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1): 에스겔 서론 |
선지자 에스겔의 사역을 이해하기 위해서 유다의 마지막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오리겐은 (1:1)에 나오는 "제 30년(1:1)"이란 말을 에스겔이 선지자의 사역을 시작한 나이로 해석했다. 이 주장을 따른다면 에스겔은 주전 623년경, 즉 유다의 요시야 왕(주전 640-609년)이 종교 개혁을 추진하고 있던 때에 태어났을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에스겔은 젊은 시절에 앗시리아의 쇠퇴와 바벨론의 예루살렘 공격(주전 609년), 그리고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갈그미스에서 이집트와 앗시리아와 싸워 승리한 사건(주전 605년)을 직접 목격했을 것이다. 이 전쟁이 있은 지 2년 후(주전 603년)에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을 포함한 유다의 지도급 인사들을 포로로 잡아갔다(단 1:1). 그 후에 여호야김은 바벨론에 충성을 맹세하고 계속 유대의 왕직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3년이 지난 후에 예레미야의 권고를 듣지 않고 바벨론에게 등을 돌림으로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 여호야김이 애굽과 손을 잡고 바벨론에게 들을 돌렸다는 소식을 들은 느부갓네살은 군사를 이끌고 유다를 공격했다. 느부갓네 살 왕은 주전 597년 3월 16일에 예루살렘 성과 성전을 짓밟았다(왕하 24:13). 이로 인해 유다 백성들은 또 다시 유배를 당해야 했다. 이때에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과 1만명에 이르는 지도급 인사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다(1:14). 그리고 이 포로들 중에는 부시의 아들로서(1:3), 제사장 가문에 속했던 25살난 청년 에스겔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가 당시에 제사장으로 성전에서 봉사했는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에스겔은 포로 시기에 옛 성전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세계를 여는 더 영광스러운 새로운 성전의 시작을 예고했다. 그가 활동한 시기는 구속 역사에 있어서 옛 시대를 닫고 새 시대를 여는 매우 중요한 시기였다. 이 시기에 예레미야는 유다에 남아서, 그리고 에스겔과 다니엘은 바벨론에서 하나님의 뜻을 대언했다. 에스겔의 사역은 신속한 회복을 소망했던 대중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예언적인 비판이었다. 주전 593년부터 주전 571년까지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 위치한 텔아빕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 곳에는 수천명의 유대 포로들이 유다로 신속히 귀환할 것을 소망하면서 겨우 생계를 유지하며 살고 있었다. 일부 선지자들은 곧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설교했다. 그리고 이러한 설교로 인해 포로가 된 유대 백성들은 신속히 귀환하게 될 것이라는 그릇된 소망을 갖게 되었다. 거짓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순간적인 것이며 곧 회복될 것이라고 말하여 유대 백성들을 미혹했다(13:10). 그러나 에스겔은 그들을 가리켜서 "황무지에 사는 여우들"(13:4)이라고 비난했다. 거짓 선지자들은 평강의 말로 사람들을 위로했지만, 에스겔은 그들에게 평강이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13:10). 에스겔은 그들은 하나님의 보냄을 받지 못한 거짓 선지자들이라고 말했다(13:1-16).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고자 하여 방석을 모든 팔뚝에 꿰어 매고, 수건을 키가 큰 자나 작은 자의 머리를 위하여 만드는 부녀들에게 화 있을찐저! 너희가 어찌하여 내 백성의 영혼을 사냥하면서 자기를 위하여 영혼을 살리려하느냐?(13:18)" 2-1. 제사장, 선지자, 파숫꾼으로서의 에스겔 에스겔의 사역은 주전 593년에서 571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는 예레미야와 같이 제사장 가문 출신이었다(1:3). 그러나 그는 예레미야와 달리 결혼을 해서 가정이 있었다(24:15-18). 그는 바벨론 남쪽(니불 북쪽)의 유프라테스 강의 한 수로였던 그발 강가 텔아빕의 유대인 식민지역(1:1,3, 3:15)에 살고 있었다(3:24, 8:1). 에스겔은 제사장 가문의 일원으로 성전과 제사에 관한 율례를 배웠다. 이러한 점에서 그가 미래의 성전에 관해 크게 관심을 가진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에게 있어서 미래의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과, 통치의 상징이었다(왕상 8:10-11, 참고 시 132편). 그러나 에스겔은 예레미야와 같이 국제지향적인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에스겔서에 나타난 독특한 문학적 기교와 당시 세계에 대한 그의 지식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에스겔은 주전 593년에 여호와의 선지자로 부름받았다. 그 해에 그는 30살이 되었다. 유대에서 이 나이는 공적인 신분을 가질 수 있는 나이었다. 그가 이때에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다면 그는 부친(부시)과 함께 성전에서 여호와를 섬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살고 있었고, 그 곳에서 선지자와 영적인 파숫꾼으로 여호와를 섬기도록 부름을 받았다. 제사장 에스겔은 포로로 살던 중에 하나님의 영광의 환상을 보았다. 그는 모세와(출 33:18; 34:29-35), 이사야(사 6:1-5)와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목격했다. 그러나 그가 본 하나님의 모습은 모세가 시내산에서 본 영광과는 크게 달랐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 순간 깊은 죄의식을 느끼며 쓰러졌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그를 일으켜 주시고 힘을 주셨다(2:1-2). 에스겔은 선지자로서 포로 공동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했다. 예루살렘에서 메시지를 전했던 예레미야처럼, 에스겔도 부패한 유대 백성들을 심판하는 여호와의 도구로 쓰임 받았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에스겔은 이스라엘에 대한 여호와의 파수꾼으로 일했다(3:17-21). 그는 백성들에게 여호와께서 하실 일을 미리 가르쳐 주었다. 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신 이유를 설명하고 회개를 촉구했다. 심판을 전하는 신탁에서(5:5-7:27) 그는 유다의 고난은 그들의 배교로 인해 일어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때에 유대 백성들은 자신들이 조상들로 인해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불평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을 통해서 그들이 당하는 고난이 단지 선조들만의 잘못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씀하셨다. 에스겔은 각 사람이 자기 행동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져야한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조상이 잘했어도 그 후손이 잘못하면 그 후손을 징계하실 것이며, 조상이 잘못했어도 그 후손이 잘하면 그 후손을 축복해 주실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이러한 개인적인 책임에 대한 메시지는 선지자와 영적 파숫꾼인 에스겔이 전한 메시지의 중요한 주제였다(14:12-23, 18:2, 33:1-20, 참고 렘 31:29). 에스겔은 하나님의 제사장-선지자-파숫꾼으로서의 백성들에 대한 책임이 있었다. 그러나 일단 에스겔이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되면, 백성들은 그 말을 듣고 자기들이 내린 선택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져야만 했다. 브라운리는 에스겔이 담당했던 선지자의 개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역사의 어려운 시기에 매우 특이한 삶을 살았다. 그는 예레미야처럼 백성이 당하는 고난을 경험했다. 그는 포로가 된 상태에서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고, 남은 유대인들이 포로가 되며, 다른 나라로 망명하게 될 것을 체험했다(3:22-5:17). 에스겔은 여러 가지 행동을 통해서 유다에 남아 있는 백성들의 고통을 동일하게 경험했다. 그는 포로기를 살던 유다 공동체들에게 말로만이 아니라, 행동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에스겔이 사용한 상징적인 행동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는 그의 집에서 390일 동안 밧줄에 매인 채로 지내야 했다. 그는 밧줄에 묵인 채로 한 편으로 누워서 더러운 음식을 먹으면서 살아야 했다(4장). 이것은 장차 유대인들이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하고 포로가 되어 부정한 음식을 먹으면서 살게 될 것을 상징하고 있었다. 그는 이러한 고통의 기간을 마친 후에, 다시 칼로 그의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5:1-4). 그리고 그는 그 털 중에서 1/3을 성읍에서 불사르고, 1/4은 성읍 사방에서 칼로 베었으며, 나머지 1/3은 바람에 날려 버렸다. 이 머리털은 유다 백성들을 상징했다. 장차 유다 백성들은 멸망당할 것이며, 그들 중 1/3은 불에 타서 죽고, 1/3은 칼에 의해 살해될 것이며, 나머지 1/3은 포로가 되어 끌려갈 것이다. 또한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자신이 계시하는 것 외에 다른 말을 하지 못하도록 지시하셨다(3:26, 24:27). 이로 인해 그는 벗들과도 아무 대화를 할 수 없는 반벙어리로 지내야만 했다. 이는 장차 유대 백성들이 포로가 되어 하고 싶은 말도 하지 못하게 지내게 될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또한 하나님은 에스겔의 아내가 죽었을 때에도 공적으로 아내의 죽음을 슬퍼하지 말라고 지시하셨다(24;15-18). 그러므로 에스겔은 아내가 죽은 때부터 예루살렘에 멸망당할 때까지 입을 닫고 속으로만 슬퍼해야 했다. 이는 장차 유대 백성들이 바벨론에 의해 가족들이 죽음을 당해도 공개적으로 슬퍼하지 못하게 될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을 통한 메시지는 유대 백성들에게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유대 백성들은 에스겔의 메시지를 거부하면서, 왜 에스겔이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 그토록 엄청난 고통을 감수하고 있는 지에 대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 마침내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의 입을 통해서 유다의 멸망을 예고하셨다. 에스겔은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다. 그러나 그가 유다의 멸망 소식을 듣고 기뻐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도 그를 비난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에스겔 자신도 역시 백성들이 경험하게 될 고난을 똑같이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러 가지 상징적인 행동들을 통해서 이미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 받았을 때에 경험하게 될 어려움을 몸소 경험을 했다(5:8).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그것을 보고도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포로가 되어 에스겔과 같은 고난을 당한다고 해도 변명하거나 불평할 수가 없었다. 3-1. 문학형식 에스겔서는 고유한 문학적 양식을 지니고 있으며, 예술적 성향이 있는 창의적인 사람들에 의해 가장 잘 평가될 수 있는 책이다. 갓월드는 이를 "지독하게 지루하고 반복적인" 것이라고 혹평했다. 그러나 에스겔에 나오는 반복(인자, 너희가 알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등), 날짜 표기 어투,수사 의문문, 비유적 표현 증은 유기적으로 결합된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해 주고 있다. 전체적이든 부분적이든, 이 책은 포로기의 삶과 예루살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약속된 회복을 생생하게 그려볼 수 있게 해준다. 에스겔은 말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데, 이는 그가 전하려는 메시지를 매우 효과적으로 전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에스겔서에는 여러 부분과 여러 장에서 대칭적인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떠나는 환상(1-11장)은 여호와의 영광의 귀환, 새 성전의 환상, 여호와의 임재(40-48장)와 짝을 이룬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파숫꾼으로 부름 받은 일(3:16-21)은, 백성들의 본토 귀환 환상(34-39장)과 평행을 이루고 있다. 또 열방에 대한 신탁들(25-32장)은 심판과 구원의 신탁을 분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에스겔서의 대칭 구조는 다음과 같이 요약해 볼 수 있다. A. 여호와의 영광의 환상과 에스겔의 소명(1:2-3:15) 에스겔서에는 수많은 상징들이 사용되고 있다. 어쩌면 그는 제사장 가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과 말을 통해서 전달하는 것을 배웠을 지도 모른다. 아니면 그가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서 상징적 표현을 선택햇을 수도 있다. 에스겔은 토판 위에서 예루살렘의 포위를 상징하는 연극을 했으며(4:1-3), 한 쪽으로 누웠다가 다시 다른 편으로 눕는 일을 통해서서 백성들의 죄와 심판을 나타냈다(4:4-8). 그는 정해진 음식과 물만 먹는 행동으로 장차 포로가 될 백성들이 감수할 고통을 보여주었다(4:9-17). 또한 그는 머리털을 깎아서 세 부분으로 나누어 처리함으로 유다 백성들이 어떻게 멸망할 것인지를 보여주었다(5:1-4). 에스겔은 이스라엘의 배교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말로 설명을 했다. 심판 신탁(6:1-7:27), 성전 환상(8-11장), 쓸데없는 포도나무 비유(15:1-8), 예루사렘에 대한 우화(16:1-63), 독수리, 백향목, 포도나무 수수께끼(17:1-24), 신포도 속담(18:1), 풍유적인 애가(19:1-14)와 두 자매 이야기(23:1-49), 가마 비유(24:1-14). 에스겔에서는 환상도 필수적인 내용을 차지하고 있다. 에스겔은 계시록을 기록한 사도 요한처럼 자신이 본 환상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짐멀리는 이 차원을 자기 극적인 것, 즉 환상과 메시지에 선지자 자신이 포함되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감동적인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했지만, 당시의 백성들은 그의 예언을 거짓으로 간주하고 있었다. 에스겔은 그들에게 다음과 같이 응수했다. 많은 사람들이 에스겔의 멋진 화술과 상상을 듣기를 좋아했고, 그를 외국 땅에서 사랑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으로 여겼다. 그러나 그의 예언은 그의 청중들에게 조금도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33:32). 책의 연대순 배열은 그 예언을 여호야긴의 망명과 관련하여 해석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해 준다(1:1-3). 1-24장의 연대는 에스겔의 소명과 예루살렘이 포위되기 시작한 사이의 기간으로 추정될 수 있다(주전 593-588년). 열방에 대한 신탁은(25-32장) 연대순으로 되어 있지 않다; 일부는 예루살렘이 포위와 파괴당한 해들과 관련되어 있고(24:1, 26:1, 29:1, 30:20, 31:1), 일부는 유다 멸망 직후에 나왔으며(32:1,17, 33:21, 40:1), 가장 나중의 것은 주전 571년의 것이다(29:17). 이러한 점을 고려해 보면 다른 요소들이 이 신탁의 편집 과정에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 수집(구원 신탁들, 33-48장)은 주전 586년 이후의 사건들과 관련되어 있다. 사로잡힌 자들이 예루살렘의 멸망 소식을 들었을 때에(33:21), 신속한 귀환에 대한 모든 희망은 꺾이고 말았다. 그들에게 준 하나님의 말씀이 확증된 것이다. 그러나 그때는 회복과 소망의 메시지로 경건한 자들을 위로해야 때이기도 했다. 따라서 예루살렘의 멸망에 대한 심판 메시지는(1:1-24:27), 이제 남은 자들을 위한 영광스러운 미래와 소망에 관한 메시지로(33-48장) 전환되고 있다. 3-2. 에스겔의 구조 1. 유다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1:1-24:27) 2. 열방에 대한 신탁들(25:1-32:32) 3. 구원과 회복과 변형 신탁들(33:1-48:35) 4-1. 여호와의 영광의 환상 에스겔서는 하나님의 영광(카보드)의 장엄하고 경외로운 환상으로 시작된다. 에스겔은 폭풍과 큰 구름과 번쩍이는 빛과 찬란한 빛을 보았다(1:4). 그는 구름이 북쪽에서 노는 것을 지켜보면서, 놀라운 환상들을 보았다. 그가 본 환상들은 달구어진 쇠와 같은 불과 그룹을 의미하는 네 생물이었다(1:5, 10:20). 그 그룹들은 여호와께서 움직이기를 원하시면 어느 방향으로나 번개처럼 움직일 수 있었다(1:5-12). 하나님께서 네 형상이 각각 다른 네 그룹을 주관하신 것은 땅의 네 모퉁이, 즉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주고 있다. 에스겔은 또 바퀴들을 보았는데, 그것은 병거의 일부였다. 이는 거룩한 전사의 오심을 묘사하는 에스겔의 예언 방식이었다. 여호와께서는 자기 백성을 심판하기 위해서 자신의 전투 병거를 타시고 임하셨다(1:15-18). 에스겔은 그룹과 바퀴들이 조화롭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서서히 하나님의 환상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했다. 에스겔은 멀리서 하나님을 보았다. 하나님과 선지자는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1:22-23), 그는 "궁창" 위에서부터 나는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다.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26). 내가 본즉 그 허리 이상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그 허리 이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면으로 광채가 나며(27),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겔 1;26-28)." 하나님의 영광의 환상은 선지자의 사역 전체를 통해 줄곧 그와 함께 있게 된다. 그 영광스러운 여호와께서 포로기에 에스겔에게 나타나셨다. 외국 땅에서의 여호와의 임재는 하나님의 주권과 자유를 보여준다. 모든 곳이 하나님의 영토이기 때문에,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계시지 않고 어디든지 임하실 수 있었다. 에스겔은 이러한 여호와의 영광을 여러 번 목격했다.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을 향해 하실 일을 계시해 주셨다.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왜 자신이 예루살렘과 성전을 버리셨는지 가르쳐 주셨다. 그리고 이로 인해 에스겔은 포로가 된 백성들에게 유다가 버림을 받은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었다(8-10장, 11:22-25). 여호와께서는 에스겔에게 유대 백성들이 다시 고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계시해 주셨다. 그때에 에스겔은 여호와께 이렇게 물었다. "주 여호와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11;13)" 그때에 하나님은 자신을 위해서 모든 경건한 자들을 표시해 두었다고 가르쳐 주셨다. 남은 자들은 비록 악인들로 인해 고난을 겪었지만, 그들은 이미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침을 받았던 것이다(9:3-4). 에스겔은 여호와의 영광이 예루살렘을 떠난 것을 보았다(11:22-24). 그리고 이로 인해 예루살렘은 적국의 침입에 대해 무방비 상태로 남아 있었다. 여호와는 심판, 회복, 예루살렘을 떠나는 일, 바벨론에서의 포로들과 함께 하는 모든 일에서 자유롭게 행동하셨다. 클라인은 에스겔의 서두에 나타난 환상에서 "바벨론에 임재할 수 있는 여호와의 이동성과 능력을 보여주는 상징의 폭포를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기다리는 모든 자들에게 어디에서든지 그들과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신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심판 중에서도 소망을 가질 수 있었다. 에스겔은 여호와께서 먼저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것을 보고, 백성들을 향해서 말하고 행동했다. 여호와께서는 남은 자들을 모으실 것이며(11:17), 영적인 새로운 시대를 여시고(11:19-20, 18:31), 언약을 갱신하실 것(11:20) 약속해 주셨다. 여호와는 유대인들이 포로가 되었을 때에도 그들에게 유일한 소망이 되어 주셨다. 이 소망의 초점은 그의 이름("나는 여호와라!")에 있었다. 에스겔에서 "나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너희가....알리라!"는 말과 함께 나온다. 이러한 말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이름으로 약속의 성취를 보증한 출애굽 정복 전통에 근거하고 있다. 여호와께서는 바로의 거역으로 인해 좌절한 모세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하겠다는 약속을 지킬 것을 확증해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러한 약속을 자신의 서명-"나는 여호와라!"-으로 보증해 주셨다(출 6:2).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과 언약, 그리고 미래의 번영에 대해서 자신의 이름을 세 번 언급하심으로 확증해 주셨다(출 6:6-8). 에스겔은 이러한 하나님의 자기 현시에 대해서 숙고했다. 여호와는 족장들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자신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한 약속을 성취할 것을 보증해 주셨다(겔 20:5).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으로부터 절대적인 충성(예를 들어 안식일 준수와 같은)을 요구하셨다(겔 20:7,19-20).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러한 명령을 거역함으로 언약을 심하게 더렵혔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남은 자들을 통해서 다시 정결케 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너희 가운데서 패역한 자와 내게 범죄한 자를 모두 제하여 버릴지라! 그들을 그 우려하던 땅에서는 나오게 하여도 이스라엘 땅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하리니,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겔 20:38)." 에스겔은 여호와께서 신실하시며 자기를 바라보는 자들에게 소망이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님은 자기 백성을 심판하시는 중에도 그의 백성에게 소망의 보증이 되어 주셨다. 유다에 대한 심판과(6:7,10,13 ,7:4,27, 11:10,12, 12:15,20, 13:14,21,23, 14:8, 15:7, 22:16), 열방에 대한 신탁들(25:5,7,11,17, 26:6, 2:22-23, 30:8,19,25-26, 32:15) 중에서 "나는 여호와라!"는 말이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는 점도 이러한 점에서 이해될 수 있다. 언약 갱신의 기반은 하나님의 서명에 있었다.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20:44). 약속된 회복의 징표는 유대인들의 고국으로의 귀환이다. "내가 너희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 곧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돌릴 때에 너희가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20:42)."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실 것이다. 하나님은 잠시 자기 백성들의 죄를 징계하셨지만, 다시 그들을 용서하시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주실 것이다. 하나님은 다시 자기 백성을 그들의 고국으로 모으시고(39:28), 남은 자들과 그의 언약을 갱심하며(34:25), 피조물을 새롭게 하시고(34:27,30), 자기 백성을 축복하시며(34:25), 자신의 영으로 그들을 새롭게 하실 것이다(37:6,14). 자기 이름에 대한 여호와의 신실함은 약속을 성취하심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 이름으로 한 약속을 성취하기 위해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우며, 그들을 축복하고, 그들의 왕이 되어주실 것이다. 여호와의 이름은 열방을 향한 자신에 대한 증언이었다.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찌라. 내가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로 인하여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니 열국 사람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겔 36:23)." "이와 같이 내가 여러 나라의 눈에 내 존대함과 내 거룩함을 나타내어 나를 알게 하리니 그들이 나를 여호와인줄 알리라(겔 38:23)." 또한 열방은 심판 뿐 아니라, 회복에 있어서도 여호와의 신실성을 목격하게 될 것이다. 갓월드는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회복된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열방을 향해 끊임없이 증명하는 존재로 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열방을 멸망에서 건져내어 그들의 눈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목격하게 하실 것이다." 에스겔의 사역은 성공하지 못했다. 포로민들은 거짓 선지자들(34:2-3)의 맹목적인 낙관론을 듣기를 더 좋아했다(13장). 에스겔은 이러한 거짓 선지자들에게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경고했다(34:2-10).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멸하시고, 친히 이스라엘의 선한목자가 되실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은 양무리를 모아 손수 그들을 돌보아 주실 것이다(34:11-22). 가. 약속과 성취 이시대의 소망은 새 백성을 자기에게 돌리실 하나님에게 있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회복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일을 하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셨다. 1) 중단되었던 언약 관계의 재개(36:20-36,37:23,26, 39:25). 이러한 하나님의 사역들은 새로운 언약 속에서 창조, 아브라함, 모세, 다윗의 언약을 온전하게 성취하였다. 그때에 구속받은 공동체와 모든 피조물들이 함께 변화될 것이며, 구속받은 공동체는 하나님의 온전한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에스겔은 환상을 통해서 회복된 고국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47-48장)과,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보았다(43:6-11). 그는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일어날 하늘과 땅의변화에 대해 묘사했다. 그는 은유와 비유를 통해서 백성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소개했다. 하나님은 결국 자기 백성들을 회복시켜서 영원한 축복에 참여하게 하실 것이다. 에스겔은 회복의 상징으로 새 예루살렘에 대한 환상을 보았다. 그 성은 장차 "여호와께서 그 곳에 계신다(48:35)"는 뜻을 가진 이름, 즉 "여호와샴마"라고 불리어지게 될 것이다. 나. 언약 갱신 하나님은 영원히 자기 백성을 거부하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경건한 남은 자들을 통해서 새로운 백성을 일으켜 주실 것이다. 에스겔은 사로잡힌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새롭게 회복하여 열국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알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39:7,25,27).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고, 그들의 왕이 되어주실 것이다(37:12-13). 남은 자들을 통해 이루어질 새로운 공동체는 하나님의 영으로 졍결케 되고, 다시 열방을 향한 산 증인이 될 것이다. 이러한 약속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온 땅이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 약속의 성취가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의 표징은 성령이다. 하나님의 영은 하나님의 백성의 변화를 주도하실 것이며, 승리는 보장하실 것이다. 성령은 인간을 새롭게 하며,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새겨서 진정으로 자유로운 사람이 되게 하실 것이다(36:26-27). 성령의 임재로 인해 무너진 관계가 회복될 것이며(37:14, 요 16:15, 행 2:38, 3:19, 롬 8:2,4,15), 이로 인해 평화가 임하게 될 것이다(34:25). 포로가 되어 살아가던 하나님의 백성은 은혜로 인해 안식을 누리게 될 것이다. 선지자는 구원에 대한 신탁의(34:1-48:35)의 앞(25-32장)과 중간에서(35:1-15, 36:36, 37:28, 38:1-39:24) 열방에 대한 심판을 강조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기록들은 하나님 백성의 회복이 열방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밝힌다. 이러한 점에서 보면 구원에 대한 신탁(37:15-28, 39:21-29) 중간에 나오는 "곡과 마곡의 심판"(38:1-39:20)이 언급된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열방을 향해 하나님을 계시하는 행위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해서 열방이 자신이 여호와인 줄 알게 하실 것이다(37:28-29). 그러나 열방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맞서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을 대적하는 나라들, 심지어 곡과 마곡까지도 멸망시키실 것이다. 이로 인해 열방은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 나라들의 저항과 반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러한 반대와 박해를 각오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본문에 언급된 북방민족들은 반대를 상징한다. 사실상 유대의 침략자들(헬라인들, 셀루시드인들, 로마인들)은 대부분 분쪽에서 온 민족들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로 인해 이러한 적대 세력은 완전히 제거될 것이다(20:1-10). 열방에 대한 신탁의 결론은(39:21) 하나님의 구원행위를 요약해준다(39:25-29). 하나님은 반역자들을 심판하시고, 자기 백성을 회복하여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다(39:21, 참고 사 40:5). 하나님은 모든 적대 세력과 반대 세력을 제거하고 최후의 승리를 얻으실 것이다. 선지자는 이러한 환상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현재에 처한 모든 어려움을 인내하면서 극복해 나가도록 권면하고 있다. 다. 모세 언약의 갱신 또한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은 모세 언약을 인정하셨다(성전, 제사장, 제사 규례, 절기 등). 에스겔서의 마지막 부분은 회복된 성전(40:1-46:24)과,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으로 돌아오는 일을 언급하고 있다.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서 성전과 예루살렘에서 떠나가셨다(10:18-19, 11:22-24). 그러나 하나님은 남은 자들로 자기 백성을 회복하시고, 그들과 함께 하기 위해서 다시 예루살렘과 성전으로 돌아오실 것이다(43:2-5). 하나님은 다시 작 백성들과 함께 게실 것이며, 성전은 다시 하나님 임재의 상징이 될 것이다(37:27). 그러나 새로운 공동체(11:19,18:31, 36:26, 39:29)는 이전 시대와 다른 점도 있었다. 옛 공동체는 다수의 반역자들과 소수의 경건한 자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새 공동체는 성령을 소유하며, 영적인 변화를 체험하고, 정결케 되고 거룩하게 구별되며(36:25),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하는 강력한 열망을 가질 것이다(36:26-27). 새로운 공동체의 특징은 성령의 회복과, 하나님과의 교제와, 언약적 표징이다. "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토에 거하게 하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3:14, 참고 39:29). 라. 다윗 언약의 갱신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은 다윗에게 하신 언약도 보증해 주셨다(34:24). 메시야는 여호와와 깊이 교제할 것이며, 정의로운 여호와의 왕국을 확립할 왕같은 목자이다. 그는 영원히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것이며(37:15-25), 하나님의 백성을 세우실 것이다. "내 종 다윗이 그들의 왕이 되리니....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며...내 종 다윗이 영원히 그 왕이 되리니....(37:24-25)" 목자인 동시에 왕이신 메시야는 양무리를 의의 길로 이끈다. 메시야는 스스로 모범이 되어 양무리 앞에서 양들을 인도하여 하나님 나라를 세울 것이다. "그들이 내 규례를 준행하고 내 율례를 지켜 행하며....(37:24)" 그는 진실로 하나님의 종이다. 그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이익을 진작시키고(37:25), 그와 백성 사이의 관계를 증진시킨다. 그도 역시 성전에서 여호와께 대한 예배를 집전할 것이며(45:17, 참고 46:2-18), 백성들로부터 예물을 받을 것이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왕국, 다윗의 자손, 수종적인 섬김, 대속, 여호와의 경배를 말하였을 때, 그가 이런 예언들의 의의를 완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신약 성경의 계시를 통해서 에스겔에 언급된 목자-왕-종이 고난의 종인 동시에 영광의 하나님이신 메시야 예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님은 죽기까지 순종한 종이었으나, 아버지께서 주님을 영광스럽게 하셨다(행 3:13). 주님은 선한 목자인 동시에(요 10:1-2), 왕이신 메시야이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죄를 용서해 주셨고(행 5:31), 그를 통해서 하나님은 만물을 회복하실 것이다(3:21).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서 "유쾌하게 되는 날"을 오게 하실 것이다. 화평의 새 언약은(34:25) 이전 언약들의 본질적 요소들을 포함하지만, 그보다는 훨씬 더 영광스럽고 영원하다. 첫째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주도하신다는 약속이 반복되는 점에서 이전 것보다 더 영광스럽다. 새 언약은 하나님께서 단독적으로 주도해 나간다는 점이 강조되고 있다. 이러한 점은 개인들의 활동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속의 성취를 더 견고하게 만든다. 옛 언약은 인간의 연약함을 인해 취소된 바가 있었다. 그러나 새 언약은 하나님은 인간의 연약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다. 새 언약은 모든 지파들이 평등하게 하나님의 왕국을 공유하기 때문에 이전 언약보다 더 영광스럽다(47:13-48:29). 하나님 나라의 모든 백성들은 한 목자인 동시에 왕이신 메시야의 혜택을 누린다. 이전 언약에서 이스라엘의 12지파는 각기 다른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에스겔은 새 언약에서는 모든 지파들이 평준화되는, 민주화된 사회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새 언약에서는 심지어 이방인들도 이스라엘에서 거할 땅을 얻을 것이다(47:22-23). 셋째 새 언약에서 약속하는 하나님의 통치는 백성과 땅과 제도들의 변화로 인해 더 영광스럽고 영원하다. 새 언약의 모든 약속의 초점은 거룩하신 목자-왕께서 임재하여 백성들을 축복하고 보호하실 것이라는 점에 있다. 여호와(목자-왕)와 다윗의 자손(목자-왕자)과 성령은 이스라엘과 열방과 피조물을 포함한 영원한 시대를 열 것이다. 이러한 변화의 중요한 은유는 성전에서 흘러 나온 물이다. 이 물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에서 흘러나와서, 시내를 이루고 강을 이루면서 점점 더 깊은 곳으로 흘러간다. 그리고 이 물은 흘러내려 가면서 죽은 것을 소생시키고, 질병을 치료하며, 역경을 번영으로 바꾸어주는 역할을 한다(47:1-12). 사도 요한이 요한계시록을 쓸 때에 이러한 표현을 빌려서 생명수 강이 흐르는 새 예루살렘을 묘사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계 21:1-22:6). 레븐슨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겔 40-48장)에 나타난 회복 프로그램은, 25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유효하며, 인류 역사에 대한 심판으로 인해 가장 우울한 시대에서도 유효하다. 사람들은 각 시대마다 눈을 들어서 "지극히 높은 산"(40:2)을 바라보았고, "여호와께서 거기 계신다"(48:35)는 이름으로 불리게 될 도성을 소망했다. 그리고 모든시대 사람들은 계속해서 에스겔이 약속하고 있는 내용을 소망하면서, 하나님께서 명하는 것을 묵묵히 수행하고 있다. 에스겔에게 약속된 회복 프로그램은 고난 중에 구원을 기대하는 모든 경건한 사람들을 위한 하나님의 안내자로 우뚝 서 있다." 5. 요약 및 결론 에스겔서는 대칭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다. 에스겔서는 유대 백성들의 포로됨과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1-24장). 그리고 이 메시지는 유대 백성들이 포로에서 귀환하고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임재하시는 영광스러운 약속으로 끝난다(33-48장). 앞 부분은 수치와 오욕과 하나님의 왕국에 대한 인간 왕국의 도전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나 후반부는 회복과 영광과 거룩함과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조화로운 공존으로 끝이난다. 또한 에스겔은 열방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는데(25-32장), 이는 인간적인 요소(교만, 자율, 여호와에 대한 무관심 등)의 심판을 의미한다. 옛 시대와 새 시대 사이의 긴장은 회복의 시대에서 조차도 계속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말론의 빛이 포로로부터의 귀환과 언약 갱신, 왕국 회복, 유쾌하게 되는 날과 메시야(목자-종-왕자)의 사역, 하나님의 임재와 구속의 전 과정을 통해서 밝게 비추고 있다(33-48장). 여호와는 변화된 백성과 변화된 세상을 약속하신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리는 강은(시 46:4-6) 생명과 축복과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근복적인 변화를 페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목자와 양)의 핵심은 다윗계 왕의 위치이다. 위대한 왕의 종주권에 대한 다윗계 왕의 복종을 통해서 피조물이 새롭게 될 것이다. 변화된 새로운 시대의 초점은 성전에 있다. 성전의 환상은 후기 공동체가 성전을 하나님의 이재의 상징으로 간주할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그러나 그 예언적 환상은 성전 제도를 넘어서 여호와의 임재로 인한 변화를 말해준다. 레븐슨이 표현한대로 "성전은 세상의 축약된 모습, 껏의 본질을 농축한 형태, 세상의 소형 모형이다...세상 자체가 그것의 소우주의 대우주이다....참 성전은 그것이 가리키는 바, '하늘'에 있는 것이다." |
'구약 > 에스겔'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에스겔(5): 심판과 회복 (33-39장) (0) | 2015.02.08 |
---|---|
[스크랩] 에스겔(4): 이스라엘 및 열방에 대한 예언(21-32장) (0) | 2015.02.08 |
[스크랩] 에스겔(3): 유다, 이스라엘, 포로들에 대한 말씀(12-20장) (0) | 2015.02.08 |
[스크랩] 에스겔(2): 소명과 심판 선언(1) (1-11장) (0) | 2015.02.08 |
[스크랩] 에스겔 - 명칭,주요사상,내용(대,소분류) (0) | 2015.02.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