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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말라기

[스크랩] 말라기 1장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00:04
말라기 1장

======1:1


  여호와께서 말라기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신 경고라 - 여기 "경고"라는 말은, 재앙

이나 환난을 가지고 위협하면서 책망하는 말씀을 의미한다.


======1:2,3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희를 사랑하였노라 하나 너희는 이를기를 주께서 어떻

게 우리를 사랑하셨나이까 하는도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에게 붙였느니라 - 선지자  말라기는, 그 때 유대인 들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의미에서 마땅히 행 하여야 할 종교적 행위를 강조하기 전에 먼저 그런 행위

를 가능케 하여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인케 한다.  곧, 하나님께서 저들을 사랑 하

신 것 만큼 저들은 그것에 대한 감사 행위로  하나님을 섬기는 모든 종교적 행위가 있

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 께서 저들을 사랑하신 사실의       확실성을

먼저 변증한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사랑하신 사랑은, 무엇보다도 저들을 택하신 사랑

이다.  "야곱은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다는 것은, 그가 야곱을 택하셨다는 뜻이

다(창 25:23; 롬 9:10-17).  에서는  야곱의 형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도리어

야곱에게 장자의 기업을 주신 것이다.  이것을 보면, 선택은 반드시 자연적 질서로 말

미암아 지배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것이다.  참 사랑은, 이렇게 객관

적 조건에 영향을 받아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사랑을 행하는  주체자의 무조건적 결정

에서 나오는 것이다.

  여기 "미워하였"다는 말은, 에서를 택하지 않은 결과 그의 지은 죄대로 갚으신 사실

을 의미하는 것 뿐이다. "그의 산들을 황무케 하였고  그의 산업을 광야의 시랑 에게

붙였느니라".  에서의 자손으로 되어진 에돔 나라가 황무지가 된 것은, 맨처음에는 바

벧론 왕 느부갓네살이 애굽을 정복하러 가는 도중에 성취된 것으로 본다(렘 25:9,21)

.

=========1:4,5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 고

한 것은, 에돔의 교만이다.  에돔은,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힘을 믿어 어디 까지든

지 국세를 회복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만을 제일 미워

하시기 때문에, 에돔이 자신(자기를 믿음)한 바와 정반대로 행하셨다.  곧, 그는 에돔

을 무너뜨리셨다.  사람이 교만하면 하나님은 그를 낮추신다.  "여호와 께서는 이스라

엘 지경 밖에서 크시다"- 함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밖에 이방 세계에서도 그 위엄을

나타내신다는 의미이다. 곧, 그가 에돔을 멸망시키므로 역시 모든 이방에 대한 그의

주권이 확실히 드러난다.


==========1:6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진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 이 세상 모든 윤리 제도는 하나님께서 내신 것인데

, 그것은 하나님을 공경하는데 도움이 되는 초등 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말라기는,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위하여 부자 관계와 노주 관계의 도덕에서 추론하여, 하

나님에게 대한 제사장들(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의미에서)의 경건을 질문식으로 요

구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하여 아버지와 같으시니 (신 32:6),  이는 그가

이스라엘을 택하신 나라로 창조하시고 또 육성 하신 까닭이다 (사 44:26; 렘 31:9; 시

100:3).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의 주가 되시어 그들을 소유 하셨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을 공경하며 또 두려워해야 할 것이었다.  "공경"한다 함은, 기도함과 찬송함과

감사함과 순종하므로 이루어지고, "두려워함"은, 노예적인 공포가 아니고 도덕적인 공

포 곧, 하나님을 거스려 범한 죄 때문에 두려워함이다.  위의 두 가지 요소는, 신앙의

중요한 요소들이다.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

는도다".  이 말씀은, 인생들이 언제든지 죄를 지으면서도 죄를 깨닫지 못하는 마비된

심정을 보여준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은, 하나님을 의식적으로 대면 멸시함이 아

니고, 무의식으로 무성의하게 되어진 예배 행위이다. 그것은 이 아래 귀절들이 보여준

다.


========1: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

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 이니라 - 여

기 이른바 "더러운 떡"이라는  것은, 성전 안에  드리는 진설병을 이름이 아니다.  그

이유는, 진설병은 제단 위에 놓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 관설된  "떡"은,  "나

의 단에 드리"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델리취(Delitzsch)가 말한  것과 같이 희

생 제물의 고기를 이름이다.  고기를 떡이라고 한 말씀은, 레 21:6, 8, 17에도 있다.

그런데 이 희생의 고기를 드리되 더러운  것으로 드렸다 함은, 흠 있는 동물의 고기를

드렸다는 뜻이다(레 22:20-25).  그들은 이렇게 주님(주님의 제단)을 더럽게 하면서도

그렇게 한줄 모르고 그 죄악을 부인한다. 사람이 하나님을 말로써 멸시하지는 않아도

, 말보다 무게 있는 행동으로 그리 한다. 그리하면서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함은, 그

마비된 심령의 소위이다.  "말함을 인함이니라" 라는 말씀은, 그들이 구설로써 말한다

는 것이 아니고, 그 행동으로 무언중에 그렇게 나타냄을 이름이다.


=======1:8


  선지자 말라기는 여기서 위의 7절에 말한 "더러운 떡"- 이 무엇임을 지적한다.  흠

있는 동물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은, 율법에서 금하고 있다(레 22 :22).  이렇게 희

생 제물을 완전한 것으로 드리도록 명령한 것은(레 22 :21), 이것(속죄 제물)이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희생 제물에서 그 고기를 섭취

하심이 아니고, 그 의미(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의미)를 기뻐하신다. 그러므로 흠 있는

동물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은, 제물로서는 가치 없는 것을 바침이다.  제물이나 예

배는 하나님의 말씀이 제정한대로 순종하여 바침이 되어야 한다.

  "너희 총독에게 드려 보라" - 이 말씀을 보아도, 선지자 말라기의 교훈은 어디 까지

나 실제적이다. 곧,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 공경하는 표준을 인간 생활의 실제면에서

판정하도록 꾸며진 것이다.  우리의 실생활 에서, 보이지  않는 하나님 경외의 이면을

살필 수 있다는 것이 본서의 일반적 특징이다.  여기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잘못

된 제사가 그에게 가납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실제 사황에서 추론한다.  곧, 총독도 그

와 같은, 흠 있는 예물은 받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1: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

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 "우리

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한 기도는, 대단히 겸손한 기도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

께 드리는 제물로 보아서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겸손한 듯한 기도는 외식에 불과하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기도가 진실하기 전에

는 그것을 들어 주시지 않는다.


========1:10


    하나님께서는, 위에 관설된 것과 같은 헛된 제사는 받지 않으신다는 의미에서, 어

디까지나 강한 말씀으로 결론하신다.


=======1: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

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 본절은,  그리스도 예수께

서 이 세상에 오실 때에 될 신약 종교를 예언한 것이다(J. Ridderbos).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장차 그리스도를  보내어 모든 이방 민족이 그리스도를 믿어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올 것을 가르친다.  그런데 선지자  말라기가 이 점에 있어서 이

런 예언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저렇게 하나님께 제사한다고 하면서  하나님

의 이름을 더럽히는 유대인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까닭이다.  곧, 오래 동안 유대인들

은,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백성으로 자처하면서,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님을 참되이 공

경하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일을 보는 선지자는, 도리어

이방인들 중에서 앞으로 하나님을 진정으로 공경할 자들이 많이 일어 나리라고 하여,

하나님의 이름이 얼마나 큰 것을 보여 준다.  이런 큰  이름을 그 때의 유대인들은 그

행동면에 있어서 멸시하였던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우매한 짓이다.

  이 귀절에 사용된 표현들이 역시 구약식으로 되어 있다. 곧,  "분향한" 다던가 "제

물"을 드린다는 표현들은, 실제에 있어서 신약  시대의 신자들이 그런 의식 제사를 드

리게 된다는 것은 아니다.  신약 시대의 신자들은 영광 진리로 하나님을 예배한다 (요

4:21-24).  이와 같은 예배가  말라기의 이 예언에서 구약식 의식 제사의 표현으로 진

술되어 있다.


=========1:12


  "그 위에 있는 실과"- 라는 말은, 제단 위에 놓은 소산물을 의미하는데, 그것은 그

아랫말이 설명하여 주었으니 곧, 식물 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여기서도  희생 제물을

가리키는 말씀이다.


========1:13


  "번폐스"- 럽다 함은 번거롭고, 짐이 되고, 피곤함을 의미 한다.  외식하는 신자들

은, 하나님 앞에 드리는 예물을 감심으로 드리지 않고 무거운 짐처럼 생각하고 그것을

억지로 이행한다.  "코웃음하"- 였다 함은, 그 때 이스라엘 제사장들이 실제 모야으로

그렇게 하지는 않았겠으나, 여기서도 역시 그들의 행동이 코웃음하는 내용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유는, 그들이 희생제물을  바침에 있어서 하필 병든 것과, 저는

것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1:14


  여기 이른바 "떼"- 는 양떼를 의미하는데, 하나님께 바치는 양으로서는 무엇보다도

수컷을 좋게 여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서원하는 제사(무슨 소원이 있어서 이룸 받

기를 원하고, 그것이 이루어진 때에는 어떠한 감사를 하겠다는 서약의 제사를의미한)

를 드릴 때에 수컷은 못드릴 망정, 다른 것들도 흠 있는  것을 드렸으니, 그것은 하나

님께 드리는 제사를 멸시하는 행동이다.  여기 이른바 "사기" - 라는 것은, 좋지 못하

고, 흠 있는 것을 드리면서 제사를 잘 드린듯이 취한 태도를 이름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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