 헌신과 순종에의 열의가 반영된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혹자는 이 제사 제물들을 힘껏 드린다 할지라도 최소한 칠
일 또는 팔일이 소요된다고 보았다(J. Hammond). 여하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은 신
하가 군주에게 예물을 바치는 것처럼 충성과 헌신의 표시로 생각되었다(IDB;시68:18).
그러므로 일천 번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으로 믿고 모시는 솔로몬과 백
성들의 신앙 고백 행위인 것이다.

5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ㅇ꿈에 나타나시니라 - '나타나셨다'(니레아)는 말은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
의 뜻을 계시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형체를 구체적으
로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B hr, Keil, Hammond). 한편 '꿈'(할롬)은 특히 구
약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밝혀 주는 특별한 계시 방편으로 자주 등장한다(창 15:12;28
:12;욥 33:15,16;마 1:20-23;2:12).
ㅇ내가 네게 무엇을 출꼬 너는 구하라 -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솔로몬의 강렬한 헌신
인 일천 번제에 이어 발생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희생 제물을 기쁘게
받으셨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통해 큰 일을 하시고자 했
음을 의미한다(Patterson). 여기서 솔로몬의 일천 번제는 이제 시작될 통치에 대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청하려는 목적이 있었다(Keil). 따라서 솔로몬에게는 여호와의
뜻에 부합될 정당한 간구를 할 만반의 채비가 갖추어져 있었다(마 6:33;7:7;약 4:3).

6 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ㅇ자신의 소원을 말하기 전에 솔로몬은 먼저 이미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있다. 이처럼 과거에 이미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하고, 먼저 하나님
께 감사하는 마음은 모든 간구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 자세이다.
ㅇ성실과 공의(公義)와 정직한 마음 -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은 원래 하나님의 속성
이다(신 32:4).
ㅇ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 다윗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을 수 있었던 2대 비
결이다. 즉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cum Deo),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행하였기 때문
에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고, 백성들을 통치할 수 있었다.
ㅇ큰 은혜 - '큰 은혜'(헤세드 가돌)의 문자적 의미는 '크신 친절'(great
kindness) 또는 '크신 긍휼'(great mercy)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미 베푸신 것
들은 다만 행한 대로의 보답이 아닌 오직 은총일 따름이라고 솔로몬은 겸손히 고백하
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은혜'(헤세드)는 보통 '언약'과 같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8:23;신 7:9,12;느 9:32;단 9:4;미 7:20 등). 즉 언약 관계하에서 주어지는 친
절, 사랑, 긍휼, 호의 등이 바로 '헤세드'인 것이다. 이런 맥락하에서 특별히 여기서
는 당신의 언약을 따라 다윗 가문을 선택하셔서 영구한 왕위를 주신 하나님의 크신
호의를 의미한다(1:48;2:4,45;대하 1:8,9).

7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줄을 알지 못하고

ㅇ종은 작은 아이라 - 주석가들은 이때의 솔로몬의 나이를 보통20세전후로 본다(B hr
, Keil 등). 그러나 여기서 솔로몬의 이 고백은 반드시 나이의 문제라기 보다는 솔로
몬의 자기 겸비를 나타내는 것이다(Patterson, Hammond). 즉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수
많은 백성을 통치해야 하는 책임의 막중함에 비해 자신의 경험 미숙과 연약함을 절실
히 느끼고 고백하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의 소명에 임하는 인물들은
대개 이와같이 자신의 부족함과 부적격함을 토로하고 있다(출 3:11;삿 6:15;렘 1:6,7
등). 그러나 이것은 도리어 그 임무가 하나님의 능력에 전적 의존되어 있음을 보여준
다.
ㅇ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 '출입하다'(야차 와보)란 말을 직역하면 '
나가고 들어오다'(go out and come in)란 뜻인데, 이는 곧 맡은 바 자신의 임무를 성
공적으로 수행키 위하여 공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성경의 관용적 표
현이다. 따라서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한다'는 솔로몬의 말은 왕으로서 어떻게 백성들
을 성공적으로 잘 다스려야 할 지 모르겠다는 말이다(민 27:17;신 28:6;31:2;삼상 18:
13;시 121:8).

8 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ㅇ주의 빼신 백성 -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중에서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신 '이스
라엘'을 가리키는 말로(신 7:6), 직역하면 "주께서 선택하신 주의백성"이란 의미이다.
ㅇ저희는 큰 백성이라...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 이 말은 일찍이 조상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회상하며 한 말이다(창 13:16;15:5;22:17). 한편, 솔로몬 당시의 인
구가 얼마였는지 확실치 않으나, 다윗이 그의 말년에 인구 조사를 실시했을 때 20세
이상의 성인 남자만 130만 명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삼하 24:9).
ㅇ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그 후손들로 '땅의 티끌'(창 13:16), '하늘의 뭇별'(창 15:5), '바닷가의 모래'(창 22
:17) 같이 많이 번성하도록 축복하겠다고 약속하신 바 있었다.

9 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ㅇ누가...재판을 할 수 있사오리까 - '재판하다'(솨파트)는 성경에서 주로 '
다스리다'로 번역되었다(삿 12:11;삼상 8:5,20). 왕정(王政) 시대 이전에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사사(士師)들의 임무는 재판관(쉐파트, '사사'로 번역됨)으로서 사회의 각종
분규를 매듭짓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왕정 시대에 들어와서도 재판은 통치의 주된 기
능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실제로 고대 국가의 왕들은 통치자인 동시에 최고 재판관이
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 지혜를 받은 후 솔로몬이 한 통치의 첫 업무는 재판이었
다(16절 이하). 그리고 그 재판이 곧 왕의 권위를 인정받게 하였다(28절).
ㅇ지혜로운 마음 - '지혜로운 마음'(레브쇼메아)은 문자대로는 '듣는 마음
'이다. 그런데 '듣다'란 동사 '솨마'는 '복종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루
터(Luther)가 이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번역한 것은 의미가 깊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데서 얻는다고
보기 때문이다(시 119:97-99;잠 2:6-9). 여하튼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올바르게 통치하고 재판하기 위해 요구되는 총명과 분별력을 구했다.
ㅇ선악을 분별하게 - 통치자로서 백성들의 제반 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을 잘 재판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만일 통치자가 백성들 사이의 제반 문제에 대해 시시비
비를 옳게 가려 주지 못한다면, 그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대리자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무엇보다
통치자로서 백성들을 잘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던 것
이다. 한편 솔로몬이 구한 이러한 지혜는 결코 사색적이고 추상적인 지혜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지혜로서, 그 일례가 16-28절의 판결 속에 잘 드러나 있다.

10 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ㅇ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 직역하면 '주의 눈에 좋았다'란 뜻이다. 즉 솔로몬은 하나
님 보시기에 올바른 기도를 드린 것이다. 왜냐하면 주의 택한 백성을 맡아 다스릴 솔
로몬은 이스라엘의 참된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무엇보다도 올바른 통치와 재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혜를 요청했기 때문이다<9절>.

11 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ㅇ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 직역하면 '주의 눈에 좋았다'란 뜻이다. 즉 솔로몬은 하나
님 보시기에 올바른 기도를 드린 것이다. 왜냐하면 주의 택한 백성을 맡아 다스릴 솔
로몬은 이스라엘의 참된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무엇보다도 올바른 통치와 재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혜를 요청했기 때문이다<9절>.

12 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ㅇ원문에는 본절의 초두에 '보라'(힌네)란 말이 있어 하나님의 응답이 생생하
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Keil).
ㅇ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 후일 역대기 기자는 하나님의 이 약속이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대상 29:25;대하 9:22).

13 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ㅇ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 이스라엘 역사에서 부와 영광의 원천이
신 하나님을 잊은 채 그 자체를 목적으로 구하는자들에게는 엄중한 경고가 내려졌다
(신 8:17;삼하 12장;사 10:3;렘 5:27;겔 7:11;호 12:8;미 6:12). 그러나 하나님의 마
음에 합당한 것이 우선되면(10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여타 모
든 것을 더해 주신다(마 6:32, 33;약 1:5).

14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ㅇ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 다윗의 행적은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열왕(列王)들의
선악을 판별하는 기준이 되었다(9:4;15:11 등). 그런데 후일 솔로몬의 행적은 다윗의
기준에 못 미쳤던 것으로 판정되고 말았다(11:4,6).
ㅇ법도와 명령 - 하나님의 모든 율법과 교훈을 강조하여 지칭하는 증언법적 표현이
다. 2:3;신 4:1 주석 참조.
ㅇ지키면...네 날을 길게 하리라 - 간구한 대로 솔로몬이 총명한 지혜를 받을 수 있
었고, 덧붙여 수(壽)와 부(富)와 권세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
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따라 행했기 때문이었다(3절). 따라서 솔로몬이 이후
계속해서 그같은 지복(至福)의 상태를 누리려면, 변함없이 즉위 초기와 같은 순수하고
경건한 신앙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솔로몬은 말년에 이를수록 점
점 여호와의 길로부터 벗어나 타락하고 말았다(11:9-13). 그 결과 솔로몬은 "네 날을
길게 하리라"는 여호와의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했다(Keil, Hammond). 왜냐하면 구약
시대의 관념상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비단 영적인 의미 뿐 아니라 보다 실제적인 의
미를 지녔다는 점에서, 솔로몬이 60세 안팎의 나이로 죽고 말았다는 사실로 미루어
결코 그가 장수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15 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더라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번제와 수은제를 드리고 모든 신복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

ㅇ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더라 - 여기서 '꿈'(할롬)은 일반적인 평범한 꿈이
아니라, 특별한 꿈으로서 곧 하나님이 주신 꿈이요 그 꿈을 통한 계시였다. 즉 구약
시대에 이러한 꿈은 외부의 변화없이 인간 내면의 사고 작용과 감각을 통하여 하나님
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계시 방편이었다(창 20:6;삼상 28:6;단 2:4). 따
라서 이러한 꿈을 꾼 자는 꿈을 깬 이후에도 꿈의 내용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었으며
, 또한 자신의 꿈 속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
었다(Patterson, Keil). 일찍이 야곱(창 28:10-22), 요셉(창 37:5-11), 바로(창 41:1-
7)도 이같은 꿈을 꾸었었다.
ㅇ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잔치하였더라 - 기브온 산당의 제사를 모두 마친 후 솔
로몬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법궤가 있는 시온 산 제단에서 새로 번제와 수은제
를 드렸다. 그런데 기브온에서와는 달리 예루살렘에서는 특별히 수은제(쉘라
밈)가 추가되고 있다. 여기서 '수은제(酬恩祭)는 곧 레 3:1-17;7:11-21,28-34에 구체
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화목제'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은 감사를 표시하는 제사이
다. 즉 솔로몬은 기브온의 일천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과 약속을 얻고 예루살렘으
로 돌아오자 마자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화목 제사에 쓰인 제물들은 신
하들과의 잔치에 사용되었을 것이다(레 7:15,31;삼상 2:16).
ㅇ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 다윗 통치이후 솔로몬 성전이 완공될 때까지 이스라
엘에는 두 개의 장막이 있었다. 하나는 기브온에 있는 원래의 장막이고(대하 1:3), 다
른 하나는 예루살렘의 시온 산 위에 있는 임시 장막이다(삼하 6:17). 그런데 기브온
장막은 원래 모세의 장막과 같은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는 있었지만, 여호와의 궤(법궤
, 언약궤)가 없었다. 반면 시온 산 위의 장막 속에는 여호와의 궤가 안치되어 있었지
만, 온전한 장막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즉 두 개의 장막이 불완전한 상태로 유지되
어 왔던 것이다. 이에 따라 다윗시대에는 사독과 아비아달이 양쪽에서 이중으로 대제
사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면 다윗은 왜 언약궤와 장막을 한 곳으로 집중
시키지 않았을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영구한 여호와의 성전 건축 계획이 있었으므
로, 무리하게 한 쪽을 철회시키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The Ecpositor's Bible Comme-
ntry). 아무튼 이러한 연유로 인해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제사를 필한 후,
예루살렘의 시온 산에 있는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응답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표시
로서 새롭게 번제와 수은제를 드린 것이다.

16 때에 창기 두 계집이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ㅇ구체적으로 이 때가 어느때 인지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본서 저자는 솔로몬이 기
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받은 지혜를 (11,12절) 재판에 적용한 한 가지 구체적 실례를
보여 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 사건을 기록하였을 것이기 때문에(Theodoret), 분명 이
때는 솔로몬 즉위 초(B.C.970년 경)의 일로서, 기브온 산당에 일천 제사를 필한 직후
였을 것이다.
ㅇ창기 두 계집이 - '창기'(娼妓)에 해당하는 '자나'가 반드시 '창녀'를 의미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혹자들은 여기의 '창기'를 '여관집 여 주인'(hostess)등으로 달
리 해석하기도 한다(B hr, Hammond). 또 혹자는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
하도록 하라'는 신 23:17의 율법에 근거하여 이들을 이방인 창녀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Grotius). 그러나 율법의 금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창녀는 이스라엘 역사 초기부터
내내 존속해 왔고(IDB), 또한 이들은 여관을 거처로 삼아 여행자들에게는 여관집
주인 같은 기능을 담당하기도 했으며(창 38:14), 그리고 본문의 창기들은 한 집에
살았을 뿐만 아니라(17절), 이들의 남편에 대한 언급을 전혀 찾을 수 없다는 점 등으
로 미루어 원래의 번역과 의미가 타당하다고 본다.
ㅇ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 분명 이 '두 창기 사건'은 하위 재판관들에 의해 해결
되지 못한 어려운 사건으로서, 결국 최고 재판관인 솔로몬 왕에게까지 올라온 어려운
사건이었다. 따라서 당시 솔로몬은 일종의 시험대 위에 서게 된 것이다. 만일 솔로몬
까지도 이 사건을 해결치 못한다면, 그는 신정 왕국의 통치자로서 그 지혜와 자질이
의심받을 수도 있는 문제였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때를 위하여 솔로몬은 하나님께 백
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케 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던 것이고(9절), 하
나님께서는 그 응답으로 송(頌辭)를 듣고 분별할 줄 아는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솔로몬에게 주셨던 것이다(11, 12절).

17 한 계집은 말하되 내 주여 나와 이 계집이 한 집에서 사는데 내가 저와 함께 집에
있으며 아이를 낳았더니

18 나의 해산한 지 삼일에 이 계집도 해산하고 우리가 함께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

ㅇ본문은 재판관이 판단을 내리는데 필요한 외적 증거나 증인이 전혀 없는 상황임을
보여 준다. 아마도 이들은 혼자서 해산 해산(解産)했거나 서로 돕거나 했을 것이다.
실제 히브리 여인들은 건장하기 때문에 오늘날도 남의 도움을 거의 받지 않고 해산한
다고 한다(Hammond,출 1:19). 따라서 그렇게 일이 진행되는 동안, 두 여인 외에는 그
집에 다른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재판관은 가장 확실한 증인이자 고소인인 이
들 두 창기의 내적 진심을 드러내게 하는 것 외에는 진실을 가릴 방도가 도무지 없는
어려운 재판이었다.
ㅇ나와 이 계집이 한 집에서 사는데 - 아마 이 두 여인은 같은 여관을 거처로 삼고
매춘 행위를 하는 창기였던 것 같다. 실제 당시 가나안 땅의 어떤 여관에는 이러한 창
기들이 기거하고 있었다고 한다(수 2:1).

19 그런데 밤에 저 계집이 그 아들 위에 누우므로 그 아들이 죽으니

ㅇ누우므로 - 영문 성경은 각각 '위에 몸을 두다'(lay on, NIV RSV),'과중하게 싣
다'(overlade, KJV),'굴리다'(roll over, Living Bible) 등으로 번역했다. 그리고 공
동 번역은 '깔아 뭉개다'로 번역했다. 그러므로 이것은 잠자던 도중 부주의하게도 아
기를 깔아 질식사(窒息死)시킨 것을 말한다.

20 저가 밤중에 일어나서 계집종 나의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뉘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나이다

ㅇ내 아들을...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 인도의 자타카(Jataka)경전에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실려 있다(Cowell). 즉 이 장면과 비슷하게도 거기에는 한 여자가
목욕하는 동안 여귀(女鬼)가 아기를 훔쳐가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한 내용이 있었다.
따라서 혹자는 여기 '두 창기 사건'이 그러한 인도 설화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기도 한
다(James A. Montgomery, The International Critical Commentary, The Books of kin-
gs). 그러나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인도 자타카 설화는 여귀(女鬼)가 등장하는 등
그 사건이 완전히 신화적 형태인 데 반해 여기 두 창기 사건은 역사적 사건으로 기술
되고 있고, 또한 자타카 설화와는 달리 고도로 윤리화된 형태를 갖고 있다. 즉 본절의
'두 창기 사건'은 솔로몬 왕의 즉위 초라는 역사성, 이스라엘의 어떤 여관에 함
께 거처하고 있는 두 창기 사이에서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의 개연성, 그리고
내면의 모성애를 이용하여 지혜롭게 판결을 내린 윤리성 등이 골고루 갖춰진 실제 역
사적 사건인 것이다.

21 미명에 내가 내 아들을 젖 먹이려고 일어나 본즉 죽었기로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니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다 하매

ㅇ미명(未明)에 - '미명'(보케르)은 종종 '아침'으로도 번역되나(창 1:5; 24:
54;삼상 5:4 등), 정확하게는 이른 아침 동틀 무렵 즉 '새벽'(출 14:24;삿 16:2;대상
23:30)을 말한다. 따라서 여기 이 말은 곧 이어지는 '아침에'와 함께 점점 날이 밝아
오는 상태를 알린다.
ㅇ본즉 죽었기로(힌네메트) - 직역하면 '보라! 죽어 있도다'(behold, it
was dead, KJV)란 뜻으로, 곧 여인의 경악과 놀라움이 나타나고 있는 장면이다.
ㅇ자세히 보니 - 여기서 '자세히 보다'(빈)는 꼼꼼하게 살펴 분별하여 깨닫는
것을 의미한다(단 10:1;삼상 3:8;스 8:15;시 37:10).

22 다른 계집은 이르되 아니라 산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이
계집은 이르되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것이 내 아들이라 하매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ㅇ다른 계집은 이르되 - Living Bible은 '이르되'를 '끼어들되'(interrupted)로 번역
함으로써, 다른 여자가 도중에 말을 가로막고 끼어드는 모습을 잘 나타내 준다.
ㅇ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 양쪽 모두 자기 주장의 확신과 정당성을 강력
히 주장한다. 아무런 증인도 증거도 없는 상태에서 이렇게 진행되는 모습은 판단의 어
려움을 더욱 부각시켜 준다.

23 왕이 가로되 이는 말하기를 산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저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도다 하고

ㅇ왕이 가로되 - 여기 이 '두 창기 사건'을 왕이 직접 재판하게 된 까닭은 아마도 하
급 재판 기관에서 이를 잘 판결할 수 없었던 탓일 것이다. 사실 율법에 의하면, 어떤
사실의 시비(是非)를 가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두 세 사람의 증인이 필요했다(신 19:15
). 그런데 이 사건에는 한 사람의 증인조차 없었다. 한편 율법은 재판에 임하는 것을
곧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으로 보았다(신 19:17). 따라서 올바른 판결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반드시 함께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28절). 그러므로 솔로몬은 이 사건을 잘
해결함으로써 그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있음을 백성들 앞어 명백히 입증해야 했다.

24 또 가로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의 앞으로 가져온 지라

25 왕이 이르되 산 아들을 둘에 나눠 반은 이에게 주고 반은 저에게주라

ㅇ외적(外的) 증거가 전혀 없었음로, 이제는 내적(內的) 증거를 통해 사실을 밝혀내
야 했다. 그것은 두 여자 중 누가 참 모성애를 갖고 있는가를 시험하는 것이다. 그럼
으로써 두 여자 자신들이 이 사건의 증인이 되게 하는 것이다. 결국 그것은 인간의 심
령 깊숙히 감추인 은밀한 부분까지도 분별하시는 하나님의 판단에 의존하는 것이다(잠
21:2; 미 6:4;롬 2:16).
ㅇ산 아들을 둘에 나눠 반은 이에게...반은 저에게 주라 - 혹자들이 비평하는 것처럼
, 솔로몬의 이 명령은 결코 아이의 목숨을 담보로 한 불확실한 모험이 아니다. 기브온
산당의 일천 번제 이후 솔로몬은 인간 본성을 꿰뚫어 보는 비범한 통찰력과 총명한 지
혜를 하나님께 부여받았다(12절). 따라서 솔로몬은 두 창기 사건의 본질을 명쾌히 파
악하고 있었다. 즉 아이를 죽인 어미는 자신의 부주의와 소홀로 아이를 죽이고 말았다
는 자책감과 수치감, 그리고 산 아들을 품고 있는 어미에 대한 강렬한 질투심 등이 복
합적으로 작용하여 일순간 아이를 바꿔치기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실제로
는 자신의 아이가 아닌) 그 산 아이에 대해서 진짜 어미만이 가질 수 있는 본능적 모
성애(母性愛)는 없었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을 솔로몬은 신적(神的) 지혜로 이미 간파
했고, 따라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솔로몬은 이처럼 산 아이를 칼로 잘라 두 여자에
게 공동 분배하라는 일견 기괴하고 잔인한 명령을 과감히 내린 것이다

26 그 산 아들의 어미되는 계집이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가로되 청컨대 내 주여 산 아들을 저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한 계집은 말하기를 내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ㅇ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 여기서 '마음'에 해당하는 '라함'은 '창자'(bo-
wels, KJV)란 뜻이다. 실제 희노애락을 느낄 때 오장 육부에 영향이 미침을 보고, 고
대 히브리인들은 이곳 창자를 감정과 정서의 좌소로 보았다(J. Hammond). 같은 맥락에
서 신약 성경은 '스플랑크나'란 단어를 사용했다(고후 6:12;7:!5;빌 1:8;
몬 1:7,20). 또한 이 말은 '자궁'(womb)으로도 번역될 수 있는데, 이는 자신이 직접
낳은 자식을 향해 본능적으로 강력히 발(發)하여지는 모성애를 시사해 준다.
ㅇ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 왕의 명령의 진의(眞意)도 모
르고 선뜻 동의하는 이 여자의 말은 모성애의 참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따라
서 이 여인이 애초에 보였던 아이에의 강한 집착(20,22절)도 사실은 진정한 아이 사랑
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질투와 소유욕 때문이었음이 자명해지고 말았다. 따라
서 그 여인은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생명을 물화(物化)시키는 지극히 비 인간적인 응
답을 선뜻 하고야 만 것이다.

27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산 아들을 저 계집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
어미니라 하매

ㅇ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 어미니라 - 두 여자의 반응을 통해 참된 모성애가 누구
에게 있는지 확실히 분별해 낸 다음 솔로몬은 명쾌히 판결을 내린다. 결국 이것은 기
브온 산당에서 응답받은 대로(11-14절), 솔로몬에게는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총명한
지혜가 있었고, 그 결과 인간 감정의 움직임에 대한 예리한 통찰력이 있었음을 보여준
다(Barlow). 한편, 여기서 그로티우스(Grotius)는 이와 비슷한 판결 사건의 일례로서,
디오도루스 시큘루스(Diodorus Siculus)의 글에 나오는 한 고사(故事)를 인용하고 있
다. 즉 어느 날 트라키아의 왕 아리오파르니스(Ariopharnis, King of the Thractans)
앞에 세 청년이 와서 각기 자신이 키메르 왕국의 왕자라고 주장하면서 공정한 판결을
요구했다. 이 때 트라키아 왕은 선왕(先王)의 시신을 향해 가장 정확히 창을 던지는
자가 곧 왕의 계승자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자 두 사람은 시신을 향해 힘껏 창을
던졌으나, 한 사람은 창 던지기를 거부했다. 이 때 트라키아 왕은 바로 창 던지기를
거부한 그 청년이 키메르 왕국의 왕자라고 판결 내렸다고 한다( Pulpit Commentary ;
Keil & Delitzsch, Vol. ,p. 43).

28 온 이스라엘이 왕의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ㅇ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 두 창기 사건의 재판 이야기는 궁극적으로
솔로몬의 권위가 백성들의 마음으로부터 인정받게 되었고, 그 결과 백성들은 경외하는
심정으로 솔로몬 왕에게 복종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데 백성들의 마음
속에 이와 같이 권위에의 자발적 복종이 생기는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심상 11:7). 그러므로 결국 재판 결과를 통해 저자는 솔로몬이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
님께 응답받은 대로(11-14절) 하나님께로부터 총명한 지혜를 부여받았다는 사실을 보
여 주고자 한 것이다. 한편, 이와는 달리 솔로몬이 후계자 르호보암에게는 이같은 지
혜가 없었기에 불행히도 백성들의 순종도 없었다(12:1-18).
ㅇ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 히브리인들에게 있어 권위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인물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되었다(수 1:!7; 삼상 11:6,7;
왕상 1:37). 그런데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의 표정은 재판의 지혜로운 판
결이었다. 이것은 이전으 지도자들이 군사적 승리로서 권위의 표정을 보여 주었던 것
에 비해 평화와 번영의 시대에 요구되는 권위였던 것이다(삿 6:12,14;삼상 11:11,15;
18:27,28 등). 한편 본절은 12절의 약속이 실현 되었음을 보여 준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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