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창세기

[스크랩] 창세기 (19 : 1~38)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00:02
창세기 19장

1 날이 저물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았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리어
절하여

ㅇ저물 때에 - 소돔성의 타락상을 바로 살필 수 있는 최적의
때이다. 왜냐하면 음란과 음란과 방탕, 각종 사악한 죄악들이
활개치는 때는 주로 어두운 밤 시간이기 때문이다(잠 7:7-9).
이런 의미에서 어두움은 성경상 죄악의 신세를 상징한다. 따라서
예수께서 이 세상에 빛으로 오셨때에도 어두움을 사랑한 유대인
들은 그를 영접치 않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요 1:4-11;19:
15). 오늘날 여전히 어두움의 때에 처해있는 우리들(눅 22:53)
역시 불법과 각종 죄악의 올무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항상 
깨어 근신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살전 5:6).
ㅇ두천사 - 타락한 소돔 성을 불로 심판할 목적을 띠고 하나님
께로부터 파송된 '분노의 천사'(삼하 24:16)들이다(18:22).
ㅇ성문에 앉았다가 - 고대 사회에서 성문은 재판장소, 사업
거래소, 고지(告知)) 장소 및 사교생활의 주요 무대였다(신 21:
19;수 20:4;왕하 7:1;느 13:19;시 69:12;잠 1:21). 따라서 성문
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붐볐는데 롯이 그곳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지도층 인사로서 그곳 거민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
음을 추측케 해준다.
ㅇ일어나 영접하고 - 숙부 아브라함에게서 볼 수 있었던 것과
동일한 나그네 대접 행위이다. 이러한 롯의 친절은 소돔 주민
들과는 달리(4-9절) 희미하게나마 아직도 롯에게 남아 있는
경건성의 반영이다(벧후2:7,8). 그러나 그의 결정적인 잘못은 
죄악으로 가득찬 타락의 도시 소돔을 과감히 떠나지 않고 계속
그들 속에 함께 섞여 산 데 있다(살전 5:22).

2 가로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찌기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가로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경야하리라

ㅇ내 주여 - 이 역시 아브라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롯도 천사들
의 신분을 알지 못한 채 단순히 일반적인 존칭어를 사용한 것에
불과하다.
ㅇ거리에서 경야하리라 - '거리'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호브'는
'넓은 공터', 즉 성문 안의 '광장'을 의미한다. 삿 19:15에 의하면 
집으로 초대받지 못한 여행자들은  이러한 성읍의 길거리에서
유숙하곤 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천사들이 롯의 초대에도
불구하고 거리에서 밤을 지새우려 한 까닭은 소돔의 타락상을
구체적으로 시찰하기 위함이었다.

3 롯이 간청하매 그제야 돌이켜서 그 집으로 들어 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

ㅇ식탁(미쉬테) - '솨타'(마시다, 술취하다)에서 온 말로 '마실
것', '향연'의미한다. 이는 여행 끝에  지친 나그네들을 위해
우선적으로 음료수나 포도주를 대접한 것을 나타낸다.

4 그들의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무론 노소하고
사방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ㅇ무론 노소하고 - 이처럼 늙은이나 젊은이나 예외 없이 정염(情
炎)에 사로잡혀 몰려왔다는 사실은 소돔 성읍이 만연된 도덕성의
부패를 확실히 보여 주는 동시에 그 성읍에 대한 심판의 정당성
(13절)을 시사해 준다.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이 저녁에 네게 온 사람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ㅇ저녁에 네게 온사람 - 두 천사는 완전한 사람의 형태로 왔기
때문에(18:2) 그들의 수려하고 아름다운 용모는 금방 소돔 주민
들의 눈에 띠었을 것이다.
ㅇ상관하리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다'는 본래 '경험을 
하여 상대방을 아는 것'을 가리키나 여기서는 성교(性交). 즉 
동성애(同姓愛)를 가리키는 완곡어로 사용되었다(삿 19:22).  남색
(男色)을 가리키는 영어 'sodomy'는 소돔 주민들의 이러한 성적
문란에서 파생된 치욕스런 단어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질서
(2:24)와 인간의 본성에 어긋나는 동성애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으
며(롬 1:26,27;고전 6:9) 모세의 율법(레 20:13)을 통해 이 죄를
엄격히 단죄하고 있다.

6 롯이 문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ㅇ뒤로 문을 닫고 -  손님들을 안전히 보호하기 위한 조처로 몸으로
폭도들을 맞닥뜨린 용기 있는 행동이다. 고대 동방에서는 자기집에
온 손님의 안전을 위해 목슴도 불사한 채 보호하는 것이 관례였다.


7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치 말라

ㅇ롯이 손님을 보호하기 위하여 자신의 딸들의 순결과 명예를 희생
하려 한 것은 소돔 사람들의 막을 수 없는 타락 행위에 대하여그나
마 덜 심각한 죄악으로 대처하려 한 행동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는 분명 죄로써 죄를 막고자 한 세속적 타협안 이었다는 점에서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악과의 타협은 더 큰 악을 초래하여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뿐 하나님 앞에서의 궁극적인 해결을 가져오지는
못한다. 따라서 성도는 다른 것들에 대하여서는 자기를 희생하고
봉사해야 하지만 악에 대하여서는 추호의 양보도 없이 끝까지 대항
해야  한다.

8 내게 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컨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짓도 하지말라

ㅇ남자를 가까이 아니한 두 딸 - 롯의 이 두 딸은 이미 소돔인과 
정혼한 상태에 있는 딸들이다(14절). 따라서 이 둘을 폭도들에게
색욕거리로 내주려 한 롯의 행위는 딸들 뿐 아니라 정혼한 사위들
의 명예까지도 훼손시키는 결례였다.
ㅇ내가...이끌어 내리니 - 족장 시대에 있어서 자녀에 대한 아비의 
부권(父權)을 보여 준다. 당시의 부권은 자식의 생사 여탈권(生死
與奪權)을 쥐고 있을 만큼 막강하였는데 드라빔 사건(31:29,32).
다말 사건(38:24), 정탐꾼 사건(42:37)등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9 그들이 가로되 너는 물러나라 또 가로되 이 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나아와서 그 문을
깨치려 하는지라

10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 들이고 문을 닫으며

ㅇ손을 내밀어 - 안에서 걸어 잠근 문을 열고서는 황급히 집으로
롯을 끌어들인 행동을 의미한다.

11 문밖의 무리로 무론 대소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곤비하였더라

ㅇ눈을 어둡게 하니 - 왕하 6:18에 나온 것과  동일한 초자연적 
역사로 일시적인 시각 장애 현상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께서 조성
하신 착시(錯視)현상으로 인해 멀쩡한 눈을 가지고서도 엉뚱한 곳
을 헤매었던 아람 군대처럼(왕하 6:19,20), 소돔 거민들 역시 시각
장애 현상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에 대하여 랑게(Lange)는 '천계의
신령한 능력과 지상의 마귀적 충동이 정면 충돌한 필연적 결과'였
다고 평하였다. 그리고 아벤 에즈라(Aben Ezra)는 '눈과 아울러
마음까지 어둡게 되었다'고 묘사했다.

12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밖으로 이끌어내라

ㅇ롯에게  이르되 - 천사들이 롯에게 그를 방문한 목적을 일러주고
있다. 그것은 곧 롯에게 임박한 재난을 경고하는 것이자 심판이 임
하기 전에 롯과 그의 가족을 그 심판으로부터 구출하기 위해서였다.
롯은 그때서야 비로소 나그네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천사
들이란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the Codex Samaritanus).
ㅇ자녀나 - 이처럼 천사들이 롯의 딸들 뿐 아니라 아들들에 대하여
서도 언급한 점을 들어 비평학자들은 본장이 서로 다른 두 개의 문서
들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천사들이 롯의 가족 구성
원을 정확히 지적하지 않고 전체적으로 언급한 것일 뿐이다. 본절
에서 롯의 아내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 역시 이와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13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14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ㅇ농담으로 여겼더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하크'는 '비
웃다' (17:17), '희롱하다'(39:17)는 뜻으로, 롯의 사위들이 장인
어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고 그 말을 단지 조소와 건성으로만
대하였음을 나타내 준다 이는 그들에게 구원의 메시지를 들을 줄
아는 영적 귀가 없었던 탓인데(사 6:9,10) 이처럼 생명의 복음은
노아 홍수 때에도(벧후 2:5), 소돔, 고모라 때에도, 그리고
말세에 고통하는때인 오늘날에도(딤후 3:1) 그것은 들을 귀 있는
자들의 것이다(계 2:7, 11,17,29).

15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ㅇ재촉하여 가로되 - 하늘에서는 이미 진노의 유황불이 다 준비된
상태에서, 구원에로의  간곡한 초대이다(벧후 3:7). 그런데 오늘
날의 상황은 이보다 더 긴박하며 이미 심판의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인 지경이니(마 3:10)누구든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반응을
보이지 아니할 때에는 아낌없이 찍히워 심판의 불에 던지움을 당할
것이다.

16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ㅇ롯이 지체하매 - 본래 재물에 욕심이 많았던 그로서는(13:10,11)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재산을 다 놓고 간다는 것이 못내 아쉬워 머뭇
거렸을 것이다. 이러한 그의 태도는 하나님의 명령에 즉각적으로
순종하였던 노아(6:13-22)나 아브라함(12:1-4;22:1-12) 과는 좋은
대조를 이룬다.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사실은 재삼 강조할 필요도 없는 만고의  진리인데, 오늘날
에는 수많은 무리들이 헛된 일에 분요하며 오직 재물 쌓기에만 급급
하니(시 39:6)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따라서 성도들은 그들의 재물
을 쌓아 두어야 할 진정한 창고는 하늘에 있으며(마 6:19-21), 생명
의 말씀에 귀기울이며 순종하는것이 곧 참된 부요의 유일한 길(요
8:51)임을 부지런히 증거해야 할 것이다.
ㅇ손을 잡아 인도하여 - 구원의 길로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의 강권
적인 사역이다. 오늘날 우리들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까닭도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부르심(롬 8:29;엡 1:4)과 죄사함의 은혜(롬 5:21;히
10:14) 때문인데 만일 이러한 은혜가 없었더라면 롯도, 우리도 모두
사단이 잡아당기는 손에 의해 죽음의 수렁으로 던저정을 것이다(벧
전 5:8).
ㅇ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 '인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헴라'는
상대방의 행위에 상관없이 그저 베푸는 '긍휼'이나 '동정'을 의미한
다. 즉 하나님께서는 롯이 노아처럼(6:9) 의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여러 죄악된 요소에도 불구하고(8절) 아브라함을 기억하사(29절
;18:22-33)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것이다.

17 그 사람들이 그들을 밖으로 이끌어낸 후에 이르되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거나 하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함을 면하라

ㅇ돌아보거나 - 없어질 세상 재물이나 명예 등 그 어떤 것에도 미련
을 두지 말라는 경고이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함에 있어서 반드시
요구되는 원리인데. 왜냐하면 한 사람이 진정으로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하듯 우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기 때문이다(마
6:24).
ㅇ들에 머무르거나 -  멸망의 도성으로부터 완전히 떠나라는 명령이
다. 왜냐하면 죄는 전염성이 강하여 철저히 결별하지 않는 한, 한시
라도 틈을 주지 않고 우리를 악에 물들게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우리들에게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고
교훈한다.
ㅇ산으로 도망하여 - 죄악의 도성과 구별되는 새로운 삼을 시작하라
는 의미이다. 향편 여기서 가리키는 '산'은 사해 동편 고지대에 위
치해 있는 '모압산'을 염두에 둔 말일 것이다(Pulipit Commentary).

18 롯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주여 그리 마옵소서

19 종이 주께 은혜를 얻었고 주께서 큰 인자를 내게 베푸사 내
생명을 구원하시오나 내가 도망하여 산까지 갈 수 없나이다
두렵건대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나이다

ㅇ산까지 갈 수없나이다 - 이처럼 롯이 이의를 제기한 까닭에 대하
여선 (1) 멸망의 긴박성에 따른 죽음의 공포를 느꼈기 때문에 높은
산을 오르기에는 역부족인 육체적 연약성 때문에 (2) 소돔 성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버리지 못하였기 때문에 등으로 추측할수
있다.아뭏든 이는 어디를 가든지 함께 동행하시고 보호해 주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못미더워한 일종의 불신 행위인데. 이에 대해서까
지 인내하시고 들어주신 것(21,22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롯에게 
'인자를 더하셨다'(16절)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20 보소서 저 성은 도망하기 가깝고 작기도 하오니 나로 그곳에
도망하게 하소서 이는 작은 성이 아니니이까 내 생명이 보존되리이다

ㅇ작기도 하오니 - 소돔 다섯 성읍(14:2) 중 소알은 가장 작은 성읍
이니 다른 성읍에 비해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조금만 미쳐도 능히
보존되지 않겠느냐는 의미이다. 이는 물론 자신에게 베풀어진 인자
(16절)에 근거한 간청이긴 하지만 (1)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산
으로 피신하지 않고 처음부터 자포 자기하는 나약성을 보인 행위란
점 (2) 하나님께서 제시해주신 구원의 방도(17절)에 대하여 의심하며
(19절) 순종치 않는 행위란 점에서 책망받아 마땅하다.

21 그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이 일에도 네 소원을 들었은즉 너의
말하는 성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ㅇ네 소원을 들었은즉 - (나사티  파네카). '나사'(받아들이다)와
'파님'(얼굴)이 합쳐진 말로, 직역하면 '너의 얼굴을 가납하였은즉'
이란 뜻이다. 그런데 여기서 '얼굴'을 '소원'으로 의역한 까닭은
간절한 소원을 아뢸 때 대개 얼굴을 땅에 대던 히브리인들의 관습에
기인한다. 한편 롯의 소원이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것이었는데도 불구
하고 천사가 이를 대뜸 수락한데 대하여선, 달리 지체할 촌음의 여유
가 없을 만큼 하나님의 심판이 촉급하였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22절).

22 그리로 속히 도망하라 네가 거기 이르기까지는 내가 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하였더라 그러므로 그 성 이름을 소알이라 불렀더라

ㅇ아무 일도 행할 수 없노라 - 본절은 하나님의 심판 목적이 선과 악
을 함께 멸하는데 있지 않고. 악한 것을 멸함으로 선한 것을 보존하는
데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그분께선 의인의 생명 하나를 보호하기
위해 온 천하를 멸하실지라도(6:13-22), 심판을 포기하면 하셨지 결코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지는  않으신다(18:25;계7:3). 그러나
여기서 다시한번 기억할 사실은 롯이 구원을 얻은 것은 아브라함의 
중보 기도(29절)와 하나님의 강권적인 은혜(16절) 때문이었지 결코
자신의 의(義)때문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여기에 구원받은자는 감사
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다.
ㅇ소알 -  '작다'는 뜻이다. 본래 명칭은 '밸라'('삼키다'는 뜻)였으
나 본 사건 이후 그 이름이 바뀌었다.

23 ○롯이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더라

ㅇ해가 돋았더라 - 영적으로 각성치 못한 자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
판의 졸지성(猝地性)을 강조해 준다. 즉 여느 때와 다름없이 찬란한
태양이 떠오르는 그 아침의 하늘에 심판의 불이 예비되어 있으리라고는
소돔 거민 중 그 누구도 생각치 못했던 것이다(14절). 마찬가지로 심
판주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심판하러 재림하실 때에도 역시 이와 같을
것인즉(눅 17:28-30). 우리는 매순간 순간을 영적으로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마 24:43,44). 한편 롯이 소돔을 떠날 때는 동틀 무렵이었
는데(15절) 꾸물거리고서도(16절) 소알에 도착한 때가 해돋는 아침에
불과하니 그 거리가 얼마 만큼 가까운지를(20절) 능히 짐작할 수있다.

24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ㅇ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  일부 학자들의 견해처럼
(Tertullian, Lange, Wordsworth) 심판하시기 위하여 땅에 강림하신
하나님(18:1)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 또는 성자하나님(16:1)과 성부
하나님을 구별짓고 있는 구절로 오해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다. 이는
어디까지나 심판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왔음을 강조하기 위한 반복
어법이다(Calvin). 즉 대명사를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반
복함으로써 강조 효과를 노리는 이러한 표현 방식은 성경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형식이다(1:27;5:1;9;16). 그러므로 공동 번역은 이를
'야훼께서 손수 하늘에서'로  번역하고 있다.
ㅇ유황과불을...내리사 -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원인이 자연적인
화산 폭발이라는 일부 학자(Lynch, Kitto)의 학설을 배격해 주는
구절이다. 설사 그같은 자연 현상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셨을지는
몰라도 어디까지나 두 도성의 멸망 원인과 심판의 주도자는 전적
으로 하나님이셨음을 증거하는 구절이다.

25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ㅇ온 돌 - 이 말은 '요단 평지' 전역을 뜻하지 않고 그 중에서도
소돔과 고모라를 중 심한 반경(半徑)의 특히 기름진 지역을 가리
킨다(13:10). 이는 소돔, 고모라 멸망 이후에도 요단 평지에 위치
한 몇몇 성읍이 여전히 언급되었던 점에 의해  뒷받침된다(왕상
7:46; 대하 4:17).
ㅇ다 엎어 멸하셨더라 - 하나님의 철저하고도 완전한 심판의 결과
이다. 특히 소돔과 고모라 지역은 역청이 많은 곳이었으므로(14:
10) 그곳에 대한 하나님의 불심판은 자연히 지각함몰, 침강 현상
을 초래하여, 오늘날 그곳은  수표면이 지중해 수면보다 약 392Km
가 더 낮은 죽음의 바다를 이루고 있다(12-29절 강해).

26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 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었더라

ㅇ뒤를 돌아본 고로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바트'는 '골똘이
바라보다'는 뜻과 함께 '마음속에 간직하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LXX,  Vulgate). 따라서 이것은 롯의 아내가 단순한 호기심에
의해 뒤돌아본 것이 아니라, 소돔에 있는 재물에 마음을 빼앗겨
돌아본 것임을 잘 나타내 준다. 게다가 그녀는 소돔 성 멸망에 대
한 천사의 고지(告知)조차 못미더 워하였을 것이다.
ㅇ소금기둥 - 문자적 뜻은 '소금으로 된 화석상(化石像)'. 그런데
엇비슷한 위치에 있던 롯의 일행 중 유독 뒤를 돌아본 롯의 아내만 
'소금 기둥이 되었다는 것' (Calvin, Kalisch)은 (1)사건의 초자
연적 성격과 함께 (2)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해당자에게 개별적
으로 엄격히 적용된다는 사실(렘 31:30)을 보여 준다. 한편 오늘
날에도 사해 연변에는 롯의 아내로 전해지고 있는 특정한 소금기
등이 남아 있는데 그것은 우리들이 우리의 마음을 어디로 향하고
살아야 하는지를 생생히 깨우쳐 주는 산 교훈감이라 하겠다(눅 9:
62;빌 3:13,14).

27 아브라함이 그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에
이르러

ㅇ여호와의 앞에 섰던 곳 -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천사를 전송하러
동행했다가 멈춰서 하나님과 대화했던 곳으로 헤브론 북동쪽 언덕
이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중보 기도 드렸던 성읍이 과연 구원받았
는지에 대한 궁금증과 조카 롯에 대한 염려로 인해 날이 밝는 대로
이곳으로 달려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의  동산 같고 비옥
한 애굽 땅과 같았던 성읍과 지경(13:10)이 마치 옹기점 연기같이
불타오르는 장면만을 목격하는 재난의 증인이 되고 말았다.

28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29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때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

ㅇ아브라함을 생각하사 -  비록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하긴 하였지
만  아브라함의 간구가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진노의 심판 중에서도 자신의 자비(16절)와 롯의 최소
한의 믿음(1-8절;벧 2:7.8), 그리고 아브라함의 간절한 중보 기도
(18:23-320에 의거하여, 롯을 구원해 주셨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
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큰데(약 5:16), 특히 하나님께서는 우
리가 이웃을 위해 드리는 도고(禱告)에 더욱더 귀를 기울여주신다
(딤전 2:1-3).

30 ○롯이 소알에 거하기를 두려워하여 두 딸과 함께 소알에서 나와
산에 올라 거하되 그 두 딸과 함께 굴에 거하였더니

ㅇ산에 올라 거하되 - 여기서 산은 천사가 피신하라고 명했었던 바로
그 산, 즉 사해 동쪽에 있는 '모압산'을 가리킨다.

31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우리 아버지는 늙으셨고 이 땅에는
세상의 도리를 좇아 우리의 배필 될 사람이 없으니

ㅇ이 땅에는 - 이 말은 멸망당한 소돔성 일대를 의미하지 결코 온 세
상을 가리키지 않는다.
ㅇ세상의 도리(데레크 콜 하아레츠) - 여기서 '도리'에 해당하는 '데
레크'는 '습관', '행동 양식', '풍습' 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직역하
면 '온 세상의 습속'이 되는데  이는 곧 혼기에  찬 남녀가 짝을 찾아 
가정을 이루는 '혼인 풍속'을 의미한다. 

32 우리가 우리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동침하여 우리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ㅇ술을 아시우고 - 여기서 술은 소알을 떠날 때 갖고 나온 것이거나
(30절), 아니면 그의 두 딸이 준비하거나 만든 것일 것이다.
ㅇ전하자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야'는 '살리다', '유전케 하여
소성시키다'(시 119:25)의미로 종족 보존에 대한 강한 열망을 드러내
준다. 그러나 그 같은 인간 본능과 또한 무자(無子)로 말미암는 수치가
아무리 컸다 하더라도 아비와 상관함으로써 후사를 얻으려한 딸의 계획
은  (1) 인간의 기본 인륜을 저버린 패역이자 (2) 후사를 핑계로 자신의 
정욕을 채우려 한 간계였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

33 그 밤에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큰 딸이 들어가서 그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그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34 이튿날에 큰 딸이 작은 딸에게 이르되 어제밤에는 내가 우리
아버지와 동침하였으니 오늘밤에도 우리가 아버지에게 술을
마시우고 네가 들어가 동침하고 우리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인종을
전하자 하고

35 이 밤에도 그들이 아비에게 술을 마시우고 작은 딸이 일어나
아비와 동침하니라 그러나 아비는 그 딸의 눕고 일어나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더라

ㅇ깨닫지 못하였더라 - 술이나 술을 마시는 것 자체가 죄악은 아니
지만, 자신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술취하는 것은 도덕성과 신앙이
마비될 뿐 아니라 무서운 죄를 깨닫지 못하게 되는 타락의 첩경임을
다시 한번 단적으로 증거해 주고 었다. 물론 그 동안 롯이 소돔 재
앙과 아내를 잃은 데 대한 슬픔을 술로써 잊으려 했을 것이라고는
짐작이 가며, 일말 동정이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술에 만취되어 방
심함으로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게 된데 대한 도덕적 책임은 면할 수 
없다. 실로 노아사건(9:20-27) 이래 술취함은 많은 죄악에로시 첩경
이었다(레10:1-9;사  5:11;잠  20:;합 2:15). 만일 롯이 술취하지
않았더라면 그의  기본적인  덕성상(1-8절;벧후 2:7,8)딸과의 근친
상간이라는 무서운 죄(레 20:11-17)를 범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36 롯의 두 딸이 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

ㅇ아비로 말미암아 잉태하고 - 술취함으로 인한 한순간의 실수가 당대 
뿐 아니라 후대에 이르기까지 두고 두고 롯의 생애 최대의 치욕으로
남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즉 (1) 모압('아버지로 말미암아'란 뜻)과
암몬('네 아비의 아들'이란 뜻)은 근친상간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조상 
롯의 수치를 영원히 후세에 전하고 있으며 (2) 그 결과 롯은 언제, 어
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조차 알려지지 않은 채 성경 역사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신약에 얼핏 기록된(눅 17:28,29,32;벧후 2:7,8) 그에 
관한 이야기는 단지  경고를 하기  위한 의미만 담고 있을 뿐이다.

37 큰 딸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모압이라 하였으니 오늘날 모압
족속의 조상이요

38 작은 딸도 아들을 낳아 이름을 벤암미라 하였으니 오늘날
암몬 족속의 조상이었더라

ㅇ본 기사는 일부 자유주의 학자(De Wette)의 주장처럼 모압과 암몬
족속에 대한 이스라엘 민족의 우월성이나 혹은 증오를 나타내기 위하여
허위로 꾸며낸 기사가 아니라, 사실 그대로의  진실만을 구속사적 측에
서서 진솔히 기록한 기사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도 바로 모압 여인 롯에게서 나왔으며(마 1:5,6), 뿐만 아니라 그의
혈통을 좇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나셨기 때문이다(눅 3:23-31)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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