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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유다서

[스크랩] 유다서 (1 : 1~25)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7:40
유다서 1장


1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요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는 부르심을 입은 자 곧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라

ㅇ본절은 저자와 수신자와 수신자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다. (1) 본서의 저자인 유다는
두 가지 칭호를 사용하여 수신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하고 있다. 신약 성경에서 :유다
“는 8명이 등장하나 본서의 저자는 예수와 야고보의 형제인 유다를 의미한다.
ㅇ예수그리스도의 종.---- “종”에 해당하는 헬라어 “둘로스”는 오직 주인의 뜻대
로만 행해야 하는 소유물로서 주인의 재산에 불과한 존재를 가리킨다(Cranfield).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표현은 그리스도께서 사단의 노예와 포로 상태에 있었
던 사람들을 자신의 피값으로 사셔서 현재 자신의 종으로 삼았음을 의미한다(고전
7:23).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단순히 모든 그리스도인을 지칭할 때도 있지만 그
리스도인 사역자인 “사도”를 지칭할 대도 사용되었다(롬 1:1 ; 벧후 1:1). 본절에
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은 유다가 주와 한 가족으로서의 권위보다는 주께 봉사하
도록 부름을 받은 사역자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시사한다(Bauckham).
ㅇ야고보의 형제. ---- 혹자는 “형제”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델포스”가 혈연적인
형제를 의미하지 않고 동역자를 의미한다고 해석하여 본서의 저자가 “유다 바사바
(Bauckham)”라고 주장한다(Ellis). 그러나 신약 성경에서 “아델포스”는 그리스도
인들을 지칭하는 정도이지 그 이상, 즉 사역자를 지칭하지는 않는다(Bauckham). 그러
기에 본문의 “야고보의 형제”를 “야고보의 동역자 중의 한사람”으로 해석하는 것
은 부당하며 혈연적인 형제로 해석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유다”와 “야고보”가
혈연적인 한 형제로 나타나는 곳은 신약 성경 막 6:3뿐이다. 저자인 “유다”가 주의
형제인 “야고보”의 형제임을 강조한 것은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단지 주의 형제로서 잘 알려져 있는 “야고보”와 혈연적인 형제임을 드러냄으로 지
신의 정체(正體)에 대해서 밝히기 위함이다.  (2) 저자인 유다는 수신자들이 사는 지
역에 대해서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수신자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갖는 특징을 세
가지 호칭으로 설명하고 있다.
ㅇ부르심을 입은 자 . --- 이것은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을 기리키던 것이 그리스도인에
게 전이된 호칭이다(사 41:9 ; 42:6 ; 48:12, 15, 19: 1 ; 54:6 ; 호 11:1). 이 호칭
은 그리스도인과 거의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Kelly).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도록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생활과 모습을 통해 나타내야
한다(롬 1:7 ; 고전 1:2 ; 빌 3:12,13 ; 벧전 1:15 ; 벧후 1:10 ; 계 17:14).
ㅇ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사랑을 얻고. -----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의 헬라어 “엔
데오 파트리”는 해석상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유다가 본절에서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행한 자신의 사랑을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 안에서”
의 하나님의 사랑을 진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에서”의 헬라어 “엔”은 도구격
으로 사용된 것으로 “하나님에 의해 사랑을 받는” 이란 의미를 지닌다. 한편 “사랑
을 얻고”에 해당하는 헬라어 “토이스 에가페메노이스”는 완료 시상이다. 이는 이전
에 주어졌던 하나님의 사랑이 지속적으로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호칭은 구약
시대에 이스라엘을 기리키는 것이었으나(신 7:7,8 ; 대하 20:7 ; 사 5:1 ; 43:4 ; 렘
31:3 ; 호 11:1 ; 14:1) 신약에 와서 새 이스라엘이 된 그리스도인을 지칭하는 칭호가
되었다(골 3:12 ; 살전 1:4 ; 살후 2:13).
ㅇ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지키심을 입은 자들. ---- 앞서 언급된 수신자들에 대한 두
가지 칭호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근간을 나타내는 반면 본문의 칭호는 그리스도인의 삶
의 목적을 드러낸다(Cranfield). “지키심을 입은 자들”로 번역된 헬라너 “테테레메
노이스”는 완료 시상으로 하나님의 보호하심 속에서 안전한 상태에 있는 것을 시사한
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을 준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다
(요 17:11,15 ; 살전 5:23 ; 벧전 1:4,5, Cranfield). 유다가 이 칭호를 사용한 것은
당시 수신자들 사이에 만연해 있던 거짓 교사들의 영향으로부터 하나님께서 수신자들
을 보호하심을 분명히 밝히고 위로하기 위함이었다(Bauckham).

2 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ㅇ긍휼과 평강과 사랑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 지어다. ---- 본절은 수신자들을 위한 유다
의 기원이다. “긍휼”은 하나님의 새 언약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친
절한 태도와 동정을 의미하며, “평강”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얻고 그를 의
지하는 가운데 주어지는 안녕을 의미하고,, “사랑”은 그리스도 안에서 허락하시는
하나님 자신의 호의와 관대함을 가리킨다(Blum). “긍휼”과 “평강”은 하나님의 축
복을 기원하는 유대인들의 인사법이었다. 유다는 비록 “긍휼” 속에 사랑이 내포되어
있다 할지라도 “사랑”을 더 첨가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기원하는 초대 교회의
독특한 인사를 하고 있다(Bauckham).

3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ㅇ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을 들어 너희에게 편지하려는 뜻이
간절하던 차에. ---- 유다는 “사랑하는 자들아”라는 호칭을 통하여 수신자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과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17,20). 한편 “우리의 일반으로 얻은 구원”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참여하고 있는 구원을 의미한다. 이는 종말론적 의미를 지닌 것
으로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 믿음으로 온전히 받을 구원이요(21절 ; 벧전 1:5). 그리스
도인들이 이미 받아 누리는 구원이다(히 6:9). 저자인 유다는 수신자들이 이미 누리고
있으며 주의 파루시아 때에 참여하게 될 온전한 구원에 대해 편지하려고 하고 있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ㅇ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 “성도”에 대해서 혹자는 예수 그리
스도에게 복음을 전달받은 kteh를 기리킨다고 주장하나(Spitta) 교회를 설립한 사도들
에게서 복음을 받아들인 교회의 그리스도인을 기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행 9:13,32,41 ; 롬 12:13 ; 히 6:10, Blun, Bauckham, Green, Bigg). 왜냐하면 신약
성경에서 “주신”에 해당하는 헬라어 “파라도데이세”는 “받는다”라는 의미를 지
닌 “파라람바네인”과 한상을 이루어 사도가 주고 그리스도인이 받아들이는 것을 나
타내기 때문이다(고전 11:2,23 ; 15:3 ; 갈 1:9 ; 빌 4:9 ; 골 2:6 ; 살전 2:13 ; 살
후 2:15 ; 3:6, Green, Bauckham). 한편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에서 “믿음의 도”
는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도들에 의해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해진 복음, 즉 그리스도인들이 믿는 내용을 의미한다(행 2:42). 이러나 믿음, 즉 예
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도들에게 전해지고 사도에 의해서 교회의 전해진 기독교 구원
의 중심 메시지는 단번에 전해진 것으로 결코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다. 유다는 복음의
불변성(不變性)을 강조함으로 거짓 교사들이 변질되고 왜곡된 거짓 진리를 전하는 것
에 대해 암시적으로 경고하고 있다.
ㅇ힘써 싸우는 편지로 너희를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 ---- “힘써 싸우라”에 해
당하는 헬라어 “에파고니제스다이”는 본래 레슬링 경기에 선수들이 쏟는 노력을 의
미하엿다. 유다는 “에파고니제스다이”를 사용하여 수신자들 모두가 가만히 들어온
거짓 교사들이 변질시키고 있는 복음을 수호하기 위하여 운동 선수가 경기에 애를 쓰
듯이 노력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유다는 현재 시상인 “에파고니제스다이”를
사용하여 복음 수호를 위한 그리스도인들의 노력이 항상 지속되어야 핢을 시사
하고 있다. 한편 “권하여야 할 필요를 느꼈노니”는 저자 유다가 수신자들이 거짓 교
훈에 휩싸여 있음을 알고 그들로 하여금 수호하도록 권면하기 위하여 본서를 썼음을
시사한다.

4 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ㅇ이는 가만히 들어온 사람 몇이 있음이라. --- “가만히 들어온”으로 번역된 헬라어
“레이세뒤에산”은 비밀리에 들어온 것을 기리키는 것으로 바울과 베드로는
이 단어를 사용하여 이단적인 가르침을 전하는 자들에 대해 경고하고 있다(갈 2:4 ;
벧후 2:1). 이러한 자들은 진정한 진ㄹ리인 복음을 부정하고 그리스도인에게 거짓 교
훈을 전하여 발못된 길로 빠지게 하는 거짓 교사들로서 외적으로는 교회의 일원이었으
나 내적으로는 교회에 속하지 않은 자들이엇다. 한편 “사람 몇”의 헬라어 “티네스
안드로포이”는 수신자들이 명확하게 잘 아는 사람들의 그룹을 가리키는 표현이다(롬
3:8 ; 고전 4:18 ; 15:34 ; 고후 3:1 ; 10:12 ; 갈 1:7 ; 딤전 1:3,19 ; 벧후 3:9).
유다는 이 표현을 통해서 수신자들이 분명히 알고 있는 거짓 교사들에 대해 명확하게
경고하고 있다.
ㅇ저희는 옛적부터 이 판결을 받기로 미리 기록된 자니. ---- “옛적부터... 미리 기록
된 자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이 팔라이 프로게그람메노이”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이다. ① 혹자는 거짓 교사들과 그들에 대한 정죄가 하늘 책에 기록되었다고 주
장한다(Clement, Windisch, Kelly). ② 혹자는 거짓 교사들과 그들에 대한 정되가 베
드로후서와 같은 사도들의 예언에 기록되어 있다고 주장한다(딤후 3:13 ; 벧후 2:1-3
:4, Bigg, Green, Zahn). ③ 혹자는 거짓 교사들과 그들에 대한 정좌가 신약 시대 이
전의 예언, 즉 구약이나 에녹서와 같은 것에 기록되어 잇다고 주장한다(Maier, mayor,
Grundmann, Chaine, Cantinat, Blum, Bauckham). 세 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옛
적부터”라는 표현을 가장 충족시키며, 실제로 유다는 구약에서 하나님을 거역하고 대
적하다가 멸망당한 자들에 대해 5-7정에서 언급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에녹서의 내용
을 많이 반영하고 있기 째문이다. 유다는 수신다들에게 거짓 교사들에 대한 정죄는 이
미 과거의 예언에 분명히 나타나고 있음을 강조함으로 그들로 거짓 교사들의 실체를
명확히 인식하게 하고 있다. 한편 “이 판결을 받기로”를 해석함에 있어서 어려운 점
은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투토”이다. 이에 대한 견해는 네 가지이다. ① 혹자
는 벧후 2:3에 언급된 정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Green, Bigg). ② 혹자는 믿음에
도에 대한 변호에서 암시된 거짓 교사들에 대한 정죄나(3b) 거짓 교사들이 가만히 들
어왔다는 정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Mayor, Zahn). ③ 혹자는 본절 하반절에서 언급
된 정죄받을 수밖에 없는 그들의 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Spitts). ④ 혹자는 5-15
절에서 언급되는 예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Clement, Cantinat, Grundmann,
Bauckham). 네 가지 견해 중 문맥상 마지막 견해가 타당하다. “이 판결을 받기
로”는 5-15절에서 언급된 유형의 정죄를 가리키는 것으로 그리스도의 파루시아 때에
주어질 정죄를 의미한다.
ㅇ경건치 아니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세베이스”는 유다가 거짓 교사들의
특징을 지칭한 포괄적인 단어로,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의 도덕적 권위를 거부하고
불의한 행동을 하는 거짓 교사들의 도덕 폐기론을 함축적으로 고발하는 용어이다.
ㅇ우리 하나님의 은혜로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
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을 용서하시고 죄와 율법의 정죄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자
유롭게 하신 하나님의 호의를 가리킨다. 거짓 교사들은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
거리, 즉 성적인 탐닉으로 바꾸어 버렸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 그리스도인
의 자유를 모든 도덕적인 제한조차도 무시할 수 있는 자유로 해석하여(벧후 2:19) 성
적인 방종을 행하였다(Blun, Bauckham).
ㅇ홀로 하나이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니라. --- “홀로 하나이
신 주재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헬라어는 “톤모논 데스포텐 카이 귀리온 헤몬
예순 크리스톤”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이다. ① 혹자는 “홀로 하나이신 주재”가 하
나님에게 사용된 것을 이유로 성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눅 2:29 ; 행 4:24 ; 계 6:10, Green, Cranfield). ② 혹자는 윤리적인 행위에 대한
부인이라고 주장한다(Luther, Plummer, Chiane, Cantinat, Grundmann, Blum, Calvin,
Cranfield).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더 타당하다. 전자의 경우라 한다면 8절에서 오
직 천사들을 훼방한 것만을 언급해야 하나 유다는 거짓 교사들의 다른 죄에 대해서 계
속적으로 언급하고 있으며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성적인 방종으로 侮毛珦습?언급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불경건한 행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약용하였고 그
리스도의 주권을 부인하였다(딛1:16).

5 너희가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6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7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ㅇ너희는 본래 범사를 알았으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고자 하노라...거울이 되
었느니라. ----- “범사를”에 대해서 혹자는 저자인 유다가 말하기를 원하는 모든 것
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Spitta, Mayor, Grundmann) 수신자들이 개종할 때에 사도들로
부터 이어받은 믿음의 모든 본질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Bauckham,
Bigg). 왜냐하면 개역성경에는 번역되어 있지 않으나 헬라어 본문에는 “단번에”를
의미하는 “하팤스”가 첨가되어 있어 과ㅏ거에 수신자들이 받았던 복음을 기리
키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유다는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구약의 세 가지 예를 제시함으
로써 사도들이 전하여준 복음을 분멸하게 인식시키고자 하고 있다(롬 15:15 ; 살후
2:5 ; 딤후 2:8 ; 벧후 1:12 ‘ 3:1,2 ; 계 3:3). 유다가 제시한 심판의 예는 다음과
같다.
①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 첫 번째 예는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한 후 불신앙으로 인해 심판을
받은 사건을 나타낸다. 이것은 이스라엘 각 지파에서 선발된 정탐꾼들이 가나안을 정
탐한 후에 돌아와 보고한 내용을 듣고 출애굽한 것을 원망하고 불신앙하였던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재용을 암시한다(민 14장, Cranfield, Bauckham). 이스라
엘 백성들은 출애굽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였고, 광야 생활 가운데
서 구름 기둥과 불 기둥을 통해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체험하였으며, 시내산에
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만을 제외한 열 지파의 정탐꾼들
은 불신앙에서 비롯된 부정적인 보고만을 함으로 이스라엘 백성 전체가 하나님을 원망
하고 신뢰하지 않게 되었다. 유다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상태를 “믿지 아니한
자들”이라고 정의하면서 불신앙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을 경고고
있다. 여기서 심판자로 지칭되는“주”에 대해서 혹자는 벧후 2:4을 기초로하여 “하
나님”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Green).그러나 “예수”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Justin, Origen, Jerome, Bauckham). 왜냐하면 본서에서 예수 그리스도
를 “주”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4,17,21,25절). 한편 “후에”에 해당하는 헬라
어 “토 듀테론”은 문자적으로 두번째를 가리키는 것으로 유다가 그리스도의 재림을
암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사용한 듯하다(Green). 즉 “토 듀테론”은 일차적으로 이
스라엘의 불신앙에 대한 심판을 나타내나 이차적으로는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신 주께
서 재림하셔서 배교한 그리스도인을 심판하실 것을 시사한다.
②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
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 유다가 두 번때로 제시한 예는 자신의 위치를
망각하고 타락한 천사들에 대한 심판이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에서 “지
위”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르켄”은 영역이나 자치권 혹은 책무를 가리키는 것으로
천사들이 자신의 영역과 책무를 버리고 배교한 사실을 가리킨다. 이 예는 두 가지 사
실을 생각하게 한다. 하나는 그들을 타락케 한 정욕이다. 타락한 천사들은 땅에 내려
와 여인들과 교접하였다(창 6:4 ; 욥 1:6). 이러한 사상은 본서에 자주 반영되고 있는
위경인 에녹1서에 상세하게 나타나고 있다(9:8 ; 10:11 ; 12:4). 또 다른 하나는 사단
과 그의 천사들의 교만으로 인한 반역이다(사 14:12 ; 24:21,22). 유다는 타락한 천사
들이 자신의 지위나 처소를 버리고 하나님을 반역하므로 심판을 당한 것과 거짔
교사들의 경우를 대비하여 하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가두셨으며”에 해당하는 엘라어 “테테레켄”은 완료 시상으로 하나님께서 타락한
천사들을 심판하여 이미 가두셨음을 나타낸다. “테테레켄”은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의 헬라어 “메 테레산타스”와 대조를 이루어 타락한 천사들이 자기 지위
를 지키지 아니하고 교만하여 음욕하여 자유로와지려고 하다가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
영원히 결박되어 갇히게 되었음을 시사한다. 그들은 비록 에녹서에 자주 나타나는 표
현인 “큰 날의 심판까지”(에녹서 10:6 ; 16:1 ; 22:4,10,11 ; 103:8), 즉 그리스도
의 재림을 통한 최후의 심판의 날까지 일시적으로 갇혀 있지만 그들의 결박은 영원한
것이다(Bauckham).
③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 --- 세 번째 예는 창 19장에 기록된 소돔과 고
모라의 멸망 사건이다. 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사건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
에 대한 예로 자주 나타난다(신 29:23 ; 사 1:9 ; 13:19 ; 렘 23:14 ; 49:18 ; 50:40
; 호 11:8 ; 암 4:11 ; 습 2:9). 유다는 본문의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이 앞
서 언급한 타락한 천사들과 같은 모양으로 즉 같은 종류의 범죄를 통하여 멸망당하였
음을 시사하고 있다. 위에서 “다른 색”이란 문자적으로 “다른 육체”를 의미한다.
즉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다른 육체와 성관계를 맺기를 원한
것과 천사들이 땅에 내려와 여인들과 성관계를 맺은 것을 비교한 것이다. 유다는 타락
한 천사들과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주신 질서를 무시함으로 영원한 불로
멸망당함같이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무시하는 거짓 교사들 역시 지옥의 영원한 심판을
받게 됨을 경고하고 있다.

8 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육체를 더럽히며 권위를 업신여기며 영광을
훼방하는도다

ㅇ그러한데 꿈꾸는 이 사람들도 그와 같이. ----- “그러한데”로 번역된 헬라어 “멘토
이”는 앞서 언급된 “세 가지 예, 특별히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심판의 예를 거짓 교
사들이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의미로 “그와같이”와 연결되어 거짓 교사
들이 이미 잘 알려진 세 가지 예와 같은 범죄를 반복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한편 “꿈
꾸는 이 사람들도”는 거짓 교사들을 가리킨다. 유다는 하나님의 진정한 계시의 수단
인 꿈을 거짓 교사들과 연결시킴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방종으로 이해하여 도
덕을 폐기할 분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라는 미명하에 도덕폐기론을 가르치고 있음을
암시한다.
(Green, Cranfield, Bauckham). 거짓 교사들이 범한 죄에 대해 유다는 세 가지로 요약
하고 있다.
① 육체를 더럽히며. --- 앞서 언급한 예와 마찬가지로 거짓 교사들은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과 타락한 천사들과 같이 하나님이 주신 질서를 무시하고 “다른 육체”와 성관
계를 맺음으로 자신의 육체를 더럽혔다(에녹 1서 7:1 ; 9:8 ; 10:11 ; 12:4 ; 15:3,4).

② 권위를 업신여기며. ---- “권위”의 헬라어 “퀴리오테타”는 문자적으로 “주권”
을 위미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해석은 세 가지이다. ꂛ 혹자는 인간의 권위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Calvin, Luther). ꂜ 혹자는 찬사의 주권을 위미한다고 주
장한다(Moffatt, Werdermann). ꂝ 혹자는 하나님이나 혹은 그리스도의 주권을
의미한다 (Blum, Cranfield, Green, Bauckham). 이 세가지 견해 중 마지막 견해가 타
당하다. 왜냐하면 유다가 거짓 교사들의 특성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그들이 예수 그리
스도의 주되심을 부인하는 자들이라고 이미 말하였기 때문디다(4절).
③ 영광을 훼방하는도다. ----- “영광”에 해당하는 헬라어 “돜사스”는 천사
들을 지칭한다(출 15:11 ; 벧후 2:10,Ganfiels, Blum). 거짓 교사들은 9.10절에서 나
타나는 바와 같이 천사들을 멸시하였다. 우대인들의 신앙에 따르면 천사들은 모세의
율법을 전달하였으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질서를 유지시키는 존재였다(행 7:38,53 ;
히 2:2, Josephus). 이러한 기능을 수행하는 천사들을 멸시하고 비방하는 것은 하나
님으로부터 율법을 분리시키고 율법을 악한 것으로 해석하는 것과 같은 행위였다
(Chaine, Bauckham).

9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ㅇ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
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짓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엿거늘. ----
유다는 거짓 교사들이 “영광”, 즉 천사들을 비방한 것이 잘못된 것을 지적하는 모
델로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사단을 대적하는 자로 알려진 천사장 미가엘을 들고 있다
(단 10:13,21 ; 12:1 ; 계 12:7). 이 예는 “모세의 승천”(Testament dg Moses or
Assumption of moses)에서 인용한 것이다. “모세의 승천”에 의하면 사단은 모세가
살인자라는 이유로(출 2:12) 모세의 시체에 대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였다. 천사장
미가엘은 분명히 권세와 능력과 위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단을 “훼방하는
판결”, 즉 비방하거나 고소를 하지 아니하고 사단에 대한 판결과 심판을 하나님의 주
권에 맡겨 버렸다. 본절에서 유다는 당시에 장 알려진 “모세의 승천”의 내용을 인용
하여 능력과 권세와 위엄을 가지고 있는 천사장 미가엘도 훼방하거나 고소하지 않았는
데 감히 거짓 교ㅛ사들의 범죄를 드러내고 있다. 한편 “주께서 너를 꾸짓으시기를 원
하노라”는 말은 슥 3:2의 말씀으로 “모세의 승천”에 이미 인용된 것이다. 미가엘의
이러한 선언은 홀로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유다는 이러한
미가엘의 예를 통해서 거짓 교사들이 천사를 비방하는 행위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난하
고 있다.

10 이 사람들은 무엇이든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 없는
짐승같이 본능으로 아는 그것으로 멸망하느니라

ㅇ이 사람들은 무엇이들지 그 알지 못하는 것을 훼방하는도다 또 저희는 이성없는 짐승
같이 본능으로 아는 거것으로 멸망하느니라. --- 거짓 교사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전달
하고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천사들에 대해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비방하였다. 그러한 그들의 행동은 이성이 없고 단지 본능(本能)으로 살아가는 짐
승의 행위와 다를 바 없는 것이었다(시 49:20). 결국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
님께서 구원하시는 출애굽 역사를 경함하고도 원망과 불신앙으로 인해 멸망당한 것이
나 소돔과 고모라의 사람들이 멸망당한 것과 같이 그들의 이성없는 짐승과 같은 행위
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하여 멸망당하게 된다.

11 화 있을찐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ㅇ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 “화 있을진저”는 예수께서 바리새인돠 서기관들에
게 하나님의 심판을 선언할 때 자주 사용하신 표현으로(마 23:13,15,16,23,25,27,29)
거짓 교사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엿음을 시사한다. 유다는 거짓 교사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심판을 언급하면서 그들의 죄를 구약 성경에 나타난 세 인물의 죄와 동일시
하고 있다.
①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 가인의 죄는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ꂛ 가
인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행위로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려 하엿으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열납하시지 않자 열납된 제사를 드렸던 형제 아벨을 살인하
는 죄를 범하였다(창 4:1-15 ; 히 11:4, Blum, Green). ꂜ 가인은 공의의 심판
과 구원을 부인하는 자였다(Cranfield, Bauckam, Green). 필로(Philo)나 창 4:7에 대
한 탈굼(Targum).은 가인이 “심판도 없고 심판자도 없으며 다른 세상, 즉 내세도 없
으며 의인에 대한 선한 보상의 선물도 없고 악인에 대한 징계도 없다”라고 말하였다
고 기술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가인이 미래의 심판을 부정하여 부도덕한 일을 자유
롭게 행하며 하나님의 공의를 부정하는 자로서 거짓 교사들과 동일한 최초의 이단자였
음을 시사한다.
② 삵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갔으며. --- 발람은 자신에게 약속된 커다란
보상에 대한 탐욕으로 인해서 발락의 요구에 부응하여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 숭배와
음행에 빠지도록 한 배교의 책임을 갖고 있다(민 31:16-19, Philo). 거짓 교사들은 발
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사람들에게 부도덕한, 범죄를 해도 아무런 상관
이 없다는 도덕폐기론을 가르쳐 사람들로 하여금 범죄에 빠지고 타락하려 배교하도록
하였다.
③ 고라의 패역을 좇아 멸망을 받았도다. ---- 고라는 다단과 아비람과 더불어 모세와
아론의 권위에 도전하여 반역한 자엿다(민 16:1-35 ; 26:9 ; 시 106:16-18). 유다는 고
라의 반역을 언급하여 거짓 교사들의 죄를 두 가지로 제시하고 있다.  ꂛ 고라가
모세의 권위에 반역한 것과 마찬가지로 거짓 교사들은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는 죄를 범
하였다(Bigg, Windisch). ꂜ 고라의 반역이 단순히 모세와 아론에 대한 반역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인 것과 마찬가지로 거짓 교사들도 도덕폐기론을
주장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권위를 부인하는 죄를 범하였다(Bauckham).

12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13 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ㅇ유다는 본문에서 여러 가지 은유를 통해서 거짓 교사들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다.
저희는 기탄없이 너희와 함께 먹으니 너희 애찬의 암초요. ---- “애찬”의 헬라어
“아가파이스”는 가난한 사람들을 초대하여 서로가 준비한 음식으로 구제하며 그리스
도 안에서 교제를 나누기 위한 식사를 의미했다. 이것은 실제로 “아가폐”라는 애찬
과 주의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성만찬으로 구분되나 신약 시대에는 두 가지가 명확
하게 구분되지 않았다. 본절에서 유다가 거짓 교사들이 애찬을 남용하여 자신의 탐욕
이나 음란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함은 물론(소전 11:20ff, ; 벧후 2:13).  두려
움 없이 불경건한 자세로 애찬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인 공동체에 악영향을 끼쳐 위험
하게 만들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암초”에 해당하는 헬라어“스필라데스”
에 대한 견해는 세 가지가 있다. ① 혹자는 더럽혀진 사람을 의미하다고 주장한다(23
절, Zahn, Didymus). ② 혹자는 오점이나 흠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벧후 2:13). ③
혹자는 암석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 세 가지 견해 중 첫째 견해를 제외한 나머지 나
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오점”으로 보는 견해의 경우 거짓 교사들의 행위는 애
찬을 모독하는 의미가 되며, “암석”르로 보는 견해의 경우 거짓 교사들의 행위는 공
동체의 믿음을 파선시키는 결과를 초래하게 됨을 시사한다(Blum).  거짓 교사들이 하
나님을 두려워함이 없이 애찬에 함부로 참여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아들을 희롱하는 것
으로 하나님의 가공할 많한 심판을 초래하게 된다(고전 11:27-32 ; 히 10:26-31).
ㅇ자기 몸만 기르는 목자요. --- 본문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① 혹자는 거짓 교사
들이 교회의 목회자들에게 순종하기는커녕 오히려 반역하며 자신이 목자임을 자처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igg). ② 혹자는 거짓 교사들이 스스로 교회의 지도자라고
자처하나 양을 돌보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만을 돌보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lum,
Cranfield, Green).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이것은 이스라엘 복자들이 양들
을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자신을 위하는 것을 나타내는 겔 34:2을 반영하는 것으로 11
절에서 언급된 자기 이익을 위하여 이스라엘을 음란과 우상 숭배에 빠지게 한 발람의
예와 연결된다.
ㅇ바람에 불려가는 물 없는 구름이요. --- 본문은 잠 25ㅣ:14을 반영한 은유이다. 팔레
스틴과 시리아 해변에 뜨는 구름들은 비를 뿌릴 것처럼 보이나 바람에 밀려서 그냥 지
나간은 경우가 흔하다. 이 은유는 비를 뿌리지 아니하고 그냥 지나가는 구름과 마찬가
지로 거짓 교사들의 주장과 교훈이 허망한 약속에 불과하며 전혀 쓸모가 없음을 시사
한다(Green).
ㅇ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요. --- 거짓 교사들은 열매를 맺을
가을에도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나무와 같은 존재이다. 나무의 열매는 그 나무를
평가하는 기준이나(마 7:20 ; 벧후 1:8) 거짓 교사들에게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연히
맺어야 할 열매들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뿌리까지 뽑혀 죽임을 당한 나무와 같기
때문이다. 한편 “죽고 또 죽어 뿌리까지 뽑힌”은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가
리킬 때 사용하된 표현으로(시 52:5 ; 잠 2:22) 거짓 교사들이 도저히 생명과 연결될
수 없는 심판을 받았음을 시사한다. 여기서 두 번 죽음을 나타내는 “죽고 또 죽어”
에 대해 두 가지 견해가 있다. ① 혹자는 육체의 죽음과 더불어 영적인 죽음을 의미하
다고 주장한다(Mayor). ② 혹자는 최후의 심판에 악한 자에 대한 심판으로 주어지는
둘째 사망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auckham).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
닌다.
ㅇ자기의 수치의 거품을 뿜는 바다의 거친 물결이요. ---- 본문은 사 57:20을 반영하는
것으로 본문의 초점은 파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파도로 인해서 해변에 밀려온 오물에
있다. 파도가 밀려와서 해변에 더러운 오물들을 뱉어 놓듯이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삶 속에서 오직 수치스러운 행위와 언어만을 내뱉어 놓는다.
ㅇ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 유리하는 별들이라. --- 본문은 에녹 1서
18:14ff를 반영한다. “영원히 예비된 캄캄한 흑암에 돌아갈”는 거짓 교사들의 궁극
적인 운명을 결정짓는 하나님의 영원한 심판을 상징한다(벧후 2:4). 한편 “유리하는
별들”은 유성이나 혹성, 혹은 병똥을 의미하는 것으로 거짓 교사를 가리키는 은유이
다. 유리하는 별들이 항해하는 제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하는 바와 같이 거짓 교사들도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존재들임을 시사한다. 그
리스도인들은 하늘의 별들과 같이 빛날 것이나(단 12:3) 겆ㅅ 교사들은 유리하는 별
들과 마찬가지로 어둠 속세 파묻혀 심판을 당하여 사라질 것이다.

14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5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ㅇ아담의 칠세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 --- “아담의 칠세손
에녹”이라는 표현은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창 5:3-24과 역대상 1:1-3에서
아담을 일대손으로하여 계산할 경우 에녹이 칠대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유다는 창세
기나 역대상을 인용한 것이 아니라 에녹서를  인용한 것이다(에녹서 60:8 ; 93:3). 유
다는 당시에 인정을 받고 많이 알려진 위경인 에녹서의 인용을 통해서 자신의 진술의
진정성을 강조하고 있다(Gteen). 이어지는 인용의 내용은 에녹서 1:4, 9에서 비롯된
것이다.
ㅇ“보라 주께서 그 수많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셧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  “주께서 ... 임하셨나니”는 에녹서에
서 하나님의 종말론적 도래 즉 현현에 대한 예언이었으나 (에녹서 1:4), 유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파루시아에 적용해서 악한 자의 심판을 위한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도하고
있다. 한편 그리스도의 파루시아에 적용해서 악한 자의 심판을 위한 그리스도의 재람
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그리스도의 재림에 동반되는 “그 수만의 거룩한 자”는 천사
들을 의미한다(신 33:2 ; 슥 14:5 ; 마 16:27, Cranfield). 그리스도께서는 파루시아
때에 천사들과 함께 임하셔서 불경건한 자들의 모든 것을 심판하실 것이다.
ㅇ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
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 뉴다는 본문에서 “아세베스”와 관련된
제 개의 단어, 즉 “투스 아세베이스(경건치 않은 자)”, “에세베산(경건치 않게)”,
“아세베이스(경건치 않은)”을 사용하여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아니한 자의 행위와 말
을 심판히실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세베스”와 관련된 이러한 것을 강조하고 있다.
“아세베스”와 관련된 이러한 단어들은 이미 유다가 거짓 교사에게 적용한 것이다
(4절). 유다는 의도적인 인용을 통해 경건치 않은 자의 행위와 말이 그리스도의 심판
의 대상이 된 것처럼 거짓 교사들의 행위와 말이 파루시아 때에 그리스도의 심판의 대
상이 될 것임을 암시한다. 거짓 교사들의 행위와 말은 주되신 그리스도를 거스르고 모
욕하는 것이기에 파루시아 때에 반드시 정죄를 받게 될 것이다(4-10).

16 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불만을 토하는 자며 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ㅇ유다는 본절에서 다시 한 번 거짓 교사들에 대해 정의를 내린다. 혹자는 본절의 내용
을 유다가 “모세의 승천”에서 인용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에녹서에서 인용한 것이라
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듯하다.
ㅇ이 사람들은 원망하는 자며,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원망
하고 그의 뜻을 거부하였던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민 14:2,27,29,36 ; 신 1:27 ; 시
106:25 ; 고전 10:10) 앞절에서 언급된 에녹서의 인용문에서 불경건한 자들이 주를
거스려 강퍅한 말을 한 것에 대한 설명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양에서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한 것처럼 거짓 교사들은 주를 부인하고 하나님의 권위를 받아
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원망하고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자유를 남용하여 율법
을 멸시하고 도덕폐기론을 주장하였다.
ㅇ불만을 토하는 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멤프시모이로이”는 “원망하는 자”
를 강조하는 표현으로 거짓 교사들이 자신의 몫에 대해 늘 불만족하여 습관적으로 비
판하고 물평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도덕적인 규정들을 불만
족스럽게 생각하여 내던져 버리고 도덕폐기론을 주장하였다.
ㅇ그 정욕대로 행하는 자라. --- 이것은 “그들의 정욕을 따라 산다”라는 의미로 거짓
교사들이 광야의 이스라엘 백성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들의 뜻을 따라
행동하였음을 시사한다(Blum, Bauckham, Green). 그 결과 그들은 정욕, 탐욕과 같은
죄에 빠지게 되었다.
ㅇ그 입으로 자랑하는 말을 내며. --- “자랑하는”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페롱카”는
문자적으로 “거대한”을 의미한다. “거대한”이란 말은 “안디오쿠스 에피파네스”
(단 11:36)나 적그리스도(계 13:5)를 연상케 하는 표현으로 하나님을 대적하여 떠드는
것을 의미한다(에녹서 5:4 ‘ 101:3). 이것는 거짓 교사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멸시하
고 거부하여 도독폐기론을 주장함으로 하나님을 향해 거만한 태도를 취하였음을 시사
한다.
ㅇ이를 위하여 아첨하느니라. --- 이것은 유다가 들은 구약 성경의 예에서 발람의 예에
해당된다(11절). 발람이 삯을 위하여 발락의 요구대로 이스라엘 백성을 음란과 우상
숭배에 빠지게 했던 것처럼 거짓 교사들의 행동은 자신의 이익(利益)을 위한 것이었
다. 한편 “아첨하느니라”에 해당하는 헬라어 “다우마존테스 프로소파”는 히브리
어 “나사 파님”을 번역한 것으로(신 10:17 ; 대하 19:7 ; 잠 18:5). 사람을 편견으
로 대하거나 뇌물을 줌으로 정의를 왜곡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거짓 교사
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고회 내의 부자나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에게 아부하였
음을 암시한다(Green, Bauckham).

17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의 미리한 말을 기억하라

ㅇ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이 미리 한 말을 기억하라.
---- 유다는 4-16절까지 거짓 교사들에 대해서 비판한 후 본절에서부터 수신자들에게
권면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들”은 사도들의 권위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시사한다. 한편 "미리 한"에 해당하는 헬라어 “프로에이레메논”은
사도들이 유다가 본서를 기록하기 이전 시대에 속한 사람들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사
도들이 이전에 미리 거짓 교사들에 대해 권면과 경고를 하였음을 시사한다(Green).
수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권위를 가지고 거짓 교사들에 대해 경고한 사도들의 말
을 기억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거짓 교사들의 실체를 분명히 파악하고 그 유혹에 빠
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ㅇ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치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기롱하
는 자들이 있을라 하엿나니. --- 본문은 사도들이 미리 경고한 말씀이다. “마지막
째”는 그리스도의 초림 때부터 재림 때까지를 가리킨다(히 1:2 ‘ 약 5:3 ’ 벧전 1:5,20). 한편
“기롱하는 자들”은 신앙과 도덕을 무시하거난 멸시하는 자를 가리
키는 것으로(시 1:1 ; 잠 1:22 ; 9:7,8 ; 13:1) 거짓 교사를 의미 한다(벧후 3:3).
기롱자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불경건하게 행동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보
다는 자기의 뜻대로 행하였다(14, 15절). 이러한 거짓 교사들의 등장은 마지막 때의
특징이다(막 13:5-23).

19 이 사람들은 당을 짓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ㅇ유다는 12절과 16절에 이어 다시 한 번 거짓 교사들에 대해 두 가지로 정의하고 있다.
당을 짓는 자며. ---- 이것은 거짓 교사들이 교회 안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자신
들을 구분하였음을 시사한다. 그들은 교회 밖으로 나거서 또다른 그룹을 형성한 것이
아니다. 고라와 같이(11절) 교회 내에서 애찬하도 참여하면서 자신들만이 참된 영을
소유(所有)한 것처럼 인식하고 그룹을 형성하였다(Bauckham, Bium).
ㅇ육에 속한 자며 성령은 없는 자니라. -- “육에 속한 자”의 헬라어 “프쉬키코이”
는 “성령은 없는 자”와 동일한 의미로 하나님과 전혀 관계가 없고 단지 세상적인
생활을 영위하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들은 스스로 영적인 존재라고 주장할지라도 실
제로는 종말론적 선물인 성령을 소유하지 못한 비그리스도인이었다.

2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ㅇ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 “믿음”은 복음을 기
라킨다(3절, Green, Bauckham). 이것이 거룩한 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Bium). 한편 “자기를 건축하며”란 말은 수신자들이 사도들을 통해
서 전해받은 복음을 잘 상고하고 연구하여서 터되신 그리스도 안에서(고전 3:11)뿌리
를 내려 공동체 전체가 영적으로 성숙해져 가야 함을 의미한다(Green, Bauckham).
dbek는 이러한 권면을 통해 수신자들이 거짓 교사들의 더덕폐기론에 미혹되지 말고
오직 복음에 근거해서 영적 성장을 이룸으로 거룩한 생활을 영위해야 함을 강조한다.
ㅇ성령으로 기도하며. --- “성령으로”의 헬라어 “엔 프뉴마티”는 “성령의 영감아
래서”라는 의미이다(마 22:43 ; 막 12:36 ; 눅 2:27 ; 4:1 ; 롬 8:9 ; 고전 12:3 ;
계 1:10 ; 4:2). 거짓 교사들은 스스로 영적인 존재라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성령을
소유하지 못한 자로서 하나님의 뜻보다는 자기 정욕대로 불경건하게 행하였다. 그러
나 하나님의 성령을 소유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인 수신자들은 하니님의 일을 수행하는
성령의 뜻대로 기도해야 한다(롬 8:26,27 ; 갈 4:6 ; 엡 6:18).

21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ㅇ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하나님의 사랑”에 해당하는 헬라어 “아
가페 데우”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① 혹자는 주격적 속격으로 이해하여 “그
리스도인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Bauckham, Blum). ② 혹자
는 목적격적 속격으로 이해하여 “하나님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Chaine, Cantinat). 두 가지 견해 중 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문과 병
행(竝行)을 이루는 요 15:9의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가 제자들에 대한 그리스도
의 사랑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은 하나밍의 뜻과 계명에 순종함으로 이루어진다.
ㅇ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 “영생”은 그리스
도인들이 현재에도 향유하는 것이나 그것이 궁극적으로 성취되는 때는 그리스도의 재
림의때이다. 한편 “긍휼”은 하나미의 백성이 고대하는 종말론적 소망으로(마 5:7 ;
딤후 1:18 ; 마카비 2서 2:7 ; 에녹 1서 1:8 ) 항상 하나님과 연관되어 사용되었다.
그러나 유다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이라고 기술함으로 하나님께서 마지막 날
의 심판을 예수 그리스도에게 위임(委任)하셨음을 나타내고 있다(Bauvkham). 그리스
도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통한 속죄 사역으로 인해서 그리스도 안에서 긍
휼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3절, Green).

22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ㅇ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 “의심하는 자들”은 거짓 교사들의 도덕
폐기론에 미혹되어 진리인 복음에 굳게 서지 못하고 흔들리는 자들을 가리킨다. 수신
자들은 거짓 교사들의 잘못된 가르침에 의해서 흔들리느 자들을 보여줌으로 그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23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ㅇ유다는 이제 마지막으로 수신자들이 해야 할 것에 대해서 권면하고 있다.
ㅇ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 “불”은 지옥의 마지막 심판을 가리
킨다(7절). 혹자는 “어떤 자”가 이미 불 속에 있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하나
(windisch) 불 속에 떨어지기직전에 있는 자, 즉 그냥 내버려두면 불 속에 떨어질 수
밖에 없는 자들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Bauckham, Blum). 한편 “끌어내어”는 슥
3:2을 반영하는 것으로 거짓 교사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범죄 행위를 일삼는 즈들을
구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거짓 교사의 영향을 받아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거부하고 부도덕한 행위를 일삼으므로 지옥의 불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 자들
을 건져내어 행제애로써 책망하고 경고함으로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설 수 있도록 해
야 한다(마 18:15-17 ; 눅 17:3 ; 갈 6:1 ; 살후 3:15 ; 딤전 5:20 ; 딛 3:10 ; 약 5:19,20).
ㅇ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
“육체”는 죄성이 있는 신체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거짓 교사들이 탐닉했던 육체
의 죄를 의미한다(8,10절).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이 주장했던 교리로 인해서 자유를
빙자한 방종으로 부도덕한 죄를 범하였고 그 죄로 인해서 자신을 부패시켰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러한 자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과 진리를 보여줌으로 등휼히 여겨
야 하지만 그들의 죄에 전염되어 거짓 교사들처럼 죄를 탐닉하지 않도록 주를 경외
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의해야 한다.

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자

ㅇ24, 25절은 송영이다. 유다는 이 송영에서 거짓 교사의 가르침과 교리로 인해 어려움
을 당하고 있는 수신자들을 위로하고 보호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데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ㅇ서게 하실 자. ---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는 시편 기자들이 걸
림돌에 걸려 넘어질 지경에서 자신들을 보호하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던 것을 반영한다
(시 38:16 ; 56:13 ; 66:9 ; 73:2 ; 91:12 ; 116:8 ; 121:3-8 ; 140:4 ; 141:9). 신약
성경에도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시는 분으로 나타난다(요 17:11 ; 롬 16:26
; 엡 3:20 ; 살후 3:3 ; 계 3:10). 유다는 이러한 찬양을 통해 하나남께서 수신자들을
거짓 교사들의 거짓 가르침과 교리  그리고 부도덕성에서 보호하셔서 파루시아 때에
온전한 구원을 얻게 하실 것임을 드러냄으로 수신자들을 위ㅣ로하고 있다. 한편 “흠
이 없게”의 헬라어 “아모무스”는 제사 용어로 하나님께서 수신자들을 정결하게 하
시고 온전하게 하실 것임을 시사한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을 온전하게 하셔서 자
신의 존전(尊前)에 담대하게 그리고 즐거움으로 설 수 있도록 하실 것이다.

25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ㅇ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권
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 지어다. 아멘. -- “우리 구주 홀로 하
나이신 하나님께”에서 “구주”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전통적인 유대적 용어로서(시
94:1) 신약 성경에서는 드물게 하나님께 사용된다(눅 1:47 ; 딤전 1:1 ; 2:3 ; 4:10
; 딛 1:3 ; 2:10 ; 3:4). 또한 “홀로 하나이신”의 헬라어 “모노”는 유대인 신앙
고백에서 독특하게 사용되는 “유일신이신 참 하나님”을 나타내며 신약 성경의 송영
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고백이다(딤전 1:17 ; 6:15, 16). 한편 “우리 주 예수 그리스
도로 말미암아”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시며 성도들
은 오직 그를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음을 시사한다(벧전 4:11). 유다는
참 구원자이시며 참 신이신 유일한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과거와 현대
그리고 미래까지 하나님의 네 가지 속성이 있을 것을 찬양하고 있다.
① 영광 -- 이것은 모든 송영에서 거의 발견되는 하나님 존재의 궁극적인 본질로서
광채를 가리킨다.
② 위엄 -- 이것은 영광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자신을 가리키는 신적인 본질로서 하나
님의 경외스러운 초월성을 나타낸다(Kelly).
③ 권력 -- 이것은 송영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딤전 6:16 ; 벧전 4:11 ;
5:11 ; 계 1:6 ; 5:13) 하나님의 힘(God,s power)을 가리킨다.
④ 권세 -- 이것은 권력과 밀접한 의미를 지니나 특히 통치자로서의 하나님의 주권적
권위를 나타낸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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