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예레미야 7장 주석
예레미야 7장 주석
=====7:1
말씀이 임하니라 - 본절부터는 성전에서의 설교를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형식은 긴 산문체의 연설문 형식을 띠고 있으며, 다소 공식문적인 냄새를 풍기고 있
다. 또한 여기에는 두드러진 패턴이 엿보이고 있는데, 다른 설교에서도 나타난다. 이
패턴은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여호와의 말씀과 율법의 선언, 민족의 배도에 대
한 묘사, 심판의 공표(公表)가 그것이다.
=====7:2
여호와의 집 문에 서서 - 이 말씀은 여호야김이 왕이 된 직후에 여호와께로부터 예
레미야에게 주어진 것 같다. 그는 '여호와께 경배하러 들어가는' 유다인에게 말씀을
선포하는데, 여기서 '경배하다'란 말의 원어는 '솨하'(* )로서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원래 이 말은 높은 신분에 있는 자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부복하
여 엎드린다는 의미를 가졌다. 따라서 유다인들이 하나님께 경배하러 왔다면, 그것은
그에게 충성과 언약을 지키겠다고 다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들이 행동으로
그것을 뒷바침하고 있지 않다는 데 있었다.
=====7:3
너희 길과 행위를...이곳에 거하게 하리라 - 5~7절에서 보다 상세히 부연 설명되고
있는 본문은, 성전에 들어가는 자의 합당한 조건을 제시하는 입당송(入堂頌)과 같은
인상을 준다(시15,24편; 사1:16,17; 미6:6-8 참조). 이런 맥락에서 벌게이트역
(Vulgate)은 본문 후반부를 '그리하면 내가 이곳에서 너희와 함께 거할 것이다'라고
번역했다. 이 번역은 '이곳'에 해당하는 '마콤'(* )을 '성전'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7절의 '이곳'이 가나안 땅을 명백히 가리킨다는 점에서 다소 애매한 감을 준
다. 어떤 해석을 따르든 간에 여기서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는 분명하다. 여호와께서는
백성들이 그의 주권과 언약 요구 사항을 거부하고 있는 이상, 앞으로는 결코 성전과
예루살렘의 보호자가 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축복과 보호의 약속은 오직 그
의 언약과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유효한 것이다(신7:12-15). 그러나 그 당시 대부분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한 하나님의 보호가 보장되므로 유다는 멸망되
지 않는다고 역설하였으며, 또한 모든 백성이 이를 환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지 않고 성전 자체에 의존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우
상 숭배일 뿐이다. 예레미야 역시 성전 예배를 무시한 적은 없다(31:6' 33:11).
=====7:4
탈굼역(Targum)은 본절을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너희는 여호와의 전에서 경배할
지어다. 너희는 여호와의 전에서 제사할지어다. 너희는 여호와의 전에서 찬양할지어
다. 그리고 일 년에 세번 그 앞에 나아올지어다 라고 말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을 믿
지 말라.' 여기에 근거하면, '여호와의 전'이라는 말이 삼중적으로 반복되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 미혹되어, 성전 예배가 계속
되는 한 안전할 것으로 보았다. 즉 하나님께서 어찌 당신을 예배하는 이런 제도를 이
방인들의 손에 내맡겨버리겠느냐 하는 것이었다(Clarke).
=====7:5
이웃들 사이에 공의를 행하며 - 백성들이 예루살렘에 계속 살 수 있는 조건들이 지
적된다. 그리고 다음절에도 이어서 세 개의 조건문들이 제시된다. 여호와께서 요구하
시는 첫째 조건은 공의를 행하라는 것이다. 십계명 중 제1-4계명은 이스라엘이 여호와
께 지켜야 할 의무 사항들이고 제5-10계명은 이웃간에 지켜야 할 의무 사항들인 바,
그들은 이미 첫 번째 언약 조항들(제1-4계명)을 파기한 결과 이제는 필연적으로 두 번
째 의무 조항들(제5-10계명)을 어길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7:6
이방인과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지 말며 - 이 명령은 이미 모세 율법에서 규정하였
던 사항이다(신10:18). 하나님은 특히 약자들의 권익에 관심을 가지고 계심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한 이들 백성들은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뜻에 대해 관심
을 가질 리 만무하였다.
무죄한 자의 피를 - 이는 여호야김 통치 기간 중에 벌어진 살인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사형이 흔했던 고대 사회에서는 통치자의 악의로 말미암아 부당한 살육이 자
행될 소지가 다분했다(D.R.Jones). 한편, 31절에는 무죄한 유아들을 우상 제물로 바쳤
다는 내용이 있는데, 이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7:7
이곳에 거하게 하리니 - 백성들이 5,6절에서 제시되고 있는 조건절들을 충족시킨다
면,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땅에 살 수 있다는 약속이다. 여기서 '이 곳'이란
예루살렘성이나 성전을 포함한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
=====7:8
무익한 거짓말을 의뢰하는도다 -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의 존재 여부가 파국을
막아주는 면제부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강조하면서 이 말을 하였다. 하나님은 마음
의 회개를 요구하셨던 바, 그것만이 평화와 안전의 근거가 되었던 것이다(사26:3,
Harrison).
=====7:9
도적질하며 살인하며...다른 신들을 좇으면서 - 유다가 범하고 있는 죄악의 목록들
이 상세히 열거되고 있다. 이 범죄들은 시내 산에서 주어진 언약 규정 조항들과 대단
히 유사하다. 첫번째 네개의 죄목들, 즉 도적질과 살인, 간음, 거짓 맹세 등에 관해서
는 출20:13-16에 언급된 바와 같다. 그리고 '바알'과 '다른 신들'이란 말도 출20:3-5
의 내용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 따라서 이것은 십게명 전체에 대한 위반을 말하는 것
으로 이해된다(Thompson, Calvin).
=====7:10
우리가 구원을 얻었나이다 하느냐 - 유다는 일상 생활 속에서 언약의 규정 사항들
을 범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처럼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고서도 하나님 앞에 나섰다.
그들의 위선된 행위가 얼마나 뻔뻔스러운 것이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한편 본절의 '앞
에 서다'의 히브리어 '아마드 리프나'(* )는 복종과 굴복을 시사하
며 한 봉신이 군주 앞에 나아가 그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의미와도 그 맥을 같이 한다
(Thompson).
=====7:11
예수의 성전 숙정(肅正) 장면을 연상 시키는 구절이다(마21:13). 유다 백성들은 악
행과 온갖 가증한 일들을 범하면서도 성전이 있는 한 무사할 것이라는 미신 속에서 마
침내 여호와를 무시하고 성전을 도적의 굴혈로 만들고 말았다. 강도들은 외진 곳에 은
신처를 마련해 놓고 약탈을 감행하는데, 추적이 끝날 때까지 그곳에 숨어 있는 것이
다. 여호와의 백성들은 바로 이러한 강도들과 같이 성전에 숨어 있다가 나와서는 다시
언약을 범하곤 하였다. 그들은 양심의 가책을 성전에서의 종교 의식을 통해 해소하고
또다시 범죄 행위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성전이 어찌 죄악의 온상이 될 수 있겠는가?
여호와께서는 자신의 거룩한 전(殿)일지언정, 그것을파괴해서라도 그들을 찾아낼 것이
다.
=====7:12
실로에 가서...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 여기서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어떤 특
정 지역이나 어떤 구조에 얽매여 있지 않으심을 생생한 예화를 사용해서 설명한다.
'실로'는 엘리 제사장 당시 여호와의 성소가 있던 곳으로서 그 당시 백성들은 이곳 실
로를 중심으로 해서 여호와께 제사하였다(삼상1-4장). 그러나 이 실로는 B.C.1,050년
에 불레셋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다. 이곳은 에브라임 지파의 영역에 속해 있었으며 벧
엘과 세겜 사이에 있었다(삿21:19). 하나님의 법궤는 무려 백년 이상이나 이곳에 있었
으며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법궤를 빼앗겼다가 다시 반환받은 이후 다시는 실로로 돌아
오지 않았다. 유다 사람들은 이 실로 사건을 통해서 예루살렘 성전 역시 예외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깨달았어야 하는 것이다. 비록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해 '자
기 이름을 두신 곳'이라 하더라도 백성 중에 죄악이 있는 한 그것이 결코 불가침의 수
호자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성전과 성전에서의 모든 종교 행사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의 귀한 수단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언약을 대체시킬 수는 없는 것이
다.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는 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가장 확실한 표
시였다(Calvin, Harrison, Clarke).
=====7:13
너희를 불러도 대답지 아니하였느니라 - 본절에서는 아버지가 새벽부터 부지런히
일어나서 자식을 교훈하는 예화를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세워서 열심히
그리고 빈번하게 경고하고 호소하며 위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강팍한 마음을 돌이키지 않았다.
=====7:14
너희 열조에게 준 이곳에 행하겠고 - 유다의 멸망을 선포하면서 여호와께서는 그곳
이 다름아닌 자신이 그들의 열조에게 준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는 (1) 여호와께서
주셨기 때문에 여호와께서 파괴시킬 수도 있음과, (2) 하나님의 은총은 열조들과의 언
약에 근거한 것임을 상기시킨다. 한편, 그 당시의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 이방 색의
조약 문서들을 참조해보면, 우선 군주는 봉신에게 그를 위해 보여주었던 여러 가지 은
혜로운 일을 지적한 다음에 봉신이 군주의 명령을 기꺼이 받아들일 것을 약속했음을
볼 수 있다. 유다 백성도 이와 똑같은 과정을 거쳤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
하셨으며 이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준수할 것을 약속했었다.
=====7:15
에브라임 온 자손을 쫓아냄 같이 - '실로의 파멸'이라는 분명한 예화와 마찬가지로
예레미야의 경고를 뒷받침하는 명백한 사건이 북이스라엘이 멸망하여 포로로 잡혀간
것이었다. 그들 역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었지만, 죄악으로 인한 결과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비극이었다. 열 지파도 아낌없이 멸망시켰는데 숫적으로 훨씬 더 열등한 유
다가 과연 어떻게 그들의 죄악에 대한 심판을 피할 수 있었겠는가?
=====7:16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 본절에서부터 20절까지는 유다 백성에 의해 저
질러지고 있는 가증스러운 우상 숭배를 지적하고 있다. 이 말씀은 다른 장에서도 여러
번 나타나는데(11:14; 14:11), 본절에서는 세 번이나 반복되어 강조적 의미를 전달해
준다. 그리고 분절에서부터 20절까지에서 지적되고 있는 죄상을 참조하건대, 이 같은
당부는 이 백성에게서 이제 회개의 가능성을 전혀 찾을 수 없음을 강조하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고집스럽게 지속되는 우상 숭배에 대한 처방책은 언약의 저주 조항을 가동
시키는 것뿐이었다.
=====7:17
너는...보지 못하느냐 - 본절에서부터는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그들을 위한 기
도를 금하신 구체적인 이유가 무엇인지를 지적하기 시작한다.
=====7:18
하늘 황후를 위하여 과자를 만들며 - '하늘 황후'에 대해서는 '달'(Clarke), '별'
혹은 '샤파쉬'(Dahood) 등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앗수르-바벨론의 여신 '이쉬타르'
를 가리킨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44:17, Thompson, Harrison, J.Bright). 므낫세 당
시에는 유다 내에 메소포타미아의 다른 신들과 함께 이 '이쉬타르'를 경배하는 일이
유행하였다(왕하21장; 23:4-14 참조). B.C.5세기경에는 애굽에서도 이 여신이 숭배되
었다는 사실이 고고학의 발굴에 의해서 입증되었다. 본절에는 이 여신 숭배에 관한 몇
가지 두르러진 양상이 언급되고 있는데, 그것은 아이들이 나무를 주워 모으고 아비들
이 불을 피우고 여인들이 과자를 만든 데에서 엿볼 수 있듯이, 그 종교 행사가 가정
단위로 행해지기도 했다는 사실이다(Clarke).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여인들의 은밀한
활동에 대해서는 오시야의 개혁 당시에도 규제하기가 대단히 어려웠을 것이다. 이상과
같은 설명을 통해 우리가 본서 초반부에서 언급했다시피 요시야의 개혁은 단명에 그치
고 말았으며, 그 영향력이 대단히 미약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7:19
자기 얼굴에 수욕을 자취함이 아니냐 - 언약 백성 유다가 하늘 황후에 대한 제사에
몰두하는 것은 언약의 최고 주권자이신 여호와의 배타적인 권한에 반기를 드는 행위였
다. 이들의 이런 도전적인 행위는 여호와께 큰 고통이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우
상 숭배에 참여한 이들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 닥치고 말 것이다. 결국 그들의
행위는 그들의 머리 위로 되돌아가고 만다는 것이다(Calvin).
=====7:20
불같이 살라지고 꺼지지 아니하리라 - 이 백성의 부도덕하고 언약 파괴적인 도전
행위는 결국 여호와의 심판을 초래하고 만다. 그래서 여호와의 진노의 불길이 필연적
으로 부어질 것이다. 즉, 그들은 성전을 신뢰하여 왔지만 그 성전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며, 아울러 전민족과 사람과 짐승,그리고 들나무와 땅의 소산까지 심판을 받
게 된다. 이 백성은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이런 우상 숭배에 깊이 빠져 있었기 때
문에 회개의 가능성이 전무한 상태였다. 우리는 훗날 이들이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장
면을 목격하고도 회개하지 않았다는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서 완고해질 대로 완고해진
그들의 심령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유다 멸망 후 일부 잔민들은 애굽으로 피
난을 갔는데, 그들은 거기서도 이 하늘 황후에 대한 제사를 그치지 않았으리라 짐작된
다(Thompson, Harrison).
=====7:21
너희 희생에 번제물을 아울러 그 고기를 먹으라 - 이 말씀은 여호와께서 그들로부
터 제사를 받지 않겠냐는 것으로 이해된다. 사실상 그들은 희생 제사를 여호와께 바치
지 않고 자신들을 위한 잔치의 일종으로 바쳤을 뿐, 그것이 하나님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던 것이다. 번제는 희생 제물을 모두 불로 태워 드리는 제사인데, 그 고기를 먹으
라는 것은 그들이 드렸던 번제가 단순한 고깃덩어리의 의미밖에 지니지 못했음을 신랄
하게 지적하신 말씀이다(D.R.Jones).
=====7:22
내가 너희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 희생 제사가 하나님의 은총의 도구였으
며 사람들을 회개로 이끌기 위한 것이긴 하지만 그들이 희생 제사의 참뜻을 더럽힌 이
상, 그것이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경멸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나님은 희생 제사의 규
례를 명하실 때부터 영적인 예배를 강조하셨다. 그러므로 율법 정신이 살아 있지 않은
형식적인 예배는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이다. 이에 대해 예수께서도 "하나님은 영이시
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지니라"(요4:24)고 말씀하신 바 있다.
=====7:23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들으라 - 여기서 제사보다 순종이 더 중요하다는 사실이 다시
금 강조된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서는 여호와의 목소리를 듣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유다 백성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에
는 조금도 관심을 두지 않고 다만 의식 절차만 거치면 그것으로 그들의 의무를 다하는
것으로 오해하였다.
=====7:24
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 하나님 말씀에 대한 유다인들의 멸시와 반항에 이어 고
집과 방자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 하나님은 계속해서 순종을 요구하였으며, 사회 저
의를 역설해 왔다. 그러나 그들은 귀를 막고 듣지 않는다.
그등을 내게로 향하고 - 이 구절의 문자적 의미는 '그들은 뒤를 향하고 앞을 향하
지 않았으며'인데, 하나님의 길을 거슬러 자신들의 길로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앞 구
절의 '악한 마음'이란 말과 연결지으면, 그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기로 아예 작
심을 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김을 암시하고 있다. 고대 역본들을 참조하면, 그들이 앞
으로 나아가지 않고 오히려 후회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지적은 그들의
조상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 생활을 할 때 종의 근성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다시 애굽
으로 가서 종살이하고 싶어했던 것(출17:3)과 똑같은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7:25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 출애굽한 그들의 조상들은 여러 차례에
걸쳐 모세를 비방하고 모세에게 원망한 바 있으며(출14:11,12; 15:24; 17:3등) 그 뒤
를 이어 많은 선지자들을 보내었지만 유다인들의 사악한 행위는 근절되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원문에는 '매일'을 나타내는 단어 '욤'(* )이 포함되어 있으며 '일찍 일
어나다'란 뜻의 '솨캄'(* )이란 말이 또한 쓰이고 있는데, 이를 종합하여 재번
역하면, '내가 나의 모든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었으되, 매일 일찍 일어나서
보내었으나'가 된다(Calvin).
=====7:26
목을 굳게 하여 - 유다인들의 완악한 행위를 표현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들에게 요구되었던 것은, 구체적인 행위를 수반하는 믿음이었을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백성들의 부패한 행위를 지적하면서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
라'고 선포하였는데, 당시 유다 백성의 영적 실상을 잘 나타내주고 있는 것이다. 즉
그들의 마음속은 정직하지 못하고 교만하면서, 종교 행사에만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
이다(합2:4).
=====7:27
그들이 네게 대답지 아니하리니 - 하나님은 유다의 멸망을 원치 않으셨던 것이 분
명하다. 이런 사실은 예레미야 자신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오히려 하나님의 의도
는 그들을 파국의 길에서 끌어내려는 것이었으나, 그들의 불행은 이에 대한 완고한 불
순종으로 피치 못할 운명이 되고 만 것이다.
=====7:28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국민이라 - 이제는 하나님이 유다에 대한 경고의 방법을 바
꿀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들에게는 이제 그 어떤 권고나 경책이 무의미하다. 이
와 유사한 표현이 2:30; 5:3; 17:23; 32:33; 35:13등에도 나오며, 잠1:3; 8:10;
24:32; 슥3:2,7에서도 나타난다. '교훈'의 히브리어 '무사르'(* )는 때때로
'정책'이란 뜻으로 사용되며 일반적으로는 '(도덕적) 훈계', '교훈', '교정' 등의 의
미이다(D.R.Jones).
=====7:29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호곡(呼哭)할지어다 - 본절에서부터 34절까지는 한놈의 골
짜기에서 자행되었던 극악 무도한 더러운 행위에 대한 심판이라는 측면에서, 이러한
죄상에 대해서는 본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호곡해야 마땅한 것이다. 머리털을 베어버리
는 것은 슬픔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미가 선지자는 유다에 임할 심판에 대해 "너는 네
기뻐하는 자식으로 인하여 네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할지어다"(미1:16)라고 선포
하였다. 한편 '머리털'에 해당하는 '네제르'(* )는 '화관', '왕관', '면류관'이
란 뜻도 있는데, 이는 머리카락이 면규관으로 여겨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를 나실인의머리 카락에 비교해서 살펴보면, 나실인은 여호와께 헌신하였음을 나타내
는 표로서 머리카락을 자르지 않았으며, 이들이 머리털을 베어버리는 것은 헌신을 포
기하였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그 당시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께 헌신하
는 것을 포기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의미이다.
=====7:30
가증한 것에 대한 원어는 '쉬쿠츠'(* )로서 구약에서 약 28회에 걸쳐 쓰
인다. 대부분 이 말은 제사나 예배와 관련하여 하나님을 모욕하고 더럽히는 모든 것을
지칭하였다. 그런데 유다인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일컬음받는 성전에 그 더러운 것들
을 두었던 바, 이 같은 행위는 여호와를 모독하는 최고의 행위였다.
=====7:31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벱 사당을 건축하고 - 성전의 악행 이외에 또 다른 더러운
행위들이 지적되고 있다. '힌놈의 아들 골짜기'란 곳은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해 있었
는데, 그들은 거기에 '도벱'이란 사당을 건축하였다. 이 '도벱'이란 이름은 '태우는
곳'을 의미하는 아람어에서 유래된 것 같다. 이곳에서는 사람을 제물로 바쳐 태워 죽
인 바가 있는데, 아하스와 므낫세 통치 기간에 그런 일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왕하
16:3; 17:31). 이처럼 인간을 제물로 바쳐 태우는 끔찍한 관행은 몰렉 신에 대한 제사
와 관련이 있는 절차였다(레18:21; 20:2-5; 왕하23:10).
=====7:32
날이 이르면 이 곳을...살륙의 골짜기라 칭하리니 - 이는 반역된 무리들이 모조리
살육당해 이곳에 버려질 것임을 예언한 것으로 이해된다. 아마 그들의 시체를 모두 매
장할 수 없기 때문에 그곳에서 시체들을 태워버리거나 또는 썩은 고기를 먹는 짐승의
밥이 되도록 하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19:6-15에서는 이 말이 반복되고 있으며 그 의
미를 더욱 상세하게 설명한다. 한편, 이처럼 특정한 대상에다 의미 심장한 이름을 부
여하는 것은 에언적 상징으로서 사1:26; 56:7; 58:12; 60:14; 61:3,6; 62:4,12 등에서
도 나타난다(D.R. Jones).
=====7:33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 이스라엘인들에게 있어서 사후(死後)에 자신의 시
체를 매장해주는 자가 없다는 것은 큰 저주로 여겨졌다. 에루살렘의 멸망을 고통스럽
게 회고하는 시편 중에는 이런 노래가 있다: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면에 물같이 흐
렸으며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시79:3). 그리고 율법은 죄인의 시체라도
매장하도록 명하였다(신21:23). 그러나 패역한 유다 백성은 성전 파괴와 함께 매장해
주는 자 없이 멸망해야 했던 비참한 종국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한편, 이러한 저주는
신 28:26에 그대로 예언된 바의 성취로 이해될 수 있겠다(Delitzsch).
=====7:34
기뻐하는 소리...신부의 소리가 끊쳐지게 하리니 - 살아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당연히 흘러나올 이러한 소리들이 심판의 결과로 완전히 사라진다. 이제 예
루살렘에는 즐거움이란 것이 존재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결혼도 끊겨질 것이고 땅도
완전히 황폐해버리고 말 것이다. 엄청난 죄악이 엄청난 형벌을 불러오게 되는 것이다
(Clark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