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민수기

[스크랩] 민수기(2): 광야에서(10:11-19장)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0:23

민수기(2): 광야에서(10:11-19장)



*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 요약(10:11-19장)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에 대한 지도 보기

1. 시내산에서 가데스까지(10-12장)
 1) 시내산을 떠남(10장)
 2) 바란 광야까지(11장)
 3) 미리암과 아론의 비난(12장)

2. 가데스바네아에서(13-14장)
 1) 12정탐꾼 파견(13장)
 2) 이스라엘의 반역과 하나님의 심판(14장)

3. 광야 38년의 방황기에 있었던 일들(15-19장)
 1) 추가로 드리는 소제, 전제의 규례(15장)
 2) 고라당의 반역과 심판(16장)
 3)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다(17장)
 4) 제사장, 레위인의 직무와 분깃(18장)
 5) 시체로 부정케 된 자의 정결 규례(19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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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내산에서 가데스까지(10:11-12:16)

 1-1. 시내산을 출발하는 이스라엘(10:11-36)

  이스라엘 자손은 시내 산에서 약 11개월간 머물면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필요한 모든 제도를 정비하였다. 마침내 제 2년 2월 20일에 증거막 위에 머물러 있던 구름이 떠올랐다. 이는 시내산을 떠나 광야로 행진하라는 하나님의 신호였다. 이제 행진을 개시하라는 제사장의 은나팔 소리가 울려 퍼짐과 동시에, 레위인들은 성막을 운반할 준비를 했다. 그리고 각 지파들은 자기의 장막을 걷고 짐을 정리하여 나팔 신호를 따라 행진할 준비를 했다.

  시내산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브롯 핫다아와와 하세롯을 경유하여(11:34,35, 12:16, 33:16-17) 3일 만에 바란 광야에 도착하였다. (11:1-12:16)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시내산을 떠나서 바란 광야에 이르기까지의 일어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다. 바란 광야는 거대한 고원지대로 된 광야로서 동으로는 아라바 골짜기(사해 남단에서 엘랏만까지), 서로는 술 광야(블레셋과 애굽 땅의 경계), 남으로는 시내산, 그리고 북으로는 가나안 땅의 남방 경계인 아모리인의 산지까지 뻗어있는 광야이며, 이곳은 사람이 거할 수 없는 황량한 곳이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에 정착하기까지 온갖 악조건이 산재해 있는 광야의 척박한 땅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와 같은 환경에 처하도록 하신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이러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법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이것은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적용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 구원받은 성도들에게 계속해서 감당하기 어려워 보이는 여러 가지 환경들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자신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이때에 성도들은 환경보다 그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봄으로서 불만과 낙심을 버리고, 감사와 용기를 유지할 수 있다.

    <참고: 이스라엘이 행진한 경로에 대해서>(민 10:11-17, 33:16-19): 참고 지도

   이스라엘은 계속 북쪽으로 행진하여 가나안의 남쪽 끝에 위치한 가데스 바네아에 이르게 되었다. (창 14:7)을 보면 동방의 4명의 왕들이 이 곳에서 아말렉을 친 기사가 나오며, 하갈이 술로 도망가던 도중에 가데스와 베렛 사이에서 하나님의 사자를 만난기 기사를 읽을 수 있다(창 16:7-14). 가데스가 있는 지역은 비교적 그 위치를 잘 확인할 수 있다. '아인 쿠데이스'(이곳은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가데스"라고 불렀다)와 '아인 쿠디라트'는 브엘세바로부터 남서쪽으로 약 50마일에 걸쳐서 펼쳐져 있는 지역이다. 이 두 지역은 5마일 정도 떨어져 있으며, '아인 쿠디라트'에는 가장 좋은 수원지가 위치해 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이 시내 산을 출발하여 가데스로 온 경로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밝히고 있지 않다. 성경에는 단지 이스라엘이 통과했던 두 지역(기브롯 핫다아와, 하세롯)만을 기록하고 있을 뿐이다(민 11:34-35 12:16, 33:16-18). 그리고 (민 33:16-18)에는 시내 산과 가데스 사이의 지명을 21개나 기록해 주고 있는데, 아마도 이 지역들은 가데스를 향해 갈 때에 통과한 지역 외에, 가데스에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돌이켜서 38년간 방황한 모든 지역들을 포함하고 있는 듯 하다. 이스라엘은 처음 시내산에서 가데스로 갈 때에 기브롯 핫다아와와 하세롯에서 중요한 사건이 발생했다. 그러나 가데스에서 돌이킨 후 38년간 광야를 방황하면서 수많은 지역을 방황하며 돌아다니게 되었다(참고 지도).       

 * 행진 순서(10:13-28)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순서를 좆아 진행하였다. 각 지파는 나팔 신호를 따라 족장들이 인도하였고 그 순서는 다음과 같았다.

1. 법궤
(모세, 아론,  제사장)

 

2. 유다
  잇사갈
  스불론

 

3.성물
(게르손
 므라리)

 

4. 르우벤
   시므온
      갓

 

5. 성물
   (고핫)

 

6.에브라임,    므낫세
   베냐민

 

7.단
아셀
납달리

 * 모세가 처남인 호밥의 동행을 청함(29-32)
  모세는 자기의 징인인 르우엘의 아들인 호밥에게 동행하며 길 안내를 해 줄 것을 부탁했다(29). 모세의 장인인 르우엘은 (삿 1:16, 4:11)에서는 겐 사람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출 2:26, 3:1)에서는 미디안 출신의 족장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출 3:1)에서는 그의 이름을 이드로  라고도 부르고 있는데, 아마도 이 이름은 그의 신분을 나타내는 이름인 것으로 추정된다.  호밥은 장인 이드로가 모세의 아내와 자녀들을 데리고 올 때에 함께 온 것으로 보인다. 모세는 호밥이 광야에서 나서 광야에서 살았기 때문에, 광야에서 샘이나 오아시스 또는 목초지를 찾고 텐트를 치거나 기후 적응 등에 대해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했다. 호밥은 처음에 자기의 친족에게 가기 위해서 모세의 청을 거절하였다(30). 그러나 모세는 재차 호밥에게 함께 동행하여 그들의 눈이 돠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그가 동행해 주면 그에게 선처할 것을 약속했다(31-32). 

  이것은 모세의 불 신앙적인 모습을 보여준 것이 아니라 수백 만 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효과적으로 인도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인도를 따르는 동시에, 광야 길에 익숙한 처남의 안내를 받음으로 경험부족으로 발생하는 위험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시지만 상식을 외면하시지 않으신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봉사의 길이 이방인에게도 열려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 호밥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베푸셨다. 이런 점에서 구약의 광야 교회는 이방인들에게 배타적이 아니었다.         

 * 진이 떠날 때와 출발할 때의 모세의 기도(33-36)
  이스라엘이 길을 행할 때에 여호와의 언약궤는 3일 길을 앞서 행하며 그들의 쉴 곳을 찾았다. 그들이 행진할 때에 여호와의 구름 기둥이 언약궤와 함께 이동했으며, 낮에는 이스라엘 진  위를 덮어서 뜨거운 햇빛의 열기로부터 보호했다(33-34).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광경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동행하시는 알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앞서 가시면서 그들의 쉴 곳을 예비하셨다.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하심은 이와 같이 구체적이고 완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성도들을 이렇게 인도하시며, 모든 위험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지켜 주신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인도를 따라가며, 말씀에 순종하기만 하면 모든 길이 평탄하게 되며 형통케 된다.

  모세는 궤가 출발할 때와 쉴 때에 다음과 같은 기도를 반복하였다. 모세는 궤가 진을 떠날 때에는 "여호와여 일어나사 주의 대적들을 흩으시고, 주를 미워하는 자로 주의 앞에서 도망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였고, 궤가 쉴 때에는 "여호와여 이스라엘 천만인에게로 돌아오소서"라고 기도하였다(35-36). 모세는 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는 일은 자기 힘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의 힘으로 된다는 것을 고백했다. 이스라엘의 대적은 곧 하나님의 대적이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위해서 이스라엘을 그 대적으로부터 지켜주실 것이다. 이러한 모세의 기도는 오늘을 사는 성도들도 드려야 할 기도이다 !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앞서 가시며 사단의 세력을 멸해주실 것을 기도해야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언약궤보다 앞서서는 안되었으며, 단지 하나님의 언약궤를 바라보며  그 뒤를 따라갔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가야 하며, 그 뜻을 따르고 순종해야 한다. 모세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쉴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돌아오시기를 기도하였다. 우리는 일을 마치고 안식할 때에도 하나님과 함께 동행해야 한다. 하나님과 동행함이 성도들의 모든 생활의 전부이다. 우리는 일할 때에나 안식 할 때에 항상 하나님의 은혜와 동행하심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1-2. 바란 광야에 이르는 여정에서 있었던 4가지 사건(11:1-12:16)

  * 다베라('불사름', 또는 '불사름의 곳')에서의 사건(11:1-3)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의 출발이 시작되었을 때에 기쁨과 설레임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황량한 바란 광야로 가는 길에서 수많은 역경에 처하게 되자, 그들은 즉시로 그 환경에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어렵고 힘든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대하여 악한 말로 원망하기 시작했다. 진중에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모든 말과 생각을 다 감찰하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원망을 들으시고 그들에게 진노하셨으며, 초자연적인 불로써 그들의 진 끝을 불사르게 하셨다(1). 이 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는 원망에 대해서 진노하셨다는 표시였다. 백성들은 여호와의 진노가 자신들에게 미친 것을 알고 급히 모세를 찾았다. 그리고 모세가 그들을 위해 급히 기도함으로써 겨우 그 불을 끌 수가 있었다(2).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징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방자하게 행동하지 못하도록 하셨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장소를 '다베라'('불사름', '불사름의 장소') 라고 불렀다(3). 우리는 광야 여정 길에 들자마자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들은 역경을 만날 때마다 불평하기를 쉬지 않는다. 성도들은 어떠한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고 신앙으로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연약해서 자주 원망하며 낙심하고 넘어진다. 그때에 성도들은 승리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주님께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성도들을 구원해 주실 것이다.

 * 기브롯핫다아와('탐욕의 무덤')(11:4-35)
  이곳에서는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이 발생하였다. 첫 번째 사건은 70인 장로를 세워 주신 사건이고, 둘째는 메추라기를 보내주시고 그들을 심판하신 사건이었다.

  가. 사건의 발단(4-9)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베라에서 출발하여 조금 진행하면서 또 다시 원망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는 출애굽 당시에 함께 나온 잡 족들의 무리가 있었으며(출 12:38), 그들 중에는 불순 세력들이 있었다. 그들은 애굽에서 먹던 음식들을 광야에서 더 이상 먹지 못하게 되자  불평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애굽에 내린 10대 재앙을 보고 무엇인가 더 나은 생활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이스라엘을 따라 애굽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생각과는 달리 무리들이 계속해서 척박한 환경으로 인도되자 원망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이 이러한 생각을 밖으로 표출하게 되자,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울면서 만나 외에 고기와 같은 다른 음식들을 먹게 해달라고 요구했다(4).

  그들은 애굽에서 살던 때를 생각하면서 그 곳에서 먹었던 생선과 야채와 양념들을 생각했다. 그들은 애굽에 있을 때에 나일 강에서 잡은 생선과, 외('카테': 부드럽고 단 맛이 나는 야채)와 수박('밧티에': 값이 싸고 신선한 즙이 있는 과일), 부추('하찌르': 한 자 정도 크기로 자라며 잎이 부드러워 파 대용으로 먹는 백합과의 2년초, 또는 다년초), 파('베짜림': 가난한 사람들의 주식인 값싼 채소로서 순하고 상쾌한 맛이 난다) 그리고 마늘('슈밈': 값이 싸고 원기를 돋아주는 채소)들 같은 채소들을 먹던 일을 그리워했다. 그리하여 광야에서 만나만 먹어야 하는 자신들의 신세를 한탄하였다. 그들은 애굽에서 나온 것을 후회하면서 자신들의 기력이 쇠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력을 돋아줄 음식이 없다고 원망했다(5-6).   

  그러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은 것을 탐내는 것은 탐욕이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만나가 아름다운 음식임을 다시 한번 설명하였다(7-9). 만나는 깟씨와 같았고 그 모양은 진주와 같은 것이었다. 백성들은 두루 다니면서 만나를 거두어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거나, 가마에 삶아서 과자를 만들어 먹었다. 모세는 만나의 맛이 기름 섞은 과자의 맛과 같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만나는 밤에 이슬이 내릴 때에 함께 내렸다가 햇빛이 나면 스러졌다. 그들은 만나가 하나님께서 광야 생활에 필요한 모든 영양분을 넣어서 특별히 만들어 주신 양식임을 알아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좀더 자극적이고 그들의 구미를 당기는 음식과 쾌락적인 것을 원했다. 그들은 단순하고 무미건조해 보이는 음식과 삶에 실증이 났다. 그들은 좀 더 탐욕적이고 쾌락적인 음식과 삶이 그리웠던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신앙 생활을 하면서 이러한 탐욕과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처음에 교회에 나오면 무언가 큰 이익이 있을 것으로 알고 교회에 들어온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의 가르침과 삶이 단순하고 무력해 보이면 언제든지 옛날의 쾌락과 탐욕을 추구하려 한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로 인해 다른 성도들도 낙심하게 만든다.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광야 길을 가는 우리들을 위해 하늘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준비해 주셨다(요 6:48-51).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인생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다 들어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에게 영생을 주시며 진리로 인도하시고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 주신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으며 항상 선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영생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사모해야 한다. 계시록에서는 주님께서 이기는 자들에게 감추인 만나를 주시겠다고 약속해 주셨다(계 2:17).

  나. 사건의 전개(모세의 간구와 하나님의 응답(10-15)
  이로 인해 백성의 온 가족들은 각기 장막 문에 모여서 울고 있었고, 그 울음소리는 하나님의 귀에도 들려졌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보시고 심히 진노하셨으며, 모세도 이를 기뻐하지 않았다. 모세는 하나님께 탄원을 했다. 모세는 애굽의 음식을 생각하며 탐욕에 빠져 우는 백성들을 보면서 한없는 무력감과 좌절감에 사로잡혔다. 모세는 음식을 달라고 하는 백성들 앞에서 자신의 무력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내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자신에게 이러한 막중한 책임을 맡긴 하나님께 탄원하였다. 모세는 자기가 어찌 이 많은 사람들에게 고기를 먹게 할 수 있겠느냐고 항의했다. 모세는 차라리 지금 죽는 것이 낫다고 고백할 정도로 괴로움을 느꼈다. 모세는 백성들의 울음 앞에서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하는 자신을 보고 낙심에 빠졌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소수의 불순 세력들이 용적 지도자와 온 나라를 완전히 위기로 몰아 넣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 나아가서 탄원하였기 때문에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 하나님을 찾는 자들은 모든 일에 부족함이 없다.

  다. 하나님께서 주신 두 가지 해결책(70인 장로 선택과 메추라기를 주심(16-23)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두 가지로 응답해 주셨다. 첫째는 낙심한 모세를 도와서 함께 일할 70명의 장로들을 세워 주신 것이며, 둘째는 고기를 달라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냄새가 나서 싫어할 때까지 한 달 동안 메추라기를 먹게 해 주신 것이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모두 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낸 사건이었다.              
 

  첫째 해결책: 70인 장로의 선택(16-17, 24-30)

  "하나님의 약속"(16-17)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지고 있는 과중한 책임을 여러 사람이 함께 담당할 수 있도록 조치해 주셨다. 엘리야는 850명의 바알의 우상들과 싸워 승리하였다. 그러나 그 후에 이세벨이 자기를 죽이려 하자, 낙심하여 호렙 산으로 도망하였다. 그리고 그 곳에서 자기만 홀로 남아서 외롭게 영적 싸움을 하고 있다고 탄원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아직도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수천 명의 성도들이 있다고 가르쳐 주셨다. 영적 지도자들이 낙담할 때는 외로이 홀로 싸우고 있다고 느낄 때이다. 그러나 영적 지도자들이 낙심에 빠질 때에 그러한 싸움을 자신만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경건한 다른 무리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모세가 낙심  하여 하나님께 엎드렸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사실을 가르쳐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함께 짐을 나누어 질 장로들에게 하나님의 신을 부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노인 중에서 백성의 유사와 장로 되는 70인들에게 회막 문 앞에 와서 모세와 함께 있으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신을 받은 후에 모세와 함께 백성들의 짐을 나누어질 것이라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낙심한 지도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처방이었다.

  "약속의 성취"(24-30)
  모세는 이 모든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고 하나님의 지시대로 장로 70인을 뽑아서 회막에 둘러서게 하였다. 이때에 증거 막 위에 있던 구름 기둥이 모세가 있는 곳으로 옮겨졌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서 모세에게 그들이 할 일을 가르쳐 주신 후에, 모세에게 임한 신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셨다. 하나님의 일은 크든 작든 간에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다. 이것은 성령의 능력과 지혜에 의해서만 감당할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에서 봉사할 때에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하는 것"처럼 봉사해야 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신이 임한 순간에 초자연적인 현상을 체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신이 임할 때에 장로들은 예언을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일시적이었고 반복적인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마치 오순절에 다락방에 있던 120성도가 성령을 받고 방언을 하기 시작한 것과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이때에 장로들의 명단에 있던 사람들 중에 엘닷이란 사람과 메닷이란 사람이 회막문 앞으로 가지 않고 진에 남아 있었다. 그러나 회막에 모인 자들에게 신이 임할 때에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신이 임하여 예언을 하게 되었다. 이때에 그 광경을 지켜 본 한 사람이 달려와서 이 사실을 모세에게 알렸다. 그러자 택한 자 중의 한 사람이었고 모세를 섬기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그들이 예언하는 것을 금해야 한다고 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명령을 어기고 회막으로 오지 않는 자들이 하나님의 신을 받는 것은 모세의 권위를 실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모세는 여호수아에게 "네가 나를 위하여 시기하느냐? 나는 여호와의 신을 그들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받아 모든 백성이 다 선지자 되기를 원하노라"고 대답했다. 모세는 그들에게도 하나님의 신을 부어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것을 알았다. 구약 시대에는 특별한 직분을 맡은 사람들만 하나님의 신을 받았다. 그러나 요엘 선지자는 말세에 대가 오면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에게 하나님의 신을 부어주실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베드로는 그 예언이 오순절 성령 강림을 통해서 성취되었다고 했다. 지금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는 시대이다. 신약 시대는 모두가 다 성령을 받고 선지자와 제사장이 되는 시대이다. 신약 성경은 성도들에게 성령을 금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명령하고 있다.  이와 같이 모세의 소원이 이 시대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 일이 모두 끝마친 후에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각자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둘째 해결책: 메추라기를 주심(18-23, 31-36)

  "하나님의 약속"(18-23)
  하나님께서는 또한 고기를 달라고 원망하던 사람들에게 몸을 거룩하게 하고, 내일 고기 먹을  준비를 하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불평을 듣고 그들에게 하루나 이틀이 아니라, 냄새가 나서 싫어할 때까지 한 달 동안 고기를 먹게 해 주시겠다고 하셨다(18-20). 모세는 이 말을 믿을 수가 없었다. 모세는 그들이 가진 소와 양을 다 잡아도 남자 장정만 60만 명이나 되는 무리들을 먹일 수 없고, 바다의 물고기를 다 잡아도 그들을 먹일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21).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렇게 말씀해 주셨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졌느냐? 이제 네가 내가 너에게 한 말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게될 것이라"(22).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그 동안 바로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내시고, 홍해를 가르시며 광야에서 만나를 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잊었느냐고 책망하셨다. 이러한 사건은 마치 벳새다 광야에서 보리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 천명을 먹이고 12 광주리가 남았던 일과 비슷한 사건이었다. 제자들은 무리를 먹일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을 충분히 먹이고 남을 만큼 음식을 제공해 주셨던 것이다.         

  "약속의 성취와 하나님의 심판"(31-36)
  모세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진으로 들어오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즉시 모세에게 하신 두 번째 약속을 실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남동풍을 아라비아 만으로부터 불게 하셔서 메추라기들을 바다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있는 곳으로 몰아오셨다. 이 메추라기들은 봄에 아프리카 내륙에서 매우 큰 떼를 이루어 북으로 이동하였다(카일 델리취 p.98).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양의 메추라기 떼를 몰아 이스라엘 진에 이르게 하셨다. 메추라기 떼들은 진의 사방으로 약 하룻길 되는(32km) 거리에, 약 2 규빗 높이(약 90cm)로 날아와서 머물러 있었다.  백성들이 일어나서 그 날과 다음 날까지 밤낮으로 종일 메추라기를 거두었다. 그렇게 하여 적게 거둔 자가 10호멜(10호멜은 약 2,200리터로서 120말에 해당한다)을 거두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렇게 많은 양을 거두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권능을 무시하던 이스라엘 회중들에게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다(18,20). 이스라엘 회중들은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다른 음식을 먹일 수 없어서 만나만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해 주셨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많은 고기들을 하루에 다 먹을 수 없었기 때문에, 그 고기들을 펴서 진 사면에 말려 보관했다(32).

  그러나 그들의 탐욕과 욕심은 고기를 거두는 데서도 나타났다. 그들은 탐욕에 빠져서 이렇게 먹고 남을 만큼 많은 양의 메추라기를 거두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심히 진노하셔서 그들의 이 사이에 고기가 아직 씹히기도 전에 재앙으로 그들을 치셨다(33). 이 일로 인해 백성들은 그 곳의 이름을 '기브롯핫다아와'('탐욕의 무덤')라고 불렀다. 이 이름은 탐욕을 낸 무리들이 거기에서 죽어서 장사되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34).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곳을 떠나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하세롯'에 도착하였다(35).

 <완악한 자들의 원망의 원인>
 1. 악한 영향을 쉽게 받는 심성
 2. 용서받은 것을 쉽게 망각함
 3. 과거에 집착함

 <지도자의 좌절과 하나님의 처방>
 1. 고독한 사역-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경건한 사람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하심
 2. 무리한 사역-동역자를 세워주심.
 3.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망각-하나님의 전능성을 깨닫게 하심.

 

 * 하세롯에서-미리암과 아론의 도전(12:1-16)
  또 다시 중대한 사건이 '하세롯'에서 일어났다. 기브롯핫다아와에서는 백성들이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했다. 그러나 하세롯에서는 모세의 가족들이 모세를 비난하였다. 모세가 구스 여인을 아내로 맞아들이게 되자, 모세의 형 아론과 누이인 미리암은 모세를 비난하게 되었다. 이 사건은 하나님의 즉각적인 개입으로 해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비방하던 미리암과 아론을 책망하시고, 미리암을 문둥병으로 치셨다. 문둥병이 걸린 미리암을 보고 놀란 아론은 즉시 모세에게 가서 이 사실을 알렸다.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를 하자 미리암은 치유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미리암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기 때문에 그녀의 부정함이 회복될 때가지 7일간 진 밖에 머물러 있어야했다. 그리고 이 사건으로 하나님의 진은 7일간 진행하지 못하고 머물러 있어야 했다.

 <참고: 하세롯에 대해서>
  일부 학자들은 '하세롯'이 시내산에서 북동쪽으로 30마일 가량 떨어진 '아인 후드라'라고 주장했다. 이 견해를 받아들이면 시내산과 아인 후드라 사이에 있는 현재의 '엘레베이리그'가 기브롯핫다아와라는 말이 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증거가 매우 약하다. 왜냐하면 (민 12;16)에서는 하세롯 다음에 도착한 곳이 바란 광야로 기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세롯'은 현재의 '아인후드라'보다 더 가데스에 가까운 지역일 가능성이 높다. 이스라엘은 곧바로 시내산에서 가데스로 가지 않고 중도에 진로를 동쪽으로 바꾸어 진행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왜냐하면 (민 11:31)에서 메추라기가 바다로부터 왔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 바다는 '아카바만'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신 1:2,19)을 보면 백성들이 얼마간 세일 산에 머물렀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지역 또한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이다.        

  가. 미리암과 아론의 불평(1-3)
  모세가 취한 구스 여인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많은 이론이 제기되었다. 미디안은 구스라는 이름도 가지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이 여인이 모세의 아내인 미디안 사람 '십보라'였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 왜냐하면 모세의 가족들이 모세가 수십 년 전에 행한 결혼 문제를 가지고 이제 와서 새삼스럽게 문제로 삼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 역사가 요셉푸스는 그의 저서(Antiguittes 2권 10.2)에서 모세가 에디오피아의 공주와 결혼을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성경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참고로 할 수 있을 뿐이다. 가장 타당해 보이는 주장은 모세가 그의 아내 십보라가 죽고 나서 광야에서 구스 여인 중의 하나와 재혼을 했다는 설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사건을 놓고 모세가 함 족속의 여인과 결혼함으로 율법의 한도 내에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은 "평등"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리고 많은 교부들과 Gerlach는 모세와 이방 여인의 결혼사건을 보고 장차 복음 안에서 이루어질 이스라엘과 이방인간의 연합의 예표를 찾기도 했다. 어떻든 간에 모세가 함 족속의 여인과 결혼했다는 것은 그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서 분명히 상식적인 일은 아니었다. 이 사건을 통해서 볼 때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모세가 이방인들에 대해서 넓은 포용력을 가졌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교부들의 시도와 같이 이 사건을 통해서 복음 시대에 있게될 이방인과 이스라엘간의 연합의 모형을 찾는 일도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모세가 이러한 연합 차원에서 결혼하지 않았다고 해도 모세의 결혼은 율법을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율법은 가나안 족속과의 결혼만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출 34:16). 하나님께서는 결코 모든 이방인들을 다 배척하신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결혼을 금지하라고 하신 민족은 이방인들 중에서 지극히 타락한 민족들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 민족들을 제외하고는 이스라엘이 결혼하는 것을 금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미리암과 아론은 이스라엘 중심의 편협 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며, 따라서 그들은 모세의 행동을 보고 비평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서 미리암의 이름이 먼저 나오고 아론의 이름이 뒤에 나오는 것은 아마도 미리암이 그 주동자였고 아론이 그것을 동조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모세의 누이인 미리암은 이스라엘 중에서 '여선지자'로 확고한 지도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출 15:20). 그러므로 모세가 생각지도 않았던 함 족속의 여인과 결혼하게 되자, 그 위치에 위협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흑인 계통의 여인과 결혼한 모세가 불결하게 여겨져서 그의 권위에 순종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와 같이 아무리 위대한 사람이라고 해도. 가족들에게는 결점이 그대로 노출되기 때문에 쉽게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아마도 미리암은 모세의 실수를 보고 그를 이스라엘의 인도자라기 보다는 자기 동생으로 보고 책망했을 수도 있다. 또한 미리암과 아론은 여러 차례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으므로 모세에 대해서 소홀히 대했을 수도 있다(2). 우리는 여기에서 영적 지도자는 먼 곳뿐 아니라, 가까이에서도 반역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여호와께서는 미리암과 아론의 불평을 모두 들으셨다(2). 우리는 우리의 모든 불평과 원망을 모두 다 하나님께서 듣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때에 남을 비난하는 일에서 벗어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불평하는 미리암과 아론에게 "모세는 온 세상의 사람들보다 더 온유한 사람이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의 인도자로 사용하시기 전에 많은 훈련과 연단을 받게 하셨다. 그는 일을 시작하기까지 약 80년간이나 되는 모진 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이 훈련을 통해 그는 이미 온유한 인격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게 임한 성령은 그가 하나님의 쓰임을 받을 수 있도록 더욱 온유하게 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자를 사용하신다.


 
 나. 하나님의 심판(4-14)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을 회막으로 부르셨다. 세 사람이 회막으로 나오게 되자, 구름 기둥이 장막 문 앞에 섰다. 그리고 그 곳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미리암을 부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스라엘 중에 선지자에게 이상이나 꿈으로 말하였으나, 모세에게는 은밀한 말이나 이상으로 하지 않고 직접 대면하여 말하고, 나의 형상을 직접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라고 해서 다 같은 것이 아니고, 그 계시의 수준에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아론과 미리암은 자신들도 계시를 받은 선지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모세를 비난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그들 사이에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면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던 것이다.  

  선지자들은 특별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백성들에게 전하는 매개체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나라로 세우고, 그 기초를 놓을 자로 세우셨다. 그리고 모세는 그 직무에 충성하였다. 그는 신정 국가의 창건자요, 옛 언약의 중보자로서 모든 선지자 위에 뛰어난 직책을 감당하였다. 히브리서 기자는 모세의 직책을 예수 그리스도의 직책과 비교했다. 모세는 이스라엘 온 집을 맡은 사환으로 봉사하였으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들로서 봉사하였다. 모세의 직책은 예수님의 직책에 비유될 만큼 위대한 것이었다. 사실상 후대의 선지자들은 모세가 이미 기초를 놓은 터 위에 계속해서 집을 지어나갔을 뿐이다. 그러나 아론과 미리암은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세를 두려움 없이 비난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엄히 책망하셨다. 우리들도 성직자의 친족들이 목회자를 쉽게 비난하는 일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매우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그들을 떠나셨으며, 구름 기둥도 그들을 떠나 다시 회막 위로 이동하였다. 그 즉시 미리암은 문둥병이 걸려서 온 몸이 눈과 같이 되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녀의 죄를 심판하셨다는 표시였다. 사실상 그녀의 죄는 문둥병과 같은 것이었다. 만일 그녀의 죄를 그대로 방치해 두면, 모세의 가족을 파탄으로 몰고 결국 온 이스라엘마저 심각한 리더십 부재의 위기로 몰아가서 이스라엘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있었다(9). 우리는 하나님이 세우신 사람을 비난하는 일이 얼마나 큰 죄인지 알아야 한다.  

  다. 아론의 간청과 모세의 중보기도(10-13)
  아론은 미리암이 문둥병이 걸린 것을 보고 즉시 모세에게 가서 간청했다. 아론은 자신들이 미련해서 죄를 지었으나, 용서해 줄 것을 간청했다. 그때에 이미 미리암의 몸에는 반쯤 썩어서 태어난 아이 같이 썩어 들어가는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모세는 즉시 그녀를 고쳐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 하였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대답해 주셨다.

  "그의 아비가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을지라도 그가 7일간 부끄러워하지 않겠느냐? 그런즉 그를 진밖에 7일간 가두고 그 후에 들어오게 할지니라"(14)


 
 라. 7일간의 징계 후에 다시 출발함(15-16)
  그리하여 미리암은 하나님의 지시대로 7일간 진 밖에 갇혀 있었으며, 이로 인해 백성들은 7일 동안 행진을 멈추고 기다리고 있다가(15), 7일 후에 다시 행진을 계속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한 두 사람의 범죄가 이스라엘 전체의 진행을 막는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범죄가 자신에게만 해를 줄 뿐 아니라, 다른 모든 성도들에게도 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은 혼자가 아니라, 다른 성도들과 지체로 연결된 사람들이다. 그들은 하세롯을 떠나서 바란 광야에 진을 쳤다.                  

* 영적 지도자에 대한 비방의 원인
1. 마음 속의 질투                                                           
2.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위를 인정치 않음
3. 상대방의 행동을 정확한 이해 없이 성급하게 판단함

* 중보자로서의 모세의 기도
1. 같은 책임을 느끼면서 기도함
2. 상처 입은 자의 심정이 되어 기도함
3. 최선을 다해 기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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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데스바네아에서(13-14장)

 2-1. 12 정탐군의 파견과 보고(민 13장, 신 1:19-25)    <참고 지도>

  * 12 정탐군의 선정(민 13:1-16, 신 1:19-23)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세롯에서 출발하여 바란 광야에 있는 가데스에 도착하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에 도착하였을 때에, 모세는 그들에게 "두려워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올라가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을 차지하라"고 지시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으로 가지 않고, 정탐꾼들을 보내서 그 땅을 탐지한 후에 행동을 하자고 제의했다. 모세는 이 말을 좋게 생각하였다(신 1:23). (민 13:1-2)은 12 정탐꾼을 보낸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신명기에서는 백성들이 이 제의를 했고, 모세가 이를 수용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아마도 이 사건은 백성들이 먼저 제의한 것을 모세가 하나님께 물어 허락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모세는 이 일이 백성들의 불신앙과 두려움으로 인해 이루어진 일이었다고 하였다(신 1:21). 아마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기만 하였다면 가데스에서 일어난 엄청난 불상사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내리신 명령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지식으로 판단하여 진행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의 타락한 판단력은 너무나도 불신앙적인 판단으로 치우치기 때문이다.        

  모세는 각 종족에서 두령된 자들을 뽑아서 가나안 땅으로 보냈다(3). 이 사람들은 백성의 지도자들로서 이 일에 가장 적임자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었으며, 그 명단은 다음과 같다(4-16).

1. 르우벤 지파: 삼무아('알림')
2. 시므온 지파: 사밧('재판관')
3. 유다 지파: 갈렙('공격자')
4. 잇사갈 지파: 이갈('그가 속할 것이다')
5. 에브라임: 호세아(호세아(구원)+여호와=여호수아)
6. 베냐민: 발디('구속')
7. 스불론: 갓디엘('구속')
8. 므낫세: 갓디('복됨')
9. 단: 암미엘('하나님의 백성')
10. 아셀: 스둘('감춰진 비밀')
11. 납달리: 나비('숨기다')
12. 갓: 그우엘(여호와는 도움)


  * 12 정탐군들의 조사(민 13:17-24, 신 1:23-24)
  모세는 12정탐꾼들을 가나안에 보내면서 남방 길을 통해서 산지로 올라가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을 조사해 오도록 지시하였다.

 1. 가나안 땅이 어떠한가?(17)
 2.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강함과 약함, 그리고 숫자의 다소(18)
 3. 그들이 거하는 땅이 좋은가? 나쁜가?(19)
 4. 그들이 거하는 곳이 산성인가? 진영인가?(19)
 5. 토지가 기름진가? 박한가?(20)/ 수목이 있는가? 없는가?(20)/

   모세는 그들이 돌아올 때에 그 땅의 과실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 그때는 포도가 처음 익을 즈음이었는데, 팔레스타인에서는 8월, 또는 6월경에 처음 포도가 익고, 9-10월경에 포도를 수확하였다.

                               <참고: "남방의 땅"과 "산지">

  모세가 12 정탐꾼들에게 올라가라고 명령한 "남방의 땅"은 문자적으로는 '메마르다'. '건조하다'는 뜻을 가진 '네게브 지역'이었다. 이 곳은 관개가 전혀 되지 않는 메마르고 건조한 땅이었으며,  대부분이 큰 광야가 좋은 땅으로 변해 가는 과도기적 상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 곳은 큰 나무는 자라지 못하고, 모래 위에 키 작은 관목들과 잡초들만 자라는 초원 지대(스텝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비록 이곳에서 드문드문 곡식이 재배되며 많은 성읍과 촌락이 있기는 하지만, 이 지역은 농경보다는 목축에 더 적합한 지역이었다.        

  "산지"는 팔레스타인의 산악 지대를 말하는 데, 그 당시에 이 곳에는 헷 족속, 여부스 족속, 아모리 족속들이 살고 있었다(29). 그 중에 아모리 족속이 가장 강하였는데, 이로 인해 산지를 '아모리 족속의 산지'라고도 불렀다(신 1:7, 19). 이 산지는 가나안 땅 전체의 중추를 이루고 있으며 레바논까지 뻗어있다.

  모세의 명령을 받은 12 정탐꾼은 명령대로 올라가서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까지 정탐하였고, 또 남방으로 올라가서 헤브론까지 정탐하였다. 헤브론은 애굽의 소안보다 7년 전에 세운 곳이었는데, 그 곳에는 아낙 자손인 아히만과 세새와 달만이 있었다. 이 세 자손은 후에 갈렙이 헤브론을 차지하게 될 때에 갈렙에 의해 쫓겨나게 된다(수 15:14, 삿 1:20). 그들은 헤브론의 영주였던 아르바의 자손들이었는데, 이 아르바의 이름을 따라서 헤브론이 기럇 아르바, 또는 아르바의 성읍으로 불리어졌다. 아르바는 아낙자손 중에도 가장 큰 사람으로(수 14;15), 아낙가문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15:13). 아낙 자손은 거인의 체격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신 2:10-11)에서는 아낙자손을 에밈과 르바임 등의 족속과 한 부류로 취급하고 있다.

  12정탐꾼들은 모세의 지시를 따라 에스골 골짜기에서 포도 한 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둘이 매었고, 석류와 무화과를 취했다. 헤브론의 포도는 특히 품질이 우수했다. 이 성읍 북쪽으로 예루살렘을 향해서 나아가다 보면, 양편 산언덕이 포도원으로 뒤덮여 있는 한 골짜기를 지나게 되는데, 바로 이 곳에서 가나안에서 가장 질이 좋은 포도가 생산된다. 그 외에도 이 곳에는 석류와 무화과나무를 비롯한 여러 가지 과일들이 풍성하다. 이 골짜기가 본 장의 에스골 골짜기로 추정되는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24절에 의하면 이스라엘 자손이 거기에서 포도송이를 벤고로 그 곳을 에스골(포도송이) 골짜기라 불렀다고 기록하고 있다.


  
* 정탐군들의 보고(25-33)
  40일 동안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군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있는 바란 광야의 가데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과 이스라엘의 온 회중에게 그 땅 실과를 보이며, 자신들이 조사한 것을 보고했다(25-26). 그들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매우 비옥한 곳이라는 데에 동의를 했다. 그러나 그 땅을 정복하는 일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그들 중에서 열 명의 정탐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땅을 차지하는 일을 매우 부정적으로 평가하였다. 그들은 그 땅이 좋기는 하지만, 그 땅에 사는 거민들은 강하고 성읍도 견고하며 매우 크다고 보고했다. 그들은 그 땅에는 거인 족속인 아낙 자손이 살고 있었고, 남쪽에는 에서의 후손인 아말렉 족속이(창 36:12) 살고 있었고, 산지에는 가나안의 후손인 헷, 여부스, 아모리 족속들이 살고 있었고(창 10:15-20), 해변과 요단가에는 가나안인들이 살고 있었다고 보고했다. 그들은 현실은 바로 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잊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가나안을 정복하려고 했기 때문에 그 일이 전혀 불가능하다고 보고했던 것이다.

                              <참고: "가나안의 거민들">           

1. 아말렉인
  아말렉은 에돔의 후손인 엘리바스가 그의 첩인 딤나에게서 낳은 아들인데, 이들은 일찍 에돔족속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왔다. 그들은 본거지를 멀리 가데스에서 유다 산맥들의 남쪽과(창 14:7, 민 13:29, 14:43,45), 하윌라에서 애굽의 경계가 있는 술까지(삼상 15:3,7, 27:8), 그리고 아라비아의 페트레아의 북부 전체에 유목민으로 퍼지면서 독립적인 민족을 이루어갔다. 이들 중에서 한 지파는 가나안의 중심부를 지나갔으며, 후에 에브라임의 분깃이 될 지역의 언덕들이 아멜렉 족속들의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삿 12:15, 5:14). 그리고 아라비아에 정착한 아멜렉 족속들은 후에 여러 분파로 나뉘어 지게 되었고, 이 후손들이 미디안, 암몬 자손의 후손들과 결탁하여(삿 3;13) 이스라엘 땅을 침략하였다. 이들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출애굽 한 후애 최초로 이스라엘을 공격하였다(출 17:8이하).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대대로 아말렉과 원수가 되게 하고, 그들을 저주하셨다. 후에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을 통해서 이들을 멸절 시키라고 지시를 하였다(삼상 14:48, 15;2). 그리고 또 다시 다윗 왕을 통하여 응징하게 하셨다(삼상 27:8, 30:1, 삼하 8:12). 그리고 그들 중 남은 자들은 세일산 위에서 시므온 지파에 의해 히스기야 때에 전멸을 당하였다(대상 4:42-43).

2. 헷, 여부스, 아모리 족속   
  이들은 모두가 가나안의 후손들이다(창 10:15). 헷 족속은 가나안의 아들 헷의 자손들이며, 여부스 족속은 후에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어진 여부스의 거민들이었다. 그리고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족속의 한 지파로서 에몰(Emor, Amor)에게서 나왔는데, 이 족속은 모세 당시에 유대 산들과 요단강 너머로 퍼졌으며, 따라서 (창 15:16, 48:22)에서는 모든 가나안 족속들이 이 이름으로 이해되기도 하였다.

  10정탐꾼들이 이러한 부정적인 보고를 할 때에 유다 지파의 대표로 정탐을 하고 돌아온 갈렙이 나서며 그들을 반대하였다. 유다 지파의 갈렙은 '공격자'라는 이름의 뜻과 같이 신앙의 눈으로 현실을 해석하였다. 그는 백성들에게 우리가 공격하면 능히 그 땅을 얻을 수 있다고 보고했다. 그는 가나안 땅의 현실보다 하나님의 명령을 더 중히 여겼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면 이스라엘은 능히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그의 이러한 신앙과 결단력과 용기는 80세가 될 때까지도 계속 유지되었다(수 14:6-15). 하나님의 역사는 비록 소수이지만 이러한 믿음의 소유자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나 다른 10명의 대표들이 이 말을 가로막고 또 다시 부정적인 입장을 고수하였다. 그들은 가나안 정복이 불가능한 이유를 제시하였다. 첫째로 그들은 그 땅의 거민 들이 자신들보다 강하다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그들의 판단은 매우 정확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일을 명령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신다면 그들이 그 일을 능히 할 것이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던 것이다. 둘째로 그들은 그 땅이 기름진 땅이기는 하지만, 많은 부족들이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하기 때문에 그 땅은 주민을 삼키는 땅이라고 하였다. 셋째로 그들은 그 땅 거민들이 신체적으로도 이스라엘 민족보다 월등히 우세하다고 하였다. 그들은 거인이었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에 비하면 마치 메뚜기 만하다고 말하였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서 육체적으로 보면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이 훨씬 더 강하고 유능해 보인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것을 넘어서서 그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반드시 승리하는 신앙을 가지고 전진해야 한다.      

 2-2. 백성들의 결정과 하나님의 심판(14장)

  * 백성들의 결정과 여호수아의 반대(1-10)

  가. 백성들의 결정(1-4)
  이와 같은 부정적인 보고를 들은 온 회중들은 크게 낙심하였다(시 1;28). 그들은 소리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울었고(1), 마침내 모세와 아론은 원망하기 시작했다. 죄와 불신앙은 그 전염성이 매우 강하다. 이제 막 노예에서 해방되어 제도와 정비를 마치고 약속의 땅으로 진군하려던 이스라엘은 이러한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영적인 싸움에서 다수가 무조건 진리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오히려 믿음 없는 다수는 백성들을 더욱 혼란과 낙심으로 몰아갈 가능성이 많다. 이제 막 전진하려는 신앙의 용사들에게 던져진 믿음 없는 지도자들의 보고는 그들을 낙담시키기에 충분하였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이 현실로 이루어지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이제 그들에게는 남은 일은 현실에 타협하든지, 아니면 옛 생활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었다. 그들은 차라리 애굽이나 광야에서 죽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해서 칼에 죽게 만들었다고 원망하였다. 그들은 마침내 모세 대신 다른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일단 마음을 하나님을 거부하는 쪽으로 결심한 이들은 이제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지도자를 거부하고 자신들이 새로운 지도자를 뽑기로 결정을 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보다 자신의 지혜를 따르는 길을 선택했던 것이다. 서구 세계가 그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고 이상과 과학을 그 위에 올려놓은 일도 이와 비슷한 사건이다. 그 결과 그들이 얻은 열매는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약간의 편리함과 향락을 얻은 대신 허무주의와, 쾌락주의, 그리고 환경의 파괴 등을 열매로 거두었다. 지도자의 불 신앙적인 발언은 이와 같은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우리는 여기에서 지도자들이 얼마나 판단과 말에 있어서 신중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지도자의 입에서는 불 신앙적인 말이 나와서는 안된다. 신앙인에게는 후퇴는 없다. 성도들은 한 번 부름을 받았으면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지도자를 믿고 앞으로 전진하는 일만이 있을 분이다. 주님께서는 "쟁기를 손에 들고 뒤돌아보는 자는 합당치 않다"고 하셨다.

  나. 모세와 아론, 여호수아의 반대(5-10)
  이때에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인도자인 모세가 취한 태도는 무엇이었는가? 그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그들을 믿음으로 인도하려고 최선을 다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그들 앞에서 행하시는 하나님을 보라고 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애굽과 광야에서 이스라엘을 인도하셨듯이, 앞으로도 우리를 인도하실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백성들의 마음은 이미 그 권고를 받아들일 수 없을 정도로 완악해 있었다(신 1:29-31).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 앞에서 엎드린 채로 하나님의 중재를 기다렸다. 환란과 반역의 때에 영적 지도자들이 해야 할 태도는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엎드리는 것이다.

  바로 그 때에 에브라임 지파와, 유다 지파의 대표로 정탐을 했던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옷을 찢으며 백성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들은 반역하려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믿음의 나팔을 불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10 정탐꾼들의 보고에 대해 반대하고 나섰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이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하며, 이스라엘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려고 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두려워 할 필요가 없으며, 적을 정복하는 일이 어렵지 않다고 했다(14:7-9). 그들이 이렇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전능하심을 믿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10 정탐꾼은 가나안의 환경은 정확하게 보았으나, 그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은 보지 못하였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신앙을 가진 자와 신앙을 가지지 못한 자의 차이이다. 그들은 이 믿음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광야에서 멸망할 때에 죽지 않고 가나안 땅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불 신앙으로 원망하던 무리들은 그들의 말대로 광야에서 죽음을 당했다. 성도들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 특히 영적인 지도자들은 말을 조심해야 한다. 성도들은 자신과 남을 낙심케 하는 불 신앙적인 말을 버리고, 자신과 이웃을 살리는 신앙의 말을 하도록 힘써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한 대로 우리에게 갚아주실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회중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이것은 그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였지만, 그들은 이를 거절했었다. 마침내 회중들은 그들을 돌로 치려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으나, 그들은 끝내 돌아오기를 거절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기 위해서 회막에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10).   
   

  * 하나님의 진노와 모세의 중보기도(11-25)

  가. 하나님의 진노(11-12)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성실하게 대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기둥과 구름 기둥으로 인도해 주셨고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러한 하나님을 불신하고 이제는 정면으로 도전하기까지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마침내 이들을 멸하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리고 모세에게 그들을 명하고 모세를 통해서 더 크고 강한 나라를 만들어 주시겠다고 선언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엎드려 중보의 기도를 드렸다.

  나. 모세의 중보기도(13-19)
  모세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하지 말 것을 간구 하면서 그 이유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를 제시하였다(13-19).

  첫째로 모세는 이스라엘을 멸하는 일은 하나님의 영광을 해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라고 하였다. 주위에 있는 애굽인이나 아라비아, 그리고 블레셋, 에돔, 모압, 가나안 족속 등은 이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소식을 들었다. 그러므로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일시에 죽임을 당하게 되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실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들을 광야에서 죽였다고 조롱을 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마치 가족의 반대를 무릎 쓰고 예수를 믿은 사람이, 중도에 죄를 지어 하나님께 심판 받는 것과 같다. 이런 경우에 주변 사람들은 그들이 말려도 억지로 하나님을 믿더니 결국 죽고 말았다고 하면서 하나님을 비웃을 것이다. 지금 이스라엘의 경우가 이와 비슷한 입장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둘째로 모세는 하나님의 자비하신 성품에 호소하였다. 하나님은 시내 산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셔서 자신이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와 긍휼이 많으신 분이라고 소개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과실과 죄악을 용서하시지만, 형벌 받을 자에게는 그 죄를 3-4대까지 갚으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 하나님의 판결과 심판(20-35)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들을 전염병으로 한꺼번에 죽이시겠다는 선언을 철회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입으로 말한 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약하고 가나안 거민이 강하여 자신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심지어 애굽이나 광야에서 죽는 것이 더 낫다고 불평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말대로 그들에게 행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20세 이상의 모든 사람들이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이 40년은 그들이 정탐한 40일을 40년으로 계산한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을 악평하였고, 그 땅을 정복할 수 없다고 불평했다. 그리고 다른 지도자를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하였다. 결국 하나님을 버렸던 이스라엘 회중들은 이제 반대로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광야를 돌면서 죽음을 기다리는 동안, 자신들의 불신앙에 대한 대가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아론이 죽고 제 2차 인구 조사가 시행되는 제 40년 5월 1일까지 계속해서 방황하였다(민 26장). 이 기간은 앞으로 38년이 지난 때였으며, 이스라엘이 광야에 들어온 지 40년이 되는 해였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가데스에 오기까지의 약 1년 반을 40년간의 형벌 기간에 포함시킨 것은 그들이 그 동안에도 계속해서 반역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로잡힐 것이라고 말했던 (20세 미만의) 자녀들은 살아서 가나안 땅을 밟게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들은 아직 스스로 판단을 내릴 나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죄에서 제외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회중들에게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말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골짜기에 아멜렉인과 가나안인들이 거하고 있으며, E라서 홍해 길로 돌이켜서 광야로 돌아가라고 하셨다(36-38).

 
  * 백성들의 반응과 패배(36-45)  
  모세는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대로 전했다. 이 말을 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크게 슬퍼하면서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산으로 올라가려고 하였다. 그러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지 않으므로 패배할 것이라고 하였다. 모세는 그들이 진격하면 아말렉인들과 가나안 거민들의 칼에 의해 망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버린 이스라엘 사람들과 함께 하시지 않으셨다. 그러나 백성들은 모세의 말을 어기고 자신들의 잘못을 보상해 보려고 진격하였다. 그러나 이때에 하나님의 언약궤는 진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싸움에 함께 하시지 않았다는 표시였다. 결국 모세의 말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아말렉인과 그 산지에 사는 가나안인들에게 패배하였다. 가나안 족속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쳐서 호르마(금지된 장소)까지 추격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을 버린 사람들의 처절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성도들은  밖에 버리워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소금과 같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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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광야 38년의 여정(15:1-19:22)  참고 지도

   이스라엘은 가데스바네아에서 하나님의 지시를 불순종함으로 인해서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홍해 길로 돌이켜서 다시 광야로 들어왔다. (민 15:-19:)에는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하던 때에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다. 그들이 홍해 길로 돌이켜서 광야에 들어온 후에 신 광야에 있는 가데스로 나오기까지 그들이 거한 장소는 (민 33:17-37)에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이 지명들은 현재에 확인될 수 없는 곳들이어서 우리는 이 지명만 가지고 이스라엘의 38년간의 정확한 여정을 파악할 수 없다. 15-19장에서는 그 기간 중에 일어난 몇 가지 중요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이 때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으로는 고라 당의 반역 사건과(16장), 대제사장 아론의 권위에 대한 도전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아론의 권위를 세워 주신 사건(17장)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이때에 제사 규례(15장)와 제사장 및 레위인의 분깃(18장), 그리고 정결 규례(19장)등과 같은 몇 가지 율법을 추가해 주셨다. 이 기간은 반역의 기간이었으며, 시련과 은혜의 시간이었고, 또 하나님에 대한 반역에 대해 자신이 세운 종의 권위를 세워주신 기간이었다.

                        <광야 38년 동안 일어난 주요 사건들>

1. 부속 제사 규례, 안식일 범한 자의 처벌, 옷단에 술과 청색 끈을 달게 하심(15:)
2. 고라의 반역(16장)
3. 아론의 싹 난 지팡이(17장)
4. 제사장, 레위인의 분깃(18장)
5. 시체로 부정케 된 자를 정결케 하는 규례(19장)
 

 3-1. 부속 제사 규례 및 기타 사건(15장)  

  * 부속 제사 규례(1-31)

  가. 부속제로 드리는 소제와 전제의 규례(1-16)
  하나님께서는 새로운 젊은 세대들에게 몇 가지 새로운 규례를 추가로 지시해 주셨다. 이러한 지시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소망과 기대를 주고, 그들의 마음을 가나안으로 향하게 했을 것이다. 이 규례는 단독 제사가 아니라, 번제나 서원제, 낙헌제, 절기제 등과 같은 제사를 드릴 때에 추가로 곁들여진 소제나 전제의 양을 규정하는 것이었다. 그 양은 짐승에 따라 달라졌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제와 전제의 부속 제물"(3-12)
  1. 모든예물에 고운가루 1/10 + 기름 1/4힌의 소제 추가
  2. 어린양 제사-한마리에-포도주 1/4힌의 전제 추가
  3. 수양의 제사-한마리에-고운가루 2/10에바+기름 1/3힌의 소제+포도주 1/3힌의 전제 추가
  4. 수송아지 제사-한마리에-고운가루 3/10 에바+기름 1/2힌의 소제+포도주 1/2힌 전제 추가  

  이 규례는 본국인 뿐만 아니라 그들과 함께 살고 있는 외국인들에게도 적용되었다. 앞으로 가나안 땅에서 외국인들은 본토인 같이 동일한 규례를 따라 제사를 드리는 일이 허용될 것이다.

  나. 거제에 관한 규례(17-21)  
  두 번째로 주어진 규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추수 후 첫 열매를 드리는 제사에 대한 것이엇다. 이스라엘이 백성들은 가나안에서 추수를 한 후에 처음 익은 곡식을 거칠게 빻은 가루로 만든 떡을 유월절 후 첫 번째 안식일 다음 날에 첫 이삭과 함께 드려야 했다. 이 첫 이삭은 제일 먼저 익은 곡식 한 단을 묶어서 하나님께 거제로 드린 이삭을 말한다. 이러한 예물들은 한 해 동안에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주신 풍성한 열매와 소출에 대해 감사하는 예물이었다. 이 예물들은 거제로 드려진 후 제사장의 몫이 되었다(출 29:27-28, 레 7:14, 32). 이 떡은 안식일 다음 날, 즉 주일에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고전 15:23)   

  다. 속죄제에 관한 규례(22-31)
  세 번째로 주어진 제사 규례는 속죄제에 관한 규례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회중이나 개인이 하나님께서 명한 율법들을 위반하거나, 지키지 못했을 경우에 속죄제를 드려 그들의 죄를 속하게 하셨다. 회중이 죄를 지은 경우에는 수송아지 한 마리와, 수염소 한 마리를 제사장에게 주어정한 규례를 따라서 속죄해야 했는데, 이때에 함께 거주하는 외국인들의 죄도 사해졌다. 개인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길 경우에는 일 년 된 암염소로 속죄제를 드렸으며, 이 법도 외국인들에게 그대로 적용되었다. 그러나 이 속죄제는 실수로 지은 죄를 속하는 제사였다. 하나님께서는 고의로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는 용서를 받을 길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만일 사람이 고의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길 경우에는 하나님을 훼방한 자로 간주되어 반드시 처벌을 받았다(30-31).      


                                
   <적용 문제들>

1. 외국인들에게도 동일하게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들이 모두 다 동등하게 취급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유대인이나 이방인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는 죄인들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모두 다 하나님께 나아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후에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교회를 통해서 이 일을 성취시켜 주셨다(롬 3:9-29, 고전 1:22-25, 빌 2:9-12). 교회 시대는 복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온 인류는 하나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2.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속죄제의 규례는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해 비고의적으로 지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로 주어진 것이었다. 여기에서 '그릇 범죄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솨가'라는 말인데, 이는 '방황하다', '죄를 짓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다. 이 말은 인간의 연약으로 인해 실수로 지은 비고의적인 범죄를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법을 주시고 심판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은 자들을 위해 용서받을 수 있는 길도 열어놓으신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고의적으로 지은 범죄를 위해서는 용서의 길을 허락하시지 않으셨다. 여기에서 '짐짓'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베야드 라마'인데, 이 말은 문자적으로 '높은 손으로'란 의미를 가지고 있다. '짐짓 죄'란 하나님을 향하여 손가락질을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고의로 훼방하는 것을 말한다. 성경에서는 이러한 죄를 '죽음에 이르는 죄'(요일 5;16)라고 했으며, '고의로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금생과 내세에서도 용서받지 못한다고 선언하였다(마 12:31,32).


  * 안식일을 범한 자에 대한 징계(32-36)    
  이 때에 어떤 사람이 안식일에 나무를 하다가 사람들에게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나무하던 자를 잡아서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고 왔으나, 어떻게 처리할지 몰랐다(32-34). 모세는 이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진 밖으로 끌어내고 온 회중이 돌로 치라고 지시하셨다. 모세는 지시를 따라 그 사람을 진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쳐서 죽였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 짓는 범죄는 하나님께서 사형으로써 엄히 징계하셨다. 그리고 그를 죽일 때에도 모든사람이 보는 앞에서 온 회중이 돌로 치게 하여 다른 사람에게 경계가 되게 하셨다.  

 
  * 옷단에 술 장식을 하는 이유(37-4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들의 옷에 술을 만들어 달라는 지시를 하셨다. 이 지시는 안식일을 범한 자를 돌로 쳐서 죽인 후에 주어졌다. 이러한 조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방심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위반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취해진 조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좆아 행하다가, 하나님의 율법을 어기는 일이 없도록 조치하셨다. 그것은 바로 그들이 매일 입고 다니는 옷의 네 귀퉁이에 술을 만들어 다는 것이었다. '술'은 히브리어로 '찌찌트'인데, 이는 '빛나는 것', 또는 '꽃'이란 뜻을 가진 '찌츠'라는 말에서 왔다. 본문에서의 술은 '꼬아서 만든 실뭉치'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날마다 입기도 하고 밤에는 이불로 덮고 자기도 하는 겉옷의 네 귀퉁이에 실뭉치를 만들어 청색 끈과 함께 달고 다니도록 지시하셨다. 이것은 그들이 일상 생활 속에서 신적 권위의 상징인 청색 끈을 달고 다님으로써 방종해 지는 마음을 단속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도록 경계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부주의함과 연약함을 아시기 때문에, 이러한 방법을 통해서 항상 말씀에 대해 주의를 기울 일 수 있도록 배려해 주셨다. 그러나 후에 바리새인들은 이 술을 크게 만들어서 자신들이 율법에 대해 관심이 많다는 것을 나타내려고 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외식으로 치우쳤으므로 이러한 표시가 아무 영향을 주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주님께서는 그들의 외식을 엄하게 책망하셨다(마 23장).

                                   <적용 문제들>     
1. 인간은 항상 죄의 유혹에 노출되었고 또 죄를 지을 가능성이 있다.
2. 우리는 항상 마음과 눈을 말씀으로 지킬 필요가 있다.
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일상 생활이 거룩하게 유지되기를 원하신다.
4.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법도 우리의 죄성으로 인해 죄를 짓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5. 우리는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서만 죄를 이길 수 있다.


 
3-2. 고라의 반역과 백성의 반역 사건(16장)

  * 사건의 발단(1-3)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38년간의 사건 중에서 기록된 유일한 사건은 본문에 나타난 사건과, 아론의 싹 난 지팡이 사건이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모두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세와 아론의 지도 체제에 반역한 사건이다. 자신들의 불 신앙으로 인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출애굽 세대는 죽음 외에는 광야를 벗어날 길이 없었다. 그야말로 그들은 죽기만을 기다리며 광야를 방황해야 하는 "죽음의 세대"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 체제를 부정하고, 다른 지도자를 세워 새로운 돌파구를 찾으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사건은 모두 다 신적인 개입에 의해서 좌절되었다.      

  반역의 주동이 되었던 사람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 그리고 온이었다. 고라의 아버지인 이스할은 모세와 아론의 아버지인 아므람과 형제지간이었으며(출 6:18), 따라서 고라는 모세와 아론과는 사촌지간이 되는 사이였다. 그는 고핫 자손들 중에서 모세와 아론 다음 가는 중요한 인물이었기 때문에 모세를 대적하는 일에 주동자가 될 수 있었다. 또한 다단과 아비람은 르우벤 지파의 장자이며 족장이었던 엘리압의 아들이었다. 아마도 그들은 요셉 지파와 유다 지파에게 빼앗긴 장자권과 주도권을 회복하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들의 세력에 합세한 온은 벨렛의 아들(또는 발루(민 26:8-9))이었다. 이들은 힘을 합하여 이스라엘 총회의 대의원이며, 백성 중에서 이름 난 지도자 250명을 그들의 음모에 합세하게 하였다. 이 반역의 주도자는 고라였기 때문에 성경은 이들을 '고라당"이라고 부르고 있다(5,6, 26:9, 27:3).

  그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를 전면 부정하고 나섰다. 이러한 사건은 자신들에게 저주를 선포하신 하나님에 대한 불만이 표출된 것이었다(16:11,13-14). 고라는 아론을 대신해서 대제사장이 되기를 원했을 것이며, 르우벤 자손들은 빼앗긴 장자로서의 지도자의 자리를 원했을 것이다. 그리고 250인의 지도자들도 새로운 지도 체제를 세워서 광야에서 죽지 않고 살을 수 있는 돌파구를 만들어 보려고 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사건이 단순히 모세와 아론의 지도 체제에 대한 반역이라기보다, 그들에게 저주를 선포하신 하나님에 대한 인본주의적인 반역이었다. 그들은 모세가 회중을 멸시하고 스스로 자신들을 지나치게 높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게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이 거룩하고 여호와께서도 그들 중에 계시는데, 어찌하여 그들이 이스라엘 회중들 앞에서 스스로 높이느냐고 비난했다. 모세가 백성들에게 죄와 심판을 선포한 반면에 이들은 백성들을 긍정적으로 판단했다.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희망을 잃은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였다. 참 선지자는 분명히 백성들이 잘못했을 때는 심판을 선포한다. 그러나 거짓 선지자는 근거 없는 평안을 외친다.


  * 사건의 해결(4-19)          .

  가. 모세가 레위인들에게 대하여 한 말(4-11)
  이러한 반역 사건이 일어나게 되자, 모세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 지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모세는 하나님의 지시를 듣고 고라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했다. 모세는 내일 아침에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판결을 받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모두 각기 향로를 손에 가지고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 앞에 분향하기로 하였다. 모세는 그들 중에서 하나님께서 선택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였다. 분향하는 일은 제사장들의 직무였다. 그러므로 제사장의 분향을 받으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 제사장을 열납 하셨음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사건에서 아론의 두 아들이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죽은 사건을 기억할 수 있다(레 10:1-3).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에 대하여 이미 형벌을 내리셨다. 모세는 고라와 그의 추종자들에게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잊어버리고, 분수에 지나친 요구를 하고 있다고 책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고라 자손을 선택하여 성막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담당하게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 일에 만족하지 못하였다. 모세는 그들이 지도자의 자리와 대제사장의 자리를 요구한 것은 분수에 지나친 요구라고 하였다. 모세는 아론이 스스로 대제사장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연약한 종에 불과한데, 어찌해서 그를 원망하느냐고 그들을 책망하였다.

  나. 다단과 아비람의 거역(12-17)            
  모세는 다단과 아비람에게도 이 말을 해주기 위해서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은 공개적으로 모세와 아론을 공격하였으며,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모세와 아론을 지도자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을 젖과 꿀이 흐르는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광야에서 죽게 하는 지도자들은 필요 없다고 했다. 모세는 그들에게 처음에 약속한 가나안 땅을 주지도 못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 밭이나 포도원 같은 기업을 주지 못하는 허수아비 지도자라고 공격했다. 그들은 모세가 이 모든 일을 속이려고 백성들의 눈을 빼는 것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모세는 이 말을 듣고 심한 모욕과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정당하게 판결해 주실 것을 간구 하였다. 모세는 자신의 정당함을 토로하면서 하나님께 그들의 예물을 돌아보자 말아달라고 간구 하였다. 모세는 고라와 그를 추종하는 무리들에게 내일 각기 향로를 가지고 아론과 함께 나와서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라고 지시하였다.


  * 하나님의 심판(18-40)

  가. 심판이 모세의 중보기도로 철회됨(18-24)
  다음 날 약속대로 모세와 아론과 함께 고라와 그의 추종자들이 각기 향로를 가지고 회막 앞에 서게 되었다. 고라가 온 회중을 모아놓고 모세와 아론을 대적하려고 할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 앞에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회중들을 멸할 것이기 때문에 그들로부터 따나라고 지시하셨다. 그러나 모세는 범죄한 한 사람으로 인해 온 회중을 멸하지 말아달라고 간구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반역의 주동자인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에서 떠나라고 지시하셨다.

  나. 하나님의 심판(25-35)
  이 지시를 들은 모세는 일어서서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으로 갔다. 다단과 아비람은 앞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고 황급히 자기 장막으로 갔을 것이며, 모세는 이 일의 처리를 위해서 급히 그들을 따라 장막으로 갔다. 그리고 이스라엘 장로들도 모세의 뒤를 따라 갔다. 이때에 모세는 회중에게 소리치며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은 아무 것도 만지지 말라. 그들의 모든 죄 중에서 너희도 멸망할까 하노라"(26)

  이에 회중들은 모세의 지시를 따라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을 떠났다. 그러나 다단과 아비람은 일이 어찌 되는 가를 지켜보기 위해서 그 처자들과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 문에 서 있었다. 이때에 모세는 다음과 같이 선언하였다.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케 하신 것이요, 나의 임의로 함이 아닌 줄을 이 일로 인하여 알리라.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들과 일반이요, 그들의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의 당하는 벌과 일반이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냄이 아니거니와,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28-30)

  모세가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에 있는 땅이 갈라졌다. 그리고 땅이 입을 벌려서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들과(종들), 그들의 물건들을 삼켰다. 그리고 그들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소속들이 산채로 땅 속으로 떨어진 후에 땅이 다시 합쳐졌다. 이렇게 되어 그들은 순식간에 이스라엘의 총회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 주위에 섰던 회중들은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자신들도 땅 속으로 들어갈 것이 두려워서 급히 도망하였다. 이때에 여호와께로부터 불이 나와서 분향하고 있던 250명의 지도자들도 태워 버렸다.  

  다. 향로를 쳐서 놋제단을 만듦(36-40)
  이때에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대제사장 엘르아살로 하여금 불 가운데서 향로를 취하여 그 불을 다른 곳에 쏟으라고 지시하셨다. 왜냐하면 그들이 범죄 하여 죽기는 했지만, 그 향로는 하나님께 드려진 것이었기 때문에 거룩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 향로는 다른 곳에 쓰일 수가 없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쳐서 편 철을 만들라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하나님께서 지명하신 제사장들 외에 다른 사람들이 회막에 나와 다른 불로 분향하지 못하게 하셨다. 그리고 이 모든 일로 인해 경계를 받고 다시는 고라와 같은 일을 당하는 사람들이 없도록 하셨다. 엘르아살은 모세의 명을 받고 즉시 그대로 이행했다.    


  * 백성들의 원망과 하나님의 심판(41-50)
  그러나 회개해야 할 회중들은 오히려 그 이튿날에 모여서 모세와 아론이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다고 원망했다. 회중이 모여서 모세와 아론을 공격할 때에 회막에 구름이 덮였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들 중에 나타났다. 모세와 아론은 회막 앞으로 급히 이동하였고, 여호와께서는 그들에게 회중을 멸할 것이므로 그들로부터 떠나라고 하셨다(45). 이미 여호와의 진노로 인해 그들 중에 염병이 시작되고 있었다. 모세는 아론에게 급히 향로를 가지고 와서 거기에 불을 담고 그 위에 향을 놓아 급히 회중을 위해 속죄하라고 지시하였다. 아론은 모세의 말대로 즉시 가서 향로를 가지고 회중들에게 나아갔다. 이미 그때에는 백성들에게 염병이 시작되고 있었다. 아론은 백성들을 위해 급히 속죄하였으며, 그가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서 있을 때에 염병이 그쳤다. 이 날 고라의 사건으로 인해서 죽은 자를 제외하고, 염병으로만 죽은 자가 14,7000명이나 되었다. 염병이 그치게 되자, 중보 사역을 마친 아론은 다시 회막 문에 있는 모세에게 돌아왔다.     

                                <적용 문제들>
1.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적인 힘으로 거역하려는 시도는 반드시 심판으로 끝이난다.
2. 때로는 오히려 평민보다 지도자와 비슷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반역하기가 쉽다.
3. 하나님께서 세워 주신 사람들을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치려 해서는 안된다.
4. 자기에게 맡겨진 일을 소중하게 여기고 충성하고, 남의 직분을 탐내지 말라.
6. 가장 큰 위기가 왔을 때에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은 모든 해결의 열쇠가 된다.
7. 원망과 불평, 그리고 반역을 하는 일에 결단코 가담하지 말라.   


 3-3. 아론의 싹난 지팡이(16장)

  * 하나님의 명령(1-7)
  본문에는 아론의 지팡이에 싹이 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고라당으로 인해 나타난 백성들의 원망과 시비를 종식시키시기 위해서 이 사건을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제사장직이 사람의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 주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직분을 넘보거나 무시하지 못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해서 각 종족대로 그 종족의 이름을 쓴 지팡이를 가져오게 하셨다. 그리고 그것을 증거궤 위에 두면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의 지팡이에 싹이 날 것이라고 하셨다. 지팡이는 개인이 호신용이나 도보용으로 사용하였으며, 이것은 그 사람의 집이나 회중에게 있어서 다스리는 자로서의 지위를 나타냈다. 왕에게는 그 지팡이가 치리자의 상징, 혹은 표인 '홀'이 되었다(창 49:10). 다윗은 그의 시에서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 라고 고백하였다. 다윗은 목자의 지팡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해서 하나님의 강력하고 완전하신 보호를 나타내려고 했다.

  본문에서 지팡이에 쓴 이름은 각 지파들을 대표하고 있다. 각자의 이름이 기록된 지팡이를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증거궤 위에 둔 것은 각 족장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족장들은 각 지파의 대표였기 때문에, 족장들이 나아갔다는 것은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나아갔음을 의미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에서 자신이 원하시는 지파를 선택하셔서 자신이 선택하신 대제사장이 누구인지를 백성들에게 분명하게 가르쳐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하신 이유는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후에, 좌절감으로 인해 아론의 제사직을 부정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대제사장 직분이 하나님의 뜻에 의한 것임을 분명하게 하심으로 백성들이 그 권위에 도전하지 못하도록 하셨던 것이다. 이 표적은 마른 막대기와 같은 인간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낸다. 그리고 통치를 의미하는 지팡이에 표시를 해 주심으로써, 아론의 직분의 신적인 기원을 증거해 주셨다. 모세는 이러한 하나님의 지시를 각 지파의 족장들에게 전달했으며, 각 족장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12개의 지팡이를 하나님의 증거궤 위에 갖다 놓았다.


  * 아론의 지팡이에서 싹이 나다(8-11)
  이튿날 모세는 증거의 장막에 들어가 보았다. 그리고 그가 보니 다른 지팡이들은 그대로 있었으나, 아론의 지팡이에는 움이 돋고, 순이 나서, 꽃이 피어 살구 열매가 맺혀 있었다. 모세는 모든 지팡이를 꺼내어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내놓았고, 각 족장들은 각자 자기 이름이 기록된 지팡이를 찾았다. 이 사건으로 인해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아론을 대제사장으로 선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아론이 교만해질 수 있는 근거를 준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은 아론이 마른 막대기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상 하나님 앞에서는 이스라엘의 12 지파가 모두 마른 막대기와 같은 존재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레위지파를 선택하셔서 그들에게 성령으로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 주셨다.

  살구열매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첫째로 살구나무는 '소망'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살구나무는 이스라엘의 모든 나무들 중에서 가장 먼저 열매를 맺는 나무로서 새 생명과 소생을 상징하는 '소망'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둘째로 살구나무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의미하였다. 이 살구나무는 히브리어로 '솨케드'라고 하는데, 이는 "지킨다, 보호한다"는 의미인 '솨카드'란 말에서 유래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살구나무를 통해서 이스라엘을 지키시며 보호해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보여주셨다(렘 1:11). 이 살구나무가 맺힌 지팡이는 또 다른 영적인 교훈들이 있다. 첫째로 이 지팡이는 후에 인류의 대제사장으로 임명받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 가운데서 하나님께서 대제사장으로 선택하셨다. 그리고 죽은 자 가운데서 주님을 다시 살리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주님께서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세우신 대제사장이라는 분명한 표시이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지팡이에 살구 열매가 맺히게 하심으로 그의 권위를 분명히 하셨던 것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게 하심으로 모든 인류를 위한 대제사장으로 세우셨음을 만민에게 증거해 주셨다. 둘째로 살구나무가 열린 지팡이는 성도들의 열매 맺는 생활을 상징한다. 하나님께서는 마름 막대기와 같은 우리 안에 성령을 주심으로 그 안에 새 생명을 창조하시고, 성령의 열매 맺는 성화를 이루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아론의 지팡이를 다시 증거궤 위에 놓도록 지시하셨다. 이 지팡이는 앞으로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될 것이다. 이 지팡이가 하나님의 증거궤 안에 있는 한 아론의 대제사장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권위를 인정하고 그를 따라 하나님께로 나아가야 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죽음에서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우편으로 가셨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 곳에 계시는 한 영원토록 인류를 위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이러한 대제사장을 바라보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야 한다.


  * 이스라엘 백성들의 부르짖음(12-13)
  이렇게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은 더 이상 모세와 아론의 직분을 항거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결국 그들은 광야에서 멸망해야만 한다는 하나님의 선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제 자신들이 다 죽고 망하게 되었다고 부르짖었다. 이들은 자신들의 불신앙을 회개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징계를 달게 받고, 자기 자손들은 이러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말씀으로 잘 양육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아론이 제사 일을 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모세와 아론의 신적 권위가 분명해짐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려진 선고도 분명해졌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의 권위를 부정함으로써 이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에게는 모세와 아론이 더 이상 희망을 주는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오히려 신앙의 눈을 뜨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지팡이 사건을 통해서 새로운 소망을 발견할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이 지팡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인류를 구원하시고, 자기 백성을 지키시겠다고 하는 하나님의 약속이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이 지팡이는 이스라엘과 같이 죄에 빠져 신음하는 인류를 위해 성령을 보내 주셔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약속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의 불신앙을 회개하며, 순순히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미래를 향해 주시는 하나님의 소망과 보호의 손길을 바라보았어야 했던 것이다.


 3-4. 제사장 및 레위인들의 직무와 분깃(18:1-32)
  고라와 그 추종자들이 하나님께 분향을 하다가 죽음을 당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소에 가는 자마다 다 죽음을 당한다고 불평했다(16장).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해서 두 가지 조치를 취해 주셨다. 첫째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를 통해서 아론의 대제사장직이 신적 선택을 입증해 주셨고(17장), 둘째는 제사직의 규례와 제사장의 분깃에 대해서 다시 한번 가르쳐 주셨다(18장). 하나님께서는 제사 드리는 일을 전문화함으로써 실수가 없게 하셨으며, 그들을 위해 생활 대책을 세워 주심으로써 그 직분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 주셨다.

  * 제사장의 직무(1-7)  
  하나님께서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을 위해서 제사직무의 규례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셨다. 이는 아론과 레위인들로 하여금 자만이나 방종에 빠지지 않고, 근신함으로 자기 임무에 전념하게 하여, 백성들이 죄를 입지 않도록 하기 위한 조치였다. 하나님께서는 임무를 부여하시면 그것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환경도 허락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아론의 가족과 레위인들에게 성소에 대한 죄를 담당하도록 지시하셨다. 성소에 대한 죄는 성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죄를 말한다. 즉 레위인 외의 사람들이 접근하거나 성물을 만지는 일, 하나님께 제사를 잘못 드리는 일, 하나님의 성물을 드리지 않거나 잘못 다루는 일, 그리고 온 회중의 죄로 인해 성소가 더럽혀 지는 일 등이 이에 속한다. 제사장 직분에 관한 죄는 제사 직무를 하는데 있어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불법과, 자신들의 연약함으로 생기는 모든 죄악들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과 제사장들이 이러한 모든 죄를 담당하라고 지시하셨다.  

  아론은 성소에 관한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레위인들과 함께 그 일을 수행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레위인 외에 다른 사람들이 성소에 접근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하셨다. 레위인들은 아론과 그 아들들이 성소에서 제물을 드리며, 성막 안에서 분향하고, 떡을 진설하며, 등잔불을 켜는 일들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일과, 장막을 걷고 이동하며 세우는 일들을 담당하였다. 그러나 레위인들도 역시 성소 안에 들어가는 일(분향하고, 등불을 끄고 켜는 일, 진설병을 드리는 일)과 제단에 가까이 하는 일(번제단에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을 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왜냐하면 이 일은 제사장에게 맡겨진 고유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규례는 하나님의 진노가 백성들에게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제사장들은 스스로 조심하여 다시는 나답과 아비후가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고, 고라 당이 스스로 분향하다가 멸망 받은 것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했다. 이것은 그들이 자기 직무에 충실할 때에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 하나님은 이 일을 돕도록 장자들을 대신에서 레위인들을 제사장들에게 주셨다.


  * 제사장의 분깃(8-20)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제사직에만 종사해야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중에서 그들의 분깃을 정해 주셨다. 아론과 그의 아들들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예물들을 주관하고 간직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 중에서 그들의 음식을 제정해 주셨다, 이것은 사도 바울이 말한 자와 같이 "제단에 속한 자들이 제단으로부터 그 분깃을 받는다"는 원리를 보여주고 있다.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 중에서 제사장에게 돌아갈 분깃은 다음과 같았다.

  가. 지성물(소제, 속죄제, 속건제) 중에서 불사르지 않은 것들
  번제의 경우는 가죽만 허락되고 다른 모든 것은 불태워 하나님께 드렸다. 이는 하나님께 드려진 지성물이었기 때문에 그들도 거룩히 여기며 먹어야 했다(9-10).
  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드리는 거제물과 요제물(11)
  제사장 가족들 중에서 정결한 자마다 먹을 수 있었다.
  다. 하나님께 드리는 첫 소산물(제일 좋은 기름과 포도주와 곡식, 처음 익은 열매)(12-13)
  라. 하나님께 드린 모든 것(14)
  마. 모든 생물의 처음 난 것(사람, 짐승의 초태생)

  그러나 사람이나 부정한 짐승은 속전으로 대속했다. 사람의 경우는 난 지 일 개월이 지난 후에 제사장이 정한대로(성소의 세겔로 은 다섯 세겔) 대속했으나, 짐승의 경우에는 직접 제물로 하나님께 드렸다. 이때에 피는 제단에 뿌리고, 기름은 불살라서 향기로운 화제로 하나님께 드렸으며, 그 고기는 제사장에게로 돌아갔다(15-18).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예물들을 제사장과 레위인들에게 주실 것을 절대 변하지 않는 소금 언약으로 약속해 주셨다. 원래 모든 땅이 하나님의 소유이지만, 이스라엘은 열 방의 제사장 나라로서 가나안을 기업으로 받았다. 그러나 아론의 가족과 레위인들은 성막의 일을 담당해야 했기 때문에 아무 것도 받지를 못했다. 그들의 분깃은 바로 하나님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드려진 예물 중에서 그들의 음식을 허락해 주셨다.


  * 레위인의 분깃(21-24)
  레위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를 분깃으로 받았다. 그들은 회막 일을 제사장을 도와 봉사하며 자신들의 죄를 담당했고, 타인이 성소에 접근하는 것을 막아 죽임을 당치 않도록 했다.

 
  * 레위인의 분깃 중에서 제사장에게로 드릴 것(25-32)
  앞의 지시는 아론에게 주어졌으나, 이번의 지시는 모세에게 전달되었고, 모세가 레위인에게 명령하였다. 레위인들은 자기들이 분깃으로 받은 것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여호와께 십일조를 드려야 했다. 그리고 이것은 아론의 가족들이 취했다. 레위인들은 십일조를 드리고 성물을 더럽히지만 않는다면, 그들은 어느 곳에서나 그들의 분깃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다. 이들이 드리는 십일조는 다른 지파들이 밭이나 들에서 일한 수고의 결과로 수확한 것 중에서 드린 십일조로 간주되었다. 왜냐하면 그들도 이것을 회막에서 일한 대가로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제사장 나라로 삼아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셨다. 그리고  그들은 다시 그들의 소산 중에서 1/10을 하나님께 드렸으며, 레위인들이 이를 받아서 그 중에서 또 다시 1/10을 하나님께 드렸으며, 이것은 제사장들에게 돌려졌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그들의 소유 중에서 또 다시 일부를 제단에서 하나님께 불살라서 하나님께 드렸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이 받은 모든 특권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나타내었고,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며, 겸손과 성실로 살아갈 수 있었다.

                                 <적용 문제들>
1. 우리는 십일조를 통해서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한다.
2.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을 귀중히 여기신다.
3. 성전의 일을 맡은 자들은 하나님을 분깃으로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겸손과 성실로 하나 님께서 주신 직무를 올바로 수행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유익이 되게 해야 한다.
4. 하나님께서는 일을 맡기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해 주신다.
5.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께서 불러서 은사를 주신 사람들의 손에 의해서 성취된다. 우리는 남 의 은사를 시기하거나 월권해서는 안된다.


 3-5. 시체로 부정해진 자를 정결케 하는 법(19장)
  가데스바네아에서 광야 길로 다시 돌이킨 후에, 이스라엘의 여정은 20세 이상된 자들의 죽음을 기다리는 과정이었다. 고라 당의 반역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 아침에 죽어갔으며, 20세 이상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죽을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로 죽는 사람들이 증가하였고, 이로 인해 가족들을 장례해야 하는 일들도 빈번해 졌다. 하나님께서는 이때에 시체로 부정해진 사람들을 정결케 하기 위한 규례를 정해주셨다. 인간의 죽음은 타락과 죄의 결과로 주어졌다. 죽음은 사람들의 죄와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나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시체와 접한 자들을 부정한 자로 간주하셨다. 죽음과 그 부패에 접한 모든 사람이나 물건들은 7일간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었다. 주검으로 인해 부정케 된 사람들은 모두 진 밖으로 내어보냄을 받았다(민 5:2-4). 대제사장은 자기의 몸이 부정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자기 친족의 장례식에도 갈 수 없었으며, 제사장은 자기 친족의 장례식에만 참여하는 것이 허락되었다(레 21:1-6, 10-12).  사망률이 정상일 때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유지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이 당시 이스라엘은 광야의 방랑 생활 중에서 사망률이 급격히 늘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체를 접할 확률이 매우 높아지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시체로 부정하게 된 사람이나 물건을 그 부정으로부터 정결케 하는 특별한 조치를 주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기 부모들이 가데스에서 죄를 짓고 죽어 가는 모습과 부모의 시체를 지켜보면서, 하나님 앞에 겸비한 태도를 가져야만 했다. 시체로부터 정결케 하는 규례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정결에 대한 중요성과 함께 죄에 대한 경각심과 하나님께 대한 경외감도 동시에 갖게 만들었을 것이다.


 * 부정을 정결케 하는 재를 만듬(1-10)

  
가. 재료: 온전하고 흠 없고, 아직 멍에를 메어보지 못한 붉은 암송아지(1-2)
  하나님께서는 시체로 부정케 된 자들을 위해서 특별한 재료들을 준비하게 하셨다. 정결 의식에 쓰일 재료는 온전하고 흠이 없으며, 아직 멍에를 매어보지 못한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로 만들어졌다. 이 정결 의식은 시체로부터 부정케 된 자들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속죄제'(하타아트)라고 불리어졌다(9,17). 그러나 일반 속죄제와는 그 성격이 달랐기 때문에 희생 제물과 제사 의식도 이에 적합한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일반 속죄제의 희생 제물은 수송아지인데 반해(레 4:14), 이 의식을 위한 제물은 암송아지였다. 이 암송아지는 히브리어로 '파라'라고 하는데, 이 말은 원래 '열매", 또는 '열매를 맺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으로 생명의 상징을 나타낸다. '파라'는 어린 암송아지와 장성한 암소의 중간에 있는 젊은 암소를 가리킬 때에 사용된 말이다. 시체로 부정케 된 자를 정결케 하기 위해 생명력의 상징인 '파라'가 사용된 것은 당연한 것이다. 왜냐하면 왕성한 생명력만이 사망을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왕성한 암소는 왕성한 청년기에 인류의 속죄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한다.

  또한 이 희생 제물은 '붉은 암송아지'였다. 제물로 붉은 송아지가 사용된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제시되고 있다. 첫째는 붉은 암송아지가 귀중하고 비싼 것이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며, 둘째는 붉은 색은 피 빛으로 죽음을 상징하는 피의 색깔을 나타내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셋째는 반대로 붉은 색은 원기 왕성한 생명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붉은 색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흘리실 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아마도 위의 네 가지 견해 중에 한가지를 택하기보다는 이 문제들이 모두 함께 복합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바람직할 것이다. 또한 이 희생 제물은 "아직 한 번도 멍에를 메어보지 못한 암소"였다. 아직 다른 멍에를 한 번도 메어보지 않은 젊고 생명력이 넘치는 암소가 시체로 부정케 된 자들을 정결케 하기 위해 희생되었다. 백성의 정결을 위해서 다른 일에 아직 사용된 적이 없는 송아지가 온전히 이 일만을 위해 드려져야만 했다. 또한 이 암소는 '온전하여 흠이 없는 것'이라야 했다. 다른 사람들의 부정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는 온전하고 흠이 없는 암소가 대신 희생이 되어야만 했다. 죽음의 부정으로부터 정결케 하기 위해 사용된 처방은 그 특성이나 색깔, 그리고 생명력에 있어서 가장 활기차고 온전한 암소였다. 이러한 왕성한 생명력만이 죽음으로 부정케 된 자들을 다시 정결케 만들 수 있었다. 우리는 이 암소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부정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 영문 밖에서 죽임을 당하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온전하고 죄가 없으며 흠이 없는 분이셨다. 그러나 인간의 죄를 정결케 하기 위해서 흠 없으신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원기 왕성한 젊은 시절에 인류를 위해서 피를 흘리고 희생이 되셨다. 이것은 죄로 인해 사망의 노예가 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다. 온전하시고 흠 없는 그리스도만이 타락한 인류의 죄를 속하실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흠 없으신 그리스도의 피를 우리 인류를 정결케 하는 도구로 사용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바라보는 자들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정결케 함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셨다(1-2).    


 
 나. 만드는 자: 제사장 엘르아살(3-10)
  이 암소는 제사장 엘르아살에게 맡겨졌다. 아마도 대제사장인 아론은 모든 부정으로부터 분리되어져야 했기 때문에 이 일에서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제사장 엘르아살은 이 암소를 진 밖으로 끌어내서 자기가 보는 앞에서 잡게 했다. 이 암소는 가장 온전하고 흠이 없는 것이어서 진안에 있어야 했지만, 이스라엘 백성의 정결을 위해서 진 밖에서 죽임을 당해야만 했다. 주님께서도 인류의 죄를 위해서 영문 밖에서 죽임을 당하셨다. 이 암소를 잡은 후에 제사장 엘르아살은 손가락에 그 희생된 암소의 피를 찍어서 회막을 위하여 7번 뿌림으로서 속죄의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나서 제사장 엘르아살이 보는 앞에서 그 암소의 모든 것, 즉 가죽과 고기와, 피와 똥을 불사르게 했다. 이때에 제사장 엘르아살은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을 취해서 암송아지를 사르는 불 가운데로 던졌다. 백향목은 부패하지 않는 나무로서 나무의 왕으로 이해되었고, 성전이나 왕궁과 같은 귀중한 것을 만들 때에 사용되었다. 백향목의 부패하지 않는 속성은 영생을 상징하며, 이것은 죽음을 정결케 하기 위한 재료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우슬초는 이스라엘에서 부정해진 자들을 정결케 할 때에 일반적으로 사용된 식물이었다. 그리고 홍색 실은 생명력과 희생의 피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재료들은 결코 죽지 아니하시고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는 그리스도와, 주님의 희생의 피를 생각나게 해주는 재료들이다. 이러한 재료들이 희생된 암소와 함께 곁들여져서 시체로부터 부정하게 된 사람들을 정결케 하는 기능을 더욱 더 강화하고 있었다. '속죄한다'는 히브리어인 '카베드'는 '덮는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는데, 이것은 그리스도의 보혈과 그 의가 우리의 모든 죄를 완전히 덮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3-6).  

  이 일을 행한 제사장 엘르아살과 송아지를 불사른 자는 부정한 몸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옷을 빨고 목욕을 한 후에야 진에 들어올 수 있었으며, 그 날 저녁까지 부정한 자로 취급을 받았다(7-8). 이는 그들이 주정한 자의 속제물을 취급하였기 때문이다. 이 암송아지의 재는 정해진 자가 거두어다가 정해진 장소에 보관하여 두었다. 이 재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보관해 두었다가 부정을 깨끗하게 하는 물을 만들 때와, 시체로 부정케 된 자를 정결케 할 때에 사용될 것이다(9), 이 재를 가둔 사람도 역시 부정한 자로 취급을 받았다. 그러므로 그도 역시 옷과 몸을 씻고서야 진에 들어올 수 있었으며, 그 날 저녁까지 부정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법이 이스라엘 회중과 이스라엘에 거하는 외인들에게 영원한 율례가 되게 하셨다(10). 맥밀란이란 의사는 성경이 의학적으로 정확하다는 글을 썼다. 그는 사람이 죽어서 시체가 되면 즉시 부패하기 시작하면서, 균이 나와서 시체와 접촉한 자들을 부정하게 만든다고 설명하였다. 이스라엘에서 시체를 만진 자가 부정하게 취급된 것은 이러한 이유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율례에는 인간의 죄와 그리스도의 속죄를 상징하는 영적 의미가 우선적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 시체로 인한 부정을 정결케 하는 법(11-22)

  가. 시체를 인해 7일간 부정케 되는 경우(11-16)

  "시체를 만진 자"(11-13)
  시체를 만진 자는 7일간 부정하였다. 7은 완전 숫자이므로 7일은 부정케 된 자가 완전히 정결케 되는 기간을 의미한다. 시체로 부정케 된 자는 제 3일과 제 7일에 정결케 하는 물로 스스로 정결케 해야만 그는 정결케 될 수 있었다. 그러나 부정하게 된 사람이 이 물로 그를 정결케 하지 않으면 그는 7일이 지난 후에도 부정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는 부정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성막을 더럽힌 자로 간주되어 죽임을 당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적용되는 원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정결케 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면서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용서를 받지 못하고 그 죄 값으로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장막에서 사람이 죽었을 경우"(14-15)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체로 부정하게 되는 경우는 갑자기 장막에서 사람이 죽어서 그 자리를 피할 수 없을 경우이다. 이 경우에는 사람이 죽었을 당시에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들과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모두 다 7일간 부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경우에는 뚜껑을 닫아놓지 않은 그릇도 부정하게 취급되어 정결하게 해야만 했다.

* 들에서 칼에 죽임을 당한 사람의 시체나 뼈, 그리고 무덤을 만진 자도 7일간 부정함(16).
*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하였으며, 부정케 된 그 물건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게 취급되었다(22).
 

  나. 정결법(17-22)
  이와 같이 시체로 인해 부정케 된 자들은 미리 준비한 재로 정결케 해야 했다. 그들은 미리 준비한 재를 흐르는 물과 함께 그릇에 담아서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정결한 자가 우슬초로 그 물을 찍어서 부정하게 된 장막과, 그 안의 모든 사람들과 가구들, 그리고 시체의 뼈나 죽임을 당한 시체와, 무덤을 만진 자들에게 두 번(제 3일과 7일) 뿌려서 그들을 정결케 하였다. 그러면 그들은 7일만에 다시 정결하게 될 수 있었다. 그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부정하게 되고도 이 에식을 통해서 종결함을 받지 않는 사람들은 그 부정함으로 인해서 죽임을 당했다. 부정한 자가 만진 것은 무엇이든지 부정하게 취급되었으며, 그 부정케 된 물건을 만지는 자도 저녁까지 부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정결 규례를 위해서 물을 뿌린 사람은 옷과 몸을 물로 씻어야 했으며, 그 날 저녁까지 부정하게 취급되었다.   

                                 <적용 문제들>
1. 하나님께서는 의식적 정결을 통해서 내면적인 정결을 유지하게 하신다.
2. 정결의 길을 주었어도 이를 이행하지 않는 자는 멸망을 당한다.
3. 우리의 죽음을 위해서 온전하신 능력의 주님께서 속죄 제물이 되셨다.
4. 모든 죄악은 그와 접촉하는 모든 것들을 부정하게 만든다.
5. 죄의 속함과 회개는 하나님의 법에 따라 신중히 실행되어야 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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