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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욥기

[스크랩] 욥기 (2 : 1~13)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21:13
욥기 2장


1 또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서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와서
여호와 앞에 서니

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 왔나이다

ㅇ이부분은 1:6-8이 반복되고 있다. 이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6-8 주석을 참
조하라.

3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네가 나를
격동하여 까닭없이 그를 치게 하였어도 그가 오히려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켰느니라

ㅇ네가 나를 격동하여 - 이는 욥에게 내린 재앙이 하나님의 본 뜻에 의한 것이 아님
을 암시해 준다. 즉, 그것은 사단의 부추김과 충동질에 의해 주도된 것이며 하나님은
다만 그것을 허용하신 것이다(2-6절). 실제로 의인을 시험하시고 그에게 고난을 내리
는 것은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바가 아니다. 다만 하나님께서는 사단의 주장(참소)의
거짓됨을 폭로하고 욥의 궁극적 신앙 증진을 위해 시험을 허락하신 것뿐이다. 요컨대
하나님의 이러한 섭리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롬 8:28)는 측면에서만 이
해될 수 있는 것이다. 한편 '격동시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수트'는
'자극하다'(KJV, moved), '설득하다'(LB, persuaded), '충동질하다'(NIV, incited) 등
의 뜻으로서 욥에게 내린 1단계 시련이 사단의 선동에 의한 것임을 암시해 준다(신
13:7; 수 15:18; 삼상 26:19; 삼하 24:1).
ㅇ까닭 없이 - 여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하남'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뜻을 가진다. (1)'부당하게'(unjustly, 22:6), (2) 개인적 유익을 바라지 않고 '무상
으로'(gratuitously, 1:9), (3) '헛되이'(in vain), '쓸모없이'(futile, 잠 1:17)등이
다. 본문에서는 (3)의 뜻으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적당하다.
ㅇ치게 하였어도 - 동사 '바라'는 '(삼켜서) 없애 버리다'(KJV,
destroy;NIV, ruin)의 뜻이다. 이 용어는 욥에게 주어진 1단계 시련의 강도와 그에 대
한 욥의 정신적 갈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해 준다.

4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

ㅇ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 고대 사회의 격언(proverb)으로 여겨지는(N.C. Habel)
이 구절을 해석하는 데에는 대단히 어려움이 따르나 대체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견해
가 있다. (1) 이 표현을 당시 물물 교환을 하던 상인들이 사용하던 것으로 보아 '(짐
승의) 가죽으로 또 다른 가죽을 바꾼다'는 뜻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공동번역). 즉
고대 사회, 특히 팔레시 지방에서는 짐승의 가죽이 주요한 교역 물품으로 취급되었
던바, 이를 시장에 내어 놓고 다른 짐승의 가죽으로 교환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해
석은 첫째, 어떤 물품을 교환할 때 동일 품목으로 교환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듯하
며 둘째, '바꾸오니'로 번역된 동사 '베아드'는 '...대신에'. '...에 의
해서'의 뜻으로서 단순히 물품 대물품의 매매를 지칭한다기 보다는 대개 보상적
매매, 즉 보다 중요한 것을 획득하기 위해 그보다 못한 것을 그 대가로 주는 것을 의
미한다는 이유 때문에 난점에 처한다. (2) 본문을 후반절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방법이
다. 즉 인간이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을 보전하기 위해 모든 것을 투자하는 것처
럼, 외형적 가죽(예를 들면 재산, 자식등)을 버리고 내면적 가죽(생명)을 보전한다는
것이다(Hartley). 이렇게 될 때 본절의 앞에 나오는 '가죽'은 욥이 가진 소유물을 상
징하고 그 뒤에 나오는 '가죽'은 생명을 상징한다 하겠다. 이는 인간의 몸이 외피
(육체)와 내피(생명, 혼)로 구성되어 있다는 고대인들의 관념과도 잘 어울린
다. 여하튼 사단은 이 표현을 통해서 욥이 지금까지 누려온 물질적 축복은 그의 겉가
죽이었으며, 그것은 1단계 재앙을 통해 파괴되었으나 속가죽은 아직 건재하며 따라
서 그의 신앙을 상실케 하기 위해서는 속가죽, 곧 욥 자신의 육체에 직접적인 재앙
을 내려야 한다고 은근히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이 말 속에는 욥이 자신의
생명에 위해가 되는 재앙을 아직 겪지 않은 까닭에 신앙을 보전하고 있다는 사
단의 참소가 내포되어 있다.

5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뼈와 살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ㅇ사단의 2단계 시험이 전개된다. 그런데 1단계 시험이 외형적 물질적 측면에 집중
된 것이라면 2단계 시험은 내면적 영적 측면에 주안점이 주어져 있다. 즉, 첫 단계
시험이 가축(양,약대,소,나귀, 1:15-17), 자녀(1:19), 종(1:15-17), 재물(집, 1:19)
등에 내린 반면, 둘째 단계 시험은 욥 자신의 육체(7,8절), 그로인한 가정적 파탄(9
절)과 욥의 정신적 갈등에 맞추어져 감을 주목해야 한다. 뼈와 살을 치소서 - 사단은
욥이 육체적 질고에 빠지면 결국 하나님을 저주하는 반신앙의 상태에 빠질 것으로 예
상했다. 즉, 어떤 사람이 그 생명에 위협을 받으면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그것을
보전하기 위해 몸부림치듯(4절) 육체적 시련을 통해 생명의 위협을 욥이 받는다면 그
역시 여느 사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원망하게 될 것이며 종국에는 신앙마저 내팽개
치고 목숨의 부지를 위해 전전긍긍할 것으로 보았던 것이다.

6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생명은
해하지 말지니라

ㅇ여기서 다시 한번 사단은 욥을 시험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허락을 받는다. 즉, 그
는 욥의 생명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욥을 시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받았다. 이
에 대한 보다 자세한 내용은 1:12 주석을 참조하라.

7 사단이 이에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서 욥을 쳐서 그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게 한지라

ㅇ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 온몸 전체를 나타내는 히브리 문학의 독특한 표현이다.
ㅇ악창 - 전통적인 해석법에 따르면 이 병은 문둥병(레 13장) 또는 상피병
(elephantiasis)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문둥병자들은 대부분 격리조처를 당했지만
본서 전체를 살펴볼 때 욥이 가족이나 사회로부터 격리되었다는 말이 없으므로 문둥병
은 아닌 듯하다. 추측컨대 이는 부스럼(Bagdad boil)또는 온몸 전체에 진물과 고름이
나는 궤양성 피부병인 듯하다. 이 병에 대한 증상은 본서에 여러 차례에 걸쳐 나타난
다(본장 주제 강해 '악창' 참조). 그러나 이러한 증상은 동시에 욥의 정신적 고뇌에
대한 시문학적 표현일 수도 있으므로(예를 들면 '불면') 문자 그대로만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7:14;19:17, 20;30:17 등).

8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ㅇ재 - 이것은 (1) 마을의 쓰레기 더미(the village ruvbbish heap, The New
Layman s Bible Commebtary), (2) 성읍 밖의 쓰레기 더미(the rubbish-dump outside
the city), (3) 똥 더미(코프리아스;LXX), (4) 재(KJV, NIV, RSV,
ashes)등 다양하게 해석된다. 그런데 '재'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히브리어는 '에페르
'와 '데쉰'등 2종이 있는데 전자는 대부분 회개 내지는 애통
을 나타내는 상징적 행위와 연관되어 사용되었다(삼하 13:19; 에 4:1, 3; 시 102:9
등). 그리고 후자는 희생 재물등 어떤 대상이 타고 남은 후에 생기는 문자적인 재를
언급할 때 주로 사용되었다(레 1:16;6:11;왕상 13:3;렘 31:40). 따라서 우리는 본문
(에페르) 을 문자적인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없다. 추측컨대 이것은 성읍 밖,
또는 주변에 자연적으로 조성된 쓰레기 더미였던 것같다. 한편, 욥이 이러한 곳에 앉
은 이유는 두가지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첫째, 사회로부터 격리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첫째, 사회로부터 격리되었기 때문일 수 있다. 즉 문둥병과 마찬가지로 피부병
은 고대 사회에서 부정한 병으로 취급받았으며, 더욱이 이것은 이스라엘 공중 위생 규
례상 불결한 병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욥이 성읍 밖으로 추방되었다는 것이다. 그러
나 이러한 주장은 욥이 그의 아내와 대화한 것(9절),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대화한 것
(2:1103장 등) 등의 사실 때문에 정설로 받아들이기 곤란하다. 왜냐하면 만약
욥의 병이 부정한 것으로 판명되어 성읍 밖에 버리워졌다면 아내를 포함하여 어느 누
구도 그와 함께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많은 고대의 문헌과 이스라엘 정
결 규례(레 13, 14장)는 부정한 병에 걸린 자와의 접촉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둘째,
병에 걸려 만신 창이가 된 자신의 현상태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표시로 쓰레기 더미에
앉았을 수 있다. 즉 그는 이미 재앙을 받아 쓰레기 같은 육체를 가졌으며 사회로부터
도 냉대와 거절을 받는 신세가 되었는 바, 이제 쓰레기 더미 위에 앉음으로써 자신의
비참한 사황을 쓰레기 더미와 일체화시켰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함으로써 그
는 자신의 비참한 현상황에 대한 애통함을 암묵적으로 나타내려 했을 것이다.
ㅇ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몸을 긁고 있더니 - 이와 흡사한 행위가 우가릿 설화(the
Ugaritic legend)에 나타난다. 즉,바알(Baal) 신이 죽자 엘(El) 신이 막대기와 돌 조
각으로 자기 몸을 긁어(베어) 애통을 표시했다. 이것에 근거하여 어떤 학자는 욥이 자
기의 자녀와 종들의 죽음을 애통해 하는 표시로서 기와 조각으로 자기 몸을 긁었다고
주장한다(M.H. Pope). 그러나 이것은 타당치 않다. 왜냐하면 만약 욥이 그 자녀의 죽
음을 애도하기 위해 이러한 행위를 했다면 자녀의 죽음 직후(1:19)에 그렇게 했어야
했다. 또한 여호와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욥이 당시 이방인의 주술적 행위의 성격이
짙었던 이러한 행위를 했을리도 없기 때문이다(신 14:1). 따라서 욥은 자기 몸에 난
종기와 부스럼, 그리고 가려움증을 해소하기 위해 이러한 행위를 했다고 보아야 한다.
요컨대 '기와 조각'은 욥의 피부병의 증상을 일시나마 진정시키는 반대 자극제
(counterirritant)였던 것이다. 한편 여기에 나오는 '기와 조각'은 깨진 도자기의 파
편을 가리킨다.

9 그 아내가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ㅇ여기에 나오는 욥의 아내의 권고는 일견타당한 것처럼 들린다. 왜냐하면 그
녀는모든 소유와 혈육을 상실하였고, 사랑하는 남편마저도 심한 악창에 걸려 생사
의 기로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녀는 깊은 절망과 좌절의 벽에 부딪혀 이
와 같은 탄식조의 말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욥의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신앙을
단순히 현세적 축복과 연관시켜 생각했으며, 하나님을 불공평하고 불의한 분으로 생각
했다. '당신이 지금껏 신앙을 고수해 왔으나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 결과 당신은 도
리어 현재와 같은 비참한 상태에 빠져 있지 않는가? 그러한 하나님이라면 바로 지금이
라도 배반하라'는 뜻이 여기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요컨대 그녀의 신앙은 종교를
통해서 유익(복)을 얻고자 하는 저급한 단계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특히 그녀는 '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말을 서슴없이 내뱉음으로써 신성 모독죄를 범했을 뿐 아
니라 믿음을 상실하는 단계로까지 떨어지고 말았다. 또한 그녀의 말은 사단의 책략에
결정적으로 동조하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사단의 궁극적 목적은 욥으로 하여금 신앙을
상실케 하여 하나님을 욕하게 하는 것(5절;1:11)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녀
는 욥에 대한 단순한 비방자(slanderer)의 차원을 넘어 '악마의 보조자'(diaboli
adjutrix ; Augustine), 또는 '사단의 도구'(organum satanae ; Calvin)였던 셈이다.
이러한 행위는 생명과 환난의 위협에 직면해서까지도 놀라운 신앙의 용기를 보여주었
던 라합(수 2:1-7), 에스더(에 4:16-18)의 행적과 뚜렷이 대조된다. 이렇듯 이제 욥은
육체적 질고 이외에 생의 동반자로부터 버림받는 이중적 고통에 처하게 되었다.

10 그가 이르되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치
아니하니라

ㅇ그대의 말이...말 같도다 - 본문에서 욥이 단순히 그 아내의 무분별함이나 지적 우
매성을 질책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어리석은'에 해당하는 히브리 원어 '네
발라'는 주로 도덕적 종교적 요구들을 무시하는 불경스러움, 또는 그러
한 것을 알지 못하는 무분별함을 뜻하기 때문이다(삼하 13:12; 사 32:6 등). 따라서
욥은 아내의 말이 윤리 도덕적 측면에서 죄가 될 뿐 아니라 종교적 측면에서 결코 용
납될 수 없는 신성 모독적 언사임을 지적하고 있다(시 53:1).
ㅇ우리가...받지 아니하겠느뇨 - 본서의 핵심 주제이자 욥의 신앙의 진수를 보여주
는 구절이다. 이 같은 욥의 신앙은 '주신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1:21)라는 말 속에 이미 명백히 표현되었었다. 만물의 조성자이며 생사 화복의 주관
자이신 자는 오직 하나님이다. 그분은 당신의 깊으신 뜻(섭리)에 따라 복을 주시기도
하시며 그것을 거두어 가시기도 하신다(1:21).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의인에
게 재앙을 주시기도 하신다. 그러나 인간은 이것에 대해 하등 항변할 권리가 없다. 왜
냐하면 축복과 재앙의 수여와 철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권리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
러한 사상은 '토기장이의 비유'(사 29:16; 렘 18:4). '목자와 양의 비유'(암 3:12) 등
을 통하여 성경 전반에 나타난다. 욥은 바로 이 같은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철저한 신
뢰를 본절에서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은 이미 받은 재앙에 대한 체념이
아니요, 환난 중에서도 하나님의 구원과 공의로운 섭리를 대망하는 적극적 신앙의 발
로였다. 요컨대 욥은 자신이 당하는 재앙이 단순히 죄에 대한 형벌이 아니며,동시에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영적 유익을 위해 시련과 연단을 주신다는 사실을 어느 정도 인
식했던 것으로 보인다(5:17; 신 8:5; 삼하 7:14; 시 94:12;잠 3:11, 12;고전 11:32;히
12:5-11 등).
ㅇ이 모든 일에...아니하니라 - 이로써 사단의 2단계 시험도 무위로 돌아가고 욥의
신앙의 진정성이 재확인되었다. 그러네 혹자는 본문에 나타난 '입술'이라는
용어를 예로 들어 욥이 말로는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았으나 마음으로는 이미 범죄하였
다고 주장한다(Talmud, Baba Bathra, 17b). 그러나 이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측면
에서 부정된다. (1) 사람의 생각은 말로나 행동으로 표현되기 일반이다. 더욱이 생명
의 위협에 처하는 극한 상황에 처하면 마음의 심층적 생각까지도 은연중 말로 표출되
기 마련이다. 따라서 한계 상황에 직면한 욥이 말로써 하나님을 저주하지 않았다는 사
실에 대한 간접적인 반증이 된다. (2)욥은 마음으로 범죄하는 것 못지않게 두려워하였
다. 이는 욥이 그의 자녀들이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할까 두려워하여 성결례를 행했
다는 데(1:5)에서 명백히 입증된다. 이렇게 볼 때 욥은 외적 범죄 행위와 동일하게 내
적 범죄 행위도 하나님 앞에서 죄악된 것임을 인식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만
일 욥이 마음으로라도 하나님을 저주했더라면 사단의 계획은 성공으로 끝났을 것이며
두 차례나 욥을 의인으로 인정한 하나님의 칭찬(3절; 1:8)역시 무위로 돌아갔을 것이
다. 한편 욥은 친구들과의 변론 과정에서 자기 의(self-righteosness ; 27:6)를 내세
우는 등의 우를 범했으나 끝까지 신앙을 견지함으로써 신약 기자에 의해 인내하는 자
의 전형으로 기술 되었다(약 5:11).

11 때에 욥의 친구 세 사람이 그에게 이 모든 재앙이 임하였다 함을듣고 각각 자기
처소에서부터 이르렀으니 곧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라 그들이 욥을 조문하고 위로하려 하여 상약하고 오더니

ㅇ두 단계에 걸친 사단의 시험과 그에 대한 욥의 반응으로서 본서 도입부는 종결되고
본문에서부터 본론부가 시작된다. 그 가운데서도 11-13절까지는 그 초두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욥의 세 친구가 등장하여 향후 전개될 변론을 예시해 준다.
ㅇ친구 세 사람 - 이들에 대한 자세한 인적 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본서를 비롯
하여 성경 다른 자료를 근거하여 볼 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들 모두
는 욥보다 연장자였다(15:10). 둘째, 이들은 욥을 조문하러 오기 이전부터 서로 잘 알
고 있었다. 이는 그들이 욥을 방문하기 전에 서로 상약했다(11b절)는 말에서 분명히
암시된다. 셋째, 이들 모두는 당시 상당한 수준의 학식과 재물을 겸비한 자로 추정된
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정확한 논리 전개와 풍부한 지식을 동원하여 욥과 변론을 펼치
는 바(4:1;5:27) 이는 그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학식과 지혜를 소유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욥을 조문하러 올 정도의 신분이라면 각기 그 지방의 유지이거나 풍부한 재물을
소유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고대 사회에서는 대부분 같은 계층의 사람끼리
교제하였기 때문이다. 즉, 당시 막대한 재물과 명예를 지닌 자(1:3)였던 욥과 교제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것과 비견될 만한 수준의 재물과 명예를 가졌을 것이다.
넷째, 이들 모두는 히브리 신앙을 가진 자였다. 즉, 그들은 비록 욥의 신앙에까지는
이르지 모했다할지라도(1:1, 8; 2:3) 하나님의 공의, 성품등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신
앙 지식을 소유했다. 다만 계시사의 점진적인 발전 과정에 비추어 볼때 그들은 인간의
전적 부패성(롬 5:12),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합 2:4;롬 3:19-31)등을 인식하는
단계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ㅇ데만 - 이 지역은 종종 성경에서 에돔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쓰이기도 했으나(렘
49:7), 역서는 모압 동쪽의 한 성읍을 가리키는 것같다(겔 25:13; 암 1:12, 13). 그런
데 이 지역은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해서 볼 때 사해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ㅇ수아 - 본래 '수아'(Sua)는 아브라함과 그두라 사이에 출생한 아들을 가리킨다(창
25:2; 대상 1:32).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 말이 지명으로 변천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추측컨대 수아의 후손들이 사는 중부 우프라테스 지역을 '
수아'라는 지명으로 부른 것 같다.
ㅇ나아마 - 이 지명이 언급되는 것은 본서 11:1;20:1 이외에 수 15:41 딱 한 군데 뿐
이다. 그러나 그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12 눈을 들어 멀리 보매 그 욥인 줄 알기 어렵게 되었으므로 그들이 일제히 소리질러
울며 각각 자기의 겉옷을 찢고 하늘을 향하여 티끌을 날려 자기 머리에 뿌리고

ㅇ두 단계에 걸친 사단의 시험과 그에 대한 욥의 반응으로서 본서 도입부는 종결되고
본문에서부터 본론부가 시작된다. 그 가운데서도 11-13절까지는 그 초두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욥의 세 친구가 등장하여 향후 전개될 변론을 예시해 준다.
ㅇ친구 세 사람 - 이들에 대한 자세한 인적 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본서를 비롯
하여 성경 다른 자료를 근거하여 볼 때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들 모두
는 욥보다 연장자였다(15:10). 둘째, 이들은 욥을 조문하러 오기 이전부터 서로 잘 알
고 있었다. 이는 그들이 욥을 방문하기 전에 서로 상약했다(11b절)는 말에서 분명히
암시된다. 셋째, 이들 모두는 당시 상당한 수준의 학식과 재물을 겸비한 자로 추정된
다. 이들은 나름대로의 정확한 논리 전개와 풍부한 지식을 동원하여 욥과 변론을 펼치
는 바(4:1;5:27) 이는 그들이 일정 수준 이상의 학식과 지혜를 소유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욥을 조문하러 올 정도의 신분이라면 각기 그 지방의 유지이거나 풍부한 재물을
소유했을 것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고대 사회에서는 대부분 같은 계층의 사람끼리
교제하였기 때문이다. 즉, 당시 막대한 재물과 명예를 지닌 자(1:3)였던 욥과 교제할
정도의 사람이라면 적어도 그것과 비견될 만한 수준의 재물과 명예를 가졌을 것이다.
넷째, 이들 모두는 히브리 신앙을 가진 자였다. 즉, 그들은 비록 욥의 신앙에까지는
이르지 모했다할지라도(1:1, 8; 2:3) 하나님의 공의, 성품등에 대한 상당한 수준의 신
앙 지식을 소유했다. 다만 계시사의 점진적인 발전 과정에 비추어 볼때 그들은 인간의
전적 부패성(롬 5:12), 믿음으로 말미암은 구원(의, 합 2:4;롬 3:19-31)등을 인식하는
단계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ㅇ데만 - 이 지역은 종종 성경에서 에돔 전체를 지칭하는 것으로 쓰이기도 했으나(렘
49:7), 역서는 모압 동쪽의 한 성읍을 가리키는 것같다(겔 25:13; 암 1:12, 13). 그런
데 이 지역은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해서 볼 때 사해 남쪽에 위치해 있었다.
ㅇ수아 - 본래 '수아'(Sua)는 아브라함과 그두라 사이에 출생한 아들을 가리킨다(창
25:2; 대상 1:32). 그런데 어떻게 해서 이 말이 지명으로 변천되었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추측컨대 수아의 후손들이 사는 중부 우프라테스 지역을 '
수아'라는 지명으로 부른 것 같다.
ㅇ나아마 - 이 지명이 언급되는 것은 본서 11:1;20:1 이외에 수 15:41 딱 한 군데 뿐
이다. 그러나 그 정확한 위치에 대해서는 불분명하다.

13 칠일 칠야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곤고함이 심함을 보는고로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

ㅇ칠일,칠야 - 이 기간은 죽은 자를 위한 애곡 기간과 동일하다(창 50:10; 삼상
31:13; 집회서 22:12). 따라서 욥의 친구들은 욥에게 최상의 애통의 표시를 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구약에서 위대한 인물의 죽음을 슬퍼하는 공식적 애도 기간은 보통 30
일 내지 70일이었다(창 50:3;민 20:29; 신 34:8).
ㅇ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 - 이를 어떤 학자는 탈무드의 전승에 비추어서
해석하려고 한다. 즉, 죽은 자의 집을 방문한 조문객들은 상주가 먼저 말을 열기 전까
지는 한마디도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Talmud, Moed, Qatan 28b). 그러나 굳이 이
러한 관례에 비추어 본문을 해석할 필요는 없다. 욥의 세 친구들은 욥의 비참한 상황
에 대해 말을 잃었으며, 섣불리 위로의 말을 건네기 보다는 침묵을 지키는 것이 도리
어 효과적이라고 생각 했을 것이다. 고통당하는 자와 같이 말없이 있어줌으로써 그들
은 나름대로 깊은 우정을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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