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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마태복음

[스크랩] 마태복음 (2 : 1~23)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08:11
 마태복음 2장


1 헤롯왕 때에 예수께서 유대 베들레헴에서 나시매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말하되

ㅇ헤롯왕 때에 - 마태는 예수의 탄생 시기가 헤롯왕이 통치하고 있던 기간이라는 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의 탄생 일자를 기산(起算)하
기 위함이기도 했으며 이스라엘의 왕통이 단절되고 이방인의 통치가 본격적으로 실현
됨으로써 '홀(笏)이 유다를 떠나고, 치리자(治理者)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남
으로, 지금은 실로가 오실 때이며, 백성이 그에게 복종할 때'(창 49:10)라는 야곱 예
언의 성취를 묵시적으로 제시하기 위해 본절을 언급한 것으로 볼 수도있다. 여하튼 여
기 '헤롯왕'은 정통 유대인이 아니라 에서의 후손인 이두메 사람(Idumean)안티파터
(Antipater)의 아들로서 주전 73년경에 태어났다. 그는 '영웅의 아들'이라는 이름의
뜻에 걸맞게 팔레스틴 인접 지역을 B.C. 55년경부터 A.D. 93년까지 통치한 왕조의 실
질적인 중흥자였다. 실로 그는 25세에 이미 갈릴리의 총독을 역임했고 그러한 탁월한
정치력으로 로마군의 도움을 받아 그의 반대 세력을 팔레스틴에서 완전히 축출하였다.
그러나 그는 지나치게 권력에 집착하여 계속되는 로마 정권의 교체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백성들로부터 과중한 세금을 징수하고, 각종 건축사역(극장. 원형
경기장, 기념비, 우상 제단,성채<城砦> 등)에 백성들을 동원하여 고된 부역을 강요했
기 때문에 유대인들로부터 비난을 면치 못했다. 물론 그런 와중에서도 그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제 3성전) 사역을 B.C. 20년에 시작하여 그가 죽은 뒤인 A.D. 68년에 완성
시킴으로써 주위로부터 부분적으로나마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하였다. 한편 그는
10명의 아내두었고, 그중 에돔 출신의 첫 아내 '도리스'(Doris)에게서 안티파터
(Antipater)라는 아들을 얻어 자신의 후계자로 생각하기도 했으나 그가 죽기(B.C. 4
년) 수일 전에 그의 과대 망상증으로 그 아들을 죽이고 말았다. 그리고 마카비가(家)
출신의 둘째 아내 마리암네(Mariamne)에게서 두 아들을 얻었으나 그들 역시 그 어미와
더불어 살해 당하고 말았다. 또한 대제사장 시므온의 딸이었던 미리암네 2세를 세번째
아내로 맞아 이두메의 분봉왕이 된 빌립 1세를 낳았다. 한편 사마리아 출신의 넷째 아
마르다게(Malthace)에게서 아켈라오(2:22)와 안티파스(Herod  Antipas;14:1)를 낳았다.
그리고 예루살렘 출신의 다섯번째 아내 크레오파트라(Cleopatra)에게서 칼시스
(Chalsis)와 빌럽 2세를 낳았다.이러한 가족 관계에 대한 도표는 신약 서론 참조하라.
여하튼 헤롯은 B.C. 4년에 매우 치명적인 질병에 걸려 70세를 일기로 최후를 맞아야만
했다(19절). 그런데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연대를 제시하는 것이 바로 본문이
외에는 성경 어느 부분에서도 제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예수의 탄생 일자를 산출하
는데 많은 애로점이 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학자들은 해롯이 B.C. 4년에 죽었기
때문에(Schurer) 적어도 예수는 그전에  태어났음이 틀림없다고 믿어왔다. 한편 헤롯
의 사망 일자에 대해서 유대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그가 죽기 전에 월식(月食)이
있었다고 언급함으로써 B.C. 4년 3월 12-13일로 측정케 했다. 그에 반해 유대인들의
전승은 헤롯이 죽은 후 유월절이 시작되었다고 증언함으로써 이때를 B.C. 4년 4월 11
일 경으로 추정케 한다.  이러한 여러가지 정황적(政況的) 증거로 보아 예수의 탄생
연대는 B.C. 5년 후반기나 B.C. 4년 초반기로보는 것이 타당한 듯하다.
ㅇ유대 베들레헴 - 이 베들레헴은 '유대'(in Judea)라는 단어와 함께 쓰임으로 갈릴리
호수 근처에 위치한 스불론지파의 베들레헴(수 19:15)과 분명히 구별된다. 이 두 단어
가 함께 쓰인 것은 2절의 '유대인의 왕'이라는 표현에 대한 암시인 듯하다. 한편 구약
때 이 지명은 주로 '에브랏', 또는'에브라다'로 불리어졌었다(창 48:7;룻 1:2;삼상 17
:12;미 5:2). 그런데 이곳은 예루살렘 남방 8km 지점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서 메시야
가 탄생할 곳으로 예언된 장소이자(미 5:2) 유대의 실질적인 건국(foundation lf a
nation)을 이룬 다윗왕의 고향이기도 하다(삼상 16:1-18). 여기서 히브리어 지명 베들
레헴(베트레헴)은 '떡 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데, 이는 아마 그 지역이 곡식과
과실이 풍성한 비옥한 곡창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로 이 지명과 걸맞게 온 인류에게
풍족한 생명의 양식을 주시기 위해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이곳에서 출생하신 것
이다(눅 2:4).
ㅇ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 본 문장의 초두에,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은 '이두',
곧 '보라'는 감탄사가 원문에 언급되어 있다(1:20). 이는 저자 마태가 본문이 지니는
중요성과 그 진정성을 강조하기 위해서 기술하였을 것이다. 한편 본문에는 예수의 탄
생을 축하하기 위해 내방(visit)한 방문객의 출발지와 그들의 지위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먼저 '동방으로부터'의 헬라어 '아포 아나톨론'은 '떠오르는' 이란 뜻의 '아나
톨레'에서 유래한 말로서 '동쪽으로부터의'(from the east, NIV)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런 사실에서 '동방'을 예루살렘 동쪽에 위치향 특정한 땅, 곧 페르시아
(Vincent), 바벧론, 메데(Carr),아라비아, 또는 동쪽에 위치한 모든 곳(Bruce)이라고
보는 학자가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문자적 해석 이외에 문화가 발달한 지역일 것이라는  
관점에서 소아시아, 애굽, 인도, 그리이스 등지로 보는 학자도 있다. 이 같은 다양한
견해들중 '동방'이 바벧론이었다는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D.A. Carson). 왜냐하
면 바벧론에는 예루살렘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쳤던 유대인 포로들이 정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메시야에 관한 구약 예언을 사전(事前)에 깊이 알고 있었다는 것은 적
어도 그들이 유대인과 긴밀한 유대(紐帶) 관계에  있었던 자들임을 암시하며
(Wycliffe), 그런 이유에서 그들은 유대인들이 대거 운집해 있던 바벧론에 거주하던
자들로 추정할 수 있다. 한편 본문에서는 '박사(마고이)들의 신원은 명확히 밝히지 않
고있다, 여기 '박사'로 번역된 '마고이'는 박수나 점장이 등의 엉터리 마술사가 결코 
아니었고 꿈을 해석하는 신통력을 지닌 메데, 바사, 또는 바벧론의 제사장읕 언급할 
때에 주로 사용되었다(단 2:2, 48;4:6, 7). 특별히 이 용어는 이 때로부터 600년 전
에 바벧론의 모든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 어른으로 높임 받았던(단 5:7,
11) 다니엘에게 적용되기도했다. 그리고 훗날 그리이스에서는 이 용어를 마술사와 박
수 등의 의미로 사용하였다(행 8:9;13:8). 한편 터툴리안(Tertullian, A.D. 255년경  
사망) 당시의 초대교회 전승에 의하면 '마고이'가 왕들이었다고 전한다. 아마도 이것
은 왕들이 와서 메시야를 경배할 것이라는 구약예언들(시 68:29, 31;72:10, 11;사49:
7;60:1-6)의 영향을 받아 발전된 듯하다. 여하튼 박사들이 (1) 점성학적 계산에 따라
자극을 받고 베들레헴을 향해 온 점, (2) 디아스포라(Diaspora)의 영향 등으로 다니엘
의 예언 및 메시야에 관한 구약의 각종 예언에 깊은 이해를 하고 있었다는점 등을 볼
때 '동방 박사'는 바벧론 출신의 천문학과 점성학에 해박한 지식을 지닌 존귀한 자들
로 볼 수 있다. 6세기 말경에 이르러서는 그들의 이름이 각각 멜콘(Melkon, 후에는
Melchior로 밝혀짐), 발사살(Balthasar) 그리고 가스퍼(Gasper)로 밝혀진 바 있다. 
ㅇ예루살렘에 이르러 - '유대인의 왕'으로 탄생한 아기를 찾기위해 유대인들의 정치,
종교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 방문한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 하니

ㅇ유대인의 왕 - '다윗의 자손'(1:1;9:27;12:23;15:22 등)이란 말이 유대인들이 인
식하고 있던 메시야의 별칭이었듯이, 이 명칭은 이방인들이 이해하고 있던 메시야의 
별칭이었다. 실로 '메시야 대망'은 모든 유대인의 공통된 현실이었거니와 바벧론 유
수 사건으로 인해 세계 각처에 흩어진 유대인들에 의하여 유대에서 나시는 메시야가
유대를 구하고 온 세상이 그로 인해 축복받는다는 사상이 널리 퍼져 었었다
(Josephus). 한편,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고, 이 이름으로 십자가
에서 최후를 맞으심으로써(27:37) 당신의 메시야성을 직.간접으로 드러내셨다.
ㅇ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 동방 박사들의 이러한 질문은 그들이 '유대인의 왕'의 탄
생 사실에 대해서 확신하고 있었음을 나타낸다. 그들은 왕이 이미나셨고, 그 사실을
모든 유대인들이 당연히 알고 있으리라고 믿고 있는 것이 틀림없다. 그런데 정작 메
시야의 도래를 고대하고 있었던 유대인들 사회에서는 전혀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은 아이러니칼(ironical)한 일이다. 이로 보건대 예수는 단순히 혈통적 '유대인의
왕'으로서가 아니라 영적 '유대인의 왕'으로 이 땅에 오신것이 분명하다. 
ㅇ그의 별 - 별을 통해 인간의 중대사(重大事)를 결정짓고 미래를 예견하는 것은 인
간의 오래된 관례이다.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한 자연 현상으로
서 별을 이용하셨다. 그런데 이 별에 대해 여러 가지 견해가 대두되었다. 즉 (1) 자
연계의 일반적인 현상과는 무관한 이적적 현상이다(Chrysostom을 위시한 대부분의 초
대교회교부들 및 초기 기독교 문서들), (2) 실재하지 않은 심리적 현상이다(Spinosa
등), (3) 혜성(혜성) 또는 폭발로 인해 엄청난 양의 빛을 몇 주 정도 발하는 초신성
(超新星)이다(Kepler, Martin, Schubert 등) 등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그리스도의 역
사적 실존을 확신할 수 있듯이 이 별의 실제적 현상 역시 인정할 만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결코 과학적으로도 모순되거나 결함이 없다는 점에서 세번째 견해가 가장 적
절한 것 같다. 한편 본서의 저자 마태는 이 부분을 기술하면서 적어도 민 24:17의 발
람의 신탁(神託), 곧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라는 묵시적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염두(念頭)에 두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마태는
초대 기독교 문서들에서 가끔 발견되는 '별'에 대한 무분별한 알레고리칼
(Allegorical)한 해석법으로는 본문을 접근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본문과 민수기는 둘 다 '별'을 이스라엘의 왕, 곧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있다.
이외에도 신약 성경에는 별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상관 관계를 적절히 묘하해 주고 있
다(밸후 1:19;계 22:16). 
ㅇ경배하러  왔노라 - '경배하다'는 뜻의 헬라어 '프로스퀴네오'는 신약 성경에서 그
대상으로 대부분 하나님과 예수를 두었다(8, 11절). 그러나 이 말은 일반 헬라어에서
넓은 의미로 '복종하다'는 뜻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이  단어를 근
거로 지나치게 그리스도론 정립에 적용시켜서는 안된다(Broadus). 따라서 여기서는 유
대인도 아닌 이방인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을 알아보고 '경배했다'는 사실을 강조하
기 위해 사용된 것으로 보는 것이 좋다. 한편 여기서 '경배'는 페르샤인들의 전통적
인사법을 연상케 하는 말로서 무릎을 꿇고 상대방에게 경의(敬意)를 표하는 예(禮)를
가리킨다.

3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

ㅇ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 한글 개역 성경에는 번역되지 않았으나 이 말 초반
부에 부드러운 반대  의사를 나타내는 접속사 '데'가 들어 있다. 따라서 본절이 시작
하기 전에 '동방 박사들이 유대인의 왕으로 오신 에수께 경배코자 한 것과 대조적으로'
라는 말이 의미상 첨가되는 것이 자연스럽다. '유대인의 왕'의 탄생 소문은 과대망상
증에 시달리던 70세의 늙은 헤롯왕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와 더불어 메시
야를 갈망하던 예루살렘 백성들까지 헤롯의 병적인 정도의 잔인한 학정(oppressive
government)과 또는 왕권 교체에 따르는 정변(political change) 등을 두려워했을 것
이다. 사실 헤롯은 전에 그의 과대망상증 때문에 그의 아내와 두 아들 그리고 5명의
마카비 용사들을 살해하기까지 했었다(1절 참조). 한편 백성들의 이와 같은 우유부단
한 태도는 예수의 생애 속에서 끊임없는 배척으로도 이어졌고 마침내 '자기들의 왕'을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는 비극을 낳게 되었던 것이다.
ㅇ소동한지라 - '소동하다'는 뜻의 혤라어 '타랏소' 는 '뒤흔들리다', '당황하게 다', 
'무섭게 하다'는 뜻을 지닌 말로서 그 당시 예루살렘 성내(城內)의 극심한 불안과 공
포의 현장을 생동감 있게 전해주고 있다. 실로 헤롯은 자기왕권의 위기 의식 때문에,
메시야의 오심을 마음으로부터 준비하지 못했던 백성들은 사회, 정치적 혼돈과 생존에
의 위협 때문에 심각한 두려움에 떨 수 밖에 없었다. 이는 곧 평화의 왕이시자 모든
역사의 처음과 끝이 되신(계 1:8) 예수의 도래가 악인들에게 미칠 궁극적인 영향력이
어떠한가를 묵묵히 보여주고 있다.

4 왕이 모든 대제사장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물으니

ㅇ왕이...서기관들을 모아 - 이 모임을 산헤드린 공회(Sanhedrin)로 보는 학자(De
Wette)도 있으나 그보다는 주로 종교적 문제들에 대해 헤롯의 자문 역할을 하던 개인
적인 성격의 단체(Bruce, Vincent)로 보는 견해가 더 유력하다.결국 이 자문 위원들은
기나긴 역사의 면면들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듯이 진리를 외면하면서까지 권력의 유
지를 위해 애썼던 권력의 하수인들이라 볼 수 있다.
ㅇ대제사장 - 헬라어 원문에는 '대제사장들'(투스 아르키에레이스)이라는 복수로 기록
되었다. 이는 그 당시의  대제사장 제도를 반영한 표현으로서 여기 '대제사장'은 헌직
대제사장과전직 대제사장 및  대제사장 가문에서 유력한 인물 등을 모두 포함한 말이
다. 그러나 원래 대제사장직은 아론의 후손만이 할 수 있는 영구직이었으나, 헤롯이
율법을 어기고 대제사장을 임의로 면직 또는 임명하는 불법을 자행함으로써(Josephus)
종교 질서를 문란하게 했다. 그같은 사실은 솔로몬 성전 이래 바벧론 포수전까지(약
410년간) 18명의 대제사장이 교체된것에 비해 스룹바벧의 성전 재건 후부터 헤롯때까
지(약 420년간) 300명이 넘는 수의 대제사장이 교체된 것으로도 중명될 수 있다.
ㅇ서기관 - 국가 기관에 종사하는 일반 서기관은 주로 문서를 담당하는 관리였는데(행
19:35) 비해 유대 종교 집단내의 서기관은 구약 율법에 능통하며 구약의 구전(oral
tradition)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일종의 율법 해석자요 교사였다. 그런 점에서 그들
은 율법사(lawyer)로 불리워지기도 했고(22:35) 때로는 랍비로 호칭되기도 했다. 당시
시민법의 상당 부분이 서기관들의 해석에 근거해서 만들어졌을 정도로 그들의 권위는
대단했다. 한편 그들은 대부분 바리새인 출신들이었는데 반해 그들과 경쟁적 관계에
있던 대제사장 계급은 대부분 사두개인 출신들이었다고 한다(D.A. Carson). 따라서 당
시 헤롯이 체질적으로 함께 모이기를 싫어하는 이들 두 계급 사람들을 동시에 부른 데
대해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한 학자들도 있다(Schweizer). 그러나 간ry한 헤롯이 이 두
부류의 견해를 동시에 수렴함으로써 '유대인의 왕' 탄생에 관한 사건이 종교, 역사적
으로 거짓이 아닌지에 대한 사실 여부를 명확히 알아보고자 했다는 점에서 두 부류를
동시에 부른 것으로 추측된다(D.A. Carson).
ㅇ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 - 헤롯은 그리스도(1:1)와 유대인의 왕(2:2)이 동일 인
물이며,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이 대망하던 자의 칭호였음을 알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
다(27:37).
ㅇ물으니(에퓐다네토) - 동사시제가 미완료형으로서 질문이 집요(執拗)하리만치 끈질
겼음을 암시한다. 더욱이 이 말은 종종 '시험삼아 물어 본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하
다. 그런 점에서 본문은 헤롯이 어떻게든 자신의 의구심을 풀어보려는 깊은 갈증을 보
여준다고 할 것이다.

5 가로되 유대 베들레헴이오니 이는 선지자로 이렇게 기록된바 

ㅇ가로되...기록된 바 - '기록된'(게그라프타이)이라는 말은 구약성경 내용을 가리키
는 것으로서, 그들은 구약 성경을 인용하여 확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한편 여기서 본
문의 '선지자로'에서 '로'는 헬라어 '디아'에 해당하는데  정확하게 번역하면 선지자
를 '통하여' 기록된 것을 의미한다. 즉 전치사 '디아'는 구약의 예언을 전한 선지자가
말씀의 궁극적인 근원이 아니라 말씀을 전달하는 도구 일뿐이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
다(1:22).
ㅇ유대 베들레헴이오니 - 헤롯의 질문에 조금도 주저치 않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은 구약 미 5:2에 근거하여 예언된 메시야의 탄생지가 베들레헴임을 지적했다(1절).
이는 그들의 해박한 성경 지식을 보여주며 더불어 그 당시 팽배해 있던 메시야 대망
사상을 반영해 준다. 실로 그들은 메시야의 도래를 참믿음으로 수용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기록된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지적 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6 또 유대 땅 베들레헴아 너는 유대 고을 중에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 네게서 한
다스리는 자가 나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ㅇ유대 땅...목자가 되리라 - 이 부분은 미 5:2의 인용이며, 삼하 5:2(대상 11:2)이
첨가되어 있다.  그러나 본서 기자 마태는 히브리 맛소라 사본을 그대로 따르지도 않
았고, 또 70인역(LXX)을 따르지도 않았다. 이처럼 마태가 독자적으로 변형시킴으로써
미 5:2과 차이가 나게 된 점을 살펴보면 (1) '베들레헴 에브라다' 가 여기서는 '유대
땅 베들레헴'으로 변형되어 있다. 이것은 '에브라다'가 고전적 표현으로서 시적(詩的)
인 부분에만 제한적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이러한 변형을 이룬 것 같다(Gundry). (2)
미가서의 '유다 족속 중에'가 '유대 고을 중에'로 바뀌어져 있다. 이 차이는 단지
'족속'이란 용어가 '고을'의 의인화된 표현이란 점에서 큰 무리없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3) '작을지라도'와 '가장 작지 아니하도다'가 상반된다. 이 두 구절들의 전
체적인 해석을 보면 이 차이가 단지 형식적(표면적)인 것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즉,
두 구절은 모두 베들레헴이 메시야의 탄생 장소라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크게 드러내
놓을 곳이 못되지만, 이제 메시야의 탄생으로 크고 위대한 처소(處所)가 될 것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Hengstenberg). (4) 한편 마태는 삼하 5:2에서 인용한 '목자'
라는 말을 첨가하고 있다. 이 표현의 목적은 미 5:2의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자'가 
다름아닌 '다윗에게 주어진 언약을 성취하는 자'임을 명백히 하기 위해서이다. 실로 
예수께서는 양으로 비유된 성도들을 인도하시고 지켜주시고 먹여주시는 선한 목자(요
10:11)가 되신다. 이를 가리켜 사도 베드로는 '영혼의 목자', '목자장'(牧者長) 등으
로 표현하였다(벧전 2:25;5:4).

7 이에 헤롯이 가만히 박사들을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자세히 묻고

ㅇ이에(토테) - 이 용어는 마태가 다른 복음서에 비해(막 9회, 눅 14회, 요 10회) 자
주 사용한(약 90여회)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로서 '그리고 나서', '그때에' 등으로 표
현할 수 있다. 그런데 시간적 의미로 사용된 본절 이의에는 대부분 단순히 다음 문장
을 연결하는 연결사로 사용되었다(17절;3:5, 13).
ㅇ헤롯이 가만히 - 이는 헤롯이 은연(隱然) 중에 일을 추진한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처럼 정치적 술수와 음모에 능통한 자였던 것이다. 한편 마리아와 아이를 살
리려는 요셉의 의로운 행동 '가만히'(1:19)와 대조적으로 헤롯의 '가만히' 는 아이를
죽이려는 음모를 암시하는 사악한 행동을 묘사한 것이다.
ㅇ박사들을...자세히 묻고 - 아마도 헤롯은 박사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극진한 예
우로 대했을 것이다. 한편 '별이 나타난 때'를 묻는 헤롯의 질문을 통해 예루살렘에
서는 그 별이 아직 감지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의 질문 속에는 어린 왕
의 탄생기점을 알아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16절) 사내 아이들을
살해하려는 무서운 음모가 감추어져 있었다. 헤롯은 태어난 '유대인의 왕'이 훼파된
다윗 왕국을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임을 눈치 채고 있었다. 그러므
로 그의 간악한 계획은 결국 하나님께서 세우고자 하시는 '메시야 왕국'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던 셈이다.

8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아기에 대하여 자세히 알아 보고 찾거든 내게
고하여 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ㅇ베들레헴으로 보내며 - 헤롯은 박사들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얻었다는 자신에 차
있었기 때문에 박사들에게 염탐꾼을 딸려보낼 필요성을 느끼지 않은 것 같다. 그러
나 결과적으로 그의 생각이 빗나간 것(16절)임을 뒤늦게 알게되었다. 진정 그는 이 
이방의 박사들이 하나님의 주권적 간섭으로 인한 지시(12절)대로 옴직이게 되리라고
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결국 이를 통해 혜롯의 비상하고도 교활한 '지혜'를 아
기 예수를 찾아가는 박사들의 '발' 밑에 놓이게하시는(고전 2장) 하나님의 섭리가 명
쾌히 드러나게 된다.
ㅇ나도 가서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 - 자신의 추악한 음모를 은폐하기 위하여 경건을
가장한 혜롯의 위선이다. 아기 예수를 살해하기 위한 계략(stratagem)의 겉포장은
'경배'였다. 먼길을 마다 않고 자기 발로 걸어 와서 스스로 드리는 동방 박사들의 진
정한 '경배'(2, 11절)와 어두운 데 웅크리고 앉아서 '나도...하게 하라'는 헤롯의 거
짓 '경버'가 어떻게 같을 수 있겠는가. 이와 같은 거짓 경배는 예수께서 섭자가에 달
리실 때에 로마 군사들의 모독과 조롱에서도 나타나고 있다(27:29)

9 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쌔 동방에서 보던 그 별이 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아기 있는 곳 위에 머물러 섰는지라

ㅇ박사들이 왕의 말을 듣고 갈새 - 본서의 기자 마태는 분명히 '별'이 박사들을 예루
살렘으로 인도했다고 기록하지 않았다. 더욱이 그들이 10절에서 별을 보고 기쁨을 표
한 것은 적어도 별이 계속 보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 아마도 그 당시 '별'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던 박사들이 그 '별'이 보이지 않게 되자(Meyer, Bengel) 유
대인의 왕이 탄생할 장소는 당연히 예루살렘일 것이라는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예루
살렘을 찾았고, 또 그 당시 유대의 유력자 헤롯의 '말'을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들은 헤롯의 경건하게 보이는 말에 고무(encouragement)되어 있었을 것이다.
ㅇ동방에서 보던 그 별 - 자신들의 지혜에 의해 길을 잘못 들었던 박사들에게 바른
길을 제시하는 하나님의 밝 은계시의 별이 다시 나타났다. 실로 혼탁하고 부패한 세
상 가운데서 참 생명되신 예수께로 인도하는 유일한 힘은 하나님의 계시 뿐이다(시
119:105). 한편 본문은 박사들이 궁(宮)을 떠날때 이미 밤이 되었다는 사실을 암시
하고 있다. 낮이 무덥고 밤이 서늘한 중근동 지방에서는 먼길을 가기 위해 밤에 별을
보고 여행하는 것이 관습이었다(Meyer).
ㅇ문득 앞서 인도하여 가다가 - 여기서 '문득'이란 말은 헬라어 원문에는 없는 말로
서 갑작스런 상황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의미상 첨가한 말이다. 이제 박사들
은 다시 '별'을 통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바른 길을 갈 수 있게 되었다. 여기서 '
앞서 인도하여'라는 헬라어 '프로에겐'은 서술적 미완료 시상으로 동작(인도)의 계속
성을 나타낸다. 즉 '손으로 이끌듯 계속해서 인도해 가는 상태'를 나타내는 용어이
다(Chryststom). 그런데 문제는 과연 이 말이, 별이 동방으로부터 베들레헴까지 움
직였다는 것과 베들레혭 상공에 계속 떠서 움직이고 있는 별을 보고 박사들이 왔다
는 것(Bruce) 중 어느 것을 가리키는 말인지 확실하게 밝힐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
한 것은 박사들은 그 별이 '유대인의 왕'(2절)을 가리킨다고 믿었고, 그 별은 그들을
'아기 있는 곳'으로 인도한 것이다.
ㅇ아기 있는 곳 위에...섰는지라 - 여기서 '있는 곳 위에'(에파노 후 엔)란 '아기가
있었던 베들레헴의 한 특정한 곳 위에'로 볼 수도 있고, 그저 막연히 '베들레헴 동네
위에'로 볼 수도 있다. 만일 전자를 받아들인다면 이 사건의 초자연성을 더욱 강조한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후자를 받아들여 일단 베들레헴에 도착한 박사들이 수소문하
여 아기가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할지라도 이 사건의 초자연성을 감소시키지는 못할
것이다. 여하튼 별은 아기가 '있는' 곳에 조금도 움직이지 않고 굳게 '머물러' 있었
다. 실로 그곳에 바로 인도(leading)와 축복과 그리고 구원이 있었다. 정녕 다윗의
자손 예수께서 '머물러 서'(눅 18:40) 있는 곳에 구원이 있는 것이다.

10 저희가 별을 보고 가장 크게 기뻐하고 기뻐하더라

ㅇ저희가 별을 보고...기뻐하고 기뻐하더라 - '별을 보고'라는 말은 그들이 새삼스
럽게 별의 나타남(7절)을 보았다기 보다, 아기 예수위에 '머물러 서'있는 별이 자신
들의 기나긴 여행의 최종적인  목적지로서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은혜, 곧 임마누엘
이신 예수(1:23) 탄생을 드디어 목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을 확신하였다는 말이
다. 이 확신은 그들로 하여금 세상에서 맛볼 수 없었던 무한한 기쁨의 세계로 들어가
게 했다. 그러한 그들의 기쁨을 표현한 본문 중 특별히 '가장'에 해당하는 헬라 '스
포드라'는 '충만하여 차고 넘치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며, '큰'(메가렌) 역시 크
고 놀랍고 장엄함을 뜻하는 단어이다. 이 두 단어의 만남은 결국 그 기쁨의 실체가 
최상에 이르렀음을 암시향다. 그리고 '기뻐하고 기뻐하라'(에카레산 카란)는 기쁨을
뜻하는 헬라어 '카라'라는 동일 어근의 중첩(重疊)으로서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기쁨을 기뻐했다'(they rejoiced with joy)가 된다. 이는 어떤 의미를 특별히 강조
하기 위해 동일한 의미의 단어를 중첩해 사용했던 셈어의 영향을 받은 중언법적(重
言法的) 표현이라 할 수 있다(Moule). 따라서 본문은 박사들의 기쁨이 절정에 이르
렀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한 택한 백성들의 소동(3절)에 비하
여ㅜ얼마나 값진 일인가. 그들은 샛별(벧후 1:19)의 인도를 따라 왔기 때문에  의
(義)의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뵐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즉 그들의 기쁨은 자신들에
게 닥친 크나큰 행운(메시야를 만나 보는 일)을 볼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11 집에 들어가 아기와 그 모친 마리아의 함께 있는 것을 보고 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리니라

ㅇ집에 들어가 - 누가복음에는 '아기가 나신 곳'이  마구간으로 되어  있다(눅 2:7).
그에 비해 본문에는 '아기가 있는 곳'이 집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동방 박사들
이 방문한 시기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 B.C.  27-A.D. 14)의
명(命)에 의한 호적, 곧 인구 조사(눅 2:1)가 끝난 얼마 후(아마 수개월 경과 후,
Wycliffe) 요셉이 거처를 마련한 다음이었을 것이다(Theophylact, Lenski, Alford등).   
ㅇ엎드려 아기께 경배하고 - 여기서 상대방에게 무릎을 꿇고 '엎드려 경배'하는 것은
헬라나 로마의 예법이 아니라 동방의 예법이다(2절). 동방 박사들이 경배했던 대상은
마리아와 '함께'가 아니고 오직 아기 예수 뿐이었다. 즉 그들은 헤롯에게나 아기의 부
친과 모친에게도 경배하지 아니했다. 경배의 대상은 오로지 만왕의 왕으로 이 땅에 오
신 예수 한 분 밖에 없는 것이다(4:10).
ㅇ보배합 - 이 단어는 번역이 애매하게 된 것으로 '귀중품 상자'나 '보물 상자'를 의
미한다. 그들의 '보배합'은 그들의 아름답고 고귀한 마음(예물)의 저장소였다(6:20).
ㅇ황금과...예물로 드리니라 - 이 내용은 이방의 왕들이 메시야 앞에 예물을 드리고
복종하게 될것이라는 구약 예언(시 72:10;사 60:6)의 분명한 성취이다. 한편 고대 동
양 풍습에서는 왕을 알현(audience)할 때 예물을 가지고 가는 것이 상례(常禮)였다(창
43:1;삼상 9:7, 8;왕상 10:2;Derett, Clarke). 박사들이 헌상(offering to a superior)
한 세 가지 예물 중 황금은 동서 고금을 통해 매우 값지고 불변하는 성질의 귀중품으
로 여겨져 왔다. 그리고 유향은 값비싼 향료로서 반질반질하고 향내나는 흰색의 액체이
며 아라비아 지방의 관목 껍질에 자국을 내어 얻는다. 또한 몰약은 역시 주로 아라비아
지방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추출되는 것으로서 상당히 고가(高價)의 향기를 지닌 액체이
다(시 45:8;아 3:6). 이는 시체를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 내지는 마취제로 사용되었다
(막 15:23). 그런데 고금의 많은 주석가들(Origen, Hendriksen등)에 의하면 이 예물 가
운데 황금은 메시야 왕권을, 유향은 예수의 신성(神性)을, 그리고 몰약은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이에 대하여 칼빈(Calvin)은 왕과 제사장
과 그분의 장사(葬事)되심을 각각 상징한다고 본다. 어쨌든 동방 박사들의 종교적 동기
를 이해한다면 예물들에 상징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여기서 예물이
세가지라는 사실에서 동방 박사들을 세 사람이라는 교회 전승이 형성되게 되었다. 어
떤 전설(legend)에 따르면 완전 수에 해당하는 '12'명의 박사라고도 전한다. 한편 이
세 예물들은 모두가 값비싼 것들로서, 예수의 가족이 애굽으로 피신하였을 때(14절)요
긴하게 사용되었을 것이다.

12 꿈에 헤롯에게로 돌아가지 말라 지시하심을 받아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ㅇ꿈이란 신탁(神託)으로 의문시했던 사실에 확실한 해답을 얻는 행위, 또는 공무(公
務) 수행을 위해 조언을 받거나 주는 행위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 말은 앞으로의 자
신들의 행동을 결정치 못하고 주저했던 동방 박사들의 계시 요청에 따라 하나님의 응
답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Vincent). 그런데 여기 언급된 '꿈'은 본서의 초두에서
두번째로 나오는데, 첫번째(1:20)와는 달리 주의 사자가 등장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꿈은 아기 예수를 지키시기 위하여 헤롯의 악한 계획을 무산시키시는 하나님의 직
접 계시로 볼 수 있다(P. Gaechjter).
ㅇ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 - 하나님께서 박사님에게 헤롯의 눈길을 벗어나서 고
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길을 가르쳐 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정확히 어느 길로
갔는지는 분명하지 않고 다만 예루살렘을 피하여 사해의 남단으로 돌아갔든지 요단강
을 건너 돌아갔을 것이라고 추측할 뿐이다. 이처럼 예수를 참으로 만난 자는 지금까
지 걸어 왔던 길을 버리고 다른 길, 즉 생명과 진리의 길(요 14:6)로 가게 될 것이다.

13 저희가 떠난 후에 주의 사자가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 하시니

ㅇ저희가 떠난 후에 - 본절의 '떠나다'는 동사는 12절의 '돌아가다'는 동사와 같은 의
미로서 본절 이하의 사건과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있음을 암시한다. 따라서 주의 사자
를 통한 애굽 피난 지시가 박사들이 떠난 얼마 후에 내려졌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어쩌면 박사들에게 지시가 임했던 시기에 같이 내려졌을수도 있고 아니면 박사
들이 떠난 그 날 밤에 있었을 수도 있는 만큼 매우 근접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ㅇ주의 사자가...현몽하여 - 요셉은 제 2차로 주의 사자의 계시(revolution)를 접하고
있다(1:20). 그런데 이번 계시의 요지는 당신의 아들인 메시야를 보호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나타내는 데 있었다.
ㅇ헤롯이...죽이려 하니 - 메시야에 대한 헤롯의 살해 음모가 이방인의 경배와 예물
바로 뒤에 다가왔다. 실로 이것은 예수의 생애 가운데 계속되는 배척과 수모(受侮)의
전조(前兆)가 되는 셈이다.
ㅇ일어나...애굽으로  피히여 - 여기서 '일어나'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겔데이스'는
조금도 여유를 두지 말고 곧바로 행하라는 촉급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실로 유대인의 
왕이요, 구원자로 오신 예수께서 유대 땅의 환영을 받지 못하시고(요 1:11), 마치 도
망자의 모습으로 이방 땅에 급히 피하실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애굽은 당시 로마의
식민지로서 헤롯의 통치권밖에 있는 지역이며, 그 당시 약 100만명 정도의 유대인 집
단이 군집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고한다(Philo, A.D. 40). 애굽 특히 알렉산드리아 지
역의 헬라화된 거주민들을 위해 헬라어로 된 구약인 70인역(LXX)이  만들어진 것은 직
어도 애굽에서의 유대인 지위가 상당히 인정받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한 예(例)이다.
한편 유대인의 애굽 피난 역사는 오래 전부터 행해진 것이었다.  그곳은 일찍이 흉년
으로 인해 아브라함(창 12:10)과 야곱(창 46:6)이 내려간 바 있으며, 솔로몬 사후(死
後) 많은 유대인들이 그곳으로 피난하였고(왕상 11:40), 포로 시대에는 예레미야를 비
롯한 많은 유대인이 그곳으로 갔으며(렘 26:21-23;43:7) 특히 신구약 중간기 때는 시
리아의 학정에 의해 그곳으로 많은 유대인이 내려가는 등 애굽은 유대인이 피난하기에
적지(適地)가 되어 있었다. 따라서 예수의 식구들은 쉽게 애굽에 이주할 수 있었을 것
이다. 그런데 비팔레스틴 계열의 외경 중 하나인 '예수유년기의 복음'(Gospel of the
Infancy)은 당시 애굽으로 내려간 예수의 각종 이적들을 소개하고 있다.
ㅇ내가...거기 있으라 - 아기 예수를 안은 요셉과 마리아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애
굽으로 간 것처럼 돌아와 때도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려야만 했다. 즉 그들은 헤롯이
죽을 때까지만이 아니라 다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을 때까지(19, 20절) 애
굽에서 인내하며 기다려야만 했던 것이다. 한편 이 지시는 요셉으로 하여금 하나님께
서는 피난 길 뿐만 아니라 피난 기간과 그 이후까지도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했을 것이다.

14 요셉이 일어나서 밤에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떠나가

ㅇ요셉이 일어나서...애굽으로 떠나가 - 여기서 '일어나서'에 해당하는 '에게르데이
스'는 수동태 제 1과거 시상으로서 주저함없이,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곧바로 행동을
취한 것임을 나타낸다. 마치 1:24처럼 요셉의 절대적이고 즉각적인 순종이 부각되어
있다. 실로 요셉은 그 밤에 출발하여 애굽의 변경까지 약 120km나 되는 먼 여행을 시
작해야만 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완전한 믿음이다(히 11:1, 6). 
'아기와 그의 모친'이란 구절은 본장에서 계속 나오는 표현으로서 하나님의 섭리와
보호하심이 추호(秋毫)도 실수가 없음을 은연 중에 드러내고 있다.

15 헤롯이 죽기까지 거기 있었으니 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바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ㅇ헤롯이 죽기까자 거기 있었으니 - 헤롯은 추하고 심각한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비
참히 죽어갔다고 전한다(Josephus). 이러한 헤롯의 죽음(B.C.4년)은 많은 사람들에
게 해방을 가져다주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하나님의 지시를 고대하던 마리아와 요
셉은 아기와 함께 '나사렛'(23절)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그외에도 초금욕주의
자들인 에센파의 쿰란 종파 사람들은 B.C. 31년에 파괴되었던 그들의 본부에 돌아와
재건할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요셉은 마리아와 아기를 데리고 애굽에서 체류(stay)
하는 동안에 그곳에 살고 있던 동족들의 도옴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유대인 탈무드(Talmud)에 따르면 애굽에는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유대 회당
이 있었고 그곳을 통해 유대인들의 접촉이 많았으며, 더불어 직업을 구하는 일이나 
각종 생활 정보도 나눌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같은 부류의 직업인들끼리는 쉽게 
동화(同和)될 수 있었다고 한다. 따라서 목수출신의 요셉은 애굽 생활 중에 쉽게 일
자리를 얻어 생계를 꾸려갈 수 있었을 것이다. 
ㅇ이는 주께서 선지자로 말씀하신 바 - 구약에 능통한 유대인들을 향해 글을 쓰고
있던 마태의 독특한 문장 표현이다(1:22). 즉 마태는 구약의 예언과 계시가 예수 그
리스도의 때에 완성되고 있음을 구체적으로 졔시하여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호세
아 선지자의 예언적 메시지(호 11:1)예수의 생애와 접목(grafting)시키고 있는 것이
다. 
ㅇ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 - 마태는 예수의 애굽 피난 사실을 11:1의 말씀과 일치
시키고있다. 사실 11:1에서 인용한 이 구절은 본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에서 불러내신 사건을 언급한 말이다. 그러나 마태는 성령의 영감(靈感)으로 그 사건
을 예수께 적용시켰다. 즉 마태는 이스라엘(하나님의 자녀)의 역사가 예수(하나님의
독생자)의 생애 속에서 재현(reappearance)되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처럼 구속사
전개의 정점인 예수의 개인적 생애에 신.구약을 포함한 하나님의 자녀들의 역사가 다
포함되어 있음을 암시한 것은 예수의 사역이 단순한 민족적 해방에 그친 모세의 사역
을 넘어서 전 인류의 영원한 구원을 위한 것임을 의미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예수는
신약에서 이스라엘의 원형(原形)으로 종종 나타난다. 몇가지를 예시해 보면 (1) 이스
라엘의 40년 광야시험(신 8:2, 3)-예수의 40일 금식 기도(4:2), (2) 이스라엘은 열매
맺지 못한 포도나무(사 5장)-예수는 참 포도나무(요 15장), (3)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장자(출 4:22)-예수는 하나님의 맏아들(롬 8:29;히 1:6),(4) 이스라엘은 다윗의 골육
(삼하 5:;;1)-예수는 다윗의 자손(1:1) 등이다. 또한 신약에서는 어디에서나 구약의
역사와 율법을 예언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간주(看做)하고 있다. 즉 '예언의 성취'라
는 말은 그것이 구약과 연결되어 구약의 예표의 실체(원형)라는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따라서, 호 11:1은 단순히 출애굽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선 안 된다는것이다.
이 구절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그리고 있고,그 사랑은 참 이스라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완전히 이루어질 것으로 보아야만 한다. 호세아는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진행되는 동안에 펼쳐진 계시, 즉 하나님의 구속의
사랑이 그려진 그림과 같은 전형적(典型的)인 계시의 일부분을 제공했고, 마태는 그
계시의 '완전한 의미'이신 그리스도 예수의 생애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메시
야 대망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이 차지하는 위치는 민족적, 혈통적 차원에서 이루어지
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는 데서 결정된다. 

16 이에 헤롯이 박사들에게 속은줄을 알고 심히 노하여 사람을 보내어 베들레헴과 그
모든 지경 안에 있는 사내 아이를 박사들에게 자세히 알아본 그 때를 표준하여 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ㅇ이에 헤롯이...속은 줄을 알고 - 여기서 '속다'는 뜻의 '에네파이크'는 단순히 속다
는 뜻 이상의 의미로서 '희롱(조롱)하다'는 강렬한 뉘앙스(nuance)를 담고 있다(Calvin).
따라서 박사들이 자기에게로 오지 않고  떠나버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헤롯은 박사들
의 태도를 기만(欺瞞) 이상인 자신을 희롱한 사실로 여겼을 것이다. 박사들이 자신의
교활한 음모를 꿰뚫어 보고 몰래 달아남으로 자기를 앉아서 '바보처럼' 기다리게 했다
는 생각이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헤롯을(1절) 못견되게 했을 것이다.
ㅇ심히 노하여 - 여기서 '노하다'는 뜻의 헬라어 '뒤모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분
노하다는 뜻으로서 그당시 헤롯의 활화산같이 꿇어 오르는 극렬한 분노를 예감케 해준
다.
ㅇ사람을 보내어...그 모든지경 안에 있는 - 헤롯의 칼날같은 명령이 실행되는 데는 오
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베들레헴과 예루살렘 사이는 약 8km정도 밖
에 떨어져 있지 않았기 때문이며, 또 베들레헴은 조그마한 소도시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 지경에'는 베들레헴 뿐 아니라 베들레헴 근교의 한적한 오두막까지를 포함
한다(Meyer).
ㅇ사내 아이를...두 살부터 그 아래로 다 죽이니 - 헤롯은 자기가 찾는 아이의 나이를
정확히 몰랐다. 따라서 그는 장차 유대인의 왕이될 가능성이 있는 자를 모조리 살해하
기 위해 살해 범위를 '2살 이하의 사내 아이'로 한정시켰다. 여기서 '두 살부터'는 '별
이 나타난 때'(7절)에 근거하는 바, 이에 대한 견해는 (1) 아이를 완전히 제거하고자
충분한 여유를 둔 것이다. (2) 박사들이 예루살렘까지 근2년동안이나 걸려 도착했다. 
(3) 박사들의 귀국 후 2년 만에 살해했다 등이 있는데 분명하지 않다. 그리고 '2살이
하'란 말이 갓 태어난 신생아까지를 포함한다는 것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회의적(懷疑
的)이다. 대신 15개월 내지 20개월까지로(A.T. Robertson) 보기도 하며 좀더 넓게 6개
월에서 20개월 사이까지로 보기도 한다(D.A. Carson) 당시의 분노에 찬 상황으로 보아
후자의 견해로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한편 당시 살해된 유아의 수효에 대해 대단히
많았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학자도(Alford) 있고 심지어 14,000명 정도로 추산
(calculation)하는 전승도 있다. 그러나 베들레헴이 조그마한 도시요 당시 주민이 1,
2천명 정도였다는 점을 들어 단지 수십명 안팎이었다고 보는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Farrar, Carr). 그런데 헤롯의 이러한 잔인한 살상극은 '유대인의 왕'에 대한 영적
무지의 결과이다. 즉 예수의 진상 도래는 로마 정복을 위한 정치적 목적에서가 아니라
죄의 속박에서 이스라엘을 해방키 위해 오신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모르는 헤롯은 살
인마의 탈을 또 한 번 쓰게 된 것이다. 한편 이 사건에 대하여 요세푸스는 다루지 않
고 있어 진위(眞僞)를 의심하는 사람도 있으나, 마크로비우스(Macrobius)의 저서
'축제'(Saturaalia)에 보면 아구스도(Augustus) 황제가 '헤롯의 명령으로 시리아 지
역의 두 살 이하 아이들이 살해 당할 때 그 속에 헤롯 자신의 아이도 포함되었다'하면
서 '차라리 그의 아들이 되기보다 돼지가 되는 편이 낫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아무
튼 권능과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헤롯의 손에서 예수를 거뜬히 건져내셨고, 세상의 왕
들이 꾸미고 있는 음모에 대해서 가소로이 비웃고 계셨을 것이다(시 2:1-6).

17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말씀하신바

ㅇ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로 - 마태복음에 예레미야라는 이름이 세 번 나오며(16:14;27:
9), 그 밖에는 신약성경 어느 곳에도 나오지 않는다. 

18 라마에서 슬퍼하며 크게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였도다 함이 이루어졌느니라

ㅇ라미에서 슬퍼하며...라헬이...애곡하는 - 예레미야가 이 예언(렘 31:15)을 선포한
시기(여호야김 통치 초기)를 고려해 볼 때(렘 30:1-33:26) 주전 586년에 멸망한 유다
와 베냐민의 포로 장면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라헬은 야곱의 아내이자, 요셉과 베냐
민의 모친으로서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유대인의 전형적인 어머니로 묘사되어 있다. 그
리고 라마(Ramah)는 베냐민 지파 성읍이며(수 18:25) 예루살렘과 베들레헴에서 가까우
며 벧엘로 가는 도중에 위치하는 곳이다. 바로 이 부근에 라헬의 무덤이 있는 셀사
(Zelzah)가 있었다(삼상 10:2). 이러한 정황들을 익히 알고 있는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스라엘의 바벧론 포수를 바라보며 라헬이 그녀의 무덤 속에서 자신들의 범죄로 인해 포
로가된 자손들, 즉 '그 자식'들이 끌려가는 모습(렘 40:1, 2)을 바라보면서 통곡하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즉 이 구절은 옛날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이 가나안에 정착
할 당시 라마에서 에브라다(베들레헴)로 가는 도중에 자식이 없어 슬퍼했었던 라헬이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産苦)로 인해 죽은 사실(창 35:19,20)을 포로됨에 비유하여 예레
미야가 시적(詩的)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다시 이것을 마태가 베들레헴 유아 학살 사
건에다 관련시킨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마태가 여기에서 바벧론 포로 장면을 연
결시키고 있는지 이해할수 있다. 다시 말해서 이 두 사건들의 초점은 베들레헴에 맞추
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어미들(라헬)이 흘리는 '눈물'에 맞춰져 있는 것이
다. 바벧론 유수 때에는 다윗의 혈통에서 이어지던 왕권이 물러나고 이방의 속박으로
인하여 흘리던 탄식의 '눈물'이, 또다른 이방인(헤롯은 에돔인이었음)의 학정으로 살해
된 베들레헴(다윗성이라고 불리우는, 삼상 16:1) 아이들이 어머니가 흘리는 '눈물'로
그 절정을 이루고 있다. 그러나 이는 곧 그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다윗의 후손 예
수가 '유대인의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다스림으로 오랜 포로 생활이 끝나고 하나님께
서 예레미야에게 언약해 주신 새 언약(26:28;렘 31:31-34)이 온 이스라엘에 선포될 것
이기 때문이다.

19 헤롯이 죽은 후에 주의 사자가 애굽에서 요셉에게 현몽하여 가로되

ㅇ해롯이 죽은 후에 - 헤롯은 그의 통치 38년, 즉 로마 기원 750년(B.C.4년)에 70세의
나이로 병들어 죽었다. 한편 그의 최후를 기술한 요세푸스(Josephus)의 '고대사'에 따
르면 그는 내장이 썩고 벌레가 나며 악취와 경련이 끊이질 않아 백약이 무효하여 죽으
니 그 모습은 잔인한 생각을 가진 사람의 얼굴을 한 괴물의 죽음이었다 한다.
ㅇ주의 사자가 애굽에서...현몽하여 - 이는 요셉에게 나타난 세번째 현몽(現夢)인데 하
나님의 주권적인 관심과 역사가 아기 예수의 생명에 집중되어 있음이 엿보인다. 한편
마태는 요셉이 3차 현몽 당시에도 여전히 애굽에 머물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으나, 애굽
체류 기간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이에 대해 예수의 어린시절을 기록한 외경 '예수
유년기의 복음'(Gospel of the Infancy)에는 약 3년간 애굽에서 머물렀다고 전한다. 그
리고 어떤 학자는 이때 예수께서 고용 일꾼으로 일하셨고, 각종 이적을 베푸셨다고 전
한다(Origen). 여하튼 예수의 가족이 애굽에 머무른 기간이 그리 오래지 않은 것은 분
명하다.

20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하시니

ㅇ이스라엘 땅으로 가라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고 명령하신 것처럼 요셉에게 복귀 명령을 내리시고 계신다. 여기서 이스라엘 '땅'이라
는 표현은 성경에서 오직 20, 21절에서만 나오는 것으로서 6절의 '유대 땅'과 동일한
의미이다.
ㅇ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 죽었느니라 - 여기서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이란 단
순히 혜롯을 지칭하는 막연한 묘사이다. 그런데 아기의 목숨을 '찾던 자들'(호이제툰테
스)이라는 복수형태에 대하여 여러견해들이 있다. (1)출 4:19을 인용한 것이다(Hill).
(2) 헤롯이 죽기 5일 전에 죽었던 그의 아들 안티파터(Antipater)가 이 학살에 가담하
였다(Meyer, Clarke). (3) '그들'이라는 복수대명사는 막연한 지칭일 수도 있고, 3인
칭의 범주에 속하는 것을 가리킬 수도 있다(Turner). 그 중에서 마태가 바로 앞 구절에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실을 근간으로 한 호 11:1을 인용하면서부터 이미 그의 머리 속에, 
생애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적 전형이라 할 수 있는 모세를 떠올리고 있었을 것
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출 4:19 을 인용하였을 것이다.

21 요셉이 일어나 아기와 그 모친을 데리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오니라

ㅇ요셉이 일어나...들어오니라 - 여기서도 요셉의 절대 순종이 돋보인다. 아마 이때는
어둠을 틈타 행동해야 할 아무런 장애 요소가 없었기에 해가 있는 낮에 본국(本國)으
로의 입국을 결행했을 것이다. 실로 '밤에' 떠났던(14절) 그들이 낮에 돌아오게 된 것
이야말로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시기 위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하나님의 절
대 의지를 일견(一見)나타내 보인 것이라 할 수 있다.

22 그러나 아켈라오가 그 부친 헤롯을 이어 유대의 임금 됨을 듣고 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떠나가

ㅇ아켈라오 - 헤롯 사후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Caesar Augustus, B.C. 63-A.D.14)
가 헤롯이 관할했던 영토를 셋으로 분할하여 아켈라오(Archelaus)에게는 유대, 사마리
아, 이두매를 주었고, 헤롯 빌립 1세(Herod Philip I)에게는 바타네아(Batanea)와 트라
코니티스(Trachonitis)를,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에게는 갈릴리와 베레아를 각각
주어 다스리도록 하였다. 한편 아켈라오는 그의 부친과 다름없이 잔인하고 포악한 성격
의 소유자였다. 그는 로마에서 성장하여(Josephus) 로마 황제에게서 이스라엘의 분봉왕
으로 임명받았다. 그리고 만약 통치만 잘하면 '왕'의 칭호까지 부여받을 것을 약속받았
다. 그러나 그는 무능한 통치자로 평가되어 A.D. 6년에 폐위당하고 축출되었다. 그런
관계로 유대지방은 로마에서 직접 파견된 총독에 의해 다스려졌다. 바로 그 무렵에 요
셉은 식구들을 인솔하여 이스라엘 경내로 진입하고 있었던 것이다.
ㅇ거기로 가기를 무서워하더니 - 유대 사가(史家) 요세푸스(Josephus)에 의하면 아켈라
오는 시이저로부터 분봉왕으로 임명받기전부터 잔혹한 살상을 저질렀다 한다. 그 한 예
로 그의 부친 헤롯이 죽기 전 자신이 성전에 세워 놓았던 금 독수리상을 훼손시켰던 유
다와 맛디아라는 열렬한 애국자 둘을 살해한 적이있었다.  그런데  아켈라오가 아직 즉
위하기 전 유월절이 다가왔을 때 여러 사람들이 이 두 순교자들을 위하여 애도(哀悼)하
고 있음을 발견하고, 자기 부하들로 하여금 성전을 에워싸도록 하고서 3천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을 무차별 학살하였다고 한다. 이것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요셉이 들은
소식이었을 것이다.
ㅇ꿈에 지시하심을 받아 갈릴리 지방으로 - 아마도 그때 마태의 생각에는 요셉이 헤롯
의 음모가 아니었다면 애굽으로 도피하기 직전에 머물렀던 베들레헴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려 했으며, 애굽에서 돌아올 때에도 베들레헴으로 가려고 했을 것이다. 그 이유는
어린 메시야가 성장하기에 알맞은 곳은 예루살렘 성도(聖徒) 주변이지 '이방의 갈릴리'
(4:15;사 9:1)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한편 누가는 이곳 나사렛이 원래 요셉과 마리아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밝힘으로써(눅 1:26;2:4, 39) 그들의 나사렛 정착을 매우 자연스럽
게 받아들이고 있다. 여하튼 이 현몽(現夢)은 그가 받은 네번째이자 마지막 현몽으로
이때 받은 '지시'(크레마티조)는 두려움에 대한 하나넘의 '경고'라는 의미이다.

23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ㅇ나사렛 - 히브리어 '네체르'에서 유래한 말인데 '싹, 어린 순'이라는 뜻이다. 갈릴리
의 한 성읍으로 예루살렘 북쪽 약 90km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비옥하지 못한 모래 땅,
주위의 산들로 인해 경제적으로도 빈약한 성읍이었다. 이곳은 구약성경에도 외경(外經)
에도 요세푸스(Josephus)의 고대사에도 나오지 않고 여기에 새로이 등장하는 이름이다. 
실로 나사렛은 경멸받던(요 1:46) 성읍의 하나였으나 주후 4세기 이후 기독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되었다. 
ㅇ선지자로 하신 말씀...이루려함이러라 - 본절의 배경이 되는 구약의 구절은 정확히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이 구절은 오랜 세월을 두고 다음과 같은 여러 논쟁을 야기
시켜왔다. 즉 (1)구약 이외에 구전되어 오던 구절이거나 분실된 부분이다(Chrysostom,
Zigabenus, Theophylact). (2) 나사렛의 뜻이 '싹'이므로 이새의 줄기에서 나온 한 싹
(사 11:1)을 가리킨다(Jerome, De Wette, Vincent). (3) 나사렛의 어근은 나사르로서
'구별'을 뜻하므로 '나실인'(민6:2,8)에 관련된다(Tertullian, Erasmus, Wetstein).
위와 같은 견해들도 어느 정도 일리가 있기는 하지만 보다 타당한 해석은 다음 경우이
다. (4) '선지자'(프로페톤)란 용어가 복수 형태인 것은 한 특정한 선지자가 '메시야는
나사렛 사람이라고 불리리라'라고 예언한 것이 아니라, 구약의 많은 선지자들이 메시야
가 멸시와 천대를 받게 될 것이라는 예언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시 22:6-8,13;69:
8, 20, 21;사 11:1;49:7;53:2, 3, 8;단 9:6, Michaelis, Paulus, Rosenmuller,
Kuinoel, ol-Shausen). 실제로 나사렛은 멸시당하던 곳이었으며(요 7:41, 52), 심지어
는 갈릴리 사람들에게 조차 경멸당하던 곳이었다(요 1:46). 예수는 '나사렛 예수'라는
놀림을 받으며 성장하였고, 그리스도인들이 '나사렛 이단'(행 24:5)으로 취급되었을 때
의 이 '나사렛'이란 단어는 비방과 모욕의 뉘앙스를 가지고 있었다. 예수는 그루터기만
남아 있는 다윗의 왕통에서 나온 줄기였고 조룽과 경멸을 받으며 비천한 환경에서 자란
왕이신 메시야였던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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