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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사무엘하

[스크랩] 사무엘하 (8 : 1~18)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5:01
사무엘하 (8 : 1~18)

1 이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항복 받고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ㅇ이후에 - 우리는 이 말을 보는 순간 본장의 다윗의 정복 사업(征服事業)이 7장에
언급된 다윗 언약 이후에 일어난 일인 줄로 착각하기 쉽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경
우에는 다윗이 모든 대적을 파한 후 평안히 궁에 거했을 때 다윗 언약을 받았다고 한
7:1에 혼란이 따르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여기서 '이후에'란 용어에 해당하는 히브리
어 '와예히 아하레 켄'이 반드시 시간적인 전후 관계를
의미하는 말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실 이 용어는 서로 다른 두 내용을 서로 연결시
켜 주는 단순 접속어로 많이 사용되었다(2:1;10:1;13:1;15:1;삿 16:4;대상 18:1;19:1;
대하 20:1). 그러므로 이 용어는 여기서 내용 전개가 서로 다른 두 기사(記事)를 연결
시키기 위해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실 다윗이 다윗 언약을 받은 때는 본장에서
와 같은 정복 사업이 성공적으로 끝난 다윗 통치 말기의 일임을 이미 앞에서 살펴본
바이다. 7:1 주석참조. 한편, 혹자들은 본장에 기록된 다윗의 정복 사업은 5장에 이
미 언급한 바 있는 예루살렘 정복 사건 이후의 일이라고 주장한다(Payne, J. W.
Wevers).
ㅇ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 여기에서 '메덱암마'는 어느 한 지명(地名)을 의미하지
않고, 블레셋 사람들에게 속한 여러 성읍들을 나타내는 말일 것이다. 왜냐하면 '메덱
암마'(Metheg-ammah)란 '어머니의 굴레'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기 때문이다. 즉 (1)고
대근동 지방에서는 한 나라의 수도를 가리켜 '어머니'라고 불렀다(Keil, Lange,
Gesenius). 또한 성경에서도 한 나라의 수도의 통치를 받는 주변 성읍들을 그 수도의
'딸들'이라고 기록하였다(수 15:45, 47). 이렇게 볼 때 '어머니'란 용어가 의미하는
바는 블레셋 사람들의 다섯 성읍 중 주도권을 장악했던 '가드'(Gath)를 가리킴에 틀림
없다(삼상 27:2, 5;29:2-4, 6, 7). (2)그리고 여기서 '굴레'라는 말은 누구에겐가 종
속(從屬)된 상태를 의미한다(Gesenius). 따라서 이 말은 가드에 종속된 블레셋의 네
성읍들(가사, 아스돗, 아스글론, 에그론, 수 13:3)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Wycliffe) 이상과 같은 사실에 의거할 때 결론적으로 다윗이 메덱암마를 빼앗았다는
말은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연맹 도시들, 즉 수도인 가드와 나머지 네 성읍 모두를
빼앗았다는 의미라고 하겠다(대상 18:1). 따라서 이날의 다윗의 승리는 블레셋에 대한
완전한 승리였음을 알 수 있다.

2 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저희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ㅇ모압 - 사해 동쪽에 위치했던 모압(Moab)은 이스라엘과는 비교적 좋은 우호 관
계를 유지하고 있었으며(신 2:9;룻 1:1) 다윗이 사울 왕에게 쫓겨 다녔을 때 그에
게 큰친절을 베푼 나라이기도 하다(삼상 22:3, 4). 그런데 다윗이 이러한 나라를 정
복하고 잔혹한 방법으로 다스린 것을 보면, 아마도 그 이후 다윗을 알지 못하는 자가
모압의 새로운 왕으로 등극, 다윗과 이스라엘을 크게 위협하였을 것이라는 추측을 가
능케 한다(Lange, Leon Wood). 아무튼 이처럼 다윗이 모압을 정복하고 그들을 조공국
으로 삼은 것은 발람의 예언(민 24:17)이 성취된 사건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ㅇ줄로 재어...살리니 - 여기서 다윗이 죽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장정(壯丁)을
가리킨다. 그리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주로 소년과 노약자를 가리킨다. 따라서 다
윗은 싸움에 임할 수 없는 자들은 살려 주고 대신 싸움에 임할 수 있는 자들만을 죽임
으로써 모압 사람들의 씨를 말리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세력을 약화시켰음을 알 수 있
다. 이와 관련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다윗이 모압 사람 2/3는 죽이고 1/3은 살려 주었
을 것으로 추측한다(Keil & Delitzsch, Matthew Henry). 한편 유대 전승(Midrash)은
이러한 다윗의 행위를 가리켜 정당한 복수였다고 주장한다. 즉 과거 다윗이 도피 생
활 중에 있을 때 자기 부모를 모압 왕에게 의탁한 적이 있는데(삼상 22:3, 4) 그때
저들이 다윗의 부모를 살해하였으므로 이제 다윗이 그 원한을 갚은 것이라 한다(Keil,
Pulpit Commentary, 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 485). 그러나 이는 성
경적 근거가 없는 전승에 불과하므로 그 사실성 여부를 확인할 길이 없다.

3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저를 쳐서

ㅇ소바 - 소바(Zobah)는 다메섹 북쪽과 레바논 산지의 동쪽에 위치했던 아람 소국
(小國)이다. 다윗의 통일 이스라엘 왕국 당시 아람인들은 강력한 통일 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여러 개의 소국가로 분립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중 가장 강력했던 소국이 바
로 소바로서 그 영향력은 유브라데 강 유역에까지 뻗쳐 있었다. 즉 당시 소바는 요단
동편과 수리아의 통치권을 놓고 이스라엘과 다툴 정도로 최강적이었다. 때문에 소바는
사울, 다윗, 솔로몬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과 자주 접전하였다(10:16-18;삼상 14:47;
왕상 11:23, 24;대하 8:3).
ㅇ하닷에셀 - 소바 왕 하닷에셀(Hadadezer)의 이름의 뜻은 '도움은 하닷이시다'이다.
그런데 '하닷'(Hadad)은 당시 수리아의 태양신의 이름이었으니 우리는 그가 이방 신을
숭배하던 자였음을 알 수 있다.
ㅇ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 본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분명치 않다. 때문에
학자들은 저마다 다른 의견을 내세우고 있는데 곧 다음과 같다. (1)삼상 14:47에 의하
면, 소바 왕이 사울 왕과 싸워 패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그때 잃은 지역을 회
복하기 위하여 그가 다윗에게 도전했다는 견해이다(Bunsen, Ewald, Lange). 그러나 이
주장은 옳지 않다. 왜냐하면 사울 왕의 말기(末期)에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극도로 쇠
약해져 블레셋군에게 위협 당하는 입장이었는데(삼상 28-31장), 소바 왕이 그때를 놓
치고 다윗 왕 때에 비로소 그 잃은 지역을 회복하려 했다는 것은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기 때문이다. (2)본절의 주어를 하닷에셀이 아닌 다윗으로 보는 견해이다(Keil &
Delitzsch). 즉, 다윗은 과거 하닷에셀에게 빼앗겼던 유브라데 강 지역을 회복하기 위
해 나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견해 또한 다윗이 이전에 유브라데 강 지역을 한번
이라도 장악했던 사실이 없었던 점으로 미루어 보아 옳지 않다. (3) 자기의 동맹군이
다윗과의 전투에서 패배하자 수치를 느낀 하닷에셀이 제 2차로 군사를 모집하여 다윗
에게 도전한 것이라는 견해이다(Keil, Leon Wood). 그런데 이 견해는 같은 사건을
보다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는 10장의 기록과 부합된다. 즉 거기에 보면, 암몬 자손
이 다윗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아람 소국들과 동맹한 사실이 나타난다. 그런데
그 동맹군은 다윗 앞에서 패주하였고 그 동맹군 중 가장 강력한 나라인 소바 왕 하닷
에셀은 수치를 느끼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군대를 재정비하여 다윗에게 도전하러 나
아왔던 것이다(10:15-17).

4 그 마병 일천 칠백과 보병 이만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승의 말만 남기고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ㅇ마병 일천 칠백 - 평행 구절인 대상 18:4에는 '병거 일천 승과 기병 칠천'(a
thousand chariots and seven thousand horsemen)으로 나와 있다. 따라서 70인역(LXX)
도 본절을 대상 18:4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추측컨대 본절은 혼동하기 쉬은 히브리어
철자를 착각한 필사자의 오기(誤記)인 듯하다. 즉 여기서 '기병'(레켑)이란
말이 탈락된 탓에 '칠천'을 가리키는 숫자가 '칠백'을 가리키는 숫자와 착
각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Keil & Delitzsch, Lange, Matthew Henry, Pulpit
Commentary).
ㅇ병거의 말은...힘줄을 끊었더니 - 다윗이 이같이 한 이유는 산악 지대가 많은 팔레
스틴의 지형상 병거가 적합치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보다 궁극적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말씀(신 17:16)을 존중하였기 때문이다. 즉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스
라엘의 왕된 자는 말을 많이 두지 말라'고 명하셨는데 이에 따라 다윗은 말을 의지하
기 보다는 하나님을 보다 더욱 의지하고 있는 것이다(Matthew Henry's Commentary,
Vol. II, p.485).

5 다메섹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을 죽이고

ㅇ다메섹 아람 사람들이...도우러 온지라 - 다메섹(Damascus)은 소바(Zobah)의 바로
아래(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도시로 아람의 수도이다. 아마도 이곳의 아람인들은 처
음에는 동맹군에 가담하지 않고 있다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패주병들을 끈질기게 쫓아
그들의 지역에까지 이르게 되자 위기감을 느끼고 소바 왕을 지원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들은 이스라엘 역사상 여간 성가신 존재가 아니었는데 솔로몬 당시에는 다메
섹 왕 르손이 이스라엘을 침입했었다(왕상 11:23-25). 그리고 분열 왕국 시대에는 벤
하닷이 침입해 왔으며(왕상 15:20) 그 후에도 끊임없는 침입이 있었다(왕상 20:1-12;
왕하 8:25-29;10:32, 33;12:7, 18;16:5).

6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ㅇ수비대 - 이에 해당하는 '네치브'는 '나차브', 즉 '공고
히 하다', '배치하다'는 말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는 내정 간섭을 위한 총독부나
통치 기관이 아니라 군사적인 도전을 막기 위한 군사 기지(軍事基地)를 의미한다(삼상
10:5;13:3).
ㅇ아람 사람이...조공을 바치니라 - 전쟁에서 패배한 나라가 승리한 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것은 고대 근동지방에서 널리 성행했던 계약 관계였다. 즉, 그당시 국가 관계
를 보여 주는 헷족속(Hittite)의 계약 문서를 보면 속국의 왕(vassal king)은 종주국
의 왕(suzerain king)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조공을 바침으로써 종주국의 불가침 조약
(不可侵條約)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렇게 하여 속국의 왕은 여전히 자주권을 가지
고 자기 나라를 통치할 수 있었는데 대신 그 계약을 반드시 이행하여야만 했다. 한편
이상에서처럼 다윗이 유브라데 강 유역에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던 아람족을 정복하며
다메섹에 수비대를 두며 또한 그들로부터 조공을 받게 된 것은 일찍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언약의 성취가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스
라엘의 지경(地境)이 유브라데 강 유역에까지 이를 것이라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창
15:18).

7 다윗이 하닷에셀의 신복들의 가진 금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ㅇ하닷에셀의...금방패 - 여기서 '방패'에 해당하는 '쉘레트'는 성경에서
대개 '방패'(Shield)로 번역되어 있다(왕하 11:10;대상 18:7;대하 23:9;아 4:4;렘
51:11;겔 27:11). 그러나 '쉘레트'는 비단 방패 뿐아니라 각종 무기류나 기타 여러 도
구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따라서 수리아역(the Syriac Peshitta)은 본절의 '금
방패'를 '금화살통'으로, 공동 번역은 '금장신구'로 각기 번역하고 있다. 아마도 다윗
은 하닷에셀을 격파한 후 (3-6절) 그와 그 신하들의 각종 무기류 및 장신구 등을 전리
품(戰利品)으로 획득하였을 것이다.

8 또 하닷에셀의 고을 베다와 베로대에서 매우 많은 놋을 빼앗으니라

ㅇ베다와 베로대 - 이들 지명에 대해 확실히 알려진 것은 없다. 그런데 같은 내용의
기록인 대상 18:8에는 '베다'(Betah)가 '디브핫'(Tibhath)으로, '베로대'(Berothai)가
'군'(Chun)으로 표기되어 있다. 추측컨대 이곳은 다메섹 부근에 위치했던 성읍들인 것
같다. 아무튼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다윗의 군대가 이스라엘 지경에서 상당히 먼 지역
인 아람 소바의 주요 도시들까지 장악했다는 사실이다. 1-14절 지도 참조.
ㅇ많은 놋을 빼앗으니라 - 대상 18:8에서는 이 많은 놋이 솔로몬 때에 성전 건축을
위해 사용되었음이 밝혀져 있다. 이러한 사실로 보아 다윗은 성전 건축을 위해 많은
놋을 빼앗아온 것이 틀림없다.

9 하맛왕 도이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쳐서 파하였다 함을 듣고

ㅇ하맛 - 하맛(Hamath)은 아람 소바 바로 윗쪽(북쪽)에 자리잡고 있었던 아람 소국이
다. 즉 이 나라는 오론테스 강(the river Orontes) 유역에 건설된 도시 국가였으며 아
람 소바와 더불어 유브라데 강으로부터 레바논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
던 나라이다. 따라서 선지자 아모스는 이를 '큰 하맛'이라고 불렀다(암 6:2).
ㅇ도이 - 이름의 뜻은 '방황하다'이다. 일명 '도우'(Tou)라고도 하는데 이는 '웃는
것'이란 뜻이다(대상 18:9, 10).

10 그 아들 요람을 보내어 다윗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이
도이로 더불어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파함이라 요람이 은 그릇과
금 그릇과 놋 그릇을 가지고 온지라

ㅇ그 아들 요람을 보내어 - 대상 18:10에는 요람(Joram)이 하도람(Hadoram)으로 나와
있다. 그런데 이와 같이 한 사람의 이름이 둘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하나는 히브리식
발음이며, 또 하나는 아람식 발음이기 때문이다. 즉, 하도람에서 '하도르'(Hador)는
수리아의 신(神)의 이름으로서 이는 아람식 발음이며, 요람은 '여호와는 높으시다'는
뜻으로 히브리식 발음인 것이다(Keil, Lange). 한편, 도이가 한 나라의 왕자를 사절
로 보냈다는 사실은 그가 다윗 왕에게 최고의 경의를 표한 것을 의미한다.
ㅇ축복하게 하니 - 여기서 '축복하다'에 해당하는 '바라크'는 '송축하다',
'축복하다', '축하하다', '찬양하다'는 등의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는 말이다. 그러나
도이가 다윗의 승전(勝戰)을 축하하기 위해 사절단을 보낸 점에 의거할 때 '축하하다'
로 번역함이 가장 무난하다(공동번역).
ㅇ하닷에셀이 도이로 더불어 전쟁이 있던터에 - 소바와 하맛은 아람 소국들 중 자웅
(雌雄)을 겨루는 강력한 국가들이었다. 3, 9절 주석참조. 특히 이 두 나라는 인접(隣
接)하여 있었기 때문에 잦은 전투를 벌였을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소바에 대한 다윗
의 승리(3-8절)는 하맛 왕 도이에게는 큰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다윗
에게 자기 아들을 보내어 감사를 표하고 또한 양국간에 화친(和親)을 도모하고자 한
것이다.

11 다윗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저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ㅇ여호와께 드리되 - 다윗이 모든 정복 전쟁에서 승리할 뿐 아니라 도이로부터 경하
(慶賀)까지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하나님께서 다윗의 힘이 되어 주셨기 때
문이었다(6, 14절). 즉 다윗의 전쟁은 여호와의 거룩한 전쟁이었으며 그 가운데서 다
윗은 오직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므로 주시는 승리를 거둘 뿐이었다. 수 5:13-15
강해, '성전'(聖戰) 참조. 따라서 이제 다윗은 전쟁에서 얻은 모든 전리품을 하나님
의 것으로 인정하고 그것을 하나님께 바친 것이다. 한편 이 모든 헌물들은 훗날 솔로
몬에 의해 성전 건축에 사용되었다(왕상 6장;7:13-51).

12 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

ㅇ암몬 자손 -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의 후예들이다(창 19:38). 요단동편, 모압북쪽의
랍바(Rabbah)를 중심한 일대에 주로 거주하였는데 호전적(好戰的)인 족속으로 이름높
다(사 15, 16장;렘 48장). 특히 이들은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쳐 섬기는 몰록(Moloch)
우상 숭배에 빠져 있는 등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하게 생활하였다(왕상 11:7). 그런데
솔로몬의 처 나아마(Naamah)가 바로 이 암몬 여인이다(왕상 14:21, 31).
ㅇ아말렉 - 야곱의 형인 에서의 후손들이다(창 36:15, 16). 팔레스틴 남방의 광야지
대에서 시내 반도에까지 이르는 지역에 거주하였는데 일찍부터 다윗과의 충돌이 있었
다(1:1;삼상 30장).

13 다윗이 염곡에서 에돔 사람 일만 팔천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예를 얻으니라

ㅇ염곡 - 즉 '소금 계곡'(the valley of salt)이란 뜻이다. 그런데 이곳의 정확한 위
치는 분명치 않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논란이 있다. (1)혹자는 이곳이
브엘세바 동쪽의 '와디 엘 밀'(Wady el-Milh)이라고 주장한다. (2)그러나 또 다른 사
람은 이보다 더 신빙성있는 곳으로 사해 남쪽의 '에스 셉카'(es-Sebkha)를 제시하고
있다. 이곳은 사해 남쪽 아라바 광야의 소금 지역이다. 이 중 (1)번의 견해보다 (2)번
의 견해가 더 타당한 듯하다. 그 까닭은 다윗이 그의 전성 시기에 이스라엘 지경 내에
있는 '와디 엘 밀' 보다 이스라엘 지경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지역에서 에돔을 정
벌했을 가능성이 더 높기 때문이다(Leon Wood).
ㅇ명예를 얻으니라 - 다윗의 훌륭한 통치력이 그의 군사적인 승리로 말미암아 더욱
인정을 받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혹자는 다윗이 정복 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른 후 이를
기념하여 승전 기념비를 세운 것을 의미한다고도 주장하는데 온당치 못한 견해이다
(Lange). 왜냐하면 승전의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기에 주력했던 다윗(11절)이 스스로를
높여 그 같은 기념비를 세웠다는 것이 사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14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ㅇ수비대 - 이는 속국의 군사적인 반란을 진압하기 위한 군사적 요새, 또는 기지를
가리킨다. 6절 주석 참조.
ㅇ다윗의 종이 되니라 - 이는 에돔이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는 속국이 되었음을 의
미한다(6절). 그런데 이 같은 사건은 장차 에돔이 이스라엘을 섬기게 되리라는 이삭
(창 27:39)과 발람의 예언(민 24:18)이 성취된 것이라는 의의를 지닌다. 여기서도 우
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결단코 변개(變改)됨이 없이 때가 되면 온전히 성취됨을 볼 수
있다(삼상 15:29).

15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공과 의를 행할쌔

ㅇ공과 의를 행할 새 - '공'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는 공정한
재판을 의미한다. 또한 '의'에 해당하는 '체다카'는 하나님의 율법에
일치된 행위를 의미한다. 따라서 이 두 용어는 다윗이 율법에 따라 공정한 재판을 백
성들에게 베푼 것을 의미함을 알 수 있다. 즉 다윗은 신정 왕국(theocracy)의 왕답게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과 공의에 입각해 이스라엘을 다스린 것이다. 이는 곧 장차
메시야로 말미암아 이룩될 그의 나라와 의로운 통치를 예표해 준다(시 45:6, 7).

16 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대장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ㅇ사관 -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즈킬'은 '기억하게 하는 자'란
뜻이다. 아마도 이는 왕의 명령은 물론 기타 나라 안에서 일어나는 중요 사건들을 기
록하여 문서화하고 이를 관리하는 직무자를 가리키는 듯하다(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II, p.365). 공동 번역은 이를 '공보 대신'으로 번역하고 있다.

17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ㅇ사독과...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 다윗 당시에는 대제사장이 두 명 있었다. 곧
기브온의 제사장인 사독(Zadok)과(대상 16:39) 예루살렘의 제사장인 아히멜렉
(Ahimelech)이다. 이 중 사독은 아론의 셋째 아들 엘르아살의 자손이었으며 아히멜렉
은 아론의 넷째 아들 이다말의 자손이었다(대상 24:3). 한편, 본절이 '아비아달의 아
들 아히멜렉'은 삼상 22:20의 내용과 배치되는 듯하다. 왜냐하면 거기에 본절과는 달
리 아비아달이 아히멜렉의 아들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혹자들은 본절의 기록
을 필사자(筆寫者)의 오기(誤記)라고 주장한다(Movers, Ewald). 그러나 우리는 두 상
이한 내용의 기록을 조화시키기 위해 이들의 주장을 반드시 따를 필요는 없다. 왜냐하
면 우리는 그 같은 주장이 아니더라도 이 두 기록을 조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아비아달의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이 모두 아히멜렉이었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
을 것이다(Keil, Lange, Oehler, Bertheau). 다시 말해서 삼상 22:20에 나오는 아히멜
렉과 본절의 아히멜렉은 할아버지와 손자간으로서 동명 이인(同名異人)인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은 삼상 22:20에 나오는 아히멜렉의 아버지가 아히둡(Ahitub)으로 밝혀져 있
는 점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삼상 22:9, 20).
ㅇ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 '스라야'(Seraiah)는 성경에서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즉 20:25에서는 '스와'(Sheva)로, 왕상 4:3에서는 '시사'(Shisha)로 그리고 대
상 18:16에서는 '사워사'(Shavsha)로 각기 불리우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이 같은 현
상은 어느 한 단어의 축약형이거나 아니면 각기 다른 필사자에 따른 기록상의 차이일
것이다(Keil & Delitzsch, Lange, Pulpit Commentary). 한편 여기서 '서기관'에 해당
하는 '사페르'는 '기록하다', '열거하다', '말하다'는 뜻의 '사파르'
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따라서 이는 혹자가 추정하듯 국무장관(Pulpit Commentary)이
나 군사 모집자(Oehler)가 아니라 각 행정 부서간의 서신 연락 사무를 담당하던 비서
관을 가리키는 듯하다(공동번역, Keil & Delitzsch, Lange).

18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이 되니라

ㅇ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 -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학자들간에서는 상반된 견해가 되고 있을 뿐인데 곧 다음과 같다. (1)이들을 블
레셋의 두 족속으로 보는 견해이다(Ewald, Movers). 이 견해가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
은 성경 몇 군데에서 블레셋 남서쪽에 위치한 블레셋 지파를 '그렛'(Cherethites)이라
불렀기 때문이다(삼상 30:14;스 2:5;겔 25:16). 그런데 23:23에 의하면 브나야
(Benaiah)는 다윗의 시위대 장관이었다. 그렇다면 결국 브나야는 블레셋 두 족속으로
다윗의 시위대를 조직하고 관할했다는 말이 되는데 이는 지나친 모순이다. 왜냐하면
신정 국가의 왕인 다윗이 이방인 시위병들에게 들러싸였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기 때
문이다(Thenius). (2)'그렛'과 '블렛'을 다윗의 시위병을 의미하는 단어로 해석하는
견해이다(Keil, Lange). 즉, '그렛 사람'(the Cherethites)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크
레티'는 '칼로 베다', '죽이다'는 뜻의 '카라트'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이 용어는 왕의 명령에 따라 중죄인을 처벌하는 사형 집행관을 의미한
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브나야가 실제로 이런 일을 집행한 일이 있었던 사실에 의거
할 때 이 해석은 비교적 타당하다(왕상 2:25). 또한 '블렛 사람'(the Pelethites)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플레티'는 '도망하다', '경주하다'는 뜻의 '팔라트'
에서 파생된 말이다. 따라서 이 용어는 왕의 급한 엄명을 받고 먼 지방에 속
히 전달하는 보발군(步撥軍), 곧 왕명 수행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대하 30:6).
이러한 해석은 고대 사가인 요세푸스(Josephus)의 견해와도 일치한다. 아무튼 이들 그
렛 사람과 블렛 사람들은 다윗 왕조를 위해 헌신적으로 충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즉
그들은 압살롬의 반란을 피해 유랑길에 나선 다윗을 호위하였을 뿐 아니라(15:18) 아
도니야의 반역 음모에서부터 솔로몬을 보호, 그를 다윗을 잇는 차기(次期) 이스라엘
의 왕으로 옹립하였던 것이다(왕상 1:38, 39).
ㅇ대신 - 이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코헨'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개념
을 가지고 있다. (1)대부분 이 말은 제사장을 뜻한다(창 14:18;출 2:16;레 21:10;민
25:25 등). 그러나 여기에서 이 말은 제사장을 가리키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다
윗의 아들들은 유다 지파의 자손들이었으니 아론의 자손이어야 하는 제사장이 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2)이 말은 '신실한 고문'이란 의미로도 사용될 수 있다. 즉, 왕상
4:5에서 이 말은 '왕의 벗'이란 말과 병행하여 사용되었다. 아마 본절에서도 이 말은
백성들의 여론을 수렴하여 왕에게 충성되이 직고(直告)하는 자란 의미로 사용되었을
것이다(Keil, Baker Commentary, Pulpit Commentary, Lange).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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