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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신명기(1): 모세의 첫 번째 설교(1-4장)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7. 10:49

 신명기(1): 모세의 첫 번째 설교(1-4장)


  
                                 A. 서   론

1. 책의 명칭
 1) 유 대 인: "엘레 하 데바림"(이것은 그 말씀들이다"), 또는 "데바림"(말씀들")
 2) 70인 역: "두 번째 율법", (신 17:18) "이 율법 책을 등사하여"를 "두 번째 율법"이     라고 잘못 번역한 데서 붙여진 이름.
 3) 라 틴 역: "Deuteronomium"(제 2의 율법)-영어 성경-"Deuteronomy"
 4) 개역성경: "신명기"(하나님의 명령을 기록한 책)


2. 저작 연대, 저자, 수신자

 1) 저작 연대와 저자

 가. 현대 비평학자들의 신명기의 기원에 관한 견해들
  가) 신명기는 종교를 중앙 집중화하려는 요시야 왕의 개혁에 의해서 주전 7세기경에 기록되었다(왕하 22:3, 23:25, 신 12:4-14). 이러한 견해는 약간 수정되어 지금도 부정적인 비평학자들 가운데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나) 신명기는 포로 이후에 쓰여졌다(주전 5세기 경). 사실상 포로 이후 정치적 상황은 모세 말기와 비슷하였으므로, 이 시기에 신명기가 큰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많다. 그러나 신명기는 이스라엘 정신의 기초로서 이 시대 뿐 아니라 모든 시대에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그 영향을 미쳐왔다.
  다) 신명기는 왕정 초기나 그 이전에 쓰여진 것이다. 그들은 모세 오경이 오랜 기간 동안 개정되고 발전된 것이 아니라, 기록된 당시 여러 곳에서 시행되었던 종교적 의식들을 모아서 쓴 것이라고 주장한다.
  라) 일부 사람들은 모세 오경의 출처를 세겜 성전이라고 보기도 하며, 신명기를 모세의 다섯 번째 책이 아닌, 역사서에 포함시켜서 연구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나. 전통적인 기독교 학자들의 견해
  그러나 오늘날의 전통적인 기독교 학자들은 신명기가 모압 평지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준 마지막 고별사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신 31:9,24)에는 모세가 이 율법의 말씀을 말하고 또 기록하였다고 하였는데, 이 말은 이 견해를 지지해 주고 있다. 물론 모세가 죽은 이후에 여호수아나 다른 사람들이 모세의 죽은 사건에 대해서 추가했을 수도 있다(신 34장). 그러나 신명기의 대부분이 모세에 위해 기록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러한 것은 신명기의 저자가 역사적인 지식이 해박한 사람이었다는 점과, 신명기의 구조가 모세가 살던 당시의(주전 15세기경) 종주권 조약 형태와 비슷하다는 사실로도 입증이 된다. 참고적으로 본서의 저자가 모세라는 성경 적인 증거는 다음과 같다.
 가) 본서 자체의 증거(1:1, 4:44, 29:1)
 나) 여호수아의 증거(수 1:7)
 다) 구약의 증거(삿 3:4, 왕하 14:6, 스 3:2, 느 1;67, 시 103:7, 단 9:11, 말 4:4)
 라) 신약(행 3:22, 롬 1-19, 고전 9:9) 마) 예수님의 증거(마 4:7,10, 19:7, 막 7;10, 눅 20:28 등)

 2) 수신자
  신명기는 광야 40년간의 방랑 생활이 끝난 후에 저작되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전 1405년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율법을 상고하고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신명기는 가데스 반역 당시에 20세 미만이었던 새로운 세대들을 위해 쓰여진 것이었다. 모세는 새로운 세대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으로 그 동안 있었던 일과 시내 산 언약을 정리하여 그들에게 전해 주었다. 이 책이 기록되었을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은 요단 동편에 있는 모압 평원에서 여리고를 바라보며 진을 치고 있었다. 그러나 신명기는 단순한 이전 역사를 요약한 책이 아니며, 하나님과 맺은 언약과 율법 내용의 핵심을 전달하고, 그 언약과 율법에 충실할 것을 권고한 책이다.


3. 저작 목적
  신명기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문명이 발달한 가나안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경외하며 올바른 삶과 복지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항구적인 기초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 신명기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할 것과, 이로 인해 심판을 받아 이방에 흩어질 것과, 그후에 다시 회복될 것(30장)도 예언되어 있다. 그리고 모세의 사역을 통해서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도 신명기의 중요한 목적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4. 율법의 본질
  신명기의 핵심은 그 안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율법(12:1-25:19)으로, 이 율법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중요한 것이었다. 비록 우리는 우리 사회의 "법과 질서"를 존중하고 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으나, 실제적인 면에 있어서 우리는 그 법과 질서를 소홀히 대하는 경향이 있다. 우리 사회의 법은 세속적인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그 법을 하나님의 명령이나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그러나 율법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주신 법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율법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목적과, 가치는 무엇이며, 또 그 내용은 무엇인가?

  첫째로 율법에는 많은 '규례들'이 포함되어 있다. 모세의 율법에는 도둑질이나 살인 등을 금하는 윤리법과, 절기나 제사법과 같은 종교법들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신명기에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는 사회법(약자 보호법)이 많이 등장하고 있는데, 이러한 약자보호법은 강제성을 띤 법이 아니라, 자비를 행하라고 하는 권면들이다. 이러한 규례들은 모두 "야훼" 하나님의 이름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따라서 율법은 "하나님의 교훈"이라고 할 수 있다. 토라라는 일반적인 의미가 바로 "교훈"이라는 점이 이것을 입증해준다. 율법은 이스라엘 역사의 특정한 시기에 이스라엘에게 요구하셨던 규례들인 동시에 사람들의 삶에 대한 보편적인 지침이 되기도 한다. 율법이 모세 당시의 역사적인 상황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오늘날 성도들이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율법의 보편적인 원리들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다. 예수님은 율법의 기본정신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율법에 대한 신약 성경의 비판은 율법 자체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율법에 대한 그릇된 태도들에 대한 비판이었다. 신약 성경 기자들이 비판한 내용은 두 가지였다. 첫째로 율법을 문자대로 적용하는 것이었다. 율법은 변화하는 상황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어야 한다. 만일 율법이 문자 적인 규정을 절대시하고 이에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면 율법의 많은 기본 정신이 파괴될 수도 있다. 둘째로 율법을 구원을 받는 방편으로 생각한 것이다. 율법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백성이 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이지, 결코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해주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뿐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단 하나님을 알고 그를 사랑할 경우에 신명기의 교훈을 통해서 큰 유익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신명기의 여러 규례들은 통해서 오늘날 성도들이 삶의 여러 영역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5. 내용분해

 1) 전문: 언약의 중재자(1:1-5)

 2) 역사적 서언(1:6-4:49)
  가. 호렙에서 호르마까지(1:6-2:1)
  나. 아르논으로의 전진(2:2-23)
  다. 트랜스 요르단의 정복(2:24-3:29)
  라. 언약의 요약(4:1-49)

 3) 규정사항들(5-26장)
  가. 대 명령-십계명 해설(5:1-11:32)
  나. 부차적인 계명들-계명에 대한 해설-(12:1-26:19)
  가) 종교법(12:1-16;17)
  나) 사법-행정법-(16:18-21:23)
  다) 사회법(22:1-26:19)

 4) 재가: 언약의 비준(27-30장)
  가. 가나안 비준의식(27장)
  나. 재가 선언(28장)
  다. 언약 백성으로 소환(29:1-30:20)

 5) 모세의 고별사(31:1-34:12)
  가. 최종적 조처들(31:1-34:12)               
  나. 증거의 노래(31:30-32:47)
  다. 모세의 유언(32:48-33:29)
  라. 모세의 죽음(34:1-12)

구분

모세의 첫 번째 설교
(1-4장)

모세의 두 번째 설교
(5-26장)

모세의 세 번째 설교
(27-30장)

결론
(31-34장)

내용

과거 회상과 반성

현재를 위한 교훈-
십계명, 종교법, 정치법, 사회법, 민법

미래의 선택: 순종-축복, 불순종-저주

모세의
고별사

주제

역사적 회고와 교훈

율법에 대한 설명

미래를 바라보며-약속과 결단

장소

요단 동편 모압 평지; 여리고 맞은 편

기간

약 1-2개월

목적

가나안 정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이스라엘의 새로운 세대들에게 하나님께 순종하고, 율법에 순종하도록 권면하여, 참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될 수 있도록 가르치고 경계하기 위해서(오경의 결론)


                                 <신명기의 개관>


                                  B. 내용 연구 

Ⅰ.  서두와 표제(1:1-5)

1. 선포자: 모세(1:1)

2. 기록 장소: 요단 동편, 숩 맞은 편의 아라바 광야
  숩은 아카바 만을 가리킨다(민 14:25, 21:4). 아라바 광야는 본래 요단강 상류의 헤르몬 산으로부터 갈릴리 호수, 그리고 사해를 넘어 아카바 만까지 이는 광범위한 지역으로서, 게네사렛 호수에서 사해로 흐르는 요단강의 양쪽 기슭에 깔려 있는 평원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것은 남쪽으로는 사해에서부터 에일랏까지 뻗어있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에돔에서 에일랏까지 가는 길을 '아라바의 길"이라고 불렀으며(민 2:8), 사해를 '아바라 바다"라고 불렀다(민 3:17, 4:49).  

 '바란과 토벨, 라반과 하세롯과 디사합 사이'(1).

 * 바란 광야: 이스라엘 자손들이 반역을 행했던 가데스가 있는 지역이며, 모세가 실수를 한 므리바가 있는 곳이고, 아론과 미리암이 죽은 곳이다. 이 지역은 이스라엘과 모세에게는 뼈아픈 경험을 한 곳이었다.

 * 도벨: 학자들에 의하면 오늘날의 '투파일라', 또는 '엣타필레'라고 한다. 이 곳은 사해 남동쪽으로 약 20-25km정도 지점에 있다. 이 곳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광야에서 나와서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는 처음으로 통과한 지역이었다. 이곳은 광야의 끝 경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방랑의 극동 지점으로 거론된다.

 * 라반: 여리고 동편의 '엘리벤'으로 추정되나 확실치는 않다. 혹자들은 이곳을 고라당의 반란이 일어났던 '립나''라고 하는데, 만일 이곳이 립나라면 모세는 고라당의 사건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곳을 거론했을 것이다.

 * 하세롯: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다가 문둥병이 걸렸던 곳이다(민 12:1-16).

 * 디사합: 아라바 동쪽, 시내산 주변 지역으로 추정된다.

  이와같은 점에서 볼 때에 '바란과......디사합 사이'라는 말은 이스라엘 민족이 바란에 있었던 38년간의 모든 기간을 포함하는 말로 보인다.
 

3. '수신자
  '이스라엘 무리': 가데스에서 하나님께 반역하던 20세 이상의 출애굽 세대가 다 죽고 난 후에 다시 성장한 새로운 세대들.  


4. 기록 시기: "제 40년 11월 1일"
  모세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였을 때에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주신 모든 명령을 기록하였다. 신명기는 "모세의 고별설교"로서, "과거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재해석하고 정리하여, 가나안 입성을 앞둔 이스라엘의 새 세대들에게 전달한 것"이었다. 모세가 이렇게 지루할 정도로 율법과 법도들을 거듭하여 반복하여 설명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사여부가 율법준수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쳐서 승리했을 때"
  이때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비로소 옛 시대의 저주를 벗어나서 승리하기 시작했을 때였다. 이때에 모세는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말씀을 모두 전했다. 왜냐하면 이제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전진하는 새 세대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학자들은 "이는 모세가......선포한 말이니라"는 표현이 당시의 종주권적인 계약 양식과 일치한다고 말하고 있다. 만일 이 사실이 맞다면, 모세는 지금 하늘의 대 군주이신 여호와를 대신하여 봉신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중보자의 위치에서 계약 조문을 발표한 셈이 된다. 모세는 호렙산에서 세일산을 지나 가데스바네아까지 열 하룻길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여자와 어린이, 그리고 가축까지 딸린 사실을 감안하여 하룻길을 약 24 km로 잡을 때에 걸리는 시간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길을 무려 38년이나 결려서 통과하였다. 모세는 이 말을 통해서 이스라엘을 패역한 과거에 대해 상기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 적용을 위한 문제들 >
1. 신앙 교육의 필요성에 대해서 토의해 보자(모세는 받은 율법을 다음세대에 전수하였다.)
2. 역사를 통한 교훈의 필요성(우리는 왜 과거 신앙의 선조들의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
3.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순종해야 할 필요성(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들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케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을 모르면 사단과의 전쟁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4. 성경 기록의 역사적 확실성(왜 모세는 이 글의 저자와 시간, 장소, 그리고 수신자들을 서론에서 언급하였는가?")
5. 문화의 옷을 입고 진리를 전달할 필요성, 38년간 구원 역사가 지연된 원인은?(모세가 당시 종주권적 계약 양식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달함)


Ⅱ. 첫 번째 예비 연설-역사적 회고, 율법 준수를 권면함-(1:6-4:40)

  모세는 신명기를 지난 38년간의 여행 중에 일어난 일들을 회고함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 회고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거역한 이전 세대들의 죄와 그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말한다. 이 회고는 새세대들에게 율법에 신실할 것을 촉구하기 위해 기록했다.


1. 호렙산에서 있었던 일들을 상기시킴(1:6-18)   

 1-1. 약속의 땅을 취하라고 하심(1:6-8)
  하나님께서는 호렙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모든 준비가 마치게 되자, 호렙산을 떠나 아모리 족속의 산지로 행군하라고 명령하셨다. 아모리 족속의 산지는 요단 강 서편의 산악 지대를 가리킨다(수 15:48-60, 16:1-10).

 * 아모리 족속: 함의 아들인 가나안의 후예로서(창 10:15-16), 요단 강 동편과 서편의 산악 지대에 흩어져 살았다. 이들은 가나안 땅의 여러 족속 중에서 가장 강력한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으므로,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 전 족속을 대표하는 자들로 지칭되곤 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서 차지할 땅들을 구체적으로 지시해 주셨다. 그 곳은 아라바와 산지, 평지와 남방, 해변과 가나안 족속의 땅, 레바논과 유브라데 강까지였다.

 * 남방(네게브): 팔레스틴 남쪽의 넓은 광야지대를 말하는 데, 신광야가 바로 이 네게브 지역에 속한다. 해변은 지중해에 접한 평지를 말하며 샤론 평야가 이에 속한다.

 * 레바논: 팔레스타인의 북쪽 경계가 되는 산지로서 일년 내내 눈으로 덮여있어서, 은 레바논(하얀 산)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특히 이 곳에서 나는 백향목은 그 향기와 재질이 뛰어났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이제 이스라엘 자손들을 통해서 그것을 성취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이 땅이 그들의 것이 되었으므로 가서 그것을 취하라고 하셨다.      

 1-2. 행정 조직(8-18)
  모세는 수많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짐을 홀로 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지치고 낙망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모세는 그 많은 짐을 나누어지기 위해서 백성들 중에서 지혜가 있는 자와, 지식을 겸비한 자, 그리고 유명한 자 중에서 각 지파를 따라서 천 부장과, 백 부장과, 오십 부장과 십 부장과 패 장을 삼았다. 이들은 진실된 언행으로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는 자들이었다. 이것은 이드로의 조언을 모세가 받아들임으로서 이루어졌다. 패장(쇼테르)은 '유사'로 번역되었는데, 영어성경은 이를 '관리자'로 번역했다.

  또한 모세는 재판관으로 세운 사람들에게 외모를 보지 말고 공정하게 판결할 것을 당부했다. 그들은 외국인이라도 편파적인 판결을 해서는 안되었다. 이러한 재판의 기본 원리는 "공정성"이었다. 모세는 그들이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일들은 모세에게 돌리라고 지시하였다.


2. 가데스에서 있었던 일-반역과 심판-(1:19-46)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호렙산에서 출발하여 "크고 두려운 광야"를 통과하였다. 그곳은 메마른 시내만이 널려있어 물이 귀하며(민 21:5), 뾰족하고 울퉁불퉁한 암석으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거친 모래 사막에는 불 뱀과 전갈이 득실거렸으며(8:15), 황폐한 고원 지대가 있었고, 광야에는 죽음의 모래 폭풍까지 휘몰아치는 크고 두려운 곳이었다.  

  아모리 산지 길을 통해서 가데스바네아에 이르게 되었을 때에(2, 7절 참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올라가서 가나안 땅을 차지하라고 명령하셨다. '올라가서'(알라)라는 말은 그 곳에 안주하지 말고 '일어나 분투하라'는 말로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약속의 땅을 얻도록 '적극적인 노력'을 하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얻으라'(레쉬)는 말은 '소유하라'란 뜻이다. 히브리 본문에는 '올라가라'는 말과 '얻으라'는 말 사이에  접속사가 없는데, 이는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여 가나안으로 '올라가기만 하면' 반드시 그 땅을 '얻을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었다(Michaelis).

  그러나 그들은 즉각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먼저 그 땅을 정탐하기를 원했다. 이러한 그들의 제안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보다 상식적인 방법에 호소하는 요소가 나타난다. 그들은 말씀에 순종하기 전에 정탐꾼을 보내어 성공 여부를 점검해 보고 그 결과에 따르려고 했다(27, 28절). 모세는 이 일로 인해 하나님께 물어보았으며, 하나님께서는 마지못해서 이 일을 허락하셨다(민 13:1,2). 그러나 만일 그들이 바로 가서 가나안 땅을 취했다면, 바로 그 땅을 소유했을 것이다. 모세는 이 의견을 선히 여겼다. '선히 여겼다'('야타브')는 말은 '올바르게 취급했다'는 뜻인데, 이는 백성들의 제의가 비록 불신앙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정복 전쟁을 수행하기에 앞서서 최대한 수용했다는 것을 말한다.

  그 정탐꾼들은 산지에 올라 에스골 골짜기에 이르러 그 곳을 정탐하였다(24)(민 13:17참조). '에스골'은 '포도송이'란 뜻으로, 가나안 정탐꾼들이 이곳에서 거대한 포도송이를 취한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민 13:21-24).  이곳은 헤브론 북쪽에 위치한 골짜기인데, 이 지역의 포도 농원에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질 좋은 포도가 생산되고 있다(민 13:23참조). 그들은 그 땅의 과실을 손에 가지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로 돌아왔다. 거친 광야에서 생활하던 정탐꾼들에게 가나안 땅의 풍성한 소산은 희망의 증거물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땅이 '좋다'고 보고했다.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출 3:8, 17) 이라고 하셨는데, 이는 주변의 사막지대에 비해 비옥한 곳이라는 말과, 하나님 안에서 누릴 복된 가나안 생활을 의미하는 것이었다(28:1-14). 실제로 지중해 연안의 가나안과 유프라테스, 티그리스 강 유역은 고대에 '비옥한  초생달'(Fertile Crescent)지역'이라고 불리는 옥토였다(25).

  그러나 그들은 그 땅이 좋은 것은 인정했으나, 그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 해야 할 노력은 거부하였다. 그들은 끝까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를 거부했다(25-28). 여기에서 '여호와의 명령'이란 말은 '여호와의 입'('페')이란 말인데, 이 말은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준엄한 명령을 가리킨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고 자기 뜻을 고집하였으며, 이 일로 인해 패망하게 되었다(민14:26-37). 그들은 심지어 모세와  아론을 배반하고 새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돌아가려고 했다(민 14:4).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광야에서 죽게 하였다고 원망했다. 이러한 일은 마치 새끼를 돌보는 어미 독수리(32:11)같이 이스라엘을 인도하신(출 13:21, 22;16:4;17:6) 하나님의 큰 은혜를 멸시하는 행동이었다(민14:3참조). 모세는 새로운 세대들에게 이러한 조상들의 반역 사건을 상기시켜서 그것을 이스라엘의 경계로 삼으려고 하였다(27).

  '낙심케 했다'는 말은 '마음을 녹아 내리게 했다'는 의미인데,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이 희망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었다는 말이다. 그들은 가나안 백성들이 자신들보다 크고 강하며, 그들의 성곽은 하늘에 닿았다고 보고했다. 오늘날 고고학적 탐사 결과, 성곽으로 둘러싸인 모세 시대 이전의 근동 여러 도시들이 속속 발굴되고 있는데, 대개 그 성곽들은 내부의 가옥들 보다 높아 밖에서 안을 들여다 볼 수 없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당시 가나안 성읍들도 견고하게 요새화 되었을 것은 분명하다(민13:28). 그러나 그 '성곽이 하늘에 닿았다'는 말은 두려움과 불 신앙으로 가득 찬 마음에서 나온 말이었다(Schultz). 그들은 그 땅에서 '아낙 자손'을 보았는데(28), '아낙 자손'은 헤브론을 중심으로 하여 팔레스틴 여러 산지에  흩어져 살던 족속으로(수11:21), 신체가 매우 커서 '르바임'(거인, 2:11) 족속이라고 불렀다. 일부 학자들은 이들이 바로 (창 6:4)에 나타나는 '네피림'의 후예들이라고 추정한다(민13:22참조).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에게 그들을 무서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 말은 하나님의 권능과 도우심의 손길을 믿고 신뢰하라는 의미이다. 모세는 이스라엘 앞에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싸우실 것이라고 했다. 모세는 그 동안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친히 목격했으며, 따라서 가나안 땅의 족속들이 아무리 강해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29-30).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말을 믿지 않았다. 애굽에 내린 10대 재앙과, 홍해 도하(渡河) 사건, 불기둥과 구름 기둥의 출현, 그리고 광야의 음식과 광야의 생수 공급사건 등은 어린 새끼를 돌보는 어미 새의 사랑과도 같았다(32:10, 11). 그러나 이스라엘은 이러한 일들을 직접 체험하고도 불신앙과 두려움에 빠져 하나님을 믿지 않았다. 그러므로 모세는 하나님께서 밤에는 불로 낮에는 구름으로 그들의 행할 길을 지시하신 일을 상기시켰다(32-33). 하나님께서는 불신앙적인 10정탐꾼들의 보고와 밤새도록 울부짖는 백성들의 말을 모두 들으셨다(민 14:1-4). 그리고 그들에게 진노하시고 "이 악한 세대 사람들 중에는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주기로 맹세한 좋은 땅을 볼 자가 하나도 없으리라"(34-35)고 선언하셨다.

  그러나 여기에서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제외되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그 발로 밟게 될 것을 약속 받았다(36). 이들의 믿음의 행위는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했으며, 그 믿음대로 약속의 땅을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좋은 신앙은 자신 뿐 아니라, 자기 자손과 모든 백성들에게도 빛을 비추어 준다. 모세 또한 므리바 사건으로 인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때에 모세는 거듭되는 이스라엘의 불 신앙에 격분하여 반석을 두 번이나 내리침으로써,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못했다(민 20:11). 모세는 이 일로 말미암아 그의 직임을 중단하게 되었고, 그 뒤를 이어 여호수아를 후계자로 세우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모세의 종자'라고 하셨는데, '종자'라는 말은 '네 앞에 서있는 자'(who standeth before thee)란 의미이다. 이는 여호수아가 오랫동안 모세 곁에서 그를 도와 보좌관 내지 수행원 역할을 담당한 것을 말하며, '부관' 또는 '보좌관'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눈의 아들 여호수아의 본명은 '호세아'(구원)이나 그 이름 앞에 '여호와'를 뜻하는 '예'(* )가 붙어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민 13:16>이 되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출애굽 제 2세대의 지도자가 되었는데(34:9), 그는 갈렙과 더불어 가나안 땅을 밟은 유일한 출애굽 제 1세대였다(민14:30).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를 담대하게 하라고 지시하셨다. '담대케 하라'('하자크)는 말은 '강하게 하다', '확인하다'는 의미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와 함께 하심을 확신시켜 주라는 의미였다(38). 하나님께서는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없었던 자녀들은 그 책임에서 제외 시키셨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 당시 반역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이 없었기 때문이었다(39).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의 행진을 돌이켜서 다시 홍해 길을 통해서 광야로 돌아가라고 지시하셨다(40). 그들은 1년의 여행 끝에 '크고 두려운 광야'(19절)를 지나 겨우 가나안 땅의 문턱에 도달했으나, 약속의 땅에 이르지 못하고 돌이켜야만 했다. 신앙의 세계에서 불신자들이 하나님께 얻을 것은 없다(약 1:7,8).

 * 홍해 길: 사해(死海) 남단의 성읍인 다말(Tamar)에서 아카바(Aqaba) 만(灣)의 어귀인 에시온 게벧이나 혹은 엘랏으로 내려가는 길(민 14:25).

  그러나 그 동안 싸우러 못 가겠다고 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제 반대로 싸우러 가겠다고 했다(26절). 그러나 때가 이미 늦었다. 그들은 그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기회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그들은 모세의 만류를 뿌리치고 무장을 하고 적지로 달려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싸움에 함께 하시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출애굽 후 처음으로 패배의 쓰라린 경험을 하게 되었다(민14:39-45). 그들이 산지로 올라가자, 그 산지에 살고 있던 아모리 족속이 벌떼같이 그들을 쳐서 세일 산에서부터 호르마까지 미치게 되었다(44).

 * 호르마: 원래 지명은 '스밧'(삿 1:17)인데, 이는 팔레스틴 남부 브엘세바 부근에 위치한 성읍이다(민 14:45).

  그들은 그 싸움에서 크게 패하고 여호와 앞에서 통곡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해서 생긴 결과였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가 모든 책임을 져야만 했다. 결국 그들은 광야를 방황하면서 형벌의 기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려야만 했다.

 * 이스라엘이 방랑한 광야: 이 광야는 시내 반도 북쪽에 있는 아라비아 광야 서쪽의 거친 사막 지대를 말한다. 그곳은 메마른 시내만이 널려있어서 물이 귀하며(민 21:5), 뾰족하고 울퉁불퉁한 암석과, 거칠은 모래 사막에는 불뱀과 전갈이 득실거리는(8:15) 피폐하고 황폐한 고원 지대로서, 종종 죽음의 모래 폭풍까지 휘몰아치는 곳이었다.

  모세는 이러한 조상들의 불신앙적인 행위와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새 세대들에게 전달하면서, 앞으로는 절대로 이러한 일이 없도록 철저히 경계를 하였다.     

                                  < 적용 질문 >
1.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 않고 자기지혜를 앞세우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으면 말해보라.
2. 원망이나 불신앙으로 인해 실패한 경험이 있으면 함께 나누어 보자.
3. 믿음의 행위로 인해 자신과 후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된 일을 말해보자.
4. 성도들은 과거의 신앙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에 매우 유익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3. 가데스에서 모압 동편 땅을 정복하고 분배하기 까지(2:-3:)

 3-1. 전쟁이 불허된 민족들(2;1-23)

  가. 에돔(2:1-8)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전 세대들의 불신앙과 반역으로 인해 광야에서 방황하며 38년 간을 세일 산을 행하며 방황했다(1).

  * 세일 산
  아라바 광야(1:1) 저지대에서 아카바 만(the  Gulf  of Aqaba) 근처까지 뻗어 있는 에돔(Edom)의 산악 지대.

  이전 세대들에 대한 심판이 끝나게 되자, 마침내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으로 진격하라고 지시하셨다(민 14:29-35)(2-3). 하나님께서는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의 경계를 지날  때에 스스로 삼가며 다투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삼가라'는 말('솨마르')은 '울타리를 치다'는 말로서 자신을 '철저히 제어하여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세일 산(Mt. Seir)을 에돔 족속의 기업으로 허락하셨으며, 무엇보다도 에돔 족속은 야곱의 형 에서의 후손으로(창 36장) 이스라엘과는 가장 가까운 형제 민족이었기 때문이다(민20:21).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양식과 물을 돈(문자적으로는 은; 은은 당시의 화폐로 사용되었다)을 주고 사서 먹으라고 지시 하셨다. 양식을 사서 먹으라는 말은 모든 면에 있어서 침략자 같이 행동하지 말고, 지나가는 여행자처럼 예의 바르게 행동하라는 말이다(5-6).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시는 일에 복을 주셨기 때문에 에서의 후손들에게 돈을 주고 양식과 물을 사 먹을 충분히 재산이 있었다. 이런 면에서 볼 때에 광야 40년은 그들에게 결코 헛되고 무익한 시간만은 아니었다(7).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그 지시를 따라 에돔 족속의 국경을 전쟁 없이 통과했다. 그들은 그곳을 지나 아라바와 엘랏과 에시온게벨 곁으로 지나서 모압 광야에 이르렀다(8).

  * 엘랏(Elath)과 에시온게벨(Ezion-geber)
  홍해의 아카바 만 최북단에 위치한 2개의 항구 도시인데, 에시온게벨이 보다 윗 편의 서쪽에 있다. 이 곳(민 33:35)은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기 때문에 주변 나라들의 주도권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왕하14:22;16:6; 대하 26:2).
 

  나. 모압(2:9-15)
  에돔 족속이 가데스에서 가나안으로 직행하는 길(왕의 대로, King's Highway)을 봉쇄했기 때문에(민 20:14-21), 이스라엘은 에돔 땅을 완전히 우회(迂廻)하여, 요단 동편의 모압 땅을 향해 북상했다. 이 길은 소위 '에돔 광야 길'(Way of the wilderness of Edom)이라고 부르는 세일 산지의 도로와 '모압 광야 길'이 상하로 연결된 곳으로, 다메섹으로 가는 대상(隊商)들이 주로 사용하는 도로였다(Schroeder). 하나님께서는 이전에 이곳을 롯의 자손인 모압과 암몬 자손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모압 족속과 싸우는 것을 금하셨다. '괴롭히다'에 해당하는 원어 '추르'는 '에워싸다', '속박하다'는 뜻으로, '적대적인 행위로 상대방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을 말한다. 모압 족속과 암몬 족속(19절)도 아브라함의 조카인 롯이 자신의 딸들을 통해 낳은 아들의 후손이므로(창 19:36-38), 이스라엘과는 친척인 족속이었다.

  * 아르와 에밈
  
아르는 모압의 사해 동족 아르논 강 부근에 위치한 북방 변경 성읍이었다(민21:15). 이전에는 그 땅에 엠 사람이 거하였는데, 그들은 강하며 숫자가 많았으며 아낙 자손과 같이 키가 컸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을 아낙 자손들과 같이 르바임이라 불렀으나, 모압 사람들은 그들을 에밈이라고 불렀다(9-11). '에밈'(Emim)이란 말은 '두려운', '무서운'이란 뜻을 가진 말이다. 아마도 이 이름은 그들이 아낙 족속(the Anakim)처럼 키가 크고 힘이 세었기 때문에 붙여졌을 것이다 (민 1:28; 민 13:22 참조).

  * 르바임
  
이스라엘 민족 훨씬 이전에 가나안 땅에 거하던 원주민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KJV나 RSV는 '거인족'(giants')으로 번역하였다. 한편 초기에는 이들을 '르바 족속'이라고 칭했는데, '르바'란 말은 '크다'란 뜻의 아랍 어근에서 유래한 말이다(창14:5 참조). 에돔 족속들은 이들 원주민을 내쫓고 그 자리에 정착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그들에게 허락해 주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주신 그들의 기업을 침범하면 안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기업을 정해 주시고, 그 기업을 지켜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세렛 시내를 건너라고 명령 하셨고, 모세는 이 명령을 준행했다(13).

  * 세렛 시내
  
사해 남동쪽에 동서로 뻗어 있는 에돔과 모압의 경계선을 이루는 와디(wadi)로서, 비가 내릴 때에 세렛 골짜기(민 21:12)에 형성되는 약 5-6km 정도의 긴 시내를 말한다.  이스라엘은 이 세렛(Zered) 시내를 건넘으로 비로소 광야 38년간의 방랑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진입을 시작하게 되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세렛까지의 직선 거리는 약 130km로서 보통 1주일 정도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들은 그들의 불신앙으로 인해 이 곳에 가는 데에 38년이나 걸려야만 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그들을 버리시고 전혀 전투 경험이 없는 새로운 세대에게 가나안 정복 사업을 맡기셨다(14-15).

 
  다. 암몬(2:16-23)

  하나님께서는 모압 변경인 아르를 지날 때에, 암몬 족속과 다투지도 말라고 하셨으며 그 이유는 에돔과 모압의 경우와 같았다. 그때에 이 땅은 르바임의 땅이라 불렀는데, 그 이유는 그 땅에 르바임족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모압 족속은 이들을 가리켜서 '삼숨밈'이라고 불렀는데, '삼숨밈'(잠줌밈)은 '떠들다', '왁자지껄하다', '악을 꾀하다'란  의미인 '자맘'에서 파생된 말로, '항상 악을 도모하며 시끌벅적한 종족'이란 뜻이다. 이 백성들은 강하며 숫자도 많았고 아낙 족속과 같이 키가 컸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멸하시고 암몬 족속들을 그 땅에 살게 하셨다.

  * '갑돌'(Caphtor)
  에게해 연안의 큰 섬 그레데(Crete)를 가리키는데(딛 1:5), '갑돌 사람'은 그레데에서 팔레스틴의 남서부 해안 지방으로 이주해 온 해양 민족인 '블레셋 족속'을 가리킨다(창 10:14). '블레셋''(Philistines)이란 말은 '이주자'란 뜻이며, 이것은 이들이 가나안 지역으로 이주해 와서 그 땅의 원주민인 '아위'족속을 쫓아내고 정착했기 때문에 붙여졌을 것이다. 이들의 이주(移住)는 B. C. 2000년경 이전에 이루어졌다. 그 중에서 가사는 블레셋의 5대 성읍 중의 하나로서(수 13:3), 예루살렘 남서쪽 약 75km 지점에 위치한 도시이다.

  * '아위 사람'
  이 족속은 팔레스틴 남서부 해안 지방의 촌락에 흩어져 살고 있던 가나안 초기 원주민으로서, 후에  갑돌(그레데)에서 이주한 블레셋 족속에 의해 쫓겨났다.

  모세는 이러한 과거 역사를 상기시켜 주면서 새 세대들도 요단 강 서편에 있는 가나안 족속을 쫓아내고 그 땅에 정착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옛 시대의 실수와 불신을 벗고 다시 일어선 새로운 세대들에게 새로운 믿음을 격려하기 위해 제공할 수 있는 좋은 증거였다.

                                    < 적용 질문 >
1. 하나님은 각자에게 기업을 정해주시고, 타인의 기업을 탐내거나 해를 끼치는 사람을 반드시 심판하신다. 이러한 경험을 한 적이 있으면 서로 나누어 보자.
2. 겉으로 보기에는 힘들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차지한 경험이 있으면 말해보라.
3. 불신앙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주신 절호의 기회를 놓친 경험이 있다면 이야기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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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요단 동편의 정복과 분배(2:24-3:22)

  가. 아모리 왕 시혼을 정복함(2:24-37)
  이스라엘이 아모리인의 국경 근처인 아르논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모압 동편의 길르앗과 바산에 있는 헤스본왕 아모리 사람 시혼을 쳐서 그 땅을 취하라"고 명하셨다.

  * 아르논 골짜기
  비가 오면 형성되는 와디(wadi)이며, 아라비아 산지에서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골짜기로 모압과 아모리족의 경계를 이루고 있던 강다(민 21:13).

  * 헤스본
  요단 강 하류 24km 지점, 얍복 강과 아르논 강 사이에 위치한 모압의 옛 성읍.  아모리 왕 시혼이 점령했으나 모세가 이를 취하여 르우벤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었다(민 32:37).

  하나님께서는 "오늘부터 모든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무서워하며 두려워하게 하실 것"이라고 선포하셨다. 그 동안 이스라엘은 옛 선조들의 죄로 인해 방랑할 수밖에 없었으나, 이제는 이 모든 저주는 끝이 나게 되었다. 그리고 가나안 주민들의 죄악이 관영하여 이제 아무 것도 이스라엘의 전진을 가로막을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제부터 이스라엘과 함께 하실 것이며, 천하 만민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아모리 인과의 전쟁은 이러한 시점에서 일어난 첫 번째 전투였다. 이스라엘의 승리의 소문은 즉시 온 가나안 땅으로 퍼질 것이며, 이로 인해 주변 국가들이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될 것이다(11:25; 수 2:9-11). 악의 세력들은 하나님을 따르는 백성으로 인해 근심할 것이다. '근심한다'('훌')는 말은 '해산의 고통'을 의미하며, 근심과 괴로움으로 몸부림치며, 마음의 병이 될 만큼 걱정하는 것을 말한다(24-25).

  * 그데못 광야
  아르논 강의 북쪽 상류에 위치한 평지로서, 성읍인 '그데못'(Kedemoth)은 후에 레위인들의 성읍이 되었다(수 21:37).

  모세가 아모리 왕에게 사자를 보내어 평화의 말을 한 것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전쟁 법(신20:10)에 근거한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합법적인 싸움에 있어서도 될 수 있는 한 폭력과 피 흘림을 피하기 위해서 전쟁 전에 미리 화평을 선언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자비가 풍성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악인이라도 처벌받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신다. 이 지역(요단 동편)은 본래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땅이 아니었다(창 15:18-21). 그러므로 아모리 왕 시혼이 모세의 제의를 받아들였다면 그들은 멸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기에서 말한 '대로'는 '왕의 대로'(King's Highway)를 말하며, 이 길은 요단강 동편의 북쪽에서부터 아모리와 모압, 에돔을 거쳐 아카바 만 부근의 에시온 게벨<8절>에까지 이르는 국제 도로와 그 지로(支路)를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마음을 완강케 하여 이를 거절했다. "완강케 하였다"('카솨')는 말은 마음을 혹독하고(창 49:7) 강경하게 먹고(삼하19:43) 잔인하게 행동하는 것을 말한다. "강퍅케 하였다"('아마츠')는 말은 스스로의 마음을 굳게 하여 조금도 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이 끝내 평화의 제안을 거절하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비로소 그 왕과 그 땅을 쳐서 이스라엘의 기업으로 삼으라고 명령하셨다(31). 여기에서 "붙이셨다"(나탄)이란 말은 '주다', '위임하다', '돌리다', 그리고 '허락하다'란 뜻을 가진 말이다. 이 판결은 마지막 판결로서 그들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시혼 왕은 이 제의를 거절하고 자기의 모든 백성들을 이끌고 나와서 이스라엘과 전면전을 벌였으나(32),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맡기셨기 때문에, 그들은 모두 멸망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이 이 민족을 치는 일은 하나님의 심판을 대행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은 그들에 대하여 조금의 동정도 보일 수 없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아모리 인의 왕 시혼과 그 아들들과 그 모든 백성들을 쳤으며, 심지어 남녀와 어린아이들까지도 모두 죽였다. 그리고 그들의 육축들과 탈취물들을 전리품으로 취하였다(33-35). 이 날에 이스라엘은 아르논 골짜기에 있는 아로엘과 골짜기 가운데에 있는 성읍으로부터 길르앗에 이르기까지 모든 성읍을 정복했다. 오직 남은 것은 하나님께서 금하셨던 암몬 족속의 땅 얍복 강가와 산지에 있는 성읍들과,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곳 뿐이었다(36-37).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한, 앞으로도 그들에게는 이와 같은 완전한 승리만이 있게 될 것이다.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적용된다. 오늘날 사단의 세력과 영적 싸움을 하고 있는 성도들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만 하면 승리할 수 있다.

  * '야하스'
  트랜스 요르단(Trans Jordan)의 아르논 강 북쪽에 위치한 아모리 왕 시혼의 성읍으로, 일명 '야하사' 혹은 '야흐사'라고 불렀다. 이 성은 가나안 정복 후 레위 지파 므라리 자손에게 주어졌으나(수 21:36), 훗날 모압 사람에게 다시 되돌려졌다.

  * 아모리 족속
  그들의 죄악이 관영(貫盈)하게 되면, 멸망시키기로 작정된 종족 중 하나였다(창 15:16, 21). 그들은 마침내 그들의 죄로 인해 몰살을 당하게 되었다. 범죄한 민족, 범죄한 인간은 언제, 어떠한 형태로든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되는 것이다(전 11:9).

  * "진멸하다"(하람')
  '철저히 죽이다'는 뜻으로, 어미와 그 새끼를 함께 죽이는 '몰살'을 가리킨다. 가나안 정복 전쟁은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는 성전(聖戰)으로,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 시켜야 할 책임이 있었다.  

                                    < 적용 질문 >
1. 하나님 말씀에 절대 순종함으로 완전한 승리를 거둔 경험이 있으면 말해보자.
2. 남 모르게 지은 죄가 어느 날 발견되어 고통을 당한 경험에 있으면 말해보라.
3. 악의 세력들과 타협했다가 실패한 경험은 없는가?
4.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들은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두려워하게 된다. 우리 주변에서 이러한 일들을 본적이 있으면 이야기해 보자,


 
 나. 바산왕 옥과 그의 영토를 정복함(3:1-11)
  헤스본(Heshbon)왕 시혼을 점령한 이스라엘은, 곧 바로 요단 강을 건너 가나안으로 입성하지 않고(2:32-37), 북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야르묵 강 북단의 고원 지대로 계속 올라갔다. 당시 요단 동편 땅에는 얍복 강을 경계로 두 아모리 왕국이 있었다. 첫째는 헤스본을 중심으로 시혼이 통치하는 아모리 남 왕국이었고, 둘째는 바산을 중심으로 옥이 통치하는 아모리 북 왕국이었다. 본문의 내용은 이스라엘 군대가 아모리 남 왕국을 점령하고(민 21:21-32;신2:24-36), 계속해서 아모리 북 왕국을 향해 진격하고 있는 것을 묘사한 것이다. 바산 왕 옥은 계속해서 진격해 오는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백성들을 이끌고 나와 에드레이에서 접전하게 되었다(1).

  * 에드레이
  야르묵 강 상류, 다마스커스 남방 약 96Km지점에 위치한 바산 왕 옥의 왕성(王城)으로, '아스다롯'과 함께 바산 왕국의 2대 수도였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으며, 그들을 이스라엘의 손에 붙였으므로 그들을 치라고 하셨다(2). 이스라엘은 아무런 해(害)나 두려움 없이 바산 왕 옥을 공략할 수 있었고, 왕과 백성들을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모두 멸망시켰다(3). 이 말은 곧 아모리 족속에게 '헤렘의 원리'를 적용시켰다는 뜻이다. '헤렘'이란 '저주받은 것', '없애기 위해 바쳐진 것'이란 뜻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위해 심판 받기로 결정된 것을 말한다. 이러한 원리는 주로 우상 숭배자나 또 그러한 자의 재산, 가축 등에 엄격히 적용되었다(1-3).

  아르곱 지방 전체는 60개의 성읍들을 포함하고 있었는데, 이 성들이 바산에 있는 옥의 왕국을 형성하고 있었다.

  * 아르곱 지방
  바산 지방에 붙여진 이름으로(신3:4,13,14,왕상4:13), 아르곱은 '레겝'('흙덩이'), 또는 '레곱'('돌덩이')에서 파생된 말로서, 이 지역이 '돌이 많은 지역'임을 의미한다. 이 지역에는 화산폭발로 인해 형성된 화산석으로 두껍게 덮인 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이 곳에 있는 60개의 성읍은 높은 성벽과 문과 빗장으로 요새화 되어 있었다. 우리는 현재에도 이 지역에서 벽으로 둘러 쌓인 큰 성들을 확인할 수 있는데(Keil, Delitsch 주석, pp.49 -53참고), 이 유적들은 당시 그곳에 거인족들이 살았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다. 예를 들면 성읍 출입 구리 돌문 두께가 약 45cm 정도, 성벽 높이가 9m정도, 그 총 길이와 너비가 각각 90km와 32km나 된다(C. G. Graham). 그리고 견고히 요새화 된 바산 왕국의 60개 성읍 외에도 골짜기나 하천을 중심으로 자연 발생한 개방적인 촌락(村落)들도 심히 많았다(호크마 주석)(4-5). 이스라엘은 이 모든 성읍들을 진멸시키고, 각 성읍의 남녀와 유아를 진멸하였으며, 모든 육축과 그 성읍에서 탈취한 전리품들은 자기의 소유로 삼았다(6-7). 모세는 8절에서 그때에 그들이 차지한 요단강 건너편의 땅을 아르논 골짜기에서부터 헤르몬 산에 이르는 지역이라고 언급하였다.

  * 헤르몬
  '격리하다','바치다','봉헌하다'란 의미의 '하람'에서 파생된 말로, 곧 그 장엄하고 웅장한 모습으로 인해 '(신에게)봉헌된 산'이란 의미를 지닌다. 이 산은 팔레스틴 북방에 위치한 레바논 산맥 남단의 최고봉으로 해발 2,850m에 이른다. 정상 부분은 사계절 내내 눈으로 덮여 있는데, 여기서 녹아 흐르는 물이 곧 갈릴리 호수와 요단 강의 주요 수원(水源)을 이룬다(Pulpit Commentary, Keil & Delitzsch Commentary, Vol. 1-iii, pp.300-301). 히브리인들은 이 산을 '치솟은 곳', '높은 곳'이란 뜻을 지닌 '시온 산'(4:48)으로도  불렀다. 그러나 이 명칭은 예루살렘을 가리키는 '시온'(시 126:1; 사 1:27)과는 구별해야 한다. 학자들은 예수께서 세 제자와 함께 오르신 변화산(마 17:1-8)이 바로 이 헤르몬 산이었다고 추정한다(6-9).

  이스라엘이 그때에 취한 지역은 평원의 모든 성읍과 길르앗의 온 땅, 그리고 바산의 온 땅인 살르가와 에드레이까지였다(10). 이때에 르바임 족속 중에서 남은 자는 바산 왕 옥뿐이었으며, 그의 침상은 철 침상으로 침상의 길이는 9규빗(약 4m)이었고, 그 넓이는 4규빗(1.8m)이었다(11). 그러나 이 침상이 옥의 체구에 꼭 들어맞는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왜냐하면 고대 제왕들은 종종 철이나 동, 각종 보석 따위로 자신의 몸집보다 더 큰 의자나 침상을 만들어 사용함으로 자신의 위엄과 권세를 널리 과시하곤 했기 때문이다. 알렉산더(Alexander)대왕은 그의 인도 원정시에 길이와 넓이가 각각 2.3m나 되는 의자를 만들어 사용하여 자신의 위엄과 권세를 과시했다(Keil & Delitzsch. Vol. 1-iii, p. 302). 모세가 굳이 옥의 침상 크기를 언급한 까닭은 장대한 체구를 지닌 거인족(巨人族)의 자손 옥(Og)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이스라엘 앞에서는 여지없이 패망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이 두 번째 승리는 다음의 두 가지 이유로 인하여 특별히 더 기억될만한 것이었다. 첫째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산을 정복함으로 요단 전 지역을 정복하게 되었다. 길르앗과 바산(10절)이라는 명칭은 헤르몬 산(8절)에 이르는 요단의 전 지역을 대표하는 명칭이었다. 둘째로 바산 왕 옥의 "철 침상"에 대한 기억이다. 모세는 이 거대한 전쟁 기념물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렸는데, 이는 그들이 모든 승리를 하나님께서 주신 기적적인 선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10-12).

                                    < 적용 질문 >
1. 우리가 자녀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과거의 간증 이야기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2.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셔서 승리한 표적들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다. 요단 동편 땅의 분배(3:12-22)
  모세는 요단 동편의 정복 기사에 이어서 그 땅을 2지파 반에게 분배한 사건을 진술하였다.  요단 동편 땅에 대한 분배는 르우벤과 갓 지파의 과감한 요구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이 두 지파는 가축 떼가 심히 많았으며, 이미 정복한 땅은 가축을 기르기에는 매우 적합한 땅이었다.  처음에 모세는 이들의 요구가 지파 간의 결속과 공동체 의식을 약화시킬 것을 우려하여, 이들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했다(민 32:6-15). 그러나 그들이 모세의 말을 듣고, 자신들도 무장을 하고, 가나안 정복 전쟁이 끝나기까지 선봉에 서서 용감히 싸울 것을 맹세하게 되자(민32:16-19),  모세는 그것을 조건으로 하여 그들의 요구를 허락했다(민32:20-24).

  그때에 므낫세 지파의 마길, 야일, 노바가 북쪽 바산 왕국을 쳐서 정복하였다. 모세는 이들의  공을 인정하여 므낫세 반(半) 지파에게 그들이 정복한 요단 동편 땅을 기업으로 주었다. 이로 인해 아르논 골짜기의 아로엘로부터 길르앗 산지 절반에 이르는 지역, 곧 시혼(Sihon)의 왕국은 르우벤과 갓 지파에게, 그리고 길르앗의 남은 절반의 땅과 아르곱(바산), 지방 곧 옥(Og)의 왕국은 므낫세 반 지파의 기업이 되게 되었다(민 32:33-42 참조). 모세는 바산을 르바임의 땅이라 칭했다고 언급하였는데, 이는 곧 바산을 거인족(巨人族)의 땅이라고 불렀다는 뜻이다. 그 이유는 그 지역에는 거인족이 살고 있었고, 거인이었던 바산 왕 옥(Og)이 통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11절).

 * 므낫세의 자손 야일: 원래 야일(Jair)은 혈통적으로 유다 지파에 더 가까웠다. 그는 유다의 5대손이었다. 그런데 므낫세의 손녀인 그의 할머니가 유다의 손자인 헤스론의 첩이 되어 야일의 아버지를 낳게 되었다. 그런데 야일은 후에 모계(母系)를 따라 므낫세 지파 중에서 성장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야일은 므낫세 지파 중에서 그 어머니의 재산을 상속하게 되어 므낫세 지파에 속하게 되었다. 그의 이름이 여기서 특별히 언급되고 있는 까닭은 그가 아르곱 지방의 정복에 혁혁한 공을 세운 군사 지도자나 용사였기 때문이다(12-14).

  모세는 마길에게 길르앗을 주었다. 마길(Magir)은 므낫세의 장자이다(창 50:23). 따라서  마길에게 길르앗이 주어졌다는 말은 정확히 므낫세 지파 중 마길 계열의 자손들에게 길르앗이  기업으로 주어졌다는 뜻이다(민 32:26 참조). 그리고 마길의 아들 야일과 노바가 이 성읍들을 쳐서 정복한 후에, 자기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의 이름을 붙였다. 그리고 르우벤과 갓 지파에게 할당된 기업의 경계(12절)가 보다 상술(詳述)되고 있는데, 즉 그들의 지경(地境)은 남쪽으로는 아르논 강, 북동쪽으로는 얍복 강 상류, 그리고 서쪽으로는 요단 강과 사해(死海)까지였다.

  * 긴네렛
  '하아프'(Harp)를 뜻하는 '킨노르'에서 파생된 단어로, 갈릴리 호수가 마치 하아프처럼 생겼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15-17).

  그때에 모세는 요단 동편에서 기업을 얻은 두 지파 반에게도 다른 형제들도 기업을 얻을 때까지 무장을 하고 싸우라고 하였다. 당시 두 지파 반(半)에 속한 20세 이상의 군인은 모두 11만 명 가량이었는데(민 1:1-35), 이 중 4만 명은 가나안 본토 정복 전쟁에 참여했으며(수4:12,13), 나머지 7만 명 가량은 요단 동편에 남아 자기 기업(19절)을 수호했다. 모세는 그들의 부녀들과 유아들, 육축은 성읍에 머무르게 하라고 하였는데, 이는 그들의 육축이 심히 많았기 때문이다.

  모세는 시혼과 옥을 정복한 후에(1-11;2:26-37) 여호수아를 자신의 후계자로 세우고 권면의 말을 했다. 이는 죽음을 눈앞에 둔 모세가 자신의 사후, 가나안 정복이란 막중한 책임을 떠맡을 여호수아에게 다시 한번 여호와 신앙을 확고히 심어 주기 위한 일이었다. 신앙의 대 선배로서 모세는 가나안 정복을 앞둔 새 지도자 여호수아에게 과거의 홍해 도하 사건(출 14:13-30)과 아말렉 전투(출 17:8-16), 그리고 시혼과 옥과의 전투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싸움에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며 승리를 주신 '여호와 닛시'(출 17:15,16)의 신앙을 전해주었다. 모세는 여호수아가 앞으로 싸울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해 주실 것이라는 것을 확신 시켜 주었던 것이다(21-22).

                                   < 적용 질문 >
1. 우리는 다른사람들이 수고할 때에 나와 상관없다고 혼자만 쉬고있지는 않은가?
2. 하나님의 나라는 야일과 같이 용감히 정복하는 자들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많이 소유하기 위해 어떠한 헌신을 하고 있는가?
3. 우리가 "여호와 닛시"와 "임마누엘"의 신앙을 우리 삶에 적용할 때 어떤 변화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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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모세의 기도가 거절되다(3:23-29)

  모세는 하나님께 가나안 본토의 땅(창 13:14-17;17:8)을 직접 밟아 보게 해달라고 다시 한번 간구 하였다. 그는 요단 건너편의 땅을 아름다운 땅, 아름다운 산과 레바논이라고 하였다.  이제까지 이스라엘이 거쳐온 광야(1:19)에 비하면 가나안은 아름답고 비옥한 땅임에 틀림없었다. 특히 그 땅은 하나님이 택하신 백성으로 하여금 살도록 작정하고 허락하신 축복의 땅으로서 언약적 견지에서 볼 때에 타 지역과는 비교할 수 없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땅이었다. 레바논은 가나안 최북단의 산악지대이자,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땅의 북방 한계이다. 최고 높은 곳은 해발 3,307m에 달하는데, 산 곳곳에 울창한 백향목 숲이 어우러져 있어 자연 경관이 빼어나다(23-24).

  그러나 이러한 모세의 간구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단호하게 거절하셨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연고로 자신에게 진노하셨다고 말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만해도 충분하니 더 이상 그 일로 하나님께 간구하지 말라고 하셨다. 이 기도는 자신에게서 육체의 가시를 제거해 달라고 간구한 사도 바울에게 하나님께서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라고 대답하셨던 것과 같다(Keil, Schultz). 사실상 모세가 이러한 기도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구약을 대표하는 이 위대한 신앙인의 기도가 거절된 일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하나님의 깊은 뜻을 발견할 수 있다. 1)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은 인간의 공로로 말미암는 것이 아니다. 2)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지 않은 모세를 징계하심으로 스스로 영광을 취하셨다. 3) 율법의 대표자인 모세의 인간적인 한계를 보여줌으로, 율법의 행위로 완전한 사람이 없다는 점을 보여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비스가 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눈을 들어서 동서남북을 바라보고 그 땅을 바라보라고 하셨다. 사해 북동쪽 약 3km지점에 아바림 산맥이 있는데, 그 산맥의 북쪽에 비스가 산이 있었고, 또한 비스가 산의 정상에 느보 봉우리가 있었다(17절). 느보 산 정상에 서면, 요단 강과 가나안 서편 지역 뿐 아니라, 저 멀리 헤르몬 산(8절)까지도 희미하게 보인다(34:1-4). 모세는 그곳에 올라 약속의 땅 전역을 바라보면서 지척(咫尺)의 거리인 그곳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일에 대해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기도를 거절하는 대신 후계자인 여호수아를 담대케 하라고 지시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일 것이라고 하셨다. 모세는 여호수아가 그 일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그를 격려하고 신앙으로 강하게 무장시켰다. 여기에서 강경케 하라('아마츠')는 말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요새화하다', '강하게 하다'는 뜻으로, 여호와 신앙으로 무장케 하라는 뜻이다. 이스라엘은 이때에 벧브올 맞은 편 골짜기에 거하였다. 벧브올 맞은편 골짜기는 모세가 백성들에게 고별 설교를 한 곳이고(1:5), 그가 죽어서 장사된 곳이도 하다(34:5,6). '벧브올'은 브올의 집'이란 뜻으로, 모압인들의 신(神)인 바알브올<민 25:3>의 산당(山堂)이 있던 모압 평지의 성읍이다. 훗날 이곳은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되었다(수 13:20).

                                   < 적용 질문 >
1. 성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지 않을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시는지 말해보자.
2. 어떤 경우에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는가?(듣지 않는 것이 성도와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더 이익이 될 때)
3. 우리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데 유익이 되는 때는 언제인가?


4. 율법 준수에 대한 권면(4:1-40)
  신명기 4장은 모세의 첫 번째 설교 중 결론 부분이다. 모세는 이 곳에서 과거의 일들을 돌아보면서 율법 준수의 당위성을 역설하고 있다. 모세는 4장의 첫 부분에서 이제('웨 앗타')라는 말을 함으로서 역사적인 사건들을 회고하기를 마치고, 이스라엘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는 권고를 하기에 이르렀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율법을 준행할 때에만 그들의 안전과 미래가 보장 될 수 있었다. 따라서 율법 준수에 관한 조항은 모세의 설교 중에서 핵심을 이루고 있다.

 4-1. 율법 준수를 촉구함(1-8)
  모세는 역사적인 회고와 묵상을 마치고, 이제부터 자신이 가르치는 '규례와 법도'를 이스라엘 자손들이 준행하도록 권한다.

  * '규례'(規例)('후카')
  성문율과 같이 도덕이나 관습이 법적으로 확정되고 규정된 것을 말한다. 이 단어는 구약성경에만 나오는데 '끼어들다, 새겨넣다, 제정하다' 등의 의미를 가진 어근(語根)에서 유래되었으며, 단독으로 등장하기보다는 "계명과 율례와 법도"(창26:5), "규례와 법도"(신5:1), "계명과 법도와  율례"(대상29:19) 등과 같이 짝을 이루어 나타난다. '규례는 도덕법, 의식법(儀式法), 시민법, 사회법과 같이 세부적으로 규정된 법규를 가리킨다.

  * '법도'(法度)('미쉬파트')
  사람들이 의무적으로 행하도록 되어있는 모든 것들을 말하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모든 의무와, 사람과 하나님 사이에 지켜야 할 모든 의무들을 포함한다(Keil).

  그러므로 '규례와 법도'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모든 규례와 성문법, 그리고 그들이 마땅히 사람과 하나님 앞에서 지키도록 되어있는 모든 의무들을 말한다. 성경에서 이 두 단어는 자주 혼용되거나, 둘 다 율법을 나타내는 의미로 사용되기 때문에, 두 단어의 의미를 엄밀히 구분하기는 어렵다. 따라서 이 두 단어는 '하나님의 모든 율법과 교훈'을 강조하는 중언법적 표현으로 이해해야 한다. "규례와 법도를 듣고 준행하라"는 것은 율법을 듣고 배우는 일에 그치지 않고 온전히 실천되어야 함을 말한다.

  가. 생명을 얻는 길(1)
  이스라엘 자손은 이 율법을 지킴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1). 모세는 이 말을 결코 추상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실제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결과로, 지난 40년간 광야에서 그들의 죄를 지고 죽어간 이스라엘 구세대의 뼈저린 비극적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자신도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경험을 통해서 말씀에 대한 순종만이 이스라엘이 생명을 얻은 길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었으며, 모세는 이 사실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깊이 상기시켜 주려고 하였다. 이러한 원리는 이 시대를 사는 성도들에게 적용된다. 하나님의 말씀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구원과 영생의 축복을 받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요 5:24).

  나. 말씀에 가감하지 말고 순종할 것(2)
  모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가감하는 일을 금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단지 말씀에 기록된 대로 순종만 하면 된다(2). 이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온전하기 때문이다. 성경은 신구약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이 인위적으로 내용을 덧붙이거나 삭제하는 것을 엄히 금하고 있다(12:32; 잠 30:6; 전 3:14; 마 5:18; 계 22:18, 19). 여기서 '지키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마르는 '가시로서 울타리를 치다'란 기본 뜻을 지니고 있다. 따라서 이 말은 여호와의 명령, 곧 하나님의 법도와 말씀 밖으로 나가지 말고 그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여서 그 말씀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적용하려는 유혹은 사단이 하와를 유혹할 때부터 지금까지 사용해오는 전형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다. 바알브올 사건에 대한 교훈(3-4)
  모세는 한 실례를 들어서 이 일을 강조하였다. 이 사건은 최근 이스라엘 백성들이 싯딤에서, 모압 여인들과 행음(行淫)하며 바알을 섬기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일을 말한다(민 25:1-9). '바알브올'은 '브올 지방의 바알'이란 뜻인데, 이는 당시에 모압 족속이 섬기던 다산(多産)의 신을 말한다. '좇다'('아하르')는 말은 '적극적으로 뒤따르다'(follow), '의지적으로 추구하다'(pursue)란 뜻으로, 우상숭배 제의(祭儀)에 능동적으로 깊이 개입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이 때에 여호와께 붙어 떠나지 않았던 사람들은 생존할 수 있었다. 여기서 '붙다'('다바크')는 말은 '굳게 결합하다', '바싹 뒤따르다'는 뜻으로, 하나님과 가장 긴밀한 교제를 나누는 상태를  말한다(시 71:5; 사 51:5; 암 3:3). 많은 군중들이 바알브올 사건에 참여할 때에도 그 사건에 참여하지 않고 신앙의 정절을 지킨 자들은 모두 생존하여 훗날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사건을 교훈으로 삼아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굳게 지켜야 한다(3-4).

  라. 순종하는 자에게 지혜와 지식이 되는 율법(5-6)
  이스라엘 자손들이 율법을 지켜 행하면, 그것이 그들에게 지혜와 지식이 될 것이다. 주변에 있는 다른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를 듣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혜가 있는 백성이라고 말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말씀은 창조주의 지혜로 주신 말씀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여호와의 말씀을 따르는 것이 참 지혜요 지식이라고 말한다. 성도의 지혜는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다.

  마. 살아계셔서 친히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7)
  이스라엘이 섬기는 하나님은 다른 민족에서 찾아볼 수 없는 신이시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의 역사에 친히 관여하셨으며, 그들의 기도에 응답해 주셨다. 그리고 날마다 그들과 친히 함께 동행하셨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이러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7). 인간의 손에 의해 공교하게 다듬어진 이방의 온갖  신들은 그 백성이 위경에 처해도 돕지 못하나, 여호와는 살아서 역사 하시는 참 하나님이시다.

  바. 가장 공의로운 율법(8)
  율법은 참으로 공의롭기 때문에 준수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이 규례와 법도는 세상의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공의롭고 공평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이 율법을 지킴으로 공의를 시행할 수 있었다. 율법의 공의성(公義性)은 이방 법규와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이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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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스스로 삼가며 마음을 지키고, 자녀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9-14).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율법을 받던 때의 상황을 다시 한번 새 세대들에게 들려줌으로서, 그 당시에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들이나 어려서 그 언약의 의미를 잘 깨닫지 못했던 사람들에게 율법의 신적 권위를 설명해 주고 있다.

  가. 율법을 잊지 않도록 스스로 삼가며 마음을 힘써 지키라(9)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율법을 잊지 않도록 힘쓰라고 지시하였다. 이 말은 직역하면 '네 생명(영혼)을 힘써 지키라'는 의미이다. 마음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앙을 갖고 유지하게 하는 곳이며, 의지적, 도덕적 삶의 중심으로 인격의 중심을 말한다(롬 10:10). 인간은 항상 악에 이끌려 미혹 당하기 쉽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고전 9:27). 성경이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 4:23)고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모세는 새 세대들을 시내 산에 서있던 세대들과 같이 취급하여 '너'(you)라고 불렀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구세대와 신세대가 한 공동체로 연결되어 있으며, 40년전에 주어진 율법은 지금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나. 자녀와 후손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라(9)
  모세는 먼저 부모들이 율법을 기억한 후에, 자녀들과 후손들에게도 부지런히 가르칠 것을 명령하였다. 이 율법은 자손 대대로 이어지면서 준수되어야 한다. 모세는 호렙 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부르셨던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다. 하나님 경외함을 알게 함(10)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호렙 산에 강림하셔서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내신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신의 말씀을 들려주셔서 세상에 사는 날 동안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울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라. 자녀에게 가르쳐야 할 책임(10)
  또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친히 자신의 음성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을 가르쳐 주신 이유는, 그것을 자녀들에게도 전달하고 가르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말은 '쉐마 본문'(6:4-9)을 상기시켜 주는 말인데, 실상 자녀를 말씀으로 양육해야 한다는 것은 성경에서 거듭되고 있는 하나님의 명령이다(11:19; 잠 22:6; 엡 6:4). 이러한 일은 자녀들이 땅에서 축복 받고  잘되게 하는 길이며, 또한 그 자녀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모든 믿음의 부모들이 힘써야 할 일이었다.

  모세는 그때의 광경을 지금 눈에 보는 듯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에 섰고, 그 산에는 불이 붙어서 화염이 충천하였다(19:18). 아울러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상징하는(5;24) 화염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구원의 표증이 되지만(출  13:21,22), 대적자들에게는 심판의 표증이 된다(계 20:9). 그리고 산은 유암과 구름과 흑암으로 덮였는데, 유암'('호쉐크')은 '어두움'을 가리킨다. 이는 짙은 구름이 하늘을 가득 덮어 생긴 어두움을 뜻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가까이 할 수 없는 빛 가운데 거하시는 분(시 104:2; 딤전 6:16)이시기 때문에, 자신을 인간들에게 현시(顯示)하시기 위해서는 그 눈부신 영광의 광채를 반드시 구름과 어두움으로 가리어야만 하셨다(출 19:16-19). 이때에 여호와께서 화염 중에서 그들에게 말씀 하셨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모습은 보지 못하고 말소리만 들었다(12). 하나님께서 모습을 가리우신 이유 중의 하나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모습을 보면 그 형상을 만들어 우상 숭배할 여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지키라고 명 하시고, 그것을 기억할 수 있도록 두 돌 판에 써주셨다. 히브리인들은 10은 '완전성'(完全性)을 나타내고, 2는 '증인의 숫자로 이해했다. 따라서 '십계명'을 '두 돌판'에 기록했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계명의 완전성과 아울러 그것이 뭇 사람들에게 널리 증거 되어야 할 것임을 의미한다. 이 율법은 하나님께서 친히 쓰셨는데, 그 내용이 두 돌비에 각각 어떻게 쓰여졌는지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견해가 있다.

 (1) 5-5 구분법 ; 부모 공경을 종교적인 의무로 포함시켜서 1-5계명까지를 하나로 하고, 그 이하를 사회적인 의무와 구분시키는 구분법인데, 이 구분법은 요세푸스(Josephus)이후 초기 4세기까지 주로 교부들의 구분법이었다.

 (2) 3-7 구분법 ; 3과 7을 각각 삼위일체와 안식을 상징하는 완전 성수(聖數)로 보고, 십계명을 구분한 구분법이다. 어거스틴, 로마교, 루터교 등의 견해이다.

 (3) 10-10 구분법 ; 당시 고대 근동의  종주권(宗主權) 계약 체결 양식이 같은 계약서를 중복하여 만들었으므로 똑같은 십계명을 두개 만들었다는 것이다(M.G. Kline).

 (4) 4-6 구분법 ; 계명을 대신법(對神法)(1-4계명)과 대인법(對人法)(5-10계명)으로 요약한 예수님의 증거 (마 22:37-40)를 근거로 구분한 구분법이다. 오리겐과 칼빈 그리고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가 주로 지지하는 구분법이다.

                                  < 적용 질문 >
1.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생명을 얻고, 지혜의 길을 선택한 경험이 있으면 말해보자.
2. 하나님의 말씀의 공의로움에 대해서 아는 대로 말해보자.
3. 하나님의 말씀을 자녀들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만족할만한 교육인가?
4.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피로 맺은 언약이 왜 오늘날의 성도들에게도 적용이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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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우상 숭배에 대한 경고(15-40)

  가. 우상 제작과 숭배에 대한 경고(15-24)

  * 우상 제작과 숭배를 금지함(15-18)
  모세는 율법 강론을 하기에 앞서서 모든 율법의 기초가 되는 제 1, 2계명, 즉 유일신 하나님 경배에 대해 언급하였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어떠한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 것을 지시하였다(15). 인간은 무엇이든지 자신들의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지기를 바라는 습성이 있기 때문에, 영적 존재인 하나님조차 형상으로 대치시켜 만들어 섬길 우려가 충분히 있었다. 또한 모세는 자기를 위해 아무 형상이든지(사람, 짐승, 새, 곤충, 어류등의 형상) 만들어 놓고, 그것을 섬기는 일을 금지시키고 있다(16). 여기에서 우상(페셀)은 '파살'(새기다, 자르다)에서 온 단어로, 우상은 인간이 인공적으로 조각하거나 새겨서 만든 가공물을 말한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애굽인들의 각종 동물 숭배 사상에 영향을 받았다. 광야 여행시 금송아지 사건(출 32:2-8)도 결국 이런 영향을 받아 일어났는데, 동물 숭배의 무가치성과 헛됨은 이미 하나님의 10대재앙(출 7:8-12:30)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하나님의 거룩성과 절대 유일성은 그 속성상 스스로 자신과 비견(比肩)된 그 어떠한 피조물의 형상도 단호히  배격하신다. 특히 이스라엘이 곧 들어가게 될 가나안 땅에는 온갖 우상들과 거짓 신들이 만연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세는 더욱 형상 제작과 우상숭배를 금하였다(16-18).

  * 일월성신 숭배금지(19)
  또한 모세는 당시에 성행하던 천체 숭배에 대하여도 경고하였다. 그는 백성들이 하늘을 향해 눈을 들어 하나님께서 만드신 일월성신을 보고 그것의 장엄함에 미혹되어 그것을 섬기게 될 것을 우려하였다(19). 본문에서 말하는 '하늘 위의 군중'에서 '군중'에 해당하는 원어 '체바'는 '군대', '큰 무리', '큰 집단'을 의미하는데, 이 말은 '모든 별들의 무리'를 가리킨다.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위해 분정해 주신 것에 불과하다. 여기에서 '분정하다'('할라크')는 말은 '분배하다', '분리하다', '주다'란 뜻이다. 고대 애굽인들이나 가나안족, 그리고 셈족 등은 해와 달과 별들을 우주에 거하는 여러 신들의 분신(分身)으로 보고 이를 숭배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은 이러한 일들을 본받아서는 안되었다(창 1:14-19).

 * 하나님과의 언약을 기억하고 우상숭배를 금지하라(20-2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택하시고, 그들을 쇠 용광로와 같은 애굽에서 이끌어 내셔서 자기의 기업으로 삼으셨다(20). 그러므로 새 세대들은 하나님의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이든지 조각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조심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소멸하는 불이시며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20-24). 여기에서 '쇠풀무'('쿠르 바르젤')는 곧 '철 용광로'(iron furnace, KJV), '쇠를 녹이는 용광로'(iron-smelting furnace)를 뜻한다. 따라서 애굽이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쇠 풀무와 같았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동안 애굽에서 노예 생활할 때 당한 학대와 고통이 얼마나 혹독했던가를 표현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열국 중 제사장 나라가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다(출 19:4-6). 자신의 죽음을 목전에 둔 모세가 마치 유언과도 같은 그의 메시지에서 거듭 역설하고 있는 핵심은, 부디 호렙산에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잊지 말고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는 것이었다.

 * 소멸하시는 하나님! 질투하시는 하나님! (24)
  하나님은 근본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인간의 죄와 불의에 대하여서는 불처럼 심판하시는 분이시다(11절).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을 불로 심판하실 것이다(마 13:40; 벧후 3:12).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 이외의 다른 대상에게 헌신과 애정을 돌리는 것을 결코 용납치 않으신다. 이러한 표현은 하나님께서 마치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갖고 계신 것처럼 표현하여, 독자들에게 실감을 더해 주어 이해를 도우려는 데 그 목적이 있다(6:15).

                                   < 적용 질문 >
1.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리로 예배해야 한다. 우리 주변에 하나님을 형상으로 만들고 섬기는 일이 있다면 그 예를 들어보자.
2. 하나님은 택한 백성에게는 구원과 생명이 되시지만, 죄인에 대해서는 삼켜버리는 불과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3. 현대인들이 섬기고 있는 우상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


  
나. 우상 숭배에 대한 징벌과 회복(25-31)

  * 언약을 잊고 우상숭배 할 때(25-28)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고를 무시하고 우상 숭배를 하게 되었을 때의 일을 미리 경고하고 있다. 그들이 무슨 형상이든지 조각하게 되면 하나님과 맺은 언약(2계명)을 깨뜨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언약을 깨뜨린 대가를 받게 될 것이다(출 20:4-6참조). 모세는 이 일에 대해 천지를 불러 증거를 삼고있다. 모세는 자신의 말에 대해서 하늘과 땅을 증인으로 내세웠다. 만일 이스라엘이 언약을 위반할 때에는 천지가 증인이 되어 심판이 시행될 것이다. 모세는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를 하게 되면 그들이 오래되지 못해서 전멸될 것이라고 경고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징계는 징계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것은 우상의 헛됨을 더욱 철저히 교육하여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긴 결과가 어떻다는 것을 깊이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인 동시에,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게 하시려는 사랑의 채찍이었다. 모세는 우상 숭배자들이 이방에 끌려가서 섬기게 될 우상들을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는 것들'이라고 하였다. 이 말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는 달리 우상들은 아무 생명도 없는 물질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한다.

  * 회복시켜 주시는 자비의 하나님(29-31)
  그러나 모세는 회개하는 자에 대한 구원과 회복에 대해서도 언급하였다.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하나님을 만나고 구원의 길을 베풀어주실 것이다(29).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열조들과 하신 언약을 잊지 않을 것이다. 여기서 '버리다'(라파)란 말은 '풀다','놓치다', '손을 떼다'란 의미인데, 따라서 이 말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결코 놓치지 않으시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이 어떤 조건을 갖추고 있어서 버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열조와 맺은 언약(창 15:12-21) 때문이다. 오늘날 성도들이 죄를 지어도 버림받지 않고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맺으신 '새 언약' 때문이다(히 9:15). 우리는 연약하지만 신실하신 하나님은 한 번 맺은 언약을 끝까지 시행하신다.

                                   < 적용 질문 >
1.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떠난 자녀들을 사랑으로 징계하신다. 그러나 그들을 완전히 멸하시지 않고 회개케 하여 그들을 다시 구원하신다. 이런 일을 경험한 적이 있으면 말해보자.
 


 
 다. 유일신 여호와만을 경배하라.(32-40)

 
 *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32-34)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과 같이 큰 일을 보고들은 적이 있느냐? 고 물었다(32). 모세는 호렙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림하셔서 말씀하신 일은 전 우주 역사 가운데 단 한번밖에 없었던 전무후무한 일이었다고 하였다. 그는 세상에 어느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생존하였으며(33),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모세는 이러한 역사를 행한 민족과 신이 역사 이래로 없었으나, 오직 하나님께서만이 이스라엘 자손들이 보는 앞에서 이러한 기사를 행하셨음을 상기시켜 주고 있다(33-34). 성도들이 때때로 하나님께서 과거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돌이켜보는 것은 참된 신앙 생활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환난 때에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를 돌이켜보면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기억할 수 있으며, 이를 근거로 해서 앞으로도 함께 해 주실 것을 신뢰할 수 있게 된다(시 37:39).

  모세는 계속해서 열방이 섬기는 무능한 잡신(雜神)들과는 달리, 역동적으로 역사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강조하였으며, 이러한 하나님과 특별한 언약 관계에 있는 선민(選民) 이스라엘의 우월성을 강조하였다. 모세는 하나님을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호렙 산에 강림하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실제 생생한 음성으로 당신의 뜻을 명백히 계시하신 율법 수여 사건을 생생하게 연상하면서 하는 말이다(출 19:16-19). '시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기 위해 바로에게 행한 모든 사건들을 말하고 있으며(출7:14-12:30), '이적과 기사'는 택한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해 특별히 인간 역사 가운데서 행하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사역을 말한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모든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자신의 크신 팔로 함께 하심으로 말미암아 승리케 하셨다(출 14장). 또한 "강한 손과 편 팔"은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하나님의 크고 위대하신 구원 행동을 가리키는 의인법(擬人法)적 표현이고(출 6:6;14:8), "크게 두려운 일"은 애굽인들에게 내린 10대 재앙을 말한다(출 12:29-36). 그리고 "한 민족을 다른 민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은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 사건을 말한다. 1) 400여 년이나 종살이를 했던 노예민족이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일순간에 애굽으로부터 영광의 탈출(Exodus)을 감행했으며, 2) 출애굽 이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간을 약 200만이나 되는 많은 인구가 광야에서 무사히 생활했다는 것, 그리고 3) 군사 시설이나 변변한 전투 경험도 없던 노예 민족 이스라엘이 강력한 토착 원주민들을 축출하고 요새화 된 가나안 땅을 단시간 내에 정복, 정착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여준다. 이러한 점에서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에는 열조들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자기 백성을 도우신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특별 섭리와 보호'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창 15:13, 14).

  * 이러한 일은 유일신 하나님을 알게 하기 위한 것이다(35-36)
  하나님께서 이러한 큰일을 나타내신 것은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며, 다른 신이 없음을 알게 하시기 위함이었다(35). 모세는 이 말을 통해서 당시 전세계적으로 범람해 있던 다신론(多神論)과 범신론(凡神論), 그리고 지역신관(地域神觀)을 철저히 배격하고 있는데, 이는 히브리인들이 이후로 날마다 고백하여야 할 신앙의 본질이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이러한 사실들을 가르치시기 위하여 하늘에서부터 음성을 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듣게 하셨으며, 땅에서는  큰불을 그들에게 보이시고 불 가운데서 나오는 음성을 그들이 들을 수 있게 하셨다(36). 여기에서 교훈하다는 말의 원어 '야사르'의 기본 뜻은 '징계하다' 인데, 이 말에서 '교훈하다', '바로잡다', '개심시키다'란 뜻이 파생되었다. 즉 이것은 인간을 징계하시면서까지라도 의의 길로 인도하시려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가르침을 말하고 있다.

  * 이러한 일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시였다(37-38)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들을 사랑하심으로 그 후손인 이스라엘 자손들을 크신 권능으로 애굽에서 인도하셨다. 그리고 그들보다 강대한 열국을 그들 앞에서 쫓아내시고, 그들을 그 땅으로 인도하여 기업으로 주려 하셨다(37-38).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이런 일을 행하신 이유는 바로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때문이었음을 강조하였다(7:7,8;10:15).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고, 그 사랑의 언약 안에서 살아가라고 권하였다.

  * 유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지키라(39-40)
  모세는 하늘과 땅에 오직 여호와만이 하나님이시며, 다른 신은 없는 줄을 알고 명심하라고 거듭하여 경고하였다. 명심하라는 말은 '되돌아가다'(슈브)와 '마음'(레바브)이 합쳐진 말인데, 항상 마음을 돌이켜 두고두고 되새겨 보라는 말이다. 하나님께서도 이 사실을 '명심케 하시기 위해서' 당신의 규례와 법도와 명령과 말씀을 되풀이해서 말씀하셨다(39).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 말을 지킬 때에 그들과 그 후손들은 복을 받고 그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 것이다. 이 말은 그들이 여호와의 규례와 명령을 지킴으로서만 그들의 앞날이 보장됨을 의미한다. 만일 이스라엘 자손들이 반대로 하나님의 규례와 법도들을 어길 때에는, 그들이 쫓아냈던 다른 민족들과 같이 그 땅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다(40).

                                    < 적용 질문 >
1.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행하신 유일무이한 구속 사역은, 우리에게 무엇을 알게 하는가?(하나님은 창조주이시며, 우리는 그 분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자녀들임을 알게해준다)
2. 십자가와 부활은 이런 면에서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가?
3. 구원받은 신약의 성도들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복음서와 산상수훈을 생각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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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요단 동편에 세운 세개의 도피성(41-43)
  "때에 모세가 요단 이편 해 돋는 편에서 세 성읍을 구별하였으니, 이는 과거에 원혐이 없이 부지중에 오살한 자로 그곳으로 도피케 하기 위함이며, 그 한 성읍으로 도피한 자로 그 생명을 보존케 하기 위함이라. 하나는 광야 평원에 있는 베셀이라, 르우벤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길르앗 라못이라, 갓 지파를 위한 것이요, 하나는 바산 골란이라, 므낫세 지파를 위한 것이었더라"(41-43)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춘천 대우인력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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