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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여호수아

[스크랩] 여호수아 (3 : 1~17)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1:20
여호수아 3장


1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하니라

ㅇ아침에 일찌기 일어나서 - '일찌기 일어나다'의 히브리어 '솨캄'은 그 자
체 로서 아침 일찍이 일어나는 것을 뜻하지만, 본절에서처럼 '아침에'(밥
보케르)라는 수식어와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여호수아는 여리고  성(6:12), 아이 성
(8:10)을 정복하기 위해서도 아침에 일찍이 일어났는데, 이는 대사(大事)를 앞두고 여
호수아가 항상 영적으로 먼저 무장했음을 보여준다.
ㅇ싯딤에서 떠나 요단에...유숙하니라 - '싯딤'과 '요단'에 관해서는 각각 1:2과 2:1
주석을 참조하라. 한편 '떠나다'의 히브리어 '나사'는 '천막 말뚝을 뽑다',
'출발하다', '여행하다'를 뜻하는 말로서,  천막 생활을 하며 유랑하였던 초기 이스라
엘 민족의 역사적  생활 무대와 잘 어울리는 말이다. 즉  그들은 다음 여행지로 갈 때
천막 말뚝을 뽑아 천막을 걷은  다음 출발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유숙하다'의 히브리
어 '룬'은 대개 어떤 장소에서 밤을 보내려고 숙박하는 것과 관련하여 사용
된다.

2 삼일 후에 유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ㅇ삼일 후 - 즉 싯딤(Shittim)에서 요단 강둑에 이른 지 3일이 지난 때이다. 이처럼
요단 강둑에 이르러 3일을 유숙한 이유는 요단 강 도하(渡河)직전 최종 마무리 준비를
해야 했고, 또한 여호와의 지시를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Loen Wood, C.F. Keil).
ㅇ유사 - 1:10 주석 참조.

3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레위 사람 제사장들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메는 것을 보거든 너희 곳을 떠나 그 뒤를 좇으라

ㅇ레위 사람 제사장들 - 레위 지파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제사장이 되는 것은 아니었
다. 제사장은 그 가운데서 오직  아론의 자손에만 국한되었다(민 3:1-4). 신 31:25 주
석 참조.
ㅇ하나님 여호와의 언약궤 - '법궤'(레 16:2), '증거궤'(출 30:6), '여호와의 궤'(수
4:11), '하나님의 궤'(삼상 3:3), '주의 능력의 궤'(대하 6:41)등으로 불리워지기도
하는 언약궤는 출 25:10-22에 그 규모가 상세히 설명되어 있다. 이 궤 속에는 십계명
두 돌판과 만나 항아리, 그리고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담겨져 있었다(히 9:4; 왕상
8:9). 한편 이 언약궤를 운반할 경우, 규정상으로는 레위 지파의 고핫 자손들이 어깨
에 메어 운반하도록 되어 있었지만(민 4:4-15), 특별히 중요한 경우에는 제사장들이
직접 운반하기도 했다(신 31:9; 왕상 8:3, 6).
ㅇ그 뒤를 좇으라 - 광야 생활 동안에도 줄곧 언약궤가 앞서 가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뒤를 따라 행진하였다(민 10:33-36). 여기서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바, 이를 뒤따르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며 따르는 것을 뜻한다
(Matthew Henry).

4 그러나 너희와 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그것에 가까이 하지는 말라
그리 하면 너희 행할 길을 알리니 너희가 이전에 이 길을 지나보지 못하였음이니라

ㅇ그 사이 상거가  이천 규빗쯤 되게 하고 -  여기서 '상거'(相距)는 '멀리 나가다'(   
라하크)에서 파생한 형용사로 여기서 '...만큼의 거리거 떨어진'이라는 뜻이
다. 그리고 '규빗(Cubit)은 통상 손가락 끝에서 팔꿈치 까지의 거리고 약 45cm이다.
그러므로 2000 규빗은 약 900m 정도의 거리인데, 이 거리는 요단 강의 바깥 둑, 곧 엘
그호르(el-Ghor)에서 강바닥, 곧 에즈 조르(ez-Jor)에 이르는 거리고, 이는 제사장들
의 발이 강가에 닿았을 때(8절) 백성들은 여전히 바깥 강둑에 머물러 있었음을 보여
준다. 한편 이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언약궤를 따라가게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언약궤에 대해 경외심을 심어 주기 위함이었다(Calvin,
Matthew Henry). (2)온 백성으로 하여금 언약궤를 충분히 바라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
이었다(Keil, Woudstra). 한편 후일 유대 랍비들은 본절에 언급된 바 백성들과 언약궤
사이의 거리를 근거로 안식일에 걸을 수 있는 허용 거리를 산출하기도 했다.
ㅇ가까이 하지는 말라 - '가까이 하다'의 히브리어 '카라브'는 '끌어당기다
', '접근하다'를 뜻한다. 후일 법궤 운반시 웃사(Uzzah)가 무분별하게 법궤에 손을 댓
다가 죽임을 당한 사건(삼하 6:6,  7)으로 미루어 볼때, 이 명령은 언약궤가 거룩성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ㅇ스스로 성결케 하라 - 요단 강 도하를 앞두고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
결'(코데쉬)을 명하였다. 그런데 여기서는 성결의 구체적인 행위로 의복을
빤다든가(출 19:10, 14), 옷을 갈아 입는다는가(창 35:2), 또는 여인을 멀리하는 것
(출 35:2)등과 같은 외부적 성결 행위를 의미하는 것 같지는 않다. 왜냐하면 당시로서
는 그러한 준비를 할만큼 시간적 여유가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여호수
아가 명령한 성결(聖潔)은 심령의 성결, 곧 영적 성결의 자세를 삼가 가다듬으라는 의
미로 봄이 좋다(Keil & Delitzsch, Vol. ?. p. 41). 한편 공동번역은 "목욕 재계하여
라"고 번역하였다.
ㅇ기사(팔라) - 하나님의 권능이 역사 속에 개입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출
34:10에서도 가나안 정복과 관련하여 이 단어가 사용되었다.


6 여호수아가 또 제사장들에게 일러 가로되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건너라 하매 곧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서 나아가니라

ㅇ앞서 건너라 - 여기서 '앞서'의 히브리어 '리프네'는 단순히 '앞에서
'(before ; KJV, RSV)라는 뜻보다는 '선두에서'(ahead of ; NTV, 공동 번역)라는 뜻이
더 강하다. 실로 넘실대는 요단 강물에 발을 내디딘다는 것은 큰 믿음과 용기가 요구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임재와 동행의 상징인 언약궤가 함께 하
였으므로 오직 믿음으로 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7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오늘부터 시작하여 너를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크게 하여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 같이 너와 함께 있는 것을 그들로
알게 하리라

ㅇ여호와께서...이르시되 - 모세가 죽은후 그의 후계자 여호수아에게 나타나 크신 위
로와 격려의 말씀으로 용기를 주셨던(1:9) 하나님께서 요단 강 도하 직전, 다시 한번
크신 능력의 말씀으로 여호수아를 격려하신다.
ㅇ오늘부터 시작하여 - 기적적인 요단  강 도하 사건은 장차 여호수아를 영화롭게 할
일련의 기적적인 사건들의 시작에 불과함을 시사한다.
ㅇ그들로 알게 하리라 - 홍해 도하(渡河)의 기적이 모세를 주의 종으로 확실히 인정
하게 하는 계기가 되었듯이(출 14:31), 요단 강 도하 사건의 기적은 여호수아를 이스
라엘의 신뢰할만한 지도자로 확실히 인정받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Keil &
Delitzsch, Vol. II. 42).

8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ㅇ명하여 이르기를 - 홍해 도하  기적에 있어서의 모세의 역할보다 요단강 도하 기적
에 있어서의 여호수아의 역할은 간접적이다. 즉 모세는 지팡이를 들므로써 직접 사역
한 반면에(출 14:16, 21), 여호수아는 제사장들에게 명령을 내림으로써 간접 사역을
하였던 것이다.
ㅇ요단에 들어서라 - '들어서다'의 히브리어 '아마다'는 '서다', '머무르다
'란 의미이다. 따라서 요단 강에 들어가 계속 서 있음을 뜻한다.

9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되 이리 와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하고

ㅇ이리 와서 - 여기서 '와서'에 해당하는 '고슈'는 '끌어 당기다', '가까이
가다'란 의미이다(삼상 14:38; 룻 2:14). 이는 곧 여호와의 말씀을 듣기 위해 가까이
나아오라는 뜻으로, 이하 선포되는 말씀의 중요성을 암시할 뿐 아니라, 그 말씀에 주
의를 기울이게 한다. 물론 여기서 여호수아가 직접 말씀을 선포한 대상은 이스라엘 백
성의 대표자들일 것이다(Keil).

10 또 말하되 사시는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정녕히 쫓아내실 줄을 이 일로 너희가 알리라

ㅇ사시는 하나님 - 이 말은 생명의 근원으로서 영원토록 살아계시사 우주 만물의 운
행과 인간의 모든 역사에 친히 섭리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일컫는 말이다. 실로 여호
와는 이방의 온갖 목석의 죽은 신(神, 시 96:5;115:3-7)과는 현격히 대조되는 살아계
신 하나님 이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살아계심을 특별한 사역을 통해서 당
신의 백성들에게 친히 나타내시는데, 여기서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 가나안 일곱 족
속을 진멸시키심으로써 당신의 살아계심을 보여주실 것이었다(Keil).
ㅇ계시사(카라브) - '가까이 오다', '접근하다'란 의미로서, 9절의 '고슈'
와 동의어이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올 것이
요구되었지만,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까이 접근하심이 묘사되어
있다.
ㅇ가나안 족속...여부스 족속 - 소위 가나안의 후기 일곱 족속이다. 이들 족속에 대
해서는 신 7:1 주석과 여호수아 서론,  '가나안의 여러 족속들' 및 9:1-2 강해, '가나
안의 일곱 족속' 부분을 참조하라.
ㅇ정녕히 쫓아내실 줄을...알리라  - 가나안 일곱 족속의 진멸의 필연성이 강조되어
있다. 여기서 '쫓아내다'의 히브리어 '야라쉬'는 '어느 특정한 지역에 거주
하고 있는 주민들을 쫓아내고, 그 지역을 점유하는것'을 뜻하는 이중적 의미의 낱말로
서, 구약 성경, 특히 신명기에서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과 관련하여 많이 사용되었다
(Hartley).

11 보라 온 땅의 주의 언약궤가 너희 앞서 요단으로 들어가나니

ㅇ보라(힌네) - 단순히 '바라보라'는 개념이 아니라, 큰 주의를 요(要)할
때 쓰는 감탄사이다.
ㅇ온 땅의 주 - 당시대의 사람들은 모든 신을 민족신 내지는 지역신으로 생각하고 있
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어느 한 지역(민족)에서 다른 지역(민족)으로 들어갈 경우에
그 지역(민족)의 신을 따라 섬기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여기서 분명 지
역과 민족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무변성(無邊性) 및 무소부재성(無所不在性)을 강조함
으로써 하나님을 어느 폐쇄적 공간이나 특정한 대상에게만 국한시키려는 시도들을 미
연에 방지하고 있다(왕상 8:27;사 66:1;행 7:48, 49). 한편, 특히 이 표현이 요단 강
도하와 관련하여 사용된 것은 세상의 전 영역 즉, 바다와 강들도 하나님의 통치아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나타내기 위함이었다(Calvin, Keil).

12 이제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매 지파에 한 사람씩 십 이명을 택하라

ㅇ십 이 명을 택하라 - 이스라엘 열 두 지파에서 한 사람씩 도합 열 두 명이 선발된
것은 이스라엘 민족의 통일성(統一性)과 완전성(完全性)을 뜻한다. 이들은 전 이스라
엘 백성을 대표하여 여호수아, 혹은 제사장들 곁에서 요단 도하 사건과 관련하여 그때
그때 주어지는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보인다(4:3).

13 온 땅의 주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ㅇ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 - 요단강은 헬몬 산 부근의 4개의 수원(水原)에서 시작
되므로 '위'는 곧 '헬몬 산에서부터 발원하는 곳'을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1:2 주석
참조. 실로 반석에서 물을 내실 수 있는 하나님은(출 17:6). 또한 물의 근원을 막으실
수 있는 분이기도 하다.
ㅇ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 출  15:8에 나타나 있는 홍해의 기적을 연상시키는 표현이
다. 여기서 '끊어지다'의 히브리어 '카라트'는 '자르다', '분리하다'의 뜻으
로서, 흘러내리던 요단 물이 분리되어 그 아래의 물과 합쳐지지 않았음을 가리킨다.
그리고 '쌓이다'의 히브리어 '나다드'는 멈춘 물이 점차 산처럼 쌓여갔음을
보여주고, '서다'의 히브리어 '아마드'는 마치 사람이 자기의 몸을 일으켜
세우듯 물이 자기 자리에서 일어서 계속 불어났음을 나타낸다.

14 백성이 요단을 건너려고 자기들의 장막을 떠날 때에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고
백성 앞에서 행하니라

ㅇ본절로부터 17절까지는 요단 강이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으로 통과한 이
적적인 사건이 간단 명료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와같이 수사학적인 미사여구(美辭麗
句)로 장식하지 않고  발생한 사건만을 간략히 기록한 것은 이 사건의 실제성을 더욱
분명히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한편  본 사건이 일어난 때는 니산월(오늘날 태양력으로
는 3, 4월경) 10일이었는데, 출애굽할 때에도 역시 니산(Nisan)월이었다. 이 무렵의
팔레스틴은 많은 강수량으로 인해 호수나 강들이 최고 수위(水位)를 기록한다. 이러한
때에 처자식과 가축을 거느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넜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외에 다른 것으로써는 도저히 설명 되어질 수 없다. 진정 출애굽 당시
나 광야 생활때와 마찬가지로 가나안 진입 때에도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役事)가 나
타났던 것이다(출 14:21;16:13). 그리고 이는 향후 가나안 땅에 서도 하나님의 보호와
도우심이 계속될 것이라는 전조(前兆)라 할 수 있다.
ㅇ언약궤 - 3절 주석 참조.

15 (요단이 모맥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가에 잠기자

ㅇ모맥 거두는 시기 - '모맥'(牟麥)은  '밀과 보리'를 뜻한다. 그런데 이 '모맥'이란
말은 히브리 맛소라 사본(MT)에는 나타나지 아니하고, 헬라어 70인역(LXX)에 나타난
말이다. 한편 아열대(亞熱帶) 기후에 속하는 여리고 지역은 태양력 4,5월 경이 그 수
확기이다.
ㅇ언덕에 넘치더라 - 여기서 '언덕'(가다)은 퇴적 작용으로 생긴 강의 양쪽
자연 제방을 가리킨다. 또한 '넘친다'(말라 알)는 것은 단순히 물이 제
방에 가득 차는 것을 뜻하지 않고 가득 차 범람하는 것을 뜻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실제로 모맥 거두는 시기 쯤에는 북쪽 헬몬 산의 눈
이 녹을 뿐 아니라 또한 봄비가 내리기 때문에 갈릴리 호수는 최고 수위에 오르게 되
고 요단 강물은  크게 불어 그 깊이는 3-4m, 그 넓이는 30m 이상이 된다고 한다(J.P.
Free, Archaeology and Bible History). 이처럼 전체 요단  강물이 만수가 되어 염해
(사해)로 흘러가는 이 때에는 요단 강의 가장 좁은 나루터라 할지라도 일반적인 방법
으로 도강(渡江)하는 것은 불가능하였다(Rovinson). 더구나 처자식을 거느린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엄두조차 못낼 일이었다(Keil). 그러나 이러한 완전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
스라엘 백성들이 요단 강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그 도강(渡江)이 오직 하나님의 기적
임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Calvin).
ㅇ발이 물가에 잠기자 - 강둑을 넘칠 정도의 거센 물결은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주기
에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궤를 메고 물 속으로 담대히 들어간 제사장들의 용기
는 아주 크다고 하겠다(Calvin). 그들의 이러한 용기는 오로지 가나안에 대한 하나님
의 약속을 믿는 여호와 신앙에서 나온 것이라 볼수 있다.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에 일어나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쌔

ㅇ흘러 내리던 물이  그쳐서 -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 강물에 잠기자 곧
요단 강물은 그 흐름을 멈추었다. 이것은 분명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기적의 섭리임에
틀리없다. 한편 우리는 성경을 고찰할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적을 이루시는데 두
가지 방법으로 역사하고 계심을 알 수 있다. 그 하나는 자연을 이용한 초자연적인 기
적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순수한 초자연적인 기적 사건이다. 전자의 예로 우리는 애
굽에 내린 10대 재앙 중 개구리, 이, 파리, 악질, 독종, 우박, 메뚜기, 흑암 재앙(출
12:29, 30), 그리고 태양과 달이 멈춘 사건(수 10:12-15)및 일영표 위의 해 그림자가
10도를 물러난 사건(왕하 20:8-11)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여기 나타난 요
단 강물의 멈춤 사건에 대하여 자연을 이용한 기적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다. 즉 아담
지방 근처에는 오늘날 까지도 큰 절벽이  있는데, 가끔 지진 등으로 인해 바위가 무너
져 내려 요단 강물을 일시 정지하게 한다고 한다. 실제 그러한 일이 A.D. 1267년 12월
에 일어나 16시간, A.D. 1927년 7월에 일어나 21시간 30분 가량 요단 강물을 막았다는
기록이 있다(J.P. Free, en-Nuwairi). 따라서 하나님께서 이러한 방법을 통해 당시의
요단 강물도 막았다는 주장을 편다. 이것 역시 가능한 주장이지만 (그렇다고 하나님의
이적이 부인되는 것은 아니다), 본문의 내용상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강물에
닿자마자 방금 까지도 넘실대며 흐르던  물이 곧 멈추며 뒤로 물러나 쌓였다는 기록으
로 볼 때, 그리고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 및 가축 떼까지 건너기 위해서는 상당량의 시
간이 걸렸을 것이라는 추측에 근거해 볼 때, 요단 강물의 멈춤 사건은 순수한 하나님
의 초자연적 이적 사건으로 봄이 좋다(Leon Wood, A Survey of Israel's Histrory).
ㅇ심히 멀리 사르단에 가까운 아담 읍 변방 - 흐르던 물이 그치고 쌓이는 바람에 일
종의 역류(逆流) 현상이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사르단'(Zarethan)은 여리고 북방 약
20km 지점의 요단 강 기슭에 있는 성읍인데, 후일 솔로몬이 성전을 만들 때 이곳에서
놋을 부어 기구를 만들었다(왕상 4:12;7:46).

17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온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으로 행하여 요단을 건너니라 

ㅇ여호와의 언약궤 - 3절 주석 참조.
ㅇ요단 가운데 - 이말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단지 '강 가'(by the river)에 서있
었다는 말이 아니라, '강 바닥'(the bed of the river)에 서있었다는 뜻이다(Keil).
ㅇ마른 땅에 굳게 섰고 - 여기서 '마른 땅'은 '물기 없는 땅'(dry ground;창 7:22;출
14:21)을 뜻한다. 그리고 '굳게'라는 말은 '서다'(아마드)와 대등한 의미를
지닌 동사 '쿤')에서 파생했는데, 이는 '확정짓다', '고정시키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러므로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 강을 다 건널 때까지 언약궤를 멘 제
사장들은 자기가 선 자리를 확고 부동하게 지켰다는 말이다.
ㅇ요단을 건너니라 - 원문에는 '완전히'(탐무)라는 단어의 수식을 받고 있
다. 멈추었던 물이 다시 흐르게 되면  죽음을 면치 못할 상황에서 오직 믿음으로 요단
강을 온전히 건너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을 엿볼 수 있다. 한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수효를 도합 200만으로 추산할 때(민 26:51), 그들이 그 행군의 폭을 1-2km
정도로 했다면 요단 강을 건너는데 소요되는 시간은 대략 반나절(half a day) 정도 걸
렸으리라 추정된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on the Old Testament, Vol. II. p.
47).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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