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욥기

[스크랩] 욥기 (25 : 1~6)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21:19
욥기 25장


1 수아 사람 빌닷이 대답하여 가로되

ㅇ사상(4:17 ; 15:14 이하)과 욥이 인정한 내용(9:2 ; 14:4)을 상투적으로 반복하는 것
이다(M. Kline). 그것은 곧 '위엄과 권능으로 만물을 다스리시는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감히 인간의 의로움이나 순전함을 주장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빌닷의 이
세 번째 요지는 경건한 발언 같으나 이제까지 욥이 항변해온 내용에 비추어 볼 때 오
히려 엉뚱한 것이며, 그 내용도 빈약하다.

2 하나님은 권능과 위엄을 가지셨고 지극히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

ㅇ권능과 위엄을 가지셨고 - 여기서 '권능'(마솰)은 '지배하다', '다스리
다'란 뜻으로 하나님의 통치권과 주권을 의미하며, '위엄'(파하드)은 문자
적으로 '놀람', '두려움'이란 뜻이다. 따라서 본절은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절
대적 통치에 모든 피조물이 두려워하며 복종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ㅇ지극히 높은 곳에서 화평을 베푸시느니라 - '높은 곳'은 하나님이 거주하는 장소
로서의 하늘을 가리키며(16:19 ; 31:2), 동시에 천상의 존재들이 거주하는 곳을 의미
하기도 한다. 그리고 '화평'이라는 말에 대해서는 (1) 창조의 시초에 세워진
질서(Schlott), (2) 천체의 질서(Habel), 혹은 (3) 하나님께 대항하여 일어난 천상
세력들이 진압된 사실(Habel, Hartley, 9:13 ; 26:12, 13 ; 시 82:1 ; 사 14;12-14 ;
24:21, 22) 등과 관련된 언급으로 보는 견해들이 있다. 이중 (3)의 견해가 보다 무난
한 것 같으며, 이는 당시 고대 근동에 흔했던 주제를 상기시킨다(Hartley). 그러므
로 여기서 빌닷은 천상의 존재들 마저 맥없이 하나님께 복종하지 않을 수 없는데 하
물며 이 땅의 존재들이 하나님의 공의를 어지럽힐 수 있겠느냐 하고 간접적으로 강
변하는 셈이다. 이는 특히 이 땅에서 불의가 창궐하는 것에 대한 욥의 탄식을 염두에
둔 것이라 하겠다(24:1-17).

3 그 군대를 어찌 계수할 수 있으랴 그 광명의 비췸을 입지 않은 자가 누구냐

ㅇ그 군대를 어찌 계수할 수 있으랴 - 여기서 그의 군대는 하나님의 만군(단 7:10),
곧 하늘의 수많은 영들과 천군 천사들을 가리킨다. 더 넓게는 그의 모든 피조물들을
포함한다(사 40:26). 그러한 하나님의 모든 군대는 그의 명령에 순종하며 그의 평화
적 통치에 봉사한다(Hartley). 그런데 그들의 수효를 인간이 계수하기란 불가능하
다(시 68:17 ; 계 9:16). 여기서 빌닷은, 이 천군 천사들이 곧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위대하심의 표현임을 알진대 하찮은 인간이야 하나님과 변론도 할 수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욥에게 상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ㅇ그 광명의 비췸을 입지 않은 자가 누구냐 - '입지'에 해당하는 '쿰'은
'일어나다'라는 기본적인 뜻을 가지고 있어서 본절에 대한 해석의 다양성을 야기시킨
다. 곧 (1) '광명'을 태양 빛으로 이해하여 '태양 빛이 비추이지 않은 자가 누
구인가?'(Henry, Schlott, Hahn). (2) '하나님의 빛이 누구를 능가하지 못하는가?'
또는 '그의 빛이 누구 위에 일어나 그보다 밝지 아니한가?'(Ewald, Delitzsch), (3)
이 빛을 절대적 초자연적인 은혜의 빛으로 이해하여(시 104:2 ; 게 1:27) '그 빛을
받지 않는 자가 있느냐?'(Lange)등이다. 여기서 우리는 (2)와 (3)의 해석을 종합할 수
있다. 즉, 하나님의 빛은 어떠한 빛의 존재들보다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뛰어나며 모
든 만물에게 은택을 베푸신다. 따라서 본문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의 빛 앞에서
자기의 의로움을 드러낼 수 있는가?'라는 점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내용이라고도 볼
수 있다. 한편, 칠십인역(LXX)은 '그의 빛'(오레후)을 '오레보'(그
의 복병)로 읽어서 '그의 복병에 대항해 누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라고 잘못 해석하
였다.

4 그런즉 하나님 앞에서 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며 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ㅇ하나님 앞에서 - '하늘과 땅의 모든 존재를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
앞에서', 또는 '만물 위에 뛰어나 모든 것을 다 비추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라
는 뜻이다. 빌닷은 욥의 변론 일체를 하나님 앞에서 아예 무가치한 것으로 무시하고
있다.
ㅇ사람이 어찌 의롭다 하여 - '의롭다'의 '차다크'는 도덕적 또는 법정
적인 의미에서 의로움을 가리킨다(9:15, 20 ; 10:15 ; 13:18 ; 33:12). 빌닷은 의
롭다 칭할 수 있는 권리가 하나님께만 속한 것인데도 불구하고 스스로 자기의 의로움
을 주장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하나님과 변론하겠다는 욥을 교만하다고 정면으로 논
박하고 있다. 그러나 빌닷이 여기서 간과하는 것은 칭의가 하나님께 속하였음을 주장
하면서도 그 역시 욥의 불의를 선언함으로 욥과 똑같은 범주의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ㅇ부녀에게서 난 자가 어찌 깨끗하다 하랴 - '부녀에게서 난 자'라는 표현에 대해
서는 14:1 ; 15:14을 참조하라. 한편 본문은 5,6절에서 나타나는 사상과 계속 이어진
다. 즉, 다른 피조물조차도 하나님 앞에서 흠이 있거든 하물며 여자의 몸에서 태어난
인간이 어떻게 무죄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5 하나님의 눈에는 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별도 깨끗지 못하거든

ㅇ달이라도 명랑치 못하고 - '명랑하다'에 해당하는 '아할'은 '할랄'
과 거의 동일한 의미로 사용된 것으로서(31:26) '빛나다'라는 뜻이다. 고대
근동의 여행자들에게 있어, 맑은 날 밤의 달빛은 스텝 지역을 건너가는 발길을 비춰주
기에 충분히 밝았다. 달이나 별등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으로서 사람들 보기
에는 참으로 밝고 신기하지만 하나님의 절대적 영광과 거룩성에 비추어보면 한갓 초
라한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6 하물며 벌레인 사람, 구더기인 인생이랴

ㅇ빌닷은 인간을 벌레 - (림마)와 구더기 - (톨레아)
같은 존재로 묘사함으로써 피조물 가운데 가장 보잘것 없고 멸시받을만한 것임을 적
나라하게 드러낸다. 이것은 빌닷의 뼈아픈 체험에 근거한 것이라기 보다는 욥 자신도
인정한(7:5 ; 17:14) 일반적인 진리에 불과하다. 빌닷이 이처럼 인생을 벌레에 비유
한 것은 의심할 여지없이 욥의 무죄 주장을 비난하기 위한 것이다. 빌닷은 악인이
흥하고 의인이 고통받는 이유를 묻고 있는 욥에게 한마디의 도움도 주지 않고 있다.
그것은 욥의 친구들도 알 수 없는 신비이기 때문이다. 다만 욥이 자기의 무죄함을
입증하기 위해 심판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다는 주장만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23:6, 7). 그러나, 욥은 이러한 충고를 받아들일 필요는 있었다. 그것은 아무리 욥
자신이 올바르다고 생각하더라도 죄인으로서의 겸손을 위배해서는 안 되었기 때문이
다(Delitzsch).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