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사도행전

[스크랩] 사도행전 (21 : 1~40)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0:35
사도행전 21장


1 우리가 저희를 작별하고 행선하여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ㅇ우리가 - 본서에서 '우리'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곳은 모두 네 곳인데
(16:10-17;20:5-15;21:1-18;27:1-28:16)  본 단락은 그 중 하나이다. 여기서 '우리'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견해의 차이가 있다. 혹자는 '우리'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바
울, 누가, 드로비모, 아리스다고 뿐이라고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바울과 헤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그러나 20:4에서 부로의 아들 소바더, 세군도, 가이오, 디모데, 
두기고, 드로비모, 아리스다고에 대해 언급한 이후 지금까지 그들 중 누구와도 헤어졌
다는 언급이 없다는 점과 헌금 전달자의 명단위에 열거된 이름 외에 다른 이름도 있
다는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들 외에도 다른 동행자들이 함께 했으리라 짐작된다
(Haenchen).
ㅇ저희를 - '저희'는 밀레도의 회중들과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가리킨다(20:17,
18).
ㅇ작별하고 - 헬라어 '아포스파스덴타스'는 동사 '아
포스파오'의 제1부정과거 수동태 분사인데, 이 말은 어떤 사람 또는
물건으로부터의 분리를 뜻하는 '아포'와 '끌다', '당기다'의 뜻인 '스파오'
의 합성어로 '찢어놓는다'는 의미로서 매우 어렵고도 아쉬운 이별의 장면
을 묘사해 주고 있다. 이것은 교역자로서의 바울과 그로부터 양육을 받는 성도들 사이
가 매우 친밀한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ㅇ고스 - 밀레도 남쪽 68km 지점에 있는 작고 비옥한 섬으로 명주, 솜, 고약의  산지
로 유명하며 또한 전설적인 의학자인 히포크라테스의 고장으로 규모가 큰 의학교가 있
었다.
ㅇ로도 - 이 지명은 '도데케네스'(Dodecanese) 제도 가운데 가장 큰 섬을 가리키며
더 구체적으로는 이섬의 북동쪽 끝에 위치한 도시를 가리킨다. 이곳은 소아시아 대륙
에서 19.2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장미의 섬으로 불리울 만큼, 피부한 일조량으로 하여
장미가 만발하는 섬이다.  또한 이곳에는 세계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태
양의 상징 아폴로 신상이 크게 서 있는데 당시에는 넘어져 있었다.
ㅇ바다라 - 이곳은 소아시아의 남서 해안에 위치한 루시아의 도시였다. 당시 '바다
라'는 수리아, 팔레스틴 및 애굽 동쪽연안의 지중해 항구들과 아시아, 마게도냐, 아
가야의 항구들을 왕복하던 큰 배들의 정박지로서, 아름다운 항구 도시이자 거대한 상
업 도시였다. 한편 한때 이곳에는 델피(Delphi)에 견줄만한 아폴로 신의 신탁소가 있
었다.

2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ㅇ베니게로 건너가는 - 베니게는 팔레스틴 북쪽 두로나 시돈이 위치한 지역을 포괄하
는 영역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이제는 에게해를 완전히 빠져나와 지중해를 가로질러
두로에 이르는 항로에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아마 이들은 바다라에서 두로로 직항
(直航)하는 큰 배로 갈아탔을 것이다.

3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 수리아로 행선하여 두로에서 상륙하니 거기서
배가 짐을 풀려 함이러라

ㅇ구브로를 바라보고...왼편에 두고 - 구브로는 바다라와 두로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지중 해상의 섬으로 과거에 바울과 바나바가 바보에서 바예수의 훼방을 물리친 바 있
다(13:4-12). 바다라에서 두로 방향으로 항해를 하자면 이 구브로섬의 남단을 지나가
게 되는데, "구브로를 바라보고 이를 왼편에  두고"라는 표현은 이 항로를 따라 배가
움직여갔음을 말해주며 동시에 이 배가 순항하였음을 암시한다.
ㅇ수리아 - 이 지역은 팔레스틴 서북방의 지중해에 접한 지역으로 이 지역의 남쪽에
두로가 위치해 있다.
ㅇ행선하여 - 헬라어 '에플레오멘'은 '항해하다'의 뜻인 '플레
오'의 미완료과거형으로서 구브로에 머무르지 않고 수리아에 도착할 때까
지 계속 항해하였음을 시사한다.
ㅇ두로 - 이 도시는 바로 위에 위치한 시돈과 함께 베니게의 오랜 항구 도시이다. 대
표적 이교 도시로 번영과 부패(腐敗)의 표본이었으며 늘 책망의 대상이었다(눅
10:13). 이 두로는 바다라에서 닷새의 항해 거리에 있었다고 하는데(Chrysostom,
Bruce), 이곳에 배가 정박한 것은 배의 짐을 내리기 위함이었다. 아마 이 짐은 과일이
나 곡물이었을 것이다(Robertson).

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ㅇ제자들을 찾아 - 이 진술은 두로에도 기독교 신자들이 있었음을 말해주는데 언제,
어떤 경로로 이곳에 복음이 전파되었고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그러나 학자들은 11:19에 의거하여 스데반의 순교 후 각지로 흩어진 교인들에
의해 복음이 전파되었을 것이라고 본다(Bruce, Lenski). 또한 이들 중에는 바울과 실
라의 2차 전도 여행시 전한 말씀을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자들도 포함될 것이다. 한편
본문의 '찾아'(아뉴론테스)는 '수색하여 발견하다'는 뜻을 내
포하는데, 이는 두로에 있던 교인들과 바울의 만남이 사전에 약속된 것이 아니라 수소
문의 결과로 인한 것이었으며 그곳에 있던 교인들의 수도 그리 많지 않았음을 간접적
으로 암시한다(5절 주석 참조).
ㅇ이레를 머물더니 - 바울 일행이 두로에 머문 것은 일주일 간이었다. 바울이 오순절
전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고 서두른 것에 비하면(20:16) 상당히 여유있는 행동으로 보
이는데, 이는 바다라에서 출발한 배가 해안선을 따라 항해하는 배가 아니라 지중해를
가로질러 가는 배였기 때문에 시간적으로 많이 단축(短縮)되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두로에 일주일간 머물러 있게 되었다 하더라도 그의 일정에는 별로 차질이 없었을 것
이다. 이는 그가 다른 배편을 찾지 않고 그냥 머물러 있었던 데서도 드러난다. 한편
바울 일행이 일주일간 머물러야 했던 이유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리는데, 헨헨
(Haenchen)에 의하면 바울 일행이 타고온 배는 두로가 종착지였기 때문에 그들이 가고
자 하는 방향의 배를 기다려야 했다고 보며, 이에 반해 벤트(Bent)나 람세이(Ramsay)
에 의하면 바울 일행이 다른 배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그 배의 짐을 풀고 다시 싣는데
이레가 걸렸기 때문에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고 한다. 3절의 문맥상 배를 갈아
탄다고 생각하기 보다는 짐을 내리고 싣는 동안 기다려야 했던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한 듯하다.
ㅇ성령의 감동으로 -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가고자 하였고(19:21), 그의 의도와 행동
은 성령의 인도를 받은 것이었다(20:22-24). 그런데 여기서는 두로의 성도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고 한다. 이것은 일견 성령의 역사가
모순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본문의 의미를 제대로 해석하면 그러한 오해는
해소될 수 있다. 즉 본문에서 성령의 감동을 받아 생겨난 결과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가면 고난을 받게 되리라는 내용이지 바울로 하여금 예루살렘행을 중단토록 만류하라
는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만류한 것은 바울을 존경하고 사랑하
는 성도들로서는 당연히 취할 수 있는 행동이었고 베드로가 예수의 수난 길을 만류(挽
留)했던 일과도 일맥 상통한다(마 16:22). 오히려 성령께서는 바울의 예루살렘행이 고
난의 길임을 재차 확인시켜준 것이며 바울은 그것에 대해 조금의 동요도 없이  성령의
지시하심을(20:22) 충실히 따를 뿐이었다.

5 이 여러 날을 지난 후 우리가 떠나갈쌔 저희가 다 그 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전송하거늘 우리가 바닷가에서 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ㅇ처자와 함께 성문 밖까지 - 바울 일행이 이레를 머물고 떠나가는 장면이 묘사되고
있는데, 밀레도 해변에서 그곳의 성도들과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과 이별할 때에 비해
서는 덜 애절하지만 매우 인상적인 장면이다. 비록 일주일밖에 안되는 짧은 기간이었
지만 하나님과 성령안에서의 그들의 교제는 매우 강한 사랑과 신앙의 유대를 만들어
냈다. 아내들과 아이들까지 모두 동행하여 바울을 전송하는 장면은 특히 인상적인데
이것은 두로의 신앙 공동체가 상당히 소규모였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하는 구절이
다. 또한 이 구절은 사도 시대에 교회와 관련하여 어린이에 대한 언급이 처음 나온 것
이라는 점에서도 주목시된다(Vincent). 한편 '성문 밖'은 구체적으로 배가 정박하고
있는 부두를 가리키는 것같다.
ㅇ무릎을 꿇어 기도하고 - 이 모습은 밀레도에서의 이별 장면과 동일하다(20:36). 서
서 기도해도 무방할 터인데 사람들의 이목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무릎을 꿇은 자세로
기도하는 것은 그들의 진지한 신앙의 자세를 보여준다. 이러한 기도는 그들의 교제가
온전히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뜻한다. 아마도 그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의 고
난을 성령의 인도하심따라 잘 견디어 낼 수 있도록 그리고 두로의 성도들이 타락한 이
방의 도시에서 신앙의 순결을 잘 지켜 나갈 수 있도록 한 목소리로 간구했을 것이다.

6 서로 작별한 후 우리는 배에 오르고 저희는 집으로 돌아가니라

ㅇ우리는 배에...저희는 집으로 - 누가는 이별의 장면을 세세한 부분까지 상세히 묘
사하고 있다. 여기서 '배에'라는 문구의 헬라어 표현에는 정관사 '토'가 첨가
되어 있어 이 배가 처음 타고 온 배와 다른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배임을 말해준다.

7 두로로부터 수로를 다 행하여 돌레마이에 이르러 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 그들과
함께 하루를 있다가

ㅇ돌레마이 - 이 지역은 두로에서 가이사랴 방향으로 35km 지점에 위치한 소항구로
구약 시대에는 악고(Acco, 삿 1:31)라는 지명으로 불리어졌었다. '돌레마이'라는 이름
은 아마 톨레미 2세(Ptolemy II, B.C. 285-246)를 기념하기 위하여 붙여진 것으로 보
인다(Bruce). 이 도시는 오늘날 아크레(Acre)로 불리어진다.
ㅇ형제들에게 안부를 묻고...하루를 있다가 - 바울 일행은 돌레마이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는데, 그곳에서도 성도들을 방문하여 인사를 나누었다. 4절에서는 '제자들'이라고
표현한데 비하여 여기서는 '형제들'이라고 표현함으로써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친근감
(親近感)을 더해준다. 이곳 돌레마이에 복음이 전해진 것 역시 두로와 같은 시기였으
리라고 본다(Bruce).

8 이튿날 떠나 가이사랴에 이르러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전도자 빌립의 집에 들어가서
유하니라

ㅇ가이사랴 - 이 도시는 돌레마이에서 남쪽으로 50-60k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
였는데 로마 치하에서는 유대 지방의 행정 장관이 거주하는 정치적 수도였다. 이 도
시는 헤롯에 의해 건설되고 아우구스투스(Augustus)를  높이기 위하여 '가이사랴'로 
명명되었다(Robertson). 또한 이곳은 거대한 항구 도시로도 유명한데, 바울은 그의 선
교 여행 중 이 도시를 세번째로 방문하는 셈이다. 한번은 예루살렘에서 다소로 여행하
는 중에 방문했고(9:30) 두번째는 2차전도 여행 말기에 안디옥에서 돌아오는 길에 방
문했으며(18:22) 지금이 그 세번째이다. 한편 여기에는 돌레마이에서 가이사랴까지 이
르는 교통편(交通便)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학자들 간에는 육상과 해상에 대한 견해
가 갈리고 있다. 로버트슨(Robertson)같은 학자는 7절의 '수로를 다 행하여'라는 문구
를 근거로 하여 해상을 통한 여행은 돌레마이에서 끝났으며 거기서부터 가이사랴까지
는 육로로 여행했으리라는 견해를 제시한다. 이에 반해 브루스(Bruce), 렌스키
(Lenski), 헨헨(Haenchen) 같은 학자들은 돌레마이에서 가이사랴까지의 거리가
50-60km에 이르므로 결코 걷기에 가깝지 않으며 더구나 가이사랴까지 가자면 갈멜산을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육로로 갔을 가능성이 없고 해상으로 이동했리라는 주장을 편
다.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보건대 후자의 주장이 타당한 듯하다.
ㅇ빌립 - 이 사람에 대해서는 '일곱 집사 중 하나', '전도자'라는 호칭을 붙이고 있
다. 그가 일곱 집사 중의 하나임은 6:1-5에 잘 나타나 있으며, 그를 또한 '전도자'라
고 부르는 것은 그가 재정을 담당하는 본래의 기능을 넘어 복음을 전하는 역할을 하였 
음을 말해준다. 그렇지만 그에게 '전도자'라는 호칭을 붙인 것은 그와 '사도 빌립'
을 구분하기 위함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Bruce). 이 빌립이 본서에 등장하기로는 스
데반 사후 사마리아에서 가이사랴에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였다는 기록(8:5-40) 이
후 여기가 처음이다. 브루스(Bruce)는 이 기간을 20년으로 잡기도 하는데, 하여튼 빌
립은 8:40 이후 이곳 가이사랴에 정착하여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는 아마
이 곳에 기독교 공동체를 건설하였을 것이다(Haenchen).

9 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ㅇ그에게 딸 넷이...처녀로 예언하는 자 - 빌립은 그 자신이 복음을 전파하는 은총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네 딸이 예언하는 은사를 받는 축복까지 누렸다. 여기서 '처녀'는
결혼하지 않은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당시 교회에서 봉사하는 여자들은 대개 과부들
이었던 점에 비추어 볼 때(딤전 5:9-15) 이례적(異例的)이라 하겠다. 아무튼 예언하는
은사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고전 12:4-27, 주제 강해 '성령의 은사들에 대한 비교
연구' 참조) 이를 방언의 은사보다 높이 평가했다(고전 14:1-33). 따라서 본문은 빌립
의 딸들이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중요한 은사를 가지고 초대교회에서 중요한 역
할을 하였음을 말해준다. 그녀들의 예언 활동이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는다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한편 아시아에 있는 히에폴라리스의 감독이었던 파피아스(Papias)
의 말에 의하면, 빌립과 그의 딸들은 몇 년 후에 소아시아의  히에라블리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하는데 그 딸들 가운데 몇은 상당히 늙도록 생존하여 초기
기독교 시대에 있었던 사건이나 인물들에 관한 자료들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여 많
은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Eusebius).

10 여러 날 있더니 한 선지자 아가보라 하는 이가 유대로부터 내려와

ㅇ여러 날 있더니...선지자 아가보 - 바울은 빌립의 집에서 상당 기간을 머물고 있는
데 이는 오순절 안에 예루살렘에 도착하려는 마음에서 여행을 급히 서두른 결과 심신
이 피로했으며 오순절까지는 시간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가이사랴에 머물면서 육신
의 휴식과 아울러 예루살렘에서 해야 할 일들을 계획하고 고난에 대한 나름대로의 각
오를 새로이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선지자 아가보는 과거에 몇몇
선지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내려와 유대에 기근이 들 것을 예언하였었
는데 그 예언이 A.D. 46년 글라우디오 때에 성취되었다는 기록이 있다(11:27, 28). 이
사람이 본문에 나오는 아가보와 동일 인물이라는 데에 학자들의 견해가 일치한다
(Robertson, Bruce, Lenski).
ㅇ유대로부터 내려와 - 이 표현은 로마제국의 식민지 지배 하에 있는 당시 상황의 관
점에서 쓴 것이 아니라 옛날 유다의 관점이서 서술한 것이다. 왜냐하면 로마의 지배
하에 있던 당시에는 가이사랴가 행정 구분상 유대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유대로부터 
가이사랴로 내려왔다는 식의 문장은 성립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유대로
부터'라는 표현의 실제 의미는 '예루살렘으로부터'로 보아야 한다(Haenchen).

11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주리라 하거늘

ㅇ띠를...수족을 잡아매고 - 여기서 '띠'는 폭이 약간 넓고 길이가 길어 허리에 여러
번 둘러감는 천을 가리키는 것으로, 가죽이나 비단으로 만들고 은실이나 금실로 수놓
는 경우도 있었다(삼상 15:27;왕상 11:30). 아가보는 이 띠를 가져다가 자기의 손과
발을 묶는 행위로써 예언적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말로써가 아니라 행위로써 하나님
의 말씀을 선포하는 예언 행위는 구약의 예언자들에게서도 종종 발견되는 현상으로,
자기의 새 옷을 찢어 솔로몬 왕국의 분열을 예언했던 아히야(왕상 11:29, 30), 벗은
몸과 발로 행하여  애굽인들이 앗수르인들에 포로로 끌려갈 것을 예언한 이사야(사
20:2)와 같은 인물이 그러한 예에 해당한다(렘 13:1-11;27:2;겔 4:1-3 참조). 아가보
의  예언의 구체적인 내용은 바울의 결박과 투옥을 가리킨다(30, 33절).
ㅇ성령이 말씀하시되 - 바울의 고난을 예언하는 아가보의 예언이 온전히 성령의 감동
으로 되어졌음을 말해주는 이 장엄한 표현은, 구약성경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
신다'는 표현에 상응한다(민 14:28;왕하 9:26). 바울에게 닥칠 고난은 유대인들에 의
해 도발(挑發)되어 이방인에게 넘겨진다는 점에서 예수의 수난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
었다(막 10:33;15:1).

12 우리가 그 말을 듣고 그곳 사람들로 더불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ㅇ우리가...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 권하니 - 두로에서와는 달리 이곳 가이사랴
에서는 현지의 성도들 뿐만 아니라 바울을 수행했던 누가 일행도 합세하여 바울의 예
루살렘행을 만류했었다. 그러나 바울의 예루살렘행을 만류하는 것은 결코 성령의 뜻이
아니라 주위의 사람들의 뜻이었다(4절 주석 참조). 여하튼 여기서는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만류하는 정도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데 공동번역에서는 '간곡히 전하였다'로 옮
겨 그 분위기를 더욱 생생하게 보여준다. 한편 바울 주변에 있던 성도들이 그의 고난
에 대한 예언을 듣고 그 행로를 만류하려 했던 점에 대해 그것이 곧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바울의 사역을 방해(妨害)하기 위함이었다고 해석해서는 안된다. 베드로 또한
예수의 수난에 대해 이와 유사한 행동을 보여준 경우가 있거니와(마 16:22), 지금의
경우도 바울에 대한 그들의 순수한 애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하겠다.

13 바울이 대답하되 너희가 어찌하여 울어 내 마음을 상하게 하느냐 나는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 받을 뿐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하니

ㅇ상하게 하느냐 - 헬라어 '쉰드뤼프톤테스'는 '두들
겨 깨뜨린다'의 뜻을 갖는데, 이는 주위 사람들의 애정에 가득찬 눈물의 만류가 마치
바울의 마음을 부수어버릴 정도로 간곡했음을 나타낸다. 이 표현 속에는 성령의 일을
거역하게 하는 것에 대한 책망보다는 그들의 충정어린 애정을 마음 깊이 이해하고 있
는 모습이 엿보인다.
ㅇ결박받을 뿐 아니라...죽을 것도 각오하였노라 - 성도들의 애정어린 만류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자신의 결의를 더욱 강하게 천명하고 있다. 바울
은 예수께서 죽임을 당했던 바로 그 도시 예루살렘에서 결박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죽
임을 당하는 것도 피하지 않겠다고 한다. 바울이 이처럼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예루
살렘에 가려고 했던 이유는 다음 두 가지로 추측된다. 바울은 이방 교회의 성금을
예루살렘 교회에 전달해 주어야 한다는 강한 의무감에 사로잡혀 있었다(Bruce). 그
는 이방 교회의 성금을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전해주는 것이 교회의 단합을 위해 중요
한 역할을 한다고 판단하였음에 분명하다(롬 15:25-32). 예루살렘에는 유대계 신자
들과 이방 신자들 사이에 소원(疏遠)한 관계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의 원만한 연합을 도모하고자 했다. 이러한 연합의 당위성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
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 나를 막론하고 모두 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다는 말씀
에서 나오는 것이며(갈 3:28), 이 진리를 바르게 깨달은 바울은 바로 이 연합을 위해
죽음까지도 무릅쓰려고 한 것이다.

14 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

ㅇ저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 헬라어 구문 '메 페이도메누 아우투'
는 '설득하다'는 의미를 갖는 '페이도'의 현재 수동태 분사의 문장으로 
직역하면 '저가 설득되지 아니하므로'(when he would not be persuaded, KJV)가 된
다. 아마 그들은 바울의 신변의 안전을 이유로, 그리고 다른 곳에서도 수행해야 할 하
나님의 일이 많다는 식의 그럴듯한 명분(名分)으로 바울을 설득하여 그의 예루살렘행
을 포기시키려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은 다른 때가 아니라 '지금', 다른 곳이 아
니라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려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
기 때문에 그러한 설득을 뿌리칠 수 있었다.
ㅇ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 바울을 설득하려던 사람들은 그의 의지를 꺾는다는 것
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그에게 닥쳐올 불행을 넘어 주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고
있다. 본문은 바울을 설득하려던 사람들이 바울에 대한 잘못된 충정으로부터 벗어나
온전한 신앙의 자세로 되돌아와 있음을 보여주는데, 허비(Hervey) 같은 학자는 이 문
구가 주기도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를 응용한 것으
로 보며, 브루스(Bruce)의 경우는 본문이,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주님의 기도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를 상기시켜 준다
고 보기도 한다.

15 이 여러 날 후에 행장을 준비하여 예루살렘으로 올라갈쌔

ㅇ행장을 준비하여...올라갈새 - 드디어 바울의 최종 목적지인 예루살렘으로의 여행
이 시작되고 있다. 본문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피스큐아사메이노'
는 신약에서 본절에만 나오는 희귀한 단어로 '짐을 꾸리다'(Robertson), '예루살렘 교
회에 전달할 성금을 챙기다'(Bengel), '말의 안장을 꾸리다'(Ramsay)  등으로 해석된
다. 이 해석들은 서로 모순되지 않으며 상호 보충적으로 취해질 수 있다. 가이사랴에
서 예루살렘까지는 100km이고 그 길을 도보로 가기에는 너무 피곤하다는 것, 그렇게
지친 상태로는 예루살렘에서 일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바울은 물론이고 특히 의사인 누
가가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에 적어도 교통 수단은 말을 이용하였을 것이다
(Ramsay).

16 가이사랴의 몇 제자가 함께 가며 한 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이는 우리가 그의 집에 유하려 함이라

ㅇ오랜 제자 구브로 사람 나손을 데리고 가니 - '오랜 제자'라는 표현은 나손이 기독
교의 초기 공동체 즉 오순절의 120명의 제자 가운데(1:15) 한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추
측을 가능하게 한다(Robertson, Haenchen, Bruce). 이럴 경우 바울은 그와 사전에 친
분(親分)이 있었다고 보기 어려우며 가이사랴의 신도들이 소개하였으리라고 짐작된다.
한편 본절에서 '나손을 데리고 가니'에 대해서는 논의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이 문
구는 '나손의 집에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로 번역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공동번역,
Bengel, Bruce, Meyer). 전자의 개역 성경 같은 번역을 주장하는 학자는 칼빈
(Calvin), 베자(Beza), 빈센트(Vincent), 로버트슨(Robertson) 등으로 이 중 로버트슨
은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에 나손의 집에서 묵어가기 위하여 그를 데리
고 갔다고 본다. 이럴 경우 나손의 집은 예루살렘이 아니라 가이사랴와 예루살렘 사
이의 어느 지점에 있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중간에 묵어가기 위해 사람을 일
부러 데리고 간다는 것은 설득력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중간에 쉬어가야
할 경우 여인숙 같은 곳에서 묵어가면 되지 구태여 사람을 데려갈 필요는 없다고 여겨
지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후자의 견해는 나손의 집이 예루살렘에 있었고, 이방 기
독교인들을 기꺼이 영접해 줄 것같지 않은 상황에서 거처(居處)를 제공해 줄 사람으로
나손을 생각했을 것이라고 한다(Bruce). 후자의 견해가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ㅇ형제들이...기꺼이 영접하거늘 - 가이사랴에서 함께 한 성도들을 포함한 바울 일행
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그들을 기꺼이 환영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본문의 '형제
들'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는 정확하지 않다. 그러나 '형제들'을 예루살렘의 
기독교 공동체와 관련시켜서 바울이 예루살렘 공동체 전체로부터 환영을 받았다는 견
해는(Overbeck) 타당하지 않다고 생각된다. 왜냐하면 18, 22절에 의하면 실제적으로
예루살렘 교회는 아직까지 바울이 예루살렘에 들어온 것을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
다. 이에 대해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 예루살렘 교회의 비공식적인 접대였다
(Lake). 바울의 동료들과 친구들로 이루어진 사적인 모임을 말하고 있다
(Jacquire). 예루살렘 공동체 전체가 아니라 일부분의 성도들이 베푼 환대였다
(Beyer). 이들은 헬라적 기독교인들이었다(Knopf). 

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ㅇ바울이 우리와 함께 - 여기서는 '우리'와 바울이 구분되어 표현된다. 이는 아마 바
울의 행동에 초점을 맞추기 위함인 듯하다.
ㅇ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먼저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
도자하고 할 수 있는 야고보를 방문하였다(12:17). 그런데 여기에 베드로나 요한, 그
밖의 다른 사도들에 대한 언급이 없는데 이는 그들이 전도나 다른 일을 위해서 출타
중이었기 때문이라고 본다(Bruce, Lenski, Zahn). 야고보는 예루살렘 공동체의 수장
(首長)으로서 교회 공동체를 지혜롭게 잘 지도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의 일반 유대인
들로부터도 큰 존경을 받았다고 한다(Bruce).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일반 유대인들은
그에게 '의인 야고보'라는 칭호를 붙여 주었다고 한다.
ㅇ장로들 - 이 표현에 대해서도 학자들 간에 해석이 다양하다. 문자 그대로 예루
살렘 교회의 모든 장로들이 다 모인 것이라고 본다(Lenski). 예루살렘 교회의 장로단
에 대해, 브루스(Bruce)는 야고보가 그의 행정적 책임을 수행함에 있어서 일단의 동료
장로들과 함께 일했는데, 20절에서 나타나는 바 교인의 수가 수만 명(공동 번역에서는
'대단히 많습니다'로 표현되어 있다)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예루살렘에는 야고보를
의장으로 하고 70인의 장로로 구성된 일종의 나사렛 산헤드린(Nazarene  Sanhedrin)이
있었을 것이라고 한다. 야고보는 수석 장로이며 다른 장로들은 바울을 환영하는 자
리에 초청된 야고보의 손님들이라고 본다(Robertson). 야고보를 제외한 사람들은
단지 입회인에 불과하다고 본다(Beg, Zahn). 자료들이 불충분하여 정확한 설명을 제시
하는 것은 어려우며 단지 잠정적인 판단을 할 수 있을 뿐인데, 아직 바울이 예루살렘
에 온 것을 모르는 교인들이 상당히 있었다는 점을(22절) 감안할 때의 견해보다는
나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봉사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고하니

ㅇ봉사로 말미암아...고하니 - '봉사'(디아코니아)는 '종', '일
꾼'을 뜻하는 '디아코노스'에서 파생된 말로 '사명'(20:24), 또는
'직분'(롬 11:13) 등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이것은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 뿐
만 아니라 교회와 사람들에 대한 봉사자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였음을 시사한다. 이러
한 그의 역할 가운데는 예루살렘 교회에 대한 헌금 전달도 포함되었을 것인데, 본문에
서 그 사항에 관해 언급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견해가 있다. 성금 전
달은 누구나 다 아는 당연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따로 언급할 만한 필요를 느끼
지 못했다(Bauernfeind). 성금을 전달한 것에 대한 효과가 생각한 것보다 미미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에 대한 근거로는, 예루살렘의 교인들이 후에 바울을 위하여 유대
인들에게나 로마 당국에 대해 한마디의 변호도 하지 않았다는 것과 바울이 가이사랴에
서 오랫동안 투옥되었을 때 그에게 동정을 표시한 기록이 없다는 것을 제시한다
(Furneaux). 전자의 견해가 더 타당하다고 본다. 한편 바울은 자기가 이방 가운데서
사역한 일들을 세세히 증언하고 있는데, 그는 그 모든 일들의 주체(主體)가 하나님이
라고 고백함으로써  겸손한 신앙의 자세를 나타낸다.

20 저희가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ㅇ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 이 문구는 야고보 및 장로들이 바울의 증언을 매우 호의
적으로 들었음을 보여준다. 바울이 자기의 봉사 배후에는 하나님이 주체로 있었다고
증언했으므로(19절) 이들이 이야기를 경청한 후 바울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ㅇ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율법에 열심 있는 자라 - 누가는 야고보의 무리들
이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기쁨에 넘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
울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눈길들이  많음을 주지시키고 있다(22절). 그런
데 '수만 명'이라는 표현은 '얼마나 많은'의 뜻을 가진 '포사이'와 '일
만', 또는 '허다한 것', '무수한 것'을 뜻하는 '뮈리아데스'가
합하여진 것으로 학자들 간에는 이 표현을 문자적으로 취하여 이해하기도 하고
(Lenski), 불특정한 다수를 과장적으로 서술하는 표현 양식이라고 이해하는 입장도 있
다(Haenchen, Robertson). 아무튼 야고보의 이야기는 교인들의 수가 많다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들이 율법을 지키는 일에 관심있는 자들이라는 사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
다. 즉 이들은 소위 유대적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그들이 전통적으로 지켜왔던 모세의 율법을 비롯한 각종 규례들을 소중히 여겨 지킨다
는 것이다. 이들은 바울이 깨달은 바, 복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은 율법을 폐기
하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율법의 매임으로부터  자유하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고 따
라서 다음 절에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것처럼 율법에 매이지 않는 바울의 행위를 용납
하지 못했다.

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

ㅇ모세를 배반하고...지키지 말라 - 바울을 비방(誹謗)하는 소문이 어떻게 떠돌고 있
는지 구체적으로 열거된다. 이러한 소문의 진원지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었을 것이
고 그 중에서도 유대교적 전통에 철저한 자들이었을 것이다. 모세를 배반한다는 것은
모세가 전해준 율법을 무시한다는 말이고 이는 곧 하나님에 대한 배반을 뜻한다고 여
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바울이 율법을 배반했다는 것은 악의에 찬 허위 사실이었다.
바울은 율법 자체를 부정한 바 없으며 오히려 그는 율법을 신령한 것으로 보았고(롬
7:12) 율법의 긍정적인 역할도 인정하였다(갈 3:24). 다만 바울은 사람들이 율법 자체
에 얽매여 스스로 의롭게 되려는 행위들을 배격(排擊)하였던 것이다(롬 10:3). 율법이
지향하는 바를 깨닫지 못하고 형식주의 또는 완고한 유대주의에 매여 복음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율법은 폐기되어야 마땅하다(엡 2:15). 또한 바울이 할례를 금하였다
는 것도 전혀 터무니 없는 허위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바울은 할례 그 자체에  대해
서 어떤 가치를 부여하지는 않았으나 하는 것도, 안하는 것도 무방하다고 했으며(고전
7:18, 19;갈 5:6), 디모데에는 할례를 받도록 하기까지 하였기 때문이다. 진실이 이렇
다 하더라도 예루살렘의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이 들은 바대로 오해를 하고 있었
음에 분명하며 이 오해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다.

22 그러면 어찌할꼬 저희가 필연 그대의 온 것을 들으리니

ㅇ어찌할꼬 - 야고보 및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바울의 신변에 대한 문제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사실은 이제 곧 다른 교인들에게 알려질
것이며 바울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는 자들이 거센 공격조로 나올 것은 불을 보듯 환
한 일이었다.

23 우리의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ㅇ서원한 네 사람 - 서원에  해당하는 헬라어 '유케'는 '기도하다', '원
하다'의 의미를 갖는 '유코마이'에서 온 말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무엇을 하기 원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는 단순한 소원을 넘어 하나님께 대한
일종의 서약이기 때문에 매우 엄숙한 것이다. 서원에 관한 자료는 구약성경에 많이 있
으나, 그 기원은 알 수 없다. 서원은 주로 나실인의 서원과 관계되는데, 부모에 의한
서원이나(삼상 1:11), 본인의 자유의사에 의한 서원이 있으며 서원의 기간은 영구적인
것이 있고(삿 13:7;삼상 1:11), 일정한 기간 동안만 하는 것이 있다(민 6:8, 12). 서
원자는 서원한 것에 대해 반드시 신속하게 행해야 하며(신 23:23;시 15:4;전 5:4, 5),
남용하거나 경솔하게 하지 말아야 한다(잠 20:25;마 15:4-6). 또한 서원한 기간 동안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규범으로는 독주를 마시지 말고 머리를 깎지 말며 시
체를 가까이 하지 말아야 한다. 본문에 나오는 네 명의 서원은 본인의 자유 의사에 의
해 일정한 기간 동안만 하는 서원이라 여겨진다(Robertson). 서원에 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민 30:1-8 주제 강해 '서원과 맹세에 대하여'를 참조하라.

24 저희를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저희를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게 대하여 들은 것이 헛된 것이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ㅇ결례를 행하고...머리를 깎게 하라 - 결례를 행하라는 것은 서원한 자들처럼 자신
을 정결하게 하고 서원 기간동안 지켜야 할 규범(23절 주석 참조)을 지키라는 의미이
며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는 것은, 결례 기간이 끝나는 날에 머리를 깎고 희생
예물을 드리는 때에 드는 경비(經費)를 부담하라는 말로 이해된다.  여기에 드려지는
희생 제물로는, 번제물로 일년 된 수양 하나, 속죄 제물로 일년 된 어린 암양 하나,
화목제로 수양 하나, 그 외에 무교병 과자 등이었으므로(민 6:1-21) 그 비용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었다. 이 비용을 바울에게 부담하라고 한 것이다. 유대인들에게 있어
서 가난한 서원자를 위하여 비용을 대신 부담하는 것은 매우 경건한 행위로 여겨졌다.
실제로 기록에 의하면 아그립바 I세가 가난한 나실인을 위해 이런 비용을 제공했다는
이야기가 있다(Jos, Ant., XIX, 6:1). 바울에게 이런 일을 하라는 것은 그의 재력으로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환심을 사라는 말이 아니라 그가 율법을 부정하지 않고 지키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어 그들의 오해와 노여움을 풀기 위함이었다.

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ㅇ우상의 제물과...음행을 피할 것을 - 이 내용은 일찍이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방인
신자들의 신앙 생활을 위한 지침으로 결의되었던 것인데(15:20), 여기서 다시 한번 반
복하여 상기(想起)시키고 있다. 본문의 내용이 결의될 때 바울도 함께 있었음에도 불
구하고(15:1-20) 그 내용이 여기서 문자 그대로 반복되는 것은 다소 어색하다. 이에
대해 혹자는 본문의 내용이 주로 바울의 동료들에게 전달되기 위한 것으로 보거나 혹
은 단지 독자들에게 당시의 상황을 상기시키기 위한 의도에서 삽입된 표현이라 간주하
기도 한다(H. Marshall). 그러나 예루살렘 회의에서의 결정이 이방인 선교에 중심적
역할을 했던 바울의 의견을 존중하기 위해 내려진 것이라고 볼 때 이번에는 율법 준수
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예루살렘 신자들을 위하여 바울이 양보해 줄 것을 간접적으로
요청하기 위함이라고 볼 수도 있다.

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저희와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의 만기 된것을 고하니라

ㅇ결례의 만기된 것을 고하니라 - 바울은 야고보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대로 행하였
다. 본문의 상황은 바울 일행이 서원의 절차법에 따라 희생 제물을 바친 후 머리를 깎
아 제단 불에 던져 태운 다음(민 6:13-18) 제사장에게 서원 기간이 끝났음을 공식적으
로 보고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의 이러한 행위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평가가
제기되었다. 바울의 행동은 율법주의자들과의 타협이며 그 결과는 실패였다고 본다
(Furneaux, Calvin). 바울은 야고보의 제안에 순종한 것 뿐이라고 본다(Bengel,
Wesley). 바울은 그의 설교 전략 즉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자에게는, 자신은 율법의 지배 아래 있지 아니하지만,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자
같이 된다는 원칙을 따라 행동한 것이라고 본다(고전 9:20, Meyer, Weiss,
Knowling). 바울은 일찍이 예루살렘에 올때 고난이 있을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4,
10-14절;20:23), 죽음까지도 각오하고 있었다(13절). 그런 바울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
율법과 타협하여 자신의 안전을 도모(圖謀)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27 그 이레가 거의 차매 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바울을 보고 모든
무리를 충동하여 그를 붙들고

ㅇ그 이레가 거의 차매 - 바울과 네 명의 서원자가 7일 간의 결례를 거의 마감할 무
렵을 가리킨다.
ㅇ아시아로부터 온 유대인 - 이들은 에베소에서 올라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로 오순
절을 지키기 위해 왔던 것같다.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바울을 몰랐을 터인
데 이들은 보자마자 바울을 즉시 알아보았고(바울은 3년간 에베소에서 선교 활동을 했
다), 더구나 이들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29절).
ㅇ무리를 충도하여 - '충동하다'의 헬라어 '슁케오'는 일찍이 에베소
에서 이방 종교인들이 일으킨 소동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던  말로(19:23-41), 바울을
해하려는 이 무리들의 포악함을 시사한다.
ㅇ성전 - 이곳은 성전 영내의 '이스라엘의 뜰'(the Court of Israel)로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닌 유대인 남자들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었다.

28 외치되 이스라엘 사람들아 도우라 이 사람은 각처에서 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하여 모든 사람을 가르치는 그 자인데 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게 하였다 하니

ㅇ우리 백성과 율법과 이곳을 훼방 - 에베소에서 올라온 유대인들은 성전에서 바울을
보자 흥분하여 소리를 질러 사람들을 부르며 바울을 고발하였다. 고발 내용은 그가 하
나님의 선민인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받은 신성한 율법과 그리
고 하나님의 성소인 성전을 거스리는 내용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스라엘 사
람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3요소에 대한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분노를 촉발시키려 
하였다.
ㅇ거룩한 곳을 더럽게 - '거룩한 곳'은 성전을 가리키고, '더럽게  하였다'
(케코이노켄)는 '평범하게 만들다'의 뜻을 갖고 있는 '코이노'의 현재
완료형으로서 이방인을 성전의 '이스라엘의 뜰'에 데리고 들어옴으로써 거룩한 성전을
평범하게 만들었다는 의미가 된다. 완료형으로 되어 있는 것에 주목해야 하는데 이는
더럽혀진 효과가 이미 시작되어 지속된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성전에는 유대인 남자들
만 들어갈 수 있는 '이스라엘의 뜰'과 이방인들이 들어갈 수 있는 '바깥 뜰'(이방인의
뜰)이 구분되어 있어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뜰'에 절대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것은
로마 당국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종교적 금기(禁忌)였다. 만약 이방인이 이 금기
를 어기고 '이스라엘의 뜰'에 들어갈 경우 죽음을 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이
런 불행을 예방하기 위해 양쪽 뜰을 가르는 울타리에는 경고문이 붙어 있었는데, 울타
리를 넘어 침입해 들어가는 자는 사형에 처하게 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Bruce).
이런 절대 금기의 규율을 바울이 어기게 하였다는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를 죽이고
야 말겠다는 분노를 분출시키기에 충분했다.

29 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바울이
저를 성전에 데리고 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

ㅇ전에 - 이 표현이 지시하는 시점에 대해서는 두 가지 견해가 제시된다. 바울 일
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하기 훨씬 이전 즉 에베소에 있을 때를 가리킨다(Lenski). 바
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의 어느 시점을 가리킨다(Bruce). 후자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본다.
ㅇ드로비모...들어간 줄로 생각함일러라 - 바울의 적대자들이 선동하기 위해 외친 소
리가 사실의 목격에 근거하지 않고 단순한 추측에 불과하다는 것이 설명되고 있다. 그
들은 얼마 전에 바울과 드로비모가 예루살렘 시내에서 함께 있는 것을 목격했을 뿐이
다. 그런데 지금 성전에서 바울을 보자 지레 짐작하기를 드로비모가 그를 따라 성전에
들어갔다고 본 것이다. 바울에 대한 적대감(敵對感) 더 나아가 바울을 해치려는 음모
가 없이 이러한 오해가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이것은 순간적이고 단순한 오해가
아니라 그를 죽임으로써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그의 사명을 중지시켜 유대인들의
민족적 우월감과 선민 의식을 보존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계획된 행동으로 짐작된다.
사도로서 바울의 고난은 터무니없는 거짓 증인에 의한 것이라는 점에서 예수의 수난을
뒤따르는 것이었다(막 14:55-59).

30 온 성이 소동하여 백성이 달려와 모여 바울을 잡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
문들이 곧 닫히더라

ㅇ온 성이 소동하여 - 드디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은 흥분하기 시작하였고 적대자들
의 의도는 일단 성공적이었다. '소동하여'(에키네데)는 폭력적인 행
동과 격앙된 감정의 상태를 표현하는 동사 '키네오'의 제 1부정과거형으
로서 24:5에서는 더둘로가 바울을 고발할 때 사용되기도 하였다.
ㅇ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니...곧 닫히더라 - 사태는 매우 과격하고도 비이성적인 방
향으로 돌변하고 있다. 그들은 바울에게 단 한마디의 자기 변호도 허용하지 않고 성전
밖으로 끌어내었다. 여기서 '끌고'(헤일콘)는 '헬코'의 미
완료 과거 능동태로 바울을 사정없이 끌고 나가는 행위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문을 닫
은 것은 유대인의 뜰과 이방인의 뜰 사이에 있는 문을 닫은 것을 가리키며, 이것은
바울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가는 것이 완료되었음을 뜻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이 바울
을 성전 밖으로 끌고 나간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분노한 군중들이 성전으로
밀려 들어와 그곳에서 바울을 살해하는 것을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성전에서 살해 사
건이 있게 되면 이는 곧 성전을 더럽히는 것이었다. 따라서 율법을 준수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 있다고 자부하는 그들로서는 그런 일을 피하려 했을 것임에 틀림없
다. 바울이 제단 뿔을 잡아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제단 뿔은 제단 가운데서도 가장 거룩한 부분이었기 때문에 그 뿔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살륙(殺戮)이 행해질 수 없다고 믿어져 왔다(왕상 1:50).

31 저희가 그를 죽이려 할 때에 온 예루살렘의 요란하다는 소문이 군대의 천부장에게
들리매

ㅇ죽이려 할 때에 - 바울을 끌어낸 무리들이 무자비한 폭력을 휘둘러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는 장면이다. 최소한의 형식적 재판 절차도 없이 바울을 죽이려 하는 것은 그
무리들이 종교적 자존심의 손상에 대한 반발과 군중 심리적 흥분으로 극도로 포악해져
있음을 말해준다.
ㅇ군대의 천부장 - 바울이 연루되어 성전에서 발생한 소요는 민첩한 정보망을 통해
그 지역의 치안 책임자인 천부장에게  즉각 전달되었을 것이다. 더구나 지금은 오순절
기간이었기 때문에 폭동이나 소요를 대비하기 위하여 유대인들의 움직임을 철저히 주
시하던 터라 그 소식은 매우 신속하게 보고되었을 것이다. 천부장은 보통 1000여명의
병력을 통솔하는 로마군의 장교를 가리키며 이 부대의 구성은 보병 760명과 마병 240
명으로 되어 있었다. 23:26에 의하면 이 천부장은 글라우디오 루시아(Claudius
Lysias)였다.

32 저가 급히 군사들과 백부장들을 거느리고 달려 내려가니 저희가 천부장과 군사들을
보고 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ㅇ군사들과 백부장들 - 이 군대의 군영(軍營)은 성전 북서쪽의 언덕 위에 세워진 안
토니아 성에 있었다. 이들은 언제든지 신속하게 출동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었으
므로 즉시 사건 현장에 도착하였을 것이다. 백부장이 대략 100명의 군대를 지휘하였
고, '백부장들'로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최소한 200명 이상의 군대가 출
동한 것이 된다(본서 서론 '로마의 행정 및 군대 제도' 참조).
ㅇ바울 치기를 그치는지라 - 바울이 죽임을 당할 수 밖에 없던 위기의 상황은 천부
장과 그의 부하들의 출동으로 일단 모면되었다. 유대인들이 로마 군대가 출동했을때
바울을 죽이려던 행위를 중단하였던 것은 그들의 행위가 불법적인 것이었기 때문이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 당국의 재판에 의
하지 않고는 사형을 집행할 수 없었다. 산헤드린에서 사형 판결을 내린 후에도 빌라도
에게 다시 끌고가 재판을 받게 했던 예수의 경우도 그런 이유에서 였다(마
26:66;27:1, 2).

33 이에 천부장이 가까이 가서 바울을 잡아 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누구며 무슨
일을 하였느냐 물으니

ㅇ두 쇠사슬로 결박하라 명하고 - 이것은 마치 한 피의자의 양팔에다 두 형사가 자기
의 팔목과 피의자의 팔목에 수갑을 채우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당시에 군인들은 사건
현장에 출동할 때 체포용 쇠사슬을 가지고 다녔고 죄수의 도주를 막기 위하여 자기와
함께 묶었다. 천부장이 폭력을 당하고 있던 바울을 묶으라고 명한 것은 일단 그가 죄
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며(12:6), 군중들로부터 바울을 분리시킨 것은 그가 죄를 범
하였을지라도 법의 절차에 따라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여튼 이
렇게 해서 11절의 예언이 성취된 것을 볼 수 있다.

34 무리 가운데서 어떤이는 이 말로, 어떤이는 저 말로 부르짖거늘 천부장이 소동을
인하여 그 실상을 알 수 없어 그를 영문 안으로 데려가라 명하니라

ㅇ무리 가운데서...부르짖거늘 - 천부장은 바울을 결박하게 한 후 무리들에게 바울의
신상과 그의 잘못이 무엇인지를 물었다(33절). 그런데 무리들이 매우 소란스러운 가운
데 여러가지 말을 했기 때문에 천부장은 그 사건의 실상을 알 수가 없었다. 여기서
'부르짖거늘'(에페포눈)이라는 단어는 예수를 재판할 때에 흥분
한 군중들이 예수의 죽음을 요구하는 것을 묘사하는 데도 사용되었던 것으로 '큰 고함
소리로 미친듯이 부르짖는 것'을 뜻한다(눅 23:21).
ㅇ영문 안으로 - 광적으로 흥분하여 외쳐대는 무리들의 소란은 사실을 알고자 하는
천부장의 의도를 좌절시켰다. 그리하여 천부장은 무리들의 흥분이 가라앉은 후에 심리
(審理)를 하기 위하여 바울을 일단 영문 안으로 데리고 가도록 조치를 취했다. 여기서
영문은 군대의 주둔지인 안토니아 영문을 가리킨다.

35 바울이 층대에 이를 때에 무리의 포행을 인하여 군사들에게 들려가니

ㅇ층대...들려가니 - 이 층대는 예루살렘 성전 바깥 뜰에서 안토니아 영안으로 올라
가는 돌계단을 가리킨다. 이 계단에 이르렀을 즈음에는 무리들의 난폭함이 극에 달하
여 로마군인들이 바울을 손으로 높이 들어올리고 가야 할 지경이었다. 어떤 학자는 바
울이 '들려갔던' 이유를 걸을 수조차 없을 정도로 쇠약한 상태였기 때문이라고 보지만
(E. Haenchen) 근거없는 추측일 따름이다.

36 이는 백성의 무리가 그를 없이 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ㅇ그를 없이 하자고 외치며 따라 감이러라 - 무리들의 포행이 구체적으로 언급된다.
이들은 연행되어 가는 바울을 향하여 '그 놈을 죽여라'(공동 번역)고 외치며 따라갔
다. 한편 '따라감'의 헬라어 '에콜루데이'는 '아콜루데오'   
의 미완료 과거 능동태로 되어 있어 무리들이 끈질기게 따라붙
으며 바울을 죽이라고 외쳐대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런 행위는 여기선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되고 있고(22:22;28:19),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예수의 수
난 때에도 그러했다(눅 23:18;요 19:15). 더 거슬러 올라가면 그들의 조상들 또한 하
나님이 보내신 예언자들을 죽였었다(눅 11:47, 48). 실로 이 백성은 역사를 '따라가
면서' 하나님을 거역(拒逆)하여 '그를 죽여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37 바울을 데리고 영문으로 들어가려 할 그 때에 바울이 천부장더러 이르되 내가
당신에게 말할 수 있느뇨 가로되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ㅇ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 - 로마 병사가 바울을 연행하여 영문(34절) 안으로 들어가
기 직전에 바울은 천부장에게 자신을 변호할 수 있게 해줄 수 있는지의 여부를 물었
다. 이때 바울은 헬라어로 이야기한 것으로 보이며, 천부장은 바울이 헬라어 할 줄 아
는 것을 의외의 일로 생각하여 '네가 헬라 말을 아느냐'고 되물었다. 당시에 헬라어는
'코이네'로 로마 제국권 내에서는 공통 언어였다. 그렇지만 이 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춘 문화인에 국한되었다.

38 그러면 네가 이전에 난을 일으켜 사천의 자객을 거느리고 광야로 가던 애굽인이
아니냐

ㅇ난을 일으켜...애굽인 - 바울이 헬라어로 말하는 것을 듣는 순간 천부장은 한편 놀
라면서 다른 한편, 그렇다면 바울이 과거에 난을 일으켰던 애굽인이 아닌가 하고 추측
하였다. 천부장이 말하는 이 난(亂)은 역사가 요세푸스가 자세히 전해주고 있는데, 그
의 기록에 의하면 A.D. 54년경 한 애굽인 거짓 선지자에 의해 예루살렘에 반란 사건이
발생했다고 한다. 스스로를 위대한 선지자로 자처한 이 애굽인은 추종자 3만여명을 이
끌고 예루살렘으로 와 광야와 감람산 등에 웅거하면서 예루살렘 성벽 파괴 및 로마군
의 멸망을 예언하며 때가 되면 반란을 일으키려 했던 자였다. 본문에 나오는 사천  명
은 그 가운데 자객으로 선별된 무리들로 보인다. 그러나 이 음모는, 로마 총독 벧릭스
(Felix, A.D. 52-58)의 군대에 의해 일부는 죽임을 당하고 일부는 생포되고 이 애굽인
거짓 선지자는 감쪽같이 도망감으로 해서 좌절되었다. 그러니까 천부장의 질문은 바울
이 바로 이 거짓 선지자가 아닌가 하는 것이다.

39 바울이 가로되 나는 유대인이라 소읍이 아닌 길리기아 다소성의 시민이니 청컨대
백성에게 말하기를 허락하라 하니

ㅇ길리기아 다소 성 - 바울은 자신이 천부장이 말한 애굽인이 아니라 혈통은 유대인
이며 출생지는 길리기아의 다소 성이라는 사실을 차분하게 말하고 있다. 바울은 자신
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불식(拂拭)시키기 위하여 자신의 출신지인 길리기아 다소
성이 결코 작은 도시가 아님을 강조하고 있다. 실제로 다소는 헬레니즘의 중심지로 훌
륭한 대학이 있는 문화적 수준이 높은 도시였다. 바울이 다소 출신이라는 사실을 뒷받
침 해주는 것으로는 제롬(Zerome)의 기록이 있는데, 그에 의하면 바울의 부모들은 본
래 갈릴리의 기스칼라(Gischala) 출신이었다. 그런데 주전 1세기 경에 로마군에 의해
북부 팔레스틴이 침탈을 당한 후에 바울의 부모들이 길리기아 다소로 이주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울은 다소에서 태어난 것이 틀림없는 사실이 된다.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여 천부장의 의혹을 해소한 후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 백성
들에게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고 있다. 그는 사실 그 일을 위하여 예루살렘에 왔던 것
이다(13절).

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크게 종용히 한
후에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여 가로되

ㅇ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히브리 방언으로 - 백성들에게 말할
수 있게 해달라는 바울의 요청은 받아들여졌고 바울은 자신과 복음에 대해 변증(辨證)
하기 시작했다. 바울은 영문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계단 맨 윗부분에 쇠사슬로 그의 양
팔을 결박한 채 함께 서 있다. 그리고 그 앞에는 흥분한 무리들로부터 그를 보호하기
위하여 수백명의 로마 병사들이 서 있고 그 뒤편으로는 예루살렘의 유대인들과 디아스
포라 유대인들이 흥분된 감정을 큰소리로 표출하고 있다. 이때 바울은 그의 양손을 들
어올려 백성들을 조용히 시킨 다음 히브리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하였다. 여기서 '히브
리 방언'은 구약성경 시대의 히브리어와는 다른 것로 포로기 이후 아람어화한 언어를
가리킨다. 당시에는 이 아람어가 팔레스틴의 유대인들이 상용하는 언어였기 때문에
바울이 이 언어로 말한 것은 원활한 의사 소통을 위함이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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