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열왕기상

[스크랩] 열왕기상 (2 : 1~46)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5:10

열왕기상 2장

1 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ㅇ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임명한 때로부터 그에게 최
종 유언을 하는 현 시점에 이르기까지가 어느 만큼의 기간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상당 기간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역대기에서는 솔로몬 즉위 후 다윗이 다시 건강을
회복하여 성전 예배의 새로운 규례 제정, 제물 봉헌, 그리고 솔로몬의 왕위 계승을 공
포하는 의식을 성대히 행하는 등 여러가지 활동을 한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대상 23장
-29장).
ㅇ명하여 가로되 - 다윗이 공식적으로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남기는 명령은 대상 28-
29장에서 볼 수 있다. 그리고 본절 이하의 내용은 다윗이 왕위 계승자인 아들 솔로몬
에게 사적(私的) 유언의 형태로 은밀히 당부하는 말이다. 한편 본서가 솔로몬 즉위 이
후의 다윗의 활동을 생략하고 있는 것은 역대기와 달리 열왕기는 솔로몬의 통치에 주
안점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2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ㅇ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 직역하면 "나는 모든 땅에
속한 자들의 길로 가고 있노니"(I am going in the way of all the earth)란 의미로
서, 곧 임종(臨終)이 가까왔음을 나타내는 성경적 표현이다. 일찍이 여호수아도 이와
비슷한 표현으로서 '나는 오늘날 온 세상이 가는 길로 가려니와'(수 23:14)라고 말한
바 있다.
ㅇ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웨하자크타 웨하이타 레이쉬'
를 직역하면 '너는 강하게 되어라! 그리고 남자가 되어라'란 의
미이다. 이러한 다윗의 권면은 모세 사후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 전쟁
을 수행해야만 하는 막중한 책임을 떠맡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권면해 주신 말씀
과 동일하다(수 1:6-4). 한편 혹자는 다윗의 이 말을 통해 당시 솔로몬의 나이가 매우
어렸을 것으로 추측하기도 한다(Rawlinson). 그리고 사실 즉위식 이후에도 다윗은 솔
로몬을 '어리고 약한 아들'로 말하기도 한다(대상 29:1). 이런 맥락에서 유대 사가 요
세푸스는 당시의 전통으로 미루어 즉위시 솔로몬의 나이를 14세 정도로 보았다. 혹자
는 12세로 보기도 한다(Eupolemus). 아무튼 20세가 채 안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Hammond). 그러나 여기서 대장부가 되라는 다윗의 말이 결코 나이의 문제만은 아니다
(삼상 4:9). 오히려 이 말은 여호와의 율법 준수의 임무를 행함에 있어 담대하라는 뜻
으로 보아야 한다(Keil, B hr). 왜냐하면 모세의 뒤를 잇는 여호수아에게서도 '담대
한 것'과 '율법 준수'는 상호 연결되고 있기 때문이다(수 1:7). 그러므로 여기서 다윗
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계명을 힘써 지키도록 아들 솔로몬에게 당부한 것이다. 따라서
데니우스(Thenius)의 견해처럼, 다윗의 이 말을 부친의 죽음을 남자답게 용감히 견디
도록 위로하는 말로 해석하는 것은 문맥상 타당치 않다(Keil).

3 벧엘에 있는 선지자의 생도들이 엘리사에게로 나아와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날
당신의 선생을 당신의 머리 위로 취하실 줄을 아나이까 가로되 나도 아노니 너희는
잠잠하라

ㅇ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 여기서 '지키라'는 '파수꾼이 되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파수꾼이 되라는 말이다. 이 같은 용어는 특별히 제사장들
과 레위인들의 직무 수행을 표현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다(레 8:35;18:30;민 1:53;3:7
). 그런데 이스라엘의 왕도 이들처럼 신적(神的) 직무를 위임받은 여호와의 통치 대리
자로서, 여호와를 위하여 여호와의 율법의 파수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B hr).
ㅇ그 길로 행하여 - 여기서 '길'(데레크)은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의 도(道)
이다. 구체적인 일례로, 신 32:4에 의하면 하나님의 길은 공평(公平)의 길이다. 따라
서 솔로몬은 통치할 때 '공평'을 기본 강령으로 삼아 선민 이스라엘을 여호와의 도로
다스려야 했다.
ㅇ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 여기서 '법률'(훅카)과 '계명'
(미츠와)과 '율례'(미쉬파트)와 '증거'(에두트)를 각각 개별적으로 다
른 대상들을 지시하는 것으로 보고 그것들을 구별하여 설명하려는 시도들이 있어 왔으
나, 불가능하고 또한 불필요했다(Hammond). 오히려 이러한 표현은 모세 율법 그 전체
를 강조하여 제시하려는 중언법(重言法)적인 표현인 것이다(Keil). 성경 다른 곳에서
도 이처럼 비슷한 어휘가 반복되어 나란히 등장하는 예를 종종 찾아 볼 수 있다(신 5:
31;8:11;시 119편).
ㅇ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지켜라 - 신정 왕국 이스라엘의 면모가 잘 드러나 있다.
즉 솔로몬은 하나님의 율법을 근간으로 하여 백성을 다스려야 했던 것이다. 인간이 세
운 법과 제도는 불완전할 뿐만 아니라 자칫 소수의 집권층만을 위한 악법이 될 우려를
안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율법과 계명은 거룩하고 선하므로(롬 7:12), 그 법대로
통치하는 자나 통치를 받는 자들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완성될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
나님께서 친히 통치하시는 공의와 평강의 나라인 것이다(계 11:15).
ㅇ형통할지라 - 사전적 의미에서의 형통(亨通)은 '모든 일이 뜻과 같이 잘됨'을 의미
한다. 그런데 여기서 '형통할지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원어 '타스킬'은 '
지혜롭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는 사람은 지혜
롭게 되는 것이고 또한 지혜로운 그가 행하는 것은 무엇이든 형통하게 되는 것을 가리
키는 말이다(B hr). 그러므로 '형통'(사칼)이란 말 속에서 뜻한 바대로 잘되는
그 뜻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다. 그리고 '지혜'란 하나님의 뜻과 나의 뜻을 일치시키
는 것이다.

4 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ㅇ일찍이 나단을 통해 주신 하나님의 약속(삼하 7:12-16)을 이제 죽음을 앞둔 다윗이
솔로몬에게 전해주고 있다.
ㅇ만일 네 자손이...행하면 - 이 조건절은 원래 나단의 메시지 (삼하 7:8-16) 속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다. 그러나 이후로는 계속 나타나고 있다(8:25;9:5 등). 그런데 애초
이 내용은 신명기에 기록된 바(신 6:1-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전체 백성들에게 위탁
한 교육적 책임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왕도 이러한 의무에서 면제되고 있지 않다
(신 17:18-20).
ㅇ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 신 6:5 주석 참조.

5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ㅇ스루야의 아들 요압 - 스루야는 다윗의 누이이며, 요압은 그녀의 맏아들이다(대상
2:16).
ㅇ내게 행한 일 곧...네가 알거니와 -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일에 대해서는
삼하 2-3장과 19-20장을 각각 참조하라. 한편, 그런데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까닭은 무엇보다도 이들에게 군대 장관 지위를 빼앗기지 않으려는 시기심 때문이었다(
삼하 3:6-39;20장). 여기서 특기할 것은 요압의 그러한 살해 행위를 다윗은 마치 자신
에게 행한 일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아마 요압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
인 것은 다윗의 권위에 대한 멸시와 도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B hr;삼하3:26;20:11).
적어도 요압은 다윗 왕에 대해서는 끝까지 충성을 바친 훌륭한 전사였지만, 그러나 지
나치게 방자하고(삼하 18:5,14) 거칠었던 것 같다(삼하 3:27;18:14). 그래서 끼친 공
(功) 못지 않게 자주 다윗 왕가를 괴롭혀왔던 것이다. 그 중에서 요압이 아브넬과 아
마사를 죽인 행위는 도저히 묵과될 수 없었던 요압의 치명적 실수로서, 다윗은 그 사
실에 대해 아들 솔로몬에게 응분의 조치를 내릴 것을 명하고 있는 것이다.
ㅇ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 다윗은 아브넬과 협상하여 평화적으로 통일 왕국
을 이루려 했었다(삼하 3:21). 또한 압살롬의 군대 장관이었던 아마사를 등용한 것은
내란을 종식시키고 왕국의 재정비를 도모하려던 때였다(삼하 19:13;20장). 그런데 다
윗의 이러한 평화의 노력이 요압의 살해 행위로 인해 크게 방해를 받았던 것이다. 따
라서 요압이 사울의 군대 장관 아브넬과 압살롬의 군대 장관 아마사를 계략으로 살해
한 행위는 다윗을 심히 분노케 했다(삼하 3:29).
ㅇ전쟁의 피로...띠와...신에 묻혔으니 - 여기서 '띠'와 '신'은 어떤 임무를 수행할
때 갖추어야 할 것들로서, 주로 전쟁에 임하는 전사(戰士)가 반드시 갖추어야할 필수
도구였다(Keil, B hr). 만일 요압이 전쟁 중에 정정 당당히 싸워 그들을 죽임으로 그
들의 피를 띠와 신에 묻혔다면, 그것은 결코 책할만한 일이 못될 것이었다. 그러나 요
압은 태평한 시대에, 곧 다윗이 탕평책을 쓰고 있는 즈음에 자기 자신의 개인적인 시
기와 질투 및 복수심으로 말미암아 마땅히 전쟁터에서나 묻혔어야 할 피를 명분없이
흘리게 했으니, 그것이 곧 요압의 용서받지 못할 죄라는 것이다.

6 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ㅇ네 지혜대로 행하여 - 요압은 그때까지도 군대 장관이었고(35절), 다윗의 조카로서
다윗이 왕이 되는 데 큰 공로를 세운 당대의 세도가였다. 그러한 인물을 명분없이 처
단한다면 민심의 동요와 같은 어려움이 생길지도 몰랐다(Starke). 그러므로 이 말은
나쁜 술수로 요압을 처단하라는 뜻이 아니라, 납득이 갈 만한 처벌의 정당성과 적절한
시기를 가려 시행하도록 충고하는 말이다. 실제로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불측한 시도가
재차 드러나자 그의 동조자였던 요압도 함께 처단한다(19-25절,28-34절).
ㅇ그 백발로 평안히...내력지 못하게 하라 - 그 무렵 요압도 고령기에 접어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백발의 평안한 죽음은 죄 없는 자의 죽음으로서, 요압 같은 자에게 허용
될 수 없는 것이었다(B hr). 왜냐하면 요압은 까닭 없이 피를 흘렸기 때문이다(31절).
히브리인들은 무고한 자가 흘린 피는 그 피값이 보상될 때까지 하나님께 호소한다고
믿었고(창 4:10), 또한 그 피를 흘리게 한 자는 현세에서 반드시 하나님의 저주를 받
는다고 생각했다(수 2:19;마 27:24,25). 한편, 이처럼 '피는 피로 갚아야 한다'(창 9:
5,6)는 피의 보상 원리에 입각하여 다윗은 요압이 그 피 흘린 죄를 반드시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솔로몬에게 권고한 것이다. 그러면 왜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직접 요압을
처단하지 않고 아들 솔로몬에게 그 일을 위임했는가? 카일(Keil)은 당시 다윗으로서는
군대 장관인 요압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나, 반드시 그런 것
만은 아닌 듯하다. 즉 다윗은 적어도 자신에게는 충실했을 뿐 아니라 많은 전공을 새
운 요압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처단하는 것은 오히려 득보다 실이 더 크게 작용할 것
이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이에 대해 또 혹자는 생각하기를, 다윗은 요압과 공모하여
밧세바의 남편이자 신실하고 용감한 신하인 우리아를 죽게 한 씻지 못할 죄악을 저지
른 경험이 있으므로(삼하 11:14-25), 그 일로 인해 양심이 찔려 요압을 직접 처리하지
못했다고 보기도 한다(Leon Wood). 아무튼 다윗은 요압의 불의한 살해 행위를 잊지 않
고 있다가 결국 솔로몬을 거스려 아도니야의 반역 행위에 가담한 요압을 솔로몬이 처
리하도록 그에게 위임하는 것이 오히려 솔로몬 왕국의 강화를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 실현 차원에서 더 유익하다고 판단하고 요압의 처리 문제를 자신의 손으로부터
솔로몬에게 넘겨준 것 같다(R. Patterson, J. Hammond).
ㅇ음부( ,쉐올) - 죽은 자들의 사후 거처 또는 죽음의 상태를 가리키는 히브리식
표현. 창 37:35;민 16:30;신 32:22;삼상 2:6;삼하 22:6 주석 참조.

7 마땅히 길르앗 바실래의 아들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저희로 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내가 네 형 압살롬의 낯을 피하여 도망할 때에 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

ㅇ바실래 - 바실래 및 그가 다윗에게 베푼 선행에 대해서는 삼하 17:27-29;19:31-39
부분의 주석을 참고하라.
ㅇ네 상에서 먹는 자 중에 참예하게 하라 - 다윗의 이 부탁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
느냐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즉 왕 자신의 식탁에서 함께 먹는 것을 의
미한다는 견해(Keil), 왕궁에서 음식을 공급받는 것을 의미한다는 견해(B hr). 그
러나 어쩌면 이것은 하나의 형태로 결합될 수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바 여왕이
솔로몬의 식탁을 보고 놀랐으며, 솔로몬 왕궁의 매일 음식 소비량이 굉장히 많았다는
기록이 있기 매문이다(4:22,23;10:5). 어쨌든 이 일은 원래 다윗이 한때 압살롬의 난
을 당하여 어려음에 처한 자신에게 음식물로 공궤한(삼하 17:27-29) 바실래에게 은혜
를 갚기 위해 해왔던 것인데, 이제 솔로몬에게도 그 선행 보답을 계속하도록 부탁하고
있는 것이다(삼하 19:33, 37).
ㅇ저희가 내게 나아왔었느니라 -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다윗이 정처없는 피난 길에
나서는 극도의 곤경에 빠졌을 때, 바실래는 여러 가지 식물로 다윗과 그의 일행의 굶
주림과 목마름을 채워주는 선행을 베풀었었다(삼하 17:27-29). 따라서 후일 다윗이 압
살롬의 난을 진압하고 다시금 환궁 길에 오르게 되었을 때, 그는 바실래에게 그의 후
손들을 보살피겠노라고 약속했다(삼하 19:31-39). 본절은 다윗이 바로 그러한 바실래
의 선행을 기억하면서 자신이 바실래와 맺은 약속을 솔로몬 역시 계속 지켜 나가도록
요청하고 있는 장면이다.

8 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ㅇ바후림 - 시므이가 살던 '바후림'(Bahurim)은 수도 예루살렘에서 약 9km 가량 떨어
진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고을로, 베냐민 지역에 속한다(삼하 16:5).
ㅇ게라의 아들 - '게라'(Gera)는 베냐민의 손자이므로(창 46:21;대상 7:6) 시므이의
아버지일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시므이보다 약 300년 전의 인물인 사사 에훗도 '게라
의 아들'로 불리웠던 것으로 보아(삿 3:15) 이 말은 '게라의 후손'이라는 뜻이다(J.H-
ammond).
ㅇ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 여기서 '너와 함께 있나니'(임메카) 란 말은
곧 너와 가까이에 있다는 뜻으로, 이는 솔로몬이 거주하고 있는 예루살렘 성과 가까운
곳에 시므이가 살고 있다는 뜻이다(Keil, B hr). 그러므로 이 말은 혹자(Starke)의
견해처럼 시므이가 솔로몬의 권력하에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편 '시므이'(Shimei)
에 대해서는 삼하 16:5 주석을 참조하라.
ㅇ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 직역하면, '그는 지독한 저주로써 나를 저주하였
다'란 의미인데, 구체적인 저주의 내용은 삼하 16:7, 8에 나타나 있다. 한편 학자들
은 여기서 '독한 말'(켈랄라 니므레체트)을 '강렬한 말'(Gesenius), '
거친 말'(Keil), '악한 말'(Thenius) 등으로 번역한다. 여하튼 시므이의 그 저주 까닭
에 오히려 하나님이 자신을 불쌍히 여겨 혹 은총을 베풀어 주실지도 모른다고 기대했
을 정도로 시므이의 독한 말 (저주)은 다윗에게 깊이 원통함을 심어준 말이었다(삼하
16:12).
ㅇ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 압살롬의 난이 평정된 후 다윗이 예루살
렘으로 환궁할 때 자신의 잘못에 대해 생명의 위험을 느낀 시므이는 급히 환영단 일천
명을 이끌고 요단으로 내려가 다윗 왕을 영접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하였다. 이에 대
한 구체적인 내용은 삼하 19:16-23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ㅇ내가...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 당시 다윗은 압살롬의 반란을 진압하고
막 환궁하는 시점에서 사울 왕의 지파인 베냐민 기파 소속의 유력자 시므이를 처형하
는 것은 시기적으로나 정치적으로 결코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판단하고 일단 시므이
의 죄를 용서해 주었다. 그러나 다윗의 이 용서는 시므이의 범죄를 용인한 것이라기
보다는 그에 대한 징계를 보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삼하 19:21,23 주석 참조.

9 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너는 지혜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지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

ㅇ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지어다 - 압살롬의 반란 때 시므이는 피난가는
다윗에게 혹독한 저주를 퍼부었으나, 후에 다윗은 그를 용서한 바 있다(삼하 16:5-13;
19:19-23). 그 까닭은 시므이가 사울의 출신 지파인 베냐민 지파의 유력한 유지였고,
또 그 무렵은 압살롬 내란 이후 회합책으로 민심을 수습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당시 다윗은 시므이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것이다(삼하 19:23). 그러나
아들 솔로몬에게는 그러한 맹세의 책임이 없는 것이다. 한편 원문은 '무죄'를 '벌하지
않은 상태'로 말하고 있다. 또한 '그러나'는 원문상 '그리고 지금'이란 뜻이다. 따라
서 이 말은 이제까지 벌하지 않은 상태로 보류해 온 시므이에 대한 처벌을 지금 집행
할 때가 왔다는 뜻이다(J. Hammond).
ㅇ그 백발의 피를 흘려...내려가게 하라 - 다윗은 시므이의 행위(삼하 16:5-13)를 단
순히 한 개인에 대한 저주와 모욕이 아닌 하나님의 기름 부음 받은 자에 대한 도전으
로 간주하고, 자신의 시대에는 비록 민심(民心) 수습이란 현실적 문제로 그를 처단하
지 않았지만 끝내는 처단해야할 존재로 작정했다. 사실 시므이와 같은 기회주의적 인
물은 때가 되면 또다시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다분히 있었으므로, 다윗은 솔로몬의 견
고한 왕국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므이와 같은 암적(癌的) 존재가 반드시 제거될 필요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한편, 혹자는 용서받은 후 시므이의 행동이 신실한 회개에 근
거하고 있지않다는 판단하에 다윗이 이처럼 명령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Richard D.
Patterson). 또한편 일부 학자들(Stanley, Harwood)은 주장하기를, 시므이를 처형시키
라는 다윗의 명령은 '뿌리 깊은 증오심' 내지는 '끝내 참을 수 없었던 복수심'에 근거
하고 있다고 하나, 우리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다윗의 명령은 결코 개인적 차원의 원
한이나 복수심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 실현' 내지는 '하나님 왕국의
강화'라는 차원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인 기름 부음 받은 왕을 모욕하고 저주한 자에
대해 개인적인 용서의 차원을 떠나 신적 심판은 반드시 집행되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라고 보아야만 한다(Keil, Hammond).

10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 자서 다위성에 장사되니

ㅇ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 자서...장사되니 - '열조와 함께 누워 자다'란 표현은
'열조에게 돌아가다'(창 25:8;35:29;49:33)란 표현과 동일한 표현으로서, 곧 '죽음'을
가리키는 성경적 표현이다. 이리하여 통일 왕국 이스라엘의 위대한 성군(聖君) 다윗도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2절) 가고 말았다. 다윗은 자신의 남은 마지막 재임 기
간을 새 왕 솔로몬과 백성들을 준비시키는 일로 보냈다(대상 22:6-19;28:1-21;29:1-22
). 이처럼 다윗은 죽는 그 순간까지 맡은 바 소임을 다하다가 마침내 하나님의 축복하
에서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대상 29:28) 죽어 예루살렘의 다윗 성에
장사되었다. 실로 이스라엘 역사상 다윗은 가장 위대한 왕이요 의로운 왕이었다. 이
런 맥락하에서 다윗이 세운 도시 예루살렘은 '다윗 성'으로 간주되었다(3:1;8:1;느 3:
15). 뿐만 아니라 다윗은 이후 이스라엘 모든 왕들의 의(義)의 척도가 되었다. 하나님
께서 유다의 가증한 죄악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멸하지 않은 것은 바로 다윗을 생각해
기 때문이었다(왕하 8:19). 무엇보다도 다윗은 장차 그의 가계를 통해 오실 메시야의
조상으로서 그 뚜렷한 의의를 지닌다. 그러므로 성경은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지칭했으며(마 1:1), 백성들 역시 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에 입성할 때에 '호산나, 다
윗의 자손이여'라고 다윗을 기렸던 것이다(마 21:9).
ㅇ다윗 성 - 다윗이 여부스족에게서 빼앗은 성채로 시온 산성과 동일시 된다(8:1;삼
하 5:7;댜허 5:2). 그런데 시온 산(Mt, Zion)은 두로포이온 계곡과 기드론 계곡 사이
의 산을 가리킨다. 이곳은 종종 예루살렘과 동일시 되기도 한다(Wycliffe). 유대사가
요세푸스도 그렇게 말하였다. 그러나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예루살렘은 다윗 성이 보다
확장된 것이다(IDB). 그리고 역대 유다 왕들의 무덤은 시온 산 곧 다윗 성에 있었다(
11:43;14:31;15:8). 한편, 다윗의 묘는 느해미야 시대를 거쳐(느 3:15, 16) 후일 사도
시대까지 존재하고 있었다(행 2:29).

11 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십년이라 헤브론에서 칠년을 치리 하였고
예루살렘에서 삼십 삼년을 치리하였더라

ㅇ다윗이...치리하였더라 - 다윗은 그의 나이 30세 때인 B.C. 1010년 경에 헤브론에
서 왕위에 올라 그의 나이 70세 때인 B.C. 970년경까지 40년동안 이스라엘을 치리한
후 밧세바를 통해 낳은 아들 솔로몬에게 왕위를 양위한 후 그의 통치를 마감하였다.
ㅇ헤브론에서 칠 년을 치리하였고 - 다윗의 헤브론 7년 통치는 유다 지파만의 왕으로
서 통치한 기간이다. 이후 다윗은 사울 왕국을 통합하여 명실 공히 이스라엘 전체의
왕으로서 33년간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 한편, 다윗의 헤브론 통치기간
에 대해 역대기는 여기서와 마찬가지로 7년으로 나타내고 있지만(대상 29:27), 사무엘
서에서는 좀더 구체적으로 7년 6개월로 나온다(삼하 5:5).

12 솔로몬이 그 아비 다윗의 위에 앉으니 그 나라가 심히 견고 하니라

ㅇ솔로몬이 그 아비 다윗의 위에 앉으니 - 이는 1:46과 중첩되나 본절은 다윗이 죽고
이제 본격적인 솔로몬의 통치기가 시작됨을 나타낸다. 따라서 솔로몬의 즉위(1:46) 이
후에도 다윗은 죽을 때까지 얼마동안 일종의 섭정 자격으로 통치를 계속했던 것 같다.
한편, 솔로몬의 즉위 연대는 대략 B.C. 970년 경으로 추정된다.
ㅇ그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 - 대체로 이 부분은 앞으로 이어져 나올 내용의 요약으
로 보고 었다(Keil, B hr, Hammond). 그리고 여기에 상응하는 보다 구체적인 설명은
대상 29:23-25 에 나타나고 있다. 한편 이것은 일찍이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삼하 7:12).

13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밧세바가 이르되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뇨 대답하되 화평한 목적이니이다

ㅇ학깃의 아들 아도니야 - 1:5 주석 참조.
ㅇ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 70인역(LXX)에는 아도니야가 절을 하였다
는 말이 추가되어 있다. 한편 1:11의 밧세바는 왕비였으나 지금 그녀는 태후(太后)이
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국에서 태후의 위치는 대단히 유력한 위치였다(J. Hammond).
그러므로 실제 열왕기에는 왕들의 모친들이 자주 언급되고 있다(14:31;15:10,13;왕하
11:1;12:1;14:2;15:2 등). 그중 아하시야의 모친 아달랴의 전횡(專橫)은 특기할 만하
다(왕하 11:1-3). 분명 이런 맥락하에서 아도니야 역시 밧세바를 움직여 자기의 목적
을 달성하려고 밧세바에게 접근한 것이다.
ㅇ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뇨 - 화평에 해당하는 '샬롬'은 보통 인사말로서
주로 사용된다(창 43:27;출 18:7). 그러나 궁금증이나 의혹을 담은 물음에서도 종종
사용된다(삼상 16:4;왕하 5:21;9:11,17). 의당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방문이 의아했을
것이다(Keil, Hammond). 왜냐하면 아도니야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아들 솔로몬과 왕위
를 놓고 다투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러한 아도니야가 이제 다윗이 죽고
난 후 솔로몬이 본격 통치를 시작할 즈음에 갑자기 밧세바를 방문하였던 것이다. 따라
서 밧세바는 경계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러므로 경계심을 품은 질문을 한 것이
다.

14 또 가로되 내가 말씀할 일이 있나이다 밧세바가 가로되 말하라

ㅇ내가 말씀할 일이 있나이다 - 원문은 "내가 말씀을 드려도 괜찮은지?"하는 은근함
이 담긴 의문문의 형태이다. 이처럼 비교적 상세하게 그들의 대화 내용이 보도되는 것
은 그 자리의 분위기를 전달함으로써 다음에 이어지는 내용을 납득시키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도니야에게 호의를 가질 리 만무한 밧세바가 결국 그의 청을 들어주었기
때문이다(18절).

15 저가 가로되 당신도 아시는바여니와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을 삼으려 하였는데 그 왕위가 돌이켜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 니이다

ㅇ왕위는 내 것이었고 - 원문상 '내 것이다'(리)란 말이 앞서 나오기 때문에
문법상 '내 것'이란 말이 강조적 형태를 띠고 있음을 알 수 있다(Burney). 아무튼 아
도니야가 이렇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당시 다윗의 생존한 아들들 중 그가 최연장자
였기 때문이다<1:6>.
ㅇ온 이스리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 이것은 분명히 상황 판단 착오로서, 사
실 자체의 반대되는 곡해이다(1:20,40). 물론 아도니야의 유력한 추종 세력이 있었지
만(1:7,9), 온 이스라엘의 지지가 자신에게 있었다는 주장은 아도니야의 교만한 성품
과 왕위에 대한 미련이 빚은 착각이다<1:5>. 여하튼 교활하게도 아도니야는 본래 왕위
가 자신의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그렇게 되지 못한 사실을 과장하여 상기시킴
으로써, 은근히 밧세바의 마음에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ㅇ돌이켜 - 영역본 KJV는 'turned about'으로 번역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본래의 원
칙에서 벗어난 변칙의 의미를 강하게 내포하고 있는 말이다. 그러므로 비록 아도니야
가 이 말 다음에 그러한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다는 말로 돌리고는 있지만(Keil),
역시 내심으로는 왕위에 대한 애착과 미련을 떨치지 않고 있음과 아울러 솔로몬의 왕
위를 인정치 않고 있음을 보여 준다(J. Hammond, Patterson).

16 이제 내가 한가지 소원을 당신에게 구하오니 내 얼굴을 괄시하지마옵소서 밧세바가
가로되 말하라

ㅇ내 얼굴을 괄시하지 마옵소서 - 원문은 "당신의 얼굴을 돌리지 마소서"(Do not
turn away your face)란 뜻이다. 즉 외면하여 거절하지 말아달라는 간청이다.

17 가로되 청컨대 솔로몬 왕에게 말씀하여 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왕이 당신의 얼굴을 괄시치 아니하리이다

ㅇ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 아도니야의 이 간청은 다만
아비삭의 미모를 탐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대다수의 주석가들은 아도니야의 이러한
요구는 궁극적으로 왕위를 노리는 행동으로 해석한다(Keil, B hr,Smith 등). 왜냐하면
아비삭은 다윗과 동침하지는 않았지만 사실상 그의 첩(후궁)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Patterson). 그런데 파사 제국을 비롯한 고대 근동에서늘 선왕(先王)의 첩을 아내로
삼음으로써 후왕(後王)이 자신의 왕위를 널리 인정받는 관습이 있었다(Herodotus). 이
런 맥락하에서 압살롬도 백성들의 목전에서 다윗의 후궁들과 동침함으로써 왕권 쟁취
를 널리 선언한 바 있있다(삼하 16:20-23). 따라서 비록 밧세바는 이러한 아도니야의
숨은 저의를 정확히 간파하지 못하고 쉽사리 그의 청을 들어 중재자의 자격으로 나섰
지만, 지혜로운 솔로몬은 밧세바의 말을 통해 아도니야의 숨은 저의를 정확히 간파하
고, 이 사건을 계기로 마침내 아도니야를 처형시키고 만다(25절). 그 이유는 솔로몬이
아도니야에게 일찍이 주지시켰던 바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1:52)라는 말대로
아도니야의 아비삭 요구 속에는 다시금 왕위를 노리는 '악한 의도'가 보였기 때문이었
다.

18 밧세바가 가로되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께 말하리라

ㅇ좋다 내가...왕께 말하리라 - 밧세바가 아도니야의 부탁을 흔쾌히 수락한 까닭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대두된다. 즉 밧세바는 별 생각 없이 아도니야의 청
을 들어주었다는 견해, 즉 사사로운 애정 문제가 정치적 연관을 가지리라고는 생각지
못하였기 때문에 선뜻 아도니야의 청을 들어주었다는 해석(Wycliffe, B hr), 왕위
경쟁에서 탈락한 아도니야에 대한 일종의 위로와 동정의 대가로 쉽사리 그의 청을 들
어주었다는 견해 (C. Dentan), 밧세바는 자신이 왕에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존재임을 은근히 과시하기 위해서 아도니야의 청을 수락했다는 견해(J. Hammond) 등이
논의된다. 그러나 아마도 이 모든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19 밧세바가 이에 아도니야를 위하여 말하려고 솔로몬왕에게 이르니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다시 위에 앉고 그 모친을 위하여 자리를 베풀게 하고 그 우편에
앉게 하는지라

ㅇ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 솔로몬이 모친 밧세바를 태후(太后)로 존중하여
최대의 예우와 존경으로 맞이하는 모습이다. 70인역에는 왕이 입맞추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이스라엘 왕국에서 태후의 지위는 매우 유력했던 것 같다(J.Hammond, Exell
). 그런데 성경 기록상 밧세바는 최초의 공식적인 태후인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의
즉위에 큰 공헌을 한 밧세바(1:15-21)에 대향 예우가 이후 왕실의 태후에 대한 예우
확립에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ㅇ그 우편에 앉게 하는지라 - 우편(右便)의 자리는 특히 고대 근동 사회에서 존대와
영광을 나타내는 자리였다(Keil). 그리고 그러한 관례는 성경에서도 그대로 적용되었
다(시 110:1;ak 20:21;25:33;행 7:56;롬 8:34 등). 한편 본문이 이처럼 솔로몬의 극진
한 예절을 소상히 기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즉 솔로몬은 효성이 지극한 왕이었
음을 알리고, 동시에 그러한 효성에도 불구하고 솔로몬이 모친의 청을 단호하게 거
절한 것은 결코 괄시가 아니라 아도니야의 요청이 역모에 관련된 탓임을 나타내려는
이유 때문이었다.

20 밧세바가 이르되 내가 한가지 작은 일로 왕께 구하오니 내 얼굴을 괄시하지 마소서
왕이 대답하되 내 어머니여 구하시옵소서 내가 어머니의 얼굴을 괄시하지 아니하리이다

ㅇ한 가지 작은 일로 - 아도니야의 "한 가지 소원"(16절)이 밧세바에게 이르러 "한
가지 작은 일"로 바뀌어 있다. 이것은 밧세바가 아도니야의 부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고 었었음을 나타낸다. 분명 밧세바는 그러한 부탁을 단순한 '애정 문제'로
생각했던 것 같다(B hr, Hammond). 한편 그런데 이와는 전혀 다른 견해도 있다. 즉 솔
로몬이 아비삭을 좋아했기 때문에 밧세바가 일종이 질투심에서 아도니야의 청을 적극
수락했다는 견해이다(Grove). 이 견해는 아가서의 술람미 여인을 수넴 여자 아비삭과
동일시 가설에 기초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에 그 가설을 입증할 만한 기록이 전
혀 없고, 설령 그렇더라도 밧세바가 질투하거나 반대할 까닭이 없으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제의 핵심은 아도니야의 역모(逆謀) 여부에 주어지고 있으므로(22절),
그러한 견해는 지나친 비약이다.

21 가로되 청컨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ㅇ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 분명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이
부탁을 단순한 남녀간의 애정 문제로 인식하고, 이처럼 솔로몬에게 아도니야의 청을
들어줄 것을 부탁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적어도 밧세바의 생각으로는, 수넴 여자
아비삭은 다윗과 동침하지 않았으므로(1:4), 그녀는 한낱 수종드는 시종에 블과할 뿐
이라고 간주했을 것이기 때문이다(Keil). 여기에 덧붙여 밧세바는 왕위 경쟁에서 실
패한 아도니야에 대한 일종의 동정심도 작용하여 이 문제를 '한 가지 작은 일'로 보았
던 것이다(20절). 그러나 당시 일반 백성들은 분명 아비삭을 다윗의 첩(후궁)으로 인
식하고 있었을 것이다(Patterson). 그리고 당시의 관례상 선왕(先王)의 후궁을 계승하
여 소유한다는 것은 곧 그 왕좌를 계승한다는 하나의 상징적 행위였다(삼하 3:7;12:8;
16:20-22;Herodotus, -68). 그러므로 만일 아도니야의 뜻대로만 된다면, 그는 왕권
회복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 되고(Rawlinson), 또한 아도니야의 추종 세력들은 크게
힘을 얻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삼하 16:21). 이러한 모든 배경하에서 밧세바의 이 말
을 듣는 순간 솔로몬은 이전에 아도니야의 반역죄를 용서해 주면서 한 말, 곧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고 경고했던 일이 떠올랐을 것이다(1:52).

22 솔로몬 왕이 그 모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저는 나의 형이오니 저를 위하여 왕위도 구하옵소서 저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도 위하여 구하옵소서 하고

ㅇ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 처음의 다정했던 분위기가
일순간 깨어지는 순간이다. 이때 솔로몬은 분명히 격노했을 것이다. 현명했던 그는
아도니야의 '한 가지 소원'(16절)의 저변(底邊)에 깔려 있던 역모의 흉계를 곧 간파
했다. 그리고 그 흉계를 모르고 중개 역할을 한 모친에게 노골적으로 불만을 토로했
다.
ㅇ저를 위하여 왕위를 구하옵소서 - 결과적으로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요구한 것이 솔
로몬에게 있어서는 왕위를 요구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따라서 이 부분은 밧세바의 '한
가지 작은 일'이 사실은 아도니야의 역모(逆謀)임을 단정하는 부분이다. 한편 본절 전
체에서는 '위하여'에 해당하는 '로'가 세번 나온다. 그리고 그것이 거듭될 때마
다 새로운 요소가 추가되면서 하찮게 보이던 작은 부탁이 결국은 왕위를 노리는 의도
였음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즉 선왕의 후궁과 다름없는 아비삭을 요구하는 것은
<17절> 원래 장자권을 가졌던 아도니야가<15절> 애초 자신의 1차 거사 세력과
재차 역모를 시도하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는 것이다. 따라서 21절의 밧세바의 말
과 본절의 솔로몬의 대답은 같은 요소들을 포함하지만, 사건을 보는 시각은 엄청난 차
이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ㅇ아비아달과...요압도 위하여 - 여기서 대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 장관 요압의 이름
이 거론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1차 거사 실패 이후(1:7,49)에도 이들 핵심 세력 3인
은 왕권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하고 계속 암중 모색해 왔던 것 같다. 혹자는 생각하
기를, 과거 압살롬에게 다윗의 후궁들을 취하라고 권면한 자가 아히도벧이었던 것처럼
(삼하 16:21), 이번에 아도니야에게 아비삭을 요구하라고 권면한 자가 혹 아비아달 또
는 요압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Theodoret).

23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 즉 그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ㅇ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별울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 이것은 맹세의 일반적 형식
으로서 반드시 맹세의 내용을 지키겠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다. 즉 변경할 수 없는
결심을 나타내는 맹세의 관용적 용법이다(룻 1:!7;삼상 3:17;14:44 등).

24 나를 세워 내 부친 다윗의 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날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ㅇ나를 세워...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 다윗의 맹세(1:29)에서와 마찬
가지로 솔로몬의 일반적인 맹세치 형식에다 자신의 절실한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신앙
고백을 결합시켜 결연히 맹세하고 있다. 특히 여기서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
한 것은 곧 여호와의 살아계심이 불변의 진리인 것처럼 자신의 맹세 내용 역시 결코
변하시 않을 확고 부동한 것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ㅇ허락하신 말씀대로...집을 세우신 - 여기서 '집'에 해당하는 '바이트'는 때
때로 '가족'을 의미하기도 한다(창 50:22;수 2:18;렘 38:17). 따라서 혹자들은 '자손
'을 주신 것으로 보고, 곧 솔로몬은 여기서 자신의 왕위를 이을 아들 르호보암을 낳은
사실을 말한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Keil, Wordswoth). 그러나 솔로몬의 결혼은
이 일 뒤에 있었으므로(3:1). 그러한 견해는 따르기 곤란하다(B hr). 오히려 솔로몬
의 이 말은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과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견고한 왕위
'를 허락해 주셨다는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12절;삼하 7:11-16). 즉 일찍이 하나
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에게 허락하신 말씀대로(삼하 7:11-16;12:@4,25;대상
22:6-10), 왕위가 다윗에 이어 솔로몬에게 주어짐으로써 그 왕위를 더욱 견고케 하셨
다는 뜻이다.

25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매 저가 아도니야를 쳐서 죽였더라

ㅇ브나야를 보내매...쳐서 죽였더라 - 원문상 '브나야의 손으로 쳐서 죽였다'란 뜻이
다. 그런데 이것이 왕의 친위 대장인 브나야 자신이 직접 행동한 것인지 아니면 그렛
사람과 블렛사람<1:38>의 우두머리인 브나야의 감독하에 사형을 집행한 것인지 확실치
않다. 아무튼 당시 왕의 친위(경호) 대장은 사형 집행관의 역할도 겸하였기 때문에,
솔로몬 왕의 명을 받은 브나야의 책임하에 아도니야에 대한 처형이 공식 집행되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한편, 혹자들은 이유야 어떻든 솔로몬이 자신의 이복 형인 아도니야
를 처형시킨 것은 당대히 세속적인 왕권 쟁탈 싸움과 다를 바 없는 비윤리적인 행위라
고 비난한다. 사실 얼핏 보면 솔로몬이 아도니야를 구태여 처형시킨 일은 가혹한 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러나 솔로몬은 혈연 관계를 초월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대권을 위
임받은 신정 왕국의 통치자로서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고, 공의를 구현
하는 데 주력해야만 했다. 따라서 1차 경고(1:52)에도 불구하고 재차 반역을 시도함으
로써, 신정(神政) 왕국 이스라엘의 근간 질서를 문란케 한 아도니야의 죄는 엄중히 다
스려져야 마땅하였다(Keil, Hammond, Patterson). 즉 솔로몬의 아도니야 처형 사건은
단순히 '왕권 도전 세력의 제거'라는 정치적 차원에서 평가될 것이 아니라, '신정 왕
국의 확립 및 강화'라는 신적 공의 실현의 차원에서 평가되어야 한다. 이렇게 볼 때
솔로몬이 자기 형 아도니야를 처형시킨 사건은 불행한 사건이었지만, 그러나 정당했
고, 결과적으로 선을 이루었다.

26 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로되 네가 내 부친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부친이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날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ㅇ아나돗 - 베냐민 지파에 속한 고을로 제사장의 성읍이다(수 21:18;대상 6:60). 예
루살렘에서 동북쪽으로 약 5.6km 정도의 거리로서(Robinson), 선지자 예레미야의 부친
힐기야의 고향이기도 하다(렘 1:1).
ㅇ죽을 자로되...죽이지 아니하노라 - 혹자는 이것을 제사장의 목숨은 왕이 결정하는
법이 아니었기 때문으로 보나, 사울의 예로 미루어 합당치 못하다(삼상 22:!6-19). 따
라서 솔로몬의 이러한 조치는 역시 본문이 알리는대로 부친 다윗을 도왔던 아비아달의
공로가 참작된 것이다. 구체적으로 아비아달의 공로는 다음 두 가지이다. 다윗 앞
에서 여호와의 궤(언약궤 또는 법궤)를 메어 올린 일-제사장 아비아달은 법궤를 오벧
에돔의 집으로부터 예루살렘으로 옮길 때(대상 15:11-15)와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당
하여 피난할 때(삼하 15:24-29) 법궤를 맡아 책임짐으로써 다윗을 도운 적이 있었다.
ㅇ다윗과 환난을 같이 받은 일-제사장 아비아달은 다윗이 사울로부터 박해를 받을 때
(삼상 22:20-23;23:6)와 압살롬의 난을 당하여 도피할 때(삼하 15:24,35) 다윗의 입장
에서 동고 동락했었다.

27 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ㅇ아비아달을 쫓아내어...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 이러한 솔로몬의 조치는 제사장
을 세우고 폐하는 일이 왕에게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아비아달의 경우,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왕에 대항하여 계속 반역을 모의함으로써 스스로 제사장직으
로부터 이탈하였으므로, 솔로몬은 그에 상응하는 합당한 조치를 취했을 뿐이다(B hr).
한편, 추방 당한 이후의 아비아달의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추측컨대, 추방
당할 때의 나이가 80세 가량의 노령이었으므로, 이후 오래 살지 못했으리라 짐작된다
(Keil & Delitsch, op. cit. p.34).
ㅇ엘리의 집...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 - 일찍이 하나님께서 익명의 선지자를 통하여
엘리의 집에 선포한 예언의 구체적인 내용은 삼상 2:27-36에 자세히 나타나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죄악으로 말미암아 엘리 가문의 제사장직이 폐하여질 것이라는 경고
였다. 그런데 여기서 열왕기 저자는 아비아달의 제사장직 파면 사건을 그 예언의 성취
로 보고 있다. 왜냐하면 이로써 아비아달은 이다말과 엘리 계통으로 이어져 내려오던
제사장 중 마지막 제사장이된 셈이기 때문이다. 원래 아론의 네 아들들(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이다말) 중 나답과 아비후는 잘못된 분향 사건으로 인해 일찍 죽었기 때문
에(레 10:1,2),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유력한 제사장 계열로 남는다(레 10장;민 3:4;대
상 24:3). 그런데 아비아달은 엘리 집안소속으로서 이다말 계열에, 사독은 엘르아살
계열에 각각 속한다(IDB;삼상 14:3;22:9;eotkd 24:3). 그러므로 아비아달이 역모죄로
말미암아 솔로몬에 의해 파면된 것은 곧 대제사장직이 엘르아살 계통으로 완전히 일원
화 되었음을 의미한다(Keil;35절;대상 6:1-8). 아울러 다윗 시대의 2명의 대제사장 문
제<1:8>가 해결되었고, 결국 엘리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이 성취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역사의 시종을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섭리 주관해 나가시
는 하나님의 손길을 뚜렷이 감지할 수 있다.

28 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저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뿔을 잡으니 이는
저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좇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좇았음이더라

ㅇ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단 뿔을 잡으니 - 아도니야와 아비아달의 운명을 전
해들은 요압은 다음은 자기 차례일 것을 직감했다(Keil, Patterson, C. Dentan). 그리
고 아마 요압은 아도니야의 전례를 기억하고는 이렇게 단 뿔을 잡았을 것이다(1:50).
그런데 요압의 이러한 행동은 솔로몬에 대해 스스로 떳떳치 못함을 증명한다(Hammond,
B hr). 그러나 그것이 곧 2차 거사의 음모가 있었음을 확증하진 않는다. 오히려 오압
은 이전의 살인 행위와 관련되어 처벌되고 있다(31-33절). 따라서 요압이 제단 뿔을
잡은 행위는 별 효과가 없었다. 왜냐하면 출 21:13, 14의 규례에 의하면, 제단을 도
피처로 삼을 수 있는 자는 오직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에 국한되었기 때문이다. 그러
나 요압은 다윗의 뜻을 정면 거스려 자기의 야욕과 복수심으로 이스라엘의 두 장수 아
브넬과 아마사를 죽였던 것이다(삼하 3:23-27;20:4-10).
ㅇ여호수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 요압이 급히 도망친 '여호와의 장막'은 이전에 아
도니야 역시 도망친 곳으로서, 이곳은 기브온에 있던 성막이 아니라(대하 1:3), 시온
산 위에 있던 장막이다(대하 1:4;Keil).
ㅇ압살롬을 좇지 아니하였으나 - 갈대아역(the Chaldee)을 제외한 대부분의 고대 역
본들(LXX, Vulgate, the Arabic)은 여기서 '압살롬' 대신 '솔로몬'
을 취한다. 그리고 일부 학자들(Thenius, Ewald)도 이러한 입장에 동조잔다. 그러나
여타 히브리어 사본들을 참조할 때, 그리고 문법적으로 고찰해 볼 때 그러한 본문 수
정은 지지를 받지 못한다(Keil,B hr).

29 혹이 솔로몬왕에게 고하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가로되 너는 가서 저를 치라

ㅇ70인역은 본절의 솔로몬의 말 앞에 다음과 같은 말을 첨가하고 있다. 즉 "솔로몬아
사람을 보내어 왜 도망하였느냐고 묻자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피했습니다"
라고 대답하는 내용이 삽입되어 있다. 물론 이것은 70인 역자의 보충적인 설명일 뿐이
지만, 이같은 내용은 요압의 도주가 스스로 제 발 저린 행동이란 사실을 파악케 하는
데 도움을 준다(J. Hammond, B hr).

30 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이르러 저에게 이르되 왕께서 나오라 하시느니라 저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돌아가서 왕께 고하여 가로되 요압이
이리이리 내게 대답하더이다

ㅇ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 브나야가 신성한 성소에서 피 흘리기를 주저하는
것을 보면서 요압이 대답한 이 말의 의미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견해들이 있다. 즉
요압은 솔로몬이 감히 신성한 성소에서 자기를 죽이지는 못할 것으로 기대했을 것이라
는 견해(B hr, Barlow, Keil), 아니면 성소에서 죽음으로써 요압은 솔로몬에게 성
소 모독의 오명을 끼치고 죽으려했다는 견해(M. Henry), 그 밖에 제단 곁에서 죽음
으로써 사후에 어떤 공덕을 얻으려는 일종의 미신적 심리가 작용했다는 견해(J. Hamm-
ond) 등이 있다. 그러나 요압이 이 중 어느 것을 심중에 두었더라도 결정적으로 고려
하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즉 그것은 비록 요압 자신은 과거지사로 잊고 있었을런지
몰라도, 분명 그는 사악한 계교로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자로서, 곧 이웃을 모살한
자라는 점이다(출 21:14). 그리고 이런 살인자는 성소의 보호 규정에 해당되지 않을
뿐 아니라, 성소의 그 어떠한 은총도 전혀 누릴 수 없다는 점이다(신 19:11-13).

31 왕이 이르되 저의 말과 같이 하여 저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부친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ㅇ저를 죽여 묻으라 - 솔로몬이 여기서 특별히 '묻으라'(매장하라)는 말을 강조한 이
유는 아마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신 21:23의 율법에 나타나는 바, 죽은 자를 그
날로 매장하라는 규정에 따르려는 것(J. Hammond), 또는 이전에 세운 요압의 공로
를 예우해 주려는 것(B hr, Keil)으로 이해된다. 여하튼 이것들은 모두 솔로몬이 율법
을 준수할 뿐 아니라 공평무사한 왕임을 강조해 준다.
ㅇ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제하리라 - 민 35:31-34의 율법에는 고의로 살인한
자는 결코 용서치 말것과, 또한 그 죄값은 피를 흘리게 한 자의 피로써만 오직 갚을
수 있다는 율례가 나온다. 그러므로 이런 맥락에서 아브넬과 아마사의 죽음에 책임을
갖고 있는 다윗 왕가는 그들의 피를 흘리게한 요압의 피로써 그 죄값을 속량할 의무가
있었다(삼하 21:1-9;창 4:10;9:6). 따라서 다윗은 임종시 이 사실을 유언으로 남겼고
(5,6절), 솔로몬은 부친의 명을 받들어 요압을 처형함으로써 마침내 무고히 피흘리게
한 죄값을 속량받아, 결국 피흘린 죄를 자신의 집으로부터 제할 수 있었던 것이다.

32 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 머리로 돌려 보내실 것은 저가 자기 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대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대장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부친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ㅇ저가 자기보다 외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 이 때문에 요압은 비록 성소에서
일지라도 죽임을 당하는 것이므로, 솔로몬의 처사는 위법이 아닌 것이다<30절>. 그
런데 여기서 솔로몬이 아브넬과 아마사를 요압보다 의롭고 선한 인물로 보고 있는 까
닭은, 비록 아브넬과 아마사도 다윗을 적대하긴 하였으나(삼하 2:8-29;17:25) 그것은
전쟁시였고 후에는 오히려 화평을 도모했었기 때문이다(삼하 3:21;19:13;20:4). 반면
요압은 평화시에 개인적 복수심과 질투로 다윗 왕을 거스려 그들을 살해했던 것이다(5
절).
ㅇ아브넬과...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 다윗의 군대 장관 요압이 사울의 군대 장
관 아브넬과 압살롬의 군대 장관 아마사를 개인적인 복수심과 질투로 인해 평화시에
무참히 살해한 내용은 각각 삼하 3:22-27과 20:4-12에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
므로 자세한 내용은 해당 부분의 주석을 참조하라.
ㅇ이 일을 내 부친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 즉 요압은 다윗 왕 모르게 독단적으로
아브넬과 아마사를 살해했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비록 요압의 행위가 독단적 행위였더
라도 그 사건들은 다윗에게 좋지 못한 오해가 생기게 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다윗은
아브넬의 장례를 성심껏 치러 준 바가 있었고(삼하 3:31-37), 솔로몬도 여기서 다윗왕
은 전혀 무관한 사실을 다시 한번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를 새삼 변명하는 것으
로 보는 견해(J. Hammond)는 옳지 않다. 왜냐하면 백성들은 이미 그 당시에 다윗 왕은
무관하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기록이 있기 때문이다(삼하 3:37).

33 저희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 자손의 머리로 돌아갈지라도 다윗과 그
자손과 그 집과 그 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ㅇ저희의 피는...요압의 머리와 그 자손의 머리로 - 솔로몬의 이 말은, 아브넬의 살
해소식을 듣고 다윗이 요압에게 내린 저주와 비슷하다(삼하 3:28, 29). 히브리인들은
무고히 흘린 피살자(被殺者)의 피는 그 피값이 속량될 때까지 계속 하나님께 호소한다
고 믿었으며(창 4:10), 반면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게 한 살해자(殺害者)는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당대 또는 자손들에게서라도 반드시 그 피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믿었
다(출 20:5;34:7;레 20:5;26:39;수 2:!9;마 27:24, 25). 이런 점에서, 여기 솔로몬의
말은 오늘날 요압이 죽임당하는 것은 그 자신이 흘리게 한 피의 당연한 대가로서, 이
제 그 피에 대한 책임을 지고 요압 역시 죽임당한다는 의미이다. 한편, 이러한 피의
보응 원리(창 9:6)에 대한 성경적 일례로, 무고히 기브온 사람들의 피를 흘리게 한 사
울의 범죄로 후일 사울의 후손 일곱 명이 처형당함으로써 그 피값을 치른 사건(삼하 2
1:1-9)을 들 수 있다.
ㅇ다윗과 그 자손...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 요압을 처형함으로써 이제 솔로몬은
다윗 집안에 여호와의 평강이 영영히 깃들 것으로 확신한다. 왜냐하면 요압을 처형함
으로써 그동안 다윗 집안에 드리워진 무고한 자의 피흘린 죄책을 말끔히 제거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31절). 이로 보아 우리는 다윗 혹은 솔로몬이 결코 개인적인 복수심
이나 원한으로 요압을 처형한 것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성경적 '죄의 보응 원리'(창 9
:6;출 21:14;레 17:11)에 입각하여 공의롭게 요압을 처형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J. H-
ammond), 즉 다윗 혹은 솔로몬은 무고한 피값을 갚을 의무를 행하지 않으면, 그 책임
이 다윗 왕가로 돌아와 저주가 되는 것으로 믿었다. 반면 그 피흘린 죄책을 제거하면,
다윗 왕가는 여호와의 평강의 상태에 들게 될 것으로 확신했다는 것이다(Wycliffe).
그런데도 일찍이 다윗이 즉시 이를 행하지 못한 것은 당시에는 요압의 세력이 너무 강
했기 때문이다(삼하 3:39). 그러나 이제 솔로몬이 마침내 그 의무를 행한 것이다.

34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저를 쳐 죽이매 저가 거친 땅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ㅇ올라가서 - 요압이 피신한 곳은 언약궤가 있던 시온 산 위의 장막이었으므로(28
절), 솔로몬의 왕궁보다 고지대에 위치했다(Keil). 따라서 이처럼 표기한 것이다.
ㅇ거친 땅 - '유다 광야'를 말한다(Keil, Hammond). 이곳은 베들레헴과 드고아에서
가까운, 돌이 많은 지역이다(수 15:6;삿 1:16). 그런데 여기에 요압 조상들의 무덤이
있었다(B hr).
ㅇ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 - 고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집에 딸린 정원에 무덤을 마
련하기도 했다(Keil). 그런데 이처럼 넓은 정원 딸린 집은 귀족들의 거처였으므로,
집에 장사되는 사람은 주로 귀인(貴人)들에 국한되었다. 성경에는 사무엘이 이처럼 집
을 장지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삼상 25:1). 따라서 비록 요압은 피의 보응 원리에
따라 처형은 당했지만, 생전에 그가 다윗을 위해 세운 많은 전공(戰功)이 참작되어 이
처럼 용사의 죽음으로 예우받은 것 같다(J. Hammond).

35 왕이 이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 장관을 삼고 또 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

ㅇ왕국이 솔로몬의 인물들로 새롭게 체제 개편되었음을 말해 준다. 그 핵심 내용은
군대 장관에 '브나야', 대제사장에 '사독'이 임명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브나야는
시위 대장에서 군대 장관으로 영전된 것이며, 사독은 명실 공히 단독 대제사장으로 지
위 격상된 것이다.
ㅇ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 - 이것은 이제 대제사장직이, 다윗이
부득이 세웠던 이원 체제에서(삼하 8:17) 사독 가문이 주도하는 일원 체제로 바뀌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한편, 이때로부터 세워진 사독 계열의 제사장직 정통성은 후일 선
지자 에스겔에 의해 인정되기도 했는데(겔 44:15,16), 사독 계열의 대제사장직은 B.C.
171년, 안티오쿠스(Antiochus)에 의해 짓밟혀 메넬라우스(Menelaus) 가계로 넘겨질 때
까지 계속 수행되었다. 따라서 쿰란(Qumran)동굴을 거처로 삼았던 엣센파(The Essenes
)는 오직 사독 계열의 대제사장만을 유일한 합법적 대제사장으로 간주하고 이들의 회
복을 기대했었다(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36 왕이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ㅇ시므이 - 이 인물이 앞의 세 사람 (아도니야, 아비아달, 요압)과 같이 솔로몬 왕권
을 위협하는 장애로 여겨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시므이는 사울의 근친으로서 강력
한 반(反) 다윗 인사였고(삼하 16:5-8,13), 또한 소속 지파인 베냐민 지파에 큰 영
향력을 갖고 있는 지도급 인사였기 때문이다(B hr; 삼하 19:17 주석 참조).
ㅇ너는 예루살렘에서...나가지 말라 - 일종의 주거 제한 및 감시를 위한 조치이다.
그리하여 베냐민 지파에 대한 그의 영향력을 차단하여 반란의 기회를 주지 않으려는
것이다(J. Hammoan). 한편 본래 시므이가 살던 '바후림'<8절>은 수도 예루살렘에서 약
9km 가량 떨어진 곳으로, 베냐민 지파의 요충지였다.

37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정녕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ㅇ기드론 사내 - 유다 지파의 베냐민 지파의 영토를 구분짓는 예루살렘 동편의 경계
천(境界川)이다. 우기(雨期)의 폭우 때를 제외하곤 거의 물이 흐르지않는 시내(brook)
, 곧 '와디'(wady)이다(IDB). 이 시내 건너편에 시므이의 본 거주지인 '바후림'이 있
었다(삼하 15:23).
ㅇ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 당시 사형 선고의 일반적 형식이다(B hr;레 20:9;
수 2:19). 그 의미는 '너 자신의 잘못(죄) 때문에 네가 죽는 것이다'란 뜻으로서, 곧
죽음(피흘림)에 대한 원인과 책임이 바로 죽임당하는 자(범죄자) 자신에게 있다는 의
미이다. 따라서 사형 집행자는 그 피흘림과 전혀 무관하다는 의미이다.

38 시므이가 왕께 대답하되 이 말씀이 좋사오니 내 주 왕의 말씀대로 종이
그리하겠나이다 하고 이에 날이 오래도록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ㅇ이 말씀이 좋사오니 - 다윗의 맹세(삼하 19:23)와 관계없는 솔로몬<9절>은 부친의
유언(8, 9절)을 지키되, 그러나 곧장 시므이를 처벌하지 않고 일단 충성을 시험하는
명령(M. Henry)을 내렸다. 그러므로 이를 아는 시므이는 자신의 과거 소행(삼하 16:5-
8)을 생각할 때 솔로몬의 주거 제한 명령을 거절할 수 없었을 것이다.

39 삼년 후에 시므이의 두 종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하여 간지라
혹이 시므이에게 고하여 가로되 당신의 종이 가드에 있나이다

ㅇ삼년 후 - 시므이에 대한 주거 제한 명령(36절)은 분명 솔로몬의 즉위(B.C. 970)초
에 내려진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이때는 솔로몬 즉위 3년째인 B.C.967년 경으로 추
정된다.
ㅇ시므이의 두 종이...도망하여 간지라 - 혹자는 종들이 주인 시므이와 사전에 짜고,
주인을 예루살렘 밖으로 인도하기 위해 도망쳤다고 추측하기도 하나 근거가 없는 무리
한 추측이다. 아마도 두 종은 주인 시므이에게는 주거 제한 명령(혹은 금족령)이 떨어
진 상태이므로, 자신들을 쫓아오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여 도망친 것 갈다. 아무튼 두
종의 도망 사건 배후에는 다윗의 억울함을 신원해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가 작용했다
고 본다(8, 9절;삼하 16:12).
ㅇ가드 - 블레셋의 5대 성읍 중 하나(삼상 21:10)로, 이스라엘과는 때로는 적대적이
고 때로는 친교를 맺는 등 많은 정치적 연관을 갖고 있었딘 블레셋의 주요 성읍이다
(삼상 5:6-10;17:4,52;삼하 15:18-22;대상 18:1). 여호수아 11:22 주석 참조.
ㅇ마아가의 아들 아기스 - '마아가'(Maachah)는 삼상 27:2의 '마옥'(Maoch)과 동일시
되는 인물이다. 그리고 '아기스'(Achish)는 일찍이 사울을 피해 망명한 다윗을 보호해
준 인물이다(Keil). 삼상 21:10;27:2 주석 참조.

40 시므이가 그 종을 찾으려고 일어나 그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가드로 가서
아기스에게 나아가 그 종을 가드에서 데려왔더니

ㅇ그 종을 찾으려고 일어나 - 도망한 노예를 되찾는 것은 주인의 당연한 권리로서,
그 자체로서는 합법적이다(C. Dentan).
ㅇ가드로 가서 - '가드'는 그 위치상 기드론 시내를 건너지 않아도 되는 곳이므로(37
절), 어쩌면 시므이는 별 탈 없을 것이라고 쉽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므이
가 자신의 맹세에 대해 철저한 사람이었다면, 예루살렘을 벗어나 가드까지 먼길을 여
행하기 전에 먼저 왕의 허락을 요청했어야 옳았다(Patterson). 만일 그러한 절차를 밟
았다면, 시므이는 어떠한 방식으로든 도망간 종을 되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시므이는 은혜를 가볍게 여겼고 맹세를 소홀히 함으로써, 스스로 온전히 회개치 못한
심정을 드러내고야 말았다.
ㅇ아기스에게 나아가 - 시므이는 직접 아기스 왕과 교섭하여 종들을 되찾았다. 그런
데 이 모든 행동은 충분히 정치척 의심을 불러일으킬 만한 행동이었다. 즉 다윗이 그
랬던 것처럼 정치적 망령이나 동맹 반란의 시도로 비칠수 있었다(삼상 27:1,2;29:1,2
). 여하튼 시므이는 예루살렘을 나가지 말라는 솔로몬 왕의 명령(36절)을 정면으로 위
배하였다.

41 시므이가 예루살렘에서 부터 가드에 갔다가 돌아온 일을 혹이 솔로몬에게 고한지라

ㅇ혹이 솔로몬에게 고한지라 - 시므이의 움직임은 감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혹
자는 시므이가 밤에 몰래 다녀온 것으로 보나(M. Henry), 문맥은 오히려 그가 태연히
행동했음 보여 준다. 아마 맹세 후 3년이란 오랜 시간이 지난 탓으로 부주의해졌던 것
일 수도 있다(39절). 여하튼 시므이의 가드 행은 솔로몬에게 기다리던 합법적 기회를
주었다<9절>.

42 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로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고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밖으로 나가서 어디든지 가는 날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도 내게 말하기를 내가 들은 말씀이 좋으니이다
하였거늘

ㅇ왕이...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 시므이는 이전에 맺은 계약(36-38절)을 위반한
죄로 고발되고 있다. 그런데 그 계약은 당사자 간의 합의(솔로몬의 명령, 시므이의
동의)와 하나님 앞에서의 맹세로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결국 그 계약은 하나님과
솔로몬 왕과 시므이 사이의 계약으로서, 곧 맹세로 확증된 계약이 된 것이었다. 그러
므로 만일 누구든지 그 계약을 깨뜨린 자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를 면치 못할 것이었
다. 맹세한 대로 만일 시므이가 죽을 때까지 예루살렘에만 머물렀다면, 솔로몬 왕 역
시 부친의 유인(9절)을 따르고 싶어도 어찌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시
므이가 먼저 그 계약을 깨뜨리고 말았다.

43 네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가리켜 한 맹세와 내가 네게 이른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ㅇ맹세와...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 시므이는 다만 왕의 명령 뿐 아니라 여호
와를 가리켜 한 맹세를 어긴 것으로 추궁된다<42절>.

44 왕이 또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무릇 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
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

ㅇ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 바 - 여기서 시므이의 악은 현재의
죄와 이전의 죄가 결합된다. 현재의 죄는 여호와를 가리켜 한 맹세를 파기한 죄요,
또한 왕의 엄명을 어긴 죄이다(43절). 그리고 이전의 죄는 압살롬의 반란시 도피 중인
다윗 왕을 모욕하고 저주한 죄이다(삼하 16:5-8). 그런데 그 죄의 성격에 있어 둘은
일치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했던 것은 왕의 능멸인 동시에 여호
와의 기름 부은 자를 모욕함으로써 하나님께 죄를 지은 것이기 때문이다(삼하 16:12;
삼상 26:9). 그러므로 시므이의 처벌은 다만 지금의 죄 뿐 아니라 이전의 죄에 대한
보응도 되는 것이다.
ㅇ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 - 압살롬의 반란시 도피 중인 다윗
을 향하여 시므이는 혹독한 저주를 퍼부었다.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
거라...너는 피를 흘린 자인 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삼하 16:7, 8). 이때 시므이
의 저주를 듣고 흥분한 아비새는 시므이를 단칼에 쳐죽이려 했다(삼하 16:9). 그러나
다윗은 아비새를 만류하며 "...저로 저주하게 버려 두라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
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고 말한 적이 있
었다(삼하 16:11, 12). 그런데 과연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왼통함을 돌아보시고 시므이
의 악한 행위에 대하여 오늘날 공의롭게 보응하셨다(롬 1:18;살후 1:5-9).

45 그러나 솔로몬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
하고

ㅇ그러나 솔로몬 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위는...견고히 서리라 - 히브리인들은, 저주
는 말 자체의 신비로운 힘 때문에 효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믿었다(IDB). 따라서 일단
다윗을 향해 뱉어진 시므이의 저주(삼하 16:7, 8)를 솔로몬은 어떻게든 해소해야만 했
다. 그런데 마침내 시므이가 하나님과 왕에게 맺은 서약을 스스로 어김으로써, 시므이
의 저주는 자신에게 돌아가게 된 것이다<42, 43절>. 그러므로 다윗 왕가는 시므이의
저주에서 벗어나 복과 번영을 영원토록 누리게 될 것이었다. 한편 이것은 솔로몬이 시
므이를 다른 사람들(아도니야, 아비아달, 요압)과는 다른 방식으로 처벌한 이유 중 하
나이다. 아울러 시므이의 처형을 놓고 솔로몬이 한 이 말은, 시므이에 대한 처형 집행
이 결코 사사로운 구원(舊怨)이나 보복감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 앞에서의
공의로운 법 집행이란 사실을 떳떳이 밝히는 말이라고 볼 수 있다(J. Hammond).

46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하매 저가 나가서 시므이를 쳐서 죽게 한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ㅇ브나야에게 명하매...시므이를 쳐서 죽게 한지라 - 결국 시므이는 그 죄의 대가로
브나야의 손에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사실을 생각해 볼 수 있
다. 이 세상의 모든 죄악된 요소들이 일시적으로는 영원히 존속될 것처럼 보이지
만, 때가 이르면 하나도 남김없이 제거될 것이다(말 4:1;살전 5:3). 무죄한 자를
향한 악인의 정죄와 능욕은 필경 그 자신에게 돌아갈 뿐이다(욥 34:11;시 141:10;잠
5:22).
ㅇ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 - 여기서 '이에'는 12절 이후의 일련의
사건을 지시한다. 한편 성경에서 '손'(야드)은 보통 권세, 힘 등을 나타낼 때
사용된다(IDB;출 13:3;시 78:72;히 10:31). 그러므로 본절은 '모든 장애와 위협을 제
거하고 나니 솔로몬의 권세가 막강한 것이 되었다'는 말이다. 결국 이 말은 12절과 함
께 솔로몬의 왕위 계승과 그의 왕권 확립에 대한 총평인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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