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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에베소서

[스크랩] 에베소서 (1 : 1~23)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1:01
에베소서 (1 : 1~23)


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ㅇ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된 바울은 -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자기 호칭은 고후 1:1과 골 1:1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이 호칭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해서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되었음을 시사한다. 한편 '사도'(아포스톨로스)는 '보내다'라는 의미의 동사
'아포스텔로'에서유래된 것으로 문자적인 의미는 '보냄을 받은
자'이다. 바울이 이 호칭을 자신에 대하여 사용한 것은 자신의 전도가 그가 소유하고
있는 자질에서 말미암은 것이 아니고 자신을 보낸 분에게서 비롯되었음을 시사하기
위함이다(행 26:16-18; 고전 9:1).
ㅇ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의 신실한 자들 -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세상과 분리시킨 그리스도인들을 지칭하는 명칭이다. 또한 '신실한 자들'
은 그리스도께 대한 신뢰와 충성을 겸비한 성도들을 비유하는 표현이다(고전 4:17; 벧
전 5:12; 요삼 1:5). 따라서 에베소 교인들에 대한 본절의 호칭은 에베소 교인들이 하
나님의 선택을 입은 성도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믿음으로 응답(應答)한
자들임을 시사한다(2:8).

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ㅇ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
다 - 이는 초대 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었던 전형적인 인사구로 대부분의 서신서
서두에 나타난다(롬 1:7; 고전 1:3; 고후 1:2; 갈 1:3; 빌 1:2; 살전 1:1; 살후 1:2;
딤전 1:2; 벧전 1:2; 벧후 1:2; 계 1:5). '은혜'의 헬라어 '카리스'는
헬라인들에게는 일반적인 인사 용어이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으로 값없이 누리게 된 구원의 은총이라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또한 '평
강'의 헬라어 '에이레네'는 히브리어 '샬롬'의 번역으로
히브리인들이 개인의 물질적 축복과 번영을 기원해 주는 인사말이다(창 29:6; 삼상
25:6; 삼하 20:9; 왕하 4:26). 이런 인사말은 초대 교회 성도들에게 있어 일종의 축복
과 기도이며 특별히 '은혜'(6, 7절; 2:5, 7, 8;3:2, 7, 8;4:7, 29)와 '평강'(2:14,
15, 17;4:3;6:15)은 본서의 주요 주제이다(Foulkes, Lincoln).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ㅇ찬송하리로다 - 이것은 유대인의 전형적인 찬양구로 하나님께서 찬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시사한다(롬 15:6; 벧전 1:3, Foulkes, Wood).
ㅇ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우리에게 복주시되 - 본절은
'엔'('...안에')으로 시작하는 세 가지 전치사구로 구성되어 있다.
(1) 그리스도 안에서(엔 크리스토) - 혹자는 본문이 그리스
도와 그리스도인의 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사역을 나
타낸다고 주장한다(J.A. Allan). 그러나 본서에서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배제할 수가
없다(2:6, Lincoln). 따라서 본문은 '그리스도와 연합'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이 그
리스도인에게 주어짐을 시사한다(Bruce).
(2) 하늘에 속한(엔 토이스 에푸라니오이
스) - 본문과 같은 전치사구가 본서에서는 다섯번 나타난다(3, 20절;2:6;3:10;6:12).
이것은 본절의 '신령한'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Foulkes, Bruce). 하나님이 주시는 축
복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늘의 영역과 연결시키는 구원의 축복이다. 그러나 이 축복은
미래에 맛보는 것이 아니라 현재 그리스도인의 삶 가운데 속하는 축복이다(Lincoln).
(3) 신령한 복으로(* , 엔 율로기아 프뉴마
티케) - 여기서 '신령한 복'은 성령시 현존으로 이루어진 결과를 가리킨다(5:19; 골
1:9;3:16). 이 복은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지상적이며 육적인 축복이 아니라 천
상적이며 영적인 복이다(Foulkes, Lincoln, Bruce).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ㅇ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 '택하사'의 헬라어 '엑셀렉사토'
는 '선택하다'라는 의미의 동사 '에클레고'의 단
순과거 중간태이다. 이것은 창세 전에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하여 우리를 택하셨음을
시사한다. 즉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에 대한 선택이 (1) 하나님 자신을 위한 사역이며
(2)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하에서 이루어졌음을 시사해 주는 표현이다(Wood).
그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그리스도 안에서'이루어진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이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며,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계획이 성취
됨을 시사한다(Lincoln). 한편 '창세 전에'는 하나님의 선택하심이 영원전에 이루어진
것임을 나타낸다. 이것은 하나님의 선택이 인간의 공적이나 일시적 환경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성에서 비롯된 주권적 은혜임을 시사하며 동시에 '창세 전에'는 그
리스도의 선재성(先在性)을 나타낸다(골 1:15-17, Lincoln).
ㅇ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 본절은 하나님이 그리
스도인들을 선택하신 목적을 나타낸다. '거룩하고'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순결성을 나
타내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을 구별하여 도덕적인 결점이나 죄를 없게 하고 성령의 열
매들을 소유하게 하심을 시사하며(갈 5:22, 23) '흠이 없게'는 결함이나 오점이 없는
깨끗한 상태를 가리킨다(5:27). 이런 두 가지 용어는 구약의 희생 제물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LXX 출 29:36, 37; 민 6:14;19:2) 결점이 없는 윤리적 순결성을 의미한다. 이
런 윤리적 순결성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 사역을 통해 보여주신 '사랑'안
에서 나타난다.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ㅇ예정하사 - '프로오리사스'의 문자적 의미는 '앞서서 표시했
다', '미리 정했다'이다. 앞절에서 언급된 '엑셀렉사토'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 소수를 선택했다는 의미가 강한 반면에 본 단어는 '프로'
('...앞에')라는 전치사가 붙어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창세 전에'라는 '시간의
개념'이 강하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사역을 직접 시작하였고, 선택한 자들을 아들
로 삼으시려고 결정하셨음을 강조한다.
ㅇ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아들들이 되게 하셨
으니'의 헬라어 '휘오데시안' 법적 용어로, 양자입양을 나타낸
다. 이것은 (1) 하나님의 한 가족이되어 함께 하는 삶을 살며(롬 8:15; 갈 4:5), (2)
앞으로 하나님의 기업을 상속받게 되고(롬 8:17), (3)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게
된다(롬 8:29)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 이런 특별한 관계를 맺게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주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ㅇ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그리스도인에게 어떤 방법으
로 제시되는가를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
리스도를 통해서 전달되었음을 시사한다. '사랑하시는 자'라는 칭호는 초대 교회 교인
들에게 메시야적 칭호였다(Lincoln).
ㅇ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 하나님께
서 인간을 선택하신 것은 그들을 양자로 삼으시기 위함이지만 보다 궁극적인 목적은
죄인인 인간의 찬양을 받으시기 위함이다(Hendriksen). '은혜'는 하나님이 인간을 구
속하시는 행위의 원리이다(2:5, 8). 이 은혜를 통한 구속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한
다. 그리스도인들은 택하셔서 양자가 되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자발적으로
하나님께 찬양드리고 영광을 돌리게 된다.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ㅇ그의 은혜에 풍성함을 따라 - 이것은 바울 특유의 전형적인 표현 방식이다
(Robertson, 18절;2:7;3:16; 롬 2:4;9:23; 빌 4:19; 골 1:27). '은혜의 풍성함'은 고
갈을 모르는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는 것으로,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사죄를 가능케
하며 신자의 은혜로운 삶의 근거가 된다(Hendriksen).
ㅇ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 '구속'에 해당하는 헬라어 '텐
아폴뤼트로신'은 노예들이 자유를 얻거나 죄수들이
석방되기 위하여 돈을 지불하는 속전(贖錢)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Wood). 신약성경
에서 구속은 두 가지 시상으로 나타난다. (1)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현재에 누리고
있는 구속을 가리킨다(롬 3:24; 고전 1:30; 골 1:14). (2) 장래에 누리게 될 종말론적
인 구속을 가리킨다(14절;4:30; 눅 21:28; 롬 8:23). 본절은 두 가지 시상 중 전자,
곧 현재에 누리는 구속을 의미한다(Lincoln). 또한 본절의 '아폴뤼트로신'에는 '텐'
이라는 판사가 붙어 있다. 이는 구속의 실재성을 강조해준다. 이러한 '구속'은
본절에서 '죄사함'과 동일시된다. '사함'에 해당하는 '아페신'은 문자
적으로 '해방'을 의미하는 것으로 칭의와 화해를 암시하며 '죄'의 헬라어 '파라프토마
톤'은 복수로서 불순종의 행위와 범죄를 시사한다(Wood).
따라서 '죄사함'은 죄로 인하여 파생되는 모든 결과에서 해방된 것을 뜻한다. 이와 같
이 본 구절에서 '구속'이란 용어와 '사함'이란 용어가 함께 쓰인 것은 그리스도의 속
죄의 완전성을 나타내기 위함이다. 한편 '그의 피로 말미암아'의 헬라어 '디아 투 하
이마토스'에서 '디아'는 도구격으로 사용
되어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암시한다. 바울은 구속의 수단인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을 명백히 밝힘으로 그리스도의 사역과 자기 백성을 해방시키는 하나님의 사역을 연결
시키고 있다(Lincoln, Bruce).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ㅇ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는 '지혜'(소피아)는 이론적이며 지적인 지혜를 가리키고
'총명'(프로네세이)은 실제적 도덕적인 지혜를 가리킨다고 구분하
였으나 신약성경에서는 이사일의(二詞一意)이다(Blaikie, Lincoln). 하나님의 지혜와
총명은 영지주의자들이 자랑하는 것 이상의 고등지혜이며 실제 삶 중에 발생하는 현상
과 사건을 이해하는 근원이다(Cole). 바울이 이 두 단어를 여기서 사용하는 것은 (1)
당시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던 거짓 선지자들의 거짓된 교훈을 분별하게
하기 위함이며(Calvin), (2) 지혜와 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갈고 닦으며 계속 사
용해야 유용한 것임을 교훈하기 위함이다(Bruce).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ㅇ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 본절은 앞절과 깊은 상관성을 지닌다. 그리
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은혜의 풍성함으로 주신 '지혜'와 '총명'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알게 된다. '비밀'(뮈스테리온)은 '단순히 숨겨져
있는 사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밝혀진 신비'를 의미한다(골 1:27). 즉 전
에는 감추어져 있다가 지금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밝혀진 진리의 중요성을 시사해 주는
표현이다(Cole). 신약 전체에 걸쳐 언급되는 '비밀'은 (1) 감취었다가 밝혀진 진리를
가리키며(Cole), 더 나아가 (2)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할 신비로 나타난다
(Bruce). 구체적으로 이 '비밀'은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하신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의
미한다(9, 10절; 3:3-10;5:32;6:19).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그리스
도 안에서 구별없이 하나로 통일되게 하는 것으로 '바울'이나 사도들에게만이 아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에게 알려진 것이다(Wood).
ㅇ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
본절은 하나님의 뜻의 비밀에 대한 설명이다. '때'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론'
은 하나님의 어떤 목적이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시간'을 가리킨다
(Robertson). 또한 '경륜'(오이코노미안)의 문자적 의미는
'집안의 관리' 혹은 '집안 관리자의 직분'이다(고전 4:1, 2;9:17; 딛 1:7; 벧전
4:10). 본절에서 '오이코노미안'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만물을 위하여 모든 일들
을 계획하고 지배하며 관리하신다'는 의미로 사용되었다(Cole). 따라서 '때가 찬 경륜
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적으로 실행하시고자한 구
속 계획을 가리킨다. 한편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는 5절의 반복이다. 하
나님께서는 당신의 기쁨을 위하여 비밀을 드러내고자 세심하게 계획을 세우셨다.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ㅇ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의 헬라어 '아나케팔라이오사스다이'
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혹자는 이 단어가 '머리'라는
의미의 명사 '케팔레'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을 지
배하려 하심이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Robertson). (2) 혹자는 '요약' 또는 '총계'란
뜻의 명사 '케팔라이온'에서 파생된 것으로 개역성경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는 의미라고 주장한다(Blaikie,
Hendriksen, Wood, Cole, Calvi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바울은 만물이
예전에 죄로 말미암아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웠지만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
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Calvin, Lincoln). 그리고 오늘날의 일반적인 덧
셈 방법은 셈할 숫자를 세로로 적고 총계를 제일 아래에다 쓰는 것이 통례인 반면, 헬
라시대에는 총계 숫자를 제일 위에다가 적었다. 이러한 언어적 배경과 문맥을 볼 때,
'아나케팔라이오사스다이'는 여러 개의 수가 합산 되어 하나의 숫자로 집약되듯이 무
질서와 혼돈 가운데 있던 우주가 그리스도 안에서 공통된 목적을 향해 하나로 통일되
었음을 시사한다(Caird). 한편 '하늘에 있는 것'은 영적인 세력을 가리킨다. 이런 영
적인 것들은 '땅에 있는 것'과 연합되어서 통일성을 이루어간다. 이런 사실은 바울이
21, 22절에서 명시적으로 밝히는 바와 같이 하늘에 있는 영적 세력이나 땅에 있는 것
즉 모든 만물이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됨을 시사한다(Lincoln).

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ㅇ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기업이 되었으니 - '기
업이 되었으니'의 헬라어 '에클레로데멘'은 '제비를 뽑아
지정하다' 혹은 '기업이 되다'라는 의미의 동사 '클레로오'의 단순 과
거 수동태이다. 이것은 우리가 단순히 하나님께 어떤 기업을 받는다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으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음을 의미한다(Lincoln, J.A.
robinson).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주권적인 뜻대로 우리를 택하시고 소유하셔서 자기의
기업을 주실 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보호하며 돌보신다(5절, Blaikie). 또한 '에클레로
데멘'이 수동태인 사실은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된 것이 우리의 공로나 노력에 의한
것이 아님을 시사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이시기 때문이다.

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ㅇ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
라 - 본절은 6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의 반복이다. 하나님께서 창조와 섭
리 그리고 선택을 통하여 얻고자 하신 것은 자신의 영광을 그들로 하여금 드러내게 하
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은 단순히 예배의 목적이 아니라 모든 존재의
목적이다. 한편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의 헬라어 '투스 프로엘피코타스'
에서 접두어 '프로'('전부터')에 대해 혹자는 본
서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된 전체 공동체에 대해 언급하기 때문에 그것은 '모
든 믿는자'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Lincoln). 그러나 그것은 그리스도가 오시기 이전
에 메시야를 기대했던 유대인을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Foulkes,
Wood, Bruce). 왜냐하면 유대인들은 이방인들보다 먼저 복음에 관한 지식을 가지고 있
었기 때문이다(롬 1:16;2:9).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ㅇ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 '너희'는 앞절에서 '유대인'을 지칭한 '우리'와 대조되는 인칭 대명사로 이방인 그
리스도인을 가리킨다(Wood, Bruce, Foulkes). 하나님의 구원은 유대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복음이 전하여졌다. '복음'은 다른 곳에서
'주의 말씀'(고전 14:36; 살전 2:13), '하나님의 말씀'(고전 14:36; 살전 2:13), '그
리스도의 말씀'(골 3:16), '생명의 말씀'(빌 2:16), '화해의 말씀'(고후 5:19)이라고
도 불리어진다. 이런 '구원의 복음'과 동일시되는 '진리의 말씀'은 하나님의 구원목적
을 계시하는 사도의 복음을 가리킨다(Lincoln).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하는
구원 계획을 사도들은 이방인에게까지 전파하였으며 그 결과 이방인들도 복음을 받아
들여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구원을 얻게 되었다.
ㅇ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 '인치심을 받았으니'의 헬라어 '에스프라기
스데테'는 소유권을 나타내거나(아 8:6), 어떤 문서나 서
신의 신빙성을 보증할 때 사용되었다(Wood). 이러한 '인을 받는 것'에 대해서 혹자는
'세례'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나(Gnilka, Houlden), 그것은 복음을 받아들일 때 수반되
는 성령의 영접을 가리킨다(Lincoln). 성령의 영접은 하나님께서 소유주가 되시는 내
적 확증이며, 이런 내적 확증을 공동체 안에서 외적으로 표시하는 것이 '세례'이다
(Foulkes).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성령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되며, 하나님은 그들의 소유주와 보호자가 되신다. 이런 관계 변화를 확증하고 보증하
는 것이 '인침'이다. 한편 '약속의 성령'은 예수님께서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성령
을 가리키는 것으로(Foulkes, Bruce, 눅 24:49; 요 14-16장; 행 1:4, 5;'the promised
Holy Spirit', NEB), 성령을 받음으로 주어질 신령한 축복을 암시한다(Lincoln).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ㅇ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 '보증'의 헬라어 '아르라본'은 '에
라본'('보증')에서 차용한 것으로 당시의 상업 용어이다. 이것은 어떤
계약을 할 때의 계약금을 가리킨다. 바울은 본절에서 '성령의 인침'을 그리스도인의
기업의 보증에 비유하고 있다. 이는 약속의 성령이 성도의 마음 속에서 보증을 해주시
므로 구속의 그 날까지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도록 해주심을 시사한다(Calvin). 한편
'기업'은 성령이 그리스도인의 현재 삶속에서 보증해 주신 것으로 미래의 영적인 부활
체(고전 15:44; 고후 5:4)를 가리킨다. 이는 미래에 주어질 완전한 구원을 시사한다
(Lincoln).
ㅇ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 '얻으신 것'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혹자는 그리
스도인에게 약속된 축복이라고 주장한다(Abbott, Schlier). (2) 혹자는 '그리스도인'
을 가리키는 것으로 하나님이 그리스도인의 소유주이심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Robinson, Gnilka, Houlden). 두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출 19:5; 신 14:2;26:18;
말 3:17; 행 20:28).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의 소유주로서 그리스도인들을 미래에 완전
히 구속하신다.
ㅇ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 본절은 6, 12절의 반복으로 하나님께서 인
간을 구속하시는 궁극적인 목적을 나타낸다. 미래에 하나님이 그리스도인들을 완전히
구속하시고 소유하실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15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ㅇ이를 인하여 - 이것은 바울이 새로운 언급을 하기 전에 종종 사용하던 것으로 '앞
서 언급한 전체로 인하여'라는 의미이다(Blaikie, Wood, Lincoln).
ㅇ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 들었음을 밝히고 있다.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은
두 가지로 해석된다. (1) 에베소 교인들이 주 예수를 믿는 믿음(Abbott, Gnilka), (2)
에베소 교인들이 주 예수 안에서 보인 믿음의 행위(Schlier, Ernst). 두 견해 중 후자
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절은 골 1:3, 4과 병행을 이루는 것으로 골로새 교인들이 그
리스도 안에서 행한 믿음과 같은 것을 가리키기 때문이다(Lohse, O'Brien, Bruce,
Lincoln). 이런 믿음에서 비롯된 행함은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으로 나타났다
(Foulkes).

16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ㅇ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 바
울은 기도할 때마다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해 감사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 감사는 에베소 교인들의 믿음과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하나님의 사역으로
인해서 생겨난 것임을 암시한다(Lincoln). 한편 '말하노라'로 번역된 '므네이안 포이
우메노스'는 단순히 '기억하다'라는 의미
(remembering, NIV, RSV)보다 훨씬 구체적이고 명확한 표현이다(Foulkes). 왜냐하면
이것은 사도 바울이 기도할 때에 기도 대상자의 성품과 인격 그리고 신앙의 정도와 처
해 있는 환경을 기억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그의 이름을 불러가며 간구하는 것을 뜻하
기 때문이다(Wood). 이런 바울의 기도는 에베소 교인들이 성숙을 향해 성장해갈 수 있
도록 간구하는 중보 기도이다(17-19절).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ㅇ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 본절은 바울의 중보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에 대한 묘사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하나님'과 '그리스
도' 사이의 분명한 구분을 짓는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에게 종속적이다. 한편 '영광
의 아버지'는 셈어적인 표현으로 '영광스러운 아버지'를 의미한다(Bruce, Lincoln,
Foulkes). '영광'은 하나님의 현존과 능력의 광채로서 본절에서는 조명하시는 능력을
암시한다(18절).
ㅇ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 '정신'의 헬라어 '프뉴마'
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1) 혹자는 '프뉴마'에 관사가 없기 때문에 인간의 영을
의미한다고 주상한다(KJV, RSV, Abbott, milton). (2) 혹자는 관사가 없이도 '프뉴마'
가 성령을 가리키기 때문에(갈 5:5, 16) 인간의 영이라 할 수 없고 '성령'으로 보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Hendriksen, Caird, NIV). (3) 혹자는 성령에 의해서 인간의 영
에 주어진 성령의 은사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Foulkes).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
해가 타당하다고 본다. 한편 '지혜'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사역을 이해
하는 것이며(8절;3:10;5:15), '계시'는 하나님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신 것을 시사한다.
ㅇ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 성도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받은 지혜와 계시에 의해서
하나님을 알게 된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어떤 피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개인적인 친분
을 통해서 얻어지는 충만된 지식을 뜻한다(Wood).

18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19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ㅇ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 '마음눈'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바라보는 눈이 있
는 것처럼 묘사하는 아름다운 표현이다(Wood). 그리스도인이 되기 이전의 에베소 교인
들은 '총명이 어두웠고'(4:18), '어두움'에 거하였었다(5:8). 그러나 이제 구원을 받
은 에베소 교인들은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복음을 통해 깊은 깨달음을 얻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알게하시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Cole, Wood). 바울은 에베소 교
인들이 성령의 역사를 통해 '마음눈'이 밝아져 세 가지를 알게 되기를 기도한다.
(1)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 '부르심'은 '선택'과 '예정'(4, 5, 11절)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의
인치심을 받음으로 이루어지며, 그 부르심을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미래에
온전하게 하시는 소망을 갖게 된다(Bruce, Foulkes). '소망'은 그리스도인의 구원이
완성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만물이 통일될 것에 대한 바램을 의미한다(Lincoln).
(2)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 '그 기업'의 헬라어 '테스
클레로노미아스 아우투'는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그의 기업'으로서 14절에서 언급한 '우리의 기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업
을 가리킨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기업은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켰다(신 4:20;9:26, 29;
삼하 21:3; 왕상 8:51; 왕하 21:14; 시 28:9;33:12;68:9;78:62, 71;94:14;106:5, 40;
사 19:25;47:6;63:17; 렘 10:16;51:19). 그러나 본절에서 하나님의 기업은 유대인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 기업은 '성도 안에'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
님의 기업은 하나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킨다(Abbott, Houlden, Milton,
Lincoln).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것의 영광을 알기를 기도하고
있다.
(3)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
심이 어떤 것을 - 바울은 본문에서 네 가지 단어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첫째, '힘'으로 번역된 '크라투스'는 저항과 통제로
써 길러진 힘(6:10)을 의미하며, 둘째, '강력'의 헬라어 '이스퀴오스'
는 육체적이며 남성적인 힘으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타고난 힘을 뜻하고(6:10), 셋
째, '역사하심'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네르게이안'은 영향을 끼
칠 수 있거나 조절이 가능한 힘을 지칭하며(3:7;4:16), 마지막으로, '뒤나메오스'
('능력')는 무엇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이나 잠재력을 가리킨다
(Wood, Barth, Schlier). 이러한 네 가지의 유사 용어를 사용한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앞에서 언급한 바 있는 성도의 기업과 소망을 잇는 견고한 다리임을 강조하기 위함이
다(Hendriksen). 바울은 그리스도인을 향해 행하신 하나님의 광대한 능력이 어떤 것인
지를 에베소 교인들이 알기를 중보 기도한다.

20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 편에 앉히사

ㅇ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 본절은 앞절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상관성을 갖는다. 에베소 교인들이 알아야 하는 하나님의 크신 능력은 이미 그
리스도에게 두 가지로 나타났다.
(1)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것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세상에 선포한 것이며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시겠다는 확
고한 증거이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물의 주로 삼으시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행
3:15;4:10;10:40;17:31; 롬 1:4). 그러나 본절에서의 강조점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선포한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신 하나님의 능력에 있다(Lincoln).
(2)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 본문은 왕의 즉위식을 묘사한 시 110:1에
서 유래한 것이다. 바울은 시 110편을 기독론적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왕권을 나타
내고 있다. '오른편에 앉히사'는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고 통치권의 개념으로 하나님께
서 그리스도를 만물의 주인으로 삼으시고 그러한 위치를 감당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
을 주셨음을 시사한다(Cole, Lincoln).

21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ㅇ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 - 이것은 하나님과 적대하는 초자연적인
악한 세력으로(6:12, Gnilka, Caird, Barth). 네 가지 명칭이 특별한 순서나 격차, 혹
은 직급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당시에 횡행(橫行)하던 영지주의 교사들을
어느 정도 염두에 두고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골 1:16, Cole, Wood). 바울이 네 가지
초자연적 적대 세력을 언급한 것은 네 가지 적대 세력을 설명하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그러한 적대 세력을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ㅇ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 여기서
'세상'으로 번역된 '아이오니'는 '세대'(this age)라는 의미로 공간적인
개념이 아니라 시간적 개념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신약성경에서 단
순히 시간적인 개념으로만 사용되지 않고 현재의 세태(마 12:32; 갈 1:4; 딤전 6:17)
와 다가올 세태 및 생활(눅 20:35; 엡 2:7)에 대하여 사용되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본
문에서도 현재의 세대와 앞으로의 세대 양자를 모두 가리키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
었다. 따라서 본절의 '이 세상'과 '오는 세상'은 현재와 미래의 변화하는 세대와 세상
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모든 세대를 주관하시는 분이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그리스
도를 부활시키시고 오른편에 앉히심으로 모든 이름보다 뛰어나게 하셨다.

22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ㅇ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 본문은 시 8:6의 인용이다. '복종하게 하
시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탁센'은 만물이 그분에게 달려 있
음을 시사한다. 만물 즉 초자연적인 세력과 모두 세대의 인간들, 그리고 온 우주는 그
리스도의 주권에 복종해야하며 그를 통해서만이 참생명과 존엄성을 회복하게 된다.
ㅇ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 바울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비유한다. '머리'는 그리스도가 교회에 생명을 부여하시는 분이며, 교회의 주인이 되
심을 시사한다(Bruce, Foulkes). 교회는 그리스도를 적대하는 모든 세력에 대해 대항
할 권세와 능력을 소유하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고 있으
며,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인도하시고 보호하시기 때문이다(Wood). 한편 앞서 언급한
모든 만물에 대한 그리스도의 주권과 교회에 대한 주권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백성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는 교회를 힘이 아닌 사랑과 온유, 거룩
함으로 지배하시며 통치하신다(Bruce).

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ㅇ교회는 그의 몸이니 - 본문은 교회가 그리스도의 생명을 수여받은 유기체임을 나타
낸다(Bruce, Wood).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에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의 명령에
복종해야 하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때만이 유기체로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
ㅇ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 본절에 대해서는 세 가지 견
해가 있다. (1) 교회가 그리스도를 충만케 한다는 의미이다(Hendriksen, Calvin,
Lenski). 그리스도는 그리스도인 즉 교회와의 연합을 통해서 완전하게 될 수 있다.
(2) 본절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충만하심이라는 의미로(Blaikie) 하나님의 충만하심
이 그리스도 안에 영속적(永續的)으로 거한다는 것을 시사한다(골 2:9). (3) 본절은
교회가 그리스도로 채워지는 것을 의미한다(Wood, Bruce). 이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그리스도는 교회안에 내재하시며 교회로 하여금 충만케 하셔서(골
3:16), 교회가 자신의 분량까지 완전해지도록 인도하시며 역사하신다(Foulkes, Wood,
Bruce).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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