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요한복음

[스크랩] 요한복음 4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09:13

요한복음 4장

 

 

사마리아 여자와 말씀하시다

(요 4:1) 예수께서 제자를 삼고 1)세례를 베푸시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요3:22
(요 4:2) (예수께서 친히 1)세례를 베푸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베푼 것이라)
(요 4: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요 4:4) 사마리아를 통과하여야 하겠는지라
(요 4: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창33:19, 수24:32
(요 4: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여섯 시쯤 되었더라
(요 4:7) 사마리아 여자 한 사람이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요 4: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그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요 4:9) 사마리아 여자가 이르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하지 아니함이러라
(요 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 4:11) 여자가 이르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그 생수를 얻겠사옵나이까
(요 4: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마셨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요 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 4:14)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5)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요6:34
(요 4:16)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요 4:17) 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요 4:18) 너에게 남편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요 4: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요 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 4:21)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 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라
(요 4:23)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롬8:4, 빌3:3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 4: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요 4: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라 하시니라 요8:24
(요 4: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와 말씀하시나이까 묻는 자가 없더라 요4:8
(요 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 두고 동네로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요 4:29) 내가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서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마12:23
(요 4: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요 4: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요 4: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요 4: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하니
(요 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요 4: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 4: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요 4: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요 4: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벧전1:12
(요 4:39)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
(요 4: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눅24:29
(요 4:41) 예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믿는 자가 더욱 많아
(요 4:42)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라 하였더라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시다(마 8:5-13; 눅 7:1-10)

(요 4: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요 4:44)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요 4: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마13:57, 막6:4, 눅4:24
(요 4: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의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요 4: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로 오셨다는 것을 듣고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 주소서 하니 그가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요 4: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2)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요 4: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요 4: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 하시니 그 사람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요 4:51)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아 있다 하거늘
(요 4: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요 4: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행16:34
(요 4: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오신 후에 행하신 두 번째 2)표적이니라 요2:11


1. 헬, 또는 침례 2. 또는 이적


4:1-4 세례의 소문으로 바리새인들을 피하심
1절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베푸신 것은 아니지만
제자들이 베푸는 것을 허락하셨든지 아니면 묵인하셨거나 인정하고 것은 사실이다. 많은 무리들에게 세례를 베풀므로 바리새인들의 주목을 받게되고 그들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시려고 급히 갈릴리 쪽으로 철수하셨다.
(2절의 추가 설명은 요한이 직접 삽입한 것인지 아니면 후대에 추가한 것인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후대에 추가했다고 보는 학자들은 예수의 권위가 세례요한과 같게되기 때문에 예수의 권위를 손상시킨다고 생각하여 추가했다고 본다. 아울러 본 절의 유형이 저자 요한과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의 주장일 뿐 정확한 근거가 되기에는 부족하다. 또한 예수께서 직접 세례를 베풀지 않은 것은 성령세례를 베풀 것을(요1:33-34)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다.)
2절은 사도요한이 예수에 대한 잘못된 소문의 진상을 밝히고자 본 절을 삽입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4:4-26 사마리아 여인과 생수
4절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가장 빠른 길은 유대인에게 적대감정이 있는 사마리아 지역을 통하여 가야 했다. 요단 동편으로 돌아가는 길은 약 6일이 걸리면
사마리아를 통과할 경우는 3일정도 걸리는 길이었다. 갈릴리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가기 위해서는 일반적으로 이 길로 가야 빠른 것을 알고 있었지만 사마리아인들이 길을 막는 일이 많았다. 그래서 이 지역을 통과하기보다는 돌아가는 길을 택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렇게된 것은
앗수르에 의해 북 이스라엘이 멸망한 B.C. 722년 이후 사마리아인은 혈통과 순수성을 상실하고 말았다(왕하17:24). 이런 이유로 그들은 부정한 사람으로 취급되면서 적대감정이 일어났고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성전에 예배할 수 없게 되자 성전을 그리심산에 별도로 마련하고 그곳에서 예배를 드려오고 있었다.

5절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 요한은 이 사건이 일어난 장소를 알려준다. 예루살렘에서 사마리아를 통과해서 갈릴리로 가는 작은 마을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곳은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까운 곳이었다. 야곱세겜의 추장 하몰의 아들들로부터 은 일백 개를 주고 산 세겜 땅으로 예루살렘 북쪽 약 55km 지점, 에발산그리심산 사이에 있다(창33:18-19). 야곱은 이 땅을 요셉에게 주었고(창48:22) 요셉은 이곳에 장사되었다(수24:32, 행7:16).

6절 야곱의 우물 야곱이 이 우물을 팠다고 기록된 것은 없다. 이것은 구전으로 내려오는 것이었다. phgh;(페게)는 "자연적으로 샘솟는 우물"을 말한다. 하지만 11, 12절에서는 사람이 판 우물을 가리키는 frevar(프레아르)가 사용되어 원래 샘이 있는 곳에 판 우물을 뜻한다. 제 육시쯤 되었더라 로마식 계산으로는 오후 6시이며 유대식은 정오 12시이다. 신약성경의 시간들은 유대식을 따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 본문도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12시간으로 나누는 유대식 시간으로 육시는 현재의 12시를 가리키는 것이다. 뜨거운 낮을 피해 저녁에 물 기르는 것이 관습이었다(창24:11). 하지만 이 여자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여 물을 기르러 온 것이다. (하지만 일부의 학자들은 로마식 시간 저녁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예수께 유하기를 청한 것으로(40절) 보아도 저녁6시라고도 생각하는 것이다.)

7절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유대인의 미쉬나(Mishnah)에는 사마리아 여인은 매우 부정한 것으로 나타난다. 더군다나 이 여인은 부정한 여인 중에서도 더 부정한 남편이 여럿이 있었던 여인이었다(18절). 이 여인에게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셨다.

8절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이야기 중에 삽입된 것처럼 보이는 이 부분은 현재 제자들이 먹을 구하러 동네에 갔고 예수와 이 여자와만 있어서 대화하고 있음을 말한다.(하지만 학자들에 따라서는 일부 제자만 마을로 갔고 요한이 이 부분을 자세히 기록한 것으로 보아 요한이나 몇 제자는 남아 있었을 것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의 사이로 보아서 먹을 것을 쉽게 구할 수 없음을 제자들도 알고있었을 것이나 여행 중 지쳐있는 제자들에게는 그것을 무시하게 만들었다.

9절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이 여인은 예수가 유대인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아차렸다. 아마도 언어와 옷 모양에서 어렵지 않게 유대인임을 금방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당시의 문화는 먼저 남자가 여자에게 접근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유대인이 부정하다고 생각하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다가가는 일은 유대인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 듯 말을 꺼내시는 예수께 이 여인은 '이거 이상한 일이 다 있군. 유대인 남자가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다니'라는 깜짝 놀라는 당혹한 마음에서 표현한 말이다.

10-15절까지의 대화를 요약하면, 예수께서 생수를 말씀하셨을 때 여인은 전혀 이해할 수 없었고 예수께서 지금 말씀하시는 것이 보통 우물과 다른 흐르는 물인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여인은 예수께 어떻게 그런 물을 얻을 수 있냐고 의아해 했다. 이것은 근처에 흐르는 시냇물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야곱의 우물은 끊임없이 솟아나는 샘이었고 물이 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 우물이 생수의 근원이 될 수 없다고 하신 것이다.
그래서 여인은 16절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라고 대답했다. 이 여인에게 있어서 이렇게 뜨거운 한 낮에 남의 눈을 피해 물을 기르러 오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지금까지의 대화에서 예수께서 하시려는 말씀을 이 여인은 전혀 이해하지 못하자 갑작스럽게 16절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는 말씀으로 주제를 바꾸시고 있다. 우물과 생수의 이야기에서 삶의 이야기로 현실적인 문제로 들어가고 있었다. 여인은 이제부터 지금까지의 대화와 다른 자신의 문제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17절 남편이 없나이다 사실 살고있는 남편은 있으나 진실 된 남편으로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이 여인은 남편에 대한 신뢰를 갖고 있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진실을 말하는 이 여자에게

18절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라고 말하심으로 정확하게 이 여인의 내면의 문제와 외면적인 사람의 모습 모두를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계셨다. 그제 서야 이 여인은 19절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직까지 선지자의 한 사람으로만 인식하고 있었지 메시야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인은 25절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라고 함으로 사마리아인이지만 유대인과 같이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다.
26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고 함으로
메시야 됨을 밝히 드러내셨다.

20절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이 여자와의 대화에서 처음에는 '생수'이야기에서 '남편'이야기 그리고 '예배'의 장소로 변화되고 있다. 예수를 선지자라고 안 이 여인은 자신들이 드리는 성전(B.C. 322년에 건축된 그리심산에 있는 사마리아 성전 -요세푸스)과 예루살렘 성전 중에서 어느 곳에서 드려야 하는지를 질문한다. 예루살렘성전과 그리심산의 성전의 갈등은 200년 동안 계속되다 B.C. 129년 요한 할카누스가 그리심산의 성전을 파괴하자 절정에 달했으나 이후 성전은 건축되지 못했으나 사마리아인에게는 그리심산은 축복과 기도, 예배하는 산으로 남아있게 되었다.

21절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예배의 장소에 대한 신성시하는 풍토는 구약의 법궤의 이동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들이 이동하던 출애굽 시대의 장막에서 성전으로 이동되면서 시작되었다. 당시의 성전은 유일한 장소 예루살렘성전으로 유대인은 생각하고 있었으며 지방의 각 회당들도 예루살렘을 행해 기도하기 좋게 문이 나 있었다. 이런 장소에 대한 신성시하는 풍토는 이슬람으로 전이되어간 것 같다. 그들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오늘날에도 예배에 대한 장소문제를 잘 생각해야할 말씀이다. 이 말씀은 유대인에게 직접 전해졌다면 더 충격적일 수 있으나 역시 사마리아인에게도 충격적인 말씀이었을 것이다. 이 말씀은 구약의 습2:11, 말1:11에 근거한 말씀이다.

23-24절 신령과 진정으로 pneuvmati kai; ajlhqeiva/(엔프뉴마티 카이 알레데이아) kai로 연결되는 "영"과 "진리"는 전치사 하나에 두 단어가 연결되어 있어 이것은 떨어져서 따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을 말한다. "신령과 진정"은 "진리의 영"을 말하고 이 말은 곧 "성령"을 가리킨다고 본다.
21절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3절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는 기다려야 한다는 의미의 이 때는 아직
성령이 주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하고 그 때가 오면 성령의 역사와 함께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말한다.
예배는 장소의 문제가 아니라 신령과 진정의 문제였음을 다시 주지시키신다. 구약에서도 신령한 예배가 아니면 인정하지 않으셨다(시50편,
사1:53, 66, 미6장, 암5장).
이런 예수님의 대화에 27절
제자들은 이상히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25-26절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4:28-42 구원받은 사마리아 여인
메시야를 만난 기쁨에 28절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 사람들에게 전했다.
29절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 18절의 말씀을 말하는 것이다. 남편에 관한 이야기는 이 여자로서는 하고싶지 않은 문제였을 것이다. 하지만
메시야를 전하는데 있어서 자신에게 정확하게 마음을 보시고 남편문제를 지적한 예수님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와 보라는 빌립이 나다나엘를 예수께 인도할 때도 사용되었다(요1:46). 사마리아의 첫 전도자인 이 여자의 솔직한 전달을 통해서 30절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절 그 사이에 동네 사람들이 예수께 몰려오기 전 바로 그 때를 긴박감 있게 전달한다. 랍비여 잡수소서 예수께서는 율법 자들이 인정하는 랍비는 아니었지만 요3:2니고데모의 고백처럼 "하나님께로 보내심을 받은 선생님"이라는 의미로 제자들이 사용했을 것이다. 8절 말씀을 기억하면 제자들이 먹을 구하러 동네로 들어갈 때 먹을 것을 구해오는 문제가 그리 싶지 않은 문제였음을 주석에서 지적한바 있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먹을 것을 구해온 제자들은 자신들의 선생님께 잡수실 것을 청하고 있다.

32-33절 어렵게 구해온 양식 잡수실 것을 청했으나 다른 양식이 있다고 하신 예수께 제자들은 당연히 자신들보다 먼저 누가 같다드렸나 하는 생각을 했다.

34절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고 하심으로 지금까지는 사마리아 여인의 입장에서만 전달했지만 예수님의 입장으로 보면 보내심을 받은 이유에 대해서 하나님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온전히 이루는" teleiwvsw(텔레이오오)는 "성취하다, 완성하다, 온전케 하다, 마치다"의 뜻으로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19:28, 30)에 또 한번 사용되었다.

35절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당시의 속담이나 아니면 농부들은 씨를 뿌리고 추수하는 기간을 넉달로 보았고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벌써 추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마리아인들이 받아들이는 복음의 속도가 빠름을 말씀하신다. 그리고 현재 메시야가 이곳에 와 계신 이상 그 추수를 더 이상 미룰 이유가 없다는 영적인 말씀이다.

36절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misqo;n(미스돈) "삯, 상"을 말하는 이 뜻은 사역의 긴급함을 더 강조하기 위함과 일하는 자에게 주시는 주님의 임금(상)은 벌써 지불되었다는 것은 그가 이미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필요한 것을 모두 주고 계신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삯'으로 마20:8, 눅10:7, 롬4:4, 벧후2:15에 '상'으로 막2:12, 막7:28, 눅22:21, 요2:15, 행9:33, 고전 9:17, 고전9:24, 빌3:14, 히11:26, 요이1:8, 계11:18에 나온다.

36-38절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 때에 따라서는 뿌리지 않은자가 추수할 수 있고(신6:11, 수24:13), 씨 뿌리는 자가 자신의 어떤 불행 때문에 추수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신28:30, 욥31:8, 미6:15). 바울도 비슷한 표현을 했는데 고전3:6에서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라고 했다. 영적 추수에서는 자신이 다 뿌린 것은 아니지만 추수해야 하는 긴급함과 당위성을 말한다.

40절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의 배타적인 감정(요4:9)을 생각할 때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런 사마리아인들의 행동은 예수께 대한 유대인들의 배척(마13:58, 눅4:29)과 대조가 된다. 결코 예수께 대해 배타적이지 않은 이 사마리아인들의 행동 때문에 눅10:29-37에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를 들게 되셨을 것이다.

42절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 사마리아 우물가의 여인이 전한 "와 보라"는 말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나왔다. 비록 죄 많고 존경받지 못할 여인이라 하지만 그의 말을 듣고 나아온 사람들은 예수를 만났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고 들을 때 때로는 자신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죄인의 신분으로부터도 복음을 전달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을 무시한 사람은 예수를 만나지 못한다. 처음에는 이 여인의 말을 듣고 나아갔지만 나중에는 예수의 말을 듣고 믿었다. 오늘날에도 우리가 성령을 주고 사람을 구원할 수는 없다. 다만 사마리아 여인처럼 죄인의 신분이지만 그리스도께 신실한 안내자가 될 때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고 구원받을 수 있다.

4:43-54 신하의 아들을 고치심
44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 속에는 지금 떠나온 사마리아인들의 영접을 생각하시고 45절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을 아셨을 것이다. 그런데 유독 자신의 고향에서 배척 당하심을 안타까운 심정으로 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은 당시에 속담과 같이 이용되던 말이었다고 보는데 마태복음 13:57, 마가복음 6:4절에도 나오며 요한도 같은 말로 사용했다. 예수께서는 고향이라는 말을 사용하셨을 때 가깝게는 '나사렛'을 말하겠지만 좀더 넓은 의미에서는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의미한다. 배척 당하시게될 일을 염두에 두시고 하신 말씀으로 보여진다.

46절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이 지역에는 이미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사건의 소문 퍼져있었고 이것은 병든 자들에게는 병을 고치실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을 것이다. 왕의 신하 basiliko;"(바실리코스) "고귀한 사람"(49절 "신하"라고 번역된 것도 이 단어와 같다.)을 뜻하는 이 말은 혈연적이든 공적인 신분이든 어떤 것인지 모르지만 왕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뜻한다. 이 사람은 갈릴리 분봉왕이었던 헤롯 안티파스(Herod Antipas)와 연결되어 있는 신분의 사람일 것이다.

47절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이 사람의 살던 가버나움은 예수께서 계신 이곳(가나)에서 약 43km가 된다. 이 거리를 자신의 아들을 살리기 위해서 당시의 귀한 신분으로 달려오는 것은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다급했다. 그래서 "내려오셔서" 고쳐주기를 기대했다. 백부장의 믿음이 "말씀으로만 하옵소서"(마8:7-8)를 생각하면 분명 이 사람의 믿음은 약한 것이다.

48절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예수께 나아온 사람들에 대해서(그것이 비록 자기들의 욕심에서 병 고치기 위한 것이라 해도) 이토록 거칠게 대하신 적은 없었다. "너희는"이라고 하신 것으로 보아 이 사람의 개인에게만 꾸중하셨다고 보기보다는 헤롯 왕궁에 연관된 사람들에 대한 표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들은 혹시 어떤 기적을 또 볼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대한 거절로 볼 수 있다(눅23:8).
shmei'a kai; tevrata(세메이아 카이 테라타) "표적과 기사"는 요한의 독특한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전치사 카이로 묶음으로 하나의 단어처럼 이해해야 되는데 기적을 통해서 나타내는 하나님의 진리를 드러내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49절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앞 절에서 예수께서는 심한 질책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은 자신의 아들을 살려달라고 간청하고 있다. "죽기 전에" 47절에 이어 두 번 사용함으로 이 사람은 예수께서 죽은 사람도 살릴 수 있다는 예수의 능력은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자신의 약한 믿음이었지만 예수는 이 사람의 청함을 거절하지 않으셨다.

50절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살았다" zh'/(제)는 "살다, 살아있는"의 현재 능동태 직설법으로 죽어가던 아이가 회복되었음을 뜻한다.

53절 아비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 말씀하신 그 때인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는 고백을 통해서, 아버지의 믿음으로 아들의 병을 고쳤을 뿐 아니라 그 온 집안의 사람들이 믿는 역사가 일어났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