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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사무엘상

[스크랩] 사무엘상 (2 : 1~36)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4:37
사무엘상 2장
                       

1  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내 마음이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를
인하여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ㅇ한나가 기도하여 가로되 - 한나의 기도는 '내 마음니...'(1절)부터 '...뿔을 높이
시리로다'(10절)까지 이어진다. 진정 '마음이 슬픈 여자'(1:15)의 기도를 기억하사 아
들을 허락하신 여호와께 자기 아들을 영영히 드린루(28절), 한나가 마음속 깊은 곳으
로부터 우러나오는 내적 감정을 토로한 이 기도는 단순한 감사의 찬양을 넘어 예언적
이고 구속사적 성격을 지닌 찬양의 노래요 성령의 감화시였다. 따라서 이 노래는 기도
라고 하기 보다는 차라리 주에 대한 감사의 증거요, 주의 영광의 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Lange). 이러한 점에서 '한나의 기도'-여기서 '기도'(테필라)는
'기도'(prayer)란 뜻외에 '찬가'(hymn),'기원'(supplication)이란 뜻도 지닌다 - 는
다음과 같은 특성을 지닌다. (1)개인적인 은혜의 체험으로부터 시작하여 장차 신적 경
륜하에 진행될 신국적(神國的)인 역사에로 확대 발전된다(Keil). (2)현세적인 은혜와
구원으로부터 시작하여 장차 그리스도의 나라와 교회의 승리를 예언하는 미래적인 영
역에로 확대 발전된다(Pulpit com-mentary). (3) '구약 교회의 송가'라고 불리워지는
'한나의 기도'는 후일 '마리아 찬가' (눅 1:46-55)의 예표가 되며, '사가랴 예언'(눅
1:67-79)의 배경이 된다(E.J. Young). 그리고 구약 시대에 이와 비슷한 감사와 구속의
찬가로서 '모세와 미리암의 노래'(삿 5:1-18, 21)와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삿
5:1-31)가 있다.
ㅇ내 마음...내 뿔..내 입 - 이것은 히브리 문학에서 전형적 수사 기법으로 사용되는
3중 대구법적(三重 對句法的)푸현 방식이다. 한나는 이같은 표현을 통하여 자신에게
베풀어진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벅찬 감격으로 표현하고 있다. 실로 기도의 응답으
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사무엘이 출생함으로써, 그녀의 '마음'은 괴로움
(1:10)과 슬픔(1:15)에서 즐거움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뿔'은 먼지 가운
데서 짓밟힘을 당하던 비참한 처지에서(1:6) 다시 높아지게 되었다. 더구나 그녀의
'입'은 침묵할 수 밖에 없었던 처량한 신세에서(1:13)다시 크게 열려져 자신의 원수에
대하여 여호와의 은예를 마음껏 알릴 수 있게 되었다. 한편 구약 성경에 자주 나오는
'뿔'(케렌)은 이것 달린 동물이 자신의 머리를 높이 쳐들고 힘을 과시하며
자랑스럽게 다니다는 점에서 '힘', '능력', '권위', '자부심', '긍지', 등을 상징한다
(신 33:17 ; 시 75:5 ; 89:17 등). 따라서 무자시(無子時)에 대적 브닌나에 의해 무참
히 이 뿔을 짓밟힌 한나는 이제 하나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그 뿔을 다시 높이 들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혹자(Ewaid)의 생각처럼 여기서 이 뿔은 '교만'을 상징하지는
않는다.
ㅇ이는...주의 구원을 인하여 기뻐함이니이다 - 이 구절은 한나의 기쁨, 곧 앞에서
언급된 3중적 대구법으로 표현된 한나의 벅찬 감격과 희열이 궁극적으로 '주의 구원'
에 근거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구원'(예슈아)은 (1)일차적
으로는 무자시에 당한 온갖 수모와 멸시로부터의 구언이겠지만, (2) 한 걸음 더 나아
가 그 구속적 의의상, 사무엘을 통한 타락한 종교적 상황으로부터의 이스라엘의 구원
이며,(3)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인류의 구원을 가리킨다고 볼 수있다.

2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ㅇ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 본절은 하나님의 속성 중의 하나인 '거
룩'(Holiness)에 대하여 찬송한다. 여기서 '거룩'(코테쉬)은 단순히 도덕
적 .윤리적으로 온전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모든 존재를 초월하는 하나님의 절대 완전
성과 절대 구별성를 가리킨다<레 11:29-47 강해, 성경에 나타난 거룩하신 분으로 들어
서 알았겠지만, 사무엘을 낳게된 기도의 응답 사건을 통하여 이제 하나님의 그 속성을
신앙의 준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욥 42:5).
ㅇ이는 주 밖에 다른이가 없고 -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한나의 두번째 고백은 하나님
의 절대 존재성, 곧'유일성'(唯一性)이다. 그런데 이 유일성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속
성이겠지만(시 86:10), 또한 앞에서 언급된'거룩성'의 근거이기도 하다(R. Payne
Smith). 당시 이방신을 겸하여 섬기는 풍조가 만연해있던 사사 시대 말기의 타락한 상
황 속에서(삿 3:6 ; 6:25), 하나님을 유일하신 분으로 고백한 한나의 신앙은 놀라운
것이었다. 신 4:35 ; 6:4 주석 참조.
ㅇ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한나의 마지막 고백은
하나님의 '신실성'(信實性)이다. 왜냐하면 '반석'(Rock)이라는 단어는 구약 전체를 통
하여, 언제나 변함없이 성도의 구원을 궁극적으로 이루시는 언약의 하나님에 대한 상
징적 명칭으로 쓰여지고 있기 때문이다(신 32:4 ; 시 19:14 ; 합 1:12). 한편 혹자는
'반석'(추르)이라는 단어를 '산'으로 번역함이 더 타당하다고 말한다
(Klein). 그 이유로 그는 (1) '산'이라는 단어가 하나님의 신실성을 더욱 효과적으로
부각시킬 수 있다는 사실과(시 27:5 ; 61:2), (2) 본 히브리어 단어의 어근이라 할 수
있는 우라릿 단어가'산'을 뜻한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그러나 팔레스틴이라는 지리적
배경 하에서 '반석'은 급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언제나 가장 쉽게 피신할 수 있는 도
피처요 안식처라는 점에서 '반석'이란 번역은 적당하다. 신 32:4 주석 참조.

3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찌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ㅇ교만한 말...오만한 말을 너희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 '교만한  말'과 '오만한
말'은 한나의 대적 브난나가 그랬듯이(1:6), 하나님의 심오한 경륜이나 섭리를 무시한
채 자신의 소견대로 남을 함부로 판단하고 멸시하며, 또한 자신을 높이는 말이다. 그
러므로 이러한 말은 마음이 슬픈자의 마음을 더욱 짓밟으며, 가난하고 연약한 자들의
심령에 못을 박을 뿐 아니라, 나아가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고 훼방하는 말이므로 마땅
히 금지되어야 했다. 한편 '교만한 말'과 '오만한 말'은 동의어인데, 여기서 이처럼
두 단어가 반복 사용됨으로써 그 의미가 한결 강조되고 있다.
ㅇ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 이시라 - '지식의 하나님'(엘 데오트)은
하나님의 전지성(全知性)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즉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자연 법칙과
인간 사회의 이성적 법칙, 그리고 그 법칙들에 따라 벌어지는 원인. 과정. 결과까지도
완전히 알고 계시는 전지하신 분임을 시사해 주는 말인 것이다.
ㅇ행동을 달아보시느니라 - 이말은 전지(全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이 행한 어떤 행
동의 내변적 특성까지도 철저히 파악하고 계심을 가리키는 말이다(Klein). 사실 한나
의 대적 브닌나는 한나의 불임(不姙)을 그녀의 사악성 내지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증거
로 오판하여, 그녀를 얕잡아 보고 격동시켰다<1:6, 7>. 또한 브닌나는 자신의 의도대
로 한나가 격동됨을 보고 승리감에 도취되어 교만한 말을 사람들에게 늘어놓았을 것이
다. 그러나 전지하신 하나님께 서는 브닌나의 그러한 사악한 속 마음과 행도의 성격을
파악하셔서, 당신의 공평하고도 의로운 기준에 따라 그녀를 판단하셨을 것이다(잠
16:2 ; 21:2 ; 24:12).

4 용사의 활은 꺾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ㅇ용사의 활은 꺾이고 - 고대 사회에서 '활'은 용사가 자신의 능력을 과사하는 데 반
드시 필요한 도구이자, 또한 무엇보다도 귀중하게 생각하는 신뢰의 대상이다. 그리고
'꺾이다'(하타트)는 '산산히 부서지다', '깨지다'란  뜻으로서, 사람이나
국가가 안팎으로 철저히 붕괴되어 도저히 소생 불가능하게 된 상태를 가리킬 때 사용
한다(렘 50:2 ; 51:56). 따라서 본 구절은 '활을 거머쥔 용사'로 상진된 바'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기 보다는 자기 자신의 힘만을 의지하며, 또한 그러한 자신의 힘을 괴시
하기를 일삼는 교만한 자들이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의 징벌에 따라(3절), 완전히 쇠망
하게 될 것을 가리킨다(시 34:21 ; 37:35, 36 ; 잠 14:32).
ㅇ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 '넘어진 자'는 힘이 없고 연약하여 힘센 악인들
곧 활 가진 용사들에 의해 무참히도 짓밟혔던 자들을 가리킨다(Klein). 그리고 '힘으
로 띠를 띠도다'란 말은 넘어진 자가 이제 일어나 전쟁을 준비하고 출전할 수 있을 만
큼 자신의 힘을 다시 회복한 활기차고 강건한 상태를 가리킨다(엡 6:14). 한편 자유주
의 고등 비평가들(Ewald, Pfeiffer, Eissfeldt등)은 본절과 10절 등을 근거로, 한나의
기도 속에 '국가적인 전쟁 및 승리'의 주제가 부각되어 있다고 주장하면서 '한나의 기
도송'(2:1-10)은 한나보다 훨씬 후대, 곧 왕정 체제하의 시기에 편집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견해는 문서설(文書設)의 입장에서 본 독단적인 견해일 뿐이다.
왜냐하면 본절에서 언급된 바 '용사'와 '넘어진 자'의 개념은 국가적인 강대국과 강자
와 겸손한 약자의 개념일 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10절에서 언급된 '왕'의 개념 역시
반드시 왕정 체제하의  실제적인 어떤 왕을 전제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여기서는 이
스라엘을 의(義)로 통치할 이상적인 왕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러한 왕의 개념은 한나
이전 시대부터 이미 약속되어 있었다(창 17:6 ; 신 17:14-20 ; 삿 8:22 ; Esward J.
Young, Introduchion to Oid Testa-ment).

5 유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ㅇ유족하던 자들은...품을 팔고 - 고대 사회에서 호구지책(瑚口之策)으로 품을 팔며
살아가던 사라들의 비참함이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런데 한때 먹을 것이
많음으로 교만하여 하나님을 찾지 않고 만홀히 여기던 '유족하던 자들'은 때가 되면
하나니의 징벌을 받아 위와 같은 비참한 상황에 처해지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ㅇ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않도다 - 이것은 비록 지금은 가난하지만, 하나님께 신
실한 자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 결코 배고픔을 모르는 유족한 상태에 이를
것임을 가리킨다(눅 16:19-31).
ㅇ전에 잉태치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 이말은 일차적으로 한나 자신이 체험한
기쁜 감격을 노래한 것임이 분명하다. 특별히 여기서 '일곱'은 '신적 충만(완전) 수'
를 상징하는 숫자이니 만큼(Kail), 이는 곧 자녀 출산과 간련해서 한나가 받아 누린
하나님의 최대 축복을 상징한다(룻 4:15). 비록 당시에 한나는 사무엘 한 명만을 자식
으로 낳았지만, 그러나 그 아들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살핌 가운데 낳은 자식이었으므
로, 그 당시 한나는 마치 '일곱' 아들을 낳기라도 한듯이 크게 기뻐하였을 것이다. 결
국 이말은 이전에 한나가 당했던 것처럼 많은 고통과 괴로움을 당하는 슬픈 마음을 가
진 자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위로하시고 큰 기쁨으로 축복해 주실 것을 가리키는  말이
다.
ㅇ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 이것은 분명히 브닌나에 대한 언급일 것이다.
즉 브닌나는 한나가 아들을 낳음에 따라 이제 교만한 말을 더 이상 떠벌일 수 없게 되
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된 것은 실로 그녀가 쇠약해진 것과 다름없었다. 더 나아가
이말은 브닌나와 같이 자신의 자랑거리를 가지고 그렇지 못한 자들을 멸시하고 조롱하
는 모든 악이들은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 자랑하던 것을 상실하게 됨으로써 오
히려 더욱 쇠약하게 될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편, 그런데 많은 성경 주석가들
(Jerome, Augustne, Patrick, Wordswo-rth등)은 본 구절 속에서 영적 의미를 발견하고
자 한다. 즉 브닌나와 한나의 관계를 사도 바울이 구속사적으로 서술한 바 하갈과 사
라의 관계로 이해하여(갈 4:21-31), 곧 브린나는 많은 자녀가 있으나 약속을 받지 못
한 소망없는여인으로, 그리고 한나는 비록 처음 잉태치 못했으나 약속을 받은 소망있
는 여인으로 각각이해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나를 장차 많
은 열매를 맺을 기독 교회의 모형으로 이해하고 있다(J.P. Lange, Commentary on the
Holy Scripture).

6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ㅇ본절은 동의적(同意的) 대구법 방식의 표현이므로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
며"와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 도다" 는 동일한 의미이다. 이같은
수사학적 표현은 동의적 내용을 반복 엄급함으로써 그 의미를 더욱 강조하기 위한 것
이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는 히브리 시(詩)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시 1:1 ; 2:1).따
라서 여기 한나의 기도 속에서 '음부에서...올리기도,라는 언급이 있다고 해서, 한나
가 부활 사상에 대하여 말했다고는 복 수 없다. 왜냐하면 본절을 대구법적 표현으로
보고 그 의미를 고찰할때,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라는 표현
도 그앞부분처럼 단순히 모든 인간의 생사(生死)문제에 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
하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본절을 통하여 한나는 이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 생사 문제를 언급한다. 이로써 그녀는 인간의 모든 것을 주관. 섭리. 역사하
시는 하나님의 주재권(主宰權)사상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신 32:39 ; 시
30:3). 한편 '음부'(스올)는 원래 '구멍'이나'땅 속에 파놓은 지하실'을
가리켰지만, 성경 전반에서는 보통 '죽은 자의 사후(死後)처소'라는 의미로 나타나고
있다(창 37:35 ; 44:31 ; 시 16:10). 자세한 내용은 창 37:35 주석 및 욥 26:5-14강
해, '히브리인들의 음부 개념'을 참조하라.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ㅇ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빈부(貧富)의 문제 및 귀천(貴賤)의 문제 역시 전적으
로 주장하시는 분임을 증거해 준다.

8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핍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드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위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여호와께서 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ㅇ진토...거름더미 - 이 표현들은 극도의 수치와 천대 가운데 있는 비천한 자의 삶의
현장을 상징한다(Keil). 그리고 영적인 의미에서는, 자신을 철저히 부인하고 무가치하
게 여기는 겸허한 상태를 상징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자들을 그러한
비천한 자리에서 일으켜 세워 영화롭게 면류관을 쒸우신다. 그 실례로 우리는 요셉과
모세, 다윗과 다니엘 등을 들 수 있다. 진정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노예 상태의 감옥으
로부터 귀족 상태의 궁궐로 인도하셨고, 또한 보잘 것 없는 목자의 지팡이 대신 영광
스러운 왕의 홀(笏)을 쥐어 주셨던 것이다(Matthew Henry' s Commentary, Vol. p.
286).
ㅇ땅의 기둥들은 여호와의 것이라 - '기둥들'(메추킴)은 여기와 14:4
에 나오는 단어로서 원래 '거대한 바위'나 '바위산'을 뜻한다(Klein). 즉 히브리인들
은 바로 이것을 세상(땅)의 초석(礎石)으로 본 것이다<욥 26:5-14 강해, 히브리인들의
우주관>. 그런데 바로 그 초석을 놓으신 분이 여호와시요, 또 관리하시는 분도 여호와
이시다. 그러므로 이러한 땅의 기둥들이 '여호와의 것이라'는 말은 우주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나타내는 말로, 곧 여호와께서 이세상 만물에 주권적으로 영향
력을 행사하실 수 있는 근거를 확실히 제시한다.
ㅇ세계를 그 위에 세우셨도다 - 이것은 이 세상이 기둥에 받쳐져서, 공간에 달려 지
탱되고 있다고 보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사상과 잘 부합된다(욥 26:7). 결국 위와 같은
사실 또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대해서 당신의 주권을 행사하실 수 있는 근거가 무엇
인지를 명확히 제시한다. 그것은 곧 이 세상의 기초를 놓았을 뿐 아니라, 그 기초 위
에 만물을 조성하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그 만물을 유지. 운행. 섭리하시는 분도 하나
님이시기 때문이다. 후일 사도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 사상을 다음과 같이
설파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롬 11:36).
ㅇ본문에서 한나는 인간사의 흥망성쇠(興亡盛衰)를 홀로 주관  섭리하시는 유일하신
하나님의 거룩성과 전지성을 생생히 증거하고 있다.

9 그가 그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으로 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ㅇ거룩한 자들 - 여기 '거룩한 자들'이란 말은 원문상 '경건한 자'(하
시드)란 뜻의 단수 형태로 나타내는데, 곧 신분상의 의인이 아닌(창 6:9 ;  롬  4:3),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윤리.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경건한 삶의 소유자를 가리킨다(창
6:9 ; 마 1:19). 한편 이 단어는 후일 신구약 중간 시대 때에 '하시딤'이라고 불리던
일단의 '경건한 무리들'에게 적용되었다. 이 '하시딤'들은 헬라의 세속주의 내지 혼합
주의를 배격하면서, 철저하게 자신들의 유대적 전통을 지키려했던 자들로서, 이후 바
리새인들의 뿌리가 되었다(Bruce).
ㅇ발을 지키실 것이요 - 성경적 표현상 '실족' (신 32:35)과 '넘어짐'(시 116:8)은
곧 패배나 차락을 상징하는 말들이다. 따라서 '발을 지킨다'는 것은 모든 패배나 타락
으로부터의 안전한 보호를 뜻한다고 볼 수 있다(Klein).
ㅇ악인으로 - 여기서 '악인'(레솨임)은 신분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모든
면에서 의인을 박해하고 억압하는 사악한 자들을 가리킨다(시 1:1 ; 잠 28:4).
ㅇ흑암 중에서 잠잠케 하시리니 - 이표현은 (1) '흑암'이 성경에서 종종 '음부'(6
절)처럼 죽음 혹은 멸망을 상징할 때 사용되는 단어라는 점에서(시 31:17), 이 말은
악행자들에 대한 죽음 또는 멸망의 심판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10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이 깨어질 것이라 하늘 우뢰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니라

ㅇ여호와를 대적하는 자 - 여기서 '대적하는'(라야브)이란  말은 법정적
(法挺的)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이다. 즉 이 단어는 법정에서 자신의 무죄를 강력히 항
변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 란 말은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그를 향하여 자신의 의(義)를 내세우는 교만한 자를 가리킨다.
ㅇ산산이 께어질 것이라 - 여기서 '깨어질 것 '내리누르다'란 뜻으로서' 교만한 자들
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가리키는 단어이다(단 5:20).
ㅇ하늘 우뢰로...치시리로다 - '우뢰'가 하나님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경우, (1) 당신
의 백성들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현현'(출 19:16-20 ; 시 18:7-15 ; 합 3:4-15)을  상
징하고 (2) 당신의 원수들에 대해서는 '징벌'이나'심판'(77:10 ; 계 11:19)을 상징한
다. 따라서 여기서 '하늘 우뢰 그들을 치시로다'라는 말은 대적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ㅇ땅 끝까지 심판을 베푸시고 - 이것은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성군(다윗)을 통한
모든 이방 세력의 정복을 암시하고(삼하 8장), 궁극적으로는 메시야(그리스도 - '기름
부음 받은자'란 뜻)를 통하여 모든 사단의 세력을 꺾은후 이룩될 하나님 나라의 의
(義)의 통치(고전 15:25)를 가리킨다.
ㅇ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 이것 또한 앞의 문구와 같이 (1) 근시적으로는 하나님
께서 다윗과 같은 의로운 왕을 통하여 이스라엘을 번성케 하실 것과 (2) 원시적으로는
영원한 평강의 왕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시키실 것을 예언적으로 보
여준다(Aalders, Goslinga). 이런한 점에서 '한나의 기도송' 은 메시야적 사상을 담고
있는 복음적인 예언의 노래요, 성령의 감화송이다(Wordswo-rth).
ㅇ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불을 높이시리로다 - 하나님께서 당신이 세우신 왕의 권위
를 높이겠다는 뜻이다. 한편 여기서 '기름 부음을 받은자'(마시아흐)는
왕을 가리킨다(왕상 1:30). 그런데 성경은 왕 이외도 또 다른 기름 부음을 받은 자에
대하여 언급하다. 즉 선지자(오아상 19:16)와 제사장(출 40:13)이 바로 그들인데' 이
들 모두는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실현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 말
미암아 구별되어 임명된 자들이다.따라서 이스라엘의 왕, 선지자, 제사장은 장차 영원
히 기름 부음을 받을 자, 곧 하나님의 뜻을 이 땅 위에서 완전히 실현시키실 '메시야
'(Mes-siah)-헬라어로는 '그리스도' - 이신 예수를 예표하는 인물들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뿔이 높아지기를 바라는 한나의 기도는
한나 자신의 뿔이 높아지기를 바라는 기도<1절>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즉 왕의 강성
은 곧 온 백성의 번영과 안정, 그리고 윤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로 왕이 여호와의
축복을 받을 때 백성들 개개인들도 지속적인 하나님의 은총을 체험케됨을 당연한 이치
인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구속사적으로 곧 하나님 나라의 백성된 성도들은 그리스도
(메시야)안에서 참된 복을 누릴 수 있음을 암시한다.

11 엘가나는 라마의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그 아이는 제사장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기니라

ㅇ그 아이는...여호와를 섬기니라 - '섬기니라'(솨라트)는 특별히 제사장
적 직분과 관련하여 사용되는 단어이다(18절 ; 3:1 ; 출 28:35, 43 ; 29; 30 ; 민
1:50). 그런데 여기의 '섬김'은 결코 일순간적인 의미가 아닌, 엘리의 사망 때까지 혹
은 사무엘의 전생애 기간 동안의 봉사를 가리킨다(Smith, Fay).
ㅇ엘리 앞에서 - '엘리 앞에서'(before Eli, KJV)라는 뜻으로, 곧 '엘리의 감독 하에
서'(under Eli, NLV)라는 의미이다(민 3:6). 그 이유는 당시 실로 성소의 대제사장은
엘리(Eli)로서, 그가 성소의 총책임자였기 때문이다.

12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ㅇ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 '불량자'(不良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베네 벧리야
야알,은 직역하면 '벧리알의 아들들' (sons of Belial, KJV)이란
뜻으로(고후 6:15)' 곧 '사악한 자들'(wicked men, NIV), '나쁜 녀석들'(evil men,
Living Bible), '쓸모없는 자들'(worthless men, RSV)이란 의미이다. 이는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스하스는 사람들 보기에 사악한 자들이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
에도 전적으로 백해 무익(百害無益)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한편 제사장 엘리
는 자신의 판단력 부족으로 경건한 여인 한나를 오히려 불량한 여자로  보았고(1:16),
참으로 '불량한' 자신들의 아들들에 대해서는 관대하였다(29).
ㅇ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 이 말은 (1)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치 아니하며
(2) 따라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3) 그래서 결국 하나님을 업신여기고 대적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욥 18:21 ; 렘 4:22 ; 호 5:4).

13 그 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은 이러하니 곧 아무 사람이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제사장의 사환이 손에 세살 갈고리를 가지고 와서

14 그것으로 남비에나 솥에나 큰 솥에나 가마에 찔러 넣어서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취하되 실로에서 무릇 그곳에 온 이스라엘 사람에게
이같이 할뿐 아니라

ㅇ여기에는 '불량자'였던 엘리의 두 아들이 저질렀던 죄악의 내용이 구체적으로 언급
되고 있다.
ㅇ제사장들이 백성에게 행하는 습관 - 여기서 '습관'(미쉬파트)은 제사
장들에게 보장된 법적 권한이 아니라, 그러한 권리나 권한을 뛰어넘은 월권(越權) 행
위나 태도를 가리킨다(Keil).
ㅇ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삶을 때에 - 여기서 '제사'(peace-offering)에서는 제물
중 기름 부분만을 번제단에 태우고 (레 3:3-5), 살코기 부분은 제사장과 제주(祭主)가
나누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여기의 '고기'는 제사장과 제주에게 나뉘어질 수 있는
부분을 가리킨다. 이것은 삶아진 다음 제사장과 제주에게 각각 모세 율법에서 지정한
몫에 따라 분배되어야 했다<레위기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ㅇ제사장의 사환 - 여기서 '사환'(使喚)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나아르'는
'사환', '종'이란 뜻 이외에도 '소년'(젊은이)이란 뜻으로 봄이 좋다. 그리고 그렇게
볼 때 여기서 '제사장'(하코헨, 문자적으로는 '그 제사장')이 단수로 표
현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두 아들'의 사환이었다면, '제사장'이  복수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17절의 내용은 분명 엘리의 두 아들에 관한 언급인데, 거기에는 같은
단어가 복수화되어 '소년들'로 번역되어 있다.
ㅇ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자기 것으로 취하되 - 두 아들들의 이러한 행동은 제
주(除主)에게 당연히 돌아갈 몫까지 침범하는 분명한 죄악이었다. 레위기 율법에 따르
면 제사장은 제사 후 제물의 가슴과 오른쪽 넓적 다리를(레 7:28-36), 그리고 신명기
율법에 따르면 앞 넓적다리 즉 어깨부분, 부 볼, 그리고 위(胃)를 (신 18:3) 자신들의
몫으로 취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 나머지 부분은 마땅히 제주(除主)에게 돌려져야했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들이 자신에게 할당된 몫만을 정확히 취하지 아니하고,
갈고리에 걸려 나오는 것은 무조건 자신의 몫으로 삼은 것은 결국 제주(除主)의 몫에
대한 침범 행위이며, 나아가 하나님께서 명하사 세우신 율법을 무시하고 범하는 망령
된 짓이었다.
ㅇ실로 - 1:3 주석 참조.

15 기름을 태우기 전에도 제사장의 사환이 와서 제사 드리는 사람에게 이르기를
제사장에게 구워 드릴 고기를 내라 그가 네게 삶은 고기를 원치 아니하고 날것을
원하신다 하다가

ㅇ히브리 원문(Masoretic Text)에는 본절 초두에 그 의미를 강조하는 불변사 '감'
('더구나', '게다가'란 뜻)이 나와 두 아들들의 극한 죄악사을 더욱 분명히 하
고 있다.
ㅇ기름을 태우기 전에도...고기를 내라 - 일반 다른 제물로도 물론이거니와, 화목제
의 희생 제물도 반드시 여호와의 몫인 기름(fat) 부분이 먼저 번제단 위에서 태워져
여호와께 바쳐져야만 했다(레 3:3-5 ; 7:23-25 ; 17:6). 그리고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제사장 자신들의 몫을 취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엘리의 두 아들들의 이러한 행동은
율법의 절차와 규정을 정면 부인하고 무시하는 극악한 법죄 행위였다.
ㅇ그가 네게...원하신다 - 이것은 엘리의 두 아들들이 자신의 아버지 엘리 대제사장
을 빙자하여 자신들의 탐욕을 채웠음을 보여준다.

16 그 사람이 이르기를 반드시 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 네 마음에 원하는대로 취하라
하면 그가 말하기를 아니라 지금 내게 내라 그렇지 아니하면 내가 억지로 빼앗으리라
하였으니

ㅇ그 사람이 이르기를 - 여기서 '그 사람'은 제사를 드리기 위하여 성소에 온 사람을
가리킨다(15절).
ㅇ먼저 기름을 태운 후에...원하는대로 취하라 - 제사장의 횡포에 대하여 오히려 제
사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 먼저 제물이 바쳐져야 한다는 원칙을 설명한다. 아울러 자
신의 몫에 대해서는 포기하겠다는 뜻도 시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은 강제로
고기를 빼앗아 자신의 탐욕을 채운다. 이것은 당시 엘리와 그의 두 아들에 의해 주관
되던 실로 성소 제사의 타락상을 구체적으로 잘 보여 준다. 정녕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서는 새로운 지도자가 간절히 요청되던 시기였다.

17 이 소년들의 죄가 여호와 앞에 심히 큼은 그들이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함이었더라

ㅇ이 소년들 - 여기서 '소년들'(네아림)은 18절의 '어렸을' 때(나아르)와 동일 어근의
단어이다. 따라서 저자가 여기서 '소년들'이란 단어로
엘리의 두 아들을 표기한 까닭은 경건했던 사무엘과 사악했던 두 아들을 뚜렷이 대조
하기 위함이었음이 분명하다(F.R. Fay).
ㅇ멸시함이었더라(니아추). 이 단어는 여기서처럼 강조형으로 쓰일 경우
특히 하나님께 대한 적국적인 훼방 및 경멸 행위를 가리키는 단어이다(민 16:30 ; 신
31:20 ; 삼하 12:14 ; 시 10:3, 13 ; 74:18 ; 사 1:4 ; 5:24). 따라서 엘리의 두 아들
들의 죄악은 단순히 제사 제물을 탐내어 그것을 탈취한 강도 행위일 뿐 아니라, 하나
님과 이스라엘 백성간에 맺은 언약과 구속의 제사 제도를 파괴하고 어지럽힌 신선 모
독죄라는 데 그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O. Von Gerlach).       

18 사무엘이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

ㅇ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 섬겼더라 - 앞서 언급된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의 방자한 행동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저자는 이같은 대조를 통하여 (1)
엘리가정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필연성과 (2) 새로운 지도자 사무엘을 통한 이스라
엘의 영적 회복의 가능성을 시사해 주고 있다. 한편 '에봇'(eEphod)은 일종의 앞치마
로서 소매 부분이 없는 긴 조끼 모양으로 생겼는데, 제일 겉에 입는 공식 제사 복장이
다. 그런데 대제사장자의 '에봇'은 갖가지 아름다운 실로 수 놓아진 화려한것이었으나
(출 28:6-14), 일반 제사장들 및 레위인들은 단순히 흰 색의 '세마포 에봇'(a li-nen
ephod)을 입었다(22:18). 그리고 이러한 세마포 에봇은 주요 종교 행사 때에도 사용되
어진 것 같다(삼하 6:14 ; 대상 15:27). 아무튼 본절은 사무엘이 이제 본격적으로 제
사 직무에 참여하고 있음을 암시해 준다.

19 그 어미가 매년제를 드리러 그 남편과 함께 올라갈 때마다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ㅇ매년제 - 1:21 주석 참조.
ㅇ작은 겉 옷을...주었더니 - 여기의 '겉옷'(coat, KJV ; robe, NTV)만은 이음새 없
이 만든 옷으로서, 다만 머리와 팔 부분만 구멍을 내고 땅에 끌릴 정도로 길게 만든
옷이다. 당시 이러한 '겉옷'(메일)은 왕과 제사장을 비롯, 일반 평민과
여자들까지도 입었던 보편적인 옷이었는데, 그 직위와 성별에 따라 옷의 색깔 및 장식
품 등이 달랐다. 물론 직위가 낮을수록 수수했다. 그리고 제사장들 및 레위인들은 이
겉옷 위에 다가 '에봇' 을 걸쳤다(레 8:7). 한편, 본절을 통하여 우리는 비록 사무엘
이 하나님께 영영히 바쳐졌지만(1:11), 가족들과의 인연까지 완전히 단절되지는 않았
음을 알 수 있다.

20 엘리가 엘가나와 그 아내에게 축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이 여인으로 말미암아
네게 후사를 주사 이가 여호와께 간구하여 얻어 드린 아들을 대신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니 그들이 그 집으로 돌아가매

ㅇ본절에 언급된 한나에 대한 엘리의 축복은 '당신께 은혜  입기를  원한다'(1:18)는
한나의 바램에 대한 엘리의 응답으로 볼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엘리의 응답은 서원을
변치 아니하고 귀한 아들 사무엘을 하나님의 성소에 바친 엘가나와 한나 부부의 신실
성에 감동하여 자발적으로 우러나온 제사장적 축복 행위일 것이다. 또한 엘리의 축복
속에서 언급된 것처럼, 사무엘을 하나님께 바친 한나에게는 사실상 자기와 함께 생활
할 자녀가 반드시 필요하였을 것이다.

21 여호와께서 한나를 권고하사 그로 잉태하여 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아이
사무엘은 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ㅇ권고하사...세 아들과 두 딸을 낳게 하셨고 - 여기서 '권고(眷顧)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파카드'의 기본 개념은 '방문한다'(visit)란 뜻이다. 그런데 이
방문 행위는 어쩌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방문하는 것을 가리키지않고, 늘 방문하기를
염두에 두고 있다가 적당한 때가 이르매 방문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하나님께
서는 사무엘을 바친 한나의 사정을 익히 알고, 방문의 시기를 고려하다가 때마침 제사
장 엘리의 축복 기도에 응해 방문했던 것이다. 그결과 한나는 사무엘 외에 3남 2녀를
더 잉태하게 되었는데, 이는 시로 불임(不姙)과 무자(無子)의 설움을 겪은 한나에게는
더할 나위없는 하나님의 크신 위로요, 풍성한 축복이었다.
ㅇ여호와 앞에서 자라니라 - '여호와 앞에서' 는 곧 '여호와의  면전에서'(in  the
presence of the Lord, NLV, RSV)란 의미로서, 이는 사무엘이 육체적 성장 뿐 아니라
영적 성숙도 아울러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주는 말이다.

22 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그 아들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일과 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였음을 듣고

ㅇ엘리가 매우 늙었더니 - 쿰란 동굴에서 발견된 본서의 주석과 본서 4:15은 이 당시
엘리의 나이가 98세였다고 말한다. 이렇게 많은 나이는 틀림없이 자식에 대한 한 책망
자로서의 부친의 영향력을 상실케 하기에 충분하였을 것이다
ㅇ그 아들들이...행한 모든 일 - 틀림없이 13-17절에 언급되고 있는 신성 모독과 탐
욕죄에 관한 내용의 죄악일 것이다.
ㅇ회막문에서 수종드는 여인 - 여기서 '수종드는 여인'은 당시의 성소 규례를 따라
성소 내에서 일정한 직무를 부여받았던 헌신된 여인들이었음이 틀림없다(출 38:8). 그
러나 성경은 이 여인들이 성소에서 구체적으로 어떠한 일을 하였느지에 대해서는 침묵
한다. 아마도 이 여인들은 자주 반복되는 희생 제사시에 반드시 수반되는 일, 곧 식기
세척 및 그밖의 음식물 장만들의 잡다한 일에 종사하였던 것  같다(R. Payne Smith,
F.R. Fay). 아무튼 이들은 하나님께 특별히 헌신되어 성소의 일에 전념한 여인들이었
음에 틀림없을 것이다.
ㅇ동침하였음을 듣고 - 여기서 '동침하다'에 해당하는 '솨카브는 원래  '
눕다' 혹은 '잠자다'의 뜻이지만, 성경 용례상 대개의 경우 비합법적인 성행위를 표현
할 때 사용되는 완곡한 단어이다(창 19:33 ; 35:22 ; 레 15:33 ; 18:22 ; 20:11).그런
데 여기 이 단어는 강간 행위와는 다르다는 점에서, 홉니와 비니하스의 음행은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과의 합의 하에 이뤄졌음이 분명하다. 이와 같은 일은 일면 이방
민족의 음란한 제의(祭儀) 풍습이 이스라엘 사회, 심지어 제사장 사회에까지 깊숙히
침투해 들어왔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민 25:1-5>. 그런데 이같은  악행은  이스라엘의
바벧론에 포로로 끌려가기까지 계속된 듯하다(왕하 23:7). 아무튼 제사장의 신분으로
서 하나님께 헌신된 여인들을 더럽힌 엘리의 두 아들의 이 사악한 행위는 하나님을 심
히 욕되게 한 것임이 분명했다(25절). 아울러 일반 백성들에게 악영향을 끼쳐 그들로
실족케 한, 실로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었다(24, 25절).

23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이런 일을 하느냐 내가 너희의 악행을 이 모든
백성에게서 듣노라

24 내 아들아 그리 말라 내게 들리는 소문이 좋지 아니하니라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으로 범과케 하는도다

ㅇ엘리는 너무 늙어서(22절) 말로 두 아들을 책망하는 것 외에는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책망 조차도 엄하지 못하고, 우약했다는 데 있다. 따라서
이미 타락과 방종의 길로 치닫고 있던 두 아들의 행위를 저지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
다.
ㅇ너희가...범과케 하는도다 - 신분상으로 영적 지도자들인 홉니와 비느하스의 범죄
행위는(13-16, 22절) 백성들로 하여금 (1) 하나님께 대한 제사를 멸시케 하고(17절),
(2) 하나님의 성소를 가볍게 여기게 하며, (3) 성적으로 타락케 하기에 충분하였다.

25 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하되 그들이 그 아비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ㅇ사람이 사람에게 범죄하면 하나님이 판결하시려니와 - 이것은 인간과 인간 사이 다
툼이나 범죄가 발생했을 때 만물의 통치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중재자로 나서셔서 그
문제를 마무리 하실 수 있는 권리나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즉 인간에 대한 인간의 범
죄는 중재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그 어떤 회개할 기회가 충분히  주어진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ㅇ사람이 여호와께 범죄하면 누가 위하여 간구하겠느냐 -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인간
의 범죄에 대해서는 어느 누구도 어찌할 권리나 능력이 없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하나
님께서 관련된 문제에 중재자로 나서서 그 문재를 해결할 자는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범죄 행위에는 오직 하나님의 심판만이 있을 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두
아들에 대한 엘리의 책망 요지는 (1) 그들의 죄가 신성 모독죄에 해당되는 중대한 대
신(對神) 범죄 행위라는 것이고 (2) 따라서 즉시 회개하지 않으면 반드시 하나님의 무
서운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ㅇ이는 여호와께서...죽이기로 뜻하셨음이었더라 - 이말은 여호와께서 엘리의 두 아
들을 죽이시기 위하여 그들로부터 회개할 가능성마저 고의적으로 배제 시켰다는 뜻이
아니다 이 말은 엘리의 두 아들의 나쁜 여론, 영적 지도자로서의 신분 등에도 불구하
고 이미 그 마음이 완악해져 타락과 방종에 눈멀게 되자, 여호와께서 그들의 그러한
마음을 방치해 두셨고, 따라서 이제 그들에게는 필연적으로 여호와의 무서운 심판만이
있을 뿐임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역설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더이상 개전(改悛)의
정을 보이지 않는 엘리의 두 아들을 죽이시기 위하여 그들을 완악케 하셨다고 볼 수도
있는 것이다. 출 9:12 주석 참조.

26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ㅇ사무엘이 점점 자라매...은총을 더욱 받더라 - 여기서 본서 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완악케 되는 징벌을 받은 엘리의 두 아들(25절)과 하나님에 의해 택함 받은 사무엘을
예리하게 대조시켜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와 인정받은 자의 특징을 날카롭게 부각시키
고 있다. 그것은 곧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는 하나님과 사람들로 부터 미움과 멸시를
받는다는 사실이다(눅 2:52).

27 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에 너희 조상의 집이
애굽에서 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내가 그들에게 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ㅇ하나님의 사람이 엘리에게 와서 - '하나님의 사람'(이쉬 엘로
힘)이란 칭호는 사사기, 사무엘소, 열왕기서 등에서 약 40회 가량 나오는데, 대부분 '
선지자'란 말과 동격으로 사용되었다(9:6 ; 삿 13:6 ; 왕상 12:22; 13:1-14 ; 왕하
1:9-13 ; 5:8등). 한편 사악한 엘리의 두 아들과 사무엘을 두 차례 대조시켰던(11,
12, 25, 26절) 저자는 이제 '익명의 한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의
신진 대사를 의한 서막(序幕)을 본격적으로 연다.
ㅇ너희 조상의 집 - 이것은 엘리 가문이 속한 레위 지파, 그중에서도 특히 제사장의
직분을 위임받은 아론의 가문을 가리킨다고 복 수 있다.
ㅇ바로의 집에 속하였을 때에 - 즉 엘리의 뿌리요 조상 가문인 아론의 집 바로의
통치 하에서 노예 노릇을 하고 있었던 비참한 때를 가리킨다.
ㅇ나타나지 아니하였느냐 - 익명의 선지자는 엘리 가정의 죄악을 책망하고 심판을 선
언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셨던 크신 은혜를 먼저 언급한다(신 5:6).
즉 그 은혜는 (1) 엘리 가문의 뿌리인 아론의 일가가 애굽의 바로 치하에서 고통을 당
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신 사실이며(출 4:27 ; 7:8), (2) 또한 하
나님께서 그들을 다른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구출하셨을 뿐만 아니라(출 12:41, 42),
특별히 모세와 더불어 유원절 규례를 준비케 하심으로(출 12:1-28), 장차 제사장 가문
으로 삼고자 하셨다는 점이다(Keil, Fay).

28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내가 그를 택하여 나의 제사장을 삼아 그로 내 단에
올라 분향하며 내 앞에서 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이스라엘 자손의 드리는
모든 화제를 내가 네 조상의 집에 주지 아니하였느냐

ㅇ모든 지파 중에서...택하여 - 이 선택은 특별히 아론의 일가에게만 베풀어진 하나
님의 주권적인 귀한 은혜였다. 즉 하나님께서는 엘리의 조상 가문인 아론의 가문 위에
만 제사장의 직분을 맡기신 것이다(출 28, 29장).
ㅇ에봇을 입게 하지 아니하였으냐 - 여기의 '에봇'(ephod)은 18절에서 언급된 일반
에봇과는 다르다. 이것은 가슴에 하나님의 뜻을 물을 수 있는 우림과 둠밈이 들어 있
을 뿐 아니라, 각종 화려한 색상의 실로 규례를 따라 엄격히 만들어진 대제사장만의
특별한 의복인 것이다. 출 28:6-14 뿐 주석을 참조하라.
ㅇ모든 화제를...주지 아니하였느냐 - 이 말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각종 제사 제물 중
에서 제사 후 제사장들에게 돌아갔던 일정량의 분깃(응식)을 가리킨다<레위기 서론,
구약 제사의 종류와 의미>. 이외에도 제사장들은 레위인들에게 돌려진 백성들의 십일
조 중의 십일조를 받았다(민 18:26-29).이같은 각종 혜택에 의하여 제사장 가문은 모
두 유족했고 부유했다.

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ㅇ너희는 어찌하여...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 여기서 '너희'는 엘리의 두 아들 뿐만
아니라 엘리 제사장까지도 가리킨다. 그리고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는 희생 제물의
기름이 태워지기도 전, 곧 그것이 하나님께 바쳐지기도 전에 엘리의 두 아들이 먼저
그 제물을 가로챘던 사실을 가리킨다<2:12-17>. 실로 이같은 범죄 행위는 하나님께서
명하사 세우신 구속의 제사 제도를 업신여기고 짓밟는 사악한 범죄 행위였다. 한편 이
같은 범죄는 비록 엘리의 두 아들들에 의해서 이뤄졌을지라도, 대제사장이요, 부친인
엘리는 마땅히 여호와의 전(殿)과 거기서 시행되는 제사를 거룩히 보존 유지시켜야 할
막중한 책임이 있었다. 그런데도 아들의 악행을 방관했다는 점에서, 엘리 역시 하나님
께 대해 아들과 같은 범죄자인 것이다.
ㅇ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 대제사장으로서 엘리(Eli)는 그 누구보다도 신
본주의적 삶을 살아야 했고,또한 성소의 규례를 유지시키는데 그 누구보다도 거룩한
열정으로 불타올라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신성한 제사 제도를 짓
밟는 두 아들의 행위에 대해 점잖게 타일렀을 뿐(24절), 별다른 제재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는 분명 엘리가 대제사장으로서 직무를 유기했음을 의미하며, 또한 인본주
의적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ㅇ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 두 아들의 범죄 행위에 엘리가 결부되어
있듯이, 그들이 저지룬 죄악도 이중저(二重的)이다. 즉 (1) 응당 하나님의 몫인 가장
좋은 것을 자신들이 취함으로써,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대신(對神) 범죄를 저질렀
을 뿐 아니라 (2) 가장 좋은 것으로 여호와께 드린 백성들의 정성어린 마음까지 강탈
함으로써 대인(對人) 범죄까지 저질렀던 것이다.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ㅇ전에 네 집과...영영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 이것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론의 가
문만으로 특별히 제사장이 될 수 있도록 규정하시면서 그들에게 맹세하셨던 내용을 가
리킨다(출 27:21 ; 29:9). 그리고 이 맹세는 후일 아론 가문의 후손인 비느하스에게
다시 갱신되었다(민 25:12, 13). 그런데 여기의 '네 집'은 엘리의 가문을 가리킨다.
물론 하나님께서 엘리의 가문에게 직접 위와 감은 맹세를 하지는 않으셨다. 그러나 엘
리의 가문도 아론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아론 가문 전체에 대해 하나님께서 하신 맹세
는 마치 그 후손들인 엘리의 가문에게 하신 맹세와 같은 의미를 지닌다.
ㅇ결단코 그렇게 아니하리라 - 이것은 (1) 좁은 의미로는 하나님께서 엘리 가문의 제
사장 직분을 박탈하실 것이며 (2) 넓은 의미로는 하나님께서 엘리 가문의 제사장 직분
의 권위를 약화시키겠다는 뜻이다. 그런데 위와 같은 하나님의 징계는 첫째, 일차적으
로는 죄악과 보응이라는 측면에서 하나님의 진노에 따른 심판적 의미가 있다. 둘째,
이차적으로는 아론의 반차가 아니라,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는 영원한 대제사장 그리스
도를 세우기 위한 구서속사적 의미(히 7:17)가 있다. 한편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또 하나의 문제는 '과연 하나님의 약속은 철회될 수 있는 가' 하는 문제이다. 물론 구
속사적으로 진행되어가는 하나님의 신적 경륜과 섭리에는 하등의 변화가 철회가 없다.
그러나 그러한 경륜이나 목적을 향해 역사가 점진적으로 진행되어 가는 과정에서 구체
적으로 개인과 국민에게 있어서는 그들의 순종과 불순종, 그리고 조건과 상황 등에 따
라 하나님의 뜻이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본절도 바로 그러한 측면에서 이
해하여야 한다.
ㅇ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
기리라 - 익명의 선지자에 의해 엘리 가정에 선포된 여호와의 이 말씀은 모든 시대를
막론하고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하는 모든 자들에게 공히 적용되는 대
명제이다(벧전 5:1-10). 즉 생사 화복과 빈부 귀천의 유일한 근거가 오직 하나님인 줄
바로 깨닫고 모든 일을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행할 때, 하나님께서도 역시 그를 높이
드사 영화롭게 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 교만하여 하나님을 잊고 그분의 말씀을 멸시
할 때, 하나님께서도 역시 그를 끌어내리사 만인의 경멸거리로 만드실 것이다. 바로
이러한 원리가 조만간 엘리 가정에 그대로 적용되어 나타났으니, 곧 제사 규례를 어기
고 성소를 더럽힘으로써 하나님을 멸시한 엘리 가정은 역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받아 이스라엘 중에 경멸거리가 되었으나, 반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말씀을 신실히
좇음으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긴 사무엘은 역시 하나님의 은총에 의해 높이 들림받았던
것이다.

31 보라 내가 네 팔과 네 조상의 집 팔을 끊어 네 집에 노인이 하나도 없게 하는 날이
이를찌라

ㅇ팔을끊어 - 성경의 수사학적 용례상 '팔'은 주로 '힘'또는 '권세'를 의미하는 은유
적 표현이다(욥 22:9 ; 시 10:15 ; 37:17). 그러므로 본절은 엘리 집안의 권세를 꺾고
빼앗는다는 뜻이다. 이것은 엘리의 두 아들이 권세를 남용한 대가이다(Matthew
Henry).
ㅇ노인이 하나도 없게 - 고대 가부장적 제도 하에서 한 집안의 노인들은 그 집안(가
문)을 떠받쳐 주는 힘이요 권세였다(Bottcher). 그러나 가문의 팔이 꺽이운 엘리 집안
에는 당연히 노인이 없을 것이었다. 결국 이 말은 엘리 가문의 후손들은 조사(早死)하
리라는 심판이었다.
ㅇ날이 이를지라 - 히브리 원문(Masoretic Text)에는 '보라'란 말과 연결되어, 곧
'힌네 야밈 바임'( Behold ! the days come, KJV)으로 되
어 있다. 즉 이 말은 '미래의 일'을 예언하거나 선포할 때 선지자들에 의해 상용되는
관용구이다(왕하 20:17 ; 사 39:6 ; ;렘 7:32 ; 암 4:2 ; 8:11 ; 9:13 등).

32 이스라엘에게 모든 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네 집에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

ㅇ복을 베푸는 중에 너는 내 처소의 환난을 볼 것이요 - 본절은 해석상 어려움이 있
는 구절이다. 왜냐하면 여기서 '내 처소의 환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차르 마온
은 직역하면 단순히 '처소의 환난'(distetess in hadi-tation)이란 의미
로, 그 '처소' 가 엘리 집안의 처소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처소(성소)인지 확실치 않
기 때문이다. 더구나 '환난'으로 번역된 '차르'는'환난'(distress)이나 '고통'
(affliction)이란 뜻 이외에 '적'(enemy)또는 '원수'(foe)란 의미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본절은 크게 두 가지 해석으로 이해된다. (1) 엘리 이후 이스라엘
이 사무엘이 사무엘, 사울, 다윗, 솔로몬의 통치로 이어지면서 날로 번영해 가는 중에
서도 엘리 집안은 조사(早死), 학살, 폐위 등 비극적인 각종 재난을 당할 것이라는 의
미(Pulpit Co-mmentary, RSV, Living Bible), (2) 엘리 시대로 부터 하나님의 처소,
곧 성소가 블레셋을 비롯한 각종 대적들로  말미암아 피폐해잘 것이라는 의미(Keil 
Delitzch, Lange, KJV, NLV)등이다. 아무튼 본절은 엘리와 그의 두 아들의 범죄로 말
미암아 그들의 모든 후손, 나아가 하나님의 성소까지 각종 재난에 직면할 것이라는 무
서운 경고임에는 틀림없다.

33 내 단에서 내가 끊어 버리지 아니할 너의 사람이 네 눈을 쇠잔케 하고 네 마음을
슬프게 할 것이요 네 집에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

ㅇ내 단에서...슬프게 할 것이요 - 이 말은 하나님께서 엘리 집안의 후손들로 제사장
의 직분은 계속 수행하게 하되, 그 세력이 하도 미약하고 비참하여 보는 자로 하여금
슬픈 마음이 들 정도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 구체적인 예가 36절에 언급되어 있
다.
ㅇ젊어서 죽으리라 - 한 예언 속에 조사(早死)에 관한 저주가 3중 반복되어 있다. 즉
"노인이 하나도 업게"(31절), "영영토록 노인이 없을 것이며"(32절), "생산하는 모든
자가 젊어서 죽으리라"(33절)등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한 저주는 실제로 실로(4:11,
20, 21)와 놉(22:11-19)에서 일어났다(Pulpit Commentary). 뿐만 아니라 유대 전승에
의하면, 후일 제사장 가문 중 18세 이상을 살지 못하는 조사(早死)의 집안이 있었는
데, 확인 결과 엘리 가문의 후손들이었다고 전해진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p.293).

34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날에 죽으리니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ㅇ본문은 엘리의 가문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결국 멸절하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이
예언은 (1)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전쟁터에서 한날에 죽임 당한 것을 표
징으로(4:11) (2) 엘리의 후손들인(14:3, 8 ; 22:9) 놉지역의 제사장들이 사울 왕의
사주를 받은 에돔인 도엑에 의하여 대량 학살되고(22:11-23) (#) 또한 엘리 집안의 대
제사장 아비아달이 솔로몬에 의하여 제사장직에서 파면됨으로써 (왕상 2:27, 35) 성
취되었다.
그 둘의 당할 그 일이 네게 표징이 되리라 - 여기서 '표징'(오트)은 곧
'표시'(mark), '증거(evdence), '암시'(sign), '징조' (omen)등의 뜻이다. 그가데 엘
리 생전에 닥칠 두 아들의 동시적 죽음은 익명의 선지자가 선포한 심판이 하나도 어김
없이 그대로 성취될것을 보여 주는 뚜렷한 표징이 될 것이었다. 그리고 이 예언대로
이 표징은 실제 블레셋과의 전투 중 그대로 일어나고 말았다(4/:11).

35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그 사람은 내 마음, 내 뜻대로 행할
것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ㅇ내가...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니니 - 이것은 사무엘, 사독 그리스도에 대한 삼중
적인 예언으로 볼 수 있다. 첫째로, 이 예언이 사무엘(Samuel)에 대한 것임이 확실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비록 그가 제사장 및 제사장 가문의 후손은 아니었디만, 제
사장 및 제사의 권의를 회복했고(16:22) (2) 또한 실제로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기도
했으며(7:9,17) (3) 그리고 본절의 예언이 끝남과 동시에 새로이 사무엘이 등장한다는
점(3:1이하) 등이다(Theodoret,the Rad-bins). 둘째로, 이 예언이 사독(Zadok)에게 해
당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1) 그는 정통적인 왕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데 지대한
공을 세웠고(왕상 1:45) (3) 엘리의 후예인 아비아달 대신 대제사장에 임명됐다는 점
(왕상 2:27,35)등이다(Auggustine, Thenius, Gerlach). 셋째로, 이 예언이 그리스도에
게 해당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리스도는 예표로서의 희생 제사를 폐기 완성시키고,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어 완전한 속죄를 이루셨다는 점에서 궁극적으 이 예언의 성취자
임이 분명하다는 것이다(히 10:1-14).
ㅇ그를 위하여 견고한 집을 세우리니 - 하나님께 성실치 않았던 엘리의 가정이 파멸
에 이른 것과는 달리, 새로이 세움을 받을 제사장 가정은 커다란 축복을 받게 될 것
을 가리킨다.
ㅇ그가 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앞에서 영구히 행하리라 - 여기서 '기름 부음을 받
은 자'란 곧 이스라엘의 '왕'를 가리킨다(10절). 그러므로 이 말은 왕과 제사장의 과
두(寡頭)에 의하여 이스라엘이 다스려질 것이라는 예언이다(렘 33:14-26). 즉 지금까
지와는 달리 백성들의 소원에 따라 별도로 기름 부음 받은 왕이 세워져야 하는 마당
에, 제사장은 그 왕과 함께 하나님의 신정 왕국 이스라엘을 잘 다스릴 필요성이 이었
다. 그리고 사실상 사무엘과 사독 그리고 사독의 후손들은 이스라엘의 여러 왕들을 도
와 제사장의 직분을 훌륭히 수행하였다. 

36 네 집에 남은 사람이 각기 와서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그에게 엎드려
가로되 청하노니 내게 한 제사장의 직분을 맡겨 나로 떡 조각을 먹게 하소서 하리라
하셨다 하니라

ㅇ하나님의 징벌(31-34절)로 파멸한 엘리 집안 후손들의 빈핍하고 처참한 상황이  잘
묘사되어 있다.
ㅇ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를 위하여 - 여기서 '한 조각'(아고라트)
과 '한 덩이'(키카르)는 구걸하여 동냥으로 얻은 동전 한닢, 빵 한 조각을
가리킨다(Keil). 곧 대제사장 엘리 가문의 후손들이 굶주림을 면하기 위하여 이처럼
비참한 상태에까지 이를 것이란 예언이다. 결국 이러한 징벌은 엘리 집안이 하나님의
좋은 것을 빼앗아 스스로 살찌운 범죄(13-16, 29절)에 대한 정당한 보응의 결과였다
(Mattew Henry).
ㅇ청하노니...제사장의 직분을 맡겨...먹겨...먹게 하소서 - 이말을 의리를 맡겨 주
어 생계를 잇게 하소서'란 뜻이다. 영광과 존귀 중에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수행한 정
당한 대가로서, 그리고 그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으로서 생계의 걱정 없이 유족한 생활
을 누려야 할 제사장이 이토록 비천하여져서 단지 생계를 위하여 성소 주변을 맴돈다
는 것은 엘리 집안이 먼저 하나님을 멸시한데 대한 필연적인  결과였다(30절). 한편,
여기서 우리는 대제사장으로서 엘리 집안의 영욕(榮辱)에 대해 간략히 고찰할 필요성
이 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12지파 중 레위 지파를 택하사  제사장 가문으로
삼으셨다. 그리고 모든 제사장의 머리로서 대제사장 제도를 두셨는데, 이스라엘의 초
대 대제사장은 '아론' (Aron)이었고, 그 다음은 '엘르아살'(Eleazar) '비느하스' 계열
로부터 '이다말' 계열로 옮겨져 '엘리(ELI)가 사사 시대말기에 대제사장직에 오르게
되었다.
(대상 24:1-3). 이와 같은 변화가 생기게 된 이유로 우리는 다음 몇 가지를 추론할 수
있다. (1) 엘르아살 계열의 후손이 끊어졌기 때문일 가능성 - 그러나 후일 엘르아살
계열의 인물이 다시 등장하는 사실(삼하 8:17 ; 20:25_로 보아 이 추측은 타당성이 없
다. (2) 엘르아살 계열의 마지막 대제사장 - 요세푸스는 이를 '오시'(Ozi)로 본다  -
의 아들들이 당시 대제사장으로 오르기에는 너무 어렸거나, 아니면 사사 시대의 혼탁
한 인물이 없었을 가능성 - 이것은 상당히 일리가 있는 추측이다. 아마도 바로 이러한
때 이다말 계열의 제사장이었던 '엘리(Eli)가 탁월한 지도력과 정치력을 발휘하여 대
제사장직에 올랐고, 아울러 사사(士師)로서도 활약을 한 것 같다. 그리고 바로 이때가
엘리 가문의 세력이 절정기에 달한 때인 것 같다. 그러나 엘리 말년에 이르러 자신은
늙고 아들들은 방탕하게 되자, 급속도로 그 세력이 약화되어 결국 예언자로부터 심판
을 선고받기에 이르고, 그 심판대로 엘리의 손자요, 비느하스의  아들인 '아히둡'
(Ahitub, 14:3)이 계속 수행하게 된 것 같으나, 실질적으로는 사무엘이 사울 왕 등장
이전까지 정치. 종교의 제문제를 관장했다. 이러한 사무엘 사후, 마침내 이스라엘이
본격적인 왕정 체제로 돌입하게 되었을 때, 곧 사울 왕 당시의 대제사장은 아히둡의
아들인 '아히멜렉'(Ahi-melech, 21:1 ; 22:9, 16)이었다. 그러나 그는 다윗의 도피 사
건 문제로 사울 왕에 의해 놉 제사장 대학살 사건(22:11-19)당시 죽임당한다. 이때 다
행히 목숨을 구한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Abiathal)이 다윗 즉위 시에 대제사장
직에 임명되나(삼하 15:24-36), 이때에는 엘르아살 계열의 사독(Zadok, 대상 24:1-3)
도 대제사장으로 함께 임명된다. 이처럼 다윗 치하에서는 사독과 아비아달이 함께 제
사 업무를 관장했으나, 후일 솔로몬 즉의 시에 아비아달이 아도니야의 반역에 가담함
으로써 결국 추방당하게 된다(왕상 2:26, 27). 따라서 사독만이 대제사장으로서의 위
치를 굳히게 된다(왕상 2:35). 그리고 이때 이후로 대제사장직에서 이다말 계열, 곧
엘리의 계열은 떨러져 나가게 되고 엘르아살 계열이 대대로 대제사장직을 이어받게 된
다. 그리고 그후 엘리 집안은 점차 몰락하여 예언자의 예언대로(33, 36절) 겨우 제사
장직만을 근근히 이어갈 뿐이었다(Keli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id
Testament,Vol. -ii, pp, 39-40).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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