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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명기(4): 모세의 두 번째 설교(3)(12-18장)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0:50

 신명기(4): 모세의 두 번째 설교(3)(12-18장)


  모세는 그의 실수로 인해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압 평야에서 가나안을 바라보아야만 했습니다. 그는 그 곳에서 가나안에 들어갈 새로운 세대들에게 마지막 설교인 신명기를 남겼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모세의 첫 번째 설교와(1-4장), 두 번째 설교의 전반부(신 5-11장)의 내용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세는 두 번째 설교의 전반부에서(5:-11:)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내용을 강조했습니다. 1) 강대한 가나안 거민을 두려워하지 말고 믿음으로 약속의 땅을 차지할 것. 2) 약속의 땅을 차지한 후에 자기 힘으로 얻었다고 생각하고 자만에 빠지지 말 것. 3)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율법을 준수할 것. 

  우리는 오늘과 다음 시간을 통해서 모세의 두 번째 설교의 후반부(12-26장)의 내용을 생각해 보게 될 것입니다. 모세의 두 번째 설교의 후반부(12-26장)에는 새로운 세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지켜야 할 규례와 법도들이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에는 모세가 출애굽기와 레위기, 그리고 민수기에서 언급했던 내용들이 반복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내용 외에 모세는 앞으로 닥쳐 올 새로운 상황을 위해 새로운 내용을 추가했습니다. 모세의 두 번째 설교의 후반부(12-26장)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규정들이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1) 종교적인 규례들(12:1-16:17)
 2) 영적, 정치적 지도자들의 권리와 의무(정치적인 규례들)(16:18-18:22)
 3) 가정 및 사회적인 규정들(19:-26:).

  이 중에서 우리는 오늘 1번(종교규례)과 2번(정치적 규례)의 내용을 생각해 보고, 다음 시간에는 3번(가정 및 사회규정) 내용에 대해서 생각해 볼 것입니다. 오늘과 다음 시간에 생각해볼 (신 12-26장)의 내용은 신명기 전체의 본론에 해당하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ⅰ. 종교적인 규례들(12:1-16:17)

  모세는 가장 먼저 이스라엘 민족의 종교적인 생활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새로운 세대들이 가나안에서 어떻게 하나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설명해주고 있다.

1.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장소와 그를 섬기는 바른 형식(12:2-32)

 1-1.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장소(2-14)

 * 우상의 잔재를 멸하라(2-3)
  가나안 정복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땅에 만연되어 있던 우상 숭배의 잔재물을 철저히 제거하는 일이었다. 가나안 족속들은 대개 높은 산에 우상을 섬기는 처소를 설치하였는데(왕상 14:23; 렘 2:20,3:6; 겔 6:13), 그 이유는 그들이 높은 곳에 올라갈수록 신에게 가까워 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울창한 나무 아래에서 우상 섬겼는데(왕상 14:23 ; 왕하 16:4, 17:10; 대하 28:4), 그 이유는 자연의 웅장함을 통해 경외심을 불러일으키고, 신비감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Keil, Pulpit Commentary). 그러나 참 신이신 여호와를 섬기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예배 분위기 조성보다는 '마음가짐'이 더 중요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상과는 달리 예배하는 자의 중심을 감찰하시기 때문이다(삼상 16:7). 그러므로 주님께서도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라"고 하셨던 것이다(요 4:21-24).

  "마땅히 파멸하라"('아바드')는 말은 원래 '파괴하고 파괴하라'는 말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우상들의 단을 헐어버리고,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태워 버리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세상에서 완전히 없애야 했다. '아세라'(Ashera)는 가나안의 대표적인 여신 중 하나이며, '주상'(柱像)은 우상 숭배와 관련된 기념 비석을 가리킨다. 또한 '그 이름을 없애라'는 것은 우상의 존재 자체를 완전히 없애 버리라는 것을 말한다. 왜냐하면 이름이란 '존재' 나 '인격' 그 자체를 상징하기 때문이다(7:24). 이 명령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우상 숭배에 물드는 것을 막고,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반드시 행해야 할 기초 작업이었다.   

 * 여호와께 예배를 드리는 방법(4-14)  
  모세는 우상숭배의 잔재를 멸할 것을 명령하고 난 후에 이제 이스라엘이 어떻게 하나님께 예배할 것인지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방법을 따라 하나님을 섬겨야만 한다.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미 자신을 섬기는 규례와 방법에 대해 지시하셨다(출 20:3,11; 레 1-7장).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한 장소를 택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한 장소를 택하셔서 그 곳에서 자신의 뜻을 계시하시고, 자신의 모든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다. '택하신 곳'은 예루살렘 혹은 예루살렘 성전을 말하거나, 아니면 하나님께서 정해주실 예배 장소를 말한다. 이 말은 이스라엘을 위해 '중앙 성소'를 지정하시겠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중앙 성소를 지정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종교적 의의: 이교도들의 우상숭배 풍습을 배제하고 순수한 여호와 신앙을 보전함.
 (2) 사회적 의의: 12지파로 분할된 이스라엘 사회 전체를 하나의 민족 공동체로 결속함.
 

  일부 고등 비평가들은 이스라엘의 성소(聖所) 단일화 작업을 B. C. 622년경 요시야 왕 통치 때에 있었던 일로 본다(왕하 22:3-23:25). 그리하여 그들은 신명기가 후대 왕국 시대에 쓰여졌다고 주장한다(Von Rad). 그러나 요시야 통치 18년에 한 일은 우상의 산당들을 정리한 일이었지, 유일 성소를 지정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느 곳에 살든지 하나님께서 지정해주신 곳으로 나와서 하나님께 각종 제사(번제와 희생, 십일조와 거제물, 서원제와 낙헌 예물, 우양의 처음 낳은 것들)를 드려야 했다. 여기서 말하는 '가족'('바이트')은 혈연적인 가족 뿐 아니라, 그 집에 거하는 종이나 잠시 유하는 나그네(5:14 ; 출 20:19)까지 포함한다.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여기에서는 각자가 자기의 소견대로 하였지만, 가나안에서는 그같이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 '소견대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규례를 떠나 자기 마음대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말한다(4-7절).

  모세는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이 요단을 건너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주시는 안식의 땅에 평안하게 거하게 될 때에, 아무 분깃이 없는 레위인과 함께 기뻐하라고 하였다(9-12).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차지하게 될 땅은 하나님이 주실 '기업'이며, 더 이상 유랑 생활을 하지 아니하고 정착하게 될 장소이기 때문에 '안식'의 장소라고 불리어졌다. 모세는 하나님께 드리는 서원물을 아름다운 서원물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하나님께 드리기 위해 특별히 선정해 놓은 최상품의 서원물을 말한다. 레위인들을 잔치에  반드시 초청하도록 규정한 것은 분깃이 없는 레위인들을 돌아보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 교 훈 >
1. 우리는 우상 숭배의 잔재를 모조리 없애듯이 이전의 죄 된 습관과 모습들을 성령의 힘으로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
2. 우리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감사하되 가족들뿐 아니라, 그 집에서 일하는 일군들과 기업이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맡아 하는 사람들도 같이 참여할 수 있게 해야 한다.


 1-2. 제물용으로 드린 짐승과 일반적인 짐승들의 식용 규례(15-28)
  본문의 내용은 세 가지로 나뉘어진다. 첫째는 일반식용의 고기는 어느 곳에서나 자유롭게 잡아먹을 수 있다(15,20-22), 둘째는 피의 식용을 금지함(16,23-25), 셋째는 제물용 짐승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장소에서 제사드린 후에 규정대로 먹을 수 있다(17-19,26-28)는 것이다.

 * 식용 고기에 대한 규례(15,20-22)
  하나님께 희생 제사로 드린 제물은 제사장과 그 가족 중에서도 정결한 자들만이 먹을 수 있었다(레 22:1-16). 그러나 단순히 먹기 위해 잡은 식용(食用) 짐승은 모든 백성들이 먹을 수 있었다. 노루와 사슴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먹을 수 있는 짐승이긴 하였지만(14:5),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로는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 두 짐승은 정(淨)한 자건 부정(不淨)한 자건 간에 어디서든지 자유롭게 잡아먹을 수 있었다. 그리고 소나 양, 염소와 같이 제물용으로 사용되는 짐승들(레 17:3)도 단순히 먹기 위해 잡을 경우에는 어디에서나 잡아먹을 수 있었다(15절). 레위기에서는 제물용이든 식용이든 간에, 모든 짐승을 회막 앞에서만 잡도록 규정했으나, 본문에서는 일반식용의 경우에는 아무 곳에서나 잡아먹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아마도 이러한 차이점은 레위기의 규례가 회막을 중심으로 운집하여 생활하던 광야 유랑 시절에 주어진 것인 반면, 신명기 규례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백성들이 각자의 기업대로 흩어져 살게 될 때에 주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상 남쪽 브엘세바에서 북쪽 단까지는 약 240km나 되기 때문에, 식용(食用)으로 쓸 짐승을 잡을 때마다 예루살렘까지 가는 일(5절)은 불가능했다. 그리고 200만 명이나 되는 인구(출 12:37)가 고기를 잡을 때마다 성소로 모여들면 그것을 처리할 수도 없었다. 따라서 레 17:3-6의 규례가 본문에서 발전적인 측면으로 변경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 피의 식용 금지(16,23-25)   
  하나님께서는 대홍수 직후 노아와 그 후손에게 피를 금하라고 명령하셨으나, 인류의 타락으로 인해 이 명령이 무시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이 될 이스라엘 민족에게 다시 한번 피를 먹는 것을 금하셨다. 피의 식용을 금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피는 생명을 뜻하므로 피를 먹는 것은 생명을 삼키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창 9:4, 레 17:11,14).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주관하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며, 사람들은 누구라도 마음대로  생명을 취하거나 범할 권리가 없다. 비록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 이후에 채식 외에 짐승의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허용하시기는 하셨지만, 결코 생명 자체를 취할 수 있다거나, 그 생명의 소유권 마저 허락한 것은 아니었다. 칼빈은 피를 먹는 것을 금지하신 구절을 제 6계명인 '살인하지 말라"고 한 계명과 연관시키고 있다. 피를 먹는 일을 금지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우리도 그 생명을 귀중히 여길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다.

  짐승을 잡아먹도록 허용하되 피에는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한 것은 인간의 잔인성을 억제하기 위한 것이다. 조그만 새의 피를 마시는 일이 죽을죄가 될 수는 없지만,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가혹한 처벌을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인간이 짐승과 같이 잔인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다. 생명의 주권이 오직 흙에서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고백하는 행위이다. 제물용 짐승의 피는 제단에 바쳤지만(레 1:5 ; 민 18:17), 식용으로 잡은 짐승의 피는 땅에 쏟아 부은 것은 피로 상징되는 생명이 비롯되었던 흙으로 돌리기 위한 것이었다(창 3:19 ; 전 3:20).  이것은 생명의 주권이 오직 흙에서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창 2:7).  그리고 또한 피를 마시는 것이 그 당시의 우상 숭배의 한 방법으로 사용되어졌기 때문에 이 일이 금지되기도 했다.

 * 제물에 대한 규례(17-19, 26-28)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하나님께 드릴 예물들(곡식, 포도주, 기름의 십일조, 우양의 초태생, 서원 예물, 자원 예물, 거제물 등)을 하나님께서 정하신 성소에 가지고 가서, 그 곳에서 하나님께 드리고 함께 먹으면서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지시하였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은 가나안 땅의 3대 소산물로, 히브리인들은 이것을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로 간주하였다(렘 31:12; 욜 2:19). 모세는 또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잔치를 연 후에 온 가족과 레위인들로 더불어  즐거워하라고 하였다(17-19). 레위인들은 그들이 맡은 독특한 종교적 직무로 인해 오직 그 일에만 전념해야 했기 때문에, 생계에 관하여 여호와만을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십일조 외에 절기나 잔치의 날에 그들의 생계를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셨던 것이다.

  (26-28)에서는 성물과 서원물에 대하여 다시 한번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성물과 서원물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곳에서만 드려야 했다. 번제는 피를 제단에 붓고, 고기는 모두 제단에 불태우게 하였으나, 다른 제사는 드려야 할 부분만 드리고 나머지는 제단 앞에서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구분하여 드려는 이러한 성물들을 아무 곳에서나 임의로 취급할 수 없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방법에 따라,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제사장, 레위인들)에 의해 드리도록 하셨다.


 1-3. 우상을 섬기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금지함(29-32)
  이스라엘 자손들은 가나안 족속들을 멸하고 그 곳에 거하게 될  때에, 가나안 족들이 걸었던 길을 걷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29-30). 모세는 특히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던 신을 탐구하여 그 길을 따르는 행위를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다. 여기에서 '탐구하다'('다라쉬')는 말은 '밟다', '따르다'는 뜻과 함께 '예배하다', '찾다'는 뜻도 가지고 있어서, 신들을 찾거나 따르고 예배하며 섬기는 모든 행위를 포함하고 있다. 가나안 족속들은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는 일들을 행하였다(31). 여기에서 '꺼린다'('사네')는 말은 싫어서 피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철저히 '증오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가증히 여긴다'('토에바')는 말은 구역질 할만큼 '혐오스러운 것'을 가리킨다. 자녀를 불살라 그 신들에게 드렸다는 말은 인신제사(人身祭祀)를 통해 몰렉(Molech)을 섬기던 풍습을 말한다(왕하 23:10). '몰렉'은 본래 암몬 족속의 민족 신으로 '밀곰'(Milcom, 왕상 11:5), 또는 '몰록'(Moloch, 왕하 23:10)으로 불렀는데, 이 우상 숭배의 특징은 인간 희생 제사였다. 모세는 다시 한번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준행할 것을 촉구하였다.

                                       < 교 훈 >
1. 하나님의 계시는 원리에 있어서 동일하나, 시간과 환경에 따라 점진적인 측면을 가진다. 2.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과 속성에 합당한 방법으로 경배해야 한다.
3.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가감하지 말고 그대로 준행해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일을 행하는 자들과 그들의 후손들에게 복을 베푸실 것이다.


2. 우상숭배자와 미혹자를 멸하라(13:1-18)

 2-1. 선지자나 거짓 교사들의 미혹이 있을 경우(1-5)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있을 거짓 선지자들의 유혹에 대하여 주의해야 한다. 모세는 거짓 선지자나 꿈꾸는 자들이 일어나 이적과 기사를 보이면서 다른 신을 섬기자고 유혹할 때에, 그들을 처벌하라고 지시하였다. 이들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지 않고도, 계시를 받은 것처럼 거짓 예언하는 자들이다. '꿈꾸는 자'('홀렘 할롬')는 자신이 꾼 꿈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시인 양 주장하면서, 거짓 예언을 하는 자들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꿈을 통해서 자신의 뜻을 나타내시기도 하지만(민 12:6; 왕상 3:5; 마 2:12), 거짓 선지자들은 지나치게 꿈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렘 23:32; 수 10:2). 본래 '이적'('오트')과 '기사'('모페트')는 어떤 표징(sign)과 전조(portent)를 가지고 강한 믿음과 확신을 심어 주기 위한 계시 전달의 방편이었다(출 3:20; 4:21). 그러나 만일 이적과 기사가 그러한 목적에서 벗어난다면, 그것은 사단의 권세에서 나온 사악한 술수에 불과하다(Keil). 어떤 선지자의 말이 성취되지 않는다면 그는 거짓 선지자임에 틀림없다(18:21,22; 렘 28:9). 때로는 그 예언이 적중하고 그가 초자연적인 능력을 발휘한다 하더라도, 참 선지자가 아닐 가능성은 있다. 왜냐하면 사단도 성도들을 미혹하려고 이적을 행하기 때문이다(마 24:24). 그러므로 신자들은 수많은 이적을 행하는 지도자들도 그 교훈이 어떠한지 분별하여, 성경적 교훈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배척해야 한다.

  모세는 거짓 선지자를 구별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순종하며, 그를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키고, 그 목소리를 청종하며, 그를 섬기며, 그에게 부종하라고 하였다. 모세가 이렇게 비슷한 단어를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은 성도들이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삶을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마지막에 사용된 '부종한다'는 말은 '밀착하여 함께 연합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로서, 하나님과 전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며 연합하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선지자를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 하셨다(5). 여기서 '제하다'에 해당하는 '바아르'는 '불을 붙이다'란 뜻으로, 마치 불태워 깨끗하게 없애 버리듯이 제거하는 것을 말한다(왕상 14:10 ; 사 10:17). 칼빈은 그의 주석서에서 배교자들에 대한 사법적인 처리를 해야 하는 당위성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모세는 이제 백성들을 이끌어 반역으로 인도하기 위해 선지자라는 미명아래 교회에 잠입해 들어오는 자들에 대한 처벌을 덧붙이고 있다. 그는 사소한 잘못에 이끌려 거짓 가르침을 전파하는 자들이 아니라, 배도의 장본인으로서 종교를 뿌리 채 말살하려 덤비는 자들을 사형에 처하라고 명령하고 있다. 그들이 백성들을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에서부터 다른 우상들을 섬기는 데로 돌려놓으려 할 경우'에는 마땅히 멸절시켜야 한다. 그러나 확실하고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를 통해서 확고하게 그 진실성이 밝혀지기 전에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신을 강제로 칼을 가지고 방어하려는 시도는 잘못된 것이다"

  폰 라드(VonRad)는, 이 부분에 있는 거짓 선지의 운동 관설을 보아서, 신명기가 이스라엘의 사회가 복잡해진 시대(후대의 왕정 시대)에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부분(1-5)이 왕정 시대의 저작이 아니라, 모세가 영감으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입주하기 시작할 무렵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내다보고 말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 교 훈 >
1. 성도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하고 우상에게 이끄는 어떤 일도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
2. 하나님만 진실하게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거짓 선지자들의 미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2-2.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통해서 유혹하는 경우(6-11)
  모세는 본문에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우상 숭배에 빠지도록 만드는 또 하나의 위험한  유혹에 대하여 경고해주고 있다. 그것은 가장 가깝고 사랑스러운 자들을 방편으로 한 유혹이었다. "형제나 자녀나 아내나 친구"와 같은 사람들은 유혹의 방편으로서는 가장 효과적이다. "네 동복 형제"란 말은 이복 형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형제 관계를 말하는 것이며, "네 품의 아내"는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아내' 또는 '보호하고 소중히 대하여야 할 아내'란 뜻이다. 그리고 너와 생명을 함께 하는 친구는 자신의 생명처럼 사랑하고 존중히 여기는 절친한 친구를 말한다(삼상 20:17). 이들은 모두 다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나타낸다. 사단은 종종 이러한 절친하고도 가까운 상대를 유혹의 도구로 이용하곤 한다(마 16:22, 23; 눅 12:52, 53 ; 22:3-6). 그것은 마치 "사단이 하와를 통하여 아담을 유혹하였고, 사단이 베드로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유혹한 것과도 같다. 이러한 친밀하고도 가까운 사람들로부터 다른 신을 섬기게 하려는 유혹이 들어왔을 때에 사람들은 그것을 거절하기가 무척 어려워진다. 그러므로 모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러한 은밀한 유혹에 대하여 단호하게 대처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주님께서는 십자가를 지지 말라고 주장하던 가장 가까운 제자인 베드로를 향하여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라고 단호히 말씀 하셨다.      

  모세는 그들을 "애석하게 생각지 말고", "숨겨주지 말고"('킷사'), "용서하지 말고" 죽이라고 명령하였다. 여기에서 그들을 좆는다는 말은 그들의 제안을 묵인 내지는 동조하는 것을 말한다. '긍휼히 보지 말라'는 말은 우상 숭배를 부추기는 유혹 자에 대해서 일말(一抹)의 동정도 갖지 말라는 뜻이다. 그리고 용서 없이 죽이라는 말은 '너는 그를 반드시 죽이라'는 말이다. 모세는 네가 먼저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대라고 지시하였다. 이스라엘 사회에 있어서 재판 제도는 반드시 2인 이상의 증인이 요청되었다(19:15). 그리고 심의 결과 이들 증인의 증언이 사건과 일치되어 기소된 피고인이 사형에 해당하는 유죄 자로 판정되면, 먼저 그 증인이 그 죄인을 돌로 치고 나서 백성들이 일제히 돌로 그를 쳐죽였다(17:6,7). 이 명령은 사랑하는 혈육이나 아내, 친구라 할지라도 우상 숭배를 꾀하면  반드시 고발하여 처벌받게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명령 속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는 행위는 중대한 범죄이며, 여호와 신앙과 우상 숭배 사이에는 어떠한 접촉점도 없으며 오직 삶과 죽음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호와께 반역을 꾀하는 자가 죽어 마땅하다. 왜냐하면 그는 끊임없이 은총과 보호의 손길을 펼쳐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도리어 악으로 갚는 배은 망덕한 행위를 저지르고 있기 때문이다.

  모세는 이와 같은 유혹자를 처형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여 이 같은 악을 다시는 너희 중에서 행하지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11). 칼빈은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진실한 신앙을 뒤바꿔 놓으려는 악한 의도를 벌하라고 명령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정절을 유혹하는 경우에는 형제나 자녀나, 아내나 절친한 친구라 할지라도 용서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 처벌이 과중한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당하시는 모독을 보복하는 데 있어서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고, 위험 천만한 일에는 비상수단이 적용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이다. 분파 주의자들(sectaries)은 음흉하고 교묘한 방법으로 잠입해 들어오기 때문에 이런 자들이 그들의 독(毒)으로 개인의 가정에 속임수를 부리지 못하도록 미연에 방지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오염이 확대되기 전에 미리 그들의 음험한 시도를 견제하기를 바라셨다."                       

                                      < 교 훈 >
* 성도들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통한 미혹을 대항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2-3. 성읍 거민이 배교 했을 경우(12-18)
  가나안 입성 후에 이스라엘 12지파들은 분배받은 성읍에서 여호와 신앙을 지켜야 한다.  만일 가나안의 성읍들 중 어느 성읍이 여호와 신앙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지면, 그 성읍은 더 이상 여호와의 성읍으로 간주될 수 없었다. 개역 성경에 "잡류"라고 번역된 말은 '베네 벨리야알' 인데, 이 말은 '벨리알의 자식들'(the children of Belial, KJV)이란 뜻이다. 여기서 '벨리알'은 '사악한 자', '불 경건한 자', '무익한 자'란 의미인데, 사도 바울은 이를 모든 악인의 우두머리인 사단으로 지칭하였다(고후 6:15). 따라서 '잡류'(雜類)란 하나님을 대적하여 이스라엘을 미혹하려고 하는 '사단의 세력'을 말한다. 그리고 유혹하다('나다흐')는 말은 '밀어낸다'는 말로서, 여기서는 의도적, 강제적으로 '잘못 인도하는 것'을 말한다.

  만일 자세히 조사하여 그 소문이 사실로 드러나게 되면 그 성읍의 모든 것을 칼로 진멸 해야 한다(15). "자세히 묻고 살펴보아서"라는 말은 '부지런히 조사하고, 추적하며, 물어 보아서'란 의미이다. 이처럼 유사한 단어가 세 번 반복 사용된 것은 죄의 진위(眞僞)여부를 충분하고도 철저히, 신중하고도 공정하게 조사하여야 함을 말한다. 비록 악이 서너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처벌은 그들에게만 국한시킬 수 없었다. 이 경우 아이와 여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처벌 대상이 되었다. 우리는 이 심판의 기혹함을 통해서 어린아이와 가축, 그리고 가옥과 성벽까지 오염시키는 죄악이 얼마나 가증한 것인가를 알 수 있다.

  모세는 반역한 성읍을 멸할 때에 거민들 뿐 아니라, 빼앗아 얻은 물건을 모두 다 거리에 모아놓고 불살라 여호와 하나님께 드리도록 지시하였다. 그리하면 이 성읍은 영영히 무더기가 되어 다시는 건축되지 못할 것이다(16). 이러한 지시는 아간이 여리고 성의 물건을 취하였다가 저주받아 죽은 것 같은 일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헬라어에서 '아나데마'(저주의 대상;註 4)로 번역된 '(케렘)의 본래 의미는 '파멸'이지만, 여기에서는 이 말이 하나님께서 보기 싫어하여 근절시키고자 하시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 죄에 빠진 한 성읍 전체를 몰살시키면서까지 여호와 신앙을 준수할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처음보다 수십 배, 수백 배 더 번성한 나라가 되도록 축복하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 교 훈 >
1. 단체로 일어나는 배도에 대하여는 철저한 단체적 징벌이 동반되어야 한다.
2. 모든 징계와 심판의 절차는 자세하고도 철저한 조사가 선행되어야 한다.
3. 하나님을 위해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것을 채워주신다.
4. 하나님을 배역하는 모든 의도나 시도는 열심을 품고서 배격해야 한다. 성도들은 이러한 일에 있어서 중간에 서서는 안된다.


3. 이방인의 애도 풍습과 부정한 음식을 피함, 십일조 규례 적용(14:1-29)

 3-1. 이방인의 애도 풍습을 금함(1-2)
  가나안 원주민들은 죽은 자를 위해 슬픔의 표시로 그들의 몸을 상해하였다. 죽은 자를 위해 자기 몸을 자해(自害)하던 행위는 고대 이방인들의 오래된 풍습이었다. 모세는 하나님의 자녀로 거룩히 구별 받은 이스라엘 자손들은 결단코 그러한 우상 숭배적인 이방인들의 장례 풍습을 본받지 말라고 지시하고 있다. 눈썹 사이 이마 위의 털을 밀지 말라는 말은 '네 눈 사이를 대머리지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히브리인들은 관습상 머리털을 밀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히브리인에게 있어서 대머리는 수치와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왕하 2:23).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들은 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답게 올바른 문화를 창출하여 이방 민족들에게 빛이 되도록 해야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열방 중에서 특별히 성별해 놓았기 때문이다(레 11:44,45).


 3-2. 부정한 음식을 삼가라(3-21)

 * 일반 짐승(4-8)
  이스라엘 사람들은 먹을 만한 짐승과 먹지 못할 짐승들이 구분되어 있었다. 먹을 만한 짐승은 '굽이 갈라지고 새김질하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 두 가지 가운데 하나만 없어도 먹을 수 없었다. 여기서 '굽'은 '찢다', '나누다'란 뜻의 '파라스'에서 파생된 말로, 완전히 둘로 나뉘어진 상태를 말한다. '새김질'은 '부수다', '쪼개다', '씹다'란 뜻의 '가라르'에서 파생된 말로, 곧 입으로 음식물을 계속 씹는 상태를 가리킨다. 한편 이러한 2대 조건을 지닌 짐승들은 대개 초식 동물이면서, 동시에 성질이 사납지 않은 평화스럽고 온순한 짐승들이다(레 11:3 참조). 온유와 평화를 중시하는 하나님 백성은 이런 것들을 먹을 만하다.

  '가증한 물건'이란 말인 '토에바'는 '타아브'(혐오하다)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께서 가증하다고 규정해 놓으신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먹을 수 없도록 규정된 짐승 뿐 아니라(4-20절; 레1 1:1-31), 하나님께서 부정하다고 규정해 놓은 모든 것(레12-15장)이 해당된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러한 것들을 가까이 했을 경우에 의식적인 정결례를 통해서 자신들을 정결하게 해야 했다. 이러한 것들을 금지하는 이유는 위생적인(hygienic) 식생활을 배려한 것이지만(Grotius, MIchaelis),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영적인 차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소와 양과 염소는 위의 2가지 조건들을 충족시키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로 쓰이는 짐승들이었고(레 1:3-13), 불그스럼한 사슴은 '꽃사슴'을 말하며, 볼기 흰 노루는 염소와 비슷하나 그보다 몸이 크고 살찐 '영양'(antelope)을 가리킨다. 죽은 시체를 부정한 것으로 간주한 이유는 죽음을 죄의 결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레 21:17; 22:4).

 * 어류(9-10)
  어류(魚類)의 2가지 정결(淨潔) 조건은 지느러미와 비늘이 있는 것인데, 이 중 한 가지만 없어도 부정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지느러미와 비늘이 없는 것은 조개 따위의 연체 동물, 가재나 새우 따위의 갑각류(甲殼類), 미꾸라지나 뱀장어 등과 같은 비늘이 없는 어족(魚族)이 다. "지느러미와 비늘 있는" 고기는 그것들이 없는 고기보다 더 완전하고 정결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업으로 선택하신 백성들이 자연물들 가운데서도 깨끗한 것을 취하시기를 바란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조류(11-20)
  하나님께서 먹는 것을 금지시킨 새들은 작은 동물이나 뱀 같은 것을 잡아먹는 더러운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것들은 도덕적으로 불결한 것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이 이러한 것들을 먹지 말고 멀리하게 하셨다. 어떠한 종류가 정한 새이며, 어떤 종류가 부정한 새인지 그 구분 기준은 나와 있지 않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볼 때 부정한 새는 죽은 시체의 고기를 먹거나 다른 짐승의 피를 흘리는 맹금류이며, 또는 거친 들판에서 홀로 외롭게 사는 것들, 그리고 더러운 장소에 둥지를 털거나 혹은 몸집이 아주 작은 새 등이다. 따라서 그러한 류(類)를 제외한 나머지 것들은 정한 새로 분류될 수 있을 것이다. 어응은 '바다 독수리'(ospray)의 일종인데, 공동 번역은 이를 '흰꼬리수리'로 번역하고 있으며, 매의 종류는 독수리류 보다는 몸집이 작으나 역시 육식(肉食)을 하는 새로서, 작은 새나 병아리 따위를 주로 잡아먹는데, 사냥용으로 사육되기도 한다. 까마귀 종류는 육류는 무슨 종류든지 거의 다 먹으며, 이는 죽은 것이든  죽어가고 있는 것이든 모두 먹는 새이다. 다호마스는 정확히 어떠한 종류의 새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공동 번역은 이를 '올빼미'로 번역하고 있다. 따오기는 해오라기와 비슷하나 몸빛은 흰색이며, 주로 동부 시베리아, 중국, 만주, 한국 등지에 서식하는데, 세계의 희귀종중 하나이다. 그리고 당아새는 주로 광야와 같은 황폐한 땅에 사는 새로서, 일명 '사다새'(pelican)로도 불린다. 울응은 일종의 새끼 독수리이고(레 11:18), 노자는 '가마우지'로서 연못이나 하천, 해만(海灣)에 서식하며  물고기를 잡아먹고 사는데, 주로 한국과 일본에 분포한다. 대승은 '오디새'(hoopoe)나 '댕기물떼새'(lapwing)를 가리키며, 박쥐는 실상은 포유 동물이나, 공중을 완전하게 날아다닐 수 있으므로  고대인들은 이를 조류로 분류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날기도 하고 기어다니기도 하는 것들을 가증하게 여기셨다.

 * 스스로 죽은 것을 먹지 못하게 하고, 잔인한 요리법을 금지시킴(21)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스스로 죽은 짐승 먹는 것을 금지하라고 명령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짐승을 성중에 거하는 객에게 주거나 이방인에게 파는 것은 가능했다. 여기에서 성중에 거하는 객은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고 있으면서도 아직 할례를 받지 아니한 이방 나그네를 가리킨다. 그리고 이방인은 이스라엘인의 영토에는 거주하지 않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이스라엘과 접촉하던 외국인을 말한다.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지 말라는 명령은 가나안 사람들의 사악한 식생활과 미신적인 종교 의식을 좇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들은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는 것이 최고의 맛을 내는 요리법이라고 생각하였을 뿐 아니라, 그러한 위에 주술적(呪術的) 의미까지 부여하였다. 그러나 실로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에 삶는 것은 생명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야만적인 행위이다.  


 3-3. 십일조 규례 적용(22-29)

 * 십일조 규례(22-23)
  하나님께서는 십일조를 가지고 성전에서 일하는 레위인들의 생계비를 담당하게 하셨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 나오는 십일조는 제2의 십일조에 대한 규례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인에게 주는 십일조 외에 하나님께 감사 축제를 드리는 비용으로 십일조를 준비했다. 그리고 이러한 소산의 십일조와 더불어 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은 모든 초태생들의 대표물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축제를 통해 백성들이 즐거워하며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기를 원하셨다(22-23)

 * 먼 곳에 사는 경우의 규례(24-27)
  만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각 지파 별로 흩어져 정착하였을 때에, 거처가 중앙 성소로부터 너무 멀면, 농작물의 십일조와 우양의 처음 난 것들을 현금으로 바꾸어서 성소 근처에서 필요한 예물들을 구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이러한 제도가 타락하여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돈을 바꾸고 예물을 팔며 이를 통해 매매인이 무수한 폭리를 취하는 불의가 공공연히 자행되었다(막 11:15-18). 그 결과 예수께로부터 엄한 책망을 받게 되었는데, 이는 드리는 바 십일조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드리는 자의 경건이 더 중요함을 가르쳐준다. 포도주('야인')는 대개 포도주를 으깬 후 달여 만든 '포도즙'을 가리키는 것이며(창 9:21; 삼상 1:14; 전 10:19), 독주('쉐카르')는 과일이나 곡식, 꿀 따위를 발효하여 증류시킨 것을 가리키는데, 포도주와는 달리 아주 독한 음료이다(Jerome). 그리고 여기에서 말하는 '권속'은 자신의 일가 친척 뿐 아니라, 수하에 있는 종들까지 함께 지칭한다(12:12). 그리고 이러한 축제를 즐길 때에는 기업이 없이 성전에서 일하도록 되어있는 레위인들도 참석할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 제 3의 십일조-구제용 십일조-(28-29)
  3년째의 십일조는 전부 레위인들의 소유(所有)가 되지 않고, 그것을 가난한 자들과 고아들과 과부들과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2년 동안 잘 준비하여 가난한 동족들과 이방인들과 함께 그 몫을 분배하여 갖는다는 것은 매우 공정한 배려(配慮)이다. 레위인들은 풍부하게 받은 십일조 중 그 일부를 삭감 받게 된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사치스런 생활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같이 할 때에 그들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29). 인간의 얄팍한 산술적(算術的)인 계산만으로는 분명 자기의 소득 중 일부를 떼어 바친다는 것은 손해라는 생각이 들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재물이 모두 자신의 힘으로 얻은 자신의 것이라는 교만과 불 신앙의 소치이다. 진정 인간의 생사 화복과 천지간의 재물을 하나님께서 홀로 주장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인정하면, 오히려 바침으로써 배로 복을 받는 풍성한 은혜의 생활을 누릴 것이다. 모세도 이러한 염려에서 십일조 생활을 권면한 후에, 마지막 결론으로 '순종에 따른 범사 축복'의 메시지를 잊지 않고 가르치고 있다.

                                      < 교 훈 >
1. 거룩한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은 전 생활의 영역에 걸쳐서 거룩함을 유지해야 한다.
2. 하나님께서는 중간에 머뭇거리거나, 외롭게 살거나, 잔인하고 더러운 것을 싫어하신다.
3. 하나님께서 재물을 어떻게 공의를 이루고, 모든 사람들이 함께 기뻐할 수 있도록 사용 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 주셨다. 우리는 이러한 규례들과 정신에 따라서 우리 물질을 사용해야 한다. 그리고 이같이 하면 우리의 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실 것이다.


4. 면제의 해와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 초태생 가축의 구별(15:1-23)

 4-1. 면제년의 규례(1-18)

 * 면제년의 규례(1-11)
  이스라엘 백성들은 제 칠 년에는 빚은 진 형제들에게 강제로 빚을 독촉할 수 없었다. 이 해는  '안식년'(安息年,the Sabbatical  year)이라고 불렀으며, 땅을 경작하지 않고 묵혀 두었다(레 25:4,5). 채무면제(債務免除)의 규례에 대해서는 상반된 두 가지 견해가 있다. 첫째, 부채의 완전 탕감을 의미한다는 견해이다(Lange, Matthew Henry). 둘째, 안식년에만 국한된 빚 독촉의 면제를 의미한다는 견해이다(Philo, Calvin, Keil,  Pulpit  Commentary). 전체적인 내용들을 고려해 볼 때에 두 번째 견해가 훨씬 받아들이기가 쉬운데, 그 이유는 매 안식년마다 모든 채무가 완전 탕감되어 버린다면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하게 때문에 금전을 빌려주는 일이 사라져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기서 '면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어근 '솨마트'는 '쉬게 한다', '묵여 두다'(출23:11)는 뜻으로 어떤 일을 완전히 중단한다는 뜻이 아니라, 일시적인 중단을 의미하고 있는 말이며, '그것을 면제하고...독촉하지 말지니'(2절)라는 말도 빚 탕감보다는 오히려 그 해당 연도에 빚 독촉을 하지 말라는 의미를 지지해 주고 있다. '독촉하다'에 해당하는 '나가스'는 '거세게 몰아치다', '강제로 징수하다'는 뜻이다. '여호와의 면제년'은 직역하면 '여호와를 위한 면제'이다. 이는 곧 안식년(安息年)동안 백성들이 가난한 자들에 대한 빚 독촉을 면제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근거한 것으로서, 오직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안식년의 채무 면제 기능에서부터 '면제년(免除年, Year of Release)이란 명칭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에게는 안식년에도 빚 독촉하는 것을 허용하셨다(3). 여기에서 '이방인'에 해당하는 '노크리'는 '게르'(출 12:49)와는 달리 이스라엘과는 종교적으로 전혀 무관한 순수 외국인을 가리킨다. 따라서 이들은 이스라엘의 율법과는 무관하게 안식년에도 쉬지 않고 일을 하여 계속 소득을 거두어들이는 자들이었으므로(Keil), 안식년 채무 면제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이러한 예외 규정이 내려진 이유는 율법을 무시하는 자들이, 안식년의 혜택을 누리는 것은 있을 수 없으며,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이 특권을 자기 선민에게만 허용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면제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규례를 지키면 가난한 자가 없게 하며, 꾸어줄 것이 있고, 다른 나라를 다스릴 수 있게 해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그 계명대로 지켜 행한 사람들에게 크게 축복하실 것이다(4-6). 칼빈은 문장을 더 간단하게 하는 뜻에서 (에페스 키)라는 두 단어를 하나로 묶어, 어떠한 일이 있어도 너희 가운데 거지가 생기는 것을 허용치 말아라"고 해석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이 규례를 지키지 않게 될 몇 가지 사례들을 제시하셨다. 첫째로 그들은 가난한 자들에게 마음을 강팍하게 하여 손을 움켜쥐는 일이 금지되었다. '강팍히 하다'('아마츠')는 말은 '요새화 하다', '완강하게 하다', '딱딱하게 하다'는 뜻으로 곧 이웃에 대한 사랑이나 동정심을 고의적으로 억제하여 마음을 굳게 하는 상태를 가리킨다. 그리고 '손을 움켜쥔다'는 말은 이웃에게 동정의 손길을 베풀기를 거절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마음을 강퍅히 한 결과이다. 모든 재물이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는 자라면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한 채 자신의 재물을 움켜쥐는 완악한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로 그들은 악한 마음을 품고 면제 년이 되었다고 형제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지 않으려고 해서는 안된다(9절(상)). 이와 같은 사고 방식은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안식년 제도를 기뻐하지 않는 불 신앙이다. 채권자가 빚을 받지 못하고 마침내 안식년이 되어 탕감해 준다고 해서 그 자신이 손해를 보는 것이 아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기 때문이다. 또한 그들은 가난한 자가 여호와께 호소할 것을 기억해야 했다(9절(하)). (잠 21:13)는 "귀를 막아 가난한 자의 부르짖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면 자기의 부르짖을 때에도 들을  자가 없으리라"고 하였다. 셋째로 그들은 인색한 마음을 품지 말아야 한다(10).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형제들이 요구하는 대로 넉넉히 꾸어주라고 하셨는데, 넉넉히 꾸어 주라는 말은 부족함을 충분히 채워 줄 수 있을 만큼 넉넉하게 꾸어 주라는 뜻이다. '아끼다'에 해당하는 '라아'는 '상하게 하다', '괴롭히다', '상처 입히다'등의 뜻이다. 이는 구제하면서도 자신이 큰 손해를 본다는 식으로 언짢아하는 것은 곧 스스로를 괴롭히는 일일 뿐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는 행위가 됨을 시사해 준다. 진정한 구제의 자세는 하나님의 진노가 두려워(9절)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라, 자원하는 마음에서 즐거움으로 하는 것이다(고후 9:7). (잠 11:24)에는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고 하였다. 도한 그들은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11). (잠 22;2)에는 "빈부가 섞여 살거니와 무릇 그들을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고 하였다.

 * 히브리 노예들의 해방(12-18)
  면제년에는 종 되었던 자들이 해방되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노릇하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된 민족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러한 과거의 역사를 기억하고 종이 된 자들에게 긍휼을 베푸는 것이 마땅했다(출22:21; 23:9; 레19:34). 그러나 히브리 종들 중에 주인의 호의를 입어 결혼함으로 처자(妻子)를 거느리게 된 사람들은 면제년에 자유의 몸이 되기를 거절하는 경우가 있었다. 왜냐하면 그가 해방되면 사랑하는 처자는 주인의 소유이므로 두고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출 21:4-5). 이 경우에 주인은 스스로 자유를 포기한 종을 재판장에게 데리고 가서 그 사실을 법적으로 확인하고, 그 종의 귀를 주인집의 대문이나 기둥에 대고 송곳으로 구멍을 뚫었다. 이는 귀를 예속과 복종의 기관으로 간주했던 고대 근동의  관습으로, 이 의식은 이제 그 종이 주인과 주인의 집에 영원히 예속(隷屬)되었다는 것을 나타낸다. 한편 이러한 의식(儀式)을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잔인한 의식으로 보일 지 몰라도 당시의 관점에서는 결코 잔인한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 다른 이방 족속들은 노예를 자신의 소유로 삼을 때, 이마나 어깨에 화인(火印)을 새기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당시 종들은 대개 귀걸이를 한 상태였기 때문에, 귀에 구멍을 뚫는 것은 그토록 고통스런 행위는 아니었다. 그리고 히브리인들은 이 의식을 치른 후 그때 사용한 송곳을 주인집의 문이나 문설주에 꽃아 놓음으로써, 그 종이 죽을 때까지 그 집의 종임을 가시적(可視的)으로 입증하였다.

  여종이 아내나 첩으로가 아니라 단순하게 일만 하다가 제 7년을 맞이한 경우에 남종과 마찬가지로 해방될 수 있었다. 집주인이 남종이나 여종을 놓아주는 것은 수리적(數理的)으로 따져 보아도 마땅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정해진 낮 시간에만 일하는 품꾼에 비해 종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수고하기 때문에, 품삯으로 계산하면 동일한 임금을 받고도 품꾼의 두 배 이상의 일을 하는 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만약 주인들이 그들의 노예를 마지못해 해방시킬 경우, 그들의 인색하고 천박한 교만을 꾸중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 교 훈 >
1. 하나님은 죄를 용서받은 사람답게 형제의 빚에 대해서도 관대함을 보일 것을 요구하셨다.
2. 자원하는 종은 그 집에서 평생 거할 수 있었는데, 사도 바울이 자신을 가리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였던 것이 이러한 종의 원리에 적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 면제년에 형제에게 악한생각이나 인색한 마음으로 대하는 것을 하나님은 금지하셨다.


 4-2. 초태생 가축의 구별(19-23)
  초태생은 난지 8일 이후부터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초태생을 중앙 성소에서 하나님께 화목 제물로 드린 후에, 제사장의 몫(레 7:30-34)을 제외하고 경배자가 가족과 더불어 성소 뜰에서 먹으라고 지시하셨다(20).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법을 제정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에 이스라엘의 장자들과 처음 난 짐승들을 살려 주셨기 때문이다(출 11:4-7, 12;29-30). 그 때에는 제물의 고기를 회막 뜰에서 먹었는데, 그 먹는 것도 역시 제사 의식 중의 하나였다. 그것은 속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림에 대한 상징이었다(레  6:16, 7;15-18). 비록 초태생이라도 흠이 있는 경우에는 제물용으로는 사용할 수 없었고, 식용으로만 사용되었다.

  그러나 '피'는 속죄(贖罪)의 상징적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따라서 성경은 이러한 최고의 종교적 성물(聖物)인 피의 식용(食用)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 이것을 어기는 자는 극형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창 9:4,5; 레 7:27;17:10). 짐승의 피를 마치 물을 쏟아 붓듯 땅에 쏟아야 할 이유는 피는 생명을  상징하는 것인 만큼, 본래 그 생명이 비롯되었던 흙으로 돌아가게 하기 위함이며(창 3:19; 전3:20), 생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행위이기도 했다.                  

                                      <교   훈>
1.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그 몸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한다.
2.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생명을 존중히 여겨야 하며, 특히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의 존엄성을 존중히 여겨야 한다.  


5. 이스라엘의 3대 절기(16:1-17): 레위기 23장의 절기 부분을 참고할 것.

 5-1. 유월절(16:1-8)
  '아빕'은 '녹색' 또는 '푸른 이삭'이란 뜻으로 '신록(新綠)의 계절'을 가리키는 말이다. 실제로 이때는 양력 3, 4월에 해당하는데, 히브리 민간력으로는 7월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때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것을 기념하여, 이후로는 한 해의 첫째 달로 삼았는데, 곧 '종교력 제 1월'이다(출 12:2). 그런데 이 달은 이스라엘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하고 돌아온 이후부터 바벨론식 이름인 '니산 월'로 바뀌어 불려졌다(느 2:1; 에 3:7). 유월절 예식은 아빕월 10일부터 준비해 둔 어린  양이나 염소를 14일 저녁에 잡아 무교병 및 쓴 나물과 함께 먹는 의식(출12:3-11)과, 그 달 21일 저녁까지 지키는 무교절 행사(출12:15-20)를 모두 포함하여 일컫는 말로서, 하나님께서 애굽 전역에 내린 결정적 재앙(열번째 장자 재앙)이 유월절 밤에 있었으므로, 그 날 밤에 황급히 이스라엘이 출애굽할 수 있게 되었던 사실을 가리킨다(출12:29-42). 따라서 그 밤을  '여호와의 밤'이라 불렀다(출12:42).

  하나님께서는 예배 장소의 난립(亂立)을 막고, 여호와 신앙의 순수성을 보존하며, 민족 공동체의 결속(結束)을 다지기 위해, 이스라엘 12지파의 기업 가운데 특별히 한 곳을 예배의 장소로 지정해 주셨는데, 이것은 앞으로 세워질 '예루살렘의 중앙 성소'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개개인으로서가 아니라 민족 공동체로서 출애굽 하였듯이, 그것을 기념하는 유월절 예식 역시, 전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 다함께 한 곳에서 거행하도록 지시하셨다. 유월절 밤에 잡는 짐승은 양이나 염소 가운데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 한 마리였지만(출12:3-5), 계속해서 이어지는 무교 절기 동안에는 수송아지, 수양, 수 염소와 같은 짐승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다(민28:19-24).유월절의 양을 잡는 시각은 초저녁 해질 때였는데, 여기서 '시각'에 해당하는 '모에드'는 '때', '계절', '절기'를 가리키는 말로서, 정확한 어느 '시점'을 의미하지 않으며, 이 말의 정확한 의미는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절기의 해가 지는 저녁'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죄의 상징인 누룩(고전5:8; 갈5:9; 마16:6,12)이 든 '유교병'은 곧 부패한 옛 생활을 상징한다. 따라서 그것은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옛 애굽의 음식을 상징하므로, 결코 유월절 예식에 사용할 수 없었다. '무교병'(無교餠)이란 누룩(효소)을 넣어 발효시키지 않은 밀가루로 만든 빵을 가리킨다. 그런데 이를 '고난의 떡'이라 칭한 까닭은 이스라엘이 400년 동안 애굽에서 체험한 고통스럽고 쓰라린 노예 생활을 생생히 상기하며, 급히 애굽을 떠나느라고 미처 발효되지도 않은 밀가루 반죽을 옷에 싸  가지고 나왔던 곤고한 사건(출12:34)을 상기하기 위함이었다.

  유월절 어린양의 요리 방법은 불에 굽는 것이었다. 아마도 이것은 출애굽의 급박한 상황하에서 유월절 희생 고기를 요리하고 먹기 간편하도록 하기 위해 채택된 방법인 듯하다. 그들은 이와 같이 행사를 마치고 나서 유월절 다음날 아침에 자기의 장막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날은 아빕 월 15일 아침이 아니라, 한 주간의 무교절 행사가 끝난 다음 날 아침, 즉 아빕 월 22일 아침을 가리키는 것이며,(출 12:17,18). 장막은 이스라엘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생활할 때 거처로 사용했던 텐트(tent)에서 비롯된 말로, 여기서는 '집'이나 '가정'을 의미한다. 여기서 '제 칠 일'이란 무교절의 마지막 날인 아빕월 21일을 가리킨다. 그리고 '성회'(聖會)란 하나님께 예배하기 위해 온 이스라엘이 집회로 모이는 것을 가리킨다. 그들은 이 기간 중에는 모든 경제 활동이나 직업상의 일을  폐한 채 안식하며, 온전히 하나님께 경배와 감사를 드리는 일만을 하였다.


 5-2. 칠칠절(9-12)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은 보리의 첫 이삭 한 단을 제단에 요제로 바치는 날인 초실절(初實節)을 가리키는데(레 23:10.11), 이 날은 유월절 후 첫 안식일(성회) 다음 날로서 곧 아빕 월 16일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자손들은 초실절 이후 7번째 안식일을 계수하여 만 49일(7*7)이 지난 날, 즉 제 50일째가 되는 날에 칠칠절을 지키도록 지시 받았는데, 이 날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신대로 자원하는 예물을 드렸는데, '칠칠절'에 바치는 예물은 첫 수확한 밀로 만든 유교병 둘,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일곱, 젊은 수소 하나, 수양 둘이었다(레 23:17,18).그리고 그들은 이런 기쁜 절기에 특별히 가남하고 연약한 자들을 돌보도록 권고를 받았는데, 객과 고아와 과부는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경제적으로 기반이 없는 이스라엘의 3대 약자들이었으며, 백성들은 모든 축제 때 결코 이들을 잊지 말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해야 할 이유로서 이스라엘 자신들도 이전에는 애굽에서 비참한 노예 생활을 겪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풍성한 축복을 누리게 되었음을 기억하여, 은혜를 입은 자답게 역시 같은 심정으로 불우한 처지에 있는 자들을 돌아보아야 마땅했기 때문이다.


 5-3. 초막절(13-15)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1년 동안의 모든 추수, 즉 곡식과 과실의 수확을 끝마치고 이를 창고에 저장한 때 칠 일 동안 초막절을 지키도록 지시하셨다. 이 절기는 출애굽 후 가나안에 입성하기까지 광야에서 장막생활을 한 것을 기념하며, 한 해 동안의 모든 토지 소산의 추수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한 절기였다. 이때는 모든 곡식이 창고에 수장(收藏)되어 있으므로 일명 '수장절' 이라고도 하며, "초막절"이란 이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40년 동안 장막을 치고 생활하였던 시절을 되새기기 위해 '초막'을 지어 놓고 거기서 7일 동안 거처하면서 절기를 지켰기 때문에 붙여진 명칭이었다. 히브리 민간력으로 1월인 이때는 오늘날 태양력으로는 9-10월에  해당되는 데, 유대인들은 이를 '에다님월'(왕상8:2),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에는 '디스리월'로 불렀다(출23:16; 34:22; 레23:33-43).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절기에도 역시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들과 함께 이러한 기쁨을 나누도록 지시를 받았다. 이러한 자세는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올바로 지키는 자세와 방법이 어떠한 것인지를 분명히 일러준다. 여기에서 사용된 '온전히'라는 말은 원어 '아크'인데, 이 말은  '반드시'(창9:5), '참으로'(창29:14),  '정녕'(출31:13)이란 뜻의 불변사로, 여기서는 '마음껏 즐거워하라'는 의미이다.


 5-4. 절기의 결론(16-17)
  이스라엘의 3대 절기인 유월절(무교절), 칠칠절(오순절, 맥추절), 초막절(장막절, 수장절) 때에는 반드시 이스라엘의 20세 이상 남자들은(출23:17) 예루살렘 중앙 성소에서 절기를 지켜야 하였다. 이것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중심한 신본주의적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이었는데(출23:14;  34:23), 특별히 '여호와의 택하신 곳'이란 말이 본 장에서만 6번(2,6,7,11,15,16절)이나 나타나는데, 이것은 위의 절기들을 지킬 장소를 명백히 강조하여 지시코자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세 절기에 하나님께 빈손으로 나아가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복을 따라서 자신의 정도에 맞는 예물을 드리도록 지시 받았는데, 이는 하나님을 섬기되 형식적으로만 섬기지 말고, 진정한 마음으로 섬기라는 뜻이다. 고대 팔레스틴의 풍습에 의하면, 백성들이 왕 앞에  나아갈 때 예물 없이는 절대 나아갈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친히 이스라엘의 왕 되실 뿐 아니라(사44:6) 만왕의 왕이시니(딤전6:15), 그 앞에 나아갈 때 빈손으로 나아가지 말라는 권면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었다 하겠다. 한편 오늘날  진정 하나님께서 성도들로부터 받으실 수 있는 가장 귀한 예물은 악에 물들지 않은  온전한 믿음과 선한 행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빌 2:13-18). 그리고 이러한 예물을 드리는 원리(분수에 맞는 자원하는 예물)는, 훗날 사도 바울이 동일하게 교훈 하였던 헌금과 구제를 드리는 올바른 자세라고 할 수 있다(고후 8:11,12).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감사와 이웃에 대한 긍휼이 있는 자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바치지도 않겠지만(고후9:7), 반대로 자신의 힘에 겹게 바치므로 도리어 자신이 시험에 빠지는 것과 같은 허세도 결코 부리지 않을 것이다.

                                       < 교 훈 >
1.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일년에 몇 차례씩 중앙 성소에 모여서 하나님께서 베푸신 축복에 감사하고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기억할 수 있게 하셨다. 이러한 절기와 축제들은 신앙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그들의 신앙을 하나로 묶어주며, 그들의 정체성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다시 한번 다짐할 수 있는 기회였다. 이러한 원리는 지금 우리들이 지키는 절기(강림절, 부활절, 추수 감사절)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2. 하나님은 특히 가난하고 연약한 사람들을 돌보아 줄 것을 특히 강조하셨다. 부유한 자들이 가난한 자들을 돌보지 않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에 대하여도 돌보지 않을 것이다.
3. 이러한 모든 절기에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모든 과정들이 반영되고 있다.


                      ⅱ. 정치적인 규례들(16:18-18:22)

  이제 모세는 정치적인 문제로 주제를 전환하고 있다. 이스라엘은 종교적인 문제 뿐 아니라,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거룩하고 성결한 백성다운 처신을 해야 한다. 국가와 민족의 번영을 위해서는 사회질서가 잘 정돈되어야 하는데, 이러한 사회질서는 잘 정돈된 사법적인 절차와 편견이 없는 정의의 시행을 전제로 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시내 산에서 재판관을 세우고 그들의 의무를 수행하기에 필요한 문제들을 교육하였다. 지금은 백성들이 가져온 문제들을 모세와 재판관들이 하나님께 물어서 최종 결정을 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다른 사법제도가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세와 같은 중개자를 없이 각 성읍과 마을들로 흩어져서 살아가게 될 경우에 적응할 수 있는 적절한 사법 구조를 필요로 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먼저 각 성읍과 마을에 재판장과 유사를 둘 것과 사법 절차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지시하셨다(16:18-17:7). 그리고 어려운 사건을 다루기 위해서 더 높은 차원의 재판소를 둘 것을 지시하였으며(17:8-13), 마지막으로는 왕을 선출할 수 있는 실질적인 규례를 제시해 주셨다(17:14-20).
 

1. 재판장과 왕의 선택에 관하여(16:18-17:20)

 1-1. 재판장(사법제도)에 대한 규례들(16:18-17:13)

 * 재판장에 대한 규례들(16:18-20)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정의 구현을 위해서 사법제도를 허락하셨다. 이스라엘은 여러 가지 재판을 위해서 각 성마다 재판장과 유사를 세워야 했다. '재판장'('솨파트')은 재판 과정을 관장하던 최고 우두머리이며, '유사'('쇼테르')는 '서기관', '감독관', 또는 '관리'란 뜻으로, 재판장을 보조하던 법정 서기를 말한다(호크마 주석). 이 명령에 따라 이스라엘은 왕정시대에 각 성읍마다 7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재판정(裁判廷)을 설치하였으며, 120세대 이상 되는 성읍에는 23명으로 구성된 법정을 설치하였다. 그러나 이 두 법정에서는 사형판결을 내릴 수 없었다. 오직 '예루살렘  공의회'(산헤드린)에서만  사형을 내릴 수 있었는데, '산헤드린'은 현직 대제사장을 의장으로 한 70명의 장로들로 구성되었다. 신약시대 당시 예수께서 사형판결을 받으셨던 곳도 바로 이곳인데(마26:57-27:1), 이곳은 A.D.70년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까지 존속하였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재판장들이 취할 태도에 대하여 지시해 주셨다. 재판장들은 공의로 백성을 재판해야 했다. 본문에서는 '공의의 정신'을 강조하기 위해서 공의를 의미하는 말인 '체다카'를 두 번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다. 그들은 외모를 따라 사람을 대해서는 안되었다.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라는 말은 개인의 신분이나 지위, 혹은 재산 유무에 따라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특히 재판장들은 뇌물을 받는 일이 금지되었다. 뇌물은 재판하는 자들의 눈을 어둡게 하거나 판결을 굽게 만들기 때문에 재판장들은 이를 금해야 한다. '눈을 멀게 한다'는 말('아와르')은 '눈을 멀게 하다', '장님이 되게 하다'는 뜻으로 재물이 재판관의 눈을 가려 뇌물 준 자의 불의를 덮어주거나, 확실한 증거를 지나치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뇌물은 의인의 말을 굽게 만든다. '굽게 한다'는 말('살라프')은 '비틀다'는 뜻으로, 뇌물이 재판의 공정성을 뒤흔들어 놓게되는 것을 말한다. 판결(判決)을 굽게 만드는 요인으로 성경이 지적하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빈부 여하 혹은 지위 고하에 따른 사람의 외형적 기준(1:17; 출 23:6; 레 19:5)을 따라 사람을 판단하는 것
 (2) 뇌물을 받고 판결을 왜곡되게 하는 것(출23:8)
 (3) 다수나 권력자들에 의한 압력에 굴복하여 판단을 굽게 하거나, 보다 적극적으로 그들과 야합(1:17; 출23:1,2)하여 불의를 행하는 일

  결국 모세의 재판 규례에 나타난 근본 정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공의의 정신'이다. 사법부는 사회 정의의 보루(堡壘)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엄격하게 재판장들에게  공정한 판결을 지시하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뇌물을 받고 공의를 지키지 않는 재판장은 반드시 저주를 받게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27:25). 그 저주의 결과는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로 인한 죽음이었다. 칼빈은 이 계명을 설명함에 있어서 이 명령이 제 5계명과 연결되는 것으로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사법제도를 통하여 공의가 시행될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생명을 얻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땅을 얻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사법제도를 통한 공의시행은 하나님의 뜻이므로 종교적인 법과 같이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 교  훈 >
1.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시행하시기 위해서 부모의 권위를 인정하실 뿐만이 아니라, 사법부의 권위를 인정 하셨다.
2. 재판을 담당한 사람들의 역할은 공의를 시행하는 일이며, 그들은 마땅히 공의의 정신에 입각하여 재판을 해야 한다.
3. 재판관들은 사람을 외적인 신분에 따라서 판단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특히 뇌물을 받고 의로운 사람을 유죄로 선고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한다.
4. 하나님께서는 사법제도를 통한 공의 시행을 종교적인 법과 같이 중요하게 여기신다.


 
* 우상 숭배 금지와 제물의 규례(16:21-17:1)                                      
  하나님께서는 사법제도를 다루다가 갑자기 우상 숭배에 대해 언급하셨다. 이 말은 재판관들에게 우상 제작과 숭배를 허용하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이어서 나오는 이야기가 우상 숭배자들을 처리하는 사법적인 절차가 나오고 있는 것도 이것을 지지해 준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적으로 우상을 제작하거나 숭배하는 일을 금지시킬 뿐만 아니라, 공정한 사법적인 절차를 통해서 철저하게 제거할 것도 명령하셨다(17:2-7).  아세라(Ashera)는 아낫, 아스다롯과 함께 가나안의 3대 여신으로 꼽히는 우상이다(7:5). 아세라는 성(sex)과 다산(多産)을 주관하는 신으로 가나안 최고의 우상 '엘(EL)의 아내로서, '바알'을 비롯한 여타 가나안 우상의 모신(母神)이기도 했다. 성경은 종종 바알과 아세라를 함께 연결하여 사용하고  있다(삿 28; 왕하 23:4). 아세라 상은 흔히 푸른 나무 아래나 곁에 세워졌는데(왕상 14:23; 렘 17:2), 주로 나무에 그 상(象)을 새겼으므로 목상(木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레 26:1; 왕하 10:26).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섬기는 단 곁에 아세라를 세우는 일을 금지하셨다. 그리고 바알 숭배자들이 하는 것같이 어떠한 돌기둥도 세우는 일이 금지되었다(22).

  하나님께서는 흠이나 악질이 있는 우양은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고 하셨다. 왜냐하면 이같은 제물을 드리는 일은 여호와께 가증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제물은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것이므로 완전한 것이어야 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흠 있는 것을 드리는 자가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와 아무런 관련이 없이 드린 제물이다. 그리스도와 관련이 없는 제물은 하나님 앞에 가증할 뿐이다. 제물은 창조자요 구원자이신 하나님을 위한 것이니, 마땅히 드리는 자가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에 맞는 가장 완전한 최상의 것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  '가증한 것"('토에바')이란 말은 '지독히 미워하다'란 뜻의 '타아브'에서 파생된 말로서, 이것은 구역질 날 정도로 혐오하는 상태를 말한다. 성경에서는 이 말이 종종 우상숭배나 신성모독 등과 관련되어 사용되어졌다(13:14).

                                     < 교 훈 >
1.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는 외형적인 것보다 신령과 진리(진실함)의 자세가 중요하다.
2. 하나님의 형상을 짐승과 다른 피조물로 만들어 섬기려 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며, 이러한 일들은 하나님께서 심히 가증하게 여기신다.
3.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과 예배는 그분의 이름과 영광에 맞도록 최선의 것을 드려야 한다.


 
* 우상 숭배자 처벌에 관한 사법적인 규례(17:2-7)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상 제작과 숭배를 금지하신 후에 이제는 우상숭배자 처벌에 대한 규례를 정해주셨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그토록 우상숭배 죄가 배격된 이유는, 우상숭배 죄는 제 1계명인 '여호와 유일 신앙'에 정면 위배되는 신성모독 죄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어긴다"('아바르')는 말은 '정도에 지나치다'(수16:2), '구역을 넘어서다'(2:14)는 뜻으로, 범죄란 결국 하나님의 뜻을 넘어서는 것임을 말해준다(사 24:5). 그리고 일월성신(日月星辰) 곧 태양이나 달, 별 따위를 숭배하는 행위는 애니미즘(animism)과 더불어 가장 성행하였던 고대 이방 종교의 한 형태였다. 인간의 눈에 신비롭고 거대하게 보이는 자연도 결국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한 것이며, 인간은 이들을 정복하고 다스릴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서 이러한 우상숭배와 천체 숭배를 하는 자가 있다는 소식이 들릴 경우에 이 일에 대하여 자세히 조사해보고 그 사실을 규명해 보라고 지시 하셨다. '부지런히' 또는 '철저히' 조사하라는 말은 사실 여부를 재판정에서 분명하게 규명하라는 말이다. 그 이유는 첫째로 우상 숭배에 관한 소문이 들림에도 불구하고 조사하지 않으면, 우상 숭배 행위가 그대로 방치되거나 주위로 확산되기 때문이며, 둘째로 우상 숭배에 관한 소문이 있었지만  전혀 사실이 아닌 경우에 무고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성문으로 끌어내어 돌로 치라고 하셨는데, 성문은 공공 장소로서 사교나 거래, 마을 공동의 중요한 안건 처리, 공개 재판 등이 이루어지던 곳이었다(21:19).

  유죄(有罪) 성립은 최소한 2-3인 이상 증인의 증언이 있어야만 가능했다(민 35:30). 이것은 혹시라도 무고(誣告)나 위증(僞證)으로 인하여 귀중한 생명이 억울하게 희생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처였다. 만일 증인이 잘못 증언하여 억울하게 희생당한 사실이 드러났을 경우, 그 위증 자도 희생당한 자가 받은 형벌을 그대로 받아야 했다(19:18). 그리고  2인 이상 증인의 분명한 증언으로 말미암아 우상숭배 죄가 인정되어 최종 사형 판결이 확정된 피고의 형 집행은 먼저 증인의 손으로 집행해야했다. 그렇게 규정한 이유는 증인이 자신의 증언에 대하여 분명한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숭배자들을 이같이 엄중하게 처벌하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거하라고 하셨는데, '제하다'에 해당하는 원어 '바아르'는 '불태우다','소멸시키다'는 뜻으로, 단순히 악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악의 존재를 흔적도 없이 없애버리라는 강한 의미이다. 여기서 전체  백성의 손이 동원된 것은 그들이 한 사람씩 돌질을 해가면서 서서히 죽이는 것이 가장 참혹하게 죽이는 방법이기도 하였으며, 백성들이 일제히 돌을 던지도록 한 이유는 그들이 자신들의 열성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된 데 대한 분노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

                                       < 교 훈 >
1. 하나님의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리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 큰 악이 되는 것이다.
2.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악은 철저히 규명하여 반드시 처벌하게 하셨는데, 후에 우리들의 모든 행위도 이와 같이 철저하게  심문하시는 하나님 앞에 숨김없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3. 하나님께서는 성도들 가운데에 있는 악에 대하여는 엄중히 처벌하여 그것을 제거하시기를 원하신다.


 * 성소에 있는 상급 재판소(17:8-13)
  시내 산에서는 지명된 재판관들이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사건을 모세에게 가져와서 모세가 하나님께 물어서 판결했다(출 18:26,29). 하나님께서는 미래에 가나안 땅에서도 각 성읍의 재판관들이 결정하기 어려운 일들을 중앙 성소에서 결정하도록 하셨다(9). 그러면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 근거하여 이 사건을 해결해 줄 것이었다. 7명 또는 23명의 재판장(장로)들로 구성된 지방 재판정(16:18)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중앙 성소에 있는 상급 재판정에 의뢰해야 한다. 바로 이 중앙 성소의 재판정이 후에 발전하여서 후대의 예루살렘 공의회, 일명 '산헤드린'(Sanhedrin)이 되게 되었다. 산헤드린 회원은 모두 71명으로, 그 구성원은 대제사장을 의장(議長)으로, 24명의 제사장들과 24명의 장로들, 그리고 22명의  랍비 학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판결하기 어려운 사건을 중앙 성소에 있는 상급 재판정에 의뢰하는 경우는 '상소(上訴)에 의한 것'(Knobel)과는 구별이 되었는데, 왜냐하면 이 경우에는 지방 재판관들의 판정에 불복하여 상급 재판정에 상소하는 것이 아니었고, 각 지방 재판관들이 스스로 해결하기 어려운 경우에 의뢰를 받아서 판결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어려운 문제를 '직접 상급 재판정에 고소한 것도 아니었다. 그렇다면 지방 재판정의 권위나 역할이 형편없이 전락될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상급 재판정에서 사건을 처리하는  경우는 일반 지방 재판정에서는 도저히 판결하기 어려운 문제라고 판단되어 공정한 판결을 위해 상급 재판정에 이송(移送)된 사건의 경우일 것이다(Oehler).

  하나님께서는 상급 재판소로 이송되어 온 사건은 그곳에서 내려지는 결정대로 이행하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그대로 다 이행하라고 지시하셨다. 우리 말 성경에 '법률의 뜻대로'라고 번역된 말은 '율법의 입에 따라'(according the mouth of the law)라는 의미인데, 여기서 '입'은 '가르침'을 의미하는 바, 곧 '중앙 성소의 법정에서 판결하는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 준행 하라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만일 이러한 결정  마저도 불복하고 어기는 사람이 있으며, 그를 제거해서 타인들에게 경계가 되게 하라고 지시하셨다. 법 시행의 목적에서 왜 제사장들을 멸시하는 자들을 그냥 놓아 줄 수 없었는가 하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 교 훈 >
1. 하나님께서는 올바른 공의의 시행을 위하여 각 지방의 재판관들이 판결하기 어려운 사건들을 중앙 성소에 있는 제사장이나 재판관들에게 의뢰하여 판결하게 하셨다.
2. 이러한 모든 문제의 결정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주셨던 말씀, 곧 율법의 원리에 따라서 판정되었다. 오늘날 우리의 행위의 표준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원리에 비추어서 해결해야 한다.


 1-2. 왕의 선택과 왕의 권력(17:14-20)
  본문에서는 장차 이스라엘이 왕을 선택하게 될 때에 이스라엘의 왕을 택하는 규례와 그 왕이 지켜야 할 왕의 윤리를 말해주고 있다. 이스라엘의 왕정(王政) 제도는 결코 하나님께서 먼저 원하셔서 형성된 제도가 아니었다. 사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직접적 통치하에 있는 신정(神政) 국가였기 때문에 세상 군주를 세울 필요가 없었다. 러나 모세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정착한 후 주변 국가들의 왕정 제도를 모방하려는 욕구로 인해 왕을 세우게 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러한 예언은 약 400년 후 사무엘의 노년에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등극(登極)함으로써 성취되었다(삼상10:1). 그러나 하나님의 뜻이 아닌 순전히 인간적인 욕구에 의해 세워진 왕정 제도는 이후 남북 왕국의 분열 등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몰고 왔다.

 * 왕을 택하는 방법
 
(1) 하나님께서 택하여 주신 자를 왕으로 세우라(15절).

  이 명령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하나님이시며, 선민(選民) 이스라엘의 왕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시사해 준다.

 (2) 이스라엘 민족 중에서 선정하라(15(하)).
  왕으로 옹립될 자의 두 번째 자격 요건은 이스라엘 민족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는 반드시 이스라엘 12지파 중에 속한 자라야 했는데, 이는 왕이 될 자는 마땅히 순수한 여호와 교육을 받고 또한 여호와 신앙을 갖춘 자이어야 함을 의미한다.

 * 왕의 3대 금기 사항 *

 
(1) 말(馬)을 많이 두지 말 것(16절)
  고대 팔레스틴에는 나귀와 노새가 흔했을 뿐 말은 참으로 귀했었다. 따라서 말(馬)을 많이 소유한다는 것은 곧 강한 군사력을 소유함을 뜻했으며, 또한 말을 탄 사람은 위풍 당당한 존재로 비춰지기 마련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에 불과하므로 언제나 그분 앞에 겸손해야 했으며, 또한 세속적인 군사력에 앞서 그분을 의지해야 마땅했기 때문에 말을 많이 두지 못하도록 금하고 있는 것이다. 당시 애굽은 우량마(優良馬)의 원산지였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그와 같은 말을 수입하기 위하여선 자연히 애굽과 잦은 교역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다보면 결과적으로 애굽의 각종 타락한 문화와 우상 숭배 풍속도 함께 전래될 것이 틀림없는데, 이는 곧 애굽의 사악한 풍속을 좇지 말라고 금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는 셈이 된다(레18:3). 따라서 하나님은 이에 대한 사전 예방책으로 미리 말을 많이 두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2)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17(상))
  왕이 많은 아내(후궁)를 거느린다는 것은 개인의 향락에 더 몰두한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정치적 목적을 위해서 주변 국가의 왕녀(王女)들을 후비로 맞아들이는 정략(政略) 결혼을 일삼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을 대리하는 자로서 백성들의 신실한 공복(公僕)의 임무를 다해야 한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이 많은 아내를 두는 것을 금하셨다. 또한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세우신 결혼제도는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가능한 왕들도 이 법에서 예외가 되지 않기를 지시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처럼 왕에 대하여 건전한 윤리성을 요구한 것은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대리자임을 거듭 상기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볼 때 하나님께서 앞서 되도록 왕정을 회피시키신 것은 그 제도 자체가 절대적으로 약해서가 아니라, 비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3) 자기를 위하여 은 금을 많이 쌓아두지 말 것(17(하))
  왕에게 자기를 위하여 은 금을 많이 쌓지 말라고 하셨는데, 이는 국가의 재물 축적 행위 자체를 금하는 것이 아니라, 이기적인 목적을 위해 재물을 축적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왕이 이기적인 목적 하에 재물을 축적하려고 할 때는 자연히 과중한 세금 부과와 압제가 수반되기 마련이며, 그 결과 백성들은 궁핍과 도탄(塗炭)에 빠지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재물이 창고에 가득할 때 인간은 교만해져서 하나님을 의뢰하기  보다는 자신의 부(富)만을 믿고 그 마음이 여호와 신앙에서 멀어져 갈 우려가 충분히 있었다. 어떤 학자들은 이러한 규례를 근거로 하여 이 명령이 솔로몬의 실정(失政) 이후에 기록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신명기가 솔로몬 이후인 (B. C. 5-6세기)에 기록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애굽 회귀(回歸)를 특별히 염려하여 금지한 점(16절)이라든지, 금지 규례의 간결 보편성 등은 분명 실제적인 왕정(王政)이 시작되기 전의 모세의 사상이요, 신명기적 사상이다(G. T. Manley, The Book of the Law).

 * 왕이 해야 할 일 *
  
"율법 책을 등사하여 일평생 자기 곁에 두고 읽으며, 그 말씀대로 행하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18)."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왕이 된 사람들이 반드시 행해야 할 규례를 지시해 주셨다. 그것은 레위인 제사장들이 보관하고 있는 율법 서를 한 부 복사하여 그것을 평생에 자기 곁에 두고 읽으며, 그 말씀대로 행하고 평생에 그 말씀을 지켜 행하라고 한 것이다. '이 율법서'란 말은 '하토라', 즉 '그 율법'이란 뜻이다. 그런데 70인역 (LXX)과 벌게이트 역(Vulgate)은 이를 잘못 번역하여 '제 2의 율법'(deuteronomy)이라고 번역하였다. 율법서의 원본(原本)은 제사장이 성전에 두고 보관하게 되어 있으므로, 왕이 이를 늘 곁에 두고 보기 위해서는 사본(寫本)을 만들 필요성이 있었으며, 하나님의 통치 대리자인 왕으로 하여금 말씀을 주야로 묵상케 하여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 때, 왕 스스로도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한 걸음 더 나아가 그에게 맡겨진 백성들을 하나님의 율법의 도를 따라 바로 통치하며 지도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왕이 이렇게 할 때에 그와 그의 자손이 왕위에 오래있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 비록 이스라엘에 있어서도 왕위 세습제도가 인정되기는 하였지만, 만약 왕이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합당치 않은 태도를 취한다면, 그 왕위는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 버릴 수도 있었던 것이다(삼상 13:13,14; 15:23).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왕의 형제'라고 부르셨다. 하나님께서 이같이 왕과 백성간의 관계를 '형제'로 표현한 것은 이방인들의 왕 개념과는 전적으로 다른 차이점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방 사회에 있어서 왕(王)은 곧 '하늘'이자 '신', 또는 '신의 아들'인 것으로 떠받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왕이 백성들의 형제라는 것은 그가 결코 어떤 초월적인 존재가 아니라, 단지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선택되어 옹립(擁立)된 자일뿐임을 강조해 준다. 물론 그가 하나님의 대리자(代理者)라는 사실도 그 기능과 역할에 있어서 그렇다는 것이지, 그 존재나 신분 자체가 하나님의 대리자라는 의미는 아니다.

                                      < 교 훈 >
1.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이 세상의 제도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기를 원하신다.
2. 기독교 지도자는 지나치게 외적 조건이나, 여자에 대한 욕망, 그리고 부를 축적하는 일을 금해야 하며, 하나님만을 의지하도록 해야 한다.
3. 하나님 나라의 지도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가까이 하여 읽고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된대로 행하기를 힘써야 한다. 그러할 때에 그 길이 형통하게 될 수 있다.
 


2. 제사장,레위인,그리고 선지자의 권리(18:1-22)

 2-1.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의 권리(18:1-8)

 * 레위인과 제사장의 분깃(1-5)
  본문에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분깃에 대한 규례가 기록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연히 레위인들에게 십일조를 드리고, 제사장들에게 속한 헌 물들을 드려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소의 일로 인해 아무 기업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1-2). 백성들은 자기들의 수익(收益) 중에서 십일조 헌물을 바치는데 대해 혹 불만을 품을 수도 있다.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백성들과 레위인들 사이에 중보자(mediator)로서 다음과 같이 선언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참되신 왕이시니, 그 십일조는 하나님의 권리에 속한 재산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을 당신의 청지기요 징세관(徵稅官)으로 삼으셔서, 그 십일조를 레위인들이 수납(受納)하도록 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다고 공언(公言) 하는 자가 아니고서는, 레위인들에게 십일조를 드리는데 논란을 벌일 여지가 없다. 그리하여 십일조로 바칠 헌 물이 일부분이라도 백성들이 착복치 않도록 할뿐 아니라, 하나님의 종들이 당연히 받아야 될 보수(報酬)를 모든 백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도록 하셨다.

  또한 첫 열매들과 희생제물 중의 일부를 제사장들의 응식 (應食)으로 할당하는 일에 대해서도 불평하는 일이 없도록 하셨다. 제사장들에게 합당한 영예(榮譽)를 돌려야 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종으로 임명되었기 때문이다. '응식'이라고 번역된 말은 원어로 '미쉬파트'인데, 이 말은 본래 '규례', '관례'란 뜻이 지만, 여기서는 당연히 취할 수 있는 정당한 '권리'를 가리킨다(21:17). 그러므로 여기에 제시되는 것들은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이 백성들에게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민수기의 규례와 비교하여 고찰해 볼 때, 제사장의 몫으로 규정된 것은 다음과 같다(민 18:8-20). 곡식의 첫 수확, 가축의 초태생, 처음 깎은 양털, 장자나 부정한 짐승의 초태생을 대속하기 위해 내는 속죄금, 진설병, 곡식으로 바치는 거의 모든 예물, 속죄 제물, 화목 제물 중 가슴과 넓적 다리, 번제물의 가죽, 그리고 레위인들의 십일조 등이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제사장들의 분 깃을 지정해 주신 이유는 제사장들이 백성들로부터 아무런 불평 듣는 일이나 논란 받는 일이 없이 그들의 수고한 대가를 받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또한 제사장들이 자기에게 합당한 응식 외에 더 많은 것을 탐욕스럽게 차지하지 못하도록 고려(考慮) 하신 일이기도 하다.

 * 레위인이 중앙 성소에서 일하기를 원할 경우(6-8)
  두 번째 이야기는 지방에서 하나님의 일을 수종들던 레위인들이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중앙 성소에 왔을 때에 그들에 대한 대우문제이다. 레위인이란 이스라엘 전역에 분산되어 있는 모든 레위인들을 가리키는데, 이들은 6개의 도피성을 비롯한 가나안 전역의 48개 성읍에 흩어져 살았으며(민 35:1-8; 수 21:1-45), 그들이 분산하여 산 이유는 이스라엘 전역에서 종교적, 교육적 직무가 원활히 수행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민 35:1-8). 그런데 지방에 거주하던 레위인이 예루살렘의 중앙 성소에서 봉사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경우를 말한다. '간절한 소원'이란 여호와의 전(殿)을 사모하여 마음과 육체가 쇠약해지는 것과 같은 신앙적 갈구(시84:1,2)를 의미하며, 결코 불순한 야망이나 인간적 소욕(所慾)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 규례의 근본 정신은 예루살렘 이외의 지방에 거주한다고 해서 예루살렘에 사는 레위인들보다 더 나쁜 대우를 받아서는 안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지방에서 종교 교육의 임무에 봉사하던 레위인들도 간절한 소원이 있어서 중앙 성소에서 봉사하기를 원할 경우에, 그들이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아마 그 허용 규정 이면에는 중앙 성소의 독점화로 인해 파생될지도 모를 지나친 교권주의화(敎權主義化) 현상을 방지하려는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이러한 규정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는 역할상의 차이만 있을 뿐, 그 어떠한 등급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으며, 모두 다 동등한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는 규례라고 할 수 있다(고전 12:12-27). 하나님께서는  지방에 있던 레위인이 중앙 성소에 올라가 봉사하려고 이제까지 소유하고 있던 집이나 다른 소유를 팔아 받은 돈은 그들이 그대로 소유하도록 허락하셨으며, 그 외의 모든 생활비는 성소에서 받을 수 있도록 하셨다. 레위인들은 가나안 땅에서 토지를 기업으로 받지 못하고 거주할 성읍만 받았는데(민35:1-15; 수21:1-42), 이 경우에 성읍에 딸린 자기 가옥은 다른 사람들에게 팔 수도 있었다(레 25:32,33).

                                    < 교 훈 >
1.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을 통해서 백성들이 자신에게 드리는 헌 물을 받게 하셨다. 그리고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그 중 일부를 생활비로 주도록 하셨다. 성전에서 봉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것 외에 더 탐내거나 요구해서는 안되며, 백성들은 그 정해진 것을 주는 데에 인색해서도 안된다.
2. 하나님은 지방에서 일하는 레위인도 간절히 원할 때에는 중앙성소에서 일할 수 있게 허락하셨다.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은 지역의 구분이 없고, 중앙성소가 일부에게 독점된 것은 아니었다.


 2-2. 거짓 선지자를 멸하라(18:9-14)
  이스라엘에는 두 가지 유형의 종교적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 중 한가지는 '제사장'이며, 다른 한 가지는 '선지자'이다. 때로는 이 두 가지를 한꺼번에 겸한 사람도 있었으나, 일반적으로는 이 두 가지가 분리되었다. '선지자'(예언자)와 '제사장'(사제)라는 말은 '나비'와 '코헨'을 번역한 말이다. 제사장의 역할은 주로 성전을 유지하며 운영하는 것이었고, 구체적으로 합당한 의식에 따라서 제사를 드리는 일을 담당했다. 반면에 선지자의 역할은 하나님의 뜻을 받고 그 메시지를 개인이나 민족 또는 왕에게 전달하는 것이었다. 선지자들은 종종 미래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15-22절은 선지자의 역할에 대한 지침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스라엘은 길흉을 말하는 자들이나 복술자들(14절), 그리고 기타의 사람들을 용납해서는 안되었다. 그들은 신의 뜻을 알기 위하여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는데, 그 방법들에 따라 그들에 대한 목록들이 다양하게 나열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별을 보고 이야기하였고, 어떤 사람들은 죽은 동물의 내장을 보고 이야기했다. 그들은 모두 그들 나름대로의 방식에서 전문가들이었다. 여기에서 말하는 '복술자'는 '제비뽑다', '점치다'란 뜻의 '카삼'에서 유래한 말로, 곧 점을 치거나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하여 예언하는 자를 가리킨다(민 23:23). '길흉을 말하는 자'('메오넨')는 '구름을 관측하는 자', 즉 '징조를 살피는 자'를 의미한다. '요술하는 자'는 여러 가지 마술을 부려 사람을 현혹시키는 자이고(레 19:26), '무당'(카솨프)은 '속삭이다', '호리다'는 뜻으로서 주문(呪文)을 외우며 길흉(吉凶)을 말하는 자를 말한다. 그리고 '진언자'(호베르 헤베르)는 주문(呪文)을 외움에 있어서는 무당과 같으나, 그 목적이 사람들에게 마법을 거는 데 있는 사람을 말한다. '신접자'는 점(占)을 치기 위해 죽은 사람의 영(靈)을 부리거나 그에게 물어보는 자(medium, RSV)를 가리키는데, 일명 영매자(靈昧者)라고도 한다(레 19:31). 그리고 '박수'는 '남자 무당'이나 원어 '이데오니'는 '점장이' 또는 '마술사'(wizard, KJV)를 가리킨다. 마지막으로 '초혼자'는 죽은 자들을 불러내 미래의 일을 물어  보는 자로 신접자(神接者)와 유사하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이러한 행위들을 가증히 여기신다, '가증하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타아브'는 '심히 꺼리다', '강력하게 거절하다', '구역질 낼 정도로 혐오하다'란 뜻이다. 이 말은 '우상 숭배 행위' 와 관련되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신정통치 하에서 우상 숭배 행위가 하나님께 결코 용납되어질 수 없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가나안 족속들이 이러한 이유로 하여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표면적으로 볼 때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창 15:12-21)을 좇아 이스라엘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려고, 가나안 원주민들을 무자비하게 좇아내신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이스라엘의 가나안 입성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들은 스스로의 죄악으로 결국 멸망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어느 누구를 편애(偏愛)하시는 분이 아니다. 이 점은 훗날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가나안 족속처럼 우상 숭배에 빠지자, 그들 역시 주변 열강들에 의해 가나안 땅에서 쫓겨난 사실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겔 5:5-12).

  왜 구약 성경에서는 그들에 대하여 그토록 적대감을 가지고 대하고 있는가 ? 그들이 어느 정도 다른 신들과 접하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참 하나님께서는 결코 이러한 자들을 토해서 자신의 뜻을 계시하시지 않는다. 그러므로 결국 그들은 백성들을 거짓으로 속여서 그릇된 곳으로 미혹하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절대적으로 제거할 것을 명령하셨던 것이다. 죽은 동물의 시체나 내장, 또는 나무 그릇에 담긴 내용들을 흔들며 신의 뜻을 발견한다고 하는 것 자체가 분별없는 짓이다. 또한 이러한 일들은 도덕과는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하나님 자신이 인격적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들은 도덕적인 요구와 격려를 하는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비인격적인 방법을 통해 계시하는 자들은 전혀 도덕적이 아닌 방법으로 일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악마적이며 사탄적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돈을 받고 선량한 사람들을 악마들의 힘을 빌어서 저주하는 일까지도 담당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철저히 제거 할 것을 명령 하셨으며, 이들을 본 받는 것을 금하셨고,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를 분별할 수 있는 지침을 제공하셨던 것이다.   

  이방 민족들은 참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이러한 사람들의 말을 듣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은 이러한 일을 결코 용납해서는 안된다. 이방인들은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과 신성(神性)을 만물 가운데 나타내셨으나, 스스로가 타락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고  도리어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롬 1:20,21). 그들은 '자기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기도 하였다. 이는 몰렉(Molech) 종교의 희생 제사 의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자기 자녀를 불태워 제물로 바쳤는지, 아니면  단지 정결케 하는 상징적 의식만 거행하였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아마 초창기에는 상징적 의식으로 거행하다가, 후기에 이르러서는 실제로 자녀를 불살랐던 것으로 보인다(레 18:21). 이스라엘은 결코 이러한 일을 행해서도 안되고 또한 용납해서도 안된다.

                                   < 교 훈 >
1. 인격적인 하나님을 섬기는 일은 인격적이고 도덕적인 방법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2.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에 있어서 말씀에 계시해 놓으신 방법을 따라야 한다.
3.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에 있어서 성경에 계시된 방법이 아닌 모든 것은 제거시켜야 한다.
4.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뜻을 분명히 자신이 세우신 종들에 의해서 전달하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말을 잘 분별하여 순종 할 수 있는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2-3. 선지자에 대한 규례(18:15-22)
  하나님께서는 부정적으로 거짓 선지자들을 용납하지 않도록 지시하셨다. 그리고 이제 적극적으로 진정한 하나님의 뜻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낼 선지자 제도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다. 선지자 제도의 직접적인 배경은 호렙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는 것을 두려워하여, 모세에게 대신 가서 듣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면, 그것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겠다고 한 데에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그 요구를 받아 들이셨고, 모세를 통해 이 일을 감당케 해 오셨다. 그러나 이제 모세가 죽게되면 모세와 같은 역할을 할 사람을 하나님께서 필요할 때마다 일으키셔서,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다. 이와 같이 선지자 제도는 백성들의 죄악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차이 때문에 생겨진 일종의 중보적 계시 전달을 위해 생겨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제도를 허락하시면서 한 가지 단서를 붙이셨다. 만일 백성들이 선지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전달했는데도, 그 말을 듣지 않을 경우에는, 반드시 그들을 벌하실 것임을 분명히 하셨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보내지 않았는데도 자기가 임의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것처럼 거짓 예언을 하는 경우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경우에 그 거짓 예언한 선지자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친히 처벌하실 것이라고 하셨다. 그러면 어떠한 선지자가 나타나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지 아닌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이에 대한 대답도 해 주셨다. 선지자의 참, 거짓은 그 말이 그대로 성취되고 이루어지는가 아닌가에 달려있었다. 왜냐하면 참 하나님께서 해주신 말이라면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지만, 거짓 예언하는 경우에는 그 말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선지자라 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예언할 때에, 그들의 말이 실제로 이루어지면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확실한 것이고, 만일 그들이 말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그들을 두려워 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서 말하는 "선지자"란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에 대해 여러 의견이 제시되고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선지자"란 말은 모든 시대의 선지자들을 의미한다(Kimch, Alshech, Lipman),
 (2) 그리스도를 의미한다(Justin Martyr, Tertullian, Athanasius, Augustine, Deyling).  
 (3) 모든 선지자들을 의미하는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Calvin, Grotius). 우리는 이 마지막 해석이 옳다고 생각한다.

  신약의 저자들은, 이것이 그리스도를 의미하는 것으로 언급하고 있다(요 1:21, 6:14, 7:40-41; 행 3:22-23, 7:37). 이를 볼 때에 본문의 "선지자"란 말은 그리스도를 의미하고 잇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15절의 문맥은, 직접적으로 모세 이후에 일어날 많은 선지자들을 가리킨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자적인 역할을 감당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백성들에게 전달하는 선지자적인 역할은 그리스도에게 와서 완성되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옛적에 여러 부분과 모양으로 말씀해 오셨던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을 통하여 자신의 뜻을 온전히 드러내셨다"(히 1:1)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직을 완성시키신 분이시며, 또한 구약의 모세와 율법에 대비되는 신약의 계시자로서 구원사에 우뚝 서셨기 때문에 그 분 앞에 서게되면 어떠한 선지자들도 그 빛을 잃게된다. 그러므로 신약의 저자들이 모세가 말한 그 선지자가 바로 그리스도를 말한다고 한 것은 결코 잘못된 표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실상 진정한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며,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은 그리스도의 선지자적인 면을 나타내주는 모형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면 모세가 그리스도를 가리켜 '자기와 같은 선지자'라고 한 것은 무슨 뜻인가?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신약 시대에 증보자가 되실 것이, 마치 자기가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계시의 대표가 된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이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구약 시대에도 모세와  기타 모든 성도들을 위한 증보자이셨다. 사실상 모세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계시를 취하였다. 그리고 구약 시대의 모든 선지자들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율법과 계시를 파수하는데 불과했다. 그러므로 구약 시대는 모세 한 사람으로 대표될 만하다. 그 뿐 아니라 모세는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으니, 그 이유는 그가 선지자이며(신 18:15), 제사장이고(출  24:4,8), 또한 왕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리스도는 모세보다 말할 수 없이 탁월하신 수준에서 이 세 가지 직분을 겸하셨다. .모세의 사역이 그리스도의 예표라는 말씀은(고전 10:1-4)에 나타나 있다. 이렇게 모세의 구약 시대 위치는 특이한 것이었다. 그러나 모세도 그리스도를 위해 있었다(요 5:45-47).

                                   < 교  훈 >
1.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신지식이 어두워지고, 죄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중보자직인 계시 전달자로서의 선지자 제도를 허락하셨다.
2. 참 의미의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며, 다른 모든 선지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에 불과하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직을 완성하신 분이시다.(히 1:1, 마 5:17).
3.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과 그리스도와 사도들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말씀인 성경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읽고 연구하며 지켜야 한다.
4. 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삶과 열매로서 그 사실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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