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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요한2서

[스크랩] 요한이서 (1 : 1~13)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17:32
요한이서 1장


1 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ㅇ장로는. - '장로'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프레스뷔테로스'
에 관사 '호'가 있는 것으로 보아 본서의 저자 요한은 수신자들에게 잘 알려
져 있었으며 친근한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요한은 신약 성경의 다른 서신
과는 달리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아니하고 '장로'라는 칭호를 사용하여 자신이 나이가
많은 연장자로서 존경을 받을 만한 존재일 뿐만 아니라 감독과 같이 교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이단의 거짓 교리에 대항하여 사도의 가르침을 전하는 권위를 가지
고 있는 자임을 시사한다(Stott, Barker, Smalley, Westcott).
ㅇ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 본서의 수신자를 나타내는 '택
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의 헬라어 '에클려테 퀴리아 카이 토이스 테크노이
스 아우테스'
에 대한 견해는 크게 두 가지로 대별된다. (1)혹자는 '에클려테'나 '퀴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이라고 주장한다(Clement, Harris). (2)혹자는 지방 교회와 같은 기
독교 공동체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Stott, Westcott, Brooke, Bruce, Dodd).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왜냐하면 본서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면 한 개인에게 해당하
지만 사실상 공동체에 대한 교훈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Barker). 따라서 수신자
들은 요한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지방 교회와 교인들이라고 볼 수 있다.
ㅇ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
'참으로'의 헬라어 '엔 알레데이아'에 대해서 혹자는 관사가
없음을 근거로 '진실로'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Plummer). 그러나 문맥상 본서에서 이
단자들에 대한 경고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진리 안에서'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Stott). 한편 본절에 나타난 '사랑'과 '진리'는 본서 내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으로
이단자들의 거짓된 가르침을 대항하는 방패이다. 요한은 '사랑'과 '진리'의 상관 관계
를 통해서 자신과 진리 안에 거한 자들의 사랑을 나타냄으로 교회와 교인들이 갖추어
야 할 '진리 안에서 사랑으로 행함'을 강조하고 있다(4-6절).

2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ㅇ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 진리를 인함이로다. - 본절은 요한과 진
리를 아는 자들이 수신자를 사랑하는 이유이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 할'에 해당하는
헬라어 '카이메드 헤몬 에스타이 에이스 톤 아이오나'
는 종말론적 의미를 갖는다. 영원히 우리와 함께하는
진리는 성령을 통해서 선물로 주어지며 이 진리를 통해서 상호에 대한 사랑이 지속되
게 된다(Stott, Smalley). 한편 '우리 안에 거하여...진리를 인함이라'는 진리가 앞서
언급된 사랑의 원인임을 시사한다. 진리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의 근본이며 동기이다.
진리는 형제를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내포하며(요일2:7,8; 3:11) 그리스도인 안
에 거하여 내적인 동기 부여와 충동을 통해서 사랑할 수 있도록 한다.

3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ㅇ본절은 당시 서신의 관행을 따른 수신자들에 대한 축원(祝願)이다.
ㅇ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 '은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인들에게 거저
주시를 호의와 선물이며(약1:17) '긍휼'은 죄인을 불쌍히 여기시며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낸다(딛3:5). 이러한 은혜와 긍휼을 근본으로 하여 그리스도인들
에게 주어진 결과가 바로 '평강'이다.
ㅇ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파라 데우 파트로스, 카이
파라 예수 크리스투 투 휘우 투 파트로스). - '아버지
의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여러 칭호 가운데 독특한 것으로 예수께서 그리스도일 뿐
만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는 아들임을 강조한다. 이것은 요한
의 신학을 반영한 것으로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를 계시하고 계셔서 아들
을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과 같음을 시사한다(뇨20:31; 요일2:23, Smalley, Brooke,
Bengel). 한편 본문에서 '...로부터'의 헬라어 '파라'는 하나님 아버지
와 예수 그리스도에게 각각 적용되어 두 번 사용되고 있다. 이는 아버지와 동등하게
아들도 축복의 근원이 되심을 시사한다(Stott).
ㅇ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 요한은 바울이 자신의 서신에서 인
사한 것과는 달리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를 삽입하여 강조하고 있다. 이는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진리와 사랑'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
의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진리이신 예수의 생을 통해서 계시되었으며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통해서 드러난 그의 사랑 안에서 현시되었음을 시사한다(요일4:9,10, Smalley,
Barker). 또한 이러한 '진리와 사랑'을 통해서 수신자들이 이단자의 거짓 교리에 대처
해 나갈 수 있음을 강조한다. 이러한 진리와 사랑은 불가 분리의 관계를 형성하여 그
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진리 안에서 사랑할 수 있게 하며 사랑을 통해서 진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한다(Stott).

4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ㅇ너의 자녀 중에.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 톤 테크논 수'
는 부분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몇몇'의 헬라어 '티나스'
를 필요로 한다. 이 '몇몇'이 가리키는 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
다. (1)혹자는 교회 구성원들 중 순회하다가 요한에게 와서 만나게 된 자들을 가리킨
다고 주장한다(Marshall, Stott, Bruce). (2)혹자는 교회가 이단의 거짓 교리에 의해
서 어려워지고 대다수의 사람들이 그 교리는 따르게 되었을 때 진리와 사랑 가운데 있
었던 몇몇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Brooke, Smalley, Houlden, Schnackenburg).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하다.
ㅇ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 그리스도인들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계
명은 단순히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 계명은 이중적인 의미를
내포하는 것으로 예수 안에서 믿고 서로 사랑하는 것을 가리킨다(요일3:23, Smalley).
이는 요한이 본서에서 강조하는 '진리와 사랑'을 나타내는 것으로 신실한 그리스도인
들이 지녀야 할 삶의 특징이다. 한편 요한은 예수께로부터 받은 계명이라고 표현하지
않고(요13:34; 15:12,17) '아버지께' 받은 계명이라고 진술한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
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모든 진리와 메시지의 궁극적인 근원임을 시사한다
(Marshall, Westcott).
ㅇ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 '진리에'로 번역된 헬라어 '엔 알
레데이아'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관사가 없
는 것을 이유로 '진실하게'와 같이 부사적으로 해석한다(Barker). (2)혹자는 앞절에서
관사를 사용하지 않고 '진리와 사랑'을 표현한 것과 마찬가지로 관사와 관계없이 '진
리 안에서'를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malley).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 타당성을 지닌
다. 한편 '행하는'의 헬라어 '페리파툰타스'는 현재
분사로서 복음과 그 도덕적 기준을 따라 일정하게 빛 가운데 살아가는 것을 시사한다
(요일1:7).

5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ㅇ본절은 요일4:21을 반영한다.
ㅇ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 '내가...구하노니'의 헬라어
'에로토'는 서간체이다. 요한은 자신이 명령할 수 있는 위치와 권한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청하는 표현을 씀으로 자신이 수신자들에게 강조하고 싶
어했던 중심적인 문제로 접근하고 있다. 한편 '서로 사랑하자'의 헬라어 '아가포멘 알
렐루스'는 요 13:34; 15:12,17)에 나타난 예
수의 말씀을 배경으로 한 것으로 현재 시상이다. 이는 그리스도인의 특징인 상호간의
사랑이 지속적인 것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요일
4:7) 아들되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행하셨던 것이며(요일3:16) 성령을 통해
서 그리스도인 안에서 성취되어 가는 것으로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비이기적인 행위를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자발적(自發的)인 순종이다(요일4:13-15, Barker,
Smalley).
ㅇ이는 새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 본
문은 요일2:7에 대한 설명이다(요일2:3-5,10; 3:11-18,23; 4:7,11,21). '서로 사랑하
라'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된 순간부터 주어진 의무이며 그리스도인들이 실행해야 할
계명이다(Stott).

6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ㅇ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 본절은 '사랑'이 하
나님에 대한 사랑을 가리키는지 아니면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가리키는지는 분명하지 않
다. 그러나 그 두 종류의 사랑은 분리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 둘 다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Westcott, Smalley). 두 종류의 사
랑은 상관 관계를 맺고 있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인들 상호간의 사랑으로
나타난다(요일4:7-11).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그의 계명에 대한 순종을 요구한다(요
14:15,21; 15:10; 요일5:2,3). 즉 사랑의 시금석은 그의 계명에 순종하여 지키는 것이
다.
ㅇ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
'그 가운데서'에 해당하는 헬라어 '엔 아우테'에서 '아우테'는 여성
명사를 받는 지시 대명사로서 여성 명사인 '계명'(헤 엔톨레)과
'사랑'(헤 아가페) 중 하나를 가리킨다. 이 두 가지 중 '엔 아우테'
는 '사랑'을 가리킨다(Smalley). 하나님에 대해 순종하는 것을 드러내는 방법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이 계명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수신자들이 그리스
도를 처음 영접한 순간부터 기독교 복음에 대한 설교를 통해서 들어 온 것이다(요일
1:1-5). 한편 '행하라'의 헬라어 '페리파테테'는 문자적으로
'걷는다'라는 의미로 생활을 통해서 사랑의 계명을 충실히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
계명을 행하는 삶은 어둠에 거하지 아니하고 빛 가운데 거하는 삶으로 하나님과 더불
어 사는 삶이다.

7 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ㅇ개역성경에는 '호티'('왜냐하면')가 생략되어 있다. 이는 사랑과 진리의
관계에 대해 언급한 4-6절까지의 내용과 7-11절에서 언급될 '미혹하는 자와 적그리스
도에 대한 경고'가 상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시사한다. '진리와 사랑'은 그리스도인이
갖추어야 할 기독교의 가장 중심적인 요소로서 이를 부인하거나 거부하는 자들은 곧
미혹하는 자이며 적그리스도들이다. 본절은 요일2:23,27과 4:1-3을 반영한다.
ㅇ미혹하는 자가 많이 세상에 나왔나니. - '많이'로 번역된 헬라어 '폴로이'
는 4절에 나타난 '너의 자녀 중에'에서 암시된 '몇몇'(티나스)
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이는 수신자들이 속한 교회에서 진리를 따라 살아가는 자들
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으나 미혹하는 자를 따라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부인하는 자들은
매우 많았음을 시사한다. 한편 '나왔나니'에 해당하는 헬라어 '여셀돈'
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1)미혹하는 자들이 자신들의 무리를 형성
하기 위하여 교회에서 나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요일2:19). (2)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에게서 나와 세상에 들어오셨고(요17:18; 20:21; 요삼1:7) 같은 단어가 사용되는 것으
로 보아 미혹하는 자들이 잘못된 자신들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하여 나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ㅇ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자라. - 본절은 요일4:2을 반영
한 것으로 미혹하는 자의 정체를 나타낸다. 본절과 병행을 이루는 요일4:2에서는 완료
분사인 '엘렐위도타'('오신 것을')가 사용되어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육체로 세상에 오셨음을 나타내나 본절에서는 현재 분사인 '에르코메논'
('임하심을')이 사용되어 미래 시제의 의미 즉, 그리스도의 재림을 암
시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본절이 그리스도의 재림을 시사하는 것으로 이해할 이
유가 없다. 요한이 요일4:2에서와 같이 완료 시상을 사용하지 않고 현재 시상을 사용
한 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이 초시간적인 사건임을 나타내기 위함이다(Barker,
Marshall, Stott, Brooke, Alford). 미혹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세상
에 오셨음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ㅇ이것이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후토스 에스틴 호 플라노스 카이 호 안티크
리스토스). - 본문에는 관사 '호'가 미혹하는 자와 적그리스도에 대해 수신자들이 잘
알고 있었음
을 시사한다(Smalley). 이러한 이단자들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로서(요일2:18,22,
26)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과 교제를 회복한 그리스도인들을 파괴(破壞)시킨다(9
절).

8 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ㅇ너희는 너희를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고 오직 온전한 상을 얻으라. - '우
리의 일한 것을'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너희가 일한 것을'을 가리킨
다고 주장한다(what you have worked for, NIV,RSV,Stott, Bultmann, Schnackenburg).
(2)혹자는 '우리가 일한 것을'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which we have wrought, KJV,
NEB, RV, JB, Brooke, Marshall, Westcott). 두 가지 견해 중 후자가 타당한 듯하다.
만약 수신자들이 미혹하는 자의 속임수에 넘어가 그리스도를 대적한다면 요한을 비롯
한 많은 사도들이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수고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기 때문이
다(갈4:11,19, Barker). 한편 '온전한 상'의 헬라어 '미스돈 플레레'
는 유대적인 표현으로(LXX 룻2:12) 신약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인들의 신실
한 봉사에 대한 보상을 가리킨다. 본절에서 '온전한 상'은 그리스도인이 신실하게 행
한 진리와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전한 영생의 보상을 의미한다
(벧전1:9; 요일4:14-16, Smalley).

9 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ㅇ지내쳐 그리스도 교훈 안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마다 하나님을 모시지 못하되 교훈
안에 거하는 이 사람이 아버지와 아들을 모시느니라. - 미혹하는 자와 적그리스도를
따라 행할 때 온전한 상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함을 강조한 앞절에 이어 본절은 그
리스도의 교훈에 거하지 않으면 하나님조차도 상실하게 됨을 나타낸다. '지내쳐'로 번
역된 헬라어 '프로아곤'은 진리를 넘어서 지나치게 나아간 것을 가
리키는 것으로 미혹하는 자들이 스스로 믿음의 초보 상태를 벗어나 진보되고 성숙된
믿음을 소유하였다고 주장하는 잘못된 모습을 나타낸다(Stott, Smalley). 한편 '그리
스도의 교훈'에 해당하는 헬라어 '테 디다케 투 크리스투'
에서 나타난 소유격에 대한 견해는 두 가지이다. (1)혹자는 주격적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의 교훈'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Westcott, Stott,
Brooke, Schnackenburg). (2)혹자는 목적격적 소유격으로 해석하여 '그리스도에 관한
교훈'을 의미한다고 주장한다(Smith, Bultmann, Marshall, Smalley). 두 가지 견해는
나름대로의 타당성을 지닌다. 왜냐하면 두 가지 견해가 불가 분리의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가리키는 그리스도에 관한 교훈과 그리스도
께서 명령하신 '서로 사랑하라'는 교훈은 결코 분리될 수 없으며 전자는 믿음의 근본
을 이루는 진리를 나타내며 후자는 진리에서 비롯된 믿음의 표현을 나타낸다(Barker).

10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

ㅇ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
사도 말라. - '이 교훈'은 앞절에서 언급된 그리스도의 교훈을 가리키는 것으로 요한
이 본서에서 특히 강조하는 '진리와 사랑'을 의미한다. 한편 본절의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는 명령은 요한의 교훈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듯하다. 왜냐하면 요한은
다른 사도와는 달리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을 특히 강조하며 나그네 된 자들을 환대
해야 함을 강조했기 때문이다(요삼1:5-8). 그러나 본문의 '들이지도 말고'는 사적(私
的)인 환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신약성경에서 '집'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을 예배
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만났던 장소로서(롬16:5; 고전16:19; 골4:15; 몬
1:2) 미혹하는 자들을 '집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는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미혹하는 자
들을 공식적으로 환대하는 행위를 말하는 것이다(Stott, Smalley). 그러기에 요한은
교묘하게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고 거짓된 진리를 자랑하며 선전하는 자
들을 강력하게 거절할 것을 권면한다.

11 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ㅇ그에게 인사하는 자는 그 악한 일에 참예하는 자임이니라. - 본절은 미혹하는 자를
받아들이지도 말고 인사하지도 말라는 명령에 대한 이유이다. 미혹하는 자들과의 인사
는 그들과의 만남의 시작이나 혹은 끝을 의미하는 것으로 미혹하는 자들과의 교제를
의미한다(Smalley). 그들과의 교제는 그들이 저지르는 악한 일 즉, 교리적으로 그리스
도께서 육체적으로 오심을 부인하는 죄와 윤리적으로 타인의 고난에 동참하는 사랑의
중요성을 부인하는 죄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행위에 참여하다가는 온전한 상을 상
실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조차도 잃어버리고 영원한 파멸을 향하게 된다(마6:24; 고전
10:20).

12 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ㅇ내가 너희에게 쓸 것이 많으나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 원치 아니하고 오히려 너희에
게 가서 면대하여 말하려 하니. - '원치 아니하고'의 헬라어 '우크 에불레덴'
은 서간체 단순 과거이다. 이는 수신자들이 서신을 받아보았을
때를 기준으로 하여 요한이 본 서신을 기록하였음을 나타낸다. 한편 '면대하여'로 번
역된 헬라어 '스토마 프로스 스토마'는 문자
적으로 '입과 입으로'라는 의미로 '종이와 먹으로 쓰기를'과 대조를 이루는 표현이다.
요한은 본절에서 수신자들에게 전해야 할 말이 많으나 더 이상 서신으로 교제를 나누
지 아니하고 직접 만나기를 원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ㅇ이는 너희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 - 본문은 요한이 서신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수신자들을 만나기를 원하는 이유이다. 그것은 온전한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이
다. 이 기쁨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인간의 교제를 통해서
성취될 수 있다(요일1:3,4).

13 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ㅇ택하심을 입은 네 자매의 자녀가 네게 문안하느니라. - 본절의 마지막 인사는 본서
처음에 나타난 인사인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와 병행(竝行)을 이룬다
(1절). '수'('네')와 '세'('네게')는 집합적인 의미를 지닌 단수로
서 수신자들이 속한 그리스도인 공동체 전체를 가리킨다(Marshall, Smalley, Barker).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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