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사도행전

[스크랩] 사도행전 (22 : 1~30)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0:35
사도행전 22장


1 부형들아 내가 지금 너희 앞에서 변명하는 말을 들으라 하더라

ㅇ부형들아 - '형제들과 선배 여러분'으로 번역될 수도 있으며(공동 번역), 매우 정
중한 표현으로 스데반이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연설할 때 사용한 호칭과 동일하다
(7:2). 또한 이 호칭은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저 의인'(14절) 등과  함께 유대적
풍취를 강하게 드러내는 말이다. 바울은 이러한 표현을 통해 자신과 유대인 무리들과
의 동질성을 강조함으로써 자신이 무작정 이스라엘의 전통을 훼방하는 자가 아님을 나
타내 보이고자 했다.
ㅇ변명 - 헬라어 '아폴로기아스'는 '...로서', '...을 가지고'
의 의미인 전치사 '아포'와 '말'(word)을 뜻하는 '로기아'
의 합성어이며 현대 영어의 '변명'(apoiogy)은 이 헬라어에서 유래했다.

2 저희가 그 히브리 방언으로 말함을 듣고 더욱 종용한지라 이어 가로되

ㅇ히브리 방언...종용(從容)한지라 - 바울은 무리들과의 민족적 동질성을 확인시킬
수 있는 아람어로 말하였는데 그것은 의외로 효과를 거두어 무리들로 하여금 조용히
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아마 무리들은 바울이 배교자(背敎者)이자 민족을 버린 자
로 여겨 분노했을 터인데, 바울이 아람어로 말하자 너무도 뜻밖이라는 생각에 감정이
누그러져 그의 말을 듣고자 하는 호기심이 생겼을 것이다. 사실 당시의 디아스포라 유
대인들 중 대다수는 히브리어나 아람어를 잘 몰랐다. 심지어 1세기의 가장 뛰어난 유
대인학자인 필로(Philo of Alexandria) 조차도 , 모세 오경에 대해 방대한 주석을 남
겼음에도 불구하고, 히브리어로 씌어진 오경을 해독하지 못했다한다(I. H. Marshall).

3 나는 유대인으로 길리기아 다소에서 났고 이 성에서 자라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들의 율법의 엄한 교훈을 받았고 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ㅇ가말리엘의 문하에서...열심하는 자라 - 가말리엘은 당시의 유명한 교법사 즉 율법
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유대인들 가운데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5:34). 로버트슨
(Robertson)에 의하면 가말리엘은 유대인들로부터 '우리의 랍비'(랍반)라는
최고의 칭호로 불리어지는 일곱 랍비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바울이 이 가말리
엘에게서 율법을 배웠다는 것은 그 누구에 못지않게 율법에 정통한 식견을 지녔음을
말해준다. 바울은 이를 강조하기 위해 '엄한 교훈을' 받았다고 덧붙인다. 한편 바울은
본절에서 자기를 소개함에 있어서 '태생'(길리기아다소, 21:39), '성장'(이 성에서)
그리고 '교육'(가말리엘 문하)에 관해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고대 세계의 전통적인
자기 소개법에 해당한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자신이 유대인이고 율법에 정통하며, 하
나님께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열심을 가진 자라는 것을 강조했다(고후
11:22;갈 1:14;빌 3:5).

4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넘겼노니

ㅇ이 도를 핍박 - '이 도'의 헬라어 '헤호도스'는 문자적으로 '길'이
라는 뜻이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이 도'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신앙 또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가리킨다. 바울이 자신을 가리켜 '이 도를 핍박하는 자'로 소
개하는 것은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26:10;고전 15:9;갈 1:13, 23;빌 3:6;딤전 1:13).
바울은, 무리들이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것보다 훨씬 더 열심이
었음을 강조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사람을 죽이기까지 하였고 남녀를 결박하여 옥에
처넣은 사실이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는 성경에 기록된 것(7:54-60;8:1-3) 외에
도 바울이 교회에 대해 핍박한 사례(事例)들이 더 많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바올이 후
에 자신을 가리켜 '훼방자', '핍박자', '포행자'(딤전 1:13), 또는 '죄인 중의 괴수'
(딤전 1:15)라고 말한 데에는 이러한 사실이 적잖게 작용하였을 것이다.

5 이에 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이 내 증인이라 또 내가 저희에게서 다메섹 형제들에게
가는 공문을 받아 가지고 거기 있는 자들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끌어다가 형벌
받게 하려고 가더니

ㅇ대제사장과 모든 장로들 - 바울은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에 최고의 신빙성
을 부여하기 위하여 당시에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들로 인정받았던 대제사장과 장로
들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이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던 바(9:2), 바울은 산헤드린의
대표인 대제사장이 서명한 위임장을 가지고 다메섹으로 가고자 했었다. 한편 9:2에서
는 대제사장에게 공문을 받은 것으로 되어 있는데 본문에서는 대제사장 뿐만 아니라
모든 장로들까지도 언급된다. 이것은 9:2에서 공문을 받은 것이 대제사장 개인에게 받
은 것이 아니라 전체 산헤드린으로부터 받은 것임을 가리킨다. 다만 대제사장이 산헤
드린의 의장 즉 대표로서 서명을 했을 것이다. 한편 본문 당시의 대제사장은 아나니아
였지만(23:2) 바울이 다메섹으로 갈 당시에는 가야바가 대제사장의 자리에 있었다.
ㅇ다메섹 행제들 - 다메섹은 동쪽으로 안티레바논 산맥과 남서쪽으로 헤르몬 산, 남
쪽으로 아스왓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고대 수리아의 수도를 가리킨다. 이 도시는 바르
발 강을 끌어들여 관개 용수(灌漑用水)로 사용한 과수원과 정원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형제들'은 다메섹에 있는 율법에 충실한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ㅇ거기 있는 자들 - 이들은 본래 다메섹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라 스데반
의 순교 이후 각지로 흩어진 예루살렘의 성도들 가운데 그곳으로 피난했던 사람들로
짐작된다.

6 가는데 다메섹에 가까왔을 때에 오정쯤 되어 홀연히 하늘로서 큰 빛이 나를 둘러
비취매

ㅇ오정쯤 되어...큰 빛이 -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장면이
묘사된다. 9:3과 거의 비슷한 묘사가 전개되고 있는데, 그 때의 시각이 오정쯤 되었다
는 것과 홀연히 바울을 둘러 비추인 하늘의 빛이 매우 강렬했다는 사실은 여기에만 나
타나는 상세한 묘사이다. 이 빛은 정오의 태양 광선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강렬했기
때문에 바울은 사흘 동안 눈이 먼 상태로 지내야 했다(9:9). 그런데 이 빛은 바울에게
만 집중적으로 비춘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함께 있던 사람들은 별 이상이 없었으나
바울만 눈이 멀었기 때문이다(11절).

7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가로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하시거늘

ㅇ땅에 엎드러져 - 본절은 9:4와 거의 동일한 표현이다. 공동 번역에서는 '땅에 거꾸
러져'로 옮겨졌는데, 이것은 바울에게 비추인 하늘의 빛이 단순히 밝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신비스러운 힘을 가지고 있어 그를 무력화시켰음을 시사한다.
ㅇ사울아 사울아 - 사울이라는 이름은 바울의 히브리식 이름이고 바울은 사울의 헬라
식 이름이다. 본문에 대한 주해는 9:4 주석을 참조하라.

8 내가 대답하되 주여 뉘시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ㅇ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 - 본문 역시 9:5와 동일한 표현이다. 다만 여기서는 예
수라는 이름 앞에 '나사렛'이라는 지명이 첨가되어 있다. 당시에는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많았는데 다른 사람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신 바로 그
나사렛 출신의 예수임을 말한다. 여기서는 사울이 핍박했던 그리스도인들과 부활하신
주님이 동일시(同一視)되고 있다. 이는 주님께서 성도들이 당하는 모든 일들 가운데
늘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며 또한 일찍이 주님께서 성도들과 항상 함께 있었다
고 약속하셨던 바의 성취이다(마 28:20).

9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빛은 보면서도 나더러 말하시는 이의 소리는 듣지
못하더라 ㅇ빛은 보면서도...듣지 못하더라 - 9:17에서는 주위에 있던 사람들이 소리만

듣고
보지는 못하였다고 하는데 비해 본문에서는 빛은 보았으나 소리는 듣지 못하였다고 기
록하고 있다. 이두 진술 사이에는 표현상의 차이가 있지만 본질적인 내용은 사실 일치
하고 있는데 그것은 바울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주님을 만나는 경험에 참여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다. 주위 사람들은 빛을 보기는 하였으되 그것을 영광스러운 예수의
계시로 보지 못했으며, 또한 소리를 듣긴 했지만 그 구체적인 의미는 알아들을 수 없
었던 것이다. 오직 바울만이 그 순간에 있었던 사건의 경험자이자 완전한 참여자였다.
바울은 그 순간 하늘에서 들려오는 부활하신 주님의 음성을 분명히 들었고 그리하여
자신이 지금까지 해왔고 앞으로도 하려고 했던 일들이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인식했
다. 결국 바울은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라는 물음을 묻게 되는 데까지 이르게 된다
(10절).

10 내가 가로되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다메섹으로 들어가라
정한바 너의 모든 행할 것을 거기서 누가 이르리라 하시거늘

ㅇ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 9:6에는 다메섹으로 들어가라는 명령만이 주어지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바울의  질문을 기록함으로써 그의 회심 과정을 자세히 묘사한다. 이 질
문에는 바울이 자신의 행한 일들과 자신의 신념이  잘못되어 있음을 인정하고 뉘우치
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것은 마치 오순절의 권능을 받은 베드로가 설교를 하자
마음에 가책을 받은 유대인들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뉘우친 사실과 유사
하다(2:37). 바울은 자신의  잘못을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보다 적극적인 자세로
장차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데 이는 진정한 회개 또는 회심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준다.
ㅇ다메섹으로...누가 이르리라 - 이는 바울의 회심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영
원하신 계획 속에 있었음을 말해준다. 주님께서는 바울의 삶을 감찰(鑑察)하고 있었으
며 이제 그 결정적인 때가 되자 그를 부르신 것이다. 바울에게는 해야 할일이 정해져
있었고 그 일을 그에게 이를 자도 마련되어 있었다.

11 나는 그 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의 손에
끌려 다메섹에 들어갔노라

ㅇ빛의 광채를 인하여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사람들의 손에 끌려 - 바울에게 집중
적으로 내려쪼인 강렬한 빛은 그의 눈을 멀게 하였다. 이것은 다메섹으로 가는 중에
쬐인 팔레스틴의 강한 햇빛 때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아무리 강한 햇빛을 쳐다보았
다 해도 몇 초 또는 몇 분 안에 곧 정상 시력을 회복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울은 자그마치 사흘동안이나 장님 신세가 되어야 했으며 그것도 아나니아의
안수 때문에 볼 수 있게 된 것이다(9:8). 이러한 바울의 회심 체험은 아무런 근거 없
는 단순한 환상이나 심리적 착각이 아니었다. 본문에서 실제로 그가 눈이 멀게 된 사
실이 여러 증인들에 의해 확인되고 있다. 한편 "볼 수 없게 되었으므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표현 '우크 에네블레폰'은 미완료 과거형으로 되
어 있어 바울의 눈먼 상태가 지속되었음을 시사한다.

12 율법에 의하면 경건한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아나니아라 하는 이가

ㅇ경건한...아나니아 - 9:10에 의하면 아나니아는 주님의 제자로 소개되고 환상 중에
바울을 찾으라는 주님의 명령을 듣는 것으로 되어있다. 경건한 사람이라는 표현은 유
대교의 정통신앙을 잘 지키는 사람을 가리킨다. 바울은 이어서 아나니아가 진정으로
경건한 자였음을 강조하기 위해 모든 유대인이 그를 칭찬했다는 말을 첨가하고 있다.
바울이 이처럼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보아도 흠없고 온전한 신앙을 지닌 아나니아와 자
신의 회심의 과정을 강조하여 관련시키는 것은 자신의 회심이 경건한 유대인조차 인정
하였던 것이니 만큼 결코 유대인들에게 이해될 수 없는 것이 아님을 변증하려는 의도
에 기인한다.

13 내게 와 곁에 서서 말하되 형제 사울아 다시 보라 하거늘 즉시 그를 쳐다보았노라

ㅇ형제 사울아...쳐다보았노라 - 바울이 다시 눈을 떠 보게 된 과정이 9:17, 18에 비
해 매우 간략하게  언급되고 있다. 본문의 상황은 시간과 분위기가 매우 촉박하였으
므로 중요한 부분만 자세히 설명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다시 보라'
(아나블려손')는 명령은 '아나블레포'의 부정과거  명령형인데 더
분명하게는 '다시 시력을 회복하라'이다. '즉시'라는 말은 아나니아의 명령과 바울의
시력 회복 사이의 동시성(同時性)을 강조해 준다. "그를 쳐다보았노라"는 말은 '나는
시력을 회복하여 그를 쳐다보았다'(I received my sight and saw him, RSV)는 의미이
다. 바울이 다시 눈을 뜬 것은 그의 거듭남을 의미하며 이전과는 전혀 다른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보게 됨을 뜻한다.

14 그가 또 가로되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이 너를 택하여 너로 하여금 자기 뜻을 알게
하시며 저 의인을 보게 하시고 그 입에서 나오는 음성을 듣게 하셨으니

ㅇ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 바울은 자신의 회심과 소명을 청중들에게 설명함에 있어서
가능하면 그들을 흥분시키지 않고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 용어 선정을 매우 세심하
고 신중하게 하고 있다. 처음 그는 의도적으로 아람어를 사용하였고(2절;21:40), 자신
이 온전한 유대인이자 율법을 잘 아는 자임을 말했으며(3절), 아나니아를 설명할 때는
'경건한 사람'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었다. 지금 사용하고 있는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
이라는 표현 역시 유대적 색채를 강하게 지닌 말이다. '우리 조상들의 하나님'은 아브
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며 지금 바울 앞에 선 유대인들이 열심을 다해 섬기노
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하나님인 것이다.
ㅇ택하여...알게 하시고...보게 하시고...듣게 하셨으니 - '택하여'에 해당하는 헬라
어 '프로에케이리사토'는 '미리 손으로 잡다'란 뜻으로
바울의 소명이 전적인 하나님의 붙드심에 의한 것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바울을 택
하여 그에게 세 가지를 행하셨다. 첫째는 '당신 뜻'을 알게 하셨다. 하나님의 뜻을 분
명히 안다는 것은 새로운 차원의 신앙을 갖게 될 바울에게는 매우  중요한  일이였다.
그는 지금까지 자기가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던 하나님의 뜻에 대한 오해를 수정
해야하며 이제는 하나님의 올바른 뜻을 받들어야 했다. 둘째는 '의인' 즉 부활하신 예
수를 보게 하셨다. '저 의인'은 메시야에 대한 별칭으로  유대인들이 죄인으로 여겨 
십자가에 못박아 죽인 예수가 사실은 의인이고 메시야이셨음을 말해준다. 바울이 부활
하신 주님을 만난것은 그로 하여금 기독교인으로서의 확실한 신앙을 갖게 만든 체험
인 동시에 그의 사도직의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고전 9:1;15:8)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셋째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말씀을 듣게 하셨다
(7, 8절).  이 세 가지는 사도 바울에게 뿐만 아니라 성숙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고
자하는 모든 성도들에게 필히 기억되어야 할 사항이다.

15 네가 그를 위하여 모든 사람 앞에서 너의 보고 들은 것에 증인이 되리라

ㅇ모든 사람 앞에서...증인이 되리라 - 하나님께서 바울을 택하여 당신의 뜻을 알게
하고 부활하신 주님을 보게 하고 그의 음성을 듣게 한 것은 궁극적으로 당신의 증인으
로 삼고자 함이었다. 여기서 '모든 사람'이라는 표현은 바울이 지니는 증거의 포괄성
과 이방인에 대한 그의 선교사명을 암시하고 있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Lenski), 9:
15와 26:17에 비추어 볼 때 이 견해는 타당한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바울이 증거해야
했던 내용은 '보고 들은 것'이다.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어떠한 사상이나 개인의 신념
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듣고 본 바를 충실히 전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점을 잘 알고
있었고 충실히 이행했다(4:20).

16 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

ㅇ왜 주저하느뇨 - 이 말씀은 결단을 촉구하는 것으로, 아직도 확신을 갖지 못하여
망설이는 바울을 책망하는 뜻이라기 보다는 어서 속히 은혜에 참여하라는 초대의 말씀
으로 이해됨이 더 적절하다. 
ㅇ주의 이름을 불러...죄를 씻으라 - 2:38에서처럼 여기에서도 주의 이름과 세례와
죄 씻음이  연결되어 언급된다. 이것은 세례 의식이 죄 씻음과 밀접히 연관되어 시행
되었음을 말해준다. 물론 세례 그 자체가 죄 씻음이라는 효과를 발생시키는 것이 아니
라 '주의 이름'으로 행해질 때 비로소 죄 씻음의 효력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세
례는 예수께 대한 믿음의 표현이며, 죄사함을 상징한다(19장 주제 강해, '물 세례 연
구' 참조).

17 후에 내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 이 때를 바울이 회심한 후 처음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때, 즉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는 경험을 한 후 3년간 아라비아에서 체류한 다음 예루
살렘을 방문한 때(9:2;갈 1:17-19)라고 보는 견해와(Bruce) 두번째 방문(11:30)이라고
보는 견해가 있으나(Ramsay) 전자가 유력하다.
ㅇ성전에서 기도할 때에 - 여기서는 바울이 주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장소가 성전이
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에게 있어 성전은 거룩한 장소이므로 그곳
에서 바울이 계시를 받았다면 어느 누구도 그 계시의 진정성(眞正性)에 대해 함부로
시비를 걸 수 없기 때문이다.

18 보매 주께서 내게 말씀하시되 속히 예루살렘에서 나가라 저희는 네가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하시거늘

ㅇ예루살렘에서 나가라 - 바울에게 내려진 계시는 즉시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것이었
다. 9:29에 의하면 헬라파 유대인들이 바울과의 견해 차이에 분노하여 그를 죽이려 하
였음을 알수 있는데 이것은 바울의 증거를 듣지 않은 극단적인 한 예일 것이다. 바울
이 예루살렘을 나가는 것은 이방인의 사도로서 이방 땅으로 향하는 것을 의미한다.

19 내가 말하기를 주여 내가 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 또 각 회당에서 때리고

ㅇ주 믿는 사람들을 가두고...때리고 - 회심을 체험한 바울은 자신이 이전에 저지른
일이 하나님을 훼방한 자들을 징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를 믿는 자들을 박해한 것
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다. 자신이 과거에 잘못한 일들(8:3)을 숨기려 하
지 않고 솔직히 고백하는 것에서 그의 진정한 거듭남을 볼 수 있다.

20 또 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내가 곁에 서서 찬성하고 그 죽이는
사람들의 옷을 지킨줄 저희도 아나이다

ㅇ주의 증인 스데반의 피를 흘릴 적에 - 바울이 저지른 잘못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스
데반을 죽이는 일에 가담했던 일이었을 것이다(7:57-60). 바울은 자신이 직접 돌을 들
어 스데반을 치지는 않았지만 그를 죽이는 일에 찬성하였고 그를 죽이는 일에 가담한
자들의 옷을 지켰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이 직접 죽이는 일 이상의 책임을 갖고 있었음
을 말해준다. 이제 바울은 스데반을 재평가(再評價)하고 있는데, 그를 가리켜 '주의
증인'이라고 불렀다. 여기서 '증인'(마르튀로스)은 계 2:13;17:6
에서 처럼 '순교자'의 의미를 갖는다고 보는데(Robertson, Haenchen), 실제로 흠정역
에서는 '순교자'(martyr)로 번역되고 있다. 한편 바울이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주님의
명령을 듣고 과거에 자신이 기독교인들을 박해한 일을 다시 회상하여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 어떤 학자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 남아 유대인들을 상대로 복음을 증
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본다(Bruce, Lenski). 그러나 자신이 과에
저지른 잘못을 생각할 때 감히 복음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과분한 일임을 고백하는 의
미로 이해할 수도 있다.

21 나더러 또 이르시되 떠나가라 내가 너를 멀리 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하셨느니라

ㅇ이방인에게로 보내리라 - 바울의 이야기가 어떤 의도에서 나온 것이든(19, 20절),
주님은 재차 그에게 떠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다. 본문에서는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것이 이방인에 대한 전도의 사역을 맡기기 위한 것임이 더 분명해지고 있다. 그리고
바울 자신에게는 본 명령이, 이방에 대한 복음 전파가 그의 소명임을 확인받는 계기가
되었다.

22 이 말 하는 것까지 저희가 듣다가 소리질러 가로되 이러한 놈은 세상에서 없이
하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

ㅇ이 말하는 것까지...살려 둘 자가 아니라 - 바울의 조심스러운 연설을 잠잠히 듣던
무리들은 바울의 이방 선교 소명(召命)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순간 마치 휴화산이 폭
발하듯이 다시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다시금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21:36). 오히려 '살려둘 자가 아니라'는 첨가어는 상황이 더 악화되었음을 말해준다. 
배타적이며 완고한 선민 의식과 이방인에 대한 우월 의식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들의
전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장면이다.

23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니

ㅇ떠들며...던지고...날리니 - 연속되는 세개의  현재분사형(크라우가존톤, 립툰톤,
발론톤)은 격
렬한 분노와 흥분으로 인하여 종잡을 수 없이 설치고 날뛰는 난폭한 군중들의 모습을
매우 현장감 있게 묘사하고 있다. 위에 언급된 세 가지의 표현은 극한 감정의 상태를
나타내는 것으로 구약성경에서도 비슷한 예를 찾아볼 수 있으며 대개 비통, 울분, 애
통함을 표현하는 행위로 묘사된다(욥 2:12;삼하 16:13;계 18:19). 혹자는 본문에 묘사
된 군중들의 상태가 바울을 돌로 쳐죽일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보기도 하는데
(Preuschen), 지금의 상황은 로마 병사들이 지켜 서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
려고 덤벼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다만 즉각적인 본노의 표현이라고 할 수있다.

24 천부장이 바울을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고 저희가 무슨 일로 그를 대하여
떠드나 알고자 하여 채찍질하며 신문하라 한대

ㅇ채찍질하며 신문하라 - 바울이 유대인 청중들에게 말할 때 아람어로 말했으므로
(21:40), 천부장은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고 다만 군중들의 흥분으로 보아
바울에게 무엇인가 잘못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을 것이다. 여기서 채찍은 가죽 끈
에다 쇠조각과 뼈를 매단 것이며 이것으로 심하게 맞을 경우 불구자가 되거나 죽기까
지도 하였다. 이 채찍질은 로마인이 아닌 사람이나 노예를 심문할 때 사용하였는데,
지방에서는 자유인에 대해서도 공공연히 채찍질을 가하여 심문하였다고 한다. 바울의
고백에 의하면 그의 전도 활동 중에 매를 맞는 고난을 많이 당했는데,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고, 태장(笞杖)을 세 번 당했고 한 번은 돌로 맞
았다고 한다(고후 11:24, 25).

25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

ㅇ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 당시에는 혐의자에게 채찍질을 가하기 위해 기둥이나 말뚝
에 채짹질하기 좋은 위치와 자세로 묶었다. 이때 채찍질의 표적은 대개 등이었다.
ㅇ로마 사람 된자 -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고 로마시민의 권리에 대해서
도 잘 알고 있었다. 당시에 로마 사람들은 발레리안 법(Lex Valeria)과 포르시안 법
(Lex Porcia)에 의해 보호를 받았는데, 정당한 재판에 의해 형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
에서의 채찍질은 금지되어 있었다.  만일 이 법을 어기고 함부로 채찍질을 가할 때는
엄격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 뿐만아니라 쥴리안 법(Lex Julia)은 로마 시민들이 로마
법정에 호소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이것을 잘 알고 있는 바울이 아무런 혐의도 없
고 재판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부당한 채찍질을 가하려 한 데 대해 항의를 하는 것
은 당연했다.

26 백부장이 듣고 가서 천부장에게 전하여 가로되 어찌하려 하느뇨 이는 로마
사람이라 하니

ㅇ백부장이...천부장에게 전하여 -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는 말을 들은 백부장은 매우
당황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무고한 로마 시민을 결박하여 채찍질을 가한 것은 명백
한 범법(犯法) 행위였고 그것에 대한 처벌이 어떤 것인지는 백부장 본인도 잘 알고 있
었기 때문이다.

27 천부장이 와서 바울에게 말하되 네가 로마사람이냐 내게 말하라 가로되 그러하다

ㅇ네가 로마 사람이냐...그러하다 - 백부장의 보고를 들은 천부장은 상당히 당황한
듯하다. 왜냐하면 일반적인 경우라면 피의자인 바울을 자기에게 불러 사실 여부를 묻
는 것이 상례일텐데 지금은 그가 직접 바울에게 달려왔기 때문이다. "네가 로마 사람
이냐"(쉬 로마이오스 에이)에서 '네가'(쉬)의
위치가 강조적인 자리에 있는데 이는 뜻밖의 상황에 직면한 천부장의 당황한 모습을
반영한다. 이에 비해 바울의 대답은 담담하고도 단호하다. 그는 자신이 로마 사람인
것을 애써 증명하려 하거나 설명하려 하지도 않고 단지 간단하게 그러하다고만 대답한
다. 천부장은 바울의 단호한 대답에 대해 더이상 의심을 갖지도 못하였다. 그것은 증
명서를 요구하거나 사실을 확인하기 위한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은데서 드러난다. 한
편 당사의 로마 시민들은 '토가'(toga)라는 긴 겉옷을 걸침으로써 로마 시민임을 나타
냈다. 그러나 토가는 착용이 불편했기 때문에 국가적 행사등이 있을 때 외에는 잘 착
용하지 않았다. 만약 바울이 이 토가를 입고 있었다면 로마 군대에 의해 연행되지도
않았겠으나 그는 앞의 이유외에도 민족적 배타성이 강한 예루살렘이었으므로 더더욱
그 옷을 입지 않았을 것이다.

28 천부장이 대답하되 나는 돈을 많이 들여 이 시민권을 얻었노라 바울이 가로되 나는
나면서부터로라 하니

ㅇ돈을 많이 들여...시민권을 얻었노라 - 당시에 로마 시민권은 로마인이 아니고서는
몇몇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매우 중요한 자격이었다. 그래서 로마 시민권은
정부의 고위층이나 로마를 위해 뛰어난 공헌을 했던 사람들에게만 선별적으로 주어졌
다. 그런 만큼 로마 시민권을 가진 사람은 상당한 명예와 권리를 누렸다. 그런데 시간
이 지나면서 이 시민권이 뇌물에 의해 주어지기도 했고 로마 황제들이 국고를 충당하
기 위해 시민권을 공개적으로 팔기도 했다. 특히 황제  글라우디오(Claudius) 때에는
그의 아내까지도 이 시민권을 팔아 치부(致富) 하였다고 한다(Dio  Cassius, History
LX). 이 천부장의 씨족명이 글라우디오(Claudius)인 것을 감안할 때(23:26) 황제 글라
우디오 치하에서 시민권을 산 것으로 보인다(Bruce, Longenecker). 이렇게 말하는 천
부장의 생각에는 자기는 많은 돈을 들여 시민권을 샀는데 전혀 돈이 많아 보이지 않는
초라한 바울의 외양을 볼 때 어떻게 시민권을 취득하게 되었는지 의아하다는 뜻이 있
는 듯하다.
ㅇ나면서부터로라 - 이 말은 바울의 아버지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한
다. 그러나 바울의 가문이 언제, 어떻게 로마 시민권을 소유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대체로 그 가능한 방법은 다음 세 가지로 추측된다. (1) B.C.171년경
다소가 헬라의 시(市)로 편입될 때 그 도시의 엘리트들이 로마 시민으로 인정되었는데
바울의 선조도 그 엘리트들 중에 포함되었을 것이다. (2) 바울의 선조중 누군가가 로
마의 행정관이나 장군에게 지대한 공헌을 하여 그 대가로 시민권을 얻게 되었을 것이
다. (3) 바울의 선조가 돈을 지불하고 취득하였을 것이다.

29 신문하려던 사람들이 곧 그에게서 물러가고 천부장도 그가 로마 사람인줄 알고
또는 그 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ㅇ천부장도...결박한 것을 인하여 두려워하니라 - 바울이 로마 시민이라는 것이 밝혀
지자 그를 심문하려던 자들은 물론 심문을 명령했던 최고 책임자 천부장도 두려움에
빠졌다. 왜냐하면 그는 재판에 의하지 않고는 로마 시민을 결박하거나 매질을 가하지
못한다는 로마 법을(25절 주석 참조) 어겼기 때문이다. 천부장은 뒤에 이 사실을 은폐
하기 위하여 허위 보고서를 총독에게 보냈다(23:26,27)

30 이튿날 천부장이 무슨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송사하는지 실상을 알고자 하여 그
결박을 풀고 명하여 제사장들과 온 공회를 모으고 바울을 데리고 내려가서 저희 앞에
세우니라

ㅇ결박을 풀고...온 공회를 모으고 - 바울은 로마인이었고 로마법에 의하면 고소한
사람이 있어야만 심문할 수 있었으므로 고소자가 없는 지금의 상황에서 함부로 바울을
심문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벌어진 사태에 대해서는 어떻게든 원인 규명을 해야
했고 또 그 문제가 종교적인 것이었으므로 산헤드린을 소집한 것이다. 이것은 천부장
이 바울 사건에 대해서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가지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왜냐하
면 자신의 주관적인 판단이나 흥분된 군중에 의한 여론 재판을 피하여 그래도 유대 민
족의 최고 법정인 산헤드린에서 사실을 규명하려 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사실상 산헤
드린은 바울을 적대하고 그를 죽이기까지 하려는 무리들이 가득한 반(反) 기독교 집단
이었고 거기에서의 심리(審理) 결과가 바울에게 불리할 것은 자명한 일이었지만 천부
장이 그것까지 생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여튼 바울이 산헤드린에 서게됨으로써
사건은 또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23 장).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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