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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고린도전서

[스크랩] 고린도서 연구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0:46

고린도서(Corinthia) 연구


I.들어가는 말

바울의 적대자들에 대한 문제들은교부시대부터 종교개혁자들에게 이르기까지 주석가들에 의해 언급되었으며 19C 종교사학파들 가운데 초기 비판적인 학자들은 이 두 서신을 고찰한다고는 했지만 두 서신을 나눠서 고찰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고린도 전서는 그 교회에 침입한 지혜사변이나 자유주의 사상에 연관되어 파당 문제(고전 1:10 - 4:21), 성적 부도덕성의 관용(5:1 - 8), 교회 예배의 무질서(5:9 - 13), 영지주의의 경향, 성령의 은사의 열광주의적 이해(12 -14), 부활에 대한 회의(15:1 - 58)등이 속출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명해 가면서 이식연소하고 이교 환경에 흔들리는 그 교회의 공동체를 건설해 가는 방향으로 편지가 전개되고 있다.

그러므로 특정한 개인이나 그룹이 특히 논쟁의 대상으로 되어 있지 않고 전체 교회가 생각과 행동을 같이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고린도 전서의 처음 몇장은 서신 전체를 이해하기에 좋은 열쇠를 제공한다. 곧 바울이 왜 이 글을 쓰게 되었는지 또 그 교회에 분명히 밝혀주어야 할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가르쳐 준다. 그 교회에는 "다툼(-1:11)"이 있다고 전해졌다.

 

고린도 인들은 전보다 "변론이나 지식에서 ...부요해졌다(1:4)"고 하는 것을 보아 많은 논변들이 오고 갔던 것 같다. 그 다툼이라는 것은 어떤 교리적인 주의,주장이 달라서 대립한 것일 수 있는데 다음에 오는 분열(- :10)은 어떤 그룹 형성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여러 지도자들을 각기 좋은 대로 자기의 신념의 대표자로 모시고 그들의 특수한 어조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기 때문인 것 같다. 바울, 아볼로, 게바, 또 그리스도까지 새워 이 네 이름이 서로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근원이 되었다.

 

이런 현상은 3장 18 - 23절에서도 역시 발생하게 된다. 여기서 계속적인 분쟁과 더불어 야기되는 것은 지혜()와 영적인 것을 강조하는 영지주의적인 요소들이다. 본 발제는 특별히 파당 문제(고전 1:10 - 4:21)에서 야기되는 적대자들에 관해 고찰하고자 한다.

II.몸 말

1. 교회내의 문제들(고전 1:10 - 17)


고린도 교회의 분파는 복음을 전파하는 사람들과 듣는 사람들의 문제처럼 보인다. 바울이 소식을 듣고 취급하는 교회의 첫번째 문제는 교회 내의 분파운동이었다.

 

그는 분파 문제는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설교가들에게나 자신들에게 세례를 베푼 사람들에게 충성하는데 있음을 말하고 있다. 어쩌면 바울파는 바울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이거나 세례를 받은 자들이었을 것이고, 아볼로파는 아볼로의 달변의 설교를 좋아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을 것이고(행 18:24 - 28), 게바파는 원 사도의 우두머리 베드로의 추종자들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베드로가 고린도에 체류했거나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근거가 희박해진다. 그는 유대인 그리스도교인의 대표자라는 견해를 갖기 쉬우나(갈 2:11 이하에 근거) 고린도전서에는 할례나 율법 준수를 강조하는 분파나 경향에 대해서 들을 수는 없다. 그 외에도 바울이 서신의 어느 부분에서도 이들 "분파들" 중의 어느 한 파 혹은 다른 파에 관심을 표명했다는 것이 증명되어지지도 않을 뿐 만 아니라 5장 이후에는 분파에 대한 언급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은 1 - 4장에서 실제로는 전체 교회를 상대로 말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 결과 최근의 연구는 "그리스도파()"에 집중되고 있다. 그들은 베드로파에 반대하는 급진적인 유대인 그리스도인들, 주님의 동생 야고보파,성령주의자들, 자유주의적 영지주의, 혹은 하나님과 자유의 영성을 강조한 자들과 동일시되기도 했다.그러나 서신 전체는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속하였다고 말하나" 그 실상은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속하였다고 말하는" 영적으로 교만한 자들을 지칭하고 있다.

 

이들은 "성령 열광주의(spirit-enthusiasm)"에 근거하여 그리스도교 메세지를 영지주의적으로 왜곡하는 자들이었다. 이러한 경향은 자신들이 이미 그리스도와 합일함으로써 완전한 구원 상태에 이르렀고 육()으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로와졌다고 주장하며 "므든 것이 가하다"는 자유 방임주의를 표방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곧 영지주의적인 열광주의적 경향이기도 하다. 바울은 서신 전체에서 이러한 경향에 반대해서 건전한 생활과 육의 부활을 강조하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분을 선포하고 있다.

 

2. 교회 안의 파당 문제


마펫(J.Moffatt)은 말하기를 "바울은 여러 당파의 주장들을 분석하지 않는다. 그는 전체로나 부분적으로 그들의 견해를 말하기 보다는 그들이 품고 있는 분열 정신에 관계한다."고 하였다. 어떤 이들은 이 당파들이 교리적으로 다른 바가 없었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의 신학 사상을 그 펴지에서 왜 전해주지 않았겠는가 설명하려고 한다.

 

그로샤이데(F.W. Grosheide)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1장에서 교회원들이 일정한 교리, 곧 빗나간 교리에 집착한 그들의 슬로건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우리가 여기서 발견하는 한 가지는 각 고린도 교인이 자기의 표어를 가진다는 것이다. 그들 사이에 다른 점이라고는 이 슬로건뿐이다...그리고 다음 장에서 바울이 몇 가지 죄를 견책할 대 견책받는 사람은 한 그룹만이 아니고 전체 교회이다.

 

"그러나 이 파당이 그 지도자로 대표되는 사상적 입장을 모르고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만일 지도자 각자의 입장을 체득하고 그것 때문에 싸우는 당파였다면 끝내 그 파당이 몇 개의 교회로 발전해 나갔을 것이고 마침내 복음의 중심에서 이탈한 소종파나 이단으로 변해갔을 것이다. 그러한 조짐은 보이지 않고 고린도후서에서 그러한 문제가 다시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보아 바울의 서신으로 그 "다툼"은 해결된 것 같다. 슐라터는 "그들의 바울 의존성이 변질한다든지 그를 위해서 열광주의자가 되었다는 말은 두 서신에 한 마디도 없다고 한다.

 

이 분쟁의 의미는 고린도 교인들이 지성적 성장이라는 관점에서 지도자들의 가르침의 차이를 간취함으로써 시작한 불협화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그래서 바레트(C.K.Barrett)는 이 서신(1:11등)에서 말하는 분쟁()은 파당(Party)이 아니고 분란, 또는 다툼이라고 말했다. 심한 의견 대립이라 볼 수 있다. 우리가 각 파당을 개별적으로 검토할 때 어떤 특징에서 구별할 것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바이스(J.Weiss)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게바파에 대한 판단을 제시하기 어려운 것은 그들이 아볼로파와 구별되게 분명히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바울이 3장 5 - 9절과 3장 10 - 17절에서 지도자들에 대해 말한 후 한 책망으로써 함께 묶어 4장 13절까지 계속해서 언급한다. 본문의 이 부분에서는 두 파당을 그의 마음 속에서는 결합시켜 하나의 그릇된 불순종, 교만한 적대의 그룹으로 만든 것 같다. 우리가 이제껏 아볼로 추종자 사이에서만 발견되리라 생각한 지적 기만이 3장 18절이하에서는 직접 게바파의 지도자들에 대해서 던져진 것에 연관시켜 책망받고 있다.

 

" 또 그는 다른 곳에서 "그리스도파란 것은 끼어들어간 난외구"라고 지적한다. 또 레이크(Kirsopp Lake)는 만일 바울의 대적자를 성령주의자들( )이라고 하기를 승인한다면 아볼로파를 "성령파('spiritual' party)"로 여기기는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이와같이 그 당파들을 단순히 관념적으오 분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제 각파의 정체를 파악해 보도록 하자.

 

1) 아볼로파


"나는 아볼로에게()"라는 표현을 "아볼로파"라 약칭하겠다. 아볼로파는 다른 분파보다 파악하기에 유리한 점이 있다 그린도전서와 사도행전은 아볼로가 실제로 고린도를 방문했고 거기서 활동했다고 말하는데 일치한다. 고린도전서에서 그의 방문은 바울의 첫 체재 후이며 또 이편지를 쓰기 전에 실현됐다는 것이 명료하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고...(3:16)". 또 1 - 4장을 보면 바울에게 그가 가장 큰 주목거리였음을 알게 된다.그랜트(R.M.Grant)는 고린도의 파당적 알력에서 아볼로의 비중을 높이 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알력은 실제로는 바울과 아볼로 사이에 있었던 것 같다. 또는 도리어 둘의 견해를 그릇 해석하는 각자의 추종자들 사이에 있었을 것이다. 바울과 아볼로는 원칙적인 적수(3:4 - 9)였던 것으로 보이며 또는 그렇게 보이도록 되었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의 유대인이었고 달변이며 성서를 잘 풀어 말했다(행 18:24). 그가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다는 것(행 18:25)은 아마 그가 요세푸스가 했던 것과 같이(Ant. xxiii 117) 에세네 교도들의 양식에 따라(Beii. ii 138) 세례를 몸의 의식적 정결로 이해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다." 이 서술은 아볼로의 인격과 역할을 잘 엿볼 수 있게 한다. 타이더스(Eric L. Titus)는 다른 각도에서 이렇게 말한다.

 

"바울이 고린도전서에서 토론된 문제를 자신과 아볼로에게(4:6)축소한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만일 아볼로가 참으로 육의 가시였다면 고린도의 상황에 관계된 한, 그때 바울에 관해서 말하는 '지혜'와 '신비'가 복음의 알렉산드리아적 알레고리적 해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초대 그리스도 교사의 두 큰 인격 사이를 조명하기 위해서 이같은 대립을 허락할 수 있겠는가?

 

 확실히 바울의 서신에서 그것이 명료하지 않으나 그때 그것을 명백하게 만드는 것은 결코 명석한 일은 아닐 것이다. 아볼로는 현존한 문헌이 묘사하는 것보다 더 영향력 있는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또 맨슨(T.W.Manson)도 아볼로파는 교회의 참된 분열을 대표하지 않는다고 보는데 그가 문제된 것은 설득력있는 설교로 그를 신앙의 아버지로 본 교회원이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바울의 권위를 침범했을 수 없다고 한다.

 

그리고 바울 자신은 아볼로를 필요로 하고 가치있는 동역자로 인정하였다(고전 4:6). 레이크(K.Lake)는 "바울과 아볼로 사이의 명백한 친근 관계"를 고린도전서 10장 12절을 인증하면서 변호한다.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쓸 무렵, 아볼로는 고린도를 떠나 에베소에 머물렀고 고린도 교인들의 질문과 관련하여 바울이 그에게 고린도로 가기를 강권하였으나 갈 의사()가 없다고 말했다는 것이다(16:12).

 

전시대의 주석가들은 이 "의사"라는 말을 아볼로의 것으로 보는 이와 하나님의 뜻으로 보는 사람들로 갈라졌다. 여하간 이런 증빙으로써 아볼로는 결코 바울의 경쟁자가 될 수 없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2) 게바파


어떤 학자들은 베드로를 고린도 교회의 사정을 가장 어렵게 만든 주된 분란의 근원으로 부각시킨다. 이 학자들이 사용한 증거들 중 많은 것이 고린도 후서에 나타난다. 주로 뒤퐁(Jacque Dupont)은 고린도후서의 "그들이 히브리인이냐?..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이냐?(
고후 11:22)"등의 구호에서 바울의 대적자들은 유대인 그리스도인 그룹이었다고 가정한다.

 

또 녹스(W.L.Knox)도 같은 고린도후서의 구절(11:13)을 기초로 하여 "거짓 사도"가 고린도전서에서 반영된 바울에 대한 저항에 책임이 있다고 한다. 다른 학자들은 베드로가 친히 고린도를 방문하였고 자기의 이름을 붙여 지칭할만한 개종자를 얻으려 했다고 주장했다.

 

헤링(J.Hering)은 이 그룹은 의심의 여지없이 사도 시몬 베드로의 추종자를 말하는데 그가 고린도를 방문했다는 것에 대해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른다고 하고, 이 파는 "아마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은(비. 1:17) 팔레스틴 출신 유대 그리스도인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라고 한다. 앞에서 녹스등이 주장한 고린도후서의 바울의 대적자들은 유대주의자들이며 거기서의 게바파와 연관되었으리라는 생각은 그 대적자들이 유대주의적 색채와 헬라주의적 색채를 함께 가졌다고 주장하는 프리드리히(G.Friedrich)의 이론에 직면하여 무색하게 된다.

 

게바파가 율법주의적 유대주의자였으리라는 추측을 반대하는 학자들이 많다. 그리고 동시에 게바파는 독립된 존재로서 바울에게 큰 적대 세력이었을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곧 레이크는 "바울의 대적자들로서 유대인이었으나 성령주의자()였지 유대화 획책자(Judaizers)는 아닌 사람들이 존재했을 것"을 말한다. 그리고 말하기를 "유대화된 성 베드로의 모습은 역사에 근거없는 튜빙겐 비판주의자들이 꾸며낸 이야기이다"라고 말한다.

 

맨슨은 고린도 교회의 고린도전서 12-14장에 나타난 것 같은 예배의 과잉 -그것은 흔히 헬라적 영향의 결과라고 생각되었는데 -은 "영의 참된 표징으로서 방언을 권장하는 게바파의 요청"때문이라고 생각했다.벤트란트는 이렇게 추측한다."아마 게바파 사람들은 원 사도들을 인증하면서 바울의 사도직을 공격한 것 같다. 최소한 그들은 그들의 그리스도인된 신분의 특수성을 강조한 팔레스틴적 유대 그리스도인이었을 것이다.

 

" 바울파의 요구가 무엇이었겠는가에 대해서 필하우어는 바울파와 아볼로파가 왕성함에 따라 게바의 권위를 주장하는 이들이 소수로 고립됨으로서 적극적인 자세로 진출한 것이라고 한다. 그 파의 크기가 얼마나 됐는자는 바울파나 아볼로파의 크기를 알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특히 영지주의파 또는 성령주의자가 바울파, 아볼로파 중에 어느 쪽에 더 근친하였는지도 모른다. 다만 바울이 서면 질의에 대해 대답할 때 어느 당파를 염두에 두고 하지 않았다는 일이 그 파당들을 어떻게 다루었는가 하는 모습을 제시해 준다고 한다.

 

위의 토론들을 참고하면서 우리는 첫째로 게바 자신이 고린도에 왔다고 생각지 않으며 다만 사도의 질서에 대해 바로 생각해 보려고 하고 교회에 대해 베드로의 존재가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한 그룹의 사람들이 존재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들은 독립된 세력으로 있었다기보다는 바울의 사도직의 정당성이 문제될 때 베드로를 잊지말 것을 강조하고 구속자적 맥락을 존중한 사람들이리라고 추측할 수 있다. 베드로파가 헬라적 영향 아래 예배의 과잉을 가져오고 방언을 권장한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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