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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창세기

[스크랩] 창세기 (22 : 1~24)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00:03
창세기 22장


1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ㅇ그 일 후에 - 여기서 '일'(다바르)이란 문자적으로 '말'(言語)을
의미한다(11:1). 따라서 지금까지 주어진 축복 혹은 언약의 통괄
지칭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사건'(롯 3:18)이란 뜻
도 지니므로 '그 일 후에'란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과는 다른 새로
운 국면 전개에 대한 머리말로 이해할 수도 있으며 앞의 사건과
어느 정도의 시간적 격차가 있음을 나타내 주는 문장 연결어로도
볼 수 있다. 이때는 이삭이 번제용 나무를 지고 산을 오를 만큼
충분히 자랐을 때이다(6절).
ㅇ시험 하시려고 - 성경에 나타난 시험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
는 사단에게서 기원한 시험으로(엡 2:2), 인간을 타락케 하는 유혹
(temptation)이다(3:1-6). 그리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에 의한 시
험으로 성도의 신앙을 증험(證驗)해 보는 테스트(test))이다(욥
23:10). 여기서 아브라함이 당한 시험은 후자의 경우로 그를 믿음
의 조상으로 연단시키려는 하나님의 뜻에 인간적인 생각을 완전히
굴복시켜야 하는 순종의 시험이었다.
ㅇ그를 부르시되 - 일전에 말씀으로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였던 것과
동일한 방식의 계시이다.
ㅇ아브라함아 하시니 - 명령을 계시하시기 위한 부르심인데 단 한
마디로 이루어져 있는 것은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당시 상황의 긴박
성과 긴장감을 느끼게 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ㅇ내가 여기 있나이다 - 무슨 일이든지 이르는 대로 청종하겠다는
결의에 찬 응답이다(사 6:8). 이는 성도가 항상 준비해  두어야만
하는 대답인데 언제 어느 곳에 처해 있을지라도 자신의 영적 현주
소는 '하나넘 앞'(coram Deo)이란 사실을 잊지 않을 때만이 자연스
레 나올 수 있다.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

ㅇ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 - 3중으로 강조된 점층법적 표현
이다. 즉 (1)하나님의 피조물 중에서도 가장 고귀한 사람 (2) 그중
에서도 100세에 낳은, 이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들이자
(3) 이스마엘이 떠난후 자신에게 넘은 유일한 혈통이며 25년을 기다
려 얻은 '언약의 아들'이란 점을 강조한 말이다. 이 말에는 이삭에 
대한 아브라함의 애정을 최고도로 불러일으켜 절박한 상황을 만들어
놓은 후 그러한 상황하에서도 자신의 명령에 순종토록 하시려는 하나
님의 연단의 의미가 담겨있다.
ㅇ모리아 땅 -  당시 아브라함이 거주하던 브엘세바(21:32-34)에서
사흘 길 거리에 위치한 예루살렘의 산악 지대이다. 한편 '모리아'
(모리야)는 '마르에'와 '예호와'의 합성어로 '여호와께서 보이신 곳'
이란 뜻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미 그곳을 지정하시고 선택하셨음을
의미한다. 즉 하나님께서 이곳을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곳 뿐 아
니라 훗날 솔로몬 성전이 건립될 장소(대하3:1)로 이미 택정해 놓으
셨던 것이다.
ㅇ번제로 드리라 - 인신 제물(人身祭物)로 바치라는 뜻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은 인간의 이성으로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것이나
신앙으로는 받아들여야만 하는 난제(難題)였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1) 이는 피흘리는 것을 싫어하며 생명의 존엄성을 강조하던 하나님의
속성(9:4-6)과 상치되며 (2) 거듭된 약속과 맹세 속에 겨우 태어난
유일한 약속의 씨 이삭을 다시 거두어 가려 하시는 것 역시 하나님의
약속(17:5,6)과는 일견 모순되는 듯하기 때문이다.

3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ㅇ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 명령에 순종하기 위한 서두름이다. 그렇
다고 해서 아브라함이 기쁜 마음으로 명령에 순종했다고 이해할
수는 없다. 그는 밤잠을 못 이루면서 심한 고통과 갈등을 겪였을
것이다. 그러나 신앙의 길은 순종밖에 없고 하나님은 어떠한 식으로
든 약속한 것을 능히 이루어 주실 줄 믿었기에(롬 4:21) 그는 모든
갈등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였을 것이다(막 14:36).
ㅇ번제에 쓸 나무 - 번제(Burnt Sacrifice)는 짐승을 제물로 잡아
죽인 후 각을 떠서 불에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화제(火祭)이다.
따라서 불을 피우는 데 사용될 나무가 필요하다. 그런데 팔레스틴의
구릉 지대엔 대부분 나무들이 없었기에 번제용 나무를 미리 준비해야
했다. 한편 아브라함의 집에는 제물로 사용할 수 있는 각종  짐승과
다른 종들도 있었는데 굳이 하나님께서 이삭을 불에 태워 바치라고
요구하셨으니 이것은 분명히 성경에서 말하는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벧전 4:12)이었음올 알 수 있다.
ㅇ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 모리아 산까지의 삼일길, 즉 약 80Km 
여정(旅程)은 하나님과 인간사이를 이어 주는 헌신과 순종의 길이자
지성소를 향한 속죄의 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이삭을 대신하여 수양이 번제로 드려졌듯이(13절) 훗날 이곳에 세워
진 솔로몬 성전에서도 역시 인간을 대신한 희생 제물이 하나님께
드려졌기 때문이다(대하 5:6).

4 제 삼일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그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ㅇ제 삼일에 - 지시받은 날(1절)로부터는 나흘째이다. 상징적이긴 하
나 이것은 유월절 나흘 전에 미리 양을 준비하라고 지시한 것(출
12:3,6)과 일치한다.
ㅇ곳을 멀리 바라본지라 - 하나님께서 친히 당신이 지정한 곳으로 아
브라함을 인도하셨다. 유대 전승에 의하면 이때 하나님은 햇빛에 영롱
히 반사되는 구름 덩어리를 그곳 모리아 산에 머물게 하심으로 아브
라함이 쉽게 제단 쌓을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5 이에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경배하고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하고

ㅇ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 - 원어 성경에 의하면 이 문장의 주어는
'우리'라는 복수 1인칭이다. 이는 종들을 따돌리기 위한 아브라함
의 거짓말로 이해될 수도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죽은 것과 같은 자신의 몸에서 독자
이삭의 기적적 탄생을 체험한 아브라함(롬 4:18-22)은 비록 지금
이삭이 죽임당하나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 다시 살아날 줄을 믿었
다(히 11:17-19)고 성경이 친히 증거하고 있기 때문이다.

6 아브라함이 이에 번제 나무를 취하여 그 아들 이삭에게 지우고
자기는 불과 칼을 손에 들고 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ㅇ이삭에게 지우고 - 하나님께서 인간들이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에게 옮겨 지우신 대속(代贖)사역(사 53:4-6
;요 19:17)을 연상시켜 주는 장면으로 예표론적 의미를 지닌다.
ㅇ두 사람이 동행하더니 - 아들을 죽음의 현장으로 이끌고 가는
아브라함의 내적 고통은 그를 침묵케 하였을 것이고 평소와 다른
아버지의 표정은 이삭에게 긴장감과 당혹감, 참된 여행 목적에
대한 궁금증 등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7 이삭이 그 아비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내 아버지여 하니
그가 가로되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노라 이삭이 가로되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ㅇ내 아버지여...내 아들아 - 어색한 긴장감과 침묵을 깨는 대화로
부자(父子)간의 끈끈한 정이 넘치는 존경과 애정의 부름과 응답이다.
ㅇ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 이는 (1)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가 이미 모세 시대 이전부터 시작되었음을 증거해 주며 (2) 아
브라함의 경건 생활과 제사 행위를 통해 이삭이 제사를 드리는 절차
와 방법, 필요한 제물에 대하여 소상히 알고 있었음을 나타내 준다.
한편 이 질문은 이러한 사실적  의미 외에도 영적의미를 지니고 있
는데 곧 불확실성의 시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모든 인류가 안타깝게 
부르짖는 공동의 물음이란 점이다. 이스라엘 민족은 수없는 어린양을
죽이고서도 그 '어린양'이 어디에 있는지 해답을 찾지 못했다(사 1:
11-14). 그러나 성경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누구이신지를 분명히  증거해 주고 있는데 곧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요 1:29).

8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하고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ㅇ하나님이...친히 준비하시리라 - 이삭의 질문에  대한 거짓말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사전에 이삭을 대신할 다른 제물을 준비해 놓
으시겠다고 자신에게 말씀하셨다는 뜻도 아니다. 다만 이것은 앞
으로 되어질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온전히 그리고 선하게
이루어질 것임을 믿는 확신에 찬 대답일 뿐이다(히11:17-19). 이러
한 그의 태도는 이전의 몇몇 경솔했던 처신(12:10-20;6:1,2;20:1-
18)을 교훈삼아 아브라함이 보다 현명하고 성숙된 신앙인으로 변화
하였음을 보여 준다.

9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ㅇ이삭을 결박하여 - 이로써 이삭은 아브라함이 자신을 제물로 삼아
제사를 드리려한다는 것을 분명히 깨닫게 되었을 것이다. 따라서 
혈기 왕성한 이삭은 하려고만 하였다면 노쇠한 아버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삭은 아
버지의 뜻에 묵묵히 순종하였는데 아마 아브라함의 행위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작정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이삭의
순종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스스로를 대속 제물로 십자가에 내어 
주기까지 한 그리스도의 순종(빌 2:8)과 속죄 사역(사 53:5)을 예표
한다.

10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ㅇ칼을 잡고 - 아브라함이 할 수 있었던 순종의 마지막 행위이다.
따라서 이제 이삭은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그러므로 구태여 이
삭을 죽이지 않더라도 아브라함의 신앙은 입증되었으며 제사의 정신
도 성취되었다고 할 수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살리신 까닭(12절)
이 바로 여기에 있는데 비록 이삭은 죽지 않았으나 죽었고, 죽었으
나 다시 살아났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의 페러독스(paradox)이다
(마 10:39;16:25;dy 12:15). 한편 여기서도 이삭의 순종은 간과되
어선 안 되는데 아브라함의 칼 앞에서잠잠했던 이삭의 모습은 병정
들의 창칼 앞에서 잠잠했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예표해 준다(마
26:47-56).

11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ㅇ여호와의 사자 -  일전에 하갈에게 현현하셨던 분(16:7)과 동일한 
성육신(成肉身)이전의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ㅇ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 다급한 반복은 사태의 긴박성과 함께
이름이 지니고 있는 의미를 분명히 보여 주기 위함이다. 즉 이삭은 
결코 죽임당해서는 안 되며 아브라함은 약속의 상속자인 이삭을
통해서만 진정 열국의 아비가 될 수 있음을 강조해 준다(17:5).

12 사자가 가라사대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ㅇ네 손을 대지 말라 - '아무 일도 행하지 말라'는 뜻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인정하셨다는 의미로 이제
그에 대한 시험이 끝났음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아브라함의 마음
속에 하나님께 절대 복종하는 믿음만이 가득 차 있는 이상 더 이
상의 시험이 불필요하기 때문이다.
ㅇ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 여호와의 사자가 자신과 하나님을
동일시하고 있음은 그가 제 2위 성자(聖子)하나님이심을 뒷받침해
준다.
ㅇ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 자신이 근본 하나님이면서도 여호와의
사자가 이처럼 하나님을 객관화시켜 이야기 하고있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 같이 구별된 위격(位格)이 있음을 시사해 준다.
ㅇ아노라(야다티) - 이는 체험을 통해 전인격적으로 수용한 지식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이삭 헌납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이 온
전함을 확인하셨다.

13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ㅇ수양(아일) -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절)
는 문장(엘로힘 이르에 로)의 첫 글자를 모아 만든 단어와 우연히
일치하는데 아브라함의 믿음이 실제로 성취되었음을 보여 주는
분명한 물중(物證)이다.
ㅇ수풀(사바크) - 팔레스틴에 흔히 있는 잡목들의 가지가 어지럽게
뒤엉킨 상태를 두고 한말이다(시 74:5).
ㅇ아들을 대신하여 - 이삭을 대신하여 죽은 한 수양 뿐 아니라 역사 
이래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수없이 죽어간 흠없는 짐승들(출 12:5;
29:1레 1:3;민 6:14)은 오로지 흠없는 한 어린양의  영원한 제사, 
즉 십자가 위에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대속 죽음을 계시한다(히
9:11-14;13:11,12).

14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ㅇ여호와 이레 - '여호와께서 돌보신다'는 뜻으로 8절에 의거하여 
명명한 이름이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쓸 것을 미리 아시고
때에 따라 공급해 주시는 분(마 6:25-32)임을 찬양한 기념비적
이름이다.
ㅇ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 문자적인 뜻은 '여호와의 산에서
보게 되리라'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였던 바로
그 때 하나님이 마련해 둔 수양을 보게 되는 축복을 얻었듯이 성도
의 구원은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해 두신 구원 계획에 우리가 믿고
순종할때 비로소 온전히 주어지는 것임을 시사해 준다(요1:10-12).

15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두번째 아브라함을 불러

16 가라사대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ㅇ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 맹세라는 것은 본래 자기보다 높은 자
가 아니면 절대자의 이름을 걸고서 하는 것이 관례이다. 왜냐하면
그래야만 맹세의 권위가 서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개 인간들은 최
종적으로 하나님을 가리켜 맹세하곤 한다(삼상 19:7;왕상 1:30;느
13:25;사 19:18). 그런데 하나님께 있어서는 자신보다 더 높은 이가
없다. 그분만이 절대자이시며 지고자(至高者)이시다. 그러므로 그
분은 자신을 가리켜 맹세할 수 밖에 없는데 자신의 영원한 삶과
존재를 담보로 맹세한 그 약속은 결코 변개(變改)될 수 없으며
(삼상 15:29) 또한 가장 엄숙히 시행될 것이다(히 6:13-17).

17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ㅇ하늘의 별과...같게 하리니 - 지난날에 주셨던 언약(13:16;15:5)의  
유효성을 하나님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재차 보증한 부분이다. 
ㅇ네 씨가...문을 얻으리라 - 문 곧 성문은 성내의 주민들과 성읍의 
안녕(安寧)을 지켜 주는 방어물이니 이러한 문을 얻고 열어 젖힌다는
것은 성읍을 점령하였다는 말과 상통한다. 따라서 본절의 일차적 의미
는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원수를 물리치고 약속된 성읍
가나안을 점령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에는 보다 깊은 영적
의미가 담겨 있는데 곧 장차 메시야를 통하여  그를 믿는 모든 성도
들, 즉 아브라함의 영적 후손들이 복음으로 세상을 정복할 것이라는
뜻이다(갈 3:7-9,14).

18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ㅇ네 씨로 말미암아 - 복의 근원자가 될 특정한 씨, 곧 발꿈치로 사
단의 머리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3:15;갈 3:16).
ㅇ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세계에 복음이
전파되고 이로써 그들이 구원의 축복을 얻게되는 것을 뜻한다.
ㅇ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 육신의 번민과 애정을 극복하고 하나
님을 경외한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종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는
장면이다. 이러한 인정은 누구든지 악에 물들지 아니하며 믿음의 길을
달려간 자이면 다 받을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자신의
영광의 자리에로 초대해 주실 것이다(마 25:21).

19 이에 아브라함이 그 사환에게로 돌아와서 함께 떠나
브엘세바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더라

20 ○이 일 후에 혹이 아브라함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밀가가
그대의 동생 나홀에게 자녀를 낳았다 하였더라

21 그 맏아들은 우스요 우스의 동생은 부스와 아람의 아비
그므엘과

ㅇ우스 - 본절에 언급된 셈의 손자 우스(10:23)와는 다른 인물
이다.
ㅇ아람의 아비 그므엘 - 아람족의 시조(始祖)는 아니고 다만 
그 가계(家系)의 한 조상일 뿐이다.

22 게셋과 하소와 빌다스와 이들랍과 브두엘이라

ㅇ게셋 - 갈대인의 조상이거나 그 후손인 것 같다. 욥의 재산을
약탈한 자들이 바로 이 갈대인이다(욥 1:17).
ㅇ브두엘 - 매우 경건했던 자로 훗날 이삭의 아내가 된 리브가의 
아비이다(24:15,24,27).

23 이 여덟 사람은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의 처 밀가의 소생이며
브두엘은 리브가를 낳았고

ㅇ게셋 - 갈대인의 조상이거나 그 후손인 것 같다. 욥의 재산을
약탈한 자들이 바로 이 갈대인이다(욥 1:17).
ㅇ브두엘 - 매우 경건했던 자로 훗날 이삭의 아내가 된 리브가의 
아비이다(24:15,24,27).

24 나홀의 첩 르우마라 하는 자도 데바와 가함과 다하스와
마아가를 낳았더라

ㅇ마아가 - 마아갈 족속(신 3:14;수 12:5)의 시조(始祖)로 추정
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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