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구약/사무엘상

[스크랩] 사무엘상 (20 : 1~42)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4:42
사무엘상 20장

1 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와서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무엇을 하였으며 내
죄악이 무엇이며 네 부친 앞에서 나의 죄가 무엇이관대 그가 내 생명을 찾느뇨

ㅇ다윗이 라마 나욧에서 도망하여 - 당시 다윗은 자신을 잡으러 라마 나욧까지 온 사
울의 사자들 및 사울이 하나님의 신의 불가항력적 임재로 말미암아 황홀경의 심리 상
태에 빠져 있을 때(19:20-24), 그 때를 호기(好機)로 삼아 그곳에서 도망할 수 있었다
(Smith, Keil).
ㅇ와서 - 이것은 다윗이 당시 사무엘의 선지학교가 있던  라마  나욧(19:18)에서부터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궁성(宮城)이 있던 기브아로 돌아온 것을 가리킨다. 다윗이 그
때 사울로부터의 위협이 상존해 있는데도 기브아로 죽이려 한다는 사실을 알리며, (2) 그
럼으로써 요나단의 도움을 요청하고, 향후의 신상 문제를 돌아온 까닭은 다음과 같다. 즉
(1) 친구 요나단에게 사울이 자신을 계속적으로 논의하기 위함이었다(4절).
ㅇ죄악...죄가 무엇이관대 - 다윗의 이 질문은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는 역설적 질문
으로서, 곧 자신은 사울에게 죽임을 당할만한 아무런 죄악도 저지르지 않았다는 뜻이
다.  한편, 여기의 '죄악'(아온)과 '죄'(핫타트)는 거의 동
일한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들인데, 다윗은 이같은 동의어의 반복을 통하여 자신의 결
백과 무죄를 강력히 호소한다. 
ㅇ내 생명을 찾느뇨 - '내 목숨을 노리는가'란 뜻이다(공동 번역). 특별히 여기서
'찾다'(바카쉬)란 불을 켜고 샅샅이 수색하는 행위를 가리킨다(출 4:19).

2 요나단이 그에게 이르되 결단코 아니라 네가 죽지 아니하리라 내 부친이 대소사를
내게 알게 아니하고는 행함이 없나니 내 부친이 어찌하여 이 일은 내게 숨기리요
그렇지 아니하니라

ㅇ부친이...알게 아니하고는 행함이 없나니 - 이 말은 (1) 왕과  왕세자로서 사울과
요나단이 특별히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암시하며, (2) 아울러 당시 요나단은
사울의 모든 정책 결정에 깊이 참여할 만큼 중요한 직위에 올라 있었음을 암시해 준
다. 한편, 그런데 요나단의 이같은 말은, 그가 이때 사울이 다윗을 몇 차례 죽이려
했던 것을 다만 일시적 광기(狂氣)의 결과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
다(Keil). 따라서 요나단은 자신의 힘으로 다윗을 그러한 부친의 광기적 살인 시도로
부터 충분히 보호해 줄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다윗을 안심시키려 했던 것이다.

3 다윗이 또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네게 은혜 받은 줄을 네 부친이 밝히 알고 스스로
이르기를 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그로 이를 알게 하지 아니하리라 함이니라
그러나 진실로 여호와의 사심과 네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이니라

ㅇ내가 네게 은혜받은 줄을 - 문자적으로는 '내가 너의 눈에서 은혜를 발견한 줄을'
이란 뜻이다. 결국 이것은 왕자 요나단이 목동 다윗을 깊이 사랑하고, 서로 깊은 우
정을 나누고 있었던 사실을 가리킨다(18:1; 19:1).
ㅇ요나단이 슬퍼할까 두려운즉 - 이것은, 사울이 다윗을 살해하려고 음모를 꾸몄을
경우 반드시 자신에게 알릴 것이라는 요나단의 호언 장담(2절)에 대한 다윗의 반론이
다.  즉 사울은, 만일 자신이 다윗을 죽이려는 것을 요나단이 알면 다윗과 두터운 우
정 관계에 있는 요나단이 (1) 다윗이 살해되는 것을 매우 슬퍼할 것이며, (2) 따라서
틀림없이 다윗에게 그 음모를 누설할 것을 예측하고, 그러한 사실만은 요나단에게 전
혀 알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ㅇ그로 이를 알게 하지 아니하리라 - 즉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는 자신의 음모를 아
들 요나단에게 알릴 경우 그에 관한 비밀이 누설될 것이 틀림없고, 그래서 결국 자신
의 계획이 실패할 것이므로 다윗을 살해하려는 음모를 꾸민다고 해도 결코 그에 관해
서는 요나단에게 말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다.
ㅇ나와 사망의 사이는 한 걸음 뿐 - 이 말은 요나단에게도 알려지지 않을 사울의 음
모에 의해, 다윗 자신의 생명이 마치 사망의 문턱에 도달한 듯한 매우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비유적으로 강조하는 말이다. 즉 생명의 위협을 시시각각 피부로 절감하
고 있다는 뜻이다.

4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 마음의 소원이 무엇이든지 내가 너를 위하여 그것을
이루리라

ㅇ네 마음의 소원...이루리라 - 본절은 요나단(2절)이 다윗의 논리(3절)에 설득되었
음을 암시해 준다. 결국 다윗은 자신이 처해있는 긴박한 상황을 논리적으로 설명함으
로써, 이처럼 친구 요나단으로부터 헌신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다.

5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내일은 월삭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것이나 나를 보내어 제 삼일 저녁까지 들에 숨게 하고

ㅇ월삭(호데쉬) - 매월 첫날을 가리킨다. 이때는 상번제 외에 속죄제를
드려 지난 한달 동안 지은 죄를 하나님께로부터 용서받고 새 마음을 다지는 등의 종교
적 행사와 아울러 민간 축제가 거행되었다(민 10:10; 28:11-1; 스 3:5; 느 10:33; 느
10:33; 사 1:13). 레위기 서론의 '히브리 절기와 축제'를 참조하라.
ㅇ내가 마당히 왕을 모시고...식사를 하여야 - 월삭(月朔) 때의 식사는 아마도 가족
이나 친척 단위로 함께 모여 공동 식사를 했던 것 같다(Smith, Fay). 따라서 다윗도
사울의 사위였으므로(18:27). 마땅히 사울의 식탁에 참석하여야 할 자격과 의무가 있
었다
ㅇ제 삼 일 저녁까지...숨게 하고 -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같이 요청한 까닭은 관례상
월삭 잔치는 이틀 동안 계속되었으므로(27, 34절). 이에 따라 '제 삼일'에야 요나단
이 자신에게 사울의 반응(30, 31, 33절)을 알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들에 - 문자
적으로는 '그 들에'이다. 이처럼 여기에 정관사 '그'가 붙었다는 사실은 여기의 '들'
이 다윗이 이미 먼저 번에 숨었던 궁전 근처의 '들'이었음을 시사해 준다(19:2, 3).

6 네 부친이 만일 나를 자세히 묻거든 그 때에 너는 말하기를 다윗이 자기 성
베들레헴으로 급히 가기를 내게 허하라 간청하였사오니 이는 온 가족을 위하여 거기서
매년제를 드릴 때가 됨이니이다 하라

7 그의 말이 좋다 하면 네 종이 평안하려니와 그가 만일 노하면 나를 해하려고 결심한
줄을 알찌니

ㅇ여기서 다윗은, 왕의 식탁에 불참한 후 요나단을 통해 사울에게 전달될 변명에 대
해 나타날 사울의 반응을 통하여, 사울이 자신을 향해 어떤 의도를 갖고 있는지를 알
고자 한다.
ㅇ온 가족을 위하여 - 여기의 '가족'(미쉬파하)은 (1) 이새가 속한
유다 지파(Smith), (2) 이새의 가족(Klein) 등으로 주장된다. 그러나 첫째, 왕정(王
政) 하에서 한 지파 전체가 왕의 허락없이 모인다는 것은 불가능하며  둘째, '베들레
헴'은 유다 지파 전체가 모이기에는 너무 협소하며 셋째, '매년제'(每年祭)는 소가족
단위로 드려진 제사(1:3)였다는 점에서 (2)의 견해가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ㅇ거기서 - 이는 베들레헴을 가리킨다.  이처럼 하나님께 대한 제사가 지역적으로 드
려진 가닭은 실로의 중앙 성소가 파괴된 후(4:10) 새로운 중앙 성소가 아직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황 하에서는 제단이 있는 곳을 중심으로 소가
족 단위로 각종 제사가 드려질 수 있었다(Keil, Gerlach).
ㅇ매년제를 드릴때가 됨이니이다 '매년제'(a yearly sacrifice)는 가족 단위로 매년
1차씩 드려지던 제사를 가리킨다(1:3 주석 참조). 그러나 모세 율법에서는 매년 3대
절기(유월절, 맥추절, 수장절)를 맞이하여 세 차례씩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명령
한다(출 23:14-17; 34:24). 따라서 매년 1차씩만 드리는 여기의  '매년제'는 일종의
편의주의적 편법임이 분명했다. 그리고 여기의 '드릴 때'는 유월절, 맥추절, 수장절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출 23:14-16). 즉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세 절기 중 자신
들에게 편한대로 한 절기를 택하여 '매년제'를 드렸던 것같다. 아무튼 이처럼 이 제
사는 율법에서 엄중히 명령되는 만큼, 다윗에게는 사울 왕이 베푼 월삭 잔치에 불참할
만한 충분한 명분이 될 수 있었다.  더욱이 그때 베들레헴에서 이 매년 제사가 그의
가족에 의해 드려진 것도 사실이었을 것이다.
ㅇ좋다 하면...노하면 - 요나단을 통해 전달될 다윗의 처사(6절)에 대하여 만일 사울
의 반응이 긍정적으로 나타날 경우 그것은 그가 다윗을 기뻐한다는 증거요, 만일 부정
적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은 사울이 다윗을 여전히 증오한다는 증거이다. 그러므로 다
윗은 그러한 방법을 통하여 사울의 마음을 알기를 원했는데, 이는 사울이 하나님의 신
을 접한 이후(19:23, 24)처음 그의 의향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다윗은 향후 자신에 대
한 사울의 의지를 알아볼 수 있었다.

8 그런즉 원컨대 네 종에게 인자히 행하라 네가 네 종으로 여호와 앞에서 너와 맹약케
하였음이니라 그러나 내게 죄악이 있거든 네가 친히 나를 죽이라 나를 네 부친에게로
데려갈 것이 무엇이뇨

ㅇ그런즉 - 7절의 내용과 연결시켜 주는 상관 접속사이다. 따라서 본 접속사에 뒤따
르는 내용은 7절의 내용과 밀접한 연관성을 갖는다.
ㅇ네 종에게 인자히 행하라 - 이 말은, 다윗이 베들레헴에 매년제를 드리러 갔다는
요나단의 보고에 대하여 사울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일 경우를 가상해서 요나단에게 도
움을 요청하는 말이다. 사실 사울이 죽이려 할 경우 다윗은 요나단의 도움을 받아 도
망칠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데 여기의 '인자히'(헤세드)는 원래
명사로서 언약적 관계에 따라 베풀어지는 특별한 사랑 및 은총을 가리킨다.
ㅇ네가...너와 맹약케 하였음이니라 - 다윗이 요나단에게 담대히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던 근거는 요나단의 주관하에 맺어진 신실한 언약 때문이었다(18:3, 4). 다윗이
이처럼 단순한 우정이 아닌 언약 관계를 근거로 해서 도움을 호소한 까닭은 (1) 단순
한 우정 관계는 부자(父子)관계보다 우선될 수 없으며 (2) 여호와 앞에서 그 이름으로
맺은 언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것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통념이었기 때문이
다.
ㅇ내게 죄악이 있거든...친히 나를 죽이라 - 이 말은 다윗이 자신의  무죄와 결백을
강조하는 말이다.  즉 다윗은 이같은 말을 함으로써, 요나단이 부친 사울의 뜻과는 달
리 자신을 돕는 일이 하등에 거리낌 없는 옳은 행위임을 강력히 시사한다.

9 요나단이 가로되 이 일이 결코 네게 있지 아니하리라 내 부친이 너를 해하려 결심한
줄 알면 내가 네게 이르지 아니하겠느냐

ㅇ이 일이 결코 네게 있지 아니하리라 - 이 말은 문자적으로 '그것이 네게로부터 멀
리 있다'란 의미를 갖는 감탄문이다. 즉 이것은 (1) 다윗에게 결코 죄가 없다는 의미
(Lange, Klein), (2) 다윗에게 결코 불행한 일이 닥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Smith)등
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원문상 본 문구 다음에 나오는 문구가 '왜냐하면'의 의미를
갖는 '키'로 시작된다는 점에서 후자의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즉 요나단은
자신의 손으로 다윗을 죽인다든지, 또는 다윗을 사울에게로 데리고 간다든지 하는 불
행한 일이 결코 다윗에게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이다(Keil).

10 다윗이 요나단에게 이르되 네 부친이 혹 엄하게 네게 대답하면 누가 그것을 내게
고하겠느냐

ㅇ네 부친이 혹 엄하게...대답하면 - 여기의 '대답하면'은 요나단이 다윗의 행동에
대해 변명하고, 또한 다윗에 관한 사울의 음모를 알아내려고 사울에게 질문했을 경우
사울이 요나단에게 보일 전반적인 반응을 가리킨다. 따라서 '엄하게...대답하면'은
다윗의 행동(6절)에 대해 사울이 격노하고, 아울러 사울이 자신의 음모가 다윗의 귀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협박을 하거나, 방해하는 것을 가리킨다.
ㅇ누가 그것을 내게 고하겠느냐 - 이것은 사울로부터 자신을 죽이려는 음모에 관한
정보를 요나단이 입수했다고 해도, 사울의 방해.협박 때문에 요나단이 자신에게 그 사
실을 알리는 일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11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오라 우리가 들로 가자 하고 두 사람이 들로 가니라

ㅇ본절에서 요나단과 다윗은 아무도 모르는 둘만의 신호를 만들기 위해 들로 나갔다. 
ㅇ들 - 문자적으로는 '그 들'이다. 이것은 말할 나위없이 사울 궁전 근처의 들판을
가리킨다(5절; 19:3)

1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증거하시거니와 내가
내일이나 모레 이맘때에 내 부친을 살펴서 너 다윗에게 대한 의향이 선하면 내가
보내어 네게 알게 하지 않겠느냐

ㅇ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 이러한 신(神) 명칭은 서원이나 맹세를 할 때 주로 사
용되는 하나님의 칭호로서, 여기서 요나단은 자신의 맹세의 신실성을 확증키 위해 바
로 이같은 하나님의 명칭을 사용한다.  한편 이러한 하나님의  명칭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과 맺은 언약을 신실히 이행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강조할 때 언급된다
(2:30; 25:32, 34; 삼하 7:27; 왕상 1:30, 48).
ㅇ증거하시거니와 - 이것은 원문에는 없는 말이나, 의미를 강화키 위한 번역자의 적
절한 삽입구이다.
ㅇ내일이나 모레 - 월삭(月朔) 잔치가 벌어지는 이틀 동안을 가리킨다 <5절>.
ㅇ내 부친을 살펴서 - 이것은 다윗이 매년제에 참석하러 베들레헴에 갔다는 얘기를
사울에게 하고, 또 그 얘기를 들은 사울의 반응을 살피는 것을 가리킨다(6,7절).
ㅇ보내어 - 이것은 요나단이 직접 전달하지 아니하고, 사자를 보내겠다는 뜻이다. 
이처럼 다윗에 대한 부친 사울의 의향이 선하게 나타날 경우 요나단이 사자를 보내겠
다고 한 까닭은, 그러한 경우에는 분명 사울의 마음이 누그러진 상태일것이므로 사자
를 보내도 별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이다.

13 그러나 만일 내 부친이 너를 해하려 하거늘 내가 이 일을 네게 알게 하여 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하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나 요나단에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 여호와께서 내 부친과 함께 하신것 같이 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ㅇ너를 보내어 평안히 가게 - 이것은 사울의 동향에 관한 적절한 정보를 다윗에게 제
공하여 사울로부터 무사히 피신토록 협조함을 뜻한다.
ㅇ여호와께서...벌을...내리시기를 원하노라 - 이같은 맹세적 표현은 원래 고대 중근
동 지역에서 동물을 죽이는 상징적 행위와 함께 이루어졌었다 <3:17>. 즉 맹세를 파
기할 경우 그 동물의 죽음과 같은 신세가 될 것이라는 의미였다. 그리고 그만큼 맹세
에는 책임과 의무가 뒤따른다는 의식이었다. 한편 맹세를 지키지 않을 경우 여호와께
벌을 받을 것이라는 요나단의 이 맹세적 표현은 '여호와'를 증인으로  세웠던 12절의
맹세와 잘 부합된다.
ㅇ여호와께서 내 부친과 함께 하신 것 같이 - 여기서 '하신'(하야)이 완
료형이라는 점에서, 요나단은 하나님께서 과거에는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계셨지만 지
금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16:14>.
ㅇ너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니 - 여기서 '하시기를 원하노니'(예히)가
미완료 시제 즉 미래형이라는 점에서, 여기 이 문구는 지금부터 앞으로 계속 하나님께
서 다윗과 함께 하실 것을 소원.확신하는 말이다 <1:13; 17:37; 18:12>. 이것은 결국
요나단이, 이스라엘의 왕권(王權)이 자신의 아버지 사울에게서 다윗에게로 넘어갔다는
사실을 이미 깨닫고 있었음을 뜻한다(14, 15절; 23:17).

14 너는 나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나로 죽지 않게 할뿐
아니라

ㅇ본절에서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간청은, 고대 중근동에는 축출된 왕조의 가족들이
새로운 왕에 의해 몰살되는 풍습이 있었다는 사실을 배경으로 한다(Fay, Smith; 삼하
19:28; 왕상 15:29; 16:11).
ㅇ나는 사는 날 동안에...나로 죽지 않게 - 이 말은 요나단이 다윗의 등극이 자신의
생전에 있을 것으로 예측했음을 시사해 준다. 그러나 실상 요나단은 길보아 전투에서
자신의 부친 사울과 함께 전사함으로써, 생전에 다윗이 왕이 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31:2-6).
ㅇ여호와의 인자를 내게 베풀어서 - '여호와의 인자'(헤세드
예호와)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당신의 계약 백성들에게 베푸시는 신실한 계약적 사랑을
가리킨다 (8절). 여기서 요나단은 이 말을 함으로써, 자신과 다윗 사이에 맺어진 언
약 관계를 다윗으로 하여금 깊이 상기시키려 한다. 한편, 이처럼 요나단이 현재 다윗
을 돕는 자이면서도 오히려 겸손히 다윗에게 '인자'를 요청하면서 그를 축원하고 있는
것은, 그가 왕자로서 명예욕과 권세욕에 초연했음을 보여 준다. 더 나아가 다윗에 대
한 요나단의 전적 협조와, 그리고 장차 인자 베풀것을 요청한 것은 사울 대신 다윗을
들어 쓰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요나단이 전적 순종하였다는 사실을 시사
해 주는 바, 실로 요나단은 탁월한 신앙 인격을 가진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15 여호와께서 너 다윗의 대적들을 지면에서 다 끊어버리신 때에도 너는 네 인자를
내 집에서 영영히 끊어 버리지 말라 하고

ㅇ다윗의 대적들 - 이것은 (1) 사울의 가문(Lange), (2) 사울의 가문을 포함한 모든
대적(Klein) 등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첫째, 요나단 자신이 자신의 아버지 집
만을 멸망받을 자로 직접 지명할 리가 없다는 사실, 둘째, '대적'(오예
브)이라는 단어가 복수라는 사실, 셋째, '대적'이라는 단어가 사울이외의 대상에게도
다윗에 의해 적용된다는 사실(25:26, 29, 39; 삼하 3:18)등으로 미루어 볼 때 (2)의
견해가 타당한 듯하다. 그러나 여기서 요나단이 다윗의 여러 대적들 중 자신의 아버
지 사울의 멸망에 대하여 주된 관심을 갖고 있었을 것은 매우 당연하다. 왜냐하면 사
울의 멸망은 그의 아들인 자신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ㅇ너는 네 인자를 내집에서...끊어 버리지 말라 - 이것은 장차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
이 되고 사울의 가문은 멸망될 때에, 요나단 자신의 직계 후손만은 멸망되지 않도록
특별한 배려를 원한다는 뜻이다. 사실 요나단의 이같은 간청은 후일 다윗에 의해 받
아들여져, 후에 요나단의 후손으로 다윗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았다(삼하 9:6, 7).

16 이에 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찌어다
하니라

ㅇ요나단이 다윗의 집과 언약하기를 - 이것은 요나단이 다윗에 대하여 충성 서약을
한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사실 자기 아비의 집과 다윗의 집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할 당시 상황에서, 요나단은 (1) 다윗을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차기의 왕으로 확신했
으며(13, 14절; 23:17). (2) 그 사실을 아는 이상 자신의 후손들을 헛되이 죽게 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이같이 언약했음이 분명하다. 한편 여러 학자들은 이
부분을 15절의 하반부와 연결된 것으로 보고, '요나단의 이름이 다윗의 집으로부터 귿
어지지 않도록 하라'(let not the name of Jonathan be cut off from the house of
David, RSV)로 번역해야 된다고 주장한다(Hertzberg, Klein). 그들이 이같이 번역하
는 까닭은 (1) 여기서 '언약 하기를'로 번역된 '카라트'라는 단어는 뒤에
'베리트'('언약')라는 단어가 뒤따르지 않을 경우 '언약을 하다'란 의
미로 번역하기 곤란하므로(Davidson, Keil) 이에 따라 15절에서의 용례처럼 '끊어버리
다'로 번역해야 되기 때문이며, (2) 그리고 칠십인역(LXX)은 '요나단'이 아닌 '요나단
의 이름'으로 번역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바로 이같은 이유로 여기서 그들은 맛
소라 사본에 의존한 전통적 번역 방식보다 칠십인역을 좇는 번역 방식을 채택하고 있
는 것이다.
ㅇ여호와께서는 다윗의 대적들을 치실지어다 - 앞 절의 해석 방법에근거할 때 이 문
구 역시 '여호와께서는 다윗의 적들의 손으로부터 그것을 요구하실 것이다'(Let the
Lord even require it at the hand of David's enemies, KJV)로 번역함이 타당하다. 
결국 이것은 다윗이 요나단 자신과의 언약을 이행치 않을 경우, 다윗은 여호와께로부
터 저주를 받을 것이라는 뜻으로(창 31:39; 삼하 4:11). 요나단은 그 신적인 저주가
다윗의 대적들을 통해서 내려질 것이라고 말한다. 즉 대적들을 토벌하려다가 오히려
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뜻이다.

17 요나단이 다윗을 사랑하므로 그로 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이는 자기 생명을 사랑함
같이 그를 사랑함이었더라

ㅇ본절은 요나단이 자기 자손들에 대한 약속 이행을 다윗으로 하여금 맹세토록 강요
했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 두 사람간의 기본적인 언약 관계(18:3)를 보다
견고하게 하려는 의도로 보는 것이 타당할 듯하다.
ㅇ요나단이...다시 맹세케 하였으니 - 이는 요나단이 먼저 다윗을 도와줄 것을 맹세
한 뒤, 이어 다윗이 후일 요나단의 후손들을 배려해 줄 것을 맹세하였음을 뜻한다. 
그 맹세의 내용은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만일 -을 지키지 아니하면, 여호와께서 -에
게 벌을 내리시고 또 내리시기를 원하노라'란 말로 구성되었을 것이다(13절). 아무튼
이러한 맹세는 맹세한 쌍방 중 어느 한편이라도 그 맹약을 어긴다면 하나님께서 그를
친히 심판하실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ㅇ자기 생명...같이...사랑함이었더라 - 18:1 주석 참조.

18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내일은 월삭인즉 네 자리가 비므로 네가 없음을 자세히
물으실 것이라

19 너는 사흘을 있다가 빨리 내려가서 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에 이르러 에셀
바위 곁에 있으라

ㅇ월삭 - 5절 주석 참조.  한편, 19절의 내용은 사본상의 문제 때문에 몇 군데가 수
정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ㅇ사흘을 있다가 - 이것은 원문대로 '제 3일에'로 번역되어야 한다. 즉 이틀 동안
계속되는 월삭 잔치가 끝나는 다음 날을 가리킨다.
ㅇ빨리 내려가서 - 여기의 '내려가서'(테레드)는 본 문맥의 흐름상 적절
치 못하다. 왜냐하면 여기의 언급처럼 만일 다윗이 빨리 내려가야 '숨었던 곳'에 도
달한다면, 다윗이 사흘 동안 숨을 곳은 자신이 원래 숨어있겠다고 요나단에게 약속한
지점(5절)과 다르다는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기의 '내려가서'는 사본상
의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따라 혹자는 칠십인역(LXX)을 좇아서 '테레드'
를 '파카드'('찾다', '묻다'란 뜻)의 단순 수동형인 '티파케드'      
로 고쳐야 된다고 주장한다(6절). 만일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말 번역의 '내려가서'는 '찾아지리니'란 의미로 바뀌어야 할것이다. 그리고 이런 맥
락에서 '빨리'(메오드)는 '무척', '대단히'로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ㅇ그 일이 있던 날에 숨었던 곳 - 여기서 '그 일'은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 왕
의 음모 때문에 요나단의 도움을 받아 숨었던 사건을 가리킨다(19:1-3). 따라서 여기
'숨었던 곳'은 사울 궁전 근처의 은밀한 들을 가리킴이 분명하다.
ㅇ이르러 - 이것은 다윗이 요나단과의 담화가 끝나는 즉시 '은밀한 들판'으로 가는
것을 가리킨다. 그러나 우리말 개역 성경의 번역은 마치 사흘째의 그리고 가라는 말
처럼 오인케 한다.
ㅇ에셀 바위 곁 - '에셀'(Ezel)은 '가다', '출발하다'의 의미를 갖는 동
사 '아잘'에서 파생되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여기의 '에셀 바위'는 방향 표시를
위하여 세워진 바위를 가리키는 듯하다(Smith).

20 내가 과녁을 쏘려 함 같이 살 셋을 그 곁에 쏘고

ㅇ내가...살 셋을 그 곁에 쏘고 - 여기서 요나단이 활 쏘는 것으로 신호(sign)를 삼
으려 한 것은 돌발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자신이 직접 다윗에게 결과를 알려 줄 수 없
게 될 경우를 대비키 위함인 듯하다. 한편 여기서 요나단이 화살을 셋씩이나 쏜 것
은, 다윗으로 하여금 자신을 향해 쏘는 사람이 요나단임을 알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21 아이를 보내어 가서 살을 찾으라 하며 내가 짐짓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살이 네
이편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거든 너는 돌아올찌니 여호와께서 사시거니와 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ㅇ아이(나아르) - 여기 '아이'는 그 용례로 볼 때 '요나단의 병기 든
자'를 가라킴이 분명하다(14:1).
ㅇ살을 찾으라 - 이같은 일은 전쟁 물자가 매우 부족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볼 때,
병기 든 자에게 매우 당연한 일로 여겨졌음이 분명하다. 그러므로 요나단은 병기 든
자가 이 일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이용하여 다윗에게 정보를 제공할 기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ㅇ네가 평안 무사할 것이요 - 직역하면 '네게 평안이 있을 것이요'(peace  shall be
to you)란 뜻이다. 구체적으로는 사울이 다윗에 대하여 살의(殺意)를 품지 않고 있음
을 말하는 것이다.

22 만일 아이에게 이르기를 보라 살이 네 앞편에 있다 하거든 네 길을 가라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셨음이니라

ㅇ네 길을 가라 - 곧 지체말고 도주하라는 뜻인데, 이것은 사울이 다윗에 대하여 살
의를 품었을 경우를 대비해 예상적으로 말하는 것이다.

23 너와 내가 말한 일에 대하여는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영영토록 계시느니라

ㅇ본절에서 요나단은 자신과 다윗 사이에 맺어진 언약의 불변성을 여호와의 이름으로
재천명한다.
ㅇ너와 내가 말한 일 - 이는 단지 둘 사이에 묵계(黙契)된 암호(20-22절) 뿐만 아니
라, 요나단과 다윗이 새롭게 다지고 맺은 우정의 맹약(12-17절)도 포함한다. 즉 그
맹약에 살아 계신 여호와께서 증인과 판결자로서 영원히 지켜보고 계실 것이라는 의미
이다.

24 다윗이 들에 숨으니라 월삭이 되매 왕이 앉아 음식을 먹을 때에

25 왕은 평시와 같이 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았고 요나단은 섰고 아브넬은 사울의 곁에
앉았고 다윗의 자리는 비었으나

ㅇ왕은...벽 곁 자기 자리에 앉았고 - 사울이 이같이 벽 곁 자리에 좌정한 것은 (1)
그 위치가 자신의 몸을 가장 잘 보호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자리이며(Hertzberg),
(2) 고대 중근동에서 출입구 반대편의 그곳은 가장 상좌(上座)로 인정되었기 때문이다
(Fay, Smith, Keil).
ㅇ요나단은 섰고 - 여기의 '섰고'(야캄; 원형은 '쿰')는 요
나단이 그때 식탁을 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볼 때 매우 부자연스러운 자세이다. 따
라서 이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다음과 같은 견해가 제시되었다. 즉 (1) 여기의 '야
캄'을 사본상의 오류로 보고 '코프'와 '멤'사이에 '달렛'을 삽입시
켜 '에카뎀'으로 수정하여 '맞은편에 위치하다'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
(LXX, Klein, Ewald, Bunsen, Thenius), (2) 여기 '쿰'의 의미를 '오다'란 말로 이해
하여 '요나단이 왔다'란 뜻으로 보아야 한다는 견해(De Wette, Maurer), (3) 사본을
정확한 것으로 보되, 다만 '(요나단이) 자신의 위치를 잡다'란 의미로 이해해야 한다
고 하는 견해(Mastin)등이 제시되었다. 그런데 우리는 첫째, 여기의 '섰고'(쿰)라는
동사가 단순히 서있는 동작만을 의미하지 않으며(16:12; 창 43:13) 둘째, 히브리 본문
을 최우선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일반 해석론에서 볼 때 (3)의 견해를 존중하는 입장에
서, 곧 처음 요나단이 사울의 곁에 자리 잡았다가, 아브넬이 들어옴으로써 자기 자리
에서 일어나 양보했다는 뜻이거나, 아니면 군대 장관이요 숙부인(14:51) 아브넬이 들
어오자 경의를 표하기 위해 단순히 잠깐 일어나는 자세를 취했다가 다시 앉은 행위로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the Vulgate, Keil, Fay).
ㅇ아브넬...다윗 - 결국 월삭 어전 잔치의 참석자는 왕 사울, 왕자 요나단, 군장 아
브넬, 천부장 다윗 등 4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모두 사울 왕을 중심
으로 부자(父子) 관계, 사촌 형제 관계, 사위 관계 등 혈연으로 얽혀있었다는 점에서
가족 잔치의 성격도 띠고 있었다. 아무튼 이들 4인은 당시 이스라엘 왕정 제도의 핵
심 수뇌부인데, 고대 초창기 왕정의 성격상 이러한 혈연 중심의 통치는 당시 보편적이
었다(Leon Wood).

26 그러나 그 날에는 사울이 아무 말도 아니하였으니 이는 생각하기를 그에게 무슨
사고가 있어서 부정한가보다 정녕히 부정한가보다 하였음이더니

ㅇ부정한가보다 - 모세 율법의 정결 의식법상 시체를 만지거나(레 7:20, 21;
15:16-18), 혹은 잠을 자다가 몽설(夢泄)을 하는(신 23:10) 등의 사유로 인하여 의식
적(儀式的) 부정의 상태에 이르는 것을 가리킨다. 모세 율법은 이같은 상태에 이른
자가 제사, 축제 등의 성별된 종교 의식에 참여하는 것을 엄격히 금하고 있다.

27 이튿날 곧 달의 제 이일에도 다윗의 자리가 오히려 비었으므로 사울이 그 아들
요나단에게 묻되 이새의 아들이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뇨

ㅇ이새의 아들 - 성경 용례상 이 말은 다윗의 대적들에 의해서 주로 부벙적 의미로
사용된다는 점에서(30, 31; 22:7, 8; 25:10; 삼하 20:1). 당시 다윗에 대한 사울의
심경을 보여 주는 말이다(Klein).
ㅇ어찌하여...오늘 식사에 나오지 아니하느뇨 - 사울의 이 말은 여러 사유 등으로 인
하여 부정하게 된 자는, 그 당일에는 부정하지만 그 다음 날에는 깨끗케 된다는 율법
규정을 염두에 두고 이해해야 할 것이다(레 15:1-27). 바로 이같은 율법 규정을 아는
사울은, 다윗의 첫날 식사 불참은 그가 부정하게 됐기 때문에 그런 것으로 보고 용납
할 수 있었으나(26절). 그 다음 날에도 불참한 것은 첫날의 불참과는 달리 용납할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 이유를 묻고 있는 것이다.

28 요나단이 사울에게 대답하되 다윗이 내게 베들레헴으로 가기를 간청하여

29 가로되 청컨대 나로 가게 하라 우리 가족이 그 성에서 제사할 일이 있으므로 나의
형이 내게 오기를 명하였으니 내가 네게 사랑을 받거든 나로 가서 내 형들을 보게
하라 하였으므로 그가 왕의 식사 자리에 오지 아니하였나이다

ㅇ다윗의 행방을 묻는 사울의 질문에 요나단은, 사울이 다윗에 대하여 어떠한 마음
자세를 갖고 있는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이틀 전 다윗과 이미 약조한대로(6절) 다윗의
불참 사유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실은 당시 다윗은 베들레헴으로 내려갔던 것이 아
니라, 에셀 바위가 있는 들에 숨어 있었다(19, 24절).
ㅇ나의 형(아히) - 70인역(LXX)은 '형제들'로 이해하나, 히브리 원문은
단수이다. 아마도 다윗의 맏형으로서 가족의 제사를 주관하는 형을 가리키는 듯하다
(Keil, Fay).

30 사울이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고 그에게 이르되 패역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이 네 수치와 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됨을 내가 어찌 알지
못하랴

ㅇ사울이 요나단에게 노를 발하고 - 이것은 요나단이 다윗으로 하여금 베들레헴으로
가도록 허락했다는 것에 대한 분노를 가리킨다. 이같은 반응은 결국 사울이 월삭 잔
치를 기회로 다윗을 사로잡고자 한 자신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음을 보여 주는 증표
였다.
ㅇ패역 부도의 계집의 소생아 - 여기서 '패역'(나아와트)은 '구부러지
다'(아와)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극도로 사악한 마음의 상태를 가리킨다
(잠 12:8). 그리고 '부도'(마르두트)는 '반역하다', '거역하다'        
(마라드)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반항적이고 배타적인 마음의 상태를 가리
킨다(창 14:4; 수 22:16; 왕하 18:20). 또한 여기의 '계집'은 사울 자신의  아내  곧
요나단의 생모(生母) '아히노암'(14:50)을 가리킨다. 그러나 자신의 아내 아히노암에
대한 사울의 이같은 언급은 그녀가 그같은 행위와 어떤 관련이 있다는 뜻은 절대로 아
니다.  다만 사울은 요나단의 어머니를 나쁜 여자로 몰아버림으로써, 즉 요나단을 처
음 출생부터 잘못된 인물로 선언함으로써 그 아들 요나단의 '패역  부도'(悖逆不道)함
을 강조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원문을 따라 직역하면 "너 사악하고 반역적인(계
집의) 아들아!"(you son of a perverse and rebellious woman!; NIV, RSV)란
뜻인데, 이처럼 어머니까지 들먹여 욕하는 이런 행위는 특히 고대 중근동 지역에서는
극도의 증오와 분노를 나타내는 가장 격렬한 감정의 표시였다. 결국 이러한 사울의
행동은 다윗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로 말미암아 이제는 자신의 아들마저 아들로 인정치
않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이처럼 인간이 지
니는 악한 감정은 결국 자신의 인격마저 파탄시키고 만다. 
ㅇ네가 이새의 아들을 택한 것 - 여기서 '택하다'(바하르)란 말은 사랑
과 신의(信義)로써 사랑하는 행위를 가리키는데, 곧 요나단이 다윗과 친구가 되어 그
편을 들어 행동하는 상태를 말한다. 한편 여기 '이새의 아들'에 대한 해석은 27절 주
석을 참조하라.
ㅇ네 수치 - 사울의 왕권이 다윗에게 넘어갈 경우 마땅히 사울의 왕권을 이양받을 권
한이 있던 왕자 요나단이 당할 여러가지 부끄러움을 가리킨다.
ㅇ네 어미의 벌거벗은 수치 - 이 말은 다윗에게 사울의 왕권이 넘어감으로써 심한 부
끄러움을 당하게 될 요나단으로 인하여 요나단의 어미가 그를 낳은 일 자체를 부끄러
워 할 것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사울의 이러한 말은 이기주의적 발상에서 비롯된 독
선이고 아집이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마음으로 다윗을 성실히 도와준 요나단
은 오히려 그의 그러한 선행 때문에 가문의 수치를 벗고 다윗으로 말미암아 축복을 받
게 되었다(31:9-13; 삼하 4:12; 9:1-13).

31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 그런즉
이제 보내어 그를 내게로 끌어오라 그는 죽어야 할 자니라

ㅇ너와 네 나라가...서지 못하리라 - 사울 자신의 왕권이 다윗으로 인하여 요나단에
게 양위(讓位)되지 못할 것을 염려하는 말이다. 일찍이 사울은 여호와의 선지자 사무
엘로부터 그 왕위(王位)가 단절될 것이라는 선언을 들은바 있었고(13:13, 14), 이제
사울은 다윗이 하나님에 의해 차기의 왕으로 세워진 자라는 사실을 익히 알면서도
(18:12; 23:17) 이같은 말을 서슴없이 내뱉음으로써, 자기 스스로가 하나님의 신을 소
유치 않은 비합법적인 왕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16:14). 
ㅇ그는 죽어야 할 자니라 - 문자적으로는 '그는 사망의 자식이니라'이다. 반드시 다
윗을 죽이고야 말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명으로, 이는 곧 다윗을 차기 이스라엘 왕으
로 세우시려는 하나님의 계획과 주권에 정면 도전하는 선전 포고를 볼 수 있다. 이처
럼 사울의 악한 감정은 이제 그를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고 대항하는 자로까지 발전
시키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자의 결국은 멸망 뿐이다(31:4, 5; 나
1:2).

32 요나단이 그 부친 사울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그가 죽을 일이 무엇이니이까 무엇을
행하였나이까

ㅇ요나단이...가로되...무엇을 행하였나이까 - 부친 사울 왕의 격심한 분노에도 불구
하고 요나단은 변치않는 신의(信義)로써 친구 다윗을 위해 변호함으로써 부친의 마음
을 바로 잡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19:4-7). 그러나 당시 사울은 이미 감정의 노예
가 되어 있었다.

33 사울이 요나단에게 단창을 던져 치려 한지라 요나단이 그 부친이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한줄 알고

ㅇ단창을 던져 치려 한지라 - 여기의 '던져'는 '창을 뻗다'란 의미로 이해함이 타당
하다(18:11). 그리고 '치려'(나카)는 죽이거나 혹은 치명상을 입힐 목적
으로 무기를 휘두르는 등의 과격한 행동을 하는 것을 가리킨다(창 37:21; 출 2:12; 신
13:15; 삼하 1:15). 그런데 이같은 행동은 사울이 악신에 사로잡을 때 나타났다는 점
에서 볼 때(18:11; 19:10).  이때도 사울은 극력한 분노와 증오심으로 인하여 마치 악
신에 사로잡힌 바 된 상태와 다름이 없었던 것 같다.

34 심히 노하여 식사 자리에서 떠나고 달의 제 이일에는 먹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
부친이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다윗을 위하여 슬퍼함이었더라

ㅇ심히 노하여 - 이같은 요나단의 분노는 사울이 자신을 죽이려 한 사실 때문이라기
보다는, 자신의 아버지가 하나님에 의하여 차기의 왕으로 특별히 선택된 다윗을 죽이
려 한다는 분명한 사실 때문이었다. 따라서 여기 요나단의 노(怒)는 불의를 참지 못
하여 일어난 의분(義憤)으로서 사울의 불의한 분노(30절)와는 뚜렷이 대조된다. 즉
요나단의 분노는 사랑과 신의로부터 나온 것이지만, 사울의 분노는 증오와 시기로부터
나온 것이다.
ㅇ달의 제 이 일에는 먹지 아니하였으니 - 이것은 월삭 잔치 둘째날의 음식(27절)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뜻한다.
ㅇ부친이 다윗을 욕되게 하였으므로 - 이는 매년제를 드리러 고향 베들레헴으로 갔다
는 다윗을 부친 사울이 정당한 이유없이 반역자로 몰아, 반드시 '죽일 자'(31, 33절)
로 간주했다는 사실을 가리킨다.

35 아침에 요나단이 작은 아이를 데리고 다윗과 정한 시간에 들로 나가서

ㅇ아침에 - 다윗과 요나단이 만나기로 약속한 제 3일(5,19절) 곧 이틀 동안의 월삭
잔치가 끝난 그 다음날 아침을 가리킨다.
ㅇ작은 아이(나아르) - 차라리 '소년'으로 번역함이 자연스럽다(22절;
14:1)

36 아이에게 이르되 달려가서 나의 쏘는 살을 찾으라 하고 아이가 달려갈 때에
요나단이 살을 그의 위로 지나치게 쏘니라

ㅇ살을 그의 위로 지나치게 쏘니라 - 요나단은 아이가 달려간 거리보다 더 멀리 활을
쏘았다. 이것은 요나단이 병기 든 소년에게 '살이 네 앞편에 있다'(22절)라고 말할
구실을 마련키 위한 의도적 행동이다. 즉 요나단은 다윗과 사전에 약속하기를, 만일
자신이 소년에게 '살이 네 앞에 있다'라고 말할 경우 사울이 그에 대하여 살의(殺意)
를 품고 있다는 뜻으로 알고 도망쳐야 될 것이라고 하였기 때문이었다(22절).

37 아이가 요나단의 쏜 살 있는 곳에 이를 즈음에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외쳐 가로되
살이 네 앞편에 있지 아니하냐 하고

ㅇ살이 네 앞편에 있지 아니하냐 - 아마도 요나단은 근처 어딘가에 숨어있을 다윗도
족히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이 말을 외쳤을 것인데, 이것은 다윗에게 도망쳐야 될
필요성을 고지(告知)하는 암호(sign)였다.

38 요나단이 아이 뒤에서 또 외치되 지체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 하매 요나단의 아이가
살을 주워가지고 주인에게로 돌아왔으나

39 그 아이는 아무런지 알지 못하고 요나단과 다윗만 그 일을 알았더라

ㅇ지체 말고 빨리 달음질하라 - 요나단이 이처럼 소년을 독촉한 이유는 소년으로 하
여금 숲 속에 숨어 있는 다윗을 발견할 여지나 기회를 갖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에 따
른 것이었다(Keil, Fay).  그리고 이 의도대로 소년은 살을 주워오기에 바빠 다른 눈
치는 전혀 채지 못했다(39절).
ㅇ살을 주워 가지고 - 히브리 본문에는 여기 '살'(헤치)이 단수로 표기되었
지만, 난외주(keri)에는 복수 '살들'(힛침)로 표기되어 있다. 그 이유
는 이미 요나단이 다윗과 약속할 때 '살 셋'을 쏘기로 했기 때문이다(20절). 아마도
요나단은 화살 셋을 연이어 쏜 것 같다(Bunsen).

40 요나단이 그 병기를 아이에게 주며 이르되 이것을 가지고 성으로 가라

ㅇ병기를...가지고 성으로 가라 - 여기서 '병기'는 활과 화살, 그리고 화살통을 가리
킨다. 그리고 '성'은 베냐민 기브아의 사울의 궁성(宮城)을 가리킨다. 한편 요나단
의 이 명령은 말할 나위없이 소년을 돌려보낸 후 다윗과 은밀한 작별의 시간을 갖기
위함이었다. 사실 주인의 마음에 따라 이같은 종류의 명령을 받아 하인만 홀로 집으
로 돌아가는 경우는 당시 매우 보편적이었다는 점에서(Pritchard, Hertzberg), 그 소
년은 별다른 생각 없이 홀로 성으로 돌아갔을 것이 분명하다.

41 아이가 가매 다윗이 곧 바위 남편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번 절한 후에 피차
입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ㅇ바위 남편에서 일어나서 - 문자적으로는 '남편쪽으로부터'이다. 따라서 히브리 원
문에는 '바위'라는 말이 없지만, 요나단이 '에셀 바위 곁에' 숨어 있으라고 지시한 19
절의 말을 고려하여 '바위'라는 말을 첨가한 것 같다. 아무튼 여기의 '바위 남편'은
궁전쪽, 즉 요나단과 그의 병기 든 자가 있던 곳의 반대편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리고
여기 '일어나서'는 몸을 웅크려 숨어있던 자세에서 일어나는 것을 뜻한다.
ㅇ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 요나단을 향한 다윗의 이 행동은 요나단이 다윗 자
신에게 크나큰 호의를 베풀어준 데 대한 감사의 표시였을 것이다(Hertzberg). 즉 땅
에 엎드려 얼굴을 숙이는 자세는 일반적으로 왕이나 왕자에게 경의와  예우를 갖추어
하는 절을 의미한다(삼하 9:6; 14:33). 그러나 여기 다윗의 절은 그러한 형식적인 경
의나 예우의 표시가 아니라, 풍전등화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에 대한 감사의 표
시였다.  이런 의미에서 요세푸스(Josephus)는 이 언급에 대하여 '다윗은 요나단을 존
경하여 그를 자신의 생명의 주라고 불렀다'라고 의역하였다.
ㅇ피차 입맞추고 - '입맞춤'은 보통 '만남의 기쁨'이나 '이별의 슬픔'을 표하기 위해
포옹과 더불어 이루어졌는데, 대체로 이마나 볼이나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따라서
여기서도 슬픈 이별의 순간을 맞이하여 생명같이 사랑하는 친구의 앞날을 서로 걱정해
주면서 우정과 사랑의 입맞춤을 하고 있는 것이다(창 29:11; 33:4; 45:15; 출 4:27;
18:7; 룻 1:9, 14; 왕상 19:20; 행 20:37).
ㅇ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 이것은 (1) 깊은 사랑과 우정의 교제를 나누던
친구가 비극적 현실 앞에서 기약없이 서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 (2) 그 중 한 친구
는 목숨의 보존을 위해 향후 정처없이 방랑해야 하는 비참한 신세가 됐다는 사실 때문
이었을 것이다.  더욱이 다윗은 전혀 자신의 뜻과는 달리 반역자로 몰려 왕과 국가에
충성할 기회를 갖기는 커녕 친구와 가정과 별리하고, 왕과 원수가 되어 정처없이 도피
의 길을 떠나야 된다는 그 어이없는 현실에 그동안 참았던 설움이 복받쳐 올라와 길고
깊은 울음으로 터져나왔으리라!

42 요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우리 두 사람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하였느니라 다윗은 일어나 떠나고 요나단은 성으로 들어오니라

ㅇ본절에서는 (1) 다윗에 대한 요나단의 평안(샬롬)의 기원, (2) 이미 맺어졌던 두사
람 간의 언약의 재확인에 대해 언급된다.
ㅇ평안히 가라(레크 레솰롬) - 요나단의 사랑과 우정이 함축된
마지막 작별 인사이다. 다윗과 요나단은 마음놓고 길게 작별을 나눌 시간조차 없었
다. 다윗의 목숨을 노리는 사울과 그 측근들의 눈초리가 사방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
다. 따라서 요나단은 순간의 격정이 지난 뒤 '평안히 가라'(Go in peace!)란 말로 다
윗을 기약없이 떠나 보내고 있는 것이다. 진정 요나단의 작별 인사처럼 깊은 사랑과
우정이 깃든 평안(솰롬)에의 기원이야말로 인간과 인간 사이에 나눌 수 있는 가장 아
름다운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ㅇ다윗은...떠나고 요나단은...들어오니라 - 마침내 다윗은 친구와 가족을 등지고 사
울의 추적을 피해 사울의 죽는 날까지(31:6) 온갖 고난이 뒤따르는 정처없는 도피 생
활에 접어들게 되었다(21-31장). 한편 다윗과 요나단은 요나단이 길보아 전투에서 부
친 사울과 함께 전사하기 전, 십 황무지 수풀 속에서 잠시 상면한 일(23:16-18)을 제
외하고는 다시 서로 만나지 못했다. 후일 다윗의 궁가(弓歌) 속에는 요나단의 죽음을
서러워하는 다윗의 애도의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삼하 1:26)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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