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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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사무엘하

[스크랩] 사무엘하 (13 : 1~39)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5:02

사무엘하 (13 : 1~39)

 


1 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다윗의 아들 압살롬에게 아름다운 누이가 있으니 이름은
다말이라 다윗의 아들 암논이 저를 연애하나

ㅇ그 후에 이 일이 있으니라 - '그 후에'란 용어는 구야겡서 대개 다음 두 가지 용례
(用例)로 사용되었다. (1) 시간적인 전후 관계를 연결하는 접속사(삼상 24:8 ; 에
2:1). (2) 시간적인 전후 관계와는 상관없이 단순히 상이한 두 내용을 서로 연결시켜
주는 접속사(2:1 ; 8:1 ; 10:1). 8:1 주석 참조. 그런데 여기서 이 용어는 첫번째
경우로 사용되었다. 즉 이는 본장에 기록된 다윗가의 재난이 나단 선지자의 예언
(12:10-12)대로 하나님의 보응의 결과로 나타난 사건임을 보여 주기 위한 연대기적
(chronological) 접속사이다.
ㅇ다윗의 아들 압살롬...다말이라 - 이들은 다윗이 그술(Geshur) 왕 달매의 딸 마아
가(Maacah)에게서 얻은 자녀들이다(3:3). 당시 그술은 이스라엘 바로 북쪽에 위치한
아람 소국이었는데 다윗은 이 이방 나라와의 화친을 위해 정략 결혼을 하였었다. 3:3
주석 참조.
ㅇ암논 - 다윗이 이스르엘 여인 아히노암(Ahinoam)에게서 얻은 장자이다(3:2). 따라
서 다말은 그의 이복(異腹) 누이동생이 된다. 5:13-16 주석 참조.

2 저는 처녀이므로 어찌할 수 없는 줄을 알고 암논이 그 누이 다말을 인하여 심화로
병이 되니라

ㅇ저는 처녀이므로 - 여기서 '처녀'에 해당되는 '베투라'는 '동정녀'
(virgin)란 뜻으로 단순히 시집가지 아니한 여자가 아닌 지금껏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정숙한 여인을 의미한다(Lange, Keil). 즉, 다말은 순결을 소중히 여기는 품
위있는 여인이었으므로 암논이 함부로 접근하기 힘들었던 것이다. 한편 본절에서 보
듯 다말이 암논에게 연정(戀情)을 품게 할 정도로 성숙한 것을 보아 적어도 이때 다말
은 15세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다말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낳은 딸이니(대상
3:5-9) 본장의 시대적 배경은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통치한 지
최소한 15년은 경과한 때임을 알 수 있다(5:1-5).
ㅇ심화로 병이 되니라 - 여기서 '심화'(心火)'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야차르'
는 '괴로워 하다', '고민하다'는 뜻이다. 따라서 본절은 암논이 다말에 대한 연민의
정 때문에 상사병(相思病)이 걸렸음을 알 수 있다.

3 암논에게 요나답이라 하는 친구가 있으니 저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이요 심히
간교한 자라

ㅇ다윗의 형 시므아 - 그는 이새의 셋째 아들이며(대상 2:13) 삼마(Shammah)라고도
불리운다(삼상 16:9 ; 17:13).
ㅇ여기서 '간교한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이쉬 하캄'은 좋은 의
미에서 '지혜로운 자', '능숙한 자'를, 그리고 나쁜 의미에서 '교활한 자'를 가리킨
다. 그런데 요나답은 자기의 지혜로 암논의 부도덕한 욕망을 충족시켜 주었으므로 약
한 지혜의 소유자, 곧 교활한 자였다 하겠다. 어쨌든 본장에서 그는 사람의 마음과
사건의 정황(情況)을 정확히 판단할 줄아는 매우 뛰어난 인물로 묘사되어 있으니(5,
32절) 그 지혜가 아깝지 않을 수 없다.

4 저가 암논에게 이르되 왕자여 어찌하여 나날이 이렇게 파리하여 가느뇨 내게 고하지
아니하겠느뇨 암논이 말하되 내가 아우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연애함이니라

ㅇ내가...다말을 연애함이니라 - 여기서 '연애하다'에 해당하는 '아하브'는
'성적(性的)으로 관심을 갖는 것' 또한 '사랑을 느끼는 것'을 가리킨다. 따라서 암논
은 다말의 전인격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녀의 육체만을 사랑했었음을 알 수 잇다.
암논의 이러한 충동적이고 쾌락 일변도적인 성적 욕망은 그가 다말을 범한 후 오히려
그녀를 싫어한 사실(14, 15절)에서도 잘 드러난다.

5 요나답이 저에게 이르되 침상에 누워 병든체하다가 네 부친이 너를 보러 오거든
너는 말하기를 청컨대 내 누이 다말로 와서 내게 식물을 먹이되 나 보는데서 식물을
차려 그 손으로 먹여주게 하옵소서 하라

ㅇ네 부친이 너를 보러 오거든 - '보러 오거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라아'
는 여기서 단순히 '우연히 보다'는 뜻이 아니라 '어떤 목적을 가지고 방문하
여 보다', 또는 '병의 진행 정도를 진찰하다'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출 1:16 ; 레
13:3, 6, 8, 56 ; 민 13:18 ; 왕하 8:29 ; 시 41:7). 따라서 요나답의 아와 같은 말
은 다윗 왕이 암논의 병을 염려하여 병문안 올 것을 예상하고서 한 말임을 알 수 있다
(Lange).
ㅇ내 누이 다말로...먹여 주게 하옵소서 하라 - 이는 자식에 대한 다윗 왕의 남다른
애정을 이용하여 암논의 욕망을 이루게 하려는 요나답의 간교한 계략이다. 한편 이와
같이 요나답이 암논에게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그를 도와 준 까닭은 아마 암논이 다윗
왕의 장자로서(3:2) 왕위 계승의 서열 제1위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Smith, Leon
Wood). 즉, 요나답은 자신의 입신 출세를 위해 차기 왕의 지목에 있어서 가장 유리했
던 암논을 가까이 했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추론(推論)은 왕위 계승의 서열상 장자
가 우선이라는 당시 고대 사회의 통념으로 볼 때 매우 일리가 있다. 한편, 하나님께
서는 앞서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다윗 왕의 계승자로 이미 솔로몬을 넌지시 지목하셨
다. 12:25 주석 참조.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윗이 당시 이러한 사실을 공식 발표하지
않은 것은 아마 왕자들 간의 실권(實權) 다툼(왕상 1:13)을 우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6 암논이 곧 누워 병든체하다가 왕이 와서 저를 볼 때에 왕께 고하되 청컨대 내 누이
다말로 와서 내가 보는데서 과자 두어개를 만들어 그 손으로 내게 먹여 주게 하옵소서

ㅇ과자 두어 개 - 여기서 '과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레비보트'는
심장(heart)을 의미하는 '레바브'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학자들은 이
과자가 심장을 강하게 해주는 일종의 건강식이거나 아니면 심장 모양의 둥근 케잎이었
을 것이라고 추측한다(Keil, Lange).

7 다윗이 사람을 그 집으로 보내어 다말에게 이르되 네 오라비 암논의 집으로 가서
저를 위하여 음식을 차리라 한지라

ㅇ다윗이...이르되 - 암논의 범죄에 다윗이 개입되어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
다. 다윗은 후에 발생되는 압살롬의 범죄 때에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입되었다
(23-28절). 이러한 사실은 다윗 가문의 모든 재난이 다윗 자신의 범죄(11장)로 말미
암아 발생하고 있음을 다윗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라 고 볼 수 잇다.
즉 이 같은 사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다윗으로 하여금 이전과 같은 죄악을
범치 않도록 채찍질하고 계시는 것이다.
ㅇ가서...음식을 차리라 - 히브리 관습에 따르면 여인들은 음식만드는 일에 초청되는
것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 한다(Jamison). 비록 암논의 요구(6절)가 좀 부자연스
럽긴 했지만 다윗이 그 요구를 받아들였던 것도 그 같은 관습 때문이었을 것이다.

8 다말이 그 오라비 암논의 집에 이르매 암논이 누웠더라 다말이 밀가루를 가지고
반죽하여 그 보는데서 과자를 만들고 그 과자를 굽고

ㅇ다말이 그 오라비 암논의 집에 이르매 - 본절은 당시 왕의자녀들이 그들의 어머니
(3:2-5 ; 5:13-16 ; 대상 3:1-9)와 함께 각기 다른 거처에서 생활하였으므로 또한 장
성한 아들들은 각기 독립된 주택에서 생활하였음을 보여 준다(Lange, Wycliffe,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 398).
ㅇ그 보는 데서 과자를 만들고 - 히브리인들은 실내에 있는 화로(火爐)나 벽난로에서
요리를 하였다. 즉, 저들의 가옥 구조는 부엌과 거실이 거의 구별되지 않았다. 대하
33:1-11 강해, '히브리인의 주거 형태' 참조. 따라서 다말은 암논이 지켜보는 가운데
요리를 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9 그 남비를 가져다가 그 앞에 쏟아 놓아도 암논이 먹기를 싫어하고 가로되 모든
사람을 나가게 하라 하니 다 저를 떠나 나가니라

ㅇ암논이 먹기를 싫어하고...나가게 하라 하니 - 이처럼 암논이 다말의 요리를 거절
한 것은 병이 악화되기나 한듯이 방문객들에게 보이기 위함이었다. 즉 이렇게 하여
그는 다말 이외에 모든 사람들을 밖으로 나가도록 한 자신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도록 꾸몄던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암논의 꾸밈은 모략가인 요나답의 지시 (5절)
를 받아 이루어진 것임에 분명하다(Lange).

10 암논이 다말에게 이르되 식물을 가지고 침실로 들어오라 내가 네 손에서 먹으리라
다말이 자기의 만든 과자를 가지고 침실에 들어가 그 오라비 암논에게 이르러

ㅇ다말이...침실에 들어가 그 오라비 암논에게 이르러 - 다말이 미처 오라비 암논의
흑심(黑心)을 눈치채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즉 그녀는 암논이 자신을 강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기에 어떻게든 병든 암논의 마음을 위로해 주기 위해
구운 과자를 들고서야 기꺼이 암논의 침실에까지 들어간 것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 508).

11 저에게 먹이려고 가까이 가지고 갈때에 암논이 그를 붙잡고 이르되 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ㅇ누이야 와서 나와 동침하자 - 암논이 하나님의 율법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간음(레
18:9)을 요구하고있는 장면이다. 암논은 인간의 눈을 피하기만 한다면(9절) 자신의
죄악이 숨겨질 것으로 생각했음이 분명하다(욥 24:15). 그러나 다윗의 경우처럼 이번
에도 하나님께서는 암논의 극악한 행동 하나하나를 지켜보고 계셨으며 끝내 그를 징계
하셨다(29절). 이처럼 인간의 범죄는 반드시 자신의 파멸을 가져오는 것이 그 특징이
다(갈 5:19-21). 따라서 우리가 각종 탐심과 욕정을 억제함으로 범죄치 않기 위해서
는 하나님의 말씀에 우리의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시 119:9 ; 벧 4:2).

12 저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 오라비여 나를 욕되게 말라 이런 일은 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치 못할 것이니 이 괴악한 일을 행치 말라

ㅇ이스라엘에서 마땅히 행치 못할 것이니 -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에 기초해 건설
된 신정 국가 였다(출 19:5, 6). 따라서 율법에 의거, 근칭 상간자는 수간(獸姦)하는
자와 남색(男色)하는 자와 더불어 이스라엘 사회 내에서 반드시 제거 되어야만 했다
(레 18:9 ; 20:17 ; 신 27:22).
ㅇ괴악한 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네발라'는 히위 족속인 세겜이
야곱의 딸 디나를 겁탈한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된 것과 같은 말이다(창 34:7). 이
말은 구약에서 대개 다음 두가지를 의미하였다. (1)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짐승같은
행위를 뜻한다. (2) 주변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악독한 일, 그중에서도 특
히 음행과 관련된 악한 일을 의미한다(수 7:15 ; 삿 19:23, 24 ; 20:6, 10 ; 삼상
25:25 ; 사 9:17 ; 32:6 ; 렘 29:23).

13 내가 이 수치를 무릅쓰고 어디로 가겠느냐 너도 이스라엘에서 괴악한 자 중 하나가
되리라 청컨대 왕께 말하라 저가 나를 네게 주기를 거절치 아니하시리라 하되

14 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 다말보다 힘이 세므로 억지로 동침하니라

ㅇ암논이 그 말을 듣지 아니하고...동침하니라 - 다말의 온갖 설득과 만류에도 불구
하고 암논은 기어코 자신의 욕정을 채우고 말았다. 이는 곧 그 아비 다윗이 이성(理
性)을 잃어버린 채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것과 같은 경우이다(11:2-4). 하지
만 이는 곧 하루살이가 타오르는 모닥불을 보고선 불속으로 뛰어듦과 같다. 즉 하루
살이는 불빛에 미혹되어 그 속으로 뛰어들지만 맹렬하게 타오른 모닥불은 하루살이를
도리어 태워버리고 마는 것이다. 성경은 무릇 다른 죄악보다 온갖 정욕의 죄를 보다
엄히 경계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란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
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기 때문이다(고전 6:18).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 같
은 경고를 듣지 않는다면 우리 역시 불속에 뛰어드는 하루살이와 같은 결과를 초래하
고 말 것이다.

15 그리하고 암논이 저를 심히 미워하니 이제 미워하는 미움이 이왕 연애하던
연애보다 더한지라 곧 저에게 이르되 일어나 가라

ㅇ심히 미워하니...연애보다 더한지라 -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병이 날 정도로(2절) 애
모 했던 자를 이제 성적 욕구를 채우고 난 후에는 도리어 심히 미워하는 암논의 심리
현상은 변태 성욕자(變態性慾者)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즉 상대방의 인
격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없이 하등 동물적인 욕정에만 사로잡혀 있을 경우, 일단 육
체적 욕망이 충족되고 나면 심한 수치감과 허탈감, 상대방에 대한 혐오감에 사로잡히
는 것이 사람의 일반적 심리 현상인 것이다.

16 다말이 가로되 가치 아니하다 나를 쫓아 보내는 이 큰 악은 아까 내게 행한 그
악보다 더하다 하되 암논이 듣지 아니하고

ㅇ가치 아니하다...그 악보다 더하다 - 암논이 다말을 자기 집에서 쫓아내는 것은 방
금 자신에게 추행(醜行)을 당한 다말의 수치심을 더욱 자극하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러한 암논의 행위는 자기 때문에 불행한 생(生)을 맞이하게 된 다말에 대하여
약간의 동정심도 베풀지 아니한 잔악한 행위임에 분명하다. 따라서 다말은 자기를 쫓
아보내는 암논의 행위가 이전의 그의 추행보다 더 악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17 그 부리는 종을 불러 이르되 이 계집을 내어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라 하니

ㅇ문빗장을 지르라 - 암논의 이러한 행위는 실로 자신의 양심에 빗장을 지르는 것이
자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다는 하나님의 심판의 문빗장을 스스로 지르는 짓이 아닐 수
없다. 만일 그가 다말에게 조금이라도 정신을 가다듬고 수치심을 억누를 수 있는 시
간적 여유만이라도 주었더라면 다말과 하나님으로부터 일말의 긍휼을 기대할 수 있었
을 젓이다. 그러나 암논은 스스로를 차꼬 채우듯 보다 철저히 악으로 일관하였으니
결국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38, 29절).

18 암논의 하인이 저를 끌어내고 곧 문빗장을 지르니라 다말이 채색옷을 입었으니
출가하지 아니한 공주는 이런 옷으로 단장하는 법이라

ㅇ채색 옷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케토네트 파심'은 '소매
가 달린 긴 겉옷'이란 뜻이다. 아마도 이는 공주와 같은 귀족 신분이 입는 소매가 길
고 아름답게 장식된 나들이 옷을 의미할 것이다. 창 37:3 주석 참조.

19 다말이 재를 그 머리에 무릅쓰고 그 채색옷을 찢고 손을 머리 위에 얹고 크게 울며
가니라

ㅇ재를 그 머리에 무릅쓰고 - 이는 자신의 수치스럽고도 비참한 현실에 대한 슬픔과
고뇌를 사람들에게 드러내는 행동이다(삼상4:12 ; 왕하 5:8). 1:2 주석 참조. 아마
도 다말은 조금 전 과자를 구울 때 사용한 화로나 벽난로에서 취한 재(8절)를 머리에
뒤집어 썼을 것이다(Pulpit Commentary).
ㅇ채색 옷을 찢고 - 옷을 찢는 행위 역시 금식이나 굵은 베옷을 입는 행위(왕상
21:27 ; 에 4:3 ;시 35:13)와 더불어 참을 수 없는 자신의 슬픔을 나타내던 히브리인
들의 한 표현법이었다. 1:2 주석 참조.
ㅇ손을 머리 위에 얹고 - 머리는 그 사람의 명예를 상징하는 것이다. 창 40:13 주석
참조. 따라서 다말이 손을 머리 위에 얹은 것은 자신의 머리에 수치스러운 것이 임한
것을 슬퍼하며 애통해하는 표현이었다(렘 2:37). 아마도 다말은 이러한 행위로써 어
쩔 수 없는 상황에서 당한 억울함(11-14절)을 표함한 아울러 자신의 순수함과 결백함
을 나타내고자 하였을 것이다(Lange).

20 그 오라비 압살롬이 저에게 이르되 네 오라비 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그러나
저는 네 오라비니 누이야 시방은 잠잠히 있고 이것으로 인하여 근심하지 말라 이에
다말이 그 오라비 압살롬의 집에 있어 처량하게 지내니라

ㅇ암논이 너와 함께 있었느냐 - 매우 슬피 울며 자신의 수치를 드러내고 있는 다말의
모습을 본 압살롬이 암논의 추행을 짐작하고선 사실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완곡하게
따져 묻는 말(euphemism)이다. 여기서 즉, '...너와 함께 잇었느냐'하는 물음은 남녀
의 동침 여부를 우회적으로 묻는 말인 것이다(창 39:10). 한편, 본절의 원문에는'암
논'이 '아미논'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에 대해 혹자는
필사자의 잘못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Pulpit Commentary), 또 다른 사람은 '아미논'
이 '암논'에 대한 경멸어(輕蔑語)라고도 주장한다(Lange, Thenius). 그런데 사건의
흐름상 이 두 견해 중 후자의 주장이 비교적 설득력 있게 보인다.
ㅇ사방은 잠잠히 있고 - 이 같은 압살롬의 말은 다음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1) 아버지 다윗이 이 일에 대하여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두고 보겠다는 의미이다(21
절). (2) 암논에게 복수할 좋은 묘책이 떠오를 때까지는 경거 망동하지 않겠다는 의
미이다. 사실 암논에게 일언 반구(一言半句)도 하지 않은 채 2년 동안 기회를 노린
점을 볼 때 압살롬의 복수심은 대단했었음을 알 수 있다(22-29절).
ㅇ이것으로 인하여 근심하지 말라 - 당시 일부 다처제가 성행하던 세태 속에서 오라
비는 자기 누이를 보호할 의무가 있었다(창 34:31). 따라서 압살롬은 암논에 대한 복
수를 결심하고 자기 누이를 진정시킨 것이다(Pulpit Commentary).
ㅇ처량하게 지내니라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멤'은 '황폐한', '다 망
가진'이란 뜻을 가진다. 따라서 이 말은 마치 폐인(廢人)처럼 되어 이제 괴로운 나날
만을 보내고 있는 다말의 비참한 삶을 잘 드러내 준다.

21 다윗왕이 이 모든 일을 듣고 심히 노하니라

ㅇ다위 왕이...심히 노하니라 - 이 처럼 다윗 왕은 암논의 범죄 소식을 듣고선 일시
적으로 크게 노하기만 했을 뿐 율법에 따라 암논을 사형에 처하지는 않았다(레
20:17). 그 이유에 대하여 70잉역(LXX)은 "암논이 장자인 고로 다윗이 그를 사랑하여
암논의 마음을 괴롭게 하지 않았다"라고 보충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외에
도 또 다른 이유를 댈 수 있다. 그것은 곧 다윗 왕 자신이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이
미 지은 자로서(11:4) 자기 아들의 죄를 심판할 자격을 이미 상실했기 때문이란 점이
다(Wycliffe, Pulpit Commentary). 그리고 또 자식에 대한 다윗 왕의 약한 마음 때문
이라고 볼 수 있다(Lange, Keil). 아무튼 이상의 점에 비추어 볼 때 다윗은 인간적인
면에서 좋은 아버지였을지 모르나 하나님 앞에서느 부모의 본분을 다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잠 23:13, 14 ; 엡 6:4). 때문에 이러한 다윗의 잘못은 결국 엄청난 가정의
비극을 초래하고 말았다. 즉 다윗의 우유 부단한 처신에 불만을 품은 압살롬은 결국
암논을 살해하고(23-29절) 더 나아가 다윗에게 반기(叛起)하고 만 것이다(15장). 이
런 점에서 그리스도인 가정 교육의 주안점은 자녀의 영혼을 바로 세우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녀가 잘못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준엄하게 징계하여 그로 하여
금 바른 삶을 살게 하는 것이 곧 부모의 참된 역할인 것이다(딤후 3:16, 17).

22 압살롬이 그 누이 다말을 암논이 욕되게 하였으므로 저를 미워하여 시비간에
말하지 아니하니라

ㅇ시비간에 말하지 아니하니라 - 누이 동생 다말의 일로 인해 암논을 미워하게 된 압
살롬이 그 일에 대하여 암논에게 한 마디도 따지거나 변론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와 같은 사실은 압살롬이 속으로 암논과 절교(絶交)를 선언하고 또한 잔인한 복수극을
계획하고 있었음을 의미한다.

23 이 주년 후에 에브라임 곁 바알하솔에서 압살롬의 양털을 깎는 일이 있으매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청하고

ㅇ이 주년 후에 - 즉 '만2년 후에'(after two full years, KJV, RSV)란 뜻이다. 이
말은 압살롬의 복수극이 즈흥적인 감정에 의해 돌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숙고와 치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것임을 보여준다. 한편, 압살롬의 이러한 음모는
단순히 자기 누이의 한을 풀어 주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권좌를 차지하
기 위한 일종의 쿠테타(coup d' etat)였을 것이다. 즉 다윗 왕의 세째 아들이었던 압
살롬은 다윗의 차남인 길르압이 일찍 조사(早死)하였으므로 장남인 암논만 제거하면
권좌에 오를 수 있는 입장에 있었던 것이다. 3:3 주석 참조.
ㅇ에브라엠 곁 바알하솔 - 바알하솔(Baal-hazor)은 에브라임 성에서 북쪽으로 약4km,
예루살렘에서 서북쪽으로 약24km 떨어진 산지(山地)마을 이다. 이곳은 해발 1,200m
가량 되는 고지로서 목양(牧羊)하기에 아주 적합한 목초지였다. 압살롬은 다른 왕자
들처럼 이곳에 자기 토지를 마련하고 많은 양들을 사육했던 것 같다.
ㅇ양털을 깍는 일 - 당시 목축업을 주산업으로 삼고 있던 이스라엘에서 양털을 깍는
일은 축제(祝祭)의 분위기 속에서 행해졌다(삼상 25:2-8). 따라서 압살롬은 이 일을
미끼로 자연스럽게 형제들을 불러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24 왕께 나아와 말하되 이제 종에게 양털 깎는 일이 있사오니 청컨대 왕은 신복들을
데리시고 이 종과 함께 가사이다

ㅇ청컨대 왕은...가사이다 - 압살롬은 먼저 왕위 계승권이 없는 왕자들을 청한 후
(23절) 이제 다윗 왕을 잔치에 청한다. 그러나 압살롬이 왕을 청한 것은 진심에서 우
러나온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암논을 자기의 계략속에 끌어들이기 위해 펼쳤던 포석
작전(布石作戰)이었다. 즉, 그는 다윗이 신하들을 대동하여 자신의 잔치에 참여한다
는 것은 국정상(國政上)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미리 계산하고, 그 대신에 왕의 실질적
인 대표라고 간주되었던 암논을 보내달라고 간청하기 위해(26절) 계획적으로 다윗을
잔치에 청하는 척 한 것이다(Hertzberg).

25 왕이 압살롬에게 이르되 아니라 내 아들아 우리가 다 갈 것이 없다 네게 누를
끼칠까 하노라 압살롬이 간청하되 저가 가지 아니하고 위하여 복을 비는지라

ㅇ복을 비는지라 - 혹자는 이에 대해 다윗 왕이 압살롬에게 풍성한 선물을 주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앞뒤 무맥으로 보아 이는 단지 압살롬
이 마련한 축제가 성공적으로 마쳐지기를 기원한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Keil, Lange).

26 압살롬이 가로되 그렇게 아니하시려거든 청컨대 내 형 암논으로 우리와 함께 가게
하옵소서 왕이 저에게 이르되 그가 너와 함께 갈 것이 무엇이냐 하되

ㅇ그가 너와 함께 갈 것이 무엇이냐 - 이는 압살롬의 요청에 일말의 불안감을 느낀
다윗이 완곡하게 반대 의사를 표하고 있는 말임에 분명하다. 즉, 다윗은 암논에 대한
압살롬의 미운 감정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암논을 보내 달라는 압살롬의 요청을 받고
선 내심 불안해 한 것이다(The Interpreter's Bible, Lange).

27 압살롬이 간청하매 왕이 암논과 왕의 모든 아들을 저와 함께 보내니라

ㅇ압살롬이 간청하매...보내니라 - 이처럼 압살롬의 요청에 대해 다윗이 결국 승락하
게 된 까닭에 대해서는 학자들마다 다음과 같이 서로 견해를 달리하고 있다. (1) 다
윗이 암논의 추행 사건 이후 2년 동안 압살롬으로부터 자기 누이의 원수를 갚고자 하
는 어떠한 조짐도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Keil, Pulpit Commentary).
(2) 암논은 잔치에 참석할 수 없었던 다윗 왕을 대신할 수 있는 맏아들이었기 때문에
다윗이 압살롬의 요구를 더 이상 거절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는 주장이다(Lange). (3)
미리 모든 왕자들을 초청한 압살롬의 행위(23절)가 다윗의 의혹을 다소 희석시켰기 때
문이라는 주장이다(Pulpit Commentary). 물론 이상의 모든 사실들이 다윗의 행위에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보다 결정적인 이유는 아마도 직감적
으로 불안을 느꼈으면서도(26절) 압살롬의 요청을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한 다윗 자신
의 우유 부단한 성격이 크게 작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28 압살롬이 이미 그 사환들에게 분부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를 자세히 보다가 내가 너희에게 암논을 치라 하거든 저를 죽이라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에게 명한 것이 아니냐 너희는 담대히 용맹을 내라 한지라

ㅇ사환 - 이에 해당하는 '나아르'는 대개 '나이 어린 심부름꾼'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17절에 언급된 '부리는 종'과 같은 '청년층의 하인'을 의미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할 한다. 왜냐하면 암논을 쳐죽이라는 명령을 수행할 정도라면
(29절) 이미 어린 아이는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ㅇ암논의 마음이 술로 즐거워할 때 - 70인역(LXX)에 보면, 27절끝에 "압살롬이 왕의
주연(酒宴)을 따라 주연을 베풀었다"라는 기록이 부가되어 있다. 만일 우리가 이 해
설적인 구절을 원문의 일부로 인정할 수 있다면(Thenius, Wellhausen), 압살롬은 암논
을 일단 술에 취하게 만들기 위하여 왕에게나 대접하는 것과 같은 진수 성찬을 준비하
였음을 알 수 있다. 즉, 이에 따르면, 압살롬은 자신이 암논을 차기(次期) 왕위 계승
자로 여기는 것처럼 보이기 위하여 암논에게 왕의 주연을 베풀었고, 그 결과 암논으로
하여금 안심하고 술에 취하도록 계획했었음을 알 수 있다.

29 압살롬의 사환들이 그 분부대로 암논에게 행하매 왕의 모든 아들이 일어나 각기
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

ㅇ암논에게 행하매 - 암논의 죽음은 압살롬의 주도 면밀한 음모하에 이루어진 것이기
는 하지만923-28절) 아울러 암논의 부주의함에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암
논은 압살롬의 주살(誅殺) 음모를 간파하지 못하고술에 취함으로 스스로 죽음을 재촉
한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술을 즐기는 미련한 자의 결과는 패망이라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게 된다(잠 19:3 ; 20:1 ; 23:1-3). 한편 이처럼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한 행위
는 비록 다말의 수욕(受辱)에 대한 복수이기는 하나 이 역시 온당치 못했다. 왜냐하
면 암논의 범죄는 개인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율법적인 차원에서 징계되어야 했는데
도(신 32:35) 압살롬이 자신의 분노한 감정에 따라 암논을 살해했기 때문이다. 이처
럼 인간은 그 행동의 준거를 하나님의 말씀에 두지 않는 한 항상 오류를 범할 수 밖에
없다. 즉 아무리 인간적인 측면에서 동정을 얻고 합리화 시킬 수 잇는 일이라 하더라
도 하나님의 뜻에 배치된 행동은 또 다른 죄악을 낳고 마는 것이다.
ㅇ노새를 타고 도망하니라 - 히브리 사회에서 노새(mule)가 최초로 사용된 사건이다.
노새는 수나귀와 암말 사이에서 난 잡종이기 때문에 이종 교배(異種交配)를 금지한 율
법에 따라(레 19:19) 히브리인들은 노새를 사육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윗 왕 때에
외국과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노새가 귀족들의 운송용으로 수입되었다(18:9 ; 왕상
18:5). 기록에 따르면 압살롬과 다윗 왕, 그리고 솔로몬도 노새를 자주 타고 다녔음
이 분명하다(18:9 ; 왕상 1:33 ; 10:25), 후에 노새는 전쟁용이나 짐을 나르는데도 널
리 사용되었다(왕하 5:17 ; 대상 12:40).

30 저희가 길에 있을 때에 압살롬이 왕의 모든 아들을 죽이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다는 소문이 다윗에게 이르매

ㅇ왕의 모든 아들을 죽이고...소문이 다윗에게 이르매 - 여기서 '소문'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무아'는 소문, 풍문(삼상 2:24 ; 왕상 2:28 ; 10:7 ; 왕하
19:7) 뿐 아니라 기별, 통보(4:4 ; 잠 15:30 ; 25:25 ; 렘 49:14 ; 옵 1:1)란 뜻도 지
니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는 '소문'보다 '기별' 또는 '통보'가 더 옳은 듯하다. 왜
냐하면 본절에 기록된 상황은 매우 급박한 상황으로서 그 사실이 항간에 소문으로 퍼
질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절에서 사실과는 매우 다른 보고가
다윗 왕에게 전달된 것은 그 당시 현장에서 도망쳐 나온 자들이 절박한 상황속에서 미
처 진상을 파악하지 못한 채 모든 왕자들이 죽임 당했으리라는 지레 짐작하에 성급하
게 보고하였기 때문일 것이다(Lange).

31 왕이 곧 일어나서 그 옷을 찢고 땅에 엎드러지고 그 신복들도 다 옷을 찢고 모셔
선지라

ㅇ그 옷을 찢고 - 이미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이처럼 옷을 찢는 행위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슬픔을 나타내던 히브리인들의 한 관습이다. 19절 주석 참조.
ㅇ신복들도...모셔 선지라 - 여기서 '모셔 서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나차브'
는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 말은 다윗의 신하들이 자신들
의 옷을 찢은 후 다윗 앞에서 부동 자세(不動姿勢)로 서 있었음을 보여 준다.

32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답이 고하여 가로되 내 주여 소년 왕자들이 다
죽임을 당한줄로 생각지 마옵소서 오직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저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욕되게 한 날부터 압살롬이 결심한 것이니이다

ㅇ오직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 요나답의 정확한 상황 판단이다. 이처럼 요나답이 사
건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그는 그 동안 압살롬의 동정을 가까이서
살펴 왔음이 틀림없다. 즉, 그는 자신의 묘략을 베풀어 주어 일어났던 암논의 말에
다말에 대한 추행 사건(1-14절)이 그 오라비 압살롬의 분노를 일으키기에 충분한 것이
었기에 지난 2년 동안 압살롬의 동정을 추적해 왔을 것이다.
ㅇ압살롬이 결심한 것이니이다 - 이를 직역하면, "압살롬의 입에(으로) 그 일이 결심
되어 있었나이다"이다. 물론 여기서 '그 일'이란 암논을 살해할 음모를 의미한다
(23-29절). 그런데 본절을 좀더 정확히 해석하려는 시도가 학자들간에 잇었으니 저들
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견해를 피력하고 있다. (1) 혹자는 본절을 압살롬이 요나답에
게 이미 자신의 속으로 결심한 사실을 입으로 발설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석하
였다(Keil0. 그러나 우리는 압살롬이 생사를 다투는 중대한 일을 요나답에게 말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기 어렵다(Eerdmann). (2) 갈대아 역(Chaldean)은 본절의 원문에 나
오는 '입'을 '마음'으로 고쳐 해석 하였다. 그렇다면 본절의 의미는 '압살롬의 마음
에 그 일이 결심되어 있었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은 원문에 치중하였다
기보다는 해설에 치중한 오역(誤譯)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에 지지할 수 없다. (3) '암
논을 죽이려는 그의 결심이 굳게 닫친 그의 입술에 잘 나타나 있었다'는 뜻이라고 해
석하는 입장이 있다(Lange). 이 해석은 요나답이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묘략가
인데다 그 동안 압살롬의 동정을 면밀히 추적해 왔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비교적
타당한 것이라고 보여진다.

33 그러하온즉 내 주 왕이여 왕자들이 다 죽은줄로 생각하여 괘념하지 마옵소서
암논만 죽었으리이다

ㅇ괘념하지 마옵소서 - 여기서 '괘념하다'에 해당하는 '레브 숨'(* )은
어떤 일에 마음의 부담을 가지고 계속해서 집착하는 것을 가리킨다.

34 이에 압살롬은 도망하니라 파수하는 소년이 눈을 들어 보니 뒷산 언덕길로 여러
사람이 오더라

ㅇ이에 압살롬은 도망하니라 - 이는 29절의 상황과 이어지는 구절이다. 즉, 본서 저
자는 29절에서 압살롬의 암논 살해 사건을 이야기하다가 30-33절에서는 장면을 바꾸어
다윗궁을 상황을 이야기하였으며 다시금 본절에서는 29절 사건 이후의 상황을 보여주
고 잇는 것이다. 한편 본서 기자는 본장에서 '압살롬이 도망하니라'는 말을 반복 기
술함으로써(37, 38절) 압살롬이 친족을 고살(故殺)한 큰 범죄자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 좁은 팔레스틴 땅에서 압살롬의 도망은 실질적으로 의미가 없다. 왜냐하
면 당시 다윗의 권세로 보아 그가 잡고자만 한다면 압살롬을 체포하는 것은 시간 문제
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다윗이 그리 하지 않은 것은 이미 앞에서 언급한 요인들 때
문이었을 것이다. 27절 주석 참조.
ㅇ뒷산 언덕길 - 히브리인들은 동쪽 방향을 앞쪽이라고 불렀고 서쪽 방향을 뒤쪽이라
불렀다(출 3:1 ; 사 9:12). 따라서 이 말은 예루살렘 서쪽에 있는 산길을 의미한다
(Keil, Lange, Pulpit Commentary).

35 요나답이 왕께 고하되 왕자들이 오나이다 종의 말한대로 되었나이다

ㅇ종의 말한 대로 되었나이다 - 요나답의 간사힘이 그대로 드러나는 구절이다. 즉
그는 이미 압살롬이 다말의 일로 인해 암논을 살해하리라는 것을 충분히 예측하였었
다. 32절 주석 참조. 그렇다면 그는 미리 이 같은 사실을 다윗에게 귀띔하여 사전에
비극을 막도록 해야 마땅했다. 그런데도 이를 외면하고서는 요나답은 마치 다윗을 위
로라도 하듯 자신의 추측(32절)이 맞은 것을 자랑하고 있는 것이다(Matthew Henery's
Commentary, Vol. II, p. 512).

36 말을 마치자 왕자들이 이르러 대성통곡하니 왕과 그 모든 신복도 심히 통곡하니라

ㅇ즉 31절에선 자신의 모든 아들들이 죽임당하였다는 보고를 접하고 나서 혼절(昏絶)하
였지만 이제 암논만이 죽을 것을 알고서도 대성 통곡한 까닭은 자신의 죄와 잘못이 기
억났기 때문이다. 즉 다윗은 압살롬이 다말 사건으로 인해 암논을 살해한 사실을 알
고선 과거 자신이 밧세바를 취하기 위해 우리아를 살해했던 죄를 기억했을 것이다(11
장). 그리고 자신이 암논을 엄히 징계하지 못한 결과(21절) 결국 형제간의 살육이란
비극을 초래한 데 대하여 심한 자괴감(自壞感)을 느꼈을 것이다. 따라서 다윗은 스스
로에 대한 자책감, 죽임당한 암논에 대한 안타까움, 압살롬에 대한 염려 등이 어우러
져 심히 통곡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Pulpit commentary).

37 압살롬은 도망하여 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에게로 갔고 다윗은 날마다 그
아들을 인하여 슬퍼하니라

ㅇ그술 왕 암미훌의 아들 달매 - 그술(Geshur)은 아람 소국들 중 하나로서 이스라엘
바로 북쪽에 인접해 있던 나라이다. 즉 '그술'이란 말의 뜻은 '다리의 땅'(bridge
land)으로서 이는 헤르몬 산에서 갈릴리 호수까지 북부 요단강 양편으로 다리처럼 길
게 뻗어있는 지역을 가리킨다. 한편, 다윗은 당시 그술 왕 달매(Talmai0의 딸 마아가
와 정략적인 결혼을 하여 그술과의 우호 관계를 맺고 있었는데 마아가에게서 태어난
자식이 바로 압살롬이다. 따라서 그술 왕 달매는 압살롬의 외할아버지가 된다. 3:3
주석 참조.
ㅇ날마다 그 아들을...슬퍼하니라 - 카일(Keil)은 본절을 가리켜 다윗이 죽은 암논
(28, 29절)을 생각하고 슬퍼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 39절에서 다윗은 이미 죽은 암논
을 잊어버린 지는 오래이고 다만 도주한 압살롬만을 생각한 것으로 분명히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서 다윗 왕이 슬퍼했던 아들은 암논이 아니라 압살롬인
것이다.

38 압살롬이 도망하여 그술로 가서 거한지 삼년이라

ㅇ삼 년이라 - 다윗이 압살롬의 죄악을 잊어버리고 오히려 그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애끓기에 충분한 만큼의 세월이 지났음을 시사해 주는 구절이다. 39절 주석 참조.

39 다윗왕의 마음이 압살롬에게 향하여 간절하니 암논은 이미 죽었으므로 왕이 위로를
받았음이더라

ㅇ다윗 왕의 마음이...간절하니 - 본절은 원문을 의역(意譯)한 것이다. 이에해당하
는 히브리 원문, '테칼 다윗 하멜렉 라체아트 엘 압살롬'을 직역하면,
'다윗 왕(의마음)이 압살롬에게 가기
를 그쳤더라'이다. 그런데 여기서 '...에게 간다'는 표현, '라체 아트 엘...'
은 '...에게 가서 그를 벌하다'는 뜻을 가진다(신 28:7). 따라서 본절
을 보다 정확히 해석하자면 '다윗 왕이 마음속으로 압살롬을 법에 따라 처벌할 의지를
포기했다'는 말이 된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압살롬에 대한 다윗 왕의 분노는 시간이
지나자 점차 누그러지고 오히려 압살롬에 대한 연민의 정이 되살아 났음을 알 수 잇
다. "암논은 이미 죽었으므로 왕이 위로를 받았음이더라"는 하반절은 바로 이와 같은
사실을 보다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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