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성경 구약 주석 신약 주석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예루살렘 선교회

신약/마가복음

[스크랩] 마가복음 1장 강해

예루살렘 선교회, 안디옥 선교회 2015. 2. 9. 08:51

마가복음 1장


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예수를 소개하면서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세례요한을 소개하기 위함; 예수를 먼저 소개하지 않고 길을 예비하려고 온 요한을 먼저 소개하기 위함이다.

2. 세례요한이 무엇이라고 외쳤을까?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마 3:2); 이 말씀은 예수님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세례요한이 먼저 사용했던 말씀이다. 말하자면 세례요한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까지 예수님께 넘겨준 셈이다. 나중에 보면 제자들까지 보내준다.

3. 세례요한은 사람이 많은 도시에서 외치지 않고 왜 요단 강 주변, 광야에서 외쳤을까?

    광야는 하나님만을 바라고 사는 경건한 사람들이 찾는 곳이기도 했다; 성도는 경건을 위해서 때로는 사람도 없고, TV도 없는 곳에서 하나님과 단독 교제가 필요하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믿는 사람만 골라서 전도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많이 다르다. 이스라엘이 출애굽하여 주로 거한 곳, 바울이 예수님을 만난 후 갔던 곳,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가셨던 곳, 다윗이 왕이 되기 전에 도망 다니던 곳, 모세가 부름 받기 전에 있었던 곳, 세례 요한이 사역을 시작한 곳은 모두 광야이다. 광야에서 힘을 얻어서 다시 삶의 현장으로 가야한다.

4. 요한의 복장이 지닌 특징을 찾아보자.

    1) 약대털옷; 비싼 가죽옷이 아니다. 거친 옷이다. 장점은 세탁이 불필요한 단벌신사에게 어울리는 옷이다. 비싸고 좋은 옷은 교회 올 때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다. 가난한 형제의 기를 죽이면서 무슨 예배를 드린단 말인가? 가장 허름한 옷을 깨끗이 손질해서 오는 것이 좋겠다. 가장 가난한 형제가 동류의식을 느끼도록 말이다. 그것이 형제와 함께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길이요 광야로 가는 길이다.

    2) 가죽 띠; 활동하기 좋게 해주는 것이다.

    3) 메뚜기와 석청; 지금처럼 건강식이 아니라 거친 식사이며, 점잖게,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식사가 아니다.

    종합해보면 안락함과 거리가 먼 생활이었다. 넉넉한 삶을 산다고 해도 가난한 자를 위해서 줄이고 스스로 이런 삶을 영위하는 것이 광야로 가는 삶이요 하나님을 섬기는 자세이다.

5. 성령 세례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이다. 이것을 받기 위하여 예비조치로 (물세례)를 받았다. 그 전에 또 무슨 예비조치가 필요한가?

    회개

6. 세례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더 위대한 자가 없다는 말을 들었으며(마 11:11. 눅 7:28) 예수님은 새삼 설명이 필요 없다. 이렇게 위대한 두 분이 오셨다고 선언했으면 그 다음에는 당연히 뒤따라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

    성대한 잔치라도 벌여야 하는 것; 그럼에도 두 분에게 공통으로 나타나는 모습은 광야로 간 것이다. 그렇다고 없는 광야를 찾아 헤매지 말자. 보는 것, 입는 것, 먹는 것을 조금 더 줄이고, 잠을 줄여서라도 조용한 시간을 만들어서 하나님을 찾는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광야생활이다. 예수님도 틈만 나면 산, 혹은 한적한 곳을 찾으셨다.

7. 요한은 예수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증거하는가?

    나보다 능력이 많다(=신들메 풀기도 감당치 못함, 나는 물로 그 분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는 것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이다. 죄는 하나님만이 없앨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뒤에 오신다.

8. 예수께서 세례를 받고 물에서 나오시는 장면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한꺼번에 활동하고 계시는 그리 흔하지 않은 아주 귀한 장면이다. 세 분 하나님께서 이렇게 함께 관심을 가지고 하시는 일이 무엇인가? 바로 다음 장면을 참고해서 생각해보자.

    인류 구원; 바로 다음 장면은 예수께서 시험을 받는 일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 속에서 성령의 이끌림으로 예수께서 받은 것이다. 이 싸움에서 이겨야 한다. 아담이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서 온 인류가 타락의 길을 걸은 것을 예수께서 다시 걸으며 이기기 위함이다.

9. 1장의 주제인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라는 이미지와 거리가 먼 내용은?

    세례를 받으심; 세례란 죄를 씻음에 대한 상징인데 죄 없으신 그 분이 세례를 받는다? 황송무지로소이다. 우리 죄를 대신하는 것에 대한 상징이다.

10.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굳이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셔야하는 이유가 있을까? 성령이 그렇게 인도하신다면 선택사항이 아니라 필수사항인 모양인데.

    아담이 실패한 그 시험을 대신 치르는 것; 시험을 받으셔야 하고 승리하셔야 한다. 우리가 치뤄야 하는 시험을 대신 치르시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이 사단의 시험을 이겨낼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시험을 이기셔야하는데 만유의 주인이신 그 분이 이 땅에 오셔서 사람도 없는 광야에서 들짐승과 함께 계시는 모습을 보라. 우리 위해 이런 고난을 자청하신 분이시다.

11. 예수님은 능력있는 하나님이시니 그런 시험도 아무런 고통없이 이길 수 있는 것 아닐까?

    이 땅에 오실 때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인간이 당하는 어려움과 아픔과 고초를 다 겪으신 분이시다; 성령의 인도하심과 천사들의 수종이 필요했던 분이시다. 가끔은 성부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위로하시기도 하셨다. 우리와 똑같은 육신을 입으시고 오셔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을 간절히 사모하며 구하며 이 어려운 시험에서 승리하셨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승리할 수 있음을 몸소 보여주셨다. 육신이 약하다는 것을 잘 아시는 분이시다. 그러나 그렇게 약한 육신도 하나님을 의지하고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예수를 믿는 우리가 매사에 패배주의에 빠져 할 수 없다는 생각만 하고 있는 것은 옳지 않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은 사도 바울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자. 나의 능력으로는 안되겠지만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면서 용감하게 나아가자. 예수님도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오셔서 어려울 때는 천사의 수종도 필요했다. 눈물로 기도하시며 그 어려운 길을 성공적으로 걸어가셨다.

12. 예수님께 오신 성령은 무슨 일을 하시는가?

    광야로 내몰아 시험을 받게 하심; 우리가 바라는 성령은 우리가 무슨 뛰어난 능력을 주시는 분 아닌가?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완성케 하신다. 성령은 나의 뜻을 이루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이루신다. 내 뜻대로, 내 욕심대로 살고 싶으면 성령을 주십사고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 어떠한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사시기를 원한다면 성령이 늘 우리와 함께 계시기를 기도하며 성령이 우리의 삶을 인도해 주십사고 기도해야 한다.

13. 요한이 잡힌 후에 갈릴리로 피하여 가신 것은 비겁한 행위가 아닐까? 요한은 헤롯의 비행을 지적하고 책망하다가 잡혔다. 예수님은 어떻게 해야 하나? 요한과 힘을 합쳐 헤롯의 잘못을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

    예수님의 할 일은 따로 있었다; 백성들 앞에 나가서 헤롯의 불의함을 지적하면서 백성들의 지지를 모았으면 아마 엄청난 일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 헤롯을 무너뜨리고 예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 분은 조용히 물러갔다. 자신이 할 일이 따로 있음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헤롯의 손에 잡혀 죽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정해진 때에 제대로 이루지 못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다. 때가 되면 스스로 십자가를 향해서 가신다. 사소한 문제다 싶으면 양보하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혹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문제와 부딪히면 그때는 목숨을 거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지키기 위해서 때로는 비겁자가 되기도 하고 무능한 자가 될 수도 있어야 한다.

14. 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2000년 전에 이미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하셨는데 그 하나님의 나라가 지금은 어디에 있는가?

    하나님 나라는 현재적 의미와 종말론적 의미를 동시에 가지고 있다.

    1) 현재적 의미;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 지금 우리 가운데 와있는 천국이 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이루어가야 하는 하나님 나라이다.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우리가 최선을 다 해야 한다. 내가 속한 가정에서, 교회에서 천국을 이루어야 한다. 내가 속한 회사와 이웃들에게서 천국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천국을 소유한 우리의 특권이요 사명이다.

    2) 종말론적 의미; 종말론적 의미에서 천국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될 것이며 믿는 우리들에게는 완전한 새 하늘과 새 땅을 하나님께서 따로 예비해 두셨다. 그 곳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우리는 상상할 수도 없다. 영원한 즐거움이 넘치는 곳이라고만 기억하자. 인간의 말로 감히 표현할 수 없는 곳이기에 계시록 21, 22장에 보면 황금으로 된 12대문에다 온갖 보석으로 꾸며진 곳이라고 한다. 더 이상의 눈물도, 괴로움도, 슬픔도 그곳에는 없기 때문에 우리는 이 땅의 어려움도 즐거움으로 이겨나가는 것이다. 진짜 좋은 자기 집이 있는 사람은 사정상 잠시 남의 집에 세들어 살면서도 주인집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천국의 주인이 이 땅에서 너무 째째하게 살지 말자. 마음을 넓히고 아량을 얼마든지 베풀며 살아도 될만큼 우리는 넉넉한 사람들이다.

15. 예수님은 왜 이스라엘의 중심지인 예루살렘과 유대지방을 버려두고 하필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셨을까?

    인구도 많고, 교통의 요지이기 때문이다; 예루살렘은 행정적인 수도이었지만 외적이 침공하기 어려운 높은 산지에 있었다. 따라서 예루살렘 자체는 큰 도시이었지만 주변에 인구가 그리 많은 곳은 아니다. 교통도 그리 편한 곳은 아니었다. 반면에 갈릴리는 평지여서 주변에 작은 도시들이 굉장히 많았다. 데가볼리란 지명이 있는데 10개의 도시란 뜻이다. 전체인구로 본다면 예루살렘보다 훨씬 많았을 뿐 아니라 애굽이나 블레셋을 거쳐서 아람으로 가는 상인들이 지나가는 대로가 있어서 소문이 퍼지기에도 아주 유리한 조건을 갖춘 곳이다. 복음을 널리 전하기에는 전략적으로도 유리한 곳이다.

16.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그 말씀 한 마디에 그렇게 쉽게 인생을 바꾸다니... 성경은 때때로 너무 간단하게 기록해서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기 어려운 때가 더러 있다. 여기서도 아마 우리가 모르는 어떤 일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다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는 사람을 낚으려는 것이었는데 베드로는 그렇게 되었나요?

    그렇다. 한번 설교에 3000명, 5000명을 회개케 했으면 훌륭한 어부가 된 셈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우리를 통해서 다른 사람을 낚는 것 말이다. 우리가 사용할 미끼는 예수믿는 사람답게 사는 것이다.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의 시민답게 살아서 결과적으로 사람을 낚아야 한다.

17. 그들은 무엇을 하다가 부름을 받았는가?

    그물을 던지거나, 그물을 깁다가; 그들 나름대로 생업에 충실하던 사람들이다. 어떤 경우에도 게으른 사람이 하나님의 손에 붙들려 위대한 사명을 감당한 예가 없다. 부름을 받았을 때 공통점은 버려두고 좇았다. 이유도 없이 가족을 돌아보지 않고 이런 구절을 적용하면 안된다. 모든 사람, 모든 경우에 적용해야 할 구절은 아니다.

18. 예수의 소문이 퍼지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권위있는 가르침; 당시의 서기관들의 가르침이라는 것이 시시콜콜한 규정의 해석이 고작이었다. 사변적이고 중요하지 않은 일에 온갖 관심과 정열을 다 쏟은 셈이었다. 우리 자신들도 마찬가지다. 혹시 교회 안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것인가보다는 사소한 절차 문제나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별로 상관이 없는 일로 얼굴을 붉히며 싸우지는 않는가?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이 율법에 집착하도록 가르쳤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도록 가르치셨다. 율법에만 얽매이지 않고 그런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가를 알아서 그것을 실천하도록 가르치셨다.

    귀신들을 쫓아냄; 실제로 귀신은 사람보다 강한 영적 존재이다. 아이들이 말하는 그런 귀신은 없지만 사탄의 졸개로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귀신은 분명히 있다. 예수의 이름이 전해지는 곳마다 귀신이 물러갔다. 우리 속에 거룩한 성령 하나님께서 좌정하고 계시는한 우리 근처에는 귀신이 얼씬거리지 못한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마 12:43-45) 예수님의 이 말씀은 주인없는 사람에게 귀신이 덤비는 법이므로 귀신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더 좋은 주인을 모셔들이라는 뜻이다. 우리의 마음에 성령님이 좌정해 계시도록 자리를 비워드려야 한다.

19. 하나님을 아는 것이 무엇보다 귀하다. 그러나 귀신들은 하나님을 잘 알았기에 오히려 두려워하고 떠나기를 원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와 다른 점이 귀신들에게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다른가?

    귀신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자는 심판자이며 우리에게는 구원자이기 때문이다.

20. 아무리 귀신들이지만 옳은 말과 듣기에 좋은 말까지 그렇게 꾸중하실 필요가 있을까?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하는 데에 귀신들의 증언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며 더구나 심판의 대상자가 듣기에 좋은 말을 한다고 기쁜 것도 아니다. 말이 맞고 틀림이 문제가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가 어떤 것이냐가 중요하다. 귀신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 귀신의 말이 아무리 옳더라도 예수님은 귀신의 말로 인해 높임을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부족한 우리의 입을 통해서 고백되어지고 찬양되어지기를 기뻐하신다. 우리가 찬양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복된 일인가? 우리보다 더 많이 알고 능력이 더 있는 귀신들의 입을 막으면서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찬양을 기뻐하신다.

21. 시몬의 장모를 '여자가 수종드니라'라고 말해도 되는가?

    원어나 영어로는 문제가 없다. 번역상의 문제이다.

22. 로마 천주교 신부들이 결혼하지 않는 것은 그들 스스로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믿으면서 베드로가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본문에서는 무엇이라고 하며 혹시 본문 이외에도 증거가 있을까?

    베드로에게 장모가 있었으므로 결혼한 사람이었다;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고전 9:5)는 말씀을 보면 다른 사도들이나 주의 형제들 특히 게바(베드로)는 전도여행을 다닐 때 부인을 데리고 다녔음이 확실하다. 결혼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더 잘 섬기는 것이며 더 거룩한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 에녹이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한 일은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창 5:21-22).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자녀를 낳았다. 자녀를 낳고 기르는 이 모든 일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 속에 있었다는 말이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가족을 다 버리고 깊은 산 속에 들어가서 혼자서 명상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남편으로서 아내와 자식들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면서도 가능한 일이다. 아내도 남편에게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다하는 것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친다고 남편과 자식에게 해야 할 의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일이다. 출 21:10에 '만일 상전이 달리 장가들지라도 그의 의복과 음식과 동침하는 것은 끊지 못할 것이요'라고 한다. 아내로 삼으려고 여자를 사왔다가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의식주만 해결해 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동침하는 것까지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설마 하나님께서 부부사이의 성적인 문제까지 관심을 가지고 소중하게 여기실까 싶으면 고전 7장을 자세히 읽어보아야 한다. 부부 사이의 일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과 별개의 것이 아니다.

23. 예수님께서 많은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었지만 진심으로 원하셨던 사역은 무엇인가?

    전도하는 일을 가리켜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고 하셨다(38); 복음을 전혀 듣지 못한 불신자들에게 전하는 것이야말로 소중한 일이다.

24. 예수님은 말씀과 치유의 능력을 갖추신 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분의 사역의 원동력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었다. 무엇인가?

    기도; 쉴 틈도 없이 바쁘신 예수님께서 새벽 미명에 한적한 곳으로 가셨다. 하나님과 단독으로 교제할 수 있는 곳이다. 예수님께서는 혼자서 새벽기도를 하셨던 모양이다. 완전한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가 느끼는 피곤도 다 느끼고 아픔도 슬픔도 우리와 같이 느끼시는 그 분께서 성공적으로 사역을 완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히 돌보시기도 했겠지만 예수님께서 철저하게 기도로 무장하고 계셨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어느 놈이 새벽기도를 만들었느냐?'고 고함을 친 분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만드셨나봐요!

25. 본문을 보면서 예수님의 하루 일정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1) 낮에는 회당에서 가르치시는 일과 귀신들을 쫓아내시는 일을 하셨다. 그 후에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르셨다. 시몬이 베드로의 본명이다.
2) 저녁에는 각색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셨다. 몇 시에 일을 마쳤을까? 아마 일찍 끝마치지 못하셨을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밤을 새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유대인들이 안식일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가 해질 무렵에 몰려온 것이다.
3) 새벽에는 기도하러 나가셨다. 도대체 언제 얼마나 주무시고 새벽 미명에 기도하러 가셨을까?
4) 낮이면 주로 회당을 중심으로 한 전도여행을 다니셨다.

대강 이렇게 하루의 일정을 요약할 수 있다. 예수님은 거의 이런 모습으로 3년 간의 공생애를 보내셨다. 예수님을 어떤 분이라고 할까요?

    기도와 전도로 쉴 틈이 없으셨던 예수님.

26. 문둥병자가 예수를 찾아와서 고쳐달라고 하고 예수께서 고치시는 장면은 일반적인 경우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원하시면 깨끗게 하실 수 있다'는 문둥병자의 믿음도 훌륭하다. 예수님은 어떤 훌륭한 본을 보여주셨는가?

    민망히 여기심; 불쌍한 자를 불쌍하게 보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불결하다고 피해가고 가까이 오지 말라고 돌을 던지던 때이므로.

    손을 내밀어 대신 것; 문둥병자에게 손을 내밀어 몸에 대는 것은 당시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손양원 목사님은 문둥병자의 고름을 입으로 빨았다고 한다. 예수님보다 더 위대하다고 말하면 그 분은 분명히 '위대한 사랑을 예수님께 배웠다'고 말할 것이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아마 때가 되기까지는 큰 소문이 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조그마한 자랑거리 하나도 감추어 두고 있지 못하는 게 우리의 생리이거늘.

27. 마가복음은 박해받고 있는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기록한 책이다. 예수님께서 우리 위해 얼마나 억울한 고통을 겪으셨는지, 그러나 그 고통과 죽음이 끝이 아니라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주로 로마인을 염두에 두고 썼기 때문에 다른 복음서와 달리 마가복음에서는 생략해버린 것이 있는 데 무엇일까?

    예수님의 족보나 탄생의 이야기들; 마가복음은 종으로 오신 예수를 설명한다. 누가 종의 족보나 탄생에 귀기울이겠는가? 결과적으로 글의 진행이 아주 빠르다.

28. 마가는 닥쳐오는 박해의 고통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서 이 글을 썼다. 다른 이야기들은 가급적 생략하고 예수는 이렇게 위대한 분이셨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하여 제시한 증거는 무엇인가?

    세례 요한의 증거, 하늘의 증거, 위대한 가르침을 베푸신 분, 귀신을 쫓아내시는 분, 병을 고치시는 분; 심지어 하늘이 내린 형벌이라고 불리던 문둥병마저 고치시는 분이라고 소문이 났다고 말한다. 이런 예수님이 이 땅에서 우리를 위해서 종의 모습으로 오셨다고 말하면서 어려움 가운데서도 예수님에 대한 신앙을 저버리지 말 것을 권면한다.

출처 : 춘천 대우인력 김진규
글쓴이 : 대우인력 김진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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